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목소리들 (The Voices)


제리(라이언 레널즈)가 개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르 뒤죽박죽·유혈 낭자한 블랙 코미디


알록달록한 시리얼 킬러의 블랙 코미디인데 지나치게 피가 많이 흐르고 끔찍해 역겨울 정도다. 젊었을 때의 록 허드슨을 연상케 하는 라이언 레널즈가 정신상태기 불안한 공장 직원으로 나와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는데 마치 변종 ‘사이코’를 보는 것 같다.
대부분 오락위주의 영화로 잘 알려진 레널즈는 마치 과격하고 탈선한 영화에 나와야만 진정한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제니퍼 애니스턴이 ‘케이크’에 나온 것과 같은 발상인데 영화가 톤과 스타일이 뒤죽박죽인 데다가 과도하게 잔인성을 낭비해 더러 웃다가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된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한 미 중서부의 한 작은 동네(통풍이 제대로 안 되는 미 중서부 마을에 대한 풍자영화이기도 하다)의 버려진 볼링장에서 사는 제리 히크팽(레널즈)은 동네의 욕조제조공장 직원. 그런데 직원들의 제복이 분홍색이어서 바깥세상과 소통이 안 될 것 같은 동네 분위기를 얄궂은 기운으로 채색한다(약간 만화적인 색채도 갖췄다).
제리는 어릴 때 끔찍한 사건을 저질러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됐다가 풀려 나왔는데 그래서 정기적으로 상담여의(재키 위버)를 찾아간다. 제리의 가족은 미스터 위스커라는 이름의 사악한 고양이와 보스코리는 이름의 잡종개. 그런데 이 고양이와 개가 말을 하면서 제리와 대화를 나눈다. 과연 개와 고양이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리의 환상인지는 관객 각자의 관점에 달렸다.
제리가 좋아하는 여자는 회사 회계과에서 일하는 화냥기가 있는 섹시한 영국 여자 피오나(젬마 아터턴). 그런데 제리를 진짜로 좋아하는 여자는 역시 회계과 직원인 현모양처 형의 리사(안나 켄드릭). 이 밖에도 또 다른 회계과 여직원으로 뚱뚱한 앨리슨(엘라 스미스)도 제리를 혼자 좋아한다.
제리의 살육행위는 먼저 자기가 몰던 차에 치인 사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인간 첫 희생자는 피오나인데 제리는 피오나를 살해한 뒤 머리를 잘라 냉장고에 보관하고 이 머리와 대화를 나눈다(영화는 전부 제리의 가공할 핏빛 환상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제리는 피오나의 시신을 고기 썰듯이 썰어 플래스틱 용기에 보관한다.
이런 제리가 리사와 사귀면서 리사의 착한 마음에 감화돼 자신의 살인욕망을 억제하려고 몸부림친다(이런 얘기는 아주 상투적인 것이다). 그러나 리사 역시 제리의 제물이 돼 머리가 절단돼 냉장고에 들어간다.
리사의 머리도 제리와 대화를 나눈다. 이런 제리의 살인행위를 부추기는 것이 미스터 위스커. 이어 앨리슨의 머리도 냉장고에 들어가고 정신상담의는 제리에게 납돼 죽다 살아난다.
레널즈는 제리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와 사슴과 양말 인형의 목소리까지 도맡아하면서 열성을 보이고 있지만 영화가 다양한 장르를 잘 못 섞은데다가 톤이 불규칙하고 또 쓸데없이 피를 흘려 기분이 안 좋다. 마지막에 이런 분위기를 사죄라도 한다는 듯이 주인공들이 정장을 하고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데 이 중에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예수도 있다. 가끔 기발 난 데도 있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봐도 되겠다. 마제인 사츠라피 감독. R. Lionsgate.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47명의 로닌 (The 47 Ronin·1941)


쇼군의 궁정 복도에서 주군 아사노(오른쪽)가 칼을 뽑아 키라를 살해 하려다 제지당한다.

