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미술가 경험으로 본 나치와 전후 독일과 예술


‘타인들의 삶’(The Lives of Others)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크의 세 번째 작품으로 다소 감상적이고 상영시간 188분도 좀 길긴 하지만 매우 감동적이요 사려 깊은 작품이다. 도너스마크는 ‘타인들의 삶’을 만든 후 할리웃의 부름을 받아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졸작 ‘관광객’(The Tourist)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 ‘타인들의 삶’과 분위기가 닮은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가 각본도 썼다. 
1930년대 나치 집권 시대에서부터 1960년대 독일의 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미술가가 겪는 개인적 경험과 변화하는 정치 상황 그리고 예술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 및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자 스릴러 기운마저 갖춰 흥미진진하다. 
1937년 드레스덴. 처음에 어린 쿠르트 바나트(카이 코스)가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적인 아주머니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와 함께 나치가 전시한 ‘퇴폐 미술전’을 구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치는 칸딘스키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퇴폐작’으로 취급했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사이나 나치에 가입하지 않아 직장을 잃어 집안 생계가 어렵다. 
쿠르트는 엘리자베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대한 영감과 사랑을 키우는데 엘리자베스가 정신질환을 잃으면서 나치 동조자인 산부인과 의사이자 교수인 칼 제반트(세바스티안 코흐)에 의해 불임수술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이어 개스 처형된다.
2차대전 후 드레스덴은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가고 성장한 쿠르트(톰 쉴링)는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여기서 패션을 공부하는 아름다운 엘리(파울라 베어)를 만나 둘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엘리는 칼의 딸. 물론 쿠르트는 칼이 자기 아주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흉악한 전범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런 내용이 다소 억지 같고 신파적이다. 그런데 칼은 자기 딸에게 까지 수술 칼을 들이대는 가혹한 괴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쿠르트와 칼간의 대결을 예상하게 되지만 감독은 이를 보여주지 않는데 따라서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이 대폭 감소된다. 쿠르트는 그림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신의 예술혼에 위배되는 공산정권의 선전 위주의 요구에 환멸을 느껴 엘리와 함께 서독으로 이주한다(아직 베를린 장벽이 안 세워졌을 때다). 쿠르트가 공산체제 하에서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향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이 효과적으로 묘사되지 못 했다. 
뒤셀도르프에 안주한 쿠르트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현대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창작열을 한껏 불사르나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포토-리얼리즘으로 성공한다. 촬영과 세트와 음악 등도 좋다. 
눈에 띠는 연기는 ‘타인들의 삶’에도 나왔던 코흐의 것이다. 쿠르트는 현존하는 독일의 시각미술가 게르하르트 릭터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Sony Pictures Classic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두가 알고 있어(Everybody Knows)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고향 방문, 딸의 납치, 드러나는 과거의 비밀…
이란 화라디 감독의 다소 느슨한 가족 드라마


‘이혼’(A Seperation)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란의 아스가르 화라디의 가족 드라마이자 납치극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페넬로피 크루즈와 그의 남편 하비에르 바르뎀 등 스페인 배우들을 사용해 스페인에서 찍었다. 인물들의 성격묘사와 이란의 사회상 비판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감독이 자기 보금자리를 떠나 국제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영화가 맥이 빠진 신파 타작이 되고 말았다.
납치극이면서도 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여러 인물들이 나와 엮는 얘기도 중언부언 식이고 결말이 완전히 바람 빠진 풍선 같아 화라디의 촘촘하고 강인한 연출 솜씨를 기대하던 사람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볼만한 것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다시피 하는 크루즈의 연기와 그와 바르뎀의 화학작용이다.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라우라(크루즈)가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오래간만에 스페인의 시골 마을을 찾아온다.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면서 시끌벅적대던 저녁에 라우라의 10대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실종된다. 이어 정체불명의 납치범으로부터 이레네의 몸값을 요구하는 통지가 온다. 이 소식을 들은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아르헨티나의 베테런 배우 리카르도 다린)도 스페인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라우라의 가족들의 삶의 실타래가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안고 있는 과거의 비밀들이 드러난다. 이 과거들 중에는 라우라와 그의 전 애인 파코(바르뎀)의 깊고 뜨거웠던 사랑이 있다. 라우라의 가족이 몸값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겉으론 완벽하게 보이던 그의 가족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난다.
개인들의 비밀과 납치를 다룬 영화로선 감정이 결여됐는데 영화를 멜로드라마처럼 이끌어 가는 바람에 강렬한 긴장감이나 극적 폭발력이 아주 미약하다. 그리고 결말을 맺는 부분이 다분히 조작적인데다가 느슨해 맥이 빠진다. 클라이맥스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기대에는 못 미치나 볼만은 하다. 화라디의 주도면밀한 연출과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얘기 그리고 섬세한 인물과 성격개발이 아쉽다. R등급. Focu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페이버릿(The Favorite)


