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7월 5일 화요일

‘머니 몬스터’ 감독 조디 포스터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둘을 같이 취급"


스릴러 드라마‘머니 몬스터’(Money Monster)를 감독한 조디 포스터(53)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머니 몬스터’는 TV의 재정전문 쇼 호스트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의 제안에 따라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젊은 카일 버드웰이 방송국에 침입, 생방 중인 호스트를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리는 얘기로 쇼의 제작자로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다. 여고생 스타일의 포스터는 똑똑 소리가 날 것처럼 총명했는데 매우 차가운 인상이었으나 질문에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작고 가는 참새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는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내 영화 제작에 한국인들이 여러 명 참여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멀리서 보기와 달리 주름살이 많이 졌다. 포스터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두 번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모험이었다. 만드는데 4년이나 걸렸다. 조지(클루니)가 각본을 읽고 나오기로 결정한 뒤로는 만사가 빨리 진행됐다. 이 영화는 여러 개의 얘기를 내포한 지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이다. 실시간에 일어나는 얘기여서 편집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이 영화는 또  내겐 최초의 주류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들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좌절감을 느끼면 대화를 나눠 그것을 해소하려고 했으나 요즘에는 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좌절감을 과격하게 푸는 영화는 내가 처음이 나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드니 루멧의 ‘네트웍’이다. 내 영화의 인물들은 다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다 실패했다는 느낌과 기준치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각자가 나름대로 이에 대처하고 있는데 유독 젊은이만이 원시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요즘의 돈과 인간과의 관계가 당신이 젊었을 때와 달라졌다고 보는가.
“이 영화에서 돈은 하나의 아이디어요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 돈과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둘을 같이 취급한다. 나는 이만큼 돈이 있으니 가치가 있고 또 나는 이런 차를 가지고 있으니 가치가 있다고들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해 걱정해야 했다. 내가 우리 집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저 직업을 못 얻게 되면 우리 가족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돈은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 A를 맞아야 했고 또 직업에 있어서도 최고가 돼야 했다. 돈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그와 같은 목표를 가져야 했다. 돈이란 이렇게 동기가 될 수 있으나 늘 공허한 것이다.”

-요즘에도 돈에 대해 걱정하는가. 
투자에 실패한 카일이 방송국에 난입, 리를 총으로 위협하고 있다.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덜 걱정하게 된다.”

-지난해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가장 강렬한 영향을 받은 영화로 당신이 미성년자 창녀로 나온‘택시 운전사’라고 말했는데 그 영화가 당신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그 영화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와 같은 미국의 고전에 참여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0년대는 미국 영화계의 황금기였다. 난 그 시기의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당시 활약한 시드니 루멧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이 영화도 루멧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때는 영화 속의 인물들이 보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돈을 가졌다가 잃는 것과 아예 갖지를 못하고 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못한 것이라고 보는가.       
“모르겠다. 난 그에 대해 어떤 큰 철학도 없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기소가 아니다. 나는 그 체제를 믿는다. 문제는 그것을 과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박을 할 때 25센트에서 시작해 3달러를 만들었다가 다시 잃고 본전이 됐는데도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돈을 외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만이 월스트릿을 비판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난 정치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토론을 보는 것은 진짜 흥미 있다. 그것을 보면 정치와 재정과 연예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내 영화와 같은 얘기다. 난 내 아들이 정치에 관여하려고 해서 염려스럽다. 아들은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번 선거가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유발시킨다면 좋은 일이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난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림과 사진을 좋아한다. 내 집이 무너진다면 그것부터 먼저 건질 것이다. 그러나 난 소유욕이 별로 없다. 나이가 먹을수록 더 그렇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쾌적한 집이면 된다.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난 맛있는 음식을 정말로 좋아해 아무리 비싸도 좋아하는 음식은 사 먹는다.”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이며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1960년대부터 영화에 관계했으니 참 오랜 세월이다. 자랑스러운 것은 ‘택시 운전사’처럼 1970년대 영화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감독한 ‘리틀 맨 테이트’다. 불완전하나 내가 100% 느끼는 것을 화면에 올린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난 별로 후회할 일이 없는데 있다면 내 경력과 흥행만을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다시는 그런 선택을 안 할 것이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남녀 간에 봉급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아직도 차별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계에 여성 감독이 별로 없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유럽과 다른 곳 그리고 TV에서는 진전이 있으나 유독 주류 영화계만이 남성위주다. 그러나 이것도 서서히 변하고 있긴 하다. 남녀 고용에 관한 통계나 배분율을 더 이상 보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예술은 결코 그런 것들에 의해 통제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여자 감독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여자는 감독을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난 평생에 딱 한 번 여자 감독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것도 내가 그와 친구이고 그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말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직면해야 할 때이다.”

