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체슬리‘설리’설렌버거 역 탐 행스



난 쉽고 편안하게 살아 별 달리 스트레스 없어 


현재 상영중인‘설리’(Sully)에서 지난 2009년 1월 뉴욕에서 이륙 후 새떼와의 충돌로 엔진 고장을 일으킨 비행기(US 에어웨이즈)를 허드슨강 위에 무사히 착륙시켜 155명의 승객을 모두 위기에서 구출한 기장 체슬리‘설리’ 설렌버거 역을 한 탐 행스(60)와의 인터뷰가 지난 8월 27일 할리웃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행스는 씩씩하고 명랑한 사람으로 인터뷰 내내 큰 제스처와 함께 인상을 써가며 소리 지르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상소리를 섞어 속사포 쏘듯 질문에 대답했다. 꼭 장난꾸러기 소년 같았는데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안 내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굉장히 낙천적이요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 영화에 나오기로 했는가.
“나는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를 지난 2008년 오스카파티 때 처음 만났다. 그 후 이 영화의 각본을 단숨에 읽었는데 그 것은 영화의 교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설리에 대한 미 운송안전위의 조사에 대해선 나도 몰랐다. 조사 결과에 따라 설리의 40년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길 수도 있어 설리는 그야말로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었다. 나는 그와 같은 긴장된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35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출연을 확정지었다.”

-스트레스가 심한 공포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
“난 당신들을 만날 때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난 쉽고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별 달리 스트레스를 느끼진 않는다. 그리고 난 비행기 안에서도 두려움을 안 느낀다. 가급적이면 좌석벨트도 안 매려고 한다. 난 이번에 항공사들의 기장과 승무원들에 대한 대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음식도 제 돈 내고 사 먹어야한다. 이 말을 듣고는 앞으론 차나 기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어떤 형태의 승객인가.
“신발을 벗고 물 한 병이면 된다. 때론 난 비행 내내 잔다. 나 혼자 즐기면서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실제 삶에서 당신은 역경에 대해 얼마나 빨리 대처하는가.
“본능이란 생각 없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냥 반응대로 따라 할 뿐이다. 난 비교적 역경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찍을 때 물 속에서 매우 추웠는가.
“영화는 10월에 찍었다. 그래서 그렇게 춥진 않았다.”

-당신은 영화에서 여러 번 영웅으로 나왔는데 당신이 한 일 중에 가장 영웅적은 일은 무엇인가.
“성장한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맞서면서 큰다는 것이야말로 영웅적인 일이다. 그런데 난 겁쟁이다. 우리는 네 가지 형태의 사람이 될 수가 있는데 그 것은 영웅과 악한과 비겁자와 방관자이다. 난 방관자다.”   
설리 기장이 허드슨강 위 불시착 후 육지에서 아내와 통화하고 있다.

-당신의 아이들이 아빠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는가.
“아니다. 날 멍청이라고 본다.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물어봐라. 난 자연적 본능을 지녀 뭘 걱정하거나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비행기 조종할 줄 아는가.
“비행이란 재미있겠지만 조종할 줄은 모른다.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난 무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프린터가 말을 안 들을 땐 소리를 지른다. 

-부인(배우인 리타 윌슨)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고개를 숙이고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이란 아내를 지원하고 그녀의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엄격히 말해 그 질병의 짐이란 아내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머리와 수염이 백색이 된 느낌이 어떤가.
“백색가발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온통 염색을 했다. 그러면서 배운 것이 머리털과 수염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 생애의 정점과 바닥은 무엇인가.
“내가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이 정점이다. 한 직업을 오래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온 많은 영화들 중에 그 어느 것 하나가 나의 바닥일 수가 있다. 배우란 대중의 관찰 대상으로 단 한 번의 실수로 판단을 받을 수가 있다. 내 경우 과거보다 요즘에 와서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다 빨리 잊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늘 정점과 바닥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또 다른 정점은 내가 아버지요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클린트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연습을 안 한다. 그는 자기 경험을 통해 배우들이 자기 일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연기자로서의 본능을 잃기 쉽다는 것을 알 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즉시성과 확신이다. 그런데 하루의 긴 촬영 시간 동안 그 것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 것을 방해하는 것을 전부 제거한다. 한 장면을 딱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낸다. 혹시 배짱이 있어 그에게 가서 한 번 더 찍자고 말해봤자 ‘노’라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그는 배우가 촬영시 자신의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점을 믿는 사람이다.”

