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3월 18일 화요일

주말(Le Week-end)

30년을 함께 산 부부 파리로 떠나다

멕(왼쪽)과 닉이 카페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말이 좀 많긴 하나 30년간 함께 살아온 부부관계를 매력적이며 익살맞고 또 진지하게 탐구한 삼삼한 영국산 소품으로 따스함과 따끔한 맛을 고루 갖춘 삶의 예지로 가득 찬 영화다. 오래 함께 산 부부 간의 기대와 실망, 원망과 후회, 뜸한 육체관계와 마찰 그리고 사랑과 신뢰와 동반자로서의 위치 및 궁극적 화해와 포용 등 모든 부부가 가질 수 있는 문제와 소재를 유머와 신랄함과 조락의 우수감마저 섞어서 반성하고 고찰하고 있다.
특히 노년에 접어드는 두 부부로 나온 짐 브로드벤트와 린지 던칸의 진짜 부부보다 더 진짜 같은 조화가 일품인데 다소 겁먹은 듯한 브로드벤트의 표정과 연기가 10대 소녀처럼 생기발랄하고 저돌적이기까지 한 던칸의 그것과 아름다운 화학작용을 일으켜 보기가 참 좋다.   
버밍엄의 대학 철학교수 닉(브로드벤트)과 역시 학교 선생인 아내 멕(던칸)은 결혼 30주년을 맞아 열기가 식은 둘 간의 감정적 육체적 관계를 재충전하기 위해 주말에 둘의 신혼여행지인 파리에 온다. 그런데 닉이 예약한 호텔이 너무 후진 것을 발견한 멕은 남편을 끌고 크레딧카드를 쓰자면서 에펠탑이 보이는 최고급 호텔에 짐을 푼다.
둘은 샴페인을 겸한 룸서비스를 시켜 먹으면서 신나게 파리를 즐기면서도 그동안 서로 간에 쌓여 있던 여러 가지 관계의 문제로 말씨름을 한다. 특히 자유혼을 지닌 멕이 속으로 끙끙 앓는 스타일인 닉을 공격하는데 이런 두 사람 간의 달콤 쌉싸래한 관계의 불화와 하모니가 아주 재미있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둘은 교회와 미술관과 서점 그리고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파리의 낭만을 즐기는데 이런 즐거움 속에서도 두 사람이 다 지금 삶의 갈림길에 도착해 영화가 양지와 음지를 들락날락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닉이 캠브리지에 다닐 때 친하게 지낸 미국 유학생으로 지금은 성공한 작가가 된 모간(제프 골드블룸도 잘 한다)을 만나면서 영화가 활기를  띤다.
미국서 아내와 이혼하고 파리에서 두 번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모간은 약간 밉상스럽기도 하나 매력적인 인물. 그가 닉의 부부를 자기 집의 출판기념 파티에 초청하면서 식탁에서 말의 잔치가 성대히 벌어진다. 그리고 타인들 앞에서 닉과 멕의 상처와 동경과 숨겨온 일들이 노출된다.       
결혼의 타협성을 감정적 진실로 그린 경쾌하고 철학적인 영화로 아무 문제도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고 끝이 난다. 마지막에 닉과 멕과 모간이 카페에서 추는 매디슨 댄스는 고다르의 ‘국외자들’의 장면을 본 딴 것으로 ‘주말’은 영국산 누벨 바그라고 할 만하다. 로저 미첼 감독. R. 일부지역. ★★★½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니드 포 스피드 (Need for Speed)

대륙횡단 스포츠카들의 짜릿한 질주


토비(아론 폴)가 초고속으로 스포츠카를 몰고 있다.

