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앤 프랭크 사망 70주년 기념 `시끌'

실제의 앤 프랭크

 TV 미니시리즈 제작 계획에
“학살된 가족에 대한 불경”
 앤 프랭크 재단서 철회 요구
 극영화 두 편은 정상 제작

영화‘앤 프랭크의 일기’에서 앤 역을 맡은 밀리 퍼킨스.

2015년은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은 앤 프랭크의 사망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계기로 앤에 대한 관심이 새삼 고조되면서 앤의 유명한 일기를 바탕으로 한 앤의 삶을 다룰 3편의 영화와 TV 시리즈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2편은 극영화(라이브-액션 1편과 만화영화 1편)이고 나머지는 TV 미니 시리즈인데 제일 먼저 올 여름부터 제작에 들어갈 작품은 독일의 두 영화사 콘스탄틴 필름과 무비 그리고 공영TV 방송인 ZDF가 합작으로 만들 독일어 TV 미니 시리즈다.
그런데 이 같은 계획이 최근에 발표되자 앤의 일기와 앤의 가족의 문헌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스위스의 앤 프랭크 펀드는 시리즈
계획을 당장에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유는 시리즈 제작이 앤 프랭크 펀드의 참여 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펀드는 “펀드의 참여 없이 제작되는 시리즈는 홀로코스트에서 대량 학살된 프랭크 가족에 대한 불경”이라면서 “제작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법적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펀드는 이어 “앤의 유업이 갈수록 지나치게 상업화 하고 있으며 앤의 이름이 상표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ZDF 측은 “우리는 모든 것을 앤 프랭크의 문헌에 충실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시리즈를 앤 프랭크를 잘 모르는 젊은층에 어필하도록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앤 프랭크의 라이벌로 앤과 그의 가족이 나치를 피해 숨어 살던 암스테르담의 집을 맡아 돌보는 앤 프랭크 파운데이션과 독일의 유대인 중앙위원회는 이 시리즈를 지원하고 있어 시리즈를 놓고 앤 프랭크의 두 비영리단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앤 프랭크 펀드는 시리즈와는 달리 두 편의 극영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다짐했다. 만화영화는 ‘바시르와 월츠’를 감독한 아리 폴만이 감독하고 독일어 라이브-액션영화는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독일영화 ‘소피 숄: 마지막 날들’의 각본을 쓴 프레드 브라이너스도르퍼가 각본을 쓰고 한스 슈타인비클러가 감독한다.
나치를 피해 암스테르담의 한 공장 다락방에 숨어 살다 종전 얼마 전 나치에게 체포돼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된 뒤 거기서 사망한 앤이 다락방에서의 삶을 쓴 ‘디어 키티’로 시작하는 일기는 1947년 앤의 아버지 오토에 의해 처음 출판된 이래 전 세계 70개 국어로 번역돼 3,000만여권이 팔렸다.
일기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이 연극과 일기를 바탕으로 조지 스티븐스 감독(‘셰인’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이 1959년에 만든 흑백영화가 ‘앤 프랭크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다.
앤으로는 밀리 퍼킨스가 나왔고 앤과 같이 다락방에서 숨어 살면서 앤의 애인이 된 피터로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나탈리 우드의 애인으로 나온 리처드 베이머가 나왔다. 영화의 내부 장면은 스튜디오 세트에서 찍었으나 앤이 숨어 살던 집의 외부촬영은 암스테르담 현지에서 찍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앤의 가족과 함께 다락방에 숨어 살면서 나치에게 체포될까 봐 늘 공포에 떠는 반 단 부인 역을 맡은 쉘리 윈터스가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으며 이밖에도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았다.
앤의 얘기는 이밖에도 1980년에는 멜리사 길버트가 주연한 TV 영화로 만들어져 3개 부문에서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2001년에는 ABC-TV의 미니 시리즈 ‘앤 프랭크: 모든 이야기’로 만들어져 에미상을 2개 받았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오마르 (Omar)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폭력


오마르가 이스라엘군의 불심검문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인 웨스트뱅크를 무대로 진행되는 정치적 드라마이자 스파이 스릴러이면서 아울러 사랑과 우정과 신뢰의 이야기로 팔레스타인 영화다. 올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비밀과 배신이 잠복해 있는 긴장감 가득한 영화로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는 점령지에서 사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좌절감과 분노 그리고 폭력과 함께 궁극적 구제를 필름 느와르 식으로 그린 의미심장하고 흥미 있는 영화다.
빵을 굽는 청년 오마르(아담 바크리)는 친구 타렉(에야드 후라니)의 여동생인 여고생으로 자기 애인인 나자(렘 루바니)를 만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동네를 가르는 거대한 벽을 밧줄로 타고 넘는다. 이스라엘군의 총격도 겁내지 않는 사랑의 행위다. 
오마르와 타렉과 농담꾼인 암자드(사메르 비스하라트-그를 통해 살벌하기까지 한 영화에    유머를 첨가한다)는 세 친구로 이들은 좌절감을 풀기 위해 이스라엘군을 쏴 죽이기로 한다. 암자드가 이스라엘군을 사살하면서 이스라엘 측의 보복과 범인 색출을 위한 대대적 수색이 벌어지고 여기서 오마르가 체포된다. 
오마르를 수사하는 라미(왈레드 F. 주아이터)가 오마르에게 풀어줄 테니 타렉의 소재지를 밀고하라면서 석방한다. 라미는 타렉을 사살범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 친구를 고발할 생각이 없는 오마르는 타렉이 짠 이스라엘군에 대한 기습작전 계획에 참여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 기습작전을 이스라엘군에 고발하면서 오마르는 다시 체포된다. 
그리고 라미는 다시 타렉의 소재지를 밀고하라면서 오마르를 풀어준다. 오마르는 이 제의를 수락하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자신들 사이의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해서다. 한편 오마르가 재차 이스라엘 수사기관으로부터 석방되자 나자를 비롯한 오마르의 주위 사람들이 오마르를 스파이로 간주한다.      
굴욕과 폭력의 환경 속에서 출구가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망적이요 자기 파괴적이자 또 비극적인 행동과 함께 이런 환경 안에서의 인간의 취약성을 매우 사실적이자 감정적으로 그린 훌륭한 작품이다. 대부분 신인들인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현지에서 찍은 촬영이 사실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하니 아부-아사드 감독. 성인용. Adopt Films. 로열(310-478-3836), 선댄스 선셋(선셋과 크레센트하이츠), 플레이하우스7(626-844-6500), 타운센터5(818-981-9811) 등 일부지역. ★★★★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바람이 분다 (The Wind Rises)


