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5월 13일 월요일

‘허슬’ (The Hustle)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두 사기꾼 페니(왼쪽)와 조세핀이 다음 행동을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

뚱보-미녀 콤비, 부자 남자 등치는 코미디 사기극


잘 나가는 두 스타 레벨 윌슨과 앤 해사웨이가 동료 사기꾼들로 나와 터무니없는 소리와 행동을 해대는 참으로 한심한 영화로 창작력을 상실한 할리웃 스튜디오의 또 하나의 꼴불견의 해프닝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말론 브랜도와 데이빗 니븐이 나온 ‘베드타임 스토리’(1964)와 이를 리메이크한 스티브 마틴과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더티 로튼 스카운들러’(1988)의 두 번째 리메이크로 이번엔 주인공들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화사한 외면에 비해 내용은 영양실조에 걸린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싸구려 분 냄새가 나는 영화로 마치 잘못 만든 무성영화 시대의 홀쭉이와 뚱보 코미디언 콤비였던 로렐과 하디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뚱보 코미디언 윌슨이 제작까지 했는데 영화에서 계속해 뚱뚱한 자기를 비하하는 농담을 하는 것을 살이 찐 여성관객들이 보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리고 이 영화는 탐욕이 좋다고 찬양하는 물질만능주의 영화이기도 하다.
영국 태생의 조세핀(해사웨이)은 절경인 프랑스 남부 해안 휴양지에 고급주택을 소유한 패션감각이 뛰어난 콧대 높은 부자인데 재미로 자기 미모를 미끼로 마을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부자 남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쳐 거액의 돈이나 보석 등을 사취한다. 
미국 중부의 싸구려 술집에서 일하는 호주태생의 페니(윌슨)는 온라인에서 만난 남자와 데이트를 시도하나 매번 실패한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유럽에 가서 돈 많은 남자 노리겠다며 유럽에 도착해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페니는 객차의 자기 앞에 앉은 남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데 이를 주시하는 사람이 기차에 동승한 조세핀.
이를 계기로 모양과 성격이 판이한 둘은 사기꾼 팀메이트가 되는데 먼저 페니는 자기보다 한 수 높은 조세핀으로부터 남자들을 등쳐먹는 방법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페니는 자신의 뚱뚱한 몸을 혹사해가면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데 눈이 먼 여자로까지 위장해 흰 지팡이를 휘두른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는 조세핀이 어떻게나 자주 화려한 드레스를 바꿔 입고 나오는지 마치 패션쇼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둘은 주로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남자들을 성대로 사기를 친다고 주장하는데 허튼 소리다. 
여하튼 여러 남자가 조세핀과 페니의 봉이 되는데 이들이 큰돈을 노리고 봉으로 겨냥한 남자가 어리숙한 젊은 하이텍 억만장자(알렉스 샤프). 둘이 사기 칠 액수는 자그마치 500,000달러. 해사웨이와 윌슨은 서로 상부상조해 팀웍을 이룬다기보다 각자가 따로 놀면서 서로를 상대로 소리를 질러대 시끄럽다. 이런 넌센스 코미디가 지녀야 할 광적인 불꽃이 튀지 않는 창백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크리스 애디슨 감독.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 아들’ (My Son)


쥘리앙(왼쪽, 기욤 카네)과 마리가 실종된 아들의  자연공부 캠프장에서 슬픔에 젖어 있다.