내용은 터무니없지만 오금이 저리도록 짜릿한 속도감을 느끼게 만드는 초고속 스피드 하나만은 일품이다.
날씬한 몸매를 지닌 스포츠카들이 굉음을 내면서 마치 탄환열차 달리듯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장면으로 화면이 가득 차는데 얘기가 터무니가 없구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대다가도 서로 앞뒤를 다투면서 대륙횡단 경주를 하는 자동차들의 스피드감에 몸이 피곤하도록 스릴과 긴장감을 겪게 된다.
스캇 워 감독은 스턴트맨 출신으로 컴퓨터 특수효과를 배제하고 실제 자동차 경주 선수들과 포드 머스탱 등 진짜 스포츠카를 사용해 사실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액션과 스릴 그리고 긴장감에다가 코믹 터치까지 가미, 10대들과 젊은 어른들(특히 남자)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즐거워할 영화다. 그러나 이치는 생각하면 안 될 영화로 제목과 같은 비디오게임이 원작이다. 
같은 종류의 자동차 스피드 영화인 ‘분노의 질주’와 자연 비교가 되는데 ‘니드 포 스피드’는 액션영화 치고는 화학작용이 잘 되는 캐스트와 좋은 연기 그리고 카메라 감각이 출중하고 스피드를 일사불란하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의 연출력 때문에 빅히트작으로 제7편째를 만들 예정인 ‘분노의 질주’의 전철을 밟을 만한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얼마 전 방영이 끝난 케이블 TV AMC의 인기 프로인 마약범죄 스릴러 ‘브레이킹 배드’로 두각을 나타낸 상고머리의 젊은 배우 아론 폴의 본격적인 대규모 극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폴은 한몫하고도 남아 일단 데뷔는 성공한 셈이다.
뉴욕주 교외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자동차정비업소를 운영하는 토비 마샬(폴)은 피트(해리슨 길벗슨) 등 친구들과 함께 밤에 거리에서 불법 자동차 경주에 참가,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이겨 용돈을 번다. 그런데 어느 날 빤질빤질하고 돈 많은 디노 브루스터(도미닉 쿠퍼)가 참여한 경주에서 디노의 고의적 행위로 차를 몰던 피트가 사망하면서 엉뚱하게 역시 경주에 참가한 토비가 과실치사죄로 투옥된다. 
옥중에서 피트의 복수를 결심하던 토비가 몇 년 후 출옥해 보니 피트의 동생으로 자신의 애인이었던 아니타(다코타 존슨)는 디노의 애인이 됐다. 이 때 마치 하워드 스턴 스타일의 야단스런 온라인 라디오 자키로 거부인 모나크(초대 배트맨 마이클 키튼이 기차게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가 이틀 후 거금을 건 자동차 경주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연다고 발표한다.
옛 친구들과 재회한 토비를 느닷없이 찾아와 함께 차를 타고 경주에 나가자고 제의하는 여자가 쾌활하고 섹시하고 또 장난기가 있는 영국인 줄리아(이모젠 푸츠가 눈부시다). 그런데 이 여자가 도대체 어디서 왜 나타난 것이야. 물론 이 경주에 디노도 참가한다. 이어 토비가 뉴욕서 이틀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려고(이게 실제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선 된다) 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하면서 스피드가 불을 뿜는다.
한편 디노가 토비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막는 자에게 거액의 상금을 내걸자 이를 노리고 온갖 스피드 용병들이 토비의 뒤를 쫓는다. 여기에 토비의 과속을 단속하려고 경찰들이 토비를 추격하면서 도주와 추격의 장렬한 액션이 일어나고 차가 여럿 박살난다. 
계속해 쫓기는 토비를 공중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그의 친구로 비행기 조종사인 흑인 베니(스캇 메스쿠디). 베니가 어떻게 해서 군용헬기를 비롯한 비행기를 마음대로 탈 수가 있는 것인지는 묻지를 마시라. 스턴트도 볼만한 기능적으로 우수한 쌩쌩 달리는 영화다. 
PG-13. DreamWorks.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오스카 여우주연상' 케이트 블랜쳇


“연극학교 졸업 직후 돈 없어 커피도 못마셨죠”




3월2일 거행된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디 알렌의 영화 ‘푸른 재스민’(Blue Jasmine)으로 여우주연상을 탄 케이트 블랜쳇(44)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블랜쳇은 뉴욕의 부유층에서 하룻밤 새 알거지가 된 뒤 샌프란시스코에 와 간난하나 근면한 여동생의 아파트에 얹혀살면서도 제 정신을 못 차리는 신경 파탄자인 재스민으로 나왔다. 긴 금발에 긴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블랜쳇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는데 홍조를 띤 하얀 피부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호주 태생의 블랜쳇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액센트 있는 약간 굵은 음성으로 질문에 직선적으로 답했는데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서민적이어서 친근감이 갔다. (재록)
                            
