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5월 16일 월요일

‘덴마크 여자’의 알리시아 비칸더




“3년 만에 영화계 스타, 믿어지지 않아 날 꼬집기도”


영화‘덴마크 여자’(The Danish Girl)에서 의학사상 최초로 지난 1931년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덴마크의 화가 아이나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의 부인으로 역시 화가인 게르다 역을 섬세하게 표현해 올해 아카데미 여배우 조연상을 탄 스웨덴 태생의 알리시아 비칸더(27)와의 인터뷰가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 때 샹그릴라 호텔에서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긴 갈색머리 그리고 수수한 차림을 한 비칸더는 북구라파 사람답지 않게 자그마했지만 지적인 미모의 소유자다. 마치 소녀 같았는데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액센트가 있는 어조로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똘똘이 스타일로 겸손해 친근감이 갔다. 연기파로 수퍼스타의 위치를 향해 급속히 수직상승하고 있는 비칸더는 오는 9월에 개봉될 드라마‘우리들 사이의 빛’(The Light Between Us)에서 공연한 연기파 마이클 화스벤더와 사랑이 싹이 터 현재 열애 중이다. 

-에디와 공연한 경험이 어땠는가.
“에디가 극중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아이나에서 릴리로 변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그저 놀라웠을 뿐이었다. 내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 위해 처음에는 잠깐 아이나로 분장한 에디와 함께 몇 장면을 찍었다. 이어 난 잠시 분장실에 들러 의상을 갈아입고 다시 테스트장에 나가 에디를 찾았으나 그는 간 곳이 없었다. 조금 있어서야 난 에디가 릴리로 변해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에디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최선을 다 하는 배우다. 그는 참으로 멋있고 민감하며 또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가 처음에 여자가 됐을 때 다소 불편해 하는 연기와 차차 여성적인 것에 익숙해지면서 보여주는 후반 연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출중한 연기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연기다.”

-영화는 정체성의 얘기인데 당신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여자라는 존재로서 내 정체성을 알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성의 정체성이란 어느 정도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전환자들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는 나의 그것과 범주가 달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만은 안다. 다행히 나는 내가 편하게 느끼는 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무엇이 분명한 남자이며 또 여자인가를 지적하라면 쉽게 되질 않는다.”

-요즘 여자들이 자신들의 여성적인 성향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어떤 성을 지녔던지 스스로가 순수하고 자기에게 진실하다면 그 때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가장 강할 수가 있다. 모두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또 그 것을 서슴없이 공개할 때 강해질 수 있다.”          

-패션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신의 패션은 어떤가.
“난 통상 패션을 그냥 편안하게 여기며 산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패션은 일종의 감정표현의 한 수단이다. 에디와 내가 서로 맡은 인물에 대해 연구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패션에 있어 매우 표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둘 다 예술가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패션에서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당신은 불과 3년 만에 스타가 됐는데 느낌이 어떤가.             
“정말로 많은 일이 그 사이에 일어났다. 정신없이 분주했는데 난 지금도 그런 일이 믿어지지가 않아 날 꼬집기도 한다. 스크린에서 보면서 만나서 내 사랑을 표시하고 싶었던 에디와 탐(후퍼-이 영화의 감독) 등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떤 감독을 좋아하는가. 
게르다(오른쪽)는 성전환한 남편 릴리를 적극 지원한다.
“라스 본 트리어다.”

-갑자기 찾아온 명성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겨울 정도다. 난 인생과 직업 모두에서 아직 어리지만 스스로를 지킬 줄 알며 또 정신적으로 그것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 이렇게 언론과 만나는 것도 새로운 일이어서 신경이 쓰이지만 머리 안에서는 준비가 다 돼 있다.”

-당신은 매우 옷을 수수하게 입는데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난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아름다운 의상도 여러 번 입어 봤다. 그러나 별로 그런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를 위해서 그런 의상들을 입고 유명 사진사들의 촬영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아직 그것에 익숙하지가 못하다.”

-일 안 할 때는 무엇을 하는가.
“런던에 아파트를 샀기 때문에 지금 부엌을 새로 단장하고 있다. 그래서 공항에 갈 때마다 실내장식 잡지들을 사는데 지금 20여권이 있다. 부엌 디자인이 지금 내게 있어 하나의 집념처럼 되었다.”

-고국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는가.
“물론 있다. 고국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작품만 좋다면 할리웃 스튜디오 영화나 스웨덴 영화를 막론하고 찍을 용의가 있다.”