“실종된 아들 찾아라”추적 나선 아버지… 기욤 카네, 절망감·긴장 넘치는 연기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1차대전 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2005)를 연출한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과 영화에 주연한 기욤 카네가 다시 콤비가 되어 만든 가족 드라마이자 납치 스릴러로 이런 내용을 다룬 다른 여러 영화들보다 특별히 다른 점은 없지만 카네의 영육을 쥐어짜는 듯한 연기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조성, 볼만하다.
상영시간 85분짜리 짧은 영화로 실종된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아버지의 절망감과 경찰의 도움을 뿌리치고 단독으로 아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암담하기 짝이 없는 분위가 발생하면서 순조로운 호흡을 방해한다. 다소 터무니없는 점이 있긴 하나 즐길만한 영화다. 
한 겨울. 직업 때문에 국내와 해외 출장이 잦은 쥘리앙(기욤 카네)에게 프랑스 동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전처 마리(멜라니 로랑)로부터 공포에 질린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자연 공부 캠프에 간 7세난 아들 마티스(리노 파파)가 밤새 실종됐다는 내용이다. 
황급히 차를 몰고 자기가 살던 마을로 달려온 쥘리앙과 경찰(모아메드 브리카)간의 인터뷰 과정에서 쥘리앙의 생활의 면모가 밝혀진다. 그의 잦은 출장으로 마리와 갈등을 일으켜 둘은 몇 년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이 쥘리앙과 마리의 대화를 통해 알려진다. 
쥘리앙이 아들의 실종에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가 이혼 후 자기를 매우 사랑하는 아들을 거의 찾아보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 한편 마리는 동네에 사는 그레과(올리비에 드 베놔스)를 새 애인으로 삼아 동거 중이다.
아들의 실종에 미칠 것 같은 쥘리앙은 그레과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레과가 마티스에 대해 무관심한 것에 분노 그를 사정없이 구타한다. 그리고 쥘리앙은 그레과가 마리와 단둘이 오붓하게 살려고 마티스를 납치했다고 까지 생각한다.
이어 쥘리앙은 규칙대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을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마티스의 실종을 납치라고 확신하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잿빛 날씨의 음침한 환경(촬영이 좋다) 속에 사방팔방으로 차를 몰고 다니면서 아들을 찾는 쥘리앙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탄다.  
그런데 쥘리앙이 경찰을 따돌리고 혼자서 유능한 수사관처럼 아들의 납치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질 않는다. 그리고 결말도 유럽영화 같지가 않다. 카네 외에도 많은 장면에 나오진 않지만 로랑의 초조와 비통 그리고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어머니 모습의 연기도 훌륭하다.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롱 샷’ (Long Shot)


플라스키가 필드의 두 참모들이 자켜보는 가운데 자기가 쓴 연설문을 필드(오른쪽)에게 보여주고 있다

황당 정치·로맨스 뒤섞인 할리웃판 풍자영화


터무니없는 소리 하고 있네. 구태의연하고 황당무계한 소리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전형적인 할리웃 스튜디오의 표본과도 같은 영화로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다. 
13세 때 자기를 베이비시팅한 3세 연상의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소년이 20여년 후 신문기자로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 베이비시터의 연설문 작성자로 고용되면서 둘 사이에 사랑이 영근다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끝이 영 설득력이 없다. 
마구잡이로 각본을 쓴 작품으로 꿈같은 소리하고 있는데 샬리즈 테론이 보기 드물게 코미디에 출연해 호기심 거리는 된다. 그런데 테론과 그의 상대역으로 나온 코미디언 세스 로건 간의 궁합이 썩 좋지가 않아 둘의 로맨스에서 열기를 못 느끼겠다. 
처음에 심층취재 기자 프레드 플라스키(세스 로건)가 나치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를 위장취재하다가 들통이 나는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이어 플라스키는 편집국장(한국계 랜달 박)으로부터 신문사가 폭스 스타일의 언론사 재벌인 웸블리(앤디 서키스)에게 팔렸다는 말을 듣고 직장을 때려친다. 
플라스키는 실직의 슬픔을 달래려고 끝발이 좋은 친구 랜스(오셰이 잭슨 주니어)를 불러내 술을 마시다가 랜스를 따라 언론사 유명인사들과 정치인들이 모인 맨해탄의 파티에 참석한다. 여기서 플라스키는 웸블리를 만나 그의 언론사가 국가에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성토를 한다. 
이를 주시하는 여자가 미 국무장관 샬롯 필드(테론). 필드는 플라스키를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필드에게 다가간 플라스키가 “당신은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베이비시터였다”고 말한다. 
필드는 이어 대통령후보가 되는데 그 사연이 웃긴다. 현 대통령인 체임버스(밥 오덴커크)는 TV에서 대통령으로 나온 코미디언(막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뽑힌 TV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생각난다) 출신으로 TV로 복귀하겠다며 재출마를 포기했다. 이 영화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정치 풍자영화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필드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성이 강한 소녀여서 결국 국무장관까지 됐는데 그래서 팝문화나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필드에게 부족한 것이 유머. 필드는 과거 플라스키의 기사를 읽고 즉흥적인 위트에 감탄한 바가 있어 그를 자기 연설문 작성자로 고용한다. 이에 결사반대하는 것이 필드의 두 고위 참모들. 그래서 이들은 플라스키를 내쫓으려고 온갖 사보타지 행위를 시도한다. 
필드는 자신이 슬로건으로 내건 환경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동참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세계순방에 나서는데 플라스키도 이에 동행하면서 연설문을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일어난다. 
그리고 필드는 서서히 플라스키에게 애정을 품게 되는데 필드가 덥수룩하니 수염을 기르고 막 자다 일어나 운동복 바람으로 밖에 나온 사람 모양의 어른아이와도 같은 필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플라스키의 순진함과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정의감에 반해서일까. 
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필드의 두 참모들은 필드에게 은근짜를 놓는 캐나다의 독신 수상 제임스 스튜어드(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필드를 짝지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
대선의 열기가 깊어지면서 필드는 자신과 플라스키의 관계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그리고 필드는 폭탄선언을 한다. 과연 필드는 미 역사상 최초의 여대통령이 될 것인가. 조나산 리바인 감독. R등급. Lionsgate.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림자’ (Shadow)