-취미가 무엇인가.
“한 두어 가지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난 세 가지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다. 타이프라이터를 수집은하나 전문가는 아니다. 난 자유 시간이 없다. 스포츠 중에선 축구경기를 보는 것을 즐긴다. 한두 잔의 생맥주와 따스한 날씨만 있으면 족하다.”    

-타이프라이터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가.
“집과 사무실에 모두 200개 정도 갖고 있다.”

-사람들이 결과를 다 아는 왜 이 영화를 보리라고 생각하는가.
“그 것은 책이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드는 영화가 늘 당면하는 문제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그 결과를 다 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엘 가서 본다.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보는 이유는 자신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고 환상의 대상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언 맨’도 되고 택시 운전사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까닭은 스크린 위의 인간적인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며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영화가 어떻게 반영하는 가를 알고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결과를 알긴하나 그 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르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늘 나도 저렇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느끼곤 한다. 또 때론 아이고 나도 저런 경험을 했어 하고 감탄하곤 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플라이 투 더 문’을 처음 들었을 때 달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했는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 얘기할 것이 있다. 난 영화 일로 많은 아폴로 우주인들을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당신은 몇 번이나 ‘플라이 투 더 문’을 들어야 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참석하는 파티에선 반드시 그 노래가 연주됐고 우주인들은 그에 따라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봤다.”

-당신의 생애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은 무엇인가.
“이혼하고 세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때 ‘빅’을 찍고 있었는데 후에 그 것이 개봉되면서 빅히트를 한 것이다. 마침 그 땐 내가 막 리타와 결혼을 한 때여서 모든 시름에서 해방이 되는 경험을 했다. 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일 수가 있다.”

-살면서 크게 후회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젊었을 때 그 때 네 살 난 내 아들 콜린(역시 배우다)이 2층 창가에서 날 부르는 것을 무시하고 차를 타고 떠난 일이다. 그런 작은 일이 내겐 오래 동안 후회스런 일로 남아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잘못을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콜린에게 그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해 한 숨 놓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노든 (Snowden)


스노든이 홍콩의 호텔 방에서 인터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NSA의 국민 사찰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


CIA와 NSA(미 국가안보국)의 정보 분석원으로 일하다가 정보기관의 개인 사생활 침해에 환멸을 느껴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러시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로 음모론자요 반체제 인사인 올리버 스톤이 감독하고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거의 기록영화 식으로 스노든의 개인과 공인으로서의 삶과 함께 그의 기밀 폭로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너무 고지식하게 얘기를 이끌고 가 도무지 흥분이 안 된다.
스노든의 얘기는 일종의 스파이 스릴러라고도 하겠는데 스톤은 영화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다루고는 있지만 연출 솜씨가 진부할 정도로 무덤덤하고 평범해 긴박감이나 스릴 또는 서스펜스가 결여돼 영화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지를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불길이 모자라는 작품이나 시사적인 영화이니만큼 볼만은 하다. 스노든의 얘기는 오스카상을 탄 로라 포이트라스의 기록영화 ‘시티즌 포’(Citizen Four)로도 볼 수 있다. 
영화는 2013년 홍콩의 한 호텔에서 포이트라스(멜리사 레오)와 런던의 가디언지 기자 글렌 그린월드(재카리 퀸토)와 그의 상사 이완 맥캐스킬(탐 윌킨슨)이 스노든(조셉 고든-레빗)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얘기는 2004년으로 돌아가 스노든의 삶을 다루면서 여러 차례 이 호텔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20세인 스노든은 처음에는 애국심이 강한 청년으로 9.11 사태의 반응으로 육군 특공대에 입대하나 부상을 입고 제대, CIA에 지원해 정보요원이 된다. 그는 고등학교도 안 나왔지만 뛰어난 지능과 컴퓨터에 정통해 상사 코빈 오브라이언(리스 이판스)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다. 스노든이 CIA에서 일하는 동안 기계실에서 일하는 행크 포레스터(니콜라스 케이지)와 친해지는데 케이지가 오래간만에 영화 같은 영화에 나와 짧지만 폭과 깊이가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스노든의 CIA와 NSA에서의 일상과 함께 그와 그의 애인으로 사진작가인 린지 밀스(쉐일린 우들리)와의 관계가 묘사되는데 린지의 역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우들리뿐만이 아니라 레오와 윌킨슨 및 퀸토 같은 좋은 배우들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NSA 하와이 사무소에서 일하던 스노든은 미 정보기관의 국민 사찰에 심한 좌절감을 겪으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엄청난 국가기밀을 빼내 가디언지와 접촉한다. 맨 끝에 실제로 스노든이 인터뷰에 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린지는 스노든을 찾아 모스크바에서 합류했다.
고든-레빗이 내성적이요 조용한 스노든 역을 차분히 하고는 있지만 스노든이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아니어서 감정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서스펜스 스릴러 스파이영화라기보다 많은 배우를 동원한 밋밋한 기록영화 스타일이어서 극영화의 재미와 흥분감이 아쉽기는 하나 볼만은 하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얘기라는 점도 영화의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영시간 134분. R. Open Road.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리짓 존스의 아기(Bridget Jones’ Baby)