-당신은 영혼의 반려자라는 것을 믿는가. 그런 사람 만났는지.
“그것을 믿고 싶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각본을 읽었을 때 느꼈다. 만나는 즉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나와 그렇게 즉각적으로 연결이 될 사람은 서로가 동등해야만 한다.”

-오늘 입은 옷은 누가 디자인한 것인가.
“바지는 루이뷔통이고 상의는 클럽 모나코다. 그리고 구두는 니콜라스 커크우드다.”

-게르다는 매우 강한 여자인데 그런 역을 한 소감은.
“내가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의 역을 한 것이야말로 특혜다. 그가 받는 고통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살았던 때는 그런 문제를 남들과 얘기할 수도 없던 때여서 둘의 곤란과 역경은 매우 지독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게르다는 남편에게서 릴리를 발견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릴리의 변신이야말로 이기적이라고도 하겠는데 게르다는 그래도 남편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다.”

-에디가 영화에서 완전히 갈비씨가 됐는데 어떤 특수의상이라도 입었는지.
“처음에는 릴리의 몸의 느낌을 지녀보려고 했는지 코르셋을 입었으나 막상 영화를 찍을 땐 입지 않았다. 그가 너무 말라 난 더욱 그를 정성껏 돌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과 여행이다.”

-할리웃에서 사는 기분이 어떤가.
“고국에서 일할 때와 매우 다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스튜디오영화에 나왔을 때와 인디영화에 나왔을 때 언론이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다르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둘이 다를 것이 없다.”

-할리웃에서 당신이 발견한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인가.
“유럽 영화에서보다 모든 면에서 인원과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외엔 영화 만드는 일은 다 비슷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


페니(왼쪽부터)와 마리앤과 해리와 폴은 여름 섬에서 섹스 4인극을 펼친다.

네 명의 사랑과 성적 유혹, 그로 인한 비극


너무 서서히 타들어가서 그렇지 성적 욕망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성적 긴장감과 충돌 그리고 그것을 미끼로 한 희롱이 마치 더미로 싸놓은 채 불을 지른 장작불처럼 불꽃을 피우며 활활 타오르다가 급기야 주위의 것들을 소진시키고 마는 섹스 4인극이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발가벗은 풍광이 수려한 섬과 육체를 마음껏 노출한 선남선녀들 그리고 음악과 대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유혹과 파괴의 작품으로 틸다 스윈튼이 주연하는데 그가 나온 또 다른 극단적인 감정의 문제를 다룬 ‘나는 사랑이다’(I Am Love)를 만든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했다. 
대사는 영어지만 다분히 유럽풍의 작품으로 영화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풀이 마치 프랑솨 오종이 감독한 프랑스 영화 에로틱 스릴러 ‘스위밍 풀’을 생각나게 한다. 풀과 함께 영화에서 간신히 가릴 곳만 가리고 남의 연인을 유혹하는 위험한 작은 여정으로 나오는 다코타 잔슨이 ‘스위밍 풀’의 뤼디빈 사니에를 닮았다. 사니에가 훨씬 더 고혹적이요 치명적이지만. 
예술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것인 이 영화의 결점은 다소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작품의 정수인 강렬한 감정을 짓누르고 있으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지나치게 느린 것. 이와 함께 결론이 거의 희화적으로 터무니가 없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거슬린다. 어떻게 그런 결말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작품의 전체적 톤과 너무 안 어울려 공허할 뿐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화산지대 섬 판텔레리아. 처음부터 대뜸 나체의 두 남녀가 일광욕을 하고 있다(성기가 노출된 전면 나체 등 나체장면이 굉장히 많다). 인기 락스타 마리앤 레인(스윈튼)은 성대수술을 한 뒤 회복을 위해 연하의 애인 폴(마티아스 쇠네어츠)과 함께 이 곳에서 쉬고 있다. 마리앤은 말을 하면 안 돼 제스처가 아니면 간신히 들리는 쉰 목소리로 가끔 말을 한다. 그런 만큼 스윈튼의 연기가 조용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리앤의 전 애인이자 음반제작자인 생명력이 지나치게 넘쳐흐르는 수다쟁이 해리(레이프 화인즈가 과장에 가까운 연기를 맹렬하게 한다)가 22세난 매혹적인 딸 페니(잔슨)를 데리고 나타나면서 마리앤과 폴의 평화로운 일상에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해리는 과거 마리앤과의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이 여자를 폴에게 물려주다시피 했는데 문제는 해리와 마리앤이 아직도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점. 물론 마리앤은 폴을 깊이 사랑하고 있기는 하다. 공격적인 해리의 다변과 행동에 열세로 몰리는 폴은 어쩔 줄 몰라 하고 마리앤 역시 접근하는 해리를 물리치느라 애를 먹는다. 
이런 폴을 간신히 가릴 곳만 가린 페니가 빤히 바라다보면서 유혹을 하는데 페니는 해리와 아버지 이상의 포옹을 나눈다. 그리고 폴에게 해리가 자기 친 아버지인지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페니는 22세인가. 페니는 21세기 판 롤리타이다. 
마리앤과 해리가 장을 보러 인근 마을로 가고 폴과 페니가 인근 바위가 많은 해변으로 나들이를 간 날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성적 욕망과 갈등과 긴장과 적대의식이 요동을 치면서 일이 난다. 영화 끝은 이탈리아로 건너오는 보트피플들을 부유하고 방종한 사람들의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애매하게 끝난다.        
배우들의 선정이 완벽한데 뛰어난 연기들이다. 가장 약한 것은 쇠네어트. 락과 클래시컬 뮤직을 잘 쓴 음악과 촬영도 훌륭하다. 특히 카메라가 벗은 인체의 엉덩이와 허리와 목과 발과 젖가슴 등을 핥다시피 하면서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 성인용.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랑과 우정(Love & Friendship)