하늘을 나는 비행의 꿈을 찾아서… 


지로가 꿈에서 전투기를 타고 비행하고 있다.
‘모노노케 공주’와 ‘포뇨’ 및 ‘하늘의 성’ 등 시각미와 얘기가 모두 다채롭고 풍성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본 만화영화 감독 하야오 미야자키의 11번째 작품(각본 겸)이자 그의 은퇴작이다. 그림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섬세하고 또 다채로운 데다가 전쟁과 로맨스와 비행의 꿈의 실현을 좇는 젊은이의 얘기도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보기에 거슬리는 점은 영화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고 또 태평양 전쟁에 사용한 전투기 ‘제로’를 고안한 실존 인물인 지로 호리코시의 삶을 다뤘다는 것이다. 미야자키는 영화에서 자기는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상의 꿈을 현실화 하려는 지로의 아름다운 꿈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을 몇 차례 피력하고 있지만 일제의 오랜 피점령국이었던 우리로선 단순히 이름다운 영화로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미야자키 영화중에선 가장 사실적이요 또 성인을 위한 작품이다. 제목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에서 따 왔다. 
얘기는 지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시골에 사는 지로는 소년시절부터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 꿈이지만 근시안이어서 조종 대신 비행기 제작으로 자기 꿈을 바꾼다. 이를 위해 지로는 영어로 된 항공관계 잡지를 사전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지로는 밤이면 이탈리아 항공계의 개척자인 지오반니 카프로니가 타고 하늘을 나는 날개 3개의 비행기 꿈을 꾸곤 한다.
이어 시간대는 1923년으로 옮겨진다. 도쿄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지로가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칸토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기차가 탈선한다. 이 대지진과 그 후의 혼란을 그린 그림이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지로는 역시 열차에 탔던 아름다운 나호코를 도와주면서 평생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학교를 나온 지로는 미쓰비시 중공업에 들어가 비행기 제작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지로는 새 전투기 개발에서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해 탑 엔지니어로 승진한다. 여기서 지로는 독일을 방문해 독일의 전투기 디자이너들을 만난다. 1930년대 시작과 함께 지로는 ‘제로’(A6M) 전투기의 전신인 항공모함 탑재기인 A5M을 개발한다.
한편 지로는 휴가를 시골에서 보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독일인 카스토르프를 만난다. 카스토르프는 평화주의자로 지로에게 일본과 독일의 궁극적 패망을 경고한다. 이와 함께 지로는 나호코와 재회하는데 나호코는 폐병을 앓아 몸이 쇠약하다. 지로와 나호코의 아름다운 사랑이 옛 할리웃 영화의 비극적 로맨스처럼 묘시되는데 그림도 아주 곱다.     
그림이 감각적으로 아름답고 내용도 로맨틱 서사극처럼 도도하게 흐르는데 음악도 좋다. 올 오스카 만화영화상 후보작.
PG-13. Sony Classics. 랜드마크(310-470-0492), AMC 센추리15(888-AMC-4FUN), 글렌데일18(818-551-0218), 셔먼옥스 갤러리아(818-501-0753), 할리웃 엘 캐피탄(27일까지. 800-DISNEY6).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하야오 미야자키



