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7월 23일 월요일

블라인드스파팅 (Blindspotting)


칼린(왼쪽)과 마일스는 서로 성격이 판이하지만 막역지간인데 두 배우는 실제로도 친구사이다.

흑인과 백인 친구가 겪는 인종문제 사실적 묘사… 딕스와 카잘 ‘눈부신 연기’


북가주 오클랜드에 사는 피부 색깔이 다른 두 친구의 관계를 통해 인종문제와 계급차이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고찰한 솔직하고 대담하며 사실적인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 내내 흐름이 어디로 갈지 전연 짐작하지 못하도록 예측 불허하고 공식을 파격적으로 탈피한 작품으로 유머와 황당무계함 그리고 아슬아슬한 긴장과 서스펜스마저 느끼게 하는 매우 지적인 영화다.
특히 흑인들의 백인경찰에 대한 공포감과 좌절감 그리고 분노를 주인공인 흑인을 통해 절실히 묘사하고 있는데 영화 끝에 가서 이 주인공과 백인경찰이 대면하는 장면이 가슴을 친다. 이와 함께 서로 성격이 판이한 두 친구의 우정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두 주인공 친구로 나오는 흑인 데이빗 딕스(뮤지컬 ‘해밀턴’)와 백인 라파엘 카잘은 실제로도 친구 사이로 각본을 둘이 공동으로 썼다.
영화는 처음에 오클랜드의 여러 장소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 나오는 음악이 오페라 ‘춘희’의 드링킹 송이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여느 영화들과는 다른 것이라고 짐작케 만든다. 흑인으로 교도소에서 집행유예로 막 출소한 칼린(딕스)과 백인이지만 오클랜드의 흑인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일스(카잘)는 이삿짐 운반회사 종업원으로 막역지간. 영화는 칼린의 집행유예가 끝나기 전 사흘간 진행된다.
칼린은 사고와 분별력이 온건한 사람인 반면 흑인 아내 애슐리(재스민 세파스 존스)와 어린 아들을 둔 마일스는 불같은 성질에 폭력성을 가진데다가 분별력이 약하다. 마일스는 자기를 흑인보다 더 흑인으로 생각하는데 그의 성격이 종잡을 수가 없어 보기에 불안하다. 이런 사람이 자기 신변의 안전을 위한다며 총까지 샀으니 그가 언제 이를 사용할지 몰라 초조해진다.
영화 초반에 심야에 트럭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칼린이 인적이 끊긴 도로에서 정지신호에 차를 세우는 장면이 있다. 칼린이 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 것인지 빨리 바뀌지 않는 신호로 인해 집행유예자인 그가 해프하우스에 돌아가야 할 시간을 위반하게 되지나 않을지 몰라 염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백인 경찰이 도주하는 비무장한 흑인을 쫓다가 그를 사살한다. 그러나 칼린은 이를 보고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야 물을 것도 없다. 그리고 칼린은 이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딕스와 카잘의 연기가 눈부신데 특히 카잘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연기를 한다. 이밖에 세파스 존스와 칼린의 전 애인으로 이삿짐 회사 리셉셔니스트 밸로 나오는 자미나 가반카라스 그리고 잠깐 나오지만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찰 역의 이산 엠브리 등이 모두 훌륭한 연기를 한다. 칼로스 로페스 에스트라다 감독. R. Lionsgate.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맘마 미아! 히어 위 고 어겐 (Mamma Mia! Here We Go Again)


소피(중간)를 둘러싸고 소피의 세 아버지 중 하나인 샘(소피 뒤)과 어머니 친구들과 호텔 종업원들이 개업을 축하하고 있다.