지유(오른쪽)와 징이 음양무늬의 바닥에서 무술 훈련을 하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예술적 액션… 대역 장군의 장렬한 전투 볼 만


‘영웅’ ‘연인’ 및 ‘황후화’ 같은 액션이 박진하고 아름다운 무술영화를 잘 만드는 중국의 명장 장이모우의 시각미가 아찔하게 예술적이며 액션이 물 흐르는 듯이 유연하고 박력 넘치는 궁중 드라마다.
음모와 배신과 기만과 로맨스가 복잡하게 연결되고 개인 간의 결투와 대규모 전투 장면이 대담무쌍하게 펼쳐지는 대하서사극인데 매우 진행이 느리고 지나치게 스타일과 외면에 치중한 감이 있는 반면 내용 서술이 실하게 처리되지 못한 감이 있다.
참으로 장관인 것은 묵화를 그린 것 같이 먹물 단색으로 찍은 화면이다. 흑백의 아름다움이 칼라보다 더욱 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가끔가다 칼라로 인간의 육체와 대나무의 잎 그리고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피를 흑백과 대치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이런 아름다운 화면과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개인 간의 액션 장면 그리고 대규모의 군중 전투장면 등 예술적으로 처리된 외형미와 스타일은 경탄스럽지만 인물들의 성격개발이나 이야기의 막힘이 없는 흐름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촬영과 액션 안무 그리고 디자인 등은 참으로 훌륭하다.
내용은 ‘삼국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페이 국의 비겁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왕 페일리앙(젱 카이)은 라이벌 나라에게 자기 영토인 징조우를 빼앗기고도 더 이상의 정쟁만 없다면 된다며 현상유지에 만족한다. 심지어 적국의 왕에게 자기 여동생 큉핑(구안 시아오통)을 첩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왕의 뜻을 어기고 적국의 창을 잘 쓰는 양장군(후진)에게 도전하는 것이 페이 국의 용맹한 장군 지유(뎅 차오). 그러나 이 혈기 방장한 지유는 진짜 본인이 아니라 자기와 똑 같이 생긴 징(뎅 차오). 지유는 지난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자기가 훈련시킨 징으로 하여금 자기 ‘그림자’가 돼 궁정에서 활동하도록 한 것. 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지유의 아내 시아오 아이(순 리). 그런데 시아오 아이가 가짜 장군 징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묘한 삼각관계가 발생한다.
지유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자기가 훈련시킨 부하들을 동원해 공격을 시도하면서 장렬한 전투가 벌어진다. 무술 안무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이름다운데 특히 지유와 징 그리고 시아오 아이 3인이 보여주는 무술장면이 우아하고 치명적인 궁중무를 보는 것 같이 멋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볼만한 것은 무기와 방패로 써지는 우산. 방패로 써지던 우산이 조각조각 갈라지면서 쇠 날들이 날아가 상대를 쓰러트린다. 그리고 우산은 또 마치 큰 접시처럼 되어 사람이 타고 질주하는 용구로도 써진다. WellGo.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얀 까마귀’ (The White Crow)


파리에 도착한 누레예프가 카페에 앉아 자유분방한 거리풍경을 주시하고 있다.

