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벤-허(Ben-Hur)


주다 벤-허(앞)와 메살라가 전차경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도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대량으로 축소된 내용과 연출 그리고 연기 및 액션과 감정 등 모든 면에서 볼품 없는 영화다. 명화에 개칠을 한 것 같은 오명을 뒤집어쓸 작품으로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도 컴퓨터로 처리했는데 지나치게 빠르게 편집을 한데다가 전체적인 장관을 보여주기 보다는 클로스-업에 치중, 흥분이 안 된다. 
루 월래스가 남북전쟁 후 쓴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벤-허’는 1925년 라몬 나바로가 주연한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스펙태클한 대하 서사극으로 다시 만들어져 오스카상을 11개나 탔다. 이 두 영화에 비하면 카자크스탄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2008년작 ‘원티드’)가 만든 이 영화는 외양과 내용 모든 면에서 왜소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마치 기독교 TV 방송사에서 만든 영화 같다. 전편에서는 예수가 얼굴이나 음성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수(브라질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의 역할 비중이 막강하다. 그가 재판 끝에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를 향해 걷고 이어 처형 당하면서 고통하는 모습과 음성이 뚜렷이 부각되는데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동과 은밀한 뉘앙스 등 여러 가지로 와일러의 작품에 접근하지 못할 영화다. 도대체 왜 그리고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여러 면에서 수정했는데 만든 사람들에 의하면 와일러의 것이 배신과 증오와 복수의 영화라면 이것은 화해와 용서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터무니가 없는 내용 변경이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기원 후 25년. 유대인 귀족인 주다 벤-허(잭 휴스턴-거장 존 휴스턴의 손자)와 로마인인 메살라(토비 케벨)는 친형제와 같은 사이. 메살라가 벤-허 가문의 양자로 컸다. 그리고 메살라는 벤-허의 여동생 네이오미(에이엘레 주로)를 사랑한다. 후에 로마로 가서 장군이 돼 정복자로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메살라가 벤-허와 원수가 된 까닭은 네이오미와의 결합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
메살라에 의해 노예가 된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신세가 되는데 거기서 살아 남아 경주마의 주인인 아프리카-아랍계 일데림(모간 프리만)을 만나 그의 4필의 백마를 몰게 된다. 그리고 메살라와 전차경주에서 맞서는데. 와일러의 영화나 이 영화나 모두 전차경주 장면은 10분 정도 계속되는데 전자에 비해 이것은 긴강감이나 박력 그리고 스릴이 훨씬 미약하다. 
와일러의 것은 상영시간이 212분이었고 이것은 124분이어서 많은 얘기가 생략됐는데 배우들이 연기도 표현에 높낮이가 없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음악. 와일러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로 클래식인데 이 영화는 마지막 크레딧 부분에서 팝뮤직을 썼다. PG-13. Paramoun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의 개들(War Dogs)


데이빗(왼쪽)과 에프라임이 무기를 싣고 바그다드에 왔다.

무기 팔아 부자 됐다가 몰락하는 두 젊은이


사기를 쳐 빈자에서 벼락부자가 됐다가 다시 몰락하는 두 젊은이들의 액션과 코믹 터치를 가미한 드라마로 실화다. 제목은 전쟁통에 무기를 팔아먹어 돈을 번 모리배를 일컫는 말이다. ‘행오버’를 감독한 타드 필립스(공동 각본)가 연출한 이 영화는 조야하고 상스럽고 시끄럽고 또 우스운 삐딱한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풍자적 요소가 담긴 재미있는 얘기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조나 힐의 에너지가 넘치는 미치광이 같은 행동과 대사가 일품으로 겁 없이 목적을 위해 투우처럼 달려드는 그가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사방팔방에서 교차로로 진입하는 교통혼잡과도 같은 작품으로 날탕과도 같은 두 젊은이의 사기에 놀아난 관료체제를 신나게 조소하고 있기도 하다.
마사지사로 플로리다에서 애인과 함께 사는 20대의 데이빗(마일스 텔러)은 지극히 무미건조한 젊은이. 그가 오래간만에 어렸을 때의 친구 에프라임(조나 힐)을 만나면서 데이빗의 따분한 삶이 완전히 바뀐다. 뚱보 에프라임은 입이 걸고 마약을 즐기는 한탕주의자요 총기 숭배자로 그의 롤모델은 영화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
이라크전쟁 중에 무기를 군납해 돈을 벌 아이디어를 가진 에프라임은 이판사판인 데이빗을 조수로 써 먼저 CIA에 무기를 납품해 상당한 이득을 본다. 때는 정부가 모든 군납업자들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여서 에프라임과 데이빗은 모든 군납업자의 내역이 공개된 정부의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남보다 싼 값으로 군납신청을 한다. 
그래서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대량의 총기를 팔아 큰 돈을 번다. 그러나 이 계약이 성사되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은데 둘은 이를 위해 요르단까지 가서 총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바그다드까지 위험한 길을 달린다. 이 부분이 긴장감과 스릴 있다. 
둘은 이제 사무실까지 차리고 직원도 고용한 번듯한 회사 사장 노릇을 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베가스에서 열리는 무기 엑스포에 참가한다. 이들 앞에 군납업자 면허를 박탈당한 멋쟁이(브래들리 쿠퍼)가 나타나 큰 건이 있다고 동업 제의를 한다. 알바니아에 남아 있는 냉전시대 소련제 무기들을 사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는 것. 3억달러짜리 장사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힐이 하도 설쳐 대서 그런지 연기파인 텔러가 기를 못 쓴다. 
R. WB.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영화




