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7월 29일 일요일

‘털리’서 말로 역 샬리즈 테론




무덤덤한 남편과 함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사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 세 번째 아기를 가진 여인이 뜻밖에 총명하고 명랑하며 생기로 가득 찬 보모 털리를 맞아 삶의 활기를 되찾는 드라마 ‘털리’(Tully)에서 만삭의 비대한 몸의 아내요 어머니 말로로 나오는 샬리즈 테론(42)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오스카 주연상을 탄 연기파인 금발미녀 테론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의 창백한 피부를 한데다가 장신이어서(이 날은 하이힐을 신어 키가 더 커 보였다) 위압감마저 느껴지는데 질문에 대답할 때도 별 유머 없이 사무적이어서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매우 진지하고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여자의 실존감 잃어버린 엄마들 모습 담았죠”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두 어린 남매(둘 다 입양했다)의 어머니로서 아침에 얼마나 분주한가.
“두 아이가 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기 때문에 6시 50분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5시45분에 일어나는데 아침마다 목 매 죽고픈 심정이다. 별 대단한 준비도 아닌데도 어느 날은 이도 닦지 못한다. 그러나 난 그런 일을 사랑한다. 저녁 8시45분에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는 일이 요즘 내 일상으로 난 그 것이 즐겁다.” 

▲여자는 어머니가 되면서 갖는 책임과 부담으로 인해 어머니가 되기 이전의 여인으로서의 자신을 잃는다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사회는 여자에게 너무 버거운 역할을 맡기고 있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을 모두 충실히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들이 이 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 중에는 어머니가 되면서 자기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몰라 고생을 한 사람들이 있다. 한 친구는 내게 자기는 아이를 낳기 전에 자기를 특별한 여인으로 만들어준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자가 어머니가 되고서도 자기만의 특별한 점을 찾으려고 하면 사람들은 부모 노릇 제대로 못 한다고 비아냥댄다. 아이를 갖고서도 난 아직도 예전의 나라고 느낄 때에야 자기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어머니가 아닌 샬리즈 테론으로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는가.
“아이들 학교에 보낸 뒤에 사무실에 나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대해 작업한다. 그 때 나의 실존을 실감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이 나보고 어디 갈 것이냐고 묻기에 일하러 간다고 했더니 가지 말라고 그러더라. 그러나 난 어렸을 때부터 내 어머니가 매일 일하러 가는 것을 보고 자라 내 아이들에게도 자기들의 어머니가 일하는 어머니라는 것을 주지시키려고 한다. 난 어머니와 일하는 사람으로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난 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축복 받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어머니로서 아이들의 성화를 어느 정도 잘 참는가.
“난 옛날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참을성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런 예쁜 괴물들을 두었으니 그들에게 참을성을 보여야지 하며 산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까지가 한계인줄 모르기 십상이어서 힘들지만 나는 ‘나의 마을’ 안에서 내 귀여운 것들을 키운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나의 ‘털리’는 내 어머니다. 훌륭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선 간간 휴식이 필요한데 내게 있어 그 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나의 어머니다.”

▲영화의 각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느 부분에 공감했는가.
“영화를 감독한 제이슨 라이트만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세 번째 아기를 가진 여자의 얘기를 함께 만들자고 해 즉석에서 수락했다. 그 후 각본을 읽으면서 영화에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매우 익숙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솔직하고 진실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경험과도 비슷했기에 공감이 컸다. 영화가 단순히 부모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말로의 남편(론 리빙스턴)은 일벌레로 아내의 일상과 속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데.
“영화는 말로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남편에게도 어떻게 생명감을 주느냐 하는 것을 논의했다. 말로의 남편은 결코 나쁜 남편도 아니요 또 말로가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했다. 말로는 남편과의 관계를 계속해 유지하고자 하나 세월이 그 관계를 부식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부 관계를 빼앗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론과 나의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녀 우리들은 아침에 자주 학교 앞에서 만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여보 남편’이라고 그를 부른다.”

말로가 보모 털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패션 감각은 어떤지.
“난 보통 때 운동복을 입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 때도 마찬가지다. 난 늘 진과 T셔츠 차림으로 생활해왔다. 실제로 야단스런 의상을 입어본 적이 별로 없다. 물론 프리미어 때는 예외이지만. 이젠 아이들 어머니가 되어 더 평상복을 즐겨 입는다.”