“소피 아버지는 누구” 10년만에 나온 맘마 미아 속편


10년 전에 나온 뮤지컬 ‘맘마 미아’의 속편으로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그리스의 섬을 무대로 펼쳐지는 노래와 춤과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나오는 여름철에 딱 알맞은 영화다. 
제1편은 스웨덴의 남녀 4인조 보컬그룹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무대 뮤지컬이 원작인데 전편처럼 속편에서도 아바의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 머물고 있어 여성 팬들이 즐겁게 볼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나치게 달콤하고 만사를 행복하고 아름답게 꾸며대느라 플롯이 구멍이 나고 억지가 많아 눈요기거리로는 족하나 당의정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제1편의 속편 겸 전편과도 같은 영화로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얘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둘이 조화를 제대로 못 이뤄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영화는 전편의 주인공 다나(전편에서 이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나중에 회상 장면에 잠깐 나온다)의 딸로 임신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리스의 섬에 있는 어머니 소유의 별장을 호텔 벨라 다나로 고친 뒤 개업파티에 초청할 사람들에게 보낼 초청장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나는 죽었고 소피의 세 아버지 중 샘(피어스 브로스난)만이 섬에 살고 있다. 소피의 남편 스카이(도미닉 쿠퍼)는 일로 미국에 갔다. 호텔을 돌보는 사람은 페르난도(앤디 가르시아가 처음에 잠깐 나온 뒤 마지막에 불쑥 재등장 한다.) 
그리고 얘기는 다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대학을 막 졸업한 다나(릴리 제임스가 피곤할 정도로 영화 내내 큰 미소를 지으면서 열심히 연기한다)는 세계를 구경하겠다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떠나 먼저 파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나는 해리(휴 스키너-이 해리는 어른이 되면서 콜린 퍼스가 역을 맡는다)를 만나 둘이 사랑에 빠지고(사실 침대에 먼저 든다고 해야겠다) 이어 카페에서 웨이터들과 함께 아바의 노래 ‘워털루’를 부르면서 신나게 춤을 춘다. 
다나는 이어 그리스에 도착, 후에 영주하게 될 아름다운 섬에 닿는데 그 전에 요트를 가진 스칸디나비아 청년 빌(조쉬 딜란- 이 빌은 어른이 되면서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역을 맡는다)을 만나 그와 함께 침대에 든다. 그리고 다나의 두 친구 타냐(제시카 키난 윈-이 타냐는 어른이 크리스틴 바란스키가 역을 맡는다)와 로지(알렉사 데이비스-이 로지는 어른이 되면서 줄리 월터스가 역을 맡는다)가 섬에 도착한다. 
다나는 이번에는 미국에서 놀러온 샘(제레미 어바인)을 만나 그와도 함께 잠자리에 든다. 다나가 이렇게 거의 동시에 세 남자와 동침해 소피의 아버지는 셋인 셈이다. 
소피의 세 아버지와 다나의 두 친구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참석한 중에 마침내 개업파티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 초청되지도 않은 소피의 할머니 루비(셰어)가 나타난다. 그런데 루비의 옛 애인이 페르난도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셰어가 아바의 노래 ‘페르난도’를 부르면서 가르시아와 춤을 춘다. 해피 엔딩! 올 파커 감독. PG-13. Uni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탭 헌터