21일 개봉되는 일본의 저명한 만화영화 감독 하야오 미야자키(73)의 최근작이자 그의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영화평 참조)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했다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3월2일에 열릴 올 오스카 시상식에서 만화영화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는데 사용된 폭격기 ‘제로’를 고안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항공담당 공학자 지로 호리코시의 삶을 다룬 것으로 내용과 그림이 모두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왜 하필이면 침략전쟁의 도구인 ‘제로’를 고안한 호리코시의 얘기를 다뤘는가”라면서 “영화가 아름답고 유연한 모양의 폭격기와 그것을 고안한 사람을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화에는 전쟁을 비판하는 대사와 함께 호리코시가 “나는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름답고 성능 좋은 비행기를 고안하려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국인인 내가 보기엔 그런 말이 그저 사탕발림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요즘 정신 나간 아베 일본 수상의 군국주의적 사고방식과 발언 때문에 한일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영화가 뛰어나게 잘 만들었다고 감탄을 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한편 미야자키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지로 호리코시는 평화주의자로 그가 폭격기를 만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태평양전쟁 당시 ‘제로’의 방향타를 고안한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도 “나는 그처럼 위험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나의 아버지가 나쁜 일을 했다고 비난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야자키는 이 영화로 인해 일본의 극보수파들로부터는 ‘반 일본적 반역자’라고 욕을 얻어먹고 있다. 그 같은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일본과 독일은 패망하고 말 것이다”라는 대사와 함께 묘사된 반전 메시지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야자키는 군국주의자들과 함께 일본의 침략근성을 비판하는 측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미야자키는 평소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아베의 전쟁을 금지한 일본 헌법 수정 의도와 전쟁 범죄행위 부정을 비판하면서 아울러 전쟁 위안부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자신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을 때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뜻에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미야자키를 2009년 영화 ‘포뇨’를 위한 인터뷰 차 만났는데(사진) 백발에 흰 구레나룻을 하고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마치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는 만화를 손으로 그리는 사람답게 “나는 컴퓨터도 안 쓰고 셀폰도 없다”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는데 사람이 아주 소박하고 털털한데다가 인자한 모습에서 진짜로 평화주의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더 왜 저런 평화주의자가 하필이면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느낌마저 드는 소재를 골랐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었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다분히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스튜디오 기블리를 통해 ‘하늘의 성’ ‘내 이웃 토토로’ ‘모노노케 공주’ 및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주옥같은 만화영화를 감독(각본 겸)한 미야자키는 작품에서 평화주의와 자연을 찬미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겨볼 수 있는 영화들로 마법적 영역 안에서 마법사와 마녀와 요정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여러 영화에서 개성과 독립심이 강한 소녀나 젊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미야자키는 페미니스트인데 ‘포뇨’에서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에 맞춰 파도를 타고 달리는 브륀힐데가 그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미야자키는 얼마 전 “이젠 늙어서 영화를 그만 만들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만화는 계속해 그릴 예정인데 그는 현재 사무라이 시리즈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이 분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또 한 번 생각나게 된 것이 예술작품을 순전한 예술적 안목으로만 볼 것이냐 또는 거기에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나는 순예술파이긴 하지만 이번에 미야자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기분이 언짢았던 것은 결국 내 혈관 안에서 흐르는 한국인이라는 피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로보캅 (RoboCop)

반인간 반기계 로보캅 범죄자를 소탕

반 인간 반 기계 로보캅인 머피가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있다.

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반 인간 반 기계의 액션영화는 1987년 폴 베어호벤 감독이 만든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로 현대화하긴 했지만 대부분 원작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 원작에서는 피터 위어가 로보캅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스웨덴 태생의 조엘 킨나만(TV 시리즈‘킬링’)이 새 로보캅으로 나온다.
원작이 액션과 함께 사회 풍자적 의미를 지녔던 것에 비해 전 세계적 빅히트 작 액션영화 ‘엘리트 스쿼드’를 만든 브라질의 호세 파디아(할리웃 데뷔)의 리메이크는 액션에 치중해 총소리가 요란하고 스피드가 과속이다. 액션영화 치곤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로 배우들이 전부 연기를 잘해 영화의 수준을 어느 정도 올려놓고 있다.
2028년. 영화는 폭스뉴스 스타일의 TV 뉴스맨 팻 노박(새뮤얼 L. 잭슨이 반질반질 기름칠한 가발을 쓰고 자기 역을 즐기고 있다)이 전쟁 중의 테헤란에 파견된 원격 조정되는 폭동과 테러 진압 로봇들의 효과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그러니까 미국은 이번에는 이란에 또 점령군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로봇 제조회사인 옴니사의 회장 레이먼드 셀라스(초대 ‘배트맨’ 마이클 키튼이 사악하고 간교스런 연기를 잘 한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사제품을 미국 내 범죄 퇴치용으로 팔아먹으려고 계획 중이나 의회가 이를 반대한다. 
한편 디트로이트의 형사 알렉스 머피(킨나만)는 동료와 함께 총기 밀매단에 관해 수사를 하던 중 자기집 앞에 주차한 차에 밀매단이 장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얼굴과 머리 그리고 신체의 일부분만 남기고 전신이 완전히 파괴된다.
여기서 셀라스는 아이디어를 얻어 머피를 반 인간 반 기계 경찰로 만들기로 하고 인간을 기계화 하는 것을 꺼려하는 옴니사의 탑과학자 데넷 노턴(게리 올드맨이 차분한 연기를 한다)을 시켜 머피를 로보캅으로 만들도록 한다.
로보캅이 된 머피가 도시의 범죄를 소탕하면서 액션이 콩 튀듯 하는데 이 액션에 머피와 그의 부인 클라라(애비 코니쉬가 영화에 감정적 무게를 준다)와 어린 아들 데이빗(존 폴 루탄) 간의 관계를 넣어 액션영화에 인간성을 가미한다. 
그리고 완전히 기계화한 머피는 이 관계로 인해 잠재했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로보캅을 상품으로 팔아먹으려는 셀라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셀라스가 자기 말을 안 듣는 머피를 처치하기 위해 하수인(잭 얼 헤일리도 잘 한다)을 파견하면서 요란한 추격과 총격전이 일어난다.
날렵한 몸매의 키다리 킨나만이 액션과 함께 감정적으로도 강렬한 연기를 보여줘 볼만은 하나 결국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 컬럼비아사는 1987년작 로보캅을 모르는 젊은 팬들을 목표로 했음에 분명한데 보통 액션영화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이 영화가 과연 그들에게 얼마나 어필할지 의문이다. PG-13. 전지역. ★★★(5개 만점)