▲아이들과 함께 당신의 고향인 남아공에 간 적이 있으며 남아공 언어인 아프리칸어를 아이들이 할 줄 아는가.
“우린 함께 여러 번 갔다. 거기에 내가 마련한 HIV 예방 프로그램 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LA에서 살기 때문에 아프리칸어는 잘 할 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에게 아프리칸어로 하는 상냥한 말들은 이해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남아공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어머니가 된 후로 당신 어머니와의 관계에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지.
“그렇다. 할머니와 손자들과의 관계는 너무나 달라 그것이 나와 내 어머니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아이를 갖기 전만 해도 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나를 잘못과 실수를 연발하는 10대로 생각했었는데 이젠 안 그렇다. 어머니는 이제 나를 두 아이를 잘 키우는 어머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조부모와 그들의 손자들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홀어머니로서 데이트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는데 여전한가.
“아이들을 가진 첫 2년간은 데이트에 전연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로서 몸과 마음과 내 안의 화학분비물질이 100% 아이들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그 후 더 이상 막내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도 되면서 그런 경향에 다소 변화가 왔다. 그러나 데이트가 내 삶의 첫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안 해도 난 행복하다. 어떤 때는 데이트가 즐겁다기보다 일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더군다나 난 일 많이 하는 남자들과 데이트하는 경향이 있어 다시 데이트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부터 바꿔야 하겠다.” (*테론은 2013년부터 오스카상 수상자인 배우이자 감독 션 펜과 데이트를 시작해 2014년에 약혼까지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영화에서 세 아이의 어머니로 나왔듯이 다가족제를 선호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그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것을 확실히 원하는가를 알아야한다. 그러나 난 인구과밀화가 심한 이 지구에서 모두들 아이를 여섯씩 가지라고 말하진 않겠다. 입양의 경우는 다르지만.”

▲가족 간의 관계는 얼마나 가까운가.
“난 피를 나눈 가족이라곤 어머니 밖에 없지만 내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 우리의 관계는 친 가족의 그것보다 더 강하다. 가족에서 중요한 것은 질이지 양은 아니다. 난 과거 20년간 한 가족처럼 지낸 소수의 여자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내 자매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내 아이들에게 이모 구실을 한다. 어떤 때 아이들이 내게 그들이 진짜 내 자매들이냐고 물으면 난 그렇다고 대답한다.”

▲자신을 어떻게 보며 또 표현하겠는가
“난 가만히 앉아 나에 대해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진실 되게 내 삶을 살 뿐이다. 난 아주 어렸을 때 겪은 비극적 경험을 통해 인생이란 매우 짧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나는 이 지침에 따라 살고 있다. 난 언제나 남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괘념하지 않고 내 일을 결정한다. 이제 어머니가 된 나로선 이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해 좋은가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내가 믿는 것은 삶은 예행연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삶을 최대한으로 살려고 한다. 그리고 무지무지하게 섹시한 여인이 되고자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션: 임파서블-폴아웃’(Mission:Impossible-Fallout)


이산 헌트(탐 크루즈)가 카쉬미르의  암벽을 맨 손으로 타고 오르고 있다.