야심찬 하녀 애비게일은 미소와 친절로 앤 여왕(왼쪽)의 총애를 산다.

화려한 궁정서 펼쳐지는 세 여인의 권력쟁탈전


신랄한 풍자가로 ‘랍스터’(The Lobster)와 ‘신성한 사슴 살해’(Killing of a Sacred Deer) 등을 만든 그리스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의 세 여인의 궁정 코미디 드라마로 기막히게 화려하고 재미있다. 란티모스는 관객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라고 하겠는데 이번에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다시피 어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시 자기 나름대로 얄궂다시피 한 기지와 위트와 검은 티가 나는 유머 그리고 지적 자유를 마음껏 발휘해 관객의 지와 감성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다.
세 주인공 여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눈부시게 화사한 의상과 세트 그리고 복잡다단한 내용을 아기자기하게 엮어간 각본 및 음악과 일사불란한 연출 등이 다 빼어난 영화로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세 여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관계를 우정으로 위장하고 배신과 음모를 자행하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잔뜩 엮어 넣은 것이다. 18세기 초엽 영국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궁정이 무대. 자녀를 17명이나 두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앤은 고독한 심술쟁이. 성질을 잘 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게다가 한쪽 다리가 몹시 아파 윌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이를 옆에서 극진히 돌보는 여자가 젊은 귀족부인 레이디 사라(레이철 바이스). 사라는 앤의 친구이자 비서요 동성애 애인이자 참모인데 국정에 관심 없는 여왕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나라 일을 처리하면서 권력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는 멍청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실속은 다 차리는 간교한 여자여서 사라의 속셈을 잘 안다.
이런 자리에 사라의 친척인 공손하고 겁먹은 표정을 한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하녀로 들어온다. 사라의 지시에 따라 부엌 막일을 맡은 애비게일이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앤의 아픈 다리에 발라 신통한 효과를 보면서 미소와 친절을 선심 쓰듯 하는 애비게일은 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앤을 둘러싸고 사라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쟁취 극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데 이런 둘의 미소로 덧칠한 독침의 공격과 방어를 앤은 나름대로 조종하며 즐긴다. 남자들도 여럿 나오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여성 위주의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서 논다.
시치미 뚝 뗀 유머와 위트가 날카롭고 사정없이 야박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보여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매력적인 영화로 콜맨과 바이스와 스톤의 연기가 경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콜맨의 아이처럼 철없고 순진하고 심통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차릴 것 다 차릴 줄 아는 연기가 빛을 낸다. 그리고 볼 것 없는 부엌 하녀로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속 다 차리는 스톤과 표독스럽고 차고 간교한 표정의 바이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드 II(Creed II)


크리드(왼쪽)가 록키의 코치 하에 빅터와 대결하려고 모스크바의 링에 올랐다.

