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노인과 총(The Old Man & the Gun)


정장에 중절모를 쓴 터커(로버트 레드포드)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은행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쇄 은행강도 벌이는 7순 노인 역
로버트 레드포드‘마지막 작품’관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노인이 총을 차고 은행을 계속해 터는 이 영화는 어쩌면 로버트 레드포드(81)의 배우로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담담하고 차분한 드라마다.
마치 레드포드의 머리와 모습처럼 황금빛 기운이 감도는데 조락의 분위기와 체념의 쓸쓸함이 가득해 마음이 고적해진다. 허구를 많이 섞었지만 믿어지지 않는 실화다.
총은 있지만 총 소리는 안 들리는 아름다운 강도영화로 강도라는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강도를 하는 노인의 성격과 그가 뒤늦게 만난 여인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레드포드의 연기 생활을 마감하는 ‘스완 송’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막상 최근 토론토에서 만난 그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60년이 넘는 배우 생활을 한 내게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으로서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드포드의 말대로 그의 은퇴작품으로서 잘 어울리는 영화다.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서술되는 매력적인 영화로 레드포드의 여유와 카리스마를 갖춘 연기가 일품이다. 7순 나이의 포레스트 터커(레드포드)는 타고난 범죄자.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연 느끼지 않고 작은 동네 은행을 터는 것이 직업(?)이다. 혼자 범행을 저지르거나 때론 두 명의 동료(대니 글로버와 탐 웨이츠)와 함께 은행을 터는데 터커는 늘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강도를 한다.
옷 속에 총을 감추고 위협용으로 쓰지만 총 한 번 안 쏘고 일을 끝내는데 은행 매니저나 텔러에게 자기가 강도라는 것을 알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하고 상냥하게 현찰을 요구한다. 그래서 텔러들은 경찰에 신고할 때에도 터커에게 반했다는 듯이 나쁜 말을 안 한다. 그런데 터커는 턴 돈을 다락에 숨겨 놓고 쓰지도 않는다. 강도질 중독자다.
터커를 수사하는 사람이 젊은 형사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 그런데 그도 터커를 쫓으면서도 터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고 오히려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헌트는 몇 차례 간발의 차이로 터커를 놓치는데 이 부분은 좀 억지다.
어느 날 강도 후 도주하던 터커가 길에서 차가 고장 난 주얼(시시 스페이섹이 빼어나게 잘한다)을 도와주다가 둘이 마음이 맞는다. 터커는 주얼에게 자기 직업을 알려주나 주얼은 이를 믿지 못한다. 두 사람은 짙은 로맨스로 맺어진다. 한 동안 직업을 쉬던 터커가 주얼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 한 뒤 집을 나선다.
실제로 터커는 76세 때인 1981년 텍사스와 미주리주의 작은 은행들을 털다가 체포됐다. 레드포드의 영화로 유유자적하면서 역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은데 그와 스페이섹의 콤비도 완벽하다. 마음이 가는 미풍과도 같은 영화로 마치 악동의 미소와도 같은 레드포드의 미소를 맞는 기분이다. 데이빗 라우어리 감독. PG-13.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지막 옷(The Last Suit)


아브라함이 파리의 기차 역무원에게 독일 땅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길을 묻는다,

홀로코스트서 구해준 은인 찾아
남미서 유럽으로 떠나는 노인
유머·인간미 가득한 로드 무비


일종의 홀로코스트 영화이지만 어둡고 참혹하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유머 가득한 로드 무비 코미디이자 심각한 드라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죽음에 이른 자기를 구해준 옛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을 찾아 남미에서 유럽까지 혼자 여행을 떠난 팔순 노인의 여정을 정감 있게 그렸다.
여행 하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훈훈하고 인간적이며 재미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가슴을 검사해봐야 할 것이다. 영화는 특히 심술첨지이나 예지가 가득한 주인공 아브라함 역을 맡은 미겔 앙헬 솔라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돋보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88세난 은퇴한 양복 재단사 아브라함 버즈스타인(솔라)은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생존, 전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삶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전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양복점을 차려 성공한 아브라함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많다. 그런데 자식들이 자기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하고 집을 팔아버리면서 아브라함은 전에 자기가 살던 로즈의 친구를 찾아 가기로 한다. 70여 년 만으로 아브라함은 그동안 간직했던 신사복 한 벌을 챙긴다.             
먼저 도착한 곳이 마드리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드리드에 사는 젊은이 레오(마틴 피로얀스키)를 만나고 아브라함이 마드리드 공항에서 곤경에 처한 그를 도와주면서 후에 그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묵는 호스텔에서 아브라함은 호스텔 주인이자 파트타임 가수로 시니컬한 마리아(앙헬라 몰리나)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어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폴란드까지 가는 열차가 독일을 경유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역 안내원에게 독일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기차가 없느냐고 묻는다.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는 것. 이를 듣고 기차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이 독일 땅을 밟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독일 여자 잉그리트(줄리아 비어홀드).       
마침내 로즈의 과거 자기 집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수용소에서 나와 다 죽게 된 자기를 돌봐 준 친구를 찾아 문을 두드린다. 친구는 과연 아직 살아 있을까. 아브라함이 들고 온 옷은 그가 친구에게 주려고 가져왔다. 파블로 솔라즈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네 번째 ‘스타 탄생’