"도난당한 플루토늄 회수"  탐 크루즈표 핵폭탄급 스릴 액션


핵폭탄으로 세계를 초토화하려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때려잡고 이들이 손에 넣으려는 도난당한 플루토늄을 회수하려는 액션 스릴러로 플롯이 매우 복잡하지만 숨이 차고 온 몸이 경직되도록 강렬하고 박력 있는 액션 신들은 가히 장관이다. 주인공 탐 크루즈가 직접 한 액션과 스턴트가 초현실적이어서 저럴 수가 있나 하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56세가 된 크루즈가 하늘을 펄펄 나르고 고속도로 모터사이클을 몰고 비행하는 헬기에 매달리고 거대한 암벽을 맨 손으로 타고 오르는가하면 온 몸을 사용해 육박전을 벌이는데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복잡한 플롯 생각할 것 없이 액션 신만 즐겨도 쌓였던 스트레스 시원하게 풀어줄 잘 만든 여름철용 블록버스터다. 
이 영화는 TV시리즈가 원작으로 이번이 6편째인데 제5편 ‘로그 네이션’을 감독한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감독과 크루즈는 속편이 거듭될수록 액션과 스턴트의 한계를  어디까지 가나보자 하는 식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핵폭탄 급 액션과 스턴트 때문에 웃음과 함께 감탄사를 내지르고 말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미국보다 이틀 빠른 25일에 개봉됐는데 크루즈가 영화 홍보 차 최근 서울엘 다녀왔다.
정부의 비밀 첩보원 이산 헌트(크루즈)가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의 골방에서 헤어진 아내(미셸 모나핸)와 결혼하는 꿈을 꾸면서 시작된다. 주례는 광적인 무정부주의자 솔로몬 레인(션 해리스). 이어 헌트는 동료 루서(빙 레임즈)와 벤지(사이먼 펙)와 함께 베를린에서 도난당한 플루토늄을 현금과 교환하려다 실패한다. 
헌트는 상관 앨란 헌리(알렉 볼드윈)로 부터 플루토늄 회수와 함께 이 것을 손에 넣어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려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집단인 ‘아포슬즈’를 타도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여기에 레인과 또 다른 테러리스트 존이 개입된다. 한편 CIA국장 에리카 슬로안(앤젤라 배셋)은 헌트를 못 믿겠다며 정보부 소속 킬러 오거스트 워커(헨리 캐빌-‘수퍼맨’)를 작전에 합류시킨다. 
아찔한 스카이 다이빙 신에 이어 헌트와 워커(둘 사이의 기 싸움이 재미있다)는 무기 암거래 중개인으로 정체가 불분명한 치명적인 미녀 와잇 위도(바네사 커비)를 만나러 대규모의 파티가 열리고 있는 파리의 그랑 팔레에 나타난다. 이 곳 화장실에서 헌트와 워커 대 암거래에 관계된 중국인 라크 디코이(리앙 양) 간의 격투가 벌어지는데 눈부실 정도로 하얀 화장실 안에서 속도 빠르고 박력 있게 진행되는 이 장면이 흥분을 자아낸다. 
전편에 등장했던 영국 첩보부 MI6 요원 일사 화우스트(레베카 퍼거슨)가 나타나 헌트를 돕는데 그와 헌트 사이에 애정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헌트는 파리에서 자신을 쫓는 킬러들을 피해 모터사이클을 타고 교통이 복잡한 개선문 앞을 역주행해 달리는데  TV시리즈에서 사용된 박진한 랄로 쉬프린의 음악주제를 변주한 음악이 도주와 추격을 신나게 부추긴다.
장소는 런던으로 이동해 헌트는 건물들 위를 달리며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펄펄 날아 뛰어 넘는데 장거리 달리기 같아 보자니 숨이 차다. 무대는 인도의 카쉬미르로 옮겨지면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핵폭탄이 터지기 15분 전에 헌트는 적이 가진 타이머를 뺏기 위해 공중을 나는 헬기에 매달렸다가 헬기 안으로 이동해 조종사를 때려누이고 자기가 헬기를 몰아 도주하는 타이머를 쥔 자가 탄 헬기를 추격한다. 이 추격과 헬기추락에 이어 암벽 위에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등급 PG-13. 상영시간 2시간 27분.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7월 23일 월요일

블라인드스파팅 (Blindspotting)


칼린(왼쪽)과 마일스는 서로 성격이 판이하지만 막역지간인데 두 배우는 실제로도 친구사이다.

흑인과 백인 친구가 겪는 인종문제 사실적 묘사… 딕스와 카잘 ‘눈부신 연기’


북가주 오클랜드에 사는 피부 색깔이 다른 두 친구의 관계를 통해 인종문제와 계급차이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고찰한 솔직하고 대담하며 사실적인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 내내 흐름이 어디로 갈지 전연 짐작하지 못하도록 예측 불허하고 공식을 파격적으로 탈피한 작품으로 유머와 황당무계함 그리고 아슬아슬한 긴장과 서스펜스마저 느끼게 하는 매우 지적인 영화다.
특히 흑인들의 백인경찰에 대한 공포감과 좌절감 그리고 분노를 주인공인 흑인을 통해 절실히 묘사하고 있는데 영화 끝에 가서 이 주인공과 백인경찰이 대면하는 장면이 가슴을 친다. 이와 함께 서로 성격이 판이한 두 친구의 우정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두 주인공 친구로 나오는 흑인 데이빗 딕스(뮤지컬 ‘해밀턴’)와 백인 라파엘 카잘은 실제로도 친구 사이로 각본을 둘이 공동으로 썼다.
영화는 처음에 오클랜드의 여러 장소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 나오는 음악이 오페라 ‘춘희’의 드링킹 송이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여느 영화들과는 다른 것이라고 짐작케 만든다. 흑인으로 교도소에서 집행유예로 막 출소한 칼린(딕스)과 백인이지만 오클랜드의 흑인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일스(카잘)는 이삿짐 운반회사 종업원으로 막역지간. 영화는 칼린의 집행유예가 끝나기 전 사흘간 진행된다.
칼린은 사고와 분별력이 온건한 사람인 반면 흑인 아내 애슐리(재스민 세파스 존스)와 어린 아들을 둔 마일스는 불같은 성질에 폭력성을 가진데다가 분별력이 약하다. 마일스는 자기를 흑인보다 더 흑인으로 생각하는데 그의 성격이 종잡을 수가 없어 보기에 불안하다. 이런 사람이 자기 신변의 안전을 위한다며 총까지 샀으니 그가 언제 이를 사용할지 몰라 초조해진다.
영화 초반에 심야에 트럭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칼린이 인적이 끊긴 도로에서 정지신호에 차를 세우는 장면이 있다. 칼린이 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 것인지 빨리 바뀌지 않는 신호로 인해 집행유예자인 그가 해프하우스에 돌아가야 할 시간을 위반하게 되지나 않을지 몰라 염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백인 경찰이 도주하는 비무장한 흑인을 쫓다가 그를 사살한다. 그러나 칼린은 이를 보고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야 물을 것도 없다. 그리고 칼린은 이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딕스와 카잘의 연기가 눈부신데 특히 카잘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연기를 한다. 이밖에 세파스 존스와 칼린의 전 애인으로 이삿짐 회사 리셉셔니스트 밸로 나오는 자미나 가반카라스 그리고 잠깐 나오지만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찰 역의 이산 엠브리 등이 모두 훌륭한 연기를 한다. 칼로스 로페스 에스트라다 감독. R. Lionsgate.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맘마 미아! 히어 위 고 어겐 (Mamma Mia! Here We Go Again)