‘록키’시리즈 속편… 아폴로와  드라고의 아들, 링 위 사생결단 대결


‘록키 II’에서는 아버지끼리 주먹다짐을 하더니 ‘크리드 II’에선 아들끼리 싸운다. 
2015년에 나온 ‘록키’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생작품인 ‘크리드’의 속편인데 ‘록키’와 그 속편들의 내용을 재탕한 것처럼 진부하고 서스펜스나 긴장감도 또 놀라울 것도 없는 타작이다. 킬링 타임용은 된다.
전편에서 록키(실베스터 스탤론)의 지도 하에 새 헤비급 챔피언이 된 크리드(마이클 B. 조단)는 ‘록키’시리즈 제1편과 제2편에서 록키와 대결한 흑인 선수 아폴로의 아들. 처음에 잠깐 크리드가 링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후에 크리드와 대결할 우크라이나의 젊은 살인무기 빅터 드라고(플로리안 먼테누)가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이어 크리드가 가수인 애인 비안카(테사 탐슨)에게 구혼을 하면서 영화는 주먹대결에 로맨스를 양념으로 치는데 매우 어색하다. 각본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데 크리드와 비안카의 열기 빠진 관계와 함께 록키가 아내의 무덤엘 찾아가 독백을 하는 장면도 이젠 식상하다.
빅터가 크리드에게 대결하자고 선포하면서 록키와 크리드 간에 갈등이 인다. 록키는 크리드에게 폭력자에 지나지 않는 빅터와 대결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붙어봤자 승산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빅터가 ‘록키 VI’에서 크리드의 아버지인 아폴로를 링에서 때려죽인 이반 드라고(돌프 런드그렌)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반은 빅터의 코치로 러시안 챔피언이었던 이반과 록키는 ‘록키 IV’에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싸운 사이. 이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후계자를 내세워 다툰다. 
크리드는 자기를 떠난 록키의 도움 없이 빅터의 도전을 받아들여 링에 오르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그러나 빅터의 반칙으로 크리드는 챔피언십을 유지한다. 
클라이맥스는 빅터의 재도전에 응한 크리드가 25대 1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의 링에서 빅터와 사생결단의 경기를 벌이는 것. 물론 그 전에 크리드를 돕기로 결심한 록키의 지도 하에 크리드가 사막에서 맹훈련을 하는데 이런 것이 다 옛날 ‘록키’의 장면을 답습한 것이다. 
조단은 전편에서는 신선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이번에는 기운이 떨어진 사람 같다. 영화를 보면서 흥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록키’시리즈에서 이반의 아내로 나왔던 브리짓 닐슨(스탤론의 실제 애인이었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 많이 늙었다. 제3편이 나올 것처럼 끝난다. 스티븐 케이플 주니어 감독. PG-13 등급. MGM.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린 북(Green Book)


토니(왼쪽)가 단 셜리 박사를 차에 태우고 미 남부를 여행하고 있다.

순회콘서트 동행 흑백, 서로 이해하는 과정 훈훈


온 천하 만백성이 모두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안전위주의 인종차별에 관한 드라마 코미디다. 뛰어난 연기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재미있는 내용과 재즈와 클래식을 혼성한 듯한 음악과 다소 감상적인 연출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의 마음을 훈기로 채워주는 연말 할러데이용 작품이다.
오스카상을 탄 ‘데이지 마님 모시기’를 연상시키는 얘기로 놀라운 것은 감독이 ‘덤 앤 더머’와 ‘메리에겐 뭔가 있어’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야한 코미디를 만든 화렐리 형제 중의 하나인 피;터 화렐리라는 점. 그는 물론 코미디 전문이어서 영화가 코미디 분위기가 다분하긴 하나 진짜 알맹이는 진지한 드라마다. 
연기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작품인데 흠이라면 흑백문제를 너무 쉽고 안이하게 다룬 것. 이 영화만 같다면 미국의 흑백문제는 쉽사리 풀릴 것인데 인물들이나 상황이 모두 너무나 틀에 박힌 공식을 따라 끝이 어떻게 될지 영화가 시작되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연출 방식이 영화의 내용을 사람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접근시킨다기보다 조작하는 식이어서 다소 거부감이 인다. 그러나 심각한 내용을 매우 우습고 흥미진진하며 또 진지하게 다룬 좋은 영화다. 
1962년.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토니(비고 모텐슨)는 일자무식의 클럽 바운서로 아내(린다 카델리니)와 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나 마음은 곱다. 토니는 이탈리아계인데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여 떠들어대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틀에 박힌 듯이 묘사했다. 
토니가 일하던 클럽이 보수공사로 문을 닫으면서 토니는 자가용 운전사를 구하는 재즈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흑인 단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문라이트’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집을 방문한다. 유명하고 돈 많고 박식한 셜리는 카네기홀 위층의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데 태도가 아프리카의 임금님처럼 도도하기 짝이 없다.
셜리는 8주간 미 남부 순회연주를 위해 토니를 고용하는데 셜리의 밴드 구성원인 백인들인 베이시스트와 첼리스트는 다른 차를 타고 셜리와 동행한다. 성격과 성장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로드 무비인데 둘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셜리는 온갖 인종차별을 겪게 되나 그가 곤경에 처할 때면 완력과 입심이 센 토니가 나타나 구해준다. 
둘이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고 겪는 갖가지 사건과 해프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둘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깊은 정으로 맺어지게 된다. 둘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나 모두 정직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처음에는 각자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다가 시간이 가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존중하고 또 그것을 따르는 과정이 두 배우의 기막힌 화학작용에 의해 아름답게 그려진다.
모텐슨의 다소 어릿광대 같은 우습고 으스대는 연기도 일품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것은 알리의 위풍당당하면서도 자비로운 연기다. 오스카 조연상을 다시 탈 가능성이 많다. 알리가 밴드의 반주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이 박수갈채를 받을만하다. 제목은 흑인들이 미 남부를 여행할 때 백인들의 박해를 피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PG-13 등급.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영원의 문턱에서(At Eternity’s Gate)