-당신은 유럽에서 오래 살았는데 미국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다른 점은 미국에는 귀족체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다 자기를 재창조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가 없으니 케네디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면 이렇게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돈을 번다는 것으로 우리 문화의 전체적 가치는 금전적 가치를 둘러싸고 돌아가고 있다.”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중에 당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너무 많다. 내 어머니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묻는 윤리의식이다. 그리고 가족을 버리지 않고 단단히 결합한다는 것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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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때 광고모델로 시작 영화배우로 성공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는 조디 포스터(53)는 3세 때 광고모델로 시작해 5세 때 TV에 데뷔, 이어 영화의 아역을 거쳐 성인배우로 성공한 자기 세대 중 가장 유명한 스타의 하나다. 
포스터를 대뜸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은 영화는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폭력적인 ‘택시 운전사’(1976). 여기서 포스터는 12세난 맨해턴의 창녀(사진)로 나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를 보고 포스터에게 집념하게 된 존 힝클리가 포스터가 예일대 1학년일 때인 1981년 포스터에게 짙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당시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했다.   
포스터는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탔고 이어 자신의 제작사 에그픽처스를 설립, ‘넬’ 등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2000년 초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영화사가 문을 닫았다. 
포스터는 현재 감독활동에 주력하고 있는데 지난 2013년 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생애업적상 세실 B. 드밀상 수상소감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포스터는 2014년 배우이자 사진작가인 알렉산드라 헤디슨과 결혼했고 전 애인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The BFG


BFG와 소피가 꿈을 채취하러 가고 있다.

꿈과 환상과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동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고 아늑하며 또 다정한 온 가족용 동화로 원작은 롤드 달의 1982년작 동화. ‘E.T.’에서 알 수 있듯이 스필버그는 영원한 동심의 소유자다. 필자는 오래 전에 스필버그에게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당신의 동심은 어디서 오는가.”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은 나의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꿈과 환상과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쾌적한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스필버그의 동심에 사로잡혀 영화를 보면서 서슴없이 아이가 되어 즐겼다. 아이 같은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 지를 되새기게 해주는 고마운 영화다.
실사영화와 컴퓨터로 인물을 확대해 만든 애니메이션이 함께 있는 작품으로 변덕스럽고 장난기 있으며 또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상냥한 영화로 각본은 지난해에 작고한 멜리사 매티슨(‘E.T.’의 각본도 쓴 매티슨은 해리슨 포드의 전처)이 썼다. 이 영화에서 ‘E.T.’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인공은 ‘니콜라스 니클비’를 읽기 좋아하는 런던 고아원의 귀엽고 조숙한 고아소녀 소피(루비 반힐이 아주 잘 한다). 어느 날 꼬부랑 할아버지 같이 생긴 거인(마크 라일런스-올해 ‘스파이들의 다리’로 오스카 조연상)이 나타나 소피를 납치해 가면서 소피의 모험이 시작된다. 소피는 처음에 거인이 자기를 프라이팬에 올려놓았을 때만해도 자신이 거인의 밥이 되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거인은 베지테리언으로 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소피는 거인을 BFG(크고 친절한 거인)라고 부른다.
BFG가 사는 나라는 거인들의 나라로 거인들 중에서 가장 작은 BFG는 자기보다 엄청나게 크고 성질 고약하고 식인을 즐기는 다른 거인들(그 중 하나는 빌 헤이더의 음성)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 BFG의 하는 일은 채로 꿈을 채취해 병 속에 담았다가(총천연색 꿈들이 마구 움직인다) 큰 나팔을 이용해 잠자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 넣는 것.         
소피와 BFG는 친구가 돼 함께 꿈을 채취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게 사는데 BFG는 배운 것이 없어 말과 단어가 미숙하다. “아이 이즈, 유 이즈“하는가 하면 ‘마제스티’를 마제스터‘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라일런스의 음성과 어조는 마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소피는 다른 거인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BFG를 보다 못해 머리를 짜 계획을 마련한다. 여왕(페넬로피 윌튼)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고 우스운 부분이 BFG가 버킹엄궁에서 여왕을 만나는 장면. BFG가 좋아하는 푸른색의 음료수를 마신 여왕을 비롯해 여왕의 부름을 받은 각 군 고위 장성들이 방귀를 뀌는 모습이 배꼽을 빼게 한다. 그리고 여왕의  명령에 나쁜 거인들을 절해고도로 이주시키기 위해 군대가 거인의 나라로 출동한다.
영화가 이토록 정답고 가깝게 느껴지며 또 순진한 이유 중 하나는 라일런스의 음성과 슬프면서도 따스한 눈의 연기 탓이다. 마음을 포근케 해주는 연기다. PG.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순결한 사람들(The Innocents)


