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스파이 갤라하드(오른쪽)가 수제자 엑시를 스파이 본부로 데려가고 있다. |
‘유혈 코믹’ 난무하는 액션 스파이 스릴러
말더듬이 조지 6세 영국 왕이 치명적인 신사 스파이가 되어 스크린에 돌아 왔다. 전형적인 영국 신사 스타일의 콜린 퍼스가 이렇게 사납게 액션을 구사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만화가 원전인 영화로(그래서 얘기가 터무니가 없다) 감독 매튜 번은 만화 같으면서도 폭력이 난무하는 ‘킥-애스’를 만든 사람으로 이 영화는 ‘킥-애스’와 풍자판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짬뽕한 코믹 터치의 난장판 액션 스파이 스릴러다.
어리석은 재미가 있긴 한데 유혈폭력이 쓸데없이 잔인하고 액션과 내용을 너무 과다하게 늘어놓아 중간쯤 지나가면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관객보다 감독이 만들면서 더 즐긴 티가 나는데 본드 영화뿐 아니라 아서 왕의 캐멜롯과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마이 페어 레이디’로 만들어졌다)의 내용까지 빌려다 썼다.
1997년 영국의 비밀첩보부 요원들이 중동(요즘 어디 다른 곳이 있겠는가)에서 작전 중 작전이 잘못되면서 랜슬롯이 동료 해리 하트(일명 갤라하드-콜린 퍼스)의 생명을 구하다가 사망한다. 귀국 후 갤라하드는 랜슬롯의 집에 찾아가 미망인을 위로하고 그의 어린 아들 엑시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메달을 준다. 그리고 언제고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걸라고 일러준다.
그로부터 17년 후. 지구를 구하기 위해선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믿는 미국의 인터넷 백만장자 사이코 리치몬드 발렌타인(야구 모자를 쓴 새뮤얼 L. 잭슨이 과장된 코믹한 연기를 잘 한다)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영국 첩보부에 비상이 걸린다. 발렌타인에게는 자기 애인을 사살한 남아공의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어스처럼 두 다리가 금속제 인조다리인 애인이자 비서인 가젤(소피아 부텔라)이 있다. 섹시한 가젤은 살인광으로 날카로운 금속제 발로 사람을 두 쪽으로 갈라 죽인다.
한편 학교도 중퇴하고 날건달이 된 엑시(태론 에저턴)가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남의 차를 훔쳐 타고 거리를 질주하다가 경찰에 잡혀 영창엘 들어간다. 이에 엑시는 메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엑시를 영창에서 빼낸 갤라하드는 엑시를 스파이로 키우기로 하고 그를 새빌로(런던의 유명한 양복점 거리로 이 때문에 옛날에 한국에서는 신사복을 세비루라고 불렀다) 에 있는 양복점으로 위장한 본부로 데려간다.
본부장은 아서(마이클 케인-본드 시리즈의 M)이고 아서의 참모는 멀린(마크 스트롱-본드 시리즈의 Q). 이어 멀린은 엑시와 함께 7명의 젊은 남녀 스파이 후보들의 훈련에 들어간다. 엑시를 뺀 다른 후보들은 다 엑시와 계급이 다른 집 자녀들이어서 엑시는 왕따를 당한다. 훈련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스파이가 된다. 그런데 속이 여린 엑시가 마지막 판에 가서 아서의 지시를 수행치 못하는 바람에 퇴교 당한다.
우산과 라이터 모양의 온갖 신무기가 맹활약을 하면서 중간 중간 피바람을 일으키는 액션이 작렬하는데 그 중에서도 그야말로 눈알이 360도로 돌아가는 장면은 미국의 켄터키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다니는 교회 안에서의 긴 액션 장면. 갤라하드 혼자서 100여명의 신도들을 상대하는데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굉장히 잔인하고 인정사정없이 유혈 폭력적이지만 액션 안무 하나 일품이다. “아이구 이젠 그만 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신사 퍼스와 불량배 에저턴의 콤비가 좋은데 퍼스의 연기도 좋지만 뛰어나게 돋보이는 것은 에저턴의 연기. 화면에서 연기가 일취월장하는 것을 느낄 정도로 다변한 연기다. 대성할 배우다. R. Fox.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