레이디 수전(왼쪽)이 자기를 사랑하는 연하의 레지널드와 대화하고 있다.

케이트 베킨세일 주연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시대극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의 초기 중편 ‘레이디 수전’이 원작으로 무지무지하게 말이 많은데 사뿐하니 경쾌하나 초경량급이다. 남녀 간의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감정적 열기가 부족하고 깊이는 없지만 올스타 캐스트의 좋은 연기와 수려한 풍경과 화사한 의상 등 보고 즐길 만은 하다.
그러나 영화라기보다 연극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작품으로 부모와 그들의 자녀 등 직계가족은 물론이요 이들의 친척과 사돈의 팔촌을 비롯해 친구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누가 누구인지를 분간하기가 힘들다. 참고 기다리면 알게 되긴 하지만.
18세기 영국의 상류층 사람들의 생활과 관습 그리고 이들의 허세 부리는 태도와 함께 위선과 시기와 질투 및 경쟁의식 등을 악의 없이 비판하고 희롱하는 오스틴의 성질이 그대로 나타난 작품으로 인간의 선의를 믿으면서 맺어질 사람들이 다 맺어지는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은 남편도 없고 돈도 없는 레이디 수전(케이트 베킨세일). 수전이 거처를 시댁으로 옮기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수전은 잘 생기고 순진한 연하의 레지널드(사비에르 새뮤얼의 역과 연기가 왕년의 휴 그랜트를 연상케 한다)의 마음을 사는데 둘은 자주 대저택의 뜰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이어 학교에서 쫓겨난 혼기가 된 수전의 딸 프레데리카(모피드 클라크)가 도착하고 이와 함께 프레데리카를 아내로 삼으려고 애쓰는 나이 먹고 돈 많고 경박하고 멍청한 제임스경(탐 베넷이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이 도착한다. 수전은 이 집에서 있는 것이 불편해지면 런던에 사는 미국인 친구 알리시아(클로이 세비니)를 찾아가 둘이 재잘댄다. 
길고 잡다한 소재의 얘기를 하는 주체는 수전인데 가십을 비롯해 자기 비하와 함께 자기 합리화를 두루뭉술 엮어 계속해 지껄여댄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시대를 앞서 간 것들이다. 수전은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유혹녀이자 간교한 음모자요 바람둥이이며 또 치밀한 생존투쟁의 승리자로 그의 궁극적 목적은 남자를 잘 골라 자기와 함께 딸이 유복하게 사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감나무에 연줄 얽히듯 얼기설기 섞여들면서 얘기도 배배 꼬이는데 마지막은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식으로 끝이 난다. 수전 때문에 한 젊은 유부녀가 울게 되긴 하지만. 베킨세일이 잠시도 쉬지 않고 종알대면서 열심히 연기를 잘 하고 나머지 배우들도 다 잘 한다. 아일랜드에서 찍었다. 인디 영화의 표본인 윗 스틸맨 감독. PG. Roadside Attraction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총과 성경




