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시끄러운 무리를 떠나 (Far from the Madding Crowd)


에버딘이 농장을 떠나는 오크(왼쪽)의 뒤를 쫓아와 만류하고 있다.

남자 필요 없다는 여자를 사랑한 세 남자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의 독립심 강한 젊은 여자와 이 여자를 사랑하는 세 남자의 로맨틱 멜로드라마로 토머스 하디의 소설이 원작이다. 연기와 촬영과 내용이 모두 준수한 영화로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67년 존 슐레신저 감독(‘미드나잇 카우보이’)에 의해서도 영화화 했는데 주인공 여자로는 줄리 크리스티가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로는 각기 알란 베이츠와 테렌스 스탬프 그리고 피터 핀치가 나왔다.
슐레신저의 영화(DVD로 나왔다)는 3시간짜리로 내용의 깊이와 배우들의 연기가 새 영화보다 한 수 위다. 그리고 촬영(후에 감독이 된 니콜라스 로그)과 음악도 매우 뛰어나다.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흥미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아주머니와 둘이 사는 독립적이요 자기주장이 뚜렷한 바스쉐바 에버딘(캐리 멀리간)은 땅을 사랑하는 여자. 이런 면에서 위기와 난관에 잘 대처할 줄 아는 에버딘은 스칼렛 오하라를 연상케 한다. 둘 다 남성위주의 세상에서 여권을 주장하는 신여성들이다.
에버딘의 옆 동네에서 양을 키우는 젊고 근면하며 늠름한 게이브리엘 오크(벨기에 배우 마티아스 쇠네어츠-‘러스트 앤 본’)가 에버딘을 찾아와 느닷없이 구혼을 한다. 에버딘은 자기는 남편이 필요 없다며 오크를 퇴짜 놓는다. 그리고 오크는 자기가 키우는 개가 양떼를 절벽으로 몰아 모두 추락사하자 보따리를 싸들고 마을을 떠난다.
이어 에버딘은 아저씨가 유산으로 물려준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웨스트 컨트리로 이주한다. 그리고 많은 농부들을 고용한 농장의 주인으로서 본격적으로 농장 재건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다. 일꾼 들 중의 하나가 공교롭게도 오크로 그는 여주인 에버딘을 깍듯이 섬긴다.
에버딘에게 청혼하는 두 번째 남자가 에버딘의 옆 동네에 사는 거부 농장주로 나이 먹고 고지식한 윌리엄 볼드우드(마이클 쉰). 물론 에버딘은 이 남자도 퇴짜를 놓는데 볼드우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에버딘의 세 번째 남자가 검은 바지에 빨간 군복 상의를 입고 콧수염을 한 멋쟁이 사전트 트로이(탐 스터리지). 트로이는 에버딘을 칼부림 솜씨(슐레신저의 영화에서 테렌스 스탬프가 줄리 크리스티에게 과시하는 칼부림 장면이 황홀하다)로 녹여 둘은 초고속으로 결혼한다. 그러나 방랑기가 있는 트로이는 술타령과 에버딘의 돈을 낭비하면서 소일한다. 그런데 트로이가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는 자기 아기를 임신한 패니(주노 템플)로 이것이 비극의 씨가 된다.
멀리간은 연기를 잘 하나 줄리 크리스티에 비하면 성숙미가 결여됐다. 그리고 그녀의 의상이 너무 신식이다. 세 남자 중에 제일 약한 것이 쉰으로 어색하다. 가장 믿음직한 것이 쇠네어츠로 과묵하고 무게가 있다. 시골생활과 모습 그리고 자연풍광을 잘 찍은 촬영이 훌륭한데 끝 부분이 서둘러 만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 흠이다. 감독은 덴마크인 토머스 빈터버그(‘생일 파티’ ‘사냥'). PG-13.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 (Avengers: Age of Ultron)


스칼렛 위치 (왼쪽부터)., 퀵 실버,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위도, 호크아이.

널린 게 영웅, 넘치는 액션, 피로감마저…


마블만화가 원작인 ‘어벤저스’의 제3편으로 온갖 수퍼히로들이 나와 때리고 박고 치고 부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심신이 다 피곤하다. 스토리는 빈약하고 그냥 무지막지하고 정량이 훨씬 넘는 액션을 비빔밥 만들듯이 마구 섞어 놓아 과식한 기분이어서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모든 속편들처럼 갈수록 제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액션 영화인데도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액션 신을 서울에서 찍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서울의 특징이나 제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서울인지 아니면 다른 도시인지를 구별하기가 힘들다. 한국 여배우 수현이 어벤저스들을 돕는 과학자 헬렌 조로 나온다.
액션은 어벤저스들이 동구라파의 가상국 소코비아에 있는 하이드라(HYDRA) 기지를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어벤저스들은 아이언 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토르(크리스 헴스워드), 헐크(마크 러팔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블랙 위도(스칼렛 조핸슨) 및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등. 이들의 리더는 아이언 맨의 창조자 토니 스타크(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이들은 소코비아에서 만만치 않은 적수들인 쌍둥이 퀵실버(아론 테일러-존슨)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를 만난다. 스칼렛 위치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어벤저스의 가공할 적은 토니 스타크가 세상을 악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려다가 이것이 잘 못돼 태어난 인공지능 얼트론(제임스 스페이더의 음성연기). 얼트론은 말하자면 스타크의 프랑켄스타인인 셈이다.
얼트론이 스스로 근육질의 강철 육체를 만들고 이어 졸개 로보트들을 규합해 이 세상에서 인간과 어벤저스들을 말끔히 제거하려고 하면서 어벤저스들과 얼트론의 필사의 격전이 일어난다. 
여기에 어벤저스들 간의 내분과 함께 궁극적 킬러라는 자신들의 신원에 대한 회의 같은 구차한 플롯이 개입된다. 과다한 액션을 그나마 다소 누그러트려 주는 것은 코믹한 대사인데 그것도 어설프다. 제4편과 5편이 각기 2018년과 2019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조시 위던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바다의 침묵’