겨울 이야기 (Winter's Tale)

기적 이루고 죽음마저 극복하는 사랑의 힘

겨울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도둑 피터(왼쪽)와 폐병환자 베벌리.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아 나온 여성용 최루물로 기적을 이루고 죽음마저 극복하는 사랑의 힘에 관한 멜로드라마다. 원작은 마크 헬프린의 소설. 1세기를 넘나들면서 시공을 초월해 운명과 대결하는 사랑의 영속적인 힘을 피력하고 있는데 무지무지하게 로맨틱해야 할 영화로선 피가 끓는 뜨거운 심장이 모자란다.
‘마법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백마의 기수까지 나오는 선과 악의 대결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센티멘털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고 즐길 만은 하나 마법과 경이와 활력이 영양실조에 걸린 영화다. 로맨티시즘의 영혼이 아쉽다. 
이 영화에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나오는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아름다운 마음’의 각본을 써 오스카상을 받은 아키바 골즈맨의 감독 데뷔작(각색 겸)인데 헛발을 내디딘 셈이다.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들을 비롯해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로 연기도 돋보이는 데가 없다. 모든 것이 중간급인 다소 나태하기까지 한 작품이다.
20세기 초 뉴욕의 범죄가 판을 치는 흉악한 동네. 젊은 도둑 피터 레이크(콜린 패럴)가 자기를 죽이려는 한때 자신의 보호자였던 범죄단 두목 펄리 소움즈(러셀 크로)와 그의 졸개들을 피해 도주한다. 펄리는 악마(윌 스미스는 전혀 미스 캐스팅)의 하수인으로 영화는 사랑을 파괴하려는 악과 그것을 지키려는 선의 대결의 이야기이다. 
도주하는 피터 앞에 나타나는 백마. 백마를 탄 피터는 백마의 종용에 따라 마지막 도둑질을 시도하다가 불치의 폐병을 앓는 아름다운 베벌리 펜(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피터는 집요하게 자기를 추적하는 펄리를 피해 다니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베벌리를 살리려고 애를 쓴다. 그에게는 기적이 필요하다.  
이어 피터는 1세기 후의 뉴욕에 마치 깊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자기 과거를 캐내려고 이 과거와 연결이 있는 신문사에 들렀다가 불치의 병을 앓는 어린 딸 애비(리플리 소보)를 둔 여자 저널리스트 버지니아 게임리(제니퍼 카넬리)를 만난다. 과연 애비는 누구의 환생일까요. 마침내 사랑은 기적을 이루고 백마가 하늘을 나른다. 윌리엄 허트와 에바 마리 세인트가 캐미오로 나온다. 오스카상 수상자인 한스 짐머의 음악이 센티멘탈하다. PG-13. WB. 전지역.   ★★★


`아메리칸 허슬’크리스천 베일

“영화출연 망설였는데, 아내가 결정했죠”



3월2일에 열릴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총 10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코미디‘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의 주연배우 크리스천 베일(40)과의 인터뷰가 뉴욕의 런던 호텔에서 있었다. 베일은 1980년 미 연방수사국(FBI)의 지시로 뉴저지를 무대로 정치인들과 마피아를 상대로 한 부정부패 함정수사의 앞잡이로 사기를 친 실존인물 어빙 로즌펠드 역을 맡아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페인에서 찍고 있는‘엑소더스’에서 모세 역을 맡아 촬영 중에 뉴욕으로 날아온 그는 긴 머리에 텁수룩한 모세의 수염을 하고 검은 셔츠의 간편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액센트가 있는 빠른 어조로 마치 연기하듯이 상체와 두 손 그리고 얼굴 표정을 다채롭게 사용하면서 질문에 답했는데 가끔 농담을 섞긴 했지만 매우 진지했다. 눈초리가 아주 매서웠는데 인터뷰장 뒤에는 부인 시비가 앉아 남편의 대답을 경청했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게 됐는가.
- 역사적 드라마라는 점과 개성 있는 인물들에 깊은 매력을 느꼈었다. 그래서 감독 데이빗(O. 러셀)과 작품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를 했는데 다른 영화 출연 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이 영화에 나올 수가 없어 데이빗에게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도 미련이 크게 남아 망설이고 있으니까 아내가 데이빗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영화에 나오기로 결정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니까 아내 때문에 영화에 나오게 된 셈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수사 대상으로 친구가 되다시피 한 사람에게 크게 상처를 주는데 영화계에서 일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는가.
- 난 매우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영화와 달리 누군가와 갈등이 있게 되면 내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때로 서로가 잔인해야 할 정도로 솔직함을 요구한다. 난 뒤에서 칼로 등을 찌르는 사업에는 종사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영화계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당신은 영화에서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는데 실제로도 외모와 옷에 신경을 쓰는가.
- 난 다행히 어빙처럼 대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나나 내 아내 모두 옷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아무 것이나 입는다. 난 똑같은 셔츠 3벌과 팬츠 3벌밖에 없다. 