서방 망명한 러시아 발레 스타 누레예프의 전기


1961년 공연차 방문한 파리에서 서방세계로 망명한 러시아의 수퍼스타 발레댄서 루돌프 누레예프의 전기영화로 배우 레이프 화인스의 세 번째 감독 작품이다. 영화에서 누레예프의 발레 선생으로도 나와 대사를 러시아어로 구사하는 화인스는 연출과 연기를 다 착 가라앉은 솜씨로 다루고 있다. 연출력이 섬세하다.
많은 발레 장면과 누레예프의 인물과 성격묘사 그리고 그의 파리에서의 생활과 마지막 망명 시도 등 극적인 부분을 골고루 다루고 있는데 칙칙한 단색으로 처리한 회상장면이 너무 많아 서술이 산만하다. 예술을 좋아하는 팬들이 즐길 영화로 누레예프로 스크린에 데뷔한 우크라이나의 발레 댄서인 올렉 이벤코의 연기가 카리스마가 부족하긴 하나 그만하면 잘한 편이다. 제목은 줏대가 너무 강해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를 가리킨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누레예프는 어렸을 때부터 댄스에 재능을 보여 국립댄스학교에서 수련을 받는다. 성장한 그는 레닌그라드의 저명한 발레교사 알렉산더 푸쉬킨(화인스)의 제자가 된다. 그런데 누레예프는 오만하고 반항적이며 집단 위주의 소련에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해 학교의 관리들과 충돌을 한다.
푸쉬킨은 누레예프의 재능과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파악, 그를 정성껏 지도하는데 누레예프에게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사람이 푸쉬킨의 아내 세니아(출판 카마토바). 세니아는 남편의 코앞에서 누레예프를 유혹해 정사를 나눈다. 영화에서 누레예프는 양성애자로 나오는데 그는 1993년 에이즈로 사망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누레예프는 키로프 발레단원이 된다. 그리고 발레단은 1961년 5주간의 프랑스 공연차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 묵는 동안 누레예프는 동행한 소련 정보부 KGB 요원의 통금명령과 삼엄한 감시를 무시하고 파리의 문화와 밤의 클럽문화를 즐긴다. 이에 누레예프를 동행하는 사람이 파리에서 사귄 프랑스 댄서 피에르 라코트(라파엘 페로나즈)와 피에르의 친구인 상류층 출신의 육감적인 클라라 생(아델 에사쇼풀로). 
파리에서의 발레 공연장면이 화사하니 멋있다. 이와 함께 파리의 데카당한 밤 문화가 소개된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후 발레단은 런던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KGB 요원이 누레예프에게 런던이 아니라 혼자 모스크바로 가야 된다는 지시를 내린다. 누레예프의 개인적 활동이 찍혀 호출되는 것이다. 
소련에 돌아가면 자기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누레예프는 망명을 하기로 결심한다. 정보부 요원들이 누레예프를 둘러싼 가운데 그의 과감한 망명을 돕는 사람이 피에르와 클라라. 특히 클라라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공항에서의 이 장면이 긴장감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려고해 서술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잘 만든 예술적 영화다. 
R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엘리아 카잔