10월 5일에 개봉되는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와 가수 레이디 가가가 공연하는 뮤지컬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 ‘스타 탄생’(A Star Is Born^사진)은 1937년에 만들어진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다. 쿠퍼는 이  영화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고른 이유를 “마음속 깊이로부터 애착이 가면서 나의 창작 혼에 불을 지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퍼의 ‘스타 탄생’의 두 남녀 주인공은 모두 가수들이지만 원작의 두 사람은 할리웃의 스타들이다.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재넷 게이너와 프레데릭 마치가 급부상하는 신성 에스터 블로젯과 하락세로 접어든 빅스타 노만 메인으로 각기 나온다.
시골 처녀 에스터가 스타의 꿈을 안고 할리웃에 와 알코홀 중독자인 노만의 눈에 띠면서 배우로서의 길이 열리고 이름도 비키 레스터로 바꾼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노만은 술에 절어 팬들의 인기를 잃고 연기생활도 급추락하는 반면 비키의 인기는 급상승, 오스카 주연상을 받는다.
노만을 극진히 사랑하는 비키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인해 노만은 한동안 금주하지만 배우로서의 자기 처지를 비관, 다시 술에 손을 댄다. 폐인이 되다 시피 한 노만을 돌보기 위해 비키가 인기정상의 자리에서 연기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이를 안 노만은 아내의 미래를 위해 태평양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한다.
그 후 베키가 할리웃의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린 자기 영화의 프리미어에 참석,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노만 메인의 부인입니다”라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재넷과 마치의 연기가 좋은 훌륭한 드라마로 오스카 감독, 남녀주연 및 각본상 등 총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윌리엄 웰만이 공동 수상)만 탔다. 이 영화의 프리미어도 영화 속 내용처럼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렸다.
이 영화 못지않게 잘 만들고 흥미진진한 것이 1954년에 나온 조지 큐커가 감독하고 주디 갈랜드와 제임스 메이슨이 나온 첫 번째 리메이크다. 내용은 원작과 거의 같은데 주연남녀를 비롯해 주제가등 총 6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이 해 여우주연상은‘갈채’(The Country Girl)의 그레이스 켈리가 탔다. 갈랜드의 영화는 골든 글로브 남녀주연상(드라마 부문) 수상작이다.
갈랜드는 당시 약물중독과 체중문제 및 질병에 시달려 할리웃에서 ‘불안정한 배우’라는 딱지가 붙었을 때였다. 당초 노만 역이 제의됐던 케리 그랜트가 역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도 갈랜드의 이런 평판 때문이었다. 노만 역은 그랜트 외에도 험프리 보가트와 프랭크 시내트라에게도 제의됐으나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WB)의 사장 잭 워너가 둘을 퇴짜 놓았다.
제1편과 제2편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성공했는데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준수하다. 다만 규모와 화려한 면에서는 WB의 첫 시네마스코프작인 갈랜드의 것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정감 있고 보다 인간적인 게이너의 것을 좋아한다.                     
1976년에 나온 ‘스타 탄생’의 두 번째 리메이크는 주인공이 배우가 아니라 가수들로 두 수퍼스타 가수이자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나온다. 두 사람의 극중 이름도 에스터 호프만과 존 노만 하워드로 개명됐다. 쿠퍼의 영화는 이 영화를 모델로 했음에 분명한데 촬영 시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토퍼슨이 세트를 방문 했다고 한다.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주제가 ‘에버그린’은 오스카상을 탔고 빅히트를 했다.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 작품, 남녀주연(뮤지컬/코미디 부문) 및 음악과 주제가상을 탔다. 당초 남자주연으로 말론 브랜도와 가수 닐 다이아먼드 및 엘비스 프레슬리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프레슬리가 역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스트라이샌드 것 위에 올려달라는 등 요구 사항이 지나쳐 무산됐다. 프랭크 피어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두 가수의 허영의 산물”이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다.
세 번째 리메이크는 사실 2007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는데 이번에 쿠퍼의 집념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처음에 쿠퍼가 레이디 가가를 주연으로 쓰려고 했을 때 제작사인 WB는 그의 연기력에 회의를 품어 가가는 자택에서 여러 시간에 걸친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나서야 발탁됐다. 그런데 가가는 TV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호텔’로 골든 글로브 상을 탄바 있다.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영육을 바치다시피 한 흔적이 역력한 이 영화가 과연 팬들의 얼마나 큰 호응을 받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