소피(중간)를 둘러싸고 소피의 세 아버지 중 하나인 샘(소피 뒤)과 어머니 친구들과 호텔 종업원들이 개업을 축하하고 있다.

“소피 아버지는 누구” 10년만에 나온 맘마 미아 속편


10년 전에 나온 뮤지컬 ‘맘마 미아’의 속편으로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그리스의 섬을 무대로 펼쳐지는 노래와 춤과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나오는 여름철에 딱 알맞은 영화다. 
제1편은 스웨덴의 남녀 4인조 보컬그룹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무대 뮤지컬이 원작인데 전편처럼 속편에서도 아바의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 머물고 있어 여성 팬들이 즐겁게 볼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나치게 달콤하고 만사를 행복하고 아름답게 꾸며대느라 플롯이 구멍이 나고 억지가 많아 눈요기거리로는 족하나 당의정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제1편의 속편 겸 전편과도 같은 영화로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얘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둘이 조화를 제대로 못 이뤄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영화는 전편의 주인공 다나(전편에서 이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나중에 회상 장면에 잠깐 나온다)의 딸로 임신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그리스의 섬에 있는 어머니 소유의 별장을 호텔 벨라 다나로 고친 뒤 개업파티에 초청할 사람들에게 보낼 초청장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나는 죽었고 소피의 세 아버지 중 샘(피어스 브로스난)만이 섬에 살고 있다. 소피의 남편 스카이(도미닉 쿠퍼)는 일로 미국에 갔다. 호텔을 돌보는 사람은 페르난도(앤디 가르시아가 처음에 잠깐 나온 뒤 마지막에 불쑥 재등장 한다.) 
그리고 얘기는 다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대학을 막 졸업한 다나(릴리 제임스가 피곤할 정도로 영화 내내 큰 미소를 지으면서 열심히 연기한다)는 세계를 구경하겠다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떠나 먼저 파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다나는 해리(휴 스키너-이 해리는 어른이 되면서 콜린 퍼스가 역을 맡는다)를 만나 둘이 사랑에 빠지고(사실 침대에 먼저 든다고 해야겠다) 이어 카페에서 웨이터들과 함께 아바의 노래 ‘워털루’를 부르면서 신나게 춤을 춘다. 
다나는 이어 그리스에 도착, 후에 영주하게 될 아름다운 섬에 닿는데 그 전에 요트를 가진 스칸디나비아 청년 빌(조쉬 딜란- 이 빌은 어른이 되면서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역을 맡는다)을 만나 그와 함께 침대에 든다. 그리고 다나의 두 친구 타냐(제시카 키난 윈-이 타냐는 어른이 크리스틴 바란스키가 역을 맡는다)와 로지(알렉사 데이비스-이 로지는 어른이 되면서 줄리 월터스가 역을 맡는다)가 섬에 도착한다. 
다나는 이번에는 미국에서 놀러온 샘(제레미 어바인)을 만나 그와도 함께 잠자리에 든다. 다나가 이렇게 거의 동시에 세 남자와 동침해 소피의 아버지는 셋인 셈이다. 
소피의 세 아버지와 다나의 두 친구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참석한 중에 마침내 개업파티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 초청되지도 않은 소피의 할머니 루비(셰어)가 나타난다. 그런데 루비의 옛 애인이 페르난도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셰어가 아바의 노래 ‘페르난도’를 부르면서 가르시아와 춤을 춘다. 해피 엔딩! 올 파커 감독. PG-13. Uni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탭 헌터


