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곤 걸’벤 애플렉



“연기자로서 성취, 이젠 다양한 영화 제작의 꿈”


현재 상영 중인‘곤 걸’(Gone Girl)에서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 남편 닉으로 나온 벤 애플렉(42)과의 인터뷰가 9월27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감기가 걸려 쉰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하던 애플렉은 잇단 인터뷰에 지친 듯이 처음엔 하품을 하면서 피곤한 표정을 지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활기를 되찾아 F자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신이 난 아이처럼 떠들어댔다. 숱 많은 머리에 잔 수염을 한 미남인 애플렉은 체중이 다소 비대해 보였는데 요란한 제스처에 연기를 하듯이 얼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만은 위트와 유머를 섞어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했다. 아주 실팍한 인터뷰로 시상시즌에 접어들었음을 깨우쳐 주듯이 은근히 영화의 골든 글로브상 후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배우이자 감독인 당신이 다른 감독에 의해 연기 지시를 받는 기분이 어땠는가.
“믿는 사람으로부터 연기 지시를 받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데이빗 핀처(감독)는 좋은 영화만 만든다. 그래서 난 장인의 휘하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을 골라 함께 일한다.”

―데이빗 핀처 감독과는 어떻게 보조를 맞췄는가.
“그는 매우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 주도면밀한 시계 제조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그는 많은 논의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구의 얘기 속에서 사실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매우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닉은 매스컴의 총아가 되는데 역시 매스컴의 초점을 받는 당신은 이를 어떻게 보는가.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요즘의 케이블 TV들은 비극이나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시청자들은 이런 뉴스를 포식하며 즐긴다. 보도라는 명목 하에 사건의 주인공들은 추악한 인물들로 낙인이 찍히고 마는데 데이빗도 영화에서 미디어의 이런 위선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결혼에 관한 분석이기도 한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결혼에 대해 생각했는가.
“난 영화와 달리 사랑스런 아내(배우인 제니퍼 가너)가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내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어두워 촬영 후 귀가해도 그 흔적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핀처는 유머가 많고 따스한 사람이어서 세트에서 웃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닉(벤 애플렉)은 아내 에이미(로자문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아내살인자로 몰린다.

―속편을 만들 것인가.
“다시 이렇게 어두운 영화를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데이빗도 속편을 만들 것 같지 않다.”

―영화는 상당히 무서운 얘기인데 당신이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경험은 무엇인가.
“내 아이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는 일이 가장 두렵다. 지금 나의 아이들이  앓고 있는데 제니퍼가 여기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이다.”

―미디어의 끈질긴 추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태블로이드 잡지나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드는 미디어에 걸리면 상처 받기가 십상이다. 그들은 식인종이자 잔인하다. 다행히 난 견고한 환경에서 자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미디어의 허위와 과장보도를 ‘시간이 약이다’라는 심정으로 견딜 수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명해지려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악명과 유명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것이 요즘 미국의 현실이다.”

―다음 영화에서 배트맨으로 나오는데 역을 제의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앞으로 2년 뒤에나 나올 영화여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각본이 훌륭하고 재주 있는 감독(잭 스나이더)이 연출하며 든든한 스튜디오(워너 브라더스)가 만들어 매우 흥분하고 있다는 말만하겠다.”

―한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죽으면 그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만 화장실에 혼자 있으면 웃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그것 참 재미있는 농담인데 내가 말했다고는 쓰지 말라. 이 영화는 당신의 농담이 지적하듯이 부부 간의 긴장을 다루고 있다. 남녀가 연애를 할 때는 서로 자신들의 좋은 점만 보여주지만 일단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당신이 잘 몰랐던 면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닉도 아내가 실종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아주 행복하다고 느낀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빗도 당신의 농담에 담겨 있는 혹독한 진실을 얘기하려고 한 것이다. 관계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다행히 제니퍼가 있어 복이 많다. 관계나 직업이나 친구를 돌보고자 한다면 그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주 복잡한 성격을 지닌 닉 역을 하기가 쉬웠는가.
“사실은 아주 자유로웠다. 보통 주역은 늘 옳고 똑똑하고 매사에 답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참 지루한 노릇이다. 데이빗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사실적이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데이빗은 내게 한 치의 꾸밈도 없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내 장점과 함께 가장 추한 단점을 보여줘야 했다. 닉의 역을 하는 데는 어떤 규칙도 없어 자유로웠다.”