수년전 뉴욕에서 마틴 스코르세이지 감독을 인터뷰할 때 내가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이 감독이 되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영화는 무엇인가.” 이에 그는 서슴없이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라고 대답했다.
내가 최근에 읽은 리처드 쉬클이 쓴 통찰력 있는 카잔의 전기 ’엘리아 카잔‘(Elia Kazan)에서도 스코르세이지는 “나는 12세 때 ’워터프론트‘를 보고 내 피의 한 부분처럼 느꼈었다”면서 “이 영화는 사실주의의 표본으로 인간의 자연적 행위인 표면 뒤의 진실을 드러낸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찬양했다. 스코르세이지는 후에 카잔이 자신의 후기작품인 ’어레인지먼트‘를 찍을 때 무보수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 ‘표면 뒤의 진실’은 카잔(사진)이 평생 짊어지고 다닌 부담이었다. 1909년 오토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카잔은 2003년 94세로 뉴욕에서 사망할 때까지 늘 ‘아나톨리안 미소’을 지으며 살았다. ‘아나톨리안(현재의 터키) 미소’란 속내와 다른 미소를 일컫는데 이는 평생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긴 이민자로서의 카잔의 삶의 한 모습이었다. 이민자인 나도 그 의미를 잘 알 것 같다.   
영화와 연극감독이자 연기선생이며 각본가요 제작자이며 작가인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부터 연출활동을 시작했다. 그 대표적 작품이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이 두 작품은 종전의 무대의 역할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것들로 평가받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후에 카잔이 말론 브랜도와 비비안 리를 써 영화로 만들어 리가 오스카주연상을 탔다.
활기왕성하고 대담하고 창조적이면서도 사적이요 자기회의적이며 복잡한 성격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집념의 소유자였던 카잔은 배우들로부터 생생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지닌 ‘배우들의 감독’이라 불리면서 사회의식이 강한 사실주의적 작품들을 여럿 만들었다.
그 대표적 영화가 뉴욕부두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횡포를 폭로한 ‘워터프론트’다. 이 밖에도 미국 내 흑백문제를 그린 ‘핑키’와 반유대주의를 폭로한 ‘신사협정’, 미디어의 대중우민화를 다룬 ‘군중 속의 얼굴’ 및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에 관한 ‘거친 강’ 등이 있다.
카잔은 명배우들을 배출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의 창립자로 말론 브랜도, 몬고메리 클리프트, 제임스 딘 및 줄리 해리스 등 기라성 같은 연기파들을 키운 탁월한 스승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숨은 잠재력을 찾아 끌어낼 줄 아는 신통력을 지닌 선생이었다.
그는 특히 1950년대 여러 편의 명작들을 만들었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워터프론트’와 함께 역시 브랜도 주연의 ’혁명아 자파타!‘와 제임스 딘 주연의 ’에덴의 동쪽‘ 그리고 ’베이비 달‘ 및 ’군중 속의 얼굴‘ 등이 이 때 작품들. 뛰어난 비전과 왕성한 추진력을 지녔던 카잔은 19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감독이었다.
그의 또 다른 영화들로는 한국에서 개봉됐을 때 10대 여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은 워렌 베이티와 나탈리 우드가 공연한 ‘초원의 빛’과 자기 가족의 자화상인 ‘아메리카 아메리카’가 있다. 마지막 영화는 F. 스캇 핏제럴드의 미완성 소설로 MGM의 요절한 명제작자 어빙 달버그를 모델로 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라스트 타이쿤’(1976).
카잔은 생전 명성과 오명을 함께 지니고 살아야 했다. 그는 ‘신사협정’과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두 번이나 탔고 1983년에는 미 정부가 주는 케네디센터 생애업적상을 그리고 1999년에는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그의 이런 영광은 그의 사후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배신자’라는 오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한 때 공산당원이었다가 환멸을 느끼고 탈퇴한 카잔은 미국 내 공산당 때려잡기 광풍이 불던 1952년 연방하원의 ‘반미활동 조사위’의 청문회에 출두, 공산당과 관계한 동료 영화·연극인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래서 카잔이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탈 때 많은 참석자들은 기립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의 수상에 반감을 표했었다.
그러나 카잔의 ‘고자질’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그 중 한 사람이 책을 쓴 쉬클이다.  이들은 카잔이 청문회에서 밝힌 이름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이름들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며 아울러 국가에 해가되는 단체 소속원들을 고발한 것이 왜 나쁘냐는 주장이다.         흥미 있는 사실은 카잔이 ‘워터프론트’의 주인공으로 부두노동자들을 착취하다 뒤 늦게 각성하는 깡패 테리 말로이(브랜도)를 통해 자기 입장을 대변한 점이다. 테리는 동료깡패들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면서 정의 수호자가 되는데 카잔은 이런 동료에 대한 배신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고발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엘리아 카잔’의 저자 고 리처드 쉬클은 내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의 회원이었다. 타임지 영화비평가로 오래 활동한 그는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많은 저서와 함께 찰리 채플린, 우디 알렌 및 엘리아 카잔 등 여러 영화인들에 관한 30여 편의 기록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쉬클은 책에서 카잔의 60년에 이르는 감독으로서의 삶과 작품들을 지적이요 폭넓게 조명하면서 아울러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카잔을 추모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빛의 도시’ 파리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들을 보자. 고다르의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에서 프란츠와 아르튀르와 오딜이 세계 신기록을 낸다며 뛰어다니면서 9분43초 만에 그림과 조각등 전시품들을 다 본 루브르미술관, 튀어나온 송곳니처럼 파리의 하늘을 찌르고 선 에펠탑, 강변에 앉은 연인들의 키스가 물결치는 센 강.