고흐는 친구 고갱이 자기를 떠나자 왼쪽 귀를 잘라버린다.

고갱과 우정과 갈등 그리고 정신질환… 고흐의 생애 마지막 부분 그린 전기영화 


반 고흐의 남프랑스에서의 생애 마지막 부분을 그린 전기영화로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과 고흐 역의 윌렘 다포의 정열적인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고흐의 그림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너무 고답적이요 지적이며 예술적이어서 정이 쉽게 가질 않는다.
감독은 유명한 미술가인 줄리안 슈나벨로 그는 질서 있는 서술을 무시하고 고흐의 화가로서의 영감과 그림에 치중해 보기에는 다채롭고 화려하나 실제로 고흐의 불우했던 삶을 체감하기가 힘들다. 슈나벨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지지만 그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고흐라고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으로 볼 만하다.
영화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고흐의 남프랑스의 알르와 생-레미 등지에서 창작활동과 함께 그와 화법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화가 고갱과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화상인 형 테오(루퍼트 프렌드)와의 관계 및 고흐가 자기 왼쪽 귀를 자르면서 지낸 정신병동에서의 삶 등을 다루고 있다.
고흐(다포)와 고갱(오스카 아이작)은 먼저 파리에서 만난다. 고갱은 태양을 그리워하는 고흐에게 남프랑스로 내려가라고 조언한다. 알르에 내려온 고흐는 가난에 시달리면서 형의 도움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정열이 불길처럼 타올라 계속해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그림책을 통해 많이 본 그림들이 나온다.
감독은 고흐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색깔과 형체미를 통해 자주 보여주면서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을 유혹하는 반면 이야기가 약하다. 각본은 감독과 프랑스의 베테런 각본가인 장-클로드 카리에리 등 세 사람이 썼다. 감독은 고흐가 희열에 젖어 자연과 인물 모델 그리고 정물 등을 그리는 모습을 화가의 눈으로 관조하고 있다. 
고흐는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면서 어두운 삶을 살지만 생명력의 활화산인데 자기와 극진한 사이이던 고갱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면서 평소의 정신질환이 악화, 자기 왼쪽 귀를 잘라버린다. 이어 정신질환자 요양소에서 살던 고흐는 자신의 정신질환 상태를 판단하러 온 신부(매즈 미켈슨)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화에서 고흐는 자기를 시대에 앞서간 예수에 비유한다. 그런데 고흐역의 다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에서 예수로 나온바 있다. 고흐는 37 세로 요절했다.
마티외 아말릭, 에마뉘엘 세녜, 닐스 아레스트룹 및 안 콩시니 등 유럽의 스타들이 단역으로 나온다. 서술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촬영과 다포의 영육을 다 바친 경직되다시피 강력한 연기가 빼어난 작품이다. PG-13 등급. CBS Film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20년 조사위 보고’