주군 잃은 47인의 사무라이들 '복수극'


일본의 명장 켄지 미조구치의 대하 사무라이 복수극으로 1부와 2부로 구성된 상영시간 241분짜리 흑백 걸작이다. 일본어 제목은 ‘겐로쿠 추신구라’(Genroku Chushingura)로 이 내용은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해에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으로 역시 ‘47명의 로닌’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져 개봉됐으나 비평가들의 혹평과 함께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영화의 내용은 실화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주인의 복수를 하는 47명의 주인 없는 사무라이인 낭인(로닌)의 피비린내 나는 활극으로 이 얘기는 일본의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체면과 명예를 생명보다 더 중시하는 일본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는 내용이다.
미조구치는 1941년 일-중 전쟁 때 군부에 의해 충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선전용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으나 인간성을 중시하는 그의 솜씨가 역연하다.
1701년 에도(옛 도쿄)시대. 쇼군의 궁정 복도에서 라이벌 주군들인 타쿠미노카미 아사노와 교활한 키라 간에 싸움이 일어나면서 아사노가 키라를 죽이려고 하다 주위의 만류로 싸움이 끝난다. 이에 노한 쇼군은 칼을 빼어든 아사노에게 할복자살을 선고한다. 그리고 아사노의 땅과 저택도 몰수당한다. 그러나 쇼군은 키라는 처벌 받지 않는다.
이에 아사노의 종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고 그의 47명의 사무라이들은 낭인이 된다. 이들은 억울하고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당한 주군의 복수를 위해 키라의 집을 공격한 뒤 그를 살해하기로 다짐한다.
그런데 낭인들의 리더인 쿠라노수케 오이시는 처음에는 복수보다 아사노 가문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쇼군에게 아사노의 동생 다이가쿠를 주군으로 아사노 가문을 부활시켜 달라고 탄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탄원이 1년 후 쇼군으로부터 거절당하면서 오이시와 그의 46명의 사무라이들은 키라의 집을 공격, 키라를 살해하고 주인의 복수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쇼군의 명에 따라 모두 할복자살한다. 체면과 명예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의 불문율인 부시도를 따른 집단자살이다. 초주로 카와라사키, 요시자부로 아라시, 우타에몬 이치가와 공연. 15일 하오 7시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극장(윌셔와 웨스트우드 310-206-8013).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카데미 단편상 후보작들

긴 여운 남기는 다채로운 삶의 순간순간들…


#라이브 액션상 후보작

*‘아야'(Aya·이스라엘·40분)-공항에서 사람을 기다리던 젊은 여인이 우연히 피아노경연 대회에 참석차 이스라엘을 찾아온 덴마크 남자 피아니스트를 차에 태우고 예루살렘까지 가면서 대회를 나누는 2인극. 은밀한 스릴마저 느끼게 되는 작품으로 끝이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르바네'(Parvaneh)
*‘부갈루와 그래암'(Boogaloo and Graham·영국·14분)-에이레공화군이 영국군에 대해 테러를 감행하던 어두운 시기 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사람 좋은 아버지가 두 어린 아들에게 병아리를 애완용 선물로 준다. 두 아이는 이 병아리들을 정성껏 돌보며 키우고 사랑하는데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자 아빠와 엄마가 이 닭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형제의 강력한 반발을 받는다. 따스하며 약간 감상적이다.
 *‘버터 램프'(Butter Lamp·프랑스와 중국·16분)-티베트의 시골 사람들이 떠돌이 사진사가 마련한 디즈니랜드와 베이징 올림픽 등 갖가지 배경사진 앞에서 가족촬영을 한다. 배경사진 중에는 금성(Gold Star)사 로고도 보인다. 단순하고 약간 황당한 코미디.
 *‘파르바네'(Parvaneh·스위스·25분)-스위스의 먼 시골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소녀가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하기 위해 취리히에 오나 나이가 어려 송금을 못하게 되자 길에서 만난 말괄량이 스위스 소녀에게 부탁한다. 스위스 소녀는 송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고 송금을 대행하기로 하나 환전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둘이 클럽 등을 돌면서 밤의 취리히를 즐긴다. 고운 작품이다.
 *‘생명의 전화'(Phone Call·영국·21분)-생명의 전화에서 일하는 여자(샐리 호킨스)가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려는 나이 먹은 남자(짐 브로드벤트)의 전화를 받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남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고 애쓴다. 
12일까지 뉴아트(11272 샌타모니카) 310-473-8530.