미국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1950년대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스크린의 호남 탭 헌터가 8일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바바라에에서 86세로 타계했다. 헌터는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미남인데다가 우람찬 체격의 소유자여서 특히 10대 소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나도 어렸을 때 그의 팬이었다.
헌터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과 함께 작년 4월에 그를 인터뷰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답지 않게 젊고 건강한 모습의 헌터는 매우 겸손했는데 질문에 유머를 섞어가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매우 편안하고 서민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로버트 왜그너 등 생전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헌터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본명이 아서 앤드루 켈름으로 뉴욕 태생인 헌터의 전성기인 1950년대는 스튜디오들이 배우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때로 헌터도 진지한 배우가 되려는 자기 뜻과는 달리 잘 생긴 얼굴과 늠름한 체격 때문에 스튜디오에 의해 재생된 ‘비프케이크’(근육질 남자)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서 자주 웃통을 벗어 제치고 늠름한 상반신을 뽐내곤 했는데 내가 헌터하면 제일 먼저 기억되는 영화도 나탈리 우드와 공연한 웨스턴 ‘버닝 힐즈’(The Burning Hills^1956)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서울 시청 앞의 경남극장에서 봤는데 그의 맨살이 드러난 상반신을 보면서 왠지 왜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인터뷰 때 “감독이 웃통을 벗으라고 지시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 때 스튜디오들은 늘 그랬다. 난 그 영화 외에도 심지어 전쟁영화인 ‘배틀 크라이’에서도 상반신을 벗어 제쳤다”면서 크게 웃었었다. 그런데 헌터는 제임스 딘과 폴 뉴만을 제치고 ‘배틀 크라이’(Battle Cry^1955)의 오디션에서 발탁됐다.
헌터는 나탈리 우드와 매우 가까웠던 사이로 팬들은 둘을 애인으로 알았지만 이는 사실 스튜디오가 동성애자인 헌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헌터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배우는 ‘사이코’의 앤소니 퍼킨스로 둘의 관계는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헌터는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딱지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었다. 헌터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2005년에 쓴 자서전 ‘탭 헌터 칸피덴셜’(Tab Hunter Confidential)에서 밝혔는데 책은 후에 흥미진진한 기록영화로 만들어졌다.
헌터는 가수로서도 빅 히트 곡을 냈다. 그가 1957년에 부른 ‘영 러브’(Young Love)는 싱글 넘버원에 올랐는데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었다. 그의 또 다른 히트 곡들로는 ‘애플 블라섬 타임’과 ‘캔디’ 등이 있다.
말을 좋아하는 헌터는 남가주목장에서 일하다 에이전트에 의해 발탁돼 곧 이어 ‘비프케이크’로  제조됐는데 두 번째 출연 영화로 린다 다넬과 나온 ‘욕망의 섬’(Island of Desire^1952)에서 부터 맨살 상반신을 드러냈다. 당시 20세였던 헌터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별로 안 좋은 영화라며 웃었었다.
헌터는 여러 편의 웨스턴에 나왔는데 그 중 기억할만한 것이 밴 헤플린의 사이코 아들로 나온 ‘건맨즈 워크’(Gunman‘s Walk^1958). 어렸을 때 성당 성가대원이었던 헌터는 뮤지컬에도 나왔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전인 야구영화 ‘댐 양키즈’(Damn Yankees^1958)는 ‘왓에버 롤라 원츠’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는 즐거운 영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1960년대 들어 ‘올-아메리칸 보이’였던 헌터도 나이를 먹자 스크린 출연이 뜸해지게 된다. 조연과 B급 영화 및 TV에 게스트로 나왔고 1970년대에는 식당 식 극장을 돌며 출연했다.
이러던 헌터가 뒤 늦게 각광을 받은 영화가 미드나잇 무비의 1인자 존 워터스가 감독한 얄궂은 코미디 ‘폴리에스터’(Polyester^1981). 여기서 헌터는 여장남자 배우인 디바인과 공연했는데 이 영화와 함께 역시 디바인이 나온 ‘러스트 인 더 더스트’(Lust in the Dust^1985)는 컬트영화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클래식영화를 요즘 스튜디오영화 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옛날 배우들의 스타 파워 탓이다. 헌터도 인터뷰에서 “옛날엔 스타들에게 신비감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 것이 사라졌다”면서 공연한 라나 터너의 황홀한 존재를 그리워했었다.
헌터는 지난 35년간 함께 살아온 폭스사 제작자 출신의 남편 앨란 글래서를 자기 삶의 방향의 조타수로 여겨왔는데 사망하기 얼마 전 쓰러졌을 때도 앨란의 품에 안겼었다. 인터뷰에서 헌터는 젊음의 비결에 대해 “비누와 물이다. 그리고 이를 닦고 며칠에 한 번 면도를 한다. 그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 어깨를 힘차게 꼭 붙잡으며 큰 미소를 짓던 헌터(사진)를 만난 지가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7월 13일 금요일

‘커스터디’(Custody)


앙트완(왼쪽)은 아들 쥘리앙에 대한 방문권을 놓고 별거한 아내와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내 아들 만나는 걸 왜 막아” 섬뜩한 양육권 분쟁



