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라이언 레널즈)가 개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장르 뒤죽박죽·유혈 낭자한 블랙 코미디
대부분 오락위주의 영화로 잘 알려진 레널즈는 마치 과격하고 탈선한 영화에 나와야만 진정한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제니퍼 애니스턴이 ‘케이크’에 나온 것과 같은 발상인데 영화가 톤과 스타일이 뒤죽박죽인 데다가 과도하게 잔인성을 낭비해 더러 웃다가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된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한 미 중서부의 한 작은 동네(통풍이 제대로 안 되는 미 중서부 마을에 대한 풍자영화이기도 하다)의 버려진 볼링장에서 사는 제리 히크팽(레널즈)은 동네의 욕조제조공장 직원. 그런데 직원들의 제복이 분홍색이어서 바깥세상과 소통이 안 될 것 같은 동네 분위기를 얄궂은 기운으로 채색한다(약간 만화적인 색채도 갖췄다).
제리는 어릴 때 끔찍한 사건을 저질러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됐다가 풀려 나왔는데 그래서 정기적으로 상담여의(재키 위버)를 찾아간다. 제리의 가족은 미스터 위스커라는 이름의 사악한 고양이와 보스코리는 이름의 잡종개. 그런데 이 고양이와 개가 말을 하면서 제리와 대화를 나눈다. 과연 개와 고양이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리의 환상인지는 관객 각자의 관점에 달렸다.
제리가 좋아하는 여자는 회사 회계과에서 일하는 화냥기가 있는 섹시한 영국 여자 피오나(젬마 아터턴). 그런데 제리를 진짜로 좋아하는 여자는 역시 회계과 직원인 현모양처 형의 리사(안나 켄드릭). 이 밖에도 또 다른 회계과 여직원으로 뚱뚱한 앨리슨(엘라 스미스)도 제리를 혼자 좋아한다.
제리의 살육행위는 먼저 자기가 몰던 차에 치인 사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인간 첫 희생자는 피오나인데 제리는 피오나를 살해한 뒤 머리를 잘라 냉장고에 보관하고 이 머리와 대화를 나눈다(영화는 전부 제리의 가공할 핏빛 환상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제리는 피오나의 시신을 고기 썰듯이 썰어 플래스틱 용기에 보관한다.
이런 제리가 리사와 사귀면서 리사의 착한 마음에 감화돼 자신의 살인욕망을 억제하려고 몸부림친다(이런 얘기는 아주 상투적인 것이다). 그러나 리사 역시 제리의 제물이 돼 머리가 절단돼 냉장고에 들어간다.
리사의 머리도 제리와 대화를 나눈다. 이런 제리의 살인행위를 부추기는 것이 미스터 위스커. 이어 앨리슨의 머리도 냉장고에 들어가고 정신상담의는 제리에게 납돼 죽다 살아난다.
레널즈는 제리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와 사슴과 양말 인형의 목소리까지 도맡아하면서 열성을 보이고 있지만 영화가 다양한 장르를 잘 못 섞은데다가 톤이 불규칙하고 또 쓸데없이 피를 흘려 기분이 안 좋다. 마지막에 이런 분위기를 사죄라도 한다는 듯이 주인공들이 정장을 하고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데 이 중에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예수도 있다. 가끔 기발 난 데도 있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봐도 되겠다. 마제인 사츠라피 감독. R. Lionsgate.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