#만화상 후보작

*‘비거 픽처'(The Bigger Picture·영국·7분30초)-자기를 잘 보살피라고 보채는 병상의 나이 먹은 어머니를 돌보는 성격과 차림이 판이한 장성한 두 형제 간에 긴장감이 비등한다. 거의 조야한 그림이 영화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댐 키퍼'(The Dam Keeper·미국·18분)-붓과 연필로 그린 만화로 마을의 댐을 지키는 외로운 어린 돼지가 학교의 다른 동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시달린다. 환경문제와 함께 아동기의 두려움과 후회 그리고 고독과 우정을 다룬 우화. 
*‘잔치'(Feast·미국·7분)-젊은 남자가 길에서 주워 기르는 항상 배가 고픈 귀여운 강아지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의 이야기. 일종의 ‘개의 일생’이라고 하겠는데 강아지의 주인에 대한 사랑이 주인의 웨이트리스에 대한 사랑을 결혼으로 이끈다. 디즈니 작품으로 재치 있고 귀엽다.
‘나와 나의 물턴'(Me and My Moulton)
*‘나와 나의 물턴'(Me and My Moulton·캐나다·13분)-1960년대. 건축가인 괴짜 아빠와 역시 별난 엄마를 둔 노르웨이의 세 자매가 엄마 아빠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조른다. 파격적인 가정에서 사는 어린 세 자매의 평범한 삶에 대한 소원을 그린 영화로 선으로 그린 그림과 알록달록한 색깔이 신선하다. 
*‘단순한 삶'(A Single Life·네덜란드·2분18초)-영화 제목의 노래 한 곡이 담긴 바이닐 싱글 레코드를 받은 젊은 여인의 삶이 노래에 따라 과거와 미래를 오락가락하면서 여인의 일생을 엮는다. 인간의 유한한 삶을 악의 없이 놀려댄 기발 난 영화. 12일까지 뉴아트 극장.

#기록영화상 후보작

*‘위기 핫라인: 재향군인은 1번을 누르세요'(Crisis Hotline: Veterans Press 1·미국·41분)-뉴욕주 북부에 있는 재향군인을 위한 위기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온 재향군인들과의 대화를 다룬 감정적으로 충격적인 작품.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자살이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구원을 호소하는 음성과 이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하려는 상담자 간의 대화가 다시 한 번 전쟁의 값비싼 대가를 상기시킨다.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많다. (사진)
‘위기 핫라인: 재향군인은 1번을 누르세요'(Crisis Hotline: Veterans Press 1)
 *‘조안나'(Joanna·폴란드·45분)-불치의 병을 앓는 젊은 어머니가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아들이 배울 것을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쓴다.  
*‘우리의 저주'(Our Curse·폴란드·27분)-치명적인 호흡불규칙 증세에 시달리는 갓난 아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양육기.
 *‘백정'(The Reaper·멕시코·29분)-멕시코의 도살장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25년간 일하면서 하루에 500여마리의 소를 도살하는 백정의 일상기. 어둡게 아름답다
. *‘와잇 어스'(White Earth·미국·20분)-노스다코타의 작은 마을 와잇 어스에 오일 붐이 일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 곳으로 몰려들면서 새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이들의 삶 특히 아이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아울러 사회와 환경문제도 다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스‘듀크’카일