―영화 출연에 응한 첫째 이유는 무엇인가.
“존경할 수 있는 감독인 데이빗과 일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이 42세에 남들이 다 부러워할 성취를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과거 10년간 나는 상당히 순조로운 길을 걸어 왔다. 난 이제 얘기꾼으로서의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연기보다 감독에 더 힘쓰려고 한다. 작은 영화와 대하 서사적인 영화를 고루 만들려고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고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할리우드다. 야구선수도 삼진을 먹을 때가 있지 않은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나의 세 아이가 성격 형성기인 8세와 5세와 2세이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주변에서 멀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 다음에 아이들이 커서 자서전을 쓸 때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곁에 있지 않았다’고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주로 누가 돌보는가.
“제니퍼다. 제니퍼는 영화 출연과 양육을 아주 현명히 조화시키고 있다. 역의 선정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한다. 제니퍼는 멋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공연히 엉덩이나 흔들어대는 롬콤에는 안 나온다. 나는 아이를 갖기 전만해도 직업여성인 배우가 양육과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몰랐다. 그런 뜻에서 나는 제니퍼를 존경하고 또 그에게 감사한다.”

―닉은 어린 어린 여대생의 유혹에 넘어 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빗나가는 결혼이다. 따라서 여자나 남자나 다른 데서 인간관계를 통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경멸한다면 그 결혼은 끝장이 난 것이라고. 닉도 에이미가 더 이상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 결정은 물론 비도덕적인 것이지만 결혼 얘기를 할 때 온갖 유혹을 제외하고 어떻게 얘기할 수가 있는가.”

―당신과 로자먼드가 나체로 나온 샤워장면에 대해서 말해 달라.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 나체를 인식했다. 그래서 데이빗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데이빗은 부부가 실제로 침대에 있을 때 여자가 쉬트로 젖꼭지를 가리지 않듯이 노골적이요 솔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머리 손질도 화장도 못하게 했다. 우리 자신을 숨기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빈센트(빌 머리)가 올리버(제이든 리버허)에게먼지 마당의 제초작업을 시키고 있다.

괴팍한 늙은이와 이웃소년의 만남과 힐링


심술첨지 중늙은이가 맑고 총명한 어린 소년을 베이비시팅하게 되면서 소년의 순진한 마음에 의해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아울러 자기 가슴 속 깊이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인간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맞지 않는 한 쌍의 인간관계의 이야기이자 자기 구제의 코미디 드라마다.
전연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베테런 코미디언 빌 머리의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해내는 천연덕스럽고 다채로운 연기와 그와 소년 역의 제이든 리버허의 찰떡궁합 콤비네이션 그리고 주변 인물들로 나오는 조연진의 조화를 이룬 협찬 등으로 인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만한 영화다.
빌 머리에게 너무 의존하고 후반에 들어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많이 듣던 얘기가 제자리를 맴돌면서 신선감을 잃고 있으며 또 다소 감상적이긴 하나 달콤 쌉싸래하고 훈훈한 정이 있어 흐뭇한 감정에 젖게 된다.
브루클린 교외에 혼자 사는 6순의 베트남전 베테런 빈센트(머리)는 술꾼에 골초요 입만 열었다 하면 상소리가 튀어나오는 대인기피증자. 친구라곤 007시리즈에서 본드의 천적 블로펠드가 껴안고 쓰다듬던 페르시아산 백고양이 필릭스 하나다.
인간 친구라곤 자기가 자주 이용하는 임신한 러시안 창녀 다카(네이오미 와츠가 심한 러시안 액센트를 쓰면서 파격적인 연기를 한다). 그런데 빈센트는 매주 요양원에 있는 정체가 안 밝혀진 샌디(다나 미첼)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빈센트의 옆집에 이혼수속 중인 매기(멜리사 매카시)가 12세난 갈비씨 아들 올리버(리버허)와 함께 이사를 온다. 이사 오는 날 이삿짐 차가 빈센트의 앞마당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빈센트와 매기는 반갑지 못한 이웃이 된다.
병원의 의료담당 기술자인 매기는 올리버를 방과 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 돈이 궁한 빈센트에게 시간당 12달러를 주고 아들을 맡긴다. 자기를 퉁명스럽게 대하는 빈센트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올리버. 이런 중에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둘 간의 감정의 물꼬가 트인다.
빈센트는 자기가 자주 찾아다니는 바와 경마장에 올리버를 데리고 다니면서 조기 어른 훈련을 시키는데 올리버가 새로 전학한 가톨릭 학교에서 급우에게 시달리자 상대방의 코피를 터지게 하는 쌈질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둘은 이제 없으면 못사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올리버의 선생(크리스 오다우드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이 아이들에게 너희들 주위에서 성인을 찾아 그에 관한 글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올리버는 빈센트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 빈센트에 관해 조사를 한다.
얘기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빈센트와 올리버 간에 불화를 조성하고 불상사를 일으키나 결국 둘은 화해하면서 사랑이 더욱 공고해지고 모두들 한 가족처럼 되어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 하는 얘기.
잘 찾아보면 우리들 주위에 ‘인간 성인’들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한데 이 인간 성인 역을 머리가 기차게 잘해 낸다.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요 겉으로는 밉상이나 속은 착한 밉지 않은 심술단지 노릇을 속옷 갈아입듯 쉽고 자연스럽게 한다. 실제의 자신을 베껴 먹은 연기다. 시오도어 멜피가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PG-13. Wei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판사(The Judge)