*우디 알렌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가.
- 내가 호주에 살기 때문에 그와의 만남은 전화를 통해서였다. 그가 내게 각본이 있는데 읽어 보겠느냐고 제의, 난 물론 그러겠다고 답했다. 난 각본을 받는 즉시 읽었고 이어 그가 전화를 다시 걸어 역을 맡겠느냐고 물어 수락했다. 그랬더니 그는 “좋아요”라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다. 그를 직접 만난 것은 카메라 테스트 때였다.

*당신과 여동생과의 관계는 어떤가.
- 우린 매우 가깝다. 내 여동생은 건축가다.

*당신은 운명과 운을 믿는가.
- 믿는다. 난 드라마학교를 졸업한 뒤 내게 5년의 기한을 줬다. 배우란 처음에 역을 얻기보다 퇴짜를 맞기가 일쑤여서 5년 만에 성공 못하면 포기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난 운이 정말로 좋아 학교를 나온 뒤 얼마 안 돼 데이빗 매멧의 연극에서 제프리 러쉬와 공연했다. 그 바람에 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게 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운명이라면 지금까지 16년간을 함께 산 남편과의 결혼이 운명이다. 

*당신은 남의 집에 얹혀 살 정도로 궁색해 본 적이 있는가.
- 물론이다. 시드니는 물가가 매우 비싼 도시로 연극학교를 졸업하면서 돈이 없어 창문 앞이 벽으로 꽉 막힌 어두운 방을 남과 함께 썼다. 처음엔 역이 없어 커피도 이틀에 한 번씩 마셔야 했다. 이젠 돈 걱정 안 해도 되니 난 참으로 행운녀다.

*처음 크게 번 돈으로 무얼 샀는가.
- 알마니 옷인데 지금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계급에 관한 것이기도 한데 당신은 어떤 계급에서 자랐는가.
- 호주의 백인사회에는 계급이란 없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사망해 나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키우느라고 막심한 고생을 했다. 어머니에겐 그래서 돈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라도 있었는가.
- 난 샌프란시스코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매력적이고 안개는 신비롭다. 도시의 결이 시드니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어느 현장에서 촬영을 할 때면 그 곳을 작중 주인공의 눈으로 보게 돼 촬영이 끝나고 도시를 떠날 때 안도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푸른 재스민은 늘 어두운 뒤에야 핀다”고 말했는데 당신도 야행성인가.
- 그렇다. 날 여자 흡혈귀라고 불러도 괜찮다.

*당신이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 칼 라거와 알마니다. 그들은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요 또 박애가들이다. 영화의 옷은 수지 벤징거가 디자인했다. 

*당신은 여기서 신경 파탄자의 연기를 기막히게 잘 하는데 당신의 독자적 결정인가 아니면 알렌이 지도를 했는가.
- 그가 지도를 했다. 우리는 연기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눴다. 알렌의 연기 지도는 97%가 그가 쓴 각본 안에 있다. 그의 단어 선택은 매우 특별나고 그의 글은 매우 특별한 리듬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배우는 그의 이런 선택과 리듬에 자신을 맞춰 올려야 한다.           

*영화는 샌프란시스코의 미를 최대한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 왜 그런가.
알거지가 돼서도 루이뷔통만 찾는 재스민이
망연자실한 채 벤치에 앉아 있다.
- 그것은 재스민이 관광객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삶을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으로 이 도시를 찾아 왔기 때문이다. 내가 알렌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삶의 비극적 면과 황당무계한 면을 잘 섞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배우와 어머니로서의 삶에 균형을 유지하는데 남편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 내 남편은 지적이요 고무적이며 또 관대하고 과감하다. 그런 남편을 만난 난 정말로 운이 좋다. 그와 나는 가차 없이 서로에게 진실하다. 난 그에게 아무 두려움이나 판단 없이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다. 남편이 하나 못 참는 것은 허풍이다.