*당신은 영화를 위해 체중을 많이 늘렸는데.
- 그건 데이빗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내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완벽한 사기꾼이 외모가 멋쟁이가 아니라 배가 나온 몸을 했다는 것에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자꾸 체중을 늘렸더니 데이빗이 나보고 “너 뭐 하는 짓이냐”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그리고 키도 내 키보다 작게 보이려고 상체를 자꾸 짓눌러 내렸더니 배가 더 나왔다. 
사기꾼 어빙역의 크리스천 베일과 사기 파트너이자 정부인 에이미 애담스.

*옷이 주인공의 개성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는가.
- 물론이다. 특히 사기꾼은 어떤 옷을 입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영화에서 어빙은 옷을 매우 주도면밀하게 선택했다.

*당신은 아직도 말에 액센트가 있는데.
- 난 웨일즈 태생으로 이젠 영국에서 산 것보다 미국에서 산 것이 더 오래인데도 아직도 액센트가 남아 있다. 영국에 살 때 굉장히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 액센트를 얻은 것 같다.

*영화에서 당신의 아내로 나온 제니퍼 로렌스에게 선배로서 무슨 조언이라도 했는가.
- 제니퍼는 생각이 똑바른 사람이어서 충고가 필요 없다. 그리고 난 우리가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니 만큼 내 경험을 들어 남에게 충고를 해 준다는 것이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데이빗이 제니퍼를 골랐을 때 난 제니퍼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 셋이 앉아서 얘기를 나눈 결과 난 제니퍼가 얼마나 재능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역 소화와 연기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사기 당해 본 적이 있는가.
- 물론이다. 난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아니어서 사기를 잘 당한다. 사기를 당하면 그냥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린다.     

*대머리가 된 기분은 어땠으며 체중을 늘리려고 무엇을 먹었는가.
- 닥치는 대로 다 먹었다. 머리를 면도로 밀고 나니 시원해서 좋더라. 특히 내 어린 딸 엠마린(8)이 대머리를 신나게 때리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한 번은 선스크린을 안 발랐다가 머리가 불타는 줄 알았다. 

*성공한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 어떻게 삶에 대처하는가.
- 자기 성공의 죄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 배우니까 어떻게 행동해야지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자기 길을 만드는 것이다. 난 연기 후에 아름답고 훌륭한 가족과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곤 한다. 그들이 내가 사는 까닭이다. 그러니 걱정할 일이 별로 없다. 

*한 영화와 다른 영화 사이에 쉴 때 무엇을 하는가.
- 난 한 영화에 나온 뒤 다음 영화를 만들 때까지 어느 정도 쉬어야 한다. 쉴 땐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 자신을 즐긴다. 영화에서 남이 된 후에 다시 자기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더 이상 배트맨 역은 안 하겠는가.
- 안 한다.

*어빙은 아내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뒀는데 당신에게 있어 충실은 어느 정도 중요한가.
-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난 저 뒤에 앉아 있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자로부터 유혹을 받았다. 평생의 반려자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 감독과 각본 그리고 공연 배우들도 다 중요하나 난 절대로 통상적인 것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난 실험하는 자세로 역을 택하기 때문에 데뷔하는 감독과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가능성만 보고 일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완전히 실패할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영국엔 자주 가며 축구팬인가.
- 영국엔 주로 영화 때문에 자주 간다. 난 아마추어 축구팬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뛰어난 연기파인데 어떻게 그런 재능을 갖게 되었는가.
- 아이 때 연극공부를 좀 했지만 그것은 YMCA 수준이다. 따라서 난 주로 세트에서 배웠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 이 직업에 대해 애증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 것이 일방적인 사랑보다 훨씬 더 건전하다. 애증이 공존해야만 모방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해보겠다는 욕망이 생긴다. 난 언제나 연기자로서 높낮이가 지극히 극단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난 역을 맡을 때 때로는 그것이 내 첫 영화라는 자세로 대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때로는 그것이 내 마지막 작품이라는 자세로 대할 때도 있다. 그 어느 경우건 간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좋은 연기란 감독 없이는 나올 수가 없다.

*당신은 이제 나이 40인 됐는데 소감이 어떠며 어떻게 생일을 축하할 것이며 또 지금까지 이룬 것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인가.
- 40이 되니 좋다. 난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선 최근 영화에 여러 편 나와 당분간 쉬겠다. 사람들이 날 보기가 지겹다고 말하기 전에 말이다. 난 내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 같은 것을 즐기지 않는다.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내 딸이다. 자식이란 사람이 열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예술이다. 

*당신은 유명스타로서 어떻게 그렇게 사생활을 철저히 지킬 수가 있는가.
- 잘 모르겠다. 난 스타라고 불리는 것이 다소 민망하다. 스타는 나와 달리 엄청나게 매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난 배우라는 직업이 좋다. 난 운이 좋은 편이다. 난 누가 날보고 스타라고 부르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스타라는 범주에 빠지지 않으면 보다 자유스럽다.  