새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왼손을 놓는 것이 성경이다. ‘검을 쓰는 사람은 검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 성경에 대통령이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나라에서 툭하면 대형 총기 살상사건이 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미국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성경과 총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나라다. 초기 미 서부개척자들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면서 총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가차 없이 살육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 총 다음으로는 위스키로 인디언들을 주정뱅이로 만들어놓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인디언 거주지역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가 돼서 미국인들의 총기소지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고 미국인들의 총기숭배는 물신숭배나 다를 바 없어 집집마다 총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공직 선거에 나선 어느 후보가 총기규제를 거론했다가는 막강한 미총기협회(NRA)의 미움을 사 낙선하기가 십상이다.
총은 있으면 쓰게 마련으로 미국에서는 버지니아텍이나 샌디 훅사건 같은 대규모 총기 살상사건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초 강력한 총기규제 법안 마련에 주저하는 의회를 보다 못해 총기규제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이것은 별 힘이 없는 조치다. 집집마다 수저 갖고 있듯이 총을 보유하고 있고 또 장난감 가게에서 딱총 사듯이 총을 살 수 있으니 총기에 의한 대형 참사가 빈발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최근 미시시피주에서는 주지사가 총기훈련을 받은 특정인들이 교회에 총을 소지하고 들어가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한 법안에 서명했다. 예배를 보는 성소에서 인명을 살상하는 총을 소지하도록 허락함으로써 마침내 미 건국의 초석인 총과 성경이 2위1일체가 된 것이다. 이야말로 가히 희극적이라고 하겠다.  또 텍사스주에서는 대학교에 총을 갖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 법안이 통과됐다. 이제 예배 보다가 또 공부하다가 수틀리면 총을 쏘게 됐다.
미 서부개척에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이 레버로 작동되는 연발 라이플 윈체스터다. 그래서 이 총은 ‘서부를 쟁취한 총’으로 불리며 미국을 상징하는 무기로 취급받고 있다. 윈체스터는 미 서부사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다 사용했다.          
전설적 열차강도 제시 제임스와 말년에 콤비를 이뤄 미국을 돌며 ‘와일드 웨스트쇼’를 공연한 서부개척자 버필로 빌 코디와 톰보이 애니 오클리 그리고 커스터 장군의 미 기병대를 몰살한 수족 인디언의 용감무쌍한 추장 시팅 불 등이 다 이 총을 썼다. 많은 웨스턴에 나온 존 웨인이 들고 다니던 라이플도 윈체스터다.
존 웨인과 딘 마틴이 나온 웨스턴 ‘리오 브라보’에서 속사의 명수 콜로라도로 나온 베이비 페이스의 가수 릭키 넬슨은 라이플을 이렇게 찬미하며 노래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소떼들은 냇가로 내려가네/개똥지빠귀가 둥지에 몸을 풀면 카우보이가 꿈을 꿀 때라네/진홍빛으로 물드는 계곡이 내가 있을 곳이라네/내 좋은 세 친구들인 내 라이플과 말과 그리고 나와 함께.’
윈체스터가 영화의 주제로 사용되면서 미국인들의 총에 대한 집착을 묘사한 명작이 앤소니 맨이 감독하고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사납고 진지한 심리 웨스턴 ‘윈체스터 ‘73’다. 스튜어트가 캔사스주 다지시티의 미 독립기념일 축제 사격시합에서 1등 상품으로 탄 윈체스터를 라이벌로부터 강탈당한 뒤 총을 찾기 위해 광적이다시피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면서 폭력적인 액션이 일어난다.
스튜어트의 손을 떠난 윈체스터는 위스키 행상과 젊은 시팅 불(록 허드슨이 인디언으로 나온다)을 비롯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가는데 총을 잠시 소유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라이플을 보물단지처럼 여기며 마치 미녀를 보듯 찬미하고 감탄한다.
총에 관한 영화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피스톨이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고 또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아서 펜이 감독한 미학적 폭력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이다. 미 경제공황  시대 연인 은행연쇄강도 바니 파커(페이 더나웨이)와 클라이드 배로(워렌 베이티)의 이야기로 이들이 쓰는 피스톨은 바니의 욕정의 대상인 클라이드의 성기를 상징한다. 둘은 이 무기에 대한 사랑에 자극을 받아 로맨스에도 열기가 달아오른다.
피스톨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면서 아울러 강한 애정과 집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범죄영화가 허무하고 폭력의 카니벌과도 같은 ‘건 크레이지’(사진)다. 젊은 부부강도 바트(존 달)와 애니(페기 커민스)의 강도질과 살인행각을 그린 흥미진진한 필름 느와르다. 애니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6연발 피스톨을 든 채 호스로 자동차 연료통에 개스를 넣는 장면은 남녀 간의 섹스를 묘사한 기름 냄새 나는 러브신이다.
집집마다 총이 있으니 성질나면 쓰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대형 총기살상에 대한 유감 표명이 마치 주례행사처럼 되었다고 자조했겠는가. 총 차고 예배 보는 미국은 확실히 건 크레이지의 나라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