트럼프와 김정은(사진) 간의 화해무드가 온탕냉탕을 들락날락하는 요즘 실수와 판단착오로 인해 미국과 북한 간에 핵전쟁이 벌어지는 내용의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루이스가 쓴 ‘북한의 대미 공격에 관한 2020년 조사위 보고’(The 2020 Commission Report on the North Korean Attacks Against the United States)다. ‘상상해본 소설’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둘 다 예측 불허한 사람들이 통치자로 있는 핵보유국인 미국과 북한 간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룬 것이어서 사실감이 절실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보고 교훈으로 삼을만한 책이다.
사흘 동안 벌어진 양국 간의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300여만 명이고 부상자는 80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미국과 북한 간에 전쟁이 나면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사상자가 포함된다. 
마치 007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과 긴장감에 블랙 코미디 분위기마저 갖춘 이 소설은 미국과 북한 간의 핵전쟁 직전 상황과 전쟁발발 그리고 그 후유증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지도자들의 판단 착오와 우발적 충동심이 인류의 참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 책은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무지와 대북 관계에 관한 어리석은 낙관과 판단의 오류 및 즉흥적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래서 책에서 트럼프는 이 보고서를 ‘마녀 사냥’이며 ‘가짜 뉴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책은 핵전쟁과 그 후유증을 다뤘다는 점에서 같은 내용을 다룬 영화와 TV드라마인 ‘온 더 비치’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및 ‘더 데이 애프터’를 생각나게 만드는데 그 현실감과 함께 재미 있는 내용과 쉽게 진행되는 서술로 인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2020년 3월 21일 한반도 위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한국 부산의 김해국제공항에서 부산(BX) 411편을 탄 288명의 승객들 중 그 누구도 이 비행이 대참사의 비행이 되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288명 중 절반가량이 몽고의 자매학교를 방문하러 가는 부산중학교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안 돼 계기고장으로 비무장지대로 넘어서자 북한 측의 공격을 받고 추락한다. 북한 측이 이 여객기를 격추한 이유는 그 동안 미 폭격기가 훈련을 빙자해 자주 비무장지대에 근접 비행하는 신경전을 벌인데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북한 측은 여객기를 이번에도 훈련을 빙자해 접근하는 미 폭격기로 오인한 것이다.
 여객기 격추 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참모회의를 열고 대 북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는데 그가 북한과의 전쟁 불사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의 참사와 그 후유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편 김정은은 한국이 미국의 동의 없이 자기를 공격할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서 보복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괌의 미국기지를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한다. 이 때 트럼프는 플로리다주의 마-라-라고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 공격 생존자들인 서울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도쿄의 소방서장 그리고 부산의 한 여의사의 중언을 토대로 핵의 재앙을 상세히 보여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부 중앙청사로 피신했다가 핵폭탄을 맞으면서 사망한다.           
이어 김정은은 트럼프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판단,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지시한다. 3월 22일 새벽 총 13개의 핵탄두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 14와 15호가 발사된다. 이 들이 미 본토까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40여분.
공격 목표는 진주만과 샌디에고와 워싱턴 D.C. 그리고 9/11 때 부시가 피신했던 루이지애나주 슈레비포트의 박스데일 공군기지(트럼프도 이리로 피신하리라는 예측에서)와 뉴욕과 마-라-라고. 핵미사일이 북한을 떠나 미 본토에 떨어지기 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3개중 6개는 불발탄인데 미사일은 백악관은 빗겨가나 뉴욕의 맨해탄에 명중, 당시 트럼프타워에 있던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가 즉사한다.
북한 측 공격에 뿔이 난 트럼프는 김정은이 중국의 허락 없이 미국을 공격할 리가 없다고 판단,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핵 공격을 결심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참모가 핵 공격을 지시할 수 있는 코드가 있는 가방 ‘풋볼’을 트럼프로부터 가로채 이를 저지한다. 이어 트럼프는 오마하주 네브라스카의 미 전략사령부 지하벙커로 피신하기 위해 전용기에 오른다. 트럼프는 비행기 창밖으로 플로리다에 떨어진 핵폭탄이 만들어낸 치솟는 불덩이를 보면서 “진짜 아름답네”라고 찬탄한다.
이어 미 공군의 북한에 대한 공중 폭격과 김정은 제거를 위한 특공대를 포함한 미군 지상공격이 벌어지면서 북한군은 궤멸한다. 김정은은 묘향산의 벙커로 피신했다가 특공대가 들이닥치기 직전 자살한다. 그리고 트럼프는 상원 덕분에 간신히 탄핵을 면하고 재출마를 포기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