*파파라치들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는가.
- 솔직히 말해서 지금처럼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기 때문에 파파라치가 따라 붙는다. 회견이 없다면 파파라치도 없을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사랑의 힘



생일이니 무슨 기념일이니 하면서 날 잡아놓고 축하하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는 해마다 날 잡아놓고 사랑을 표시하는 밸런타인스 데이가 오면 작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과연 올해도 아내에게 밸런타인스 데이 선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이 것이 문제로구나. 카드와 붉은 장미 한 송이(초컬릿은 살이 쪄서 안 된다)를 사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39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며 동고동락 해온 아내에게 날 잡아놓고 애정의 표시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형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식적이라도 좋다는 것이 아내의 태도다.
도깨비장난에 불과한 것이 사랑이지만 그것은 페리 코모도 노래했듯이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사랑의 힘이란 기적을 낳고 죽음마저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로맨틱들의 예찬이다.
지난 일요일 내가 다니는 동부장로교회의 이용규 목사님이 ‘마음에 사랑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사랑의 힘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홀랜드에 사는 78세의 미망인이 80세의 할아버지를 사랑하게 돼 둘이 결혼을 다짐했다. 문제는 할머니가 과거 50년간 담배를 피워온 골초라는 것.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결혼조건으로 금연을 요구했고 이에 고민을 하던 할머니는 50년간 애호하던 담배를 끊고 할아버지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해마다 밸런타인스 데이가 오면 영화사들은 로맨스 영화들을 개봉한다. 소위 데이트 영화들로 서로의 손을 잡고 보는 남녀의 감상성에 아첨하는 것들이다.
오늘 개봉되는 ‘겨울 이야기’(영화평 참조)는 사랑은 기적을 낳고 죽음도 이긴다는 전형적인 여성용 최루물이다. 역시 오늘 나오는 ‘어바웃 라스트 나잇’은 로브 로와 드미 모어가 나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이고 ‘엔드리스 러브’도 브룩 쉴즈가 나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다. 원작이나 리메이크나 다 타작이다.
이미 개봉된 로맨스 영화 중 여성 팬이 좋아할 만한 것이 자기 집에 숨겨준 탈옥수와 사랑을 하는 젊은 이혼녀(케이트 윈슬렛)의 드라마 ‘레이버 데이’다. 역시 현재 상영 중으로 모든 것이 기계화한 요즘 인간 접촉을 아쉬워하는 별난 로맨스 영화 ‘허’는 먼 그리움처럼 애잔하고 아름다운 얘기다. 고독한 청년(와킨 피닉스)과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인(스칼렛 조핸슨의 음성) 간의 사랑의 대화가 심금을 울린다.
며칠 전 TV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보면서 한숨 두숨 다 쉬었다. 아이오와 시골의 ‘전쟁신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와 떠돌이 사진작가 로버트(이스트우드)의 나흘간의 뜨거운 사랑의 얘기인데 프란체스카의 이별을 아파하는 모습에 육신의 통증마저 느꼈다. 피아노 위주의 영화음악과 비단결 음성을 지닌 자니 하트만이 부르는 ‘아이 시 유 비포 미’등이 담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로맨틱하다.
프랑스 영화 ‘미용사의 남편’은 사랑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꼬마 때부터 자기 머리를 감고 깎아주는 여자미용사의 흰 가운 사이로 드러나는 풍만한 젖무덤과 감촉과 냄새를 좋아하던 소년이 커서 여자미용사와 결혼한다. 그런데 사랑이란 어차피 한시적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던 미용사가 그것을 지키려고 과감한 행동을 취하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영국인 환자’는 감각적이요 지적이며 정열적이자 비극적인 사랑의 영화로 감정적 충격에 호흡이 멎는 듯한 느낌을 겪게 된다. 레이프 화인즈와 크리스틴 스캇 토머스의 맺지 못할 사랑이 작품의 무대인 사하라사막처럼 지글거리며 타오르는데 연인들의 처절한 죽음으로 끝난다.
비극이 희극보다 강한 충격을 주는 것이 사실이어서 로맨스 영화도 비극적인 것이 더 잔상에 오래 머무른다. ‘의사 지바고’의 유리와 라라의 사랑도 그래서 더 강렬한데 이 아름다움을 한층 로맨틱하게 채색해 주는 것이 모리스 자르의 음악이다.
우디 알렌의 ‘맨해턴’은 42세의 TV작가(알렌)와 17세의 여고생(매리엘 헤밍웨이-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손녀)의 사랑을 그린 아이스크림 소다 맛 나는 맨해턴 송가다.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가 사랑하고 싶은 무드를 부추긴다.
브룩 벤튼과 에타 존스 등 많은 가수들이 노래한 ‘아임 인 더 무드 포 러브’에서 제목을 빌린 웡 카-와이 감독의 ‘인 더 무드 포 러브’(사진)는 고독과 잠깐이면 사라지는 미와 젊음과 사랑의 이야기. 매기 청이 입은 알록달록한 청삼이 곱기도해 계속해 엇갈리고마는 사랑이 더욱 안쓰럽다. 모두 밸런타인스 데이에 알맞은 사랑의 영화들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2월 7일 금요일

7개의 상자 (7 Boxes)