행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왼쪽)가 아버지 조셉(로버트 두발)과 피고석에 앉아 있다.

법정드라마 속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그려


판에 박은 법정 드라마이자 뜻밖의 사건으로 소원했던 부자간의 관계가 재 연결되는 가족 드라마인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로버트 두발이라는 두 거물급의 영화치곤 너무 상투적이다. 상영시간도 쓸데없이 긴 140여분으로 뻔한 결말을 가져오기까지 괜히 얘기를 질질 끌고 간다.
올 토론토영화제 개막작으로 기대가 컸던 영화로 두 배우의 맹렬한 연기는 볼만하나 이런 내용의 영화가 지닌 온갖 구태의연한 요소는 다 갖다 쑤셔 넣은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여서 식상한 감이 있다.
시카고의 변호사 행크(다우니 주니어)는 ‘돈 많고 유죄’인 의뢰인만 맡는 잘 나가는 변호사. 행크는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되는데 이와 함께 인디애나의 작은 마을에 사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는 수십 년간 동네판사로 지내 모두들 ‘판사’라 부르는 행크의 아버지 조셉(두발)과 한때 프로야구 유망주였으나 꿈이 무산된 형 글렌(빈센트 도노프리오)과 정신박약자인 동생 데일(제레미 스트롱)이 살고 있다. 그런데 행크와 독선적이자 권력형인 조셉과는 앙숙지간.
오래간만에 가족이 함께 모이면서 이런 영화가 잘 써먹는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가족문제들이  나열된다. 후회와 회한과 갈등과 애증의 편린들이 옷장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가 많다.
그리고 행크는 동네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고교시절 애인 새만사(베라 화미가)를 만나 옛정을 되살리는데 새만사가 마치 옛날에 못 이룬 사랑의 결실을 이제야 맺어보겠다는 듯이 적극적이다. 20여년은 헤어졌다 만나는 둘이 금방 옛사랑을 재 점화한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얘기는 아내의 장례를 치른 조셉이 28년 만에 처음 마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람을 차로 치어죽인 혐의로 기소되면서 가족 얘기가 법정 드라마로 변전한다. 조셉의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은 조셉이 과거 20년형을 선고한 동네 쓰레기 같은 인간. 그런데 과연 조셉은 이 사람을 고의로 치어 죽였는가 아니면 실수였는가. 그런데 조셉은 사고에 대해 전연 기억을 못한다.
조셉을 기소한 검사는 베테런 드와잇(빌리밥 손턴)이고 변호사는 신출내기 C.P.(댁스 쉐파드). 그래서 행크가 마지못해 C.P.를 도와 아버지 변호에 나선다. 두발과 다우니 주니어가 부자간의 치열한 갈등 끝의 화해를 이루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적이자 극적인 연기를 가슴 뭉클하니 보여준다. 그러나 얘기가 사전에 그어놓은 줄을 따라 가듯이 너무 작위적이고 또 잘 깎은 잔디처럼 매끄러워 사실감이 안 난다. 데이빗 다브킨 감독.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독일 표현주의 영화