프랑스의 명장 장-피에르 멜빌(원래 성은 그룸바하로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 허만 멜빌의 성을 땄다)은 과묵한 터프가이들의 운명적이요 어두운 범죄세계를 좋아해 여러 편의 갱스터 범죄드라마를 만든 불치의 로맨티스트였다.
미국의 갱스터 소설과 필름 느와르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멜빌의 반영웅적인 범죄자들은 우정을 자기 목숨보다 더 중시하는 아름다운 고독자들이다. 이들의 우정은 순결한 감정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사나이들의 약속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무라이’(Le Samourai 1967)의 우수에 깃든 암살자(알랑 들롱)와 ‘도박사 밥’(Bob the Gambler·1955)의 은발의 도박사(로제 뒤세스네)가 다 그런 인물들이다. 그의 또 다른 멋진 갱스터영화로는 ‘고발자’와 ‘붉은 서클’ 등이 있다.
그러나 죽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 범죄자들을 사랑하던 멜빌의 데뷔작은 범죄와는 거리가 먼 시적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가득한 ‘바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ea·1947·사진)이다.
저널리스트였던 장 브뤼에르가 베르코르라는 필명으로 나치 점령 하의 파리 교외에 살 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베르코르는 이 책을 1942년 나치의 눈을 피해 지하 출판했는데 프랑스 시민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의 성경으로 사랑을 받았다.
나는 앙드레 지드의 글을 연상케 하는 이 책을 내가 잠시 다닌 서강대학 1학년 때 읽었다. 그 때 나는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교정의 잔디 위에 누워 시를 읽으면서 애매하고 몽롱한 삶을 살 때였다. 어느 날 같은 영문과에 다니던 황씨 성을 가진 여학생이 느닷없이 내게 “이 책 한번 읽어 봐”라며 건네준 것이 ‘바다의 침묵’이었다. 큰 키에 긴 생머리를 한 그녀는 내가 좋아한 소녀였다.
‘바다의 침묵’은 1941년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관할하는 음악가 출신의 이상적이요 지적인 독일 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과 그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인 초로의 남자와 그의 젊은 질녀가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폰 에브레낙의 독백으로 서술된다.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은 에브레낙은 매일 저녁 노신사와 그의 질녀가 앉아 있는 거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벽난로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독백을 시작한다. 자신의 청춘과 음악과 책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사랑을 마치 시를 읊조리듯 얘기한다.
그런 그를 노신사와 질녀는 각기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침묵으로 나치의 침략에 대해 저항하는데 방안을 가득 채운 바다의 무게 같은 침묵이 벽시계의 추소리에 의해 해심을 더욱 파고든다.
폰 에브레낙의 독백 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독일의 음악 자랑이다. 그는 “프랑스하면 몽테뉴, 라신느, 몰리에르 그리고 위고 같은 문인들로 유명하지만 독일하면 음악가들이지요.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바그너.” 그리고 그는 방에 있는 하모니움으로 바흐의 프렐루드와 퓨그 제8번을 치면서 “이것은 인간을 초월한 음악이지요. 신의 존재처럼 날 채우는 음악입니다”라며 바흐를 찬양한다.
폰 에브레낙의 독백은 눈을 아래로 내려 깐 채 그의 존재조차를 무시하는 노신사와 질녀의 침묵에 휩싸여 거의 초현실적인 주문처럼 들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폰 에브레낙을 침묵으로 거부하고 또 그를 마치 귀신이나 되듯 취급하던 노신사와 질녀의 가슴에 그에 대한 존경의 념이 서서히 일어난다. 그리고 폰 에르낙과 질녀 간에 애매모호한 감정이 아기 눈 뜨듯 한다. 이런 둘의 관계가 폰 에브레낙이 좋아한다는 얘기인 ‘미녀와 야수’를 생각나게 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적 융합이라는 자신의 이상이 나치 하에서는 허상임을 깨달은  폰 에브레낙이 자원해 러시아 전선으로 떠나기 전날 밤 질녀에게 “아디외”하면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이에 비로소 질녀도 “아디외”하고 처음으로 말문을 연다. “아디외”가 바다의 침묵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영화 ‘바다의 침묵’(프랑스 제목 ‘Le Silence de la Mer’)은 영화에 시혼을 가미한 미니멀리스트 멜빌이 흑백 속에 잡아 가둔 침묵의 소리와도 같은 작품이다, 거의 영화화가 불가능한 내용(멜빌은 이 영화를 ‘반영화’라고 했다)을 행동과 동작을 배제한 채 이미지와 독백과 침묵을 결합해 아름답고 순수하고 또 슬프게 그렸다. 장소도 폐쇄된 공간(베르코르의 집에서 찍었다)이어서 바다의 침묵의 압박감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멜빌의 영향을 받은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바다의 침묵’은 역시 이 영화로 데뷔한 촬영감독 앙리 드카에의 엄격한 흑백촬영이 아름답다. 그리고 세 인물 역을 맡은 배우들도 훌륭하다,
폰 에브레낙 역의 하워드 버논은 언어로 연기를(카메라가 가끔 그의 손 움직임을 통해 그의 느낌을 보여준다)하는 셈인데 노신사 역의 장-마리 로뱅과 질녀 역의 니콜 스테판은 무표정의 연기다. 스테판의 깨끗한 옆모습과 호수처럼 맑은 눈이 버논의 독백에 침묵으로 반향을 일으키면서 소리와 무성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다의 침묵’이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