만삭의 브리짓을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두 애인 잭과 마크(위).

여전히 귀엽운 르네 젤웨이거의 로맨틱 코미디


르네 젤웨이거가 나와 큰 인기를 모았던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 시리즈 제3편으로 엉터리 제2편 ‘브리짓 존스: 이성의 낭떠러지’가 나온지 12년만이다. 어리숙한 브리짓은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귀엽고 동정이 가는데 영화가 너무 달콤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해 오히려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러나 재미있고 우습고 선의적이며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와 콤비도 좋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는데 특히 데이트 쌍들에게 어울릴 영화다.   
전편에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인 고지식한 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헤어진 TV 토크쇼 제작자인 브리짓(젤 웨이거)이 울상을 해가지고 생일을 혼자서 자축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다시는 장가를 갔다. 그리고 전편의 대니얼 클리버(휴 그랜트)는 영화에서 종적을 감추는데 그 이유가 억지다.  
이런 브리짓을 토크쇼 호스트로 브리짓의 친구인 미란다(새라 소울마니가 매우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가 끌어내 진흙탕 바닥에서 열린 음악축제에 데려 가면서 브리짓의 인생이 대전환을 이룬다. 진흙탕 구덩이에 넘어진 브리짓을 구해준 남자가 영국에서 데이팅사이트로 거부가 된 준수한 미국인 잭(패트릭 뎀시도 보기 좋다). 여차여차해 둘은 축제에 마련한 잭의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어 다시가 다시 브리짓 앞에 나타나면서 둘 사이에 옛 정이 모락모락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브리짓은 다시와도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브리짓이 각기 두 남자와 잘 때 사용한 콘돔이 토니 블레어가 영국 수상일 때 이미 시효가 지난 오래된 것이라는 점. 그래서 브리짓은 아기를 임신하는데 진짜 문제는 과연 아기 아버지가 누구이냐 하는 것이다. 이 신데렐라 얘기 같은 영화 속의 남자들은 어찌나 착한지 다시와 잭이 모두 아기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영화는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맨 끝에 가서야 알려주는데 그러느라고 플롯을 엿가락 늘리듯 잡아당기고 있다.
연기들이 다 좋다. 브리짓의 친구들로 나오는 셜리 헨더슨과 샐리 필립스 및 제임스 칼리스 등이 다 잘 하는데 특히 광채를 발하는 것은 브리짓의 산부인과 의사로 나와 시치미 뚝 떼는 연기를 하는 엠마 탐슨(공동 각존)이다. 브리짓의 아빠와 엄마로 나오는 짐 브로드벤트와 젬마 스톤도 좋고.    
영화에서는 ‘강남 스타일’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면서 파티의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끝에 가서 속편이 나올 것을 암시하고 있다. 샤론 매과이어 감독. R. Universal.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레이지 러브’