파라과이 노천시장서 벌어지는 폭력액션

빅터가 손수레를 밀고 시장바닥을 달리고 있다.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도심 8개 블락을 차지하는 야외시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피와 살육이 판을 치는 사납고 폭력적인 액션영화이면서 다크 코미디인데 플롯이 시장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처럼 배배 꼬였다. 인간 탐욕과 순진한 소년의 잘 살아보겠다는 꿈의 얘기이기도 한데 에너지가 충만하고 역설적이며 영특하고 재미있다.
17세난 순진하고 꿈 많은 빅터(셀소 프랑코)는 아순시온의 인파로 붐비는 대규모 노천시장 마켓 4의 외바퀴 손수레 배달꾼. 빅터는 일거리 얻는데 분주하기보다는 TV를 보면서 자기를 드라마 속의 주인공으로 상상하기를 더 즐겨한다. 빅터에겐 적극적인 여친 리스(랄리 곤살레스)와 중국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누나 타마라(넬리 다발로스)가 있다.
그런데 빅터의 라이벌인 넬슨(빅터 소사)이 정육점 주인 다리오(팔레티타)로부터 내용물 미상의 상자 7개를 목적지까지 배달하면 후한 돈을 주겠다는 언약을 받는다. 넬슨은 병에 걸린 어린 자식이 있어 이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넬슨이 지각을 하면서 상자를 옮기는 일이 빅터에게 떨어진다.
빅터는 손수레에 상자들을 싣고 좁은 시장골목을 헤치고 다니면서 배달업무를 시작하나 목적지까지 가기 전에 수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자기로부터 일거리를 빼앗으려고 결사적으로 훼방을 놓는 넬슨이 있고 경찰은 순시를 강화하고 골목골목 귀퉁이마다 도둑들이 잠복해 이 상자들을 노린다.
카메라가 빅터가 밀고 달리는 손수레 바퀴의 모습과 속도를 땅바닥에서부터 찍으면서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의 속도와 빅터와 주변 인물들의 심정을 헐레벌떡 대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빅터가 계속해 손수레를 밀고 달리는 것과 함께 내용은 점점 더 고약하고 간교할 정도로 동아리를 틀면서 우리는 이 순진하고 아직 아이 티를 못 벗어난 빅터의 장래를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3막에 이르면서 폭력과 살인이 자행되고 사체가 수북이 쌓인다.
가난한 사람의 액션영화로 프랑코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고 현장에서 찍은 추격 장면을 비롯해 촬영도 좋다. ★★★½, 성인용. 일부지역.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모뉴먼츠 멘 (The Monuments Men)

“나치 약탈 미술품 찾아라”특공대에 특명

나치가 숨긴 미술품들을 회수하는 특공대원들. 앞줄 왼쪽이 조지 클루니 그 오른쪽이  맷 데이먼.

