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부터 BBC 아메리카 TV를 통해 방영될 스파이 액션 스릴러 ‘킬링 이브’(Killing Eve)에서 사이코 여자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을 쫓는 영국 정보부 MI5의 첩보원 이브로 나오는 샌드라 오(46·한국명 오미주)를 지난 1월 11일 베벌리 힐스의 베벌리 힐튼호텔에서 만났다.
필자와는 구면인 샌드라는 기자회견 전 필자를 보자 포옹을 하면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매우 밝고 생명력이 넘쳐 신선한 느낌을 주었는데 질문에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캐나다 태생의 샌드라는 TV 시리즈 ‘그레이즈 아나토미’로 골든 글로브상을 탔고 ‘사이드웨이즈’(Sideways)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가 하면 연극배우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킬링 이브’는 런던과 파리 및 베를린에서 촬영했는데 모두 8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이전과 다른 스파이역 맘에 들어 흔쾌히 출연”
-이브 역을 어떻게 맡게 되었는가.
“어느 날 브루클린 길을 걷고 있는데 내 에이전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가 하는 말이 내게 좋은 역이 있는데 각본을 보내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읽었더니 의사나 선생 역이 아니어서 어리둥절해 도대체 내 역이 무엇이냐고 에이전트에게 물었다. 대답이 이브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난 이 시리즈의 총제작자인 피비 월러-브리지의 작품들을 잘 알고 있는데다가 각본 내용이 좋아 역을 맡기로 했다.”
-시리즈에서 이브는 아침에 식당 웨이터에게 진 앤 토닉을 주문했는데 실제로도 아침에 그 것을 즐기는가.
“스트레스 때문에 시킨 것 같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진 앤 토닉을 진짜로 좋아한다. 난 보드카를 즐기는데 오후 5시 이후에야 즐긴다.”
-이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가.
“이브는 처음에 책상 일에 충실하나 매우 무료해 한다. 그리고 다소 자신감도 없다. 그러나 그는 안에 정열을 안고 있는데 문제는 그가 이를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난 그 점이 맘에 들었다. 또 하나는 이브가 살인자 빌라넬과 살인이 상징하는 어두움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역을 맡은 나의 안에 있는 어두움의 정체에 대해서도 자문해야 한다는 점이 흥미가 있었다.”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육체적 액션이 맹렬해 지는가.
“물론이다.”
-이브가 빌라넬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이브는 빌라넬이 품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이브와 빌라넬은 서로를 상대방에게 잡아끄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브는 그것의 정체를 모른다. 다만 이브가 깨닫게 되는 것은 어두움의 그림자는 결코 희롱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자도 유능한 스파이가 될 수 있으며 또 킬러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이 시리즈는 제이슨 본 같은 통상적인 스파이 드라마의 스타일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책상에 앉아 숫자나 세던 40대의 여자가 스파이가 된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이브는 타고난 호기심과 추진력을 지닌 여자여서 좋은 스파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빌라넬도 단순히 여느 스파이 드라마의 섹시한 팜므 파탈이 아니다. 그는 이들과는 다른 참신함과 새로운 면을 가진 킬러다.”
내근을 하다가 현장에 뛰어든 영국 정보부원 이브는 사이코 여자 시리얼 킬러 빌라넬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
-이브가 강한 여자여서 역을 택했는가.
“아니다. 내가 이브를 선택한 것은 반드시 그가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한 강한 여자여서라기보다 먼저 그 역이 내 안의 창조적 불꽃을 점화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을 할리웃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이드웨이즈’는 당신의 배우로서의 생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그 영화가 내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사이드웨이즈’ 출연은 지극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영화 성공의 여파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느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시리즈로 내가 배우로서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레이즈 아나토미’에 다시 잠깐이라도 출연할 생각이 없는가.
“매년 내가 되돌아온다는 말이 나돌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다. 그 시리즈가 내 인생의 큰 한 부분이요 또 나는 그 경험을 아끼고 있지만 내가 성장하기 위해선 시리즈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할리웃에는 아직도 아시안 배우들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데 이를 바꿀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가.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까다롭고 또 어려운 문제다. 유감스럽게도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는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성장하지도 못 했고 우리의 현실을 만족스럽게 반영하도록 크지도 못 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BBC 아메리카의 이 시리즈에 아시안인 내가 주연으로 나온다는 것은 뜻 있는 일이라고 본다. 내가 아시안 커뮤니티가 모자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아직도 여기 있으며 내 일에 대해 정열을 느끼고 있다.”
-즐기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난 막중한 책임과 촬영장에 항상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를 찍으면서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그런 것이 내겐 즐거운 일이다.”
-당신은 훌륭한 스파이가 될 자질이 있는가.
“없다. 난 거짓말에 아주 서투르다. 난 포커 페이스도 잘 짓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느끼면 신경질을 내곤 한다. 그리고 난 분석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난 내 직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각본을 읽으면서는 내가 맡은 역이 무엇이 필요하며 육체적으로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 등을 따지면서 분석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에는 전연 분석적이지 못하다.”
-2명의 강한 여자가 스파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리즈의 장르는 오랜 스파이 스릴러이지만 이 시리즈는 과거 스파이들의 전형을 완전히 탈바꿈시키고 있다. 빌라넬은 과거의 킬러인 팜므 파탈과 1/8만 닮았고 이브도 역시 그렇다. 그러니까 옛 장르 안에 전연 새로운 2명의 여자 주인공이 나선 것이다. 난 그 점이 좋다. 난 스파이 장르의 추격과 스릴을 좋아한다. 또 하나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들이 유럽 곳곳을 돌며 추격과 도주의 액션을 펼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찍는 것은 세트에서 찍는 것과 냄새나 느낌이 아주 다르다. 그야 말로 국제적 감각이다.”
-다녀본 중에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다. 정말 좋았다.”
-소셜 미디아에 적극적인가.
“난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따라서 매우 서툰데 어쩌다 내 의견을 올릴 때면 매우 조심스럽게 한다. 왜냐하면 예술인인 배우는 사적인 것과 신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올릴 때면 심사숙고한다.”
-어떻게 창조적으로 작품에 접근하는가.
“작품 제작자와 협동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와 연결이 되었다고 느끼며 또 그를 사랑 하는가 하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창조적 접근의 큰 부분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