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
미술가 경험으로 본 나치와 전후 독일과 예술
‘타인들의 삶’(The Lives of Others)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크의 세 번째 작품으로 다소 감상적이고 상영시간 188분도 좀 길긴 하지만 매우 감동적이요 사려 깊은 작품이다. 도너스마크는 ‘타인들의 삶’을 만든 후 할리웃의 부름을 받아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졸작 ‘관광객’(The Tourist)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 ‘타인들의 삶’과 분위기가 닮은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가 각본도 썼다.
1930년대 나치 집권 시대에서부터 1960년대 독일의 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미술가가 겪는 개인적 경험과 변화하는 정치 상황 그리고 예술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 및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자 스릴러 기운마저 갖춰 흥미진진하다.
1937년 드레스덴. 처음에 어린 쿠르트 바나트(카이 코스)가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적인 아주머니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와 함께 나치가 전시한 ‘퇴폐 미술전’을 구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치는 칸딘스키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퇴폐작’으로 취급했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사이나 나치에 가입하지 않아 직장을 잃어 집안 생계가 어렵다.
쿠르트는 엘리자베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대한 영감과 사랑을 키우는데 엘리자베스가 정신질환을 잃으면서 나치 동조자인 산부인과 의사이자 교수인 칼 제반트(세바스티안 코흐)에 의해 불임수술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이어 개스 처형된다.
2차대전 후 드레스덴은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가고 성장한 쿠르트(톰 쉴링)는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여기서 패션을 공부하는 아름다운 엘리(파울라 베어)를 만나 둘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엘리는 칼의 딸. 물론 쿠르트는 칼이 자기 아주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흉악한 전범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런 내용이 다소 억지 같고 신파적이다. 그런데 칼은 자기 딸에게 까지 수술 칼을 들이대는 가혹한 괴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쿠르트와 칼간의 대결을 예상하게 되지만 감독은 이를 보여주지 않는데 따라서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이 대폭 감소된다. 쿠르트는 그림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신의 예술혼에 위배되는 공산정권의 선전 위주의 요구에 환멸을 느껴 엘리와 함께 서독으로 이주한다(아직 베를린 장벽이 안 세워졌을 때다). 쿠르트가 공산체제 하에서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향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이 효과적으로 묘사되지 못 했다.
뒤셀도르프에 안주한 쿠르트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현대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창작열을 한껏 불사르나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포토-리얼리즘으로 성공한다. 촬영과 세트와 음악 등도 좋다.
눈에 띠는 연기는 ‘타인들의 삶’에도 나왔던 코흐의 것이다. 쿠르트는 현존하는 독일의 시각미술가 게르하르트 릭터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Sony Pictures Classic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