*당신은 침착한 사람인가 아니면 약간 재스민 같은 데가 있는가.
- 재스민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의 신경을 파탄시키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만사 잘 나가는데 도저히 필요한 펜을 찾을 수 없을 때 같은 경우다. 신경질이 날 때면 잠시 아무 일도 안 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영화를 찍을 때 항상 재스민과 살았는가 아니면 일과 후엔 그를 세트에 남겨 놓았는가.
- 자기가 맡은 역을 가능하면 세트에 남겨 놓는 것이 좋다. 물론 역이 세트를 떠나서도 따라다니면서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난 촬영 때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가급적 재스민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러나 항상 맡은 역을 완전히 잊기엔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내용과 비슷한데 알렌과 그에 대해 얘기라도 했는가.
- 나는 시드니의 무대에서 그 연극의 주인공인 블랜취 역을 했었다. 내 생각엔 알렌이 그 연극을 보고 날 자기 영화에 쓰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두 작품은 비슷한 데가 있다. 극중 인물들 간의 상호관계는 상당히 비슷한 반면 결과는 서로 아주 다르다. 그런데 우디 알렌의 글의 리듬과 색채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그것과 다르다. 

*여배우 중 누구를 존경하며 배우 아닌 여자로선 누구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 배우로선 ‘위대한 개츠비’에 나온 엘리자베스 데비키이고 그 밖의 다른 여자로선 비록 연예계에 종사하고는 있지만 리브 울만이다. 역사적 인물로선 잔 다크이다.

*당신은 최근에 알렌과 조지 클루니 감독 등 두 사람과 일했는데 둘이 같은 점이라도 있는가.
- 성격은 전연 다르다. 그러나 둘은 작업방식에 있어선 모두 꾸밈이 없고 실제적이다. 두 사람의 영화가 모두 활기차고 생기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들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하다. 그리고 둘 다 매우 지적이다.

*세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가.
-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실수한 점을 둘째나 셋째에겐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 첫째는 자기를 실험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육아법 책이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단지 당신의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연민과 겸손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셋은 모두 함께 잘 지낸다. 함께 웃고 춤추는데 우린 집에서 춤을 자주 춘다.

*재스민처럼 당신도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 관계의 상실보다 재정적 상실이 내겐 더 다루기 쉬울 것이다. 모르긴 해도 엉망진창이 됐을 것이다. 

*당신은 역에 얼마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부여했는가.
- 배우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알렌은 배우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때 우리는 용감해야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지 못하면 반응을 얻지 못하게 된다. 당신이 알렌에게 무언가를 제시하면서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 절대로 일방통행이 되선 안 된다. 

*당신은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는가.
- 난 그의 오랜 팬이다. 난 사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포기했었다. 그래서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정말 놀랐다. 그는 내가 일해 본 어떤 감독들보다도 창작욕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그처럼 가능성이 많은 사람도 없다. 그의 영화에 나오기로 한 뒤 그의 영화들을 다시 봤는데 특히 ‘크라임즈 앤 미스디미너즈’와 ‘한나와 그의 자매들’이 좋았다.

*여자가 알렌의 영화에서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그가 여자를 이해한다고 보는가.
- 나는 그가 여자를 존경하고 또 여자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사실 재스민 역을 자기가 하고 싶은 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여자의 극단적인 감정적 심리적 한계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주디 데이비스와 다이앤 키튼 그리고 스칼렛 조핸슨 및 페넬로피 크루스 등 많은 여배우들에게 훌륭한 기회를 준 사람이다. 

*당신은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평하는가.
- 난 언제나 자신에 대해 불만이다. 아마 그래서 계속해 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내 영화를 보진 않는다. 

