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45 Years’의 샬롯 램플링




“배우로서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의 상태 표현하고 싶었다”


"유럽은 형태보다 내용을… 미국은 변화 두려워 하는 것 같아
자신을 나무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일"


드라마‘45년’(45 Years-영화평 참조)에서 결혼생활 45년만에 자신이 남편 제프(탐 코트니)의 죽은 옛 연인 카티아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케이트 역을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 올해 베를린 영화제서 주연여우상을 탄 영국의 베테런 스타 샬롯 램플링(69)과의 인터뷰가 최근 웨스트할리웃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우아하게 세월을 받아들인 귀부인 티가 나는 램플링은 단정히 앉아 가끔 유머를 구사하면서   물음에 차분히 대답을 했는데 삶의 예지가 가득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겸손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는데 눈매가 매서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을 때는 싸늘한 매력을 발산했다. 오래 전부터 스크린을 통해 연모하다시피 한 여인이어서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두 손을 꼭 잡고 “반갑다”고 말했더니 램플링은 “댕큐”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영화는 결혼 속의 비밀에 관한 얘기인데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제프의 옛 여자는 비밀은 아니다. 그저 새로 만난 케이트에게 제프가 자신의 옛 여자에 대해 상세한 얘기를 안 했을 뿐이다. 그러다 시간이 갔을 뿐이다. 케이트도 제프가 여자가 있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둘 사이의 관계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뒤늦게 그 여자의 사체가 냉동상태로 발견됐다는 편지가 날아들면서 과거의 상처가 다시 도진 것이다.”

-그러나 케이트는 뒤늦게 남편이 평생을 옛 여자에 대한 정열을 간직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간단히 얘기할 영화가 아니다. 케이트는 만약 카티아가 살았더라면 남편이 그녀와 결혼했을 것인가 또 카티아와 자기 둘 중에 누가 더 남편을 사랑했을까와 같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의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것에 바탕을 둔 얘기여서 더 사무친다.”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아 출연했는가.
“인물들의 내적 언어의 강렬성과 배우로서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연기해 보고 싶었다. 아주 연약한 얘기를 연기로 표현해 관객을 사로잡는 도전에 응하고 싶었다.”

-당신은 영화 속에서나 실물이 다 화장을 짙게 안 한 아름다운 모습인데 할리웃 배우들은 화장 안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유럽 여배우와 할리웃 여배우의 차이가 무엇인가.
“유럽은 늘 형태보다 내용을 더 중요시해 왔다고 여긴다. 문학서적 속에 깊이 잠기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예쁜 형태를 찾지 않고 책 내용의 깊이를 진실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점이 미국과 다른 것이다. 미국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변화는 성형수술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난 늘 내 모양을 바꾸지 않고 인간으로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나의 여정에 함께 동반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큰 도전이다.”
결혼 45주년을 맞은 제프(왼쪽)와 케이트의 삶이 편지 한 통으로 혼란에 휩싸인다.

-만약 영화 속 일이 당신에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남편을 떠나겠는가 아니면 남편 곁에 있으면서 의혹과 고뇌에 시달리겠는가.
“카티아는 제프의 큰 과거일 뿐으로 제프는 사실 케이트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영화는 케이트 개인의 여정이라고 하겠다. 왜 그녀가 그렇게 큰 혼란과 격동 속에 빠져 들게 되었는가를 묻는. 케이트는 결코 제프를 안 떠날 것이다. 영화는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실존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영화는 남편의 죽은 옛 여인의 얘기라기보다 삶의 위기에 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 겪는 것으로 이 영화가 본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당신은 멋있고 훌륭한 생애를 살았는데 돌이켜 봐 후회하는 일이라도 있는지.
“있지만 난 별로 과거를 돌아보질 않는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은 그것이 내 최선이었기 때문에 난 결코 후회하질 않는다.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일 중의 하나다. 이 건 내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난 내가 한 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옛날 영화를 보는가.
“안 본다.”

-당신은 국가로부터 작위를 받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의식은 치렀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왕은 못 만났다. 난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정 일에 런던에 있을 수가 없어 나중에 내가 살고 있는 파리에서 주불 영국대사로부터 받았다. 작위 받아 참 기쁘다.”

-당신은 대부분 비극적이거나 음울한 역을 자주하는데 왜 그런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나 그런 역들이 가장 강렬한 역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역을 할 때면 역에 배우로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연결되기 때문에 탐구하기에 흥미를 느낀다.”

-젊었을 때 본 것들 중 당신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준 영화는 무엇인가.
“배우로서는 캐서린 헵번의 영화들이다. 나도 그녀와 같은 혼과 질을 지녀 헵번이 나온 영화와 같은 것에 나오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영화 중 기억에 뚜렷한 것은 ‘아프리카의 여왕’과 ‘필라델피아 이야기’ 및 ‘베이비 키우기’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이 영화처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가 탐을 당신 상대로 골랐는가.
“나와 감독 앤드루 헤이다. 난 탐을 전에 잘 몰랐지만 이 영화에서 함께 일하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그래서 그가 출연을 승낙한 뒤에는 그가 날 사랑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한 때 연기를 포기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깊은 침체에 빠져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보다시피 이렇게 돌아왔다. 난 늘 가는 데까지 가서야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벽에서 뛰어내릴 필요는 없으나 그런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는 있다.”  

-여성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는가.
“그것은 스스로가 개발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당신에게 줄 수가 없다. 그것은 하느님이 준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안에서 개발해 사용해야 한다. 여성의 성적인 힘은 대단히 강력한 내적 요소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취하는데 매우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에 당신이 휩쓸려 갈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하게 써야 한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둘을 사랑은 할 수 있으나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실할 수가 있다. 그러나 충실하다는 것과 사랑은 다르다.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사랑하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가.
“말은 정말 조심해서 해야 한다. 난 말이 무섭다. 좋지 않은 말은 비수 같아서 진짜로 상처를 남긴다.”

-이 영화에선 다른 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나이 먹은 사람들의 섹스신이 있는데 나이 먹은 배우로선 그런 연기를 하기가 거북한가.
“성적이란 것은 젊었을 때만 아름다운 것이다. 배우로서 섹스 신을 할 수는 있으나 내가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난 나이 먹은 사람들을 사랑하긴 하나 어떤 것은 별로 보기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부엌에서 콧노래로 부른 플래터즈의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즈’를 평소에도 좋아하는가.
“난 그 노래 사랑한다. 우리의 결혼 45주년 파티가 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 노래에 맞춰 나와 탐을 비롯해 모두가 춤을 추는데 영혼과 직접 연결되는 느낌을 경험했다.”

-보통 때의 삶은 어떤가.
“남들과 마찬가지다. 배우라고 해서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보통 사람들이다.”

-당신이 폴 뉴만과 공연한 ‘평결’ 이후 모두들 당신이 할리웃의 수퍼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도 당신은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이 곳에선 매우 위협감을 느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돌아갔다. 매우 두려웠다. 여기가 내 세상이 아니어서 행복할 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