최근 블락버스터와 인디즈(독립영화)를 포함해 한국영화 9편을 봤다. 대부분 보고 즐길만한 수준급 영화들로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 바로 이거다”하고 속 깊이 감동할만한 예술성과 재미를 절묘하게 혼합한 영화는 없다.
현재 코리아타운의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부산행’(Train to Busan^사진)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본 좀비영화. 어린 딸과 함께 별거중인 아내를 만나려고 서울발 부산행 특급열차에 탄 아버지(공유)와 승객들이 좀비의 습격을 받는 공포액션스릴러다. 좀비영화치곤 감정적인 면과 함께 한국의 사회현상을 비판한 메시지도 있는데 기술과 연기도 좋다. 연상호감독.
역시 현재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한 한국군 특공대(대장 역 이정재)의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첩보전 액션스릴러다. 한국사람들은 신파를 좋아해 이 영화도 액션에 감상적인 부분을 섞었는데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즐길만하다.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은 순전히 양념 구실. 이재한감독.
일제시대가 배경인 ‘아가씨’(The Handmaiden)는 폭력적인 박찬욱감독의 작품. 사기꾼 일당의 일원인 숙희(김태리)가 선배사기꾼 ‘백작’(하정우)과 짜고 상속녀 아가씨(김민희)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드라마다.
칸영화제서 상을 받은 미술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와 프로덕션 디자인 및 연기 등 외적으로는 훌륭한 영화다. 이 호기심용 오락영화의 문제는 박감독의 잔인성. 오래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내게 자신의 내면이 어둡다고 말한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그랬듯이 영화에서 툭하면 손가락을 자르는데 여기서도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고 드릴로 손을 꿰뚫는 가학성을 노출한다. 또 숙희와 아가씨의 전라의 노골적인 섹스신도 너무 길다. 인물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어대사가 많아 외국인들이 보면 일본영화로 착각할 우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중인 ‘덕혜옹주’(The Last Princess)는 고종의 딸로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간 덕혜옹주(손예진)를 조국으로 탈출시키려는 반일투사들의 서스펜스액션스릴러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덕혜옹주와 역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영친왕의 탈출시도를 둘러싼 허구인데 액션과 스릴 위주의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생각이 들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허진호감독.
‘철원일기’(End of Winter)는 촬영, 대사, 연기 및 내용과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한 독립영화. 평생을 철원의 고교교사로 재직한 남자(문창길)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 있은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하면서 일어나는 삐딱한 가족드라마다. 지나치게 예술적이요 독립영화의 티를 내려고 한 흔적이 역력해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대환감독.
‘4등’(4th Place)은 자식의 성취도에 지나치게 집념하는 어머니(이항나)와 어린 아들 준호(유재상) 그리고 준호의 괴짜 수영코치(박해준)에 관한 드라마. 1등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비판한 영화로 유재상이 침착하게 호연한다. 자식이 1등하기만을 고대하는 모든 한국인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보기를 권한다. 정지우감독.
‘계춘할망’(Canola)은 연기와 내용이 다 좋은 아담하고 소박한 영화. 제주도해녀 계춘(윤여정이 다양한 표정연기를 잘 한다)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잃어버린지 12년만에 되찾는다. 왜 혜지는 12년만에 할망(제주도방언으로 할머니)을 찾아 왔을까. 그리고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다시 사라진다. 끝 부분까지 잘 나가던 영화의 결점은 사족이나 다름없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요 긴 결말. 창감독.
‘우리들’(The World of Us)은 아동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섬세하고 민감한 작품. 외톨이 선(최수인)과 선의 유일한 친구인 지아(설혜인)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동심의 미묘한 심리지도를 곱고 자애롭게 그렸는데 최수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윤가은감독.
그러나 이란의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인 ‘친구집이 어디지’ ‘천국의 아이들’ ‘하얀풍선’ 등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모자란다.        
공상과학영화 스타일의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는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생선이 된 청년(이광수)을 통해 청년실업, 금전만능주의, 학벌위주, 편파적인 언론, 사법부의 비리 및 촛불시위와 소외계층의 실상 등 한국사회의 모든 비리를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영화. 보통을 낙오로 취급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한국의 병폐를 고발했는데 재미있고 의미도 있으나 비판의식이 지나쳐 체하겠다. 권오강감독.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