별거한 채 이혼 절차에 들어간 부부의 어린 아들 양육권과 방문권을 둘러싼 가족 드라마를 시종일관 긴장감 가득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스타일로 교묘하게 변형시킨 프랑스 영화다. 가정 폭력과 함께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법 체제를 비판하면서 이로 인해 겪는 피해자들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좌절감을 심도 있게 다룬 영화로 사비에르 르그랑이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스크린을 외형상으로나 심리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두 자녀와 함께 새 거주지로 도망가다시피 한 아내를 집요하게 쫓아가 아들을 보겠다고 요구하는 아버지 역의 드니 메노쉐의 모습과 연기다. 레슬러처럼 떡 벌어진 체구를 한 거구의 메노쉐가 씩씩거리며 아들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아내와 함께 어린 아들마저 을러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조여드는 공포감과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미리암(레아 드뤼커)과 앙트완(메노쉐)이 판사 앞에서 11세난 아들 쥘리앙(토마 지오리아)의 양육권을 놓고 서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미리암은 앙트완의 과거 자기와 아이들에 대한 폭력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에 대해 앙트완은 아내가 주장하는 폭력행위는 허위이며 아이들에 대한 것도 폭력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자녀 교육을 위해 그들에게 엄격한 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히 세드 쉬 세드’인데 영화는 절반이 가도록 과연 앙트완이 정말로 폭력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구별하지 못하게 알쏭달쏭하게 엮어간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있다. 
미리암은 남편을 피해 그에게 알리지도 않고 18세 난 딸 조세핀(마틸드 오뇌베)과 쥘리앙을 데리고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판사로부터 쥘리앙을 자기가 양육하되 앙트완이 아들을 보려고 주말 방문을 할 수 있다는 판결 결과를 통보받는다. 
미리암이 이사한 곳을 찾아낸 앙트완은 아내를 질책하면서 아들을 차에 태우고 자기 부모 집으로 가는데 차에서 앙트완은 쥘리앙의 이마에 입을 맞추나 쥘리앙은 겁에 질려 사색이다. 그리고 공포에 떨던 쥘리앙은 아버지에게 상소리를 내뱉는다. 이 상소리 외에 쥘리앙이 하는 말은 극히 적은데 어린 아이가 어른의 폭력과 위압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지오리아가 가슴이 아프도록 절실하게 표현한다.
앙트완의 부모는 아들과 손자를 따뜻이 대접하는데 식사 도중에 앙트완이 아버지의 질책에 밥상을 뒤집어 버린다. 여기서 앙트완의 성질이 고스란히 들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가 과연 한에 가득찬 짐승 같은 괴물인지 아니면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상냥한 야수인지 구별이 애매모호하게 그렸다.
그리고 영화가 종반부에 들면서 미리암으로 인해 아들을 만나 함께 있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면서 앙트완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분노의 광기가 폭발한다. 미리암과 쥘리앙 뿐만 아니라 이를 보는 필자도 겁에 질려 몸을 떨게 만든다. 말보다도 큰 호박 같이 둥근 얼굴과 거대한 몸으로 좌절감과 아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분노를 표시하는 메노쉐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퍼즐’(Puzzle)


애그네스(왼쪽)와 로버트가 함께 직소 퍼즐을 풀고 있다.

천상 주부가 퍼즐 통해 잠재력·자존감 발견하는 과정 진지하고 지적으로 그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가정밖에 모르던 소심한 여인이 직소 퍼즐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과 정열을 발휘하면서 자립과 자존을 발견하고 아울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가 결정하는 과정을 진지하고 지적이며 아담하게 그린 소품으로 여성들이 아주 좋아하겠다.
모양은 작지만 내용은 큰 영화로 아늑하고 꾸밈이 없는데 특히 보기 좋은 것은 주인공 역의 켈리 맥도널드의 아름답고 절제되고 또한 인간적인 연기다. 감동적인 연기다. 이와 함께 맥도널드의 퍼즐 파트너로 나오는 인도의 베테런 배우 이르판 칸의 으스대는 변화무쌍한 연기가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두 사람의 화학작용도 일품이다. 인물들의 성격 개발과 함께 소소한 것에까지 감독의 마크 터틀텁의 자상한 솜씨가 깃든 기분 좋은 작품이다. 
처음에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에 사는 애그네스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으로 시작된다. 널려진 컵과 플레이트들을 열심히 치우는 애그네스. 그리고 생일케이크가 나오면서 비로소 이 파티가 애그네스의 생일파티인 것을 알게 된다. 이토록 애그네스는 마치 옷장 속에 갇힌 사람처럼 산다. 
손님들이 간 뒤 선물을 뜯는 애그네스가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 아주머니가 준 1,000개 조각으로 된 직소 퍼즐. 그리고 뜻밖에도 애그네스는 이 퍼즐을 불과 몇 시간 만에 조합한다. 여기서 희열을 느끼게 된 애그네스는 기차를 타고 맨해턴에 있는 이 퍼즐을 판 가게를 찾아가 다른 퍼즐들을 산다. 외출을 모르던 애그네스로선 큰 일이다. 이어 애그네스는 가게 진열대 위에 놓인 구인광고에서 퍼즐 챔피언십 경연대회에 함께 나갈 파트너를 찾는다는 글을 읽는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인도계 시민 로버트(칸). 여기서부터 애그네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로버트를 찾아가 퍼즐을 푸는데 그러다보니 어떤 날은 집에 늦게 귀하면서 자상하나 아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데이빗 덴맨)에게 거짓말까지 한다.
애그네스는 로버트와 퍼즐을 풀면서 자기 내면의 열정과 능력을 새로 깨닫게 되고 이로 인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이를 지켜보는 로버트는 이 여인을 깊이 존경하게 되고 이윽고 두 사람 간에 로맨스마저 피어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다소 어색한 것이 이 로맨스다. 다행히 애그네스는 이 로맨스에 매어달리지 않는다. 자유로워진 애그네스의 마지막 모습이 흐뭇하다. R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무 밑에서’(Under the Tree)