내가 한국일보 서울본사에서 LA 미주본사 3년 근무를 자원한 이유 중 하나가 할리웃이 있는 이 도시에서 영화나 실컷 보겠다는 것이었다. LA로 옮긴지 얼마 안 돼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LACC 야간부 영화사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캠퍼스 생활 재경험이 참 흐뭇했었다.
그때 처음 보고 배운 영화들이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과 ‘불관용’ 그리고 루이스 부누엘의 충격적인 ‘안달루시아의 개’와 함께 독일 감독 로버트 뷔네가 만든 해괴한 무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관’(The Cabinet of Dr. Caligariㆍ1919ㆍ사진) 등이었다.
‘칼리가리 박사’는 1차 대전 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잠깐 만개했던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심신을 죄어들면서 협소감을 느끼게 하는 삐딱하고 비현실적적인 세트 디자인과 무대극과 같은 화면 구성 그리고 흑백명암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촬영과 조명 및 도발적인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 복잡하고 변태적이며 심리적인 주제를 다룬 악몽과도 같은 영화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스타일이 아주 고급이다.
나는 강의시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하고 영화의 신경지를 깨닫는 기쁨에 젖었었다.
대부분 무성영화들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전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와 온갖 악조건에 시달리던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또 어둡던 당시 독일의 시대상황의 산물로 1933년 히틀러의 득세와 함께 소멸됐다.
그러나 히틀러가 득세하면서 또 다른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 중 하나인 ‘M’(1931: 24일 하오 7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에서 1956년작 필름 느와르 ’도시가 잠 잘 때‘와 동시상영)을  감독한 프리츠 랭 등 많은 표현주의 영화인들이 할리웃으로 이주하면서 할리웃 영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 대표적 장르가 필름 느와르로 표현주의는 지금까지도 할리웃이 만드는 범죄영화와 공상과학영화 및 공포영화에서 자주 감지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전시회 ‘사로잡는 스크린: 1920년대 독일 영화’(Haunted Screens: German Cinema in the 1920’s)가 2015년 4월26일까지 LA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린다.
14명의 감독과 20명의 미술가 및 25편의 영화들과 관련된 250점의 영화 클립과 각본, 사진과 스케치와 포스터 그리고 문서와 카메라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회는 4개의 주제로 구분됐는데 표현주의의 태동을 보여주는 첫 번째 ‘광기와 마법’ 전시실에 들어서니 ‘칼리가리 박사’와 파울 베게너 감독의 ‘골렘’(The Golemㆍ1920) 및 로버트 뷔네가 연출한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ㆍ1923) 등의 정교한 세트 디자인 등이 눈길을 끈다.
둘째 전시실은 ‘신화와 전설’로 랭 감독의 ‘니벨룽겐’(Die Nibelungenㆍ1924)과 F.W. 무르나우의 ‘파우스트‘(Faustㆍ1926: 17일 하오 7시 빙극장에서 1994년작 ’파우스트‘와 동시상영) 등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의 각본과 스케치들이 전시된다.
이어 ‘도시와 거리’ 전시실로 들어가면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급팽창한 베를린 및 여러 도시들의 성장과 관련된 작품들의 각종 자료가 진열됐다. 무르나우의 걸작으로 에밀 야닝스가 주연하는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ㆍ1924)과 역시 야닝스와 토실토실 살이 찐 마를렌 디트릭이 공연한 ‘푸른 천사’(The Blue Angelㆍ1930) 및 제1회 오스카 여우주연상(재넷 게이너)과 촬영상 등을 받은 무르나우의 ‘해돋이’(Sunriseㆍ1927) 그리고 G.W. 팝스트의 ‘기쁨 없는 거리’(The Joyless Streetㆍ1925) 등의 세트사진과 스케치들이 급성장하는 도시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황량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은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에 의존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영화들에 관한 ‘기계와 살인자들.’ 이를 대표하는 영화는 두말 할 것 없이 랭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ㆍ1927). 이와 함께 ‘M’과 역시 랭 감독의 ’마부제 박사의 유언‘(The Testament of Dr. Mabuseㆍ1933) 등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보인다.
전시회에는 이들 외에 따로 ‘계단’이라는 주제로 표현주의 영화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계단 스케치와 세트디자인 사진들을 따로 마련했다. 이들 계단은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뒤틀리고 불안하며 또 소외당하는 감정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웃음’과 ‘죄와 벌’ ‘메트로폴리스’와 ‘기쁨 없는 거리’ 등의 계단들이 불길하고 위태로운 기운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형 포스터들도 구경거리다. ‘푸른 천사’와 ‘M’ 그리고 ‘메트로폴리스’와 요염한 단발머리 루이즈 브룩스가 주연한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ㆍ1929) 등의 포스터가 전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실 내 어두운 두 터널에서는 전시된 영화들의 발췌 필름이 상영된다. 지크프리트가 입에서 불을 뿜는 용을 죽이는 장면(‘니벨룽겐’)과 아동살인자인 M(피터 로레)이 거지와 도둑들에 의해 인민재판을 받는 모습 그리고 ‘해돋이’와 ‘마지막 웃음’의 장면들을 보면서 잠시 현재를 잊고 과거가 소용돌이치는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편 뮤지엄(5905 Wilshire Blvd.)내 빙극장에서는 전시회에 선보인 표현주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lacma.org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