2차 대전 종전 직전 나치에게 약탈당한 유럽의 귀중한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 500만여점을 회수하기 위해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적진 독일에 투입된 미국인 미술전문가들이 주동이 된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실화다. 로버트 M. 에셀의 책이 원작. 
조지 클루니의 5번째 감독 작품으로 그가 제작(공동)과 주연도 하고 각본(공동)도 쓴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 긴장감과 스릴과 박력 그리고 피와 땀과 액션이 있어야 할 영화가 잘 생긴 클루니의 얼굴처럼 모양만 그럴싸하고 긴박감이 없어 맹물 마시는 기분이다.
일종의 전쟁영화인데도 거칠고 사나운 것을 피하고 온화하게 중도노선을 걷고 있어 극적 흥분감을 느끼지 못하겠다. 드라마틱한 높낮이도 부족하고 감정적 격렬성도 모자라는데다가 다소 설교조인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해 심신이 나른해진다.
소수의 특공대의 적진 활약을 그린 여러 전형적인 2차 대전 영화의 형태를 답습한 이 영화의 내용은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이 만든 흑백 스릴러 ‘기차’(The Trainㆍ1964)에서도 다뤄졌었다. 버트 랭카스터, 폴 스코필드, 잔느 모로 및 미셸 시몽 등이 나온 이 영화는 시종일관 맥박과 심장이 격렬히 뛰게 만드는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영화다. 이 영화와 ‘모뉴먼츠 멘’을 한번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나치가 퇴각하면서 못 가져가는 세잔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 그리고 르느와르 및 피카소 등의 수많은 귀중한 미술품들을 소각한다는 사실을 안 미국인 미술전문가 프랭크 스톡스(클루니)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을 알린 뒤 대통령의 특명으로 미술전문가들로 구성된 미술품 회수 특공대를 조직한다. 
이들은 미술전문가인 제임스 그레인저(맷 데이먼), 건축가 리처드 캠벨(빌 머리), 조각가 월터 가필드(존 굿맨), 미술사가 프레스턴 새비츠(밥 밸라반), 프랑스인 미술품 거래상 장 클로드 클레르몽(장 뒤자르댕) 및 영국인 미술전문가 도널드 제프리스(휴 본느빌).
먼저 총 한 번 안 쏴본 이들에 대한 기초훈련이 실시되는데 여기서 약간 유머가 첨가되나 별로 우습지도 않다. 그리고 이들은 1944년 7월 노르망디 해변을 통해 유럽에 도착한다. 그런데 시간을 다투는 것은 유럽 동부에서 독일로 진격하는 러시아군. 이들은 미술품을 회수해 원 소유주에게 반환하려는 미국 측과는 달리 전리품으로 소유할 생각이다.
문제는 스톡스가 약탈된 미술품들이 숨겨진 도시들은 아나 명확한 장소를 모른다는 점. 이를 돕는 여자가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들을 보관했던 죄 드 폼에서 큐레이터로 일한 프랑스 여인 클레어 시몬(케이트 블랜쳇). 미술품들의 이동상황을 낱낱이 기록해 둔 시몬에게 접촉하는 사람이 서툰 프랑스어를 하는 고지식한 유부남 그레인저. 그와 시몬 간에 로맨스의 분위기를 피워보려는 어수룩한 시도가 있다.
스톡스의 일행은 퇴각하면서 못 가져가는 미술품을 소각하는 독일군과 미술품을 차지하려는 러시아군으로부터 유럽문화의 꽃들인 그림과 조각품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계륵 같은 영화로 관람은 권한다. ★★★(5개 만점) PG-13. Sony. 전지역.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우디의 스캔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디 알렌(78)의 영화 ‘맨해턴’에서 우디는 42세의 TV 코미디 작가 아이잭으로 나와 17세의 여고생 트레이시(매리엘 헤밍웨이)를 사랑한다. 우디가 영화뿐 아니라 실제로도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디가 지금의 부인으로 자기의 애인 미아 패로의 입양녀 순이와 첫 관계를 맺었을 때 그의 나이는 56세였고 순이는 19세였다.
며칠 전 우디와 패로가 입양한 딜란이 뒤늦게 다시 자기가 7세 때 우디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뉴욕타임스에 공개서한을 보낸 먼 원인은 이 우디와 순이의 스캔들(우디는 스캔들은 무슨 스캔들이냐며 반박한다)에 있다고 봐야겠다. 우디와 순이는 1997년에 결혼해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패로는 우디와 순이의 관계를 발견한 직후인 1992년 우디와 헤어지면서 자식들의 양육권을 놓고 치열한 법정다툼을 벌였었다. 그리고 둘이 낳은 아들 로난은 후에 자기 성을 패로로 바꾸고 지금까지 우디를 혐오하고 있다. 이 때 딜란이 처음으로 우디가 자신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고발, 조사가 있었지만 우디는 무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이 후 미아는 우디를 원수처럼 증오해 왔는데 1월에 있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우디가 생애 업적상을 받는(우디의 옛 애인 다이앤 키튼이 대신 수상)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 딜란을 사주해 편지를 하게 했다고 우디의 변호인 측은 주장한다.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은 여자의 한이라는 것이다.
딜란도 편지에서 우디가 골든 글로브 생애업적상을 받는데 분개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디가 매번 상을 받을 때마다 자기는 질책을 받는 기분이라고 적었다. 골든 글로브상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것이니 결국 이번 우디의 스캔들은 우리 탓인 셈이다.
우디의 영화를 보면 대부분 주인공들이 짝이 있는데도 계속해 한눈을 팔거나 창녀와 매춘을 버젓한 직업으로 여기며 찬양마저 하고 있다. ‘마이티 아프로다이티’에서는 창녀 미라 소르비노를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다이티처럼 묘사, 소르비노가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다
또 4월18일에 개봉될 ‘늙어가는 남창’(Fading Giggolo)에서는 우디가 아예 남창(존 투투로)의 핌프로 나와 재미를 본다. 그는 약간 변태적이라고 하겠는데 우디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런 상식을 일탈한 규칙 위반과 변태를 마치 아이가 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순진하게 행하고 있는데 있다고 하겠다.    
우디의 열렬한 팬인 나는 그를 몇 차례 만나 악수하고 얘기를 나눴는데(사진) 겁먹은 토끼눈을 한 우디는 아주 재미 있고 아이 같다. 물론 겉만 봐선 속은 모르겠지만 그런 우디가 어린 아이를 성추행 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우디 알렌의 영화는 무엇입니까’로 시작하는 딜란의 글은 우디의 자신에 대한 성추행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거짓말이 아닐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극사실적이다. 이와 함께 딜란은 우디의 영화에 나온 배우들인 케이트 블랜쳇과 다이앤 키튼에게 내 경우를 생각해 봤느냐고 도전하고 있다.
우디는 이런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단순한 일방적 비난만 가지고는  사람을 단죄할 수는 없다. 기소돼 법절차에 따라 유죄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무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디 스캔들이 터지면서 할리웃에서는 새삼 작품과 작가의 윤리도덕은 따로 여겨야 할 것인가라는 논쟁이 일고 있다. 바그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유대인 증오자인 그의 음악은 과연 개인의 단점을 떠나 평가돼야 할 것이냐는 논제가 대두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월2일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디의 ‘푸른 재스민’이 각본(우디 알렌)과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랜쳇) 후보에 올랐는데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할 때 우디의 개인적 문제도 참작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아카데미 측은 “아카데미는 영화업적에 명예를 주는 것이지 영화인과 예술가들의 개인적 생활에 명예를 주는 것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아카데미가 LA에서 미성년자를 겁탈하고 파리로 도망간 로만 폴란스키에게 2003년 ‘피아니스트’로 감독상을 준 것이 좋은 예다.
우디는 이번 스캔들로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명성에 오점이 남게 됐다. 작년 말 우디를 뉴욕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순이 등쌀에 못 견뎌 나 내년에 마침내 한국에 갈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한국행이 과연 실현될지 공연히 염려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