고다르의 ‘브레스리스’에서 단발의 진 시버그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하며 신문을 팔던 샹젤리제와 반전 작가 에릭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인 개선문 그리고 얼마 전에 불이 난 노트르담성당.     
파리를 두 차례 찾았던 내가 애착을 느끼는 곳은 개선문 앞 샹젤리제에 있는 120년의 역사를 지닌 식당 푸켓(Fouquet’s)이다. 내가 이 식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 ‘개선문’(Arch of Triumph)을 통해서다. 소설은 2차대전 직전 독일서 파리로 도망 온 불체자 의사 라빅과 역시 불체자로 배우 출신인 혼혈녀 조앙의 우수와 절망과 불안에 가득 찬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라빅과 조앙이 자주 들렀던 곳이 푸켓이다. 둘은 여기서 시큼한 맛이 나는 사과브랜디 칼바도스를 즐겨 마셨는데 칼바도스는 둘의 육체적 사랑을 촉진시키는 최음제 구실을 한다. 소설은 샤를르 봐이에와 잉그릿 버그만 주연의 동명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는 그 이후 파리하면 이 책과 영화에 나온 푸켓이 먼저 떠올라 2011년 로만 폴란스키를 인터뷰하러 파리에 들렀을 때 샹젤리제를 걸어 마침내 그 곳엘 들러 노변 테이블에 앉았다. 가르송에게 칼바도스를 시켜 프랑스 사람들이 즐기는 에스카르고(달팽이)를 안주 삼아 마시며 이방인의 소슬함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들렀던 기차역 가르 뒤 노르(북 역)도 잊지 못할 곳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분주한 가르 뒤 노르는 메이-디셈버 로맨스영화로 게리 쿠퍼와 오드리 헵번이 나온 ‘하오의 연정’의 라스트신을 찍은 곳이다.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파리의 또 다른 곳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센 강 위의 퐁 뇌프다. 폴란스키를 만나기 몇 년 전에 이 다리를 무대로 한 영화 ‘다리 위의 연인들’을 취재하러 간 것이 파리 초행이었다. 영화는 한 쪽 눈이 먼 화가 미셸(쥘리엣 비노쉬)과 퐁 뇌프를 집으로 삼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인 거리의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와의 집념적인 사랑을 그린 것이다.           
센 강을 따라 걸어 황혼녘에 퐁 뇌프에 이르러 다리 위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저만치에 노트르담이 보인다. 내가 노트르담을 본 것은 이렇게 멀리에서였다. 노트르담에 가지 않고 다리 옆에 있는 카페 퐁 뇌프에 들러 위스키를 시켜 마셨다.
‘우리들의 성모’라는 뜻의 노트르담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와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여러 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잘 만든 것이 찰스 로턴이 흉측하게 생긴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로 그리고 모린 오하라가 화끈하게 요염한 집시댄서인 에스메랄다로 나온 1939년 작 흑백작품이다. 성당 지붕의 괴물상 모습을 한 로턴이 뛰어난 연기를 하는데 소설과 달리 해피 엔딩이다.
영화는 1956년 앤소니 퀸과 이탈리아의 글래머 걸 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는데 전편만은 못하나 볼만은 하다. 이 영화는 소설처럼 비극으로 끝난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이 밖에도 론 체이니 주연의 무성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노트르담은 이 밖에도 많은 영화에서 그 위용을 뽐냈다. 그런데 노트르담 화재 후 책 판매부수가 늘었다고 한다.
파리는 요즘 불타고 있다. 프랑스의 시민 시위대인 ‘노란 조끼’들이 시내에 나와 마크롱 대통령의 정부를 비난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방화와 파괴를 하고 있는데 지난 3월에는 ‘노란 조끼‘들이 푸켓에 불을 지르고 내부를 때려 부셔, 그 처참한 모습(사진) 을 보자니 내 가슴에 서운함이 스며든다.
노트르담 화재 후 정부가 성당 복구를 위해 돈과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대기업들이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자 20일 ‘노란 조끼’들이 이에 반감을 표시하면서 다시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 시민은 “노트르담이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인간이 돌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시위의 이유를 밝혔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라는 영화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로 2차대전 종말기 독일군이 파리에서 철수하기 전 노트르담과 에펠탑등 파리의 기념비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과 이의 실행을 놓고 갈등하는 점령군 총사령관의 유사 기록영화 스타일의 작품이다.                     
‘카사블랑카’에서 이별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구요”라고 애소하는 일사를 릭은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가 있을 거요”라며 달랬다. 일사와 릭 그리고 우리 모두의 낭만의 도시 파리가 불타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