잉가가 독기 어린 눈길로 이웃 발드윈네를 노려보고 있다.

정원의 나무 때문에 벌어지는 이웃과 분쟁이 증오·비극으로


최근 LA 인근 롱비치에 사는 한국인 남자가 자기가 사는 아파트 이웃 여인과의 분쟁 때문에 출동한 소방관을 사살한 사건이 말해주듯이 이 영화는 이웃과의 사소한 분쟁이 증오와 시기의 부채질을 받으면서 점점 커져 급기야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인간 우행에 관한 희비극이다.
시치미 뚝 떼고 사람 잡는 아이슬랜드 영화로 정원의 나무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과 비극을 다룬 가족영화이자 블랙 코미디다. 멀쩡한 사람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감정을 상해 저지르는 끔찍한 행위에 경악을 하면서도 박장대소케 만드는 우습고도 생각하게 만드는 소품이다.
레이캬빅 교외의 장난감처럼 생긴 닮은 모양의 집에서 사는 중년 후반기의 잉가(에다 뵤르그빈스도티르)와 남편 발드빈(시구르두르 시구르존슨)의 집 정원에는 큰 나무가 있다. 둘은 고양이를 키운다. 둘의 옆집에는 개를 키우는 중년 후반기의 콘라드(도르스타인 박만)와 그의 젊은 둘째 아내로 운동을 즐기는 에이뵤르그(셀마 뵤른스도티르)가 살고 있다.
그런데 두 집은 개와 고양이처럼 사이가 안 좋다. 이유는 발드빈네 큰 나무가 콘라드의 집을 가려 큰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이다. 콘라드는 몇 번이나 발드빈에게 나무 좀 자르라고 부탁했지만 발드빈은 마이동풍. 사실 발드빈은 양순한 사람인데 독기가 있는 사람은 그의 아내 잉가. 잉가는 사사건건 젊은 에이뵤르그가 맘에 안 들어 온갖 흉을 본다. 잉가가 이렇게 마음이 검어진 데는 최근에 아들이 가출해 자살한 것이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잉가 집에는 아내 아녜스에게서 쫓겨난 다른 아들 아틀리(스타인도르 흐로아 스타인도르슨)가 얹혀살고 있다. 그가 왜 아내로부터 쫓겨났는지는 후에 콘도 입주자회의에서 밝혀진다. 그런데 아틀리는 사람이 다소 어수룩해 법을 어기고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어린 딸을 유치원에서 불러내 둘이 함께 나들이를 하는데 그가 엉뚱하게 나중에 양가 분쟁의 희생물이 된다.
두 집 간의 분쟁이 이어지면서 잉가의 고양이가 실종되고 이어 발드빈의 개가 실종된다. 이 개가 얼마 있다 다시 나타나는데 이 장면이 소름이 끼치면서도 요절복통하게 우습다. 잉가의 독기를 품은 복수심은 거의 광기나 다름없다.
발드빈은 잉가의 광기에 휩쓸려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나 자기 차의 타이어들이 누군가에 의해 찢어지면서 생각을 바꾼다. 그리고 체인소와 갈퀴가 등장하면서 양가의 분쟁이 전투의 양상마저 띠운다. 한편 발드빈은 아틀리에게 콘라드가 자기 집 나무를 몰래 자르지 못하도록 마당에 텐트를 치고 망을 보라고 지시한다. 클라이맥스가 기가 막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를 모르겠다.
두 집 부부로 나온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매우 뚜렷한데 배우들이 각기 자신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외면과는 달리 안은 아주 음험하고 우울한 영화다. 잘 만들었다. 하프스타인 군나르 시구르드손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펠레처럼 차라