*당신의 첫 비배우로서의 직업은 무엇인가.
-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을 위해 밥을 해주고 몸을 씻어주고 또 청소하는 일이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오스카와 체중




배우가 오스카상을 타려면 체중을 극단적으로 늘리고 줄이거나 몸이든 정신이든 어딘가 아파야 된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3월2일에 열린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각기 남자 주조연상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와 재렛 레토는 에이즈 환자로 나왔다. 그리고 ‘푸른 재스민’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케이트 블랜쳇은 정신파탄자였다.
매코너헤이(사진)는 역을 위해 체중을 47파운드나 뺐고 레토도 30파운드를 줄였다. 그런데 레토는 ‘챕터 27’에서 존 레논을 사살한 마크 데이빗 채프만으로 나왔을 때는 체중을 무려 67파운드나 불렸었다. 
매코너헤이와 레토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 환자로서 이처럼 자기 몸에 극단적인 조치를 가해 작년 가을에 영화가 개봉되자 일찌감치 모두 오스카상감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과거에도 이렇게 체중을 과격하게 조절해 가면서 자신의 역에 헌신하는 배우들을 선호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레이징 불’의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 역을 위해 체중을 60파운드나 늘려 오스카 주연상을 탄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리고 ‘몬스터’에서 연쇄살인범 창녀로 나온 샬리즈 테론도 본연의 수퍼모델 모습을 내던지고 체중을 30파운드나 보탠 더럽고 추한 여자로 나와 역시 주연상을 탔다.
올 오스카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허슬’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크리스천 베일은 역을 위해 체중을 50파운드나 늘렸는데 그는 과거 ‘머시니스트’에서는 불면증환자로 나와 체중을 무려 60파운드나 뺐었다. 체중을 바짝 줄여 오스카상을 탄 또 다른 배우들로는 탐 행스(필라델피아), 나탈리 포트만(블랙 스완), 앤 해사웨이(레 미제라블) 및 에이드리안 브로디(피아니스트) 등이 있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런 체중의 급격한 변화가 당사자들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신진대사에 이상을 일으키고 혈당과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많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 베일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아메리칸 허슬’을 위해 체중을 늘리다가 디스크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 레토도 채프만 역을 위한 체중증가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엄청나게 올라갔었다면서 촬영이 끝날 때쯤에는 휠체어를 타고 세트에 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좋은 연기가 먼저이지만 아카데미는 이렇게 육체적으로 격심한 변신을 하는 것과 함께 정신적으로 돌아버리거나 박약한 사람 그리고 신체 부자유자들에게도 상을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햄릿’에서 미친 왕자 노릇을 해 주연상을 탔고 비비안 리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정신이 돈 여자로 나와 주연상을, 그리고 잭 니콜슨도 ‘뻐꾸기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광인으로 나와 주연상을 받았다. 
러셀 크로우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노벨상을 받은 정신분열자인 수학교수 역으로 주연상을 탔고 클리프 로벗슨(찰리)과 더스틴 호프만(레인 맨) 및 탐 행스(포레스트 검프) 등도 모두 정신박약자로 나와 주연상을 받았다. 
행스는 ‘필라델피아’에서는 에이즈를 앓아 체중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죽어 첫 오스카 주연상을 타더니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멍청한 역으로 상을 탔으니 그야말로 아프거나 제 정신이 아닌 역을 해야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 산 증거다.
정신이 나간 역을 열연해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또 다른 스타로는 ‘이중 인생’의 로널드 콜맨과 ‘개스등’의 잉그릿 버그만이 있다. 콜맨은 실생활에서도 극중 인물의 성격을 유지하게 되는 정신착란증의 연극배우로 그리고 버그만은 자기가 미치고 있다는 환각에 빠지는 유사광녀로 나와 각기 상을 탔다.     
신체장애자도 아카데미 회원들의 동정을 많이 받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의 전처인 제인 와이맨은 ‘자니 벨린다’에서 귀 먹고 말 못하는 역으로 주연상을 그리고 실제로 귀 먹고 말 못하는 말리 매틀린은 ‘신의 버림받은 아이들’에서 자기를 그대로 표현해 역시 주연상을 탔다. 또 존 보이트는 ‘귀향’에서 휠체어를 탄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 나와 주연상을 탔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이런 언더독(작품상을 탄 ‘마티’와 ‘록키’) 편애경향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상을 노리고 이런 역을 찾아다니기까지 한다. 
검은 것이 흰 것보다 어두운 것은 밝은 것보다 그리고 악한 것이 선한 것보다 또 슬픈 것이 우스운 것보다 더 매력적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좀처럼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에게 상을 안 주는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