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디트로이트(Detroit)


백인 경찰 필립(앞)이 흑인들과 백인 여자 2 명을 심문하고 있다.

1967년 디트로이트서 무슨 일이?‘미국 흑역사’고발


지난 1967년 여름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을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다룬 기록영화 스타일의 강렬한 역작이다. ‘허트 락커’와 ‘제로 다크 서티’에서 미국의 소름끼치는 역사를 다룬 여류 캐스린 비글로가 감독하고 이 두 영화의 각본을 쓴 마크 보알이 다시 각본을 썼다.
흑인 폭동의 테두리 안에서 디트로이트 시내 흑인 동네의 허술한 모텔 알지에스에서 일어난 백인 경찰의 흑인 3명 살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고질인 인종 차별과 통제가 없는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남용과 횡포 그리고 흑인에 대한 사회적 법적 불평등 등을 고발한 담대하고 절실한 작품이다. 
거의 공포와 테러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팽팽하고 영육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뉴스필름과 허구를 섞은데다가 시네마 베리테 식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어 현장감과 사실감에 전율하게 된다. 그리고 배우들도 두 명을 제외하곤 낯선 배우나 신인을 써 이런 사실감을 더 부추기고 있다. 
디트로이트 경찰이 무허가 흑인클럽을 덮쳐 고객들을 밖으로 몰아내 연행하면서 흑인들의 폭동이 시작되고 이어 방화와 약탈이 자행되자 경찰을 돕기 위해 탱크를 몰고 주 방위군이 투입된다. LA의 4.29 폭동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주 인물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경찰 필립 크라우스(윌 풀터가 가공할 연기를 한다)와 젊은 모타운 가수 래리 리드(신인 앨지 스미스가 경탄할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동네 식품점 시큐리티 가드 멜빈 디스뮤크스(존 보이에가) 및 도시로 구직 차 온 베트남전 베테런 로버트 그린(앤소니 맥키).
폭동으로 공연이 취소돼 극장 밖으로 나온 래리와 그의 친구 프레드 템플(제이콥 래티모어)은 알지에스 모텔로 피신한다. 모텔에는 칼 쿠퍼(제이슨 미첼) 등 젊은 흑인 몇 명이 두 명의 젊은 백인 여자들(해나 머리와 케이틀린 디버)과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고 있다. 
그런데 칼이 창문을 통해 장난감 딱총을 경찰에 쏘면서 필립과 함께 2명의 경찰이 모텔 안으로 들어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복도에 몰아 놓고 두 손을 벽에 대고 서 있게 한 뒤 심문을 시작한다. 필립이 주도하는 이 심문 과정이 40분 간 진행되는데 협박과 폭언과 폭력이 자행되는 긴 심문 동안 모텔은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이를 지켜보는 멜빈은 역사의 목격자요 참관인 구실을 한다. 
필립은 로버트 등 흑인들과 두 명의 백인 여자 등 잡아놓은 사람들에 누가 총을 쐈으며 권총이 어디에 있는지를 집요하게 심문하는데 이 과정에서 ‘죽음의 게임’ 방법을 동원한다. 흑인을 방으로 데려가 허공에 총을 쏜 뒤 다시 밖으로 나와 그를 죽였다면서 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흑인 3명이 이들의 손에 죽는다. 다소 길긴 하나 이 40분 간 영화를 보는 사람도 래리 일행과 또 같은 공포와 치욕감과 분노에 몸을 떨게 된다. 
폭동이 끝난 뒤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필립 등 3명의 경찰에 대한 재판이 열리나 전원 백인인 배심원들은 무죄를 평결한다. 디트로이트 폭동 후 반세기가 지났건만 과연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하게 된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콜럼버스(Columbus)


진과 케이시(왼쪽)는 만보와 대화를 나누며 우정이 깊어간다.

그림 같은 자연 속 따뜻한 대화… 한인 감독·주연의  수작


현대적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유명한 인디애나주의 도시 콜럼버스(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번역가와 이 도시에 사는 젊은 미국인 여자와의 대화를 통한 관계와 성격 탐구를 건물들을 조망하면서 만보하듯이 그린 온기와 인간성 가득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작품이다. 야수지로 오주 영화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건축은 치유의 능력을 지녔다는 여자의 말처럼 건물들이 생명체로서 살아 숨 쉬는데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매우 지적인 작품이다. 영화 비평가이자 비디오 예술가인 서울 태생의 한국계 코고나다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을 쓰고 편집도 했는데 주인공 남자는 한국계인 베테런 존 조가 맡아서 차분하고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작품의 분위기와 보조가 몽환적인데 지극히 간소하고 검소한 영화로 대화와 휴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작품을 천천히 이끌어간다. 고독감에 잠겨들면서도 끝에 가서 해방감에 고요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작품을 충분히 수용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번역가인 진(존 조가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은 콜럼버스에 강연 차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건축학 교수인 아버지를 찾아 이 곳에 온다. 진은 그 동안 가족을 멀리한 죄책감에 빠져있다. 
진이 이 마을에서 약물 중독에서 회복한 서민층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하면서 진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케이시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의 건물들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눈다. 케이시는 도시로 나가 건축을 공부하고 싶으나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단조로운 삶을 견디어낸다. 
이런 케이시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박사 공부하는 냉소적인 남자 친구 개브리엘(로리 컬킨). 한편 진도 아버지를 찾아온 동료 여인(파커 포우지)을 어렸을 때부터 사모해 왔다. 
진과 케이시는 몇 날을 함께 만나 걷고 건물을 구경하면서 문화와 환경과 자라온 환경 그리고 세계관과 각자의 꿈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로 인해 둘은 짙은 우정을 맺게 되는데 그 감정이 사랑의 변두리에까지 이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리고 케이시는 이 관계 끝에 자신의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구출된다. 
조의 너그럽고 여유 있는 연기(본격적인 주연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와 리처드슨의 알찬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엄격한 형식미와 함께 자연 속의 두 사람을 찍은 촬영이 극히 아름답고 드문드문 쓴 전자음악과 음향 효과도 매우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