^월드컵 열기가 요즘 LA날씨처럼 화끈하다. 한국은 비록 16강에는 못 들었지만 2014년 월드컵 챔피언인 독일과의 대결에서 강한 투혼을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뮐러와 메시 그리고 호날두 같은 수퍼스타들이 경기에서 져 일찌감치 짐을 싸들고 귀국하는 바람에 월드컵의 스타파워도 크게 쇠약해진 분위기다. 그래도 월드컵만큼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경기는 없다.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는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브라질에 세 차례나 월드컵 챔피언십을 안겨준 펠레(77)를 꼽는다. 이런 펠레가 스크린에 나와 필드에서 공을 차면서 배우노릇을 한 영화가 ‘빅토리’(Victory^1981^사진)다. 이 영화는 2차대전 때 독일군에 포로가 된 연합군의 전직 축구선수들과 독일 대표팀과의 한판 승부를 다룬 ‘축구전쟁’ 영화다. 스포츠란 궁극적으로 극적 요소들인 인간관계와 상대방과의 대결 그리고 승패가 있는 것이어서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빅토리’도 이런 요소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실베스터 스탤론, 마이클 케인, 맥스 본 시도 등 빅스타들과 함께 펠레를 비롯해 바비 모어(영국)와 오스발도 아딜레스(아르헨티나) 및 파울 반 힘스트(벨기에) 같은 축구 수퍼스타들이 나오는 멜로드라마다. 
1943년.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새로 부임한 소장(본 시도)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영국의 스타 축구선수 출신인 포로 존 콜비(케인)에게 독일팀과의 경기를 제의한다.
이에 콜비는 다국적 전직 축구선수들로 포로팀을 구성한다. 펠레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시민이고 스탤론은 로버트 해치라는 이름의 축구 문외한인 캐나다군인으로 나온다. 한편 연합군사령부는 이 경기를 이용해 포로선수들을 탈출시킬 계획을 짠다.
파리의 콜롱브경기장.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역사적인 적간의 올스타 게임이 벌어지고 심판의 편파 판정 속에 독일팀이 전반전을 4대1로 리드한다. 그리고 하프타임을 이용해 탈출하기로 했던 포로선수들은 자유를 포기하고 후반전에 돌입,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
이 승리에 일등공신 노릇을 하는 선수가 바나나킥을 구사하는 펠레. 축구와는 거리가 먼 해치는 짧은 연습을 거쳐 골키퍼를 맡아 독일팀의 페널티킥을 방어하면서 맹활약하는데 그런 신기는 스탤론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교향곡과 함께 빌 콘티(‘록키’의 음악 작곡)의 사람 흥분시키는 음악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20분간의 축구경기를 빼면 명장 휴스턴의 영화로선 타작수준이다.
펠레에 관한 또 다른 영화로는 ‘펠레:전설의 탄생’(Pele:Birth of a Legend^2016)이 있다. 펠레의 소년시절과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와 펠레의 관계를 다룬 것인데 상투적이요 단순하고 깊이가 모자라는 졸작이다.
경기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축구영화가 ‘오프사이드’(Offside^2006)다. 2030년까지 작품 활동과 출국이 금지된 이란의 반체제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만든 베를린영화제 은곰수상작. 2006년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이란과 바레인이 격돌하는 경기를 보고파 안달이 난 소녀의 드라마인데 문제는 여자의 축구경기장 입장을 금지한 이란의 법.
그래서 소녀는 남장을 하고 입장을 했다가 들켜 역시 경기장에 숨어들었다가 적발된 몇 명의 여성팬들과 함께 경기장의 임시구치소에 수용된다. 이들을 지키는 군인이 경기를 보면서 그 내용을 여자들에게 중계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축구를 빌려다 이란의 여성차별을 비판한 작품이어서 국내 상영이 금지됐다.
제목에 베캄이라는 자기 이름이나오는데도 막상 본인은 뛰지 않는 축구영화가 ‘베캄처럼 차라’(Bend It Like Beckham^2002)다. 런던지역에 사는 보수적인 부모 때문에 부모 몰래 지역팀에서 뛰는 인도계소녀와 그를 격려하고 돕는 영국소녀(키라 나이틀리)의 우정과 강슛을 잘 섞은 영화다. 베캄은 영화 끝에 부인 빅토리아와 함께 잠깐 나온다.               
한국 사람이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가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이 만든 기록영화 ‘그들 생애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2002)다.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경기에서 북한의 천리마 축구단이 강호 이탈리아를 1대0으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던 사실을 담았다.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길 확률은 1,000대 1이어서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충격적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2022년 11월부터 12월에 걸쳐 카타르에서 열리는 다음 월드컵경기에서는 한국과 북한이 한 팀이 되어 뛰는 것을 보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