미국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1950년대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스크린의 호남 탭 헌터가 8일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바바라에에서 86세로 타계했다. 헌터는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미남인데다가 우람찬 체격의 소유자여서 특히 10대 소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나도 어렸을 때 그의 팬이었다.
헌터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과 함께 작년 4월에 그를 인터뷰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답지 않게 젊고 건강한 모습의 헌터는 매우 겸손했는데 질문에 유머를 섞어가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매우 편안하고 서민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로버트 왜그너 등 생전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헌터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본명이 아서 앤드루 켈름으로 뉴욕 태생인 헌터의 전성기인 1950년대는 스튜디오들이 배우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때로 헌터도 진지한 배우가 되려는 자기 뜻과는 달리 잘 생긴 얼굴과 늠름한 체격 때문에 스튜디오에 의해 재생된 ‘비프케이크’(근육질 남자)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서 자주 웃통을 벗어 제치고 늠름한 상반신을 뽐내곤 했는데 내가 헌터하면 제일 먼저 기억되는 영화도 나탈리 우드와 공연한 웨스턴 ‘버닝 힐즈’(The Burning Hills^1956)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서울 시청 앞의 경남극장에서 봤는데 그의 맨살이 드러난 상반신을 보면서 왠지 왜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인터뷰 때 “감독이 웃통을 벗으라고 지시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 때 스튜디오들은 늘 그랬다. 난 그 영화 외에도 심지어 전쟁영화인 ‘배틀 크라이’에서도 상반신을 벗어 제쳤다”면서 크게 웃었었다. 그런데 헌터는 제임스 딘과 폴 뉴만을 제치고 ‘배틀 크라이’(Battle Cry^1955)의 오디션에서 발탁됐다.
헌터는 나탈리 우드와 매우 가까웠던 사이로 팬들은 둘을 애인으로 알았지만 이는 사실 스튜디오가 동성애자인 헌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헌터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배우는 ‘사이코’의 앤소니 퍼킨스로 둘의 관계는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헌터는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딱지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었다. 헌터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2005년에 쓴 자서전 ‘탭 헌터 칸피덴셜’(Tab Hunter Confidential)에서 밝혔는데 책은 후에 흥미진진한 기록영화로 만들어졌다.
헌터는 가수로서도 빅 히트 곡을 냈다. 그가 1957년에 부른 ‘영 러브’(Young Love)는 싱글 넘버원에 올랐는데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었다. 그의 또 다른 히트 곡들로는 ‘애플 블라섬 타임’과 ‘캔디’ 등이 있다.
말을 좋아하는 헌터는 남가주목장에서 일하다 에이전트에 의해 발탁돼 곧 이어 ‘비프케이크’로  제조됐는데 두 번째 출연 영화로 린다 다넬과 나온 ‘욕망의 섬’(Island of Desire^1952)에서 부터 맨살 상반신을 드러냈다. 당시 20세였던 헌터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별로 안 좋은 영화라며 웃었었다.
헌터는 여러 편의 웨스턴에 나왔는데 그 중 기억할만한 것이 밴 헤플린의 사이코 아들로 나온 ‘건맨즈 워크’(Gunman‘s Walk^1958). 어렸을 때 성당 성가대원이었던 헌터는 뮤지컬에도 나왔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전인 야구영화 ‘댐 양키즈’(Damn Yankees^1958)는 ‘왓에버 롤라 원츠’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는 즐거운 영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1960년대 들어 ‘올-아메리칸 보이’였던 헌터도 나이를 먹자 스크린 출연이 뜸해지게 된다. 조연과 B급 영화 및 TV에 게스트로 나왔고 1970년대에는 식당 식 극장을 돌며 출연했다.
이러던 헌터가 뒤 늦게 각광을 받은 영화가 미드나잇 무비의 1인자 존 워터스가 감독한 얄궂은 코미디 ‘폴리에스터’(Polyester^1981). 여기서 헌터는 여장남자 배우인 디바인과 공연했는데 이 영화와 함께 역시 디바인이 나온 ‘러스트 인 더 더스트’(Lust in the Dust^1985)는 컬트영화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클래식영화를 요즘 스튜디오영화 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옛날 배우들의 스타 파워 탓이다. 헌터도 인터뷰에서 “옛날엔 스타들에게 신비감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 것이 사라졌다”면서 공연한 라나 터너의 황홀한 존재를 그리워했었다.
헌터는 지난 35년간 함께 살아온 폭스사 제작자 출신의 남편 앨란 글래서를 자기 삶의 방향의 조타수로 여겨왔는데 사망하기 얼마 전 쓰러졌을 때도 앨란의 품에 안겼었다. 인터뷰에서 헌터는 젊음의 비결에 대해 “비누와 물이다. 그리고 이를 닦고 며칠에 한 번 면도를 한다. 그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 어깨를 힘차게 꼭 붙잡으며 큰 미소를 짓던 헌터(사진)를 만난 지가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