8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전쟁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사진)가 3주 전 캐나다를 포함한 전 북미에서 확대 개봉된 이래 지금까지 연속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1일 현재 총수입은 2억4,890만달러로 이 영화는 작품과 남우주연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시상식은 2월 22일에 있다)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9.11테러가 일어나자 ‘하느님과 조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군특공대(SEAL)에 자원입대해 이라크 전선에서 무려 160여명(공식 집계)의 적을 사살, ‘전설’이라 불린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실화다.
흠잡을 데 없이 말끔한 장인적 연출과 체중을 늘린 카일 역의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가 좋은 작품으로 재미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 호전성과 함께 살인과 총기를 예찬한 내용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칭 반전주의자인 ‘더티 해리’ 이스트우드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다.  
영화가 여러 개의 흥행기록을 깨면서 공전의 빅 히트를 하자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편을 갈라 영화에 대한 치열한 찬반론을 펼친 것도 바로 이런 영화의 내용 탓이다. 김정은 암살을 다룬 ‘인터뷰’에 나온 세스 로건과 마이클 모어 같은 진보파 영화인들은 영화를 전쟁 찬미라 비판한 반면 새라 페일린과 뉴트 깅그리치 같은 보수파 정치인들은 카일을 영웅이라고 찬양했다.
모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저격수는 영웅이 아니다. 그리고 침략자들이 더 나쁘다”라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비판하자 페일린은 “너 같은 자는 크리스 카일의 군화도 닦을 자격도 없다”고 대응했고 깅그리치도 “마이크 모어는 몇 주간 이슬람국가와 보코하람과 함께 있어 봐야 한다. 그제야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카일은 영웅인가. 유명 방송인 빌 마어는 그를 ‘사이코’라고 지칭했는데 내게는 카일이 전쟁과 살인 중독자로 보인다. 카일은 한 차례 이라크전 복무가 끝나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에 돌아와서도 가정에 적응 못하고 전선의 전우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참전하는데 그에겐 전장이 가정인 셈이다.
나는 카일을 존 웨인이라고 본다. 별명이 ‘듀크’(자기 집 개 이름)였던 웨인은 많은 웨스턴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면서 살육했는데 카일도 이라크인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면서 사살했다. 웨인이 인디언들을 살육하면서 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이나 카일이 ‘그 곳에는 악이 있어 우리는 그 것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이라크를 침략한 것이나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가. 슈펭글러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한다.
카일의 옹호론자들은 이라크전을 침략이 아닌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정의의 전쟁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십자군식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MIT 교수인 석학 놈 촘스키의 의견은 이와 다르다.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촌평한 촘스키는 최근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후 유럽에서 번진 반무슬림 정서에 대해 “이는 서방의 위선”이라고 평했다.
그는 서방을 겨냥한 공격은 테러로 규정돼 비난 받지만 비슷한 인명피해를 낸 서방에 의한 공격은 비난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는 늘 강자가 쓰는 것이어서 사실 서방의 이런 논리는 별로 놀랄 것도 못 된다. 
미국 사람들은 영웅과 애국심을 신봉한다. 10여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전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미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이야 말로 카일과 같은 영웅이다. 이것이 영화가 빅 히트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또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호전적인 국가다. 1일 열려 무려 1억1,400여만명이 TV로 시청한 수퍼보울의 풋볼경기야 말로 미국인들의 이런 호전성을 잘 보여주는 운동이다. 서로 편을 갈라 치고받으면서 땅을 빼앗고 이를 지키려는 이 경기는 옛날에 서부 개척자들과 인디언들의 싸움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다. 
이스트우드의 말대로 인류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은 우리의 유전인자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라는 명목 하에 계속해 해외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스트우드의 말처럼 역사는 평화의 편이 아님에 분명하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카일의 전쟁에 관한 회의와 그와 아내와의 갈등을 비롯한 가정문제 그리고 살인이 인간 영혼과 정신에 미치는 값비싼 대가에 대해서도 언급은 하고 있으나 그것은 킬러영화의 이미지를 무마시키기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올해 아카데미 단편 기록영화상 후보작인 ‘위기 핫라인: 재향군인은 1번을 누르세요’(Crisis Hotline: Veterans Press 1)의 관람을 권한다. 뉴욕주 북부에 있는 재향군인 상담센터의 상담원들과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자살과 폭력행위를 생각하는 재향군인들과의 전화상담을 다룬 작품이다. 살육을 구사하는 전쟁이 인간의 내면에 남긴 깊은 상처에 전율하게 되는 작품으로 감정적으로 강펀치를 맞는 느낌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