마틸드(왼쪽)와 마리아는 임신한 수녀들을 극진히 돌본다.

추운 겨울 외딴 수녀원서 일어나는 음울한 얘기



거룩하고 엄격하다. 잔인과 야만성과 폭력의 뒤에 베풀어지는 사랑과 자비와 인류애의 영화로 프랑스 여류감독 안 폰텐이 연출하고 출연진이 모두 여성인 여자의 영화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 외딴 검소한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음울한 얘기로 마음이 몹시 스산하고 한기를 느끼면서 아울러 고뇌와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되나 주인공들인 수녀들처럼 고행 끝에 구원과 광명을 경험하게 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외적으로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얘기이나 내면적으로는 엄청나게 폭이 넓고 섬세하고 민감하며 복잡한 작품으로 믿음과 회의에 관한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자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볼 만한 영화다.
1945년 종전 직후의 폴란드. 프랑스 의대생 마틸드(루 드 라지)는 적십자 활동에 자원해 유대인 의사 사무엘(뱅상 마케뉴)의 조수로 이곳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랑스 군인들을 치료한다. 마틸드의 부모는 공산주의자로 마틸드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느 날 마틸드가 일하는 임시병원에 인근 수녀원의 젊은 수녀 마리아(아가타 부젝)가 찾아온다. 동료 수녀가 만삭이 돼 고통을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 이 수녀원에 몇 달 전 소련군이 침입, 수녀들을 겁탈해 현재 여러 명이 임신 중으로 이들은 거의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쉬쉬하는 원장을 설득해 혼자 출산 임산부들을 돕던 마틸드는 여러 명이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되자 사무엘의 도움을 청한다.          
종교를 믿지 않는 마틸드와 사무엘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에 회의하고 고뇌하는 수녀들을 구원하는 역설적인 종교영화라고도 하겠는데 영화는 믿음과 생명과 독선적인 종교적 규칙 그리고 수녀원 테두리를 벗어난 개인적 삶에 대해 조용하나 진지하게 천착하고 있다.
많은 수녀들이 개별적으로 특색 있게 성격 묘사가 잘 됐고 특히 반항적이요 독립적이며 인간적인 마리아 역의 부젝의 연기와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마틸드 역의 드 라지의 연기가 훌륭하다. 이와 함께 자연광을 이용해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잘 조화시킨 촬영도 뛰어난 안팎으로 아름다운 영화다. 성인용.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퇴짜 맞은 존 웨인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왕년에 할리웃의 스크린을 군림했던 거구의 존 웨인이 자기가 자라고 활동하고 또 땅에 묻힌 캘리포니아의 주 의회로부터 사후 불명예스런 대접을 받았다. 최근 주 하원이 웨인의 생일인 2016년 5월26일을 ‘존 웨인 데이’로 지정,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부결한 것이다. 이유는 웨인의 인종적 편견 때문이다.
많은 웨스턴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수 없이 쏴 죽인 웨인은 실제로도 인디언들을 멸시했다. 그는 지난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식민지 개척자들의 원주민에 대한 취급에 관해 “소위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땅이 필요했는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자기들만이 땅을 간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비록 영화이긴 하나 인디언들을 파리 잡듯 하던 것이 이유가 있었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발언으로 웨인은 존 포드가 감독한 걸작 웨스턴 ‘수색자’에서는 땅에 묻힌 인디언의 사체에다 대고 총질을 하기도 했다.