“크레이지 러브 이츠 저스트 크레이지 러브”라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로 “이 미친 사랑으로부터 날 놓아주세요”라고 하소연한 폴 앵카(75·사진)의 노래를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하던 나는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와 ‘다이애나’ 그리고 닐 세다카의 ‘오, 캐롤’을 들으면서 미 팝송의 팬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과거를 그리워하곤 한다.
노래로만 듣던 앵카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지난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였다. 10대 때 들으며 따라 부르던 노래를 부른 앵카를 그 때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나 만나 악수까지 나눴으니 감격일색일 수밖에.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정열과 에너지가 넘쳐 흘렀는데 모두 나처럼 인생 노을기에 접어든 남녀팬들이 박수를 치고 아우성을 지르면서 앵카의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찡하게 아름다웠다.
그는 철저한 쇼맨이었다. 세련되고 박력 있는 제스처를 구사하면서 자주 청중들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도록 해 장내가 팬들과 가수의 혼연일체가 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기억이 난다.        
앵카는 가수로서의 매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뉴욕타임스도 앵카를 “확신에 찼으나 뽐내지 않는 세련된 가수”라면서 “감상적인 노래들과 스윙송들을 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음성을 지닌 매력적인 가수로 쇼맨십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람이다”고 칭찬한 바 있다.
앵카의 첫 빅히트는 그가 16세이던 지난 1957년에 부른 ‘다이애나’이다. “아 임 소 영 앤 유아 소 올드”로 시작되는 노래는 캐나다 오타와 태생인 앵카가 동네 경찰서에서 비서로 일하던 4세 연상의 다이내나 아이웁에게 바친 구애의 노래다. 그런데 앵카는 다이애나로부터 어리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자서전 ‘마이 웨이’에서 고백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순식간에 수백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앵카는 10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가수로서의 길을 터주었다.
내가 ‘돌체’에서 들은 앵카의 노래들은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 외에도 ‘퍼피 러브’ ‘풋 유어 헤드 온 마이 숄더’ ‘유 아 마이 데스트니’ ‘론리 보이’ ‘텔 미 댓 유 러브 미’ 및 ‘돈 갬블 위드 러브’ 등. 노래가 좋아 따라 부르려고 가사를 외워 공부하다시피 해 내 영어실력 향상에 일조를 했다.
앵카는 가수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팝송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도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인으로서의 비결은 작곡이 먼저이고 노래는 그 다음이라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로는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앤디 윌리엄스, 탐 존스, 소니와 셰어 및 엥겔버트 험버딩크(‘릴리스 미’로 유명한 험퍼딩크가 오는 24일 하오8시와 25일 하오 3시에 세리토스 공연센터서 공연한다) 등. 그가 작곡하고 노래한 영화 주제가로 유명한 것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사상 최대의 작전’의 주제가 ‘더 롱게스트 데이’다.
앵카가 작곡해 남에게 준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한 것이 시내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다. 시내트라의 간판곡이 되다시피 한 이 노래는 앵카가 1967년 프랑스 칸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 머물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랑스노래 ‘콤므 다비튀드’(애즈 유주얼)를 듣고 노래의 판권을 사 ‘마이 웨이’로 편곡을 한 것이다.
레바논계인 앵카는 10대 때부터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 하루 5~6회 노래하고 받은 돈이 달랑 300달러. 그 때 앵카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공연한 가수들로는 후에 다 팝송의 수퍼스타들이 된 오티스 레딩, 에벌리 브라더스, 패츠 도미노 및 버디 할리 등이 있다. 앵카의 라이벌들로는 역시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바비 라이델, 프랭키 아발론, 바비 다린 및 제리 리 루이스 등.
앵카는 자서전에서 그 때를 고되나 즐거웠다고 회상하면서 그러나 순회공연 하느라 자신의 어린시절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앵카의 음악계 진출을 적극 지원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앵카의 히트곡 ‘마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앵카는 ‘파파’라는 노래도 불렀다.
자기 노래를 사랑과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앵카가 지금까지 작곡하고 노래 부른 곡은 자그마치 900여곡. 지금까지 팔린 레코드와 싱글은 1억만장에 이른다.
아직도 연 100회 공연을 하면서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고 말하는 앵카는 칠순 중반에도 자신의 현재를 ‘내 생애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서전에서 “내 생의 여정이 끝날 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잡다한 것들과 집과 자동차 그리고 상들도 아니요, 이 여정이 끝날 때 나를 따뜻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줄 내가 남겨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고백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