웨인은 인디언뿐 아니라 흑인도 하급 인간으로 여겼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지지하면서 “흑인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도록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무책임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또 지도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준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결의안이 부결되자 안을 제안한 매튜 하퍼 의원(공화)은 “존 웨인을 기리는 날에 반대하는 것은 파이와 불꽃놀이와 야구와 자유기업 그리고 7월4일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웨인의 아들 이산도 성명을 통해 “나의 아버지는 색깔과 인종과 성적 기호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매우 존경했다”며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기인 44년 전의 발언을 놓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고 말했다.
생전 ‘듀크’라 불리면서 포드와 함께 만든 ‘역마차’와 기병대 3부작인 ‘아파치 요새’ ‘황색 리번을 한 여자’ ‘리오 그랜드’ 그리고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및 ‘수색자’ 등 여러 편의 웨스턴으로 유명한 웨인은 기독교 신자로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이었다.
웨인은 공산당과 진보파 민주당원을 증오했는데 그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에 이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 ‘그린 베레’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한 이유도 이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대형 졸작에는 웨인의 아들 패트릭도 나왔다.  
웨인과 동시대에 활약한 지미 스튜어트도 웨인만큼이나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둘은 친구였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2차 대전 때 자원입대, 폭격기 조종사로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웨인은 징집을 연기해 가면서 할리웃에서 활동했다. 그런 웨인이 태평양 전쟁영화 ‘유황도의 모래’에서 용감한 해병으로 나온 것이야 말로 거짓에 가까운 역설이다.
웨인의 이번 사후 불명예사건 만큼이나 아름답지 못했던 그의 생전 꼴불견 사건(?)은 그가 ‘정복자’에 나온 일이다. 하워드 휴즈가 주인이었던 RKO가 제작한 이 영화에서 웨인은 찢어진 눈에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와 세인의 조롱거리가 되다시피 했었다. 나도 이 영화를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보면서 실소를 터뜨린 기억이 나는데 웨인은 웨스턴에 싫증이 났는지 감독 딕 파웰이 말리는 데도 우겨서 징기스칸으로 나왔다.
아시안 배우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에는 코가 오똑한 수전 헤이워드가 징기스칸의 애인으로 나오고 그밖에도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존 호이트 및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등이 나오는 호화 올스타 캐스트이지만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웨인이 생애 나온 173편의 영화 중 최악의 것이자 1950년대 나온 최고 졸작 중 하나로 공교롭게도 웨인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수색자’가 개봉된 1956년에 나왔다.
‘정복자’는 암의 저주를 받은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는 원폭 실험지에서 멀지 않은 유타주의 사막에서 찍었는데 감독 피웰을 비롯해 웨인과 헤이워드 그리고 모어헤드와 호이트 및 아르멘다리스(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했다) 외에도 촬영현장에서 일했던 220여명의 사람들 중 90여명이 후에 암에 걸려 사망했다. 술꾼에 담배를 하루에 6갑 이상 태웠던 웨인은 1979년 72세로 위암으로 숨졌다.
LA에서 웨인을 만나려면 윌셔와 라시에네가 코너에 있는 펜트하우스 본부 건물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웨인이 말을 탄 동상(사진)이 있는데 한때 웨인의 팬들이 도색잡지사 앞에 미국의 영웅이 웬 말이냐며 동상을 그가 살았던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유야무야 됐다. 그러나 비록 자기 이름을 딴 기념일 제정에는 퇴짜를 맞았지만 웨인으로서는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 승객들의 이용이 많은 오렌지카운티 국제공항 이름이 존 웨인 공항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