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3월 9일 월요일

‘그레이의 50가지 색조’ 다코타 존슨




“결국엔 사랑 이야기란 점에 반해서 출연”


현재 빅 히트 중에 있는 소프트 포르노‘그레이의 50가지 색조’(50 Shades of Grey)에서 변태적 성행위를 즐기는 젊은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제이미 도난)를 사랑하는 여대생 아나스타시아 스틸로 나오는 다코타 존슨(25)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여류 E. L. 제임스(필명)가 쓴 3부작 베스트셀러의 첫 작품이 원작인데 지극히 지루하고 선정적이지도 못한 무미건조한 영화로 존슨과 도난의 화학작용도 미적지근하다. 존슨은 모두 배우인 단 존슨과 멜라니 그리피스의 딸이며 그의 외조모는 히치콕의‘새들’과‘마니’에 나온 금발 미녀 티피 헤드렌이다.‘미스 골든 글로브’인 존슨은 이 영화로 첫 메이저 영화사의 작품에 주연을 맡았다. 긴 갈색 머리에 검소한 차림을 한 존슨은 아직도 소녀 같았다. 인터뷰 경험이 많지 않은 탓인지 경직된 자세로 머뭇거리면서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는데 솔직했다. 가끔 미소로 자신의 어색함과 수줍음을 가렸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긴장이 다소 풀린 듯 웃기도 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과감히 자신의 나체를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가 여자의 나신인데 당신은 나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체에 대해 두려워한다면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난 여자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수치감을 느끼지 않고 보다 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왜 이 역을 하기로 결심했는가.
“너무나 잘 알려진 얘기인데다가 얄궂은 섹스가 판을 치는 내용이어서 다소 주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용이 사랑의 이야기라는 점에 반했다.”

-부모로부터 자문이라도 받았는가.
“부모의 직업을 답습하는 자식들이라면 당연히 그 껍질을 벗어나려고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난 내 자신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라고 취급 받기를 원치 않았다. 역에 대해선 어머니로부터 자문을 받지 않았다. 어머니도 책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출연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으로 다뤘다. 어머니와는 그런 일 말고도 상의할 것이 따로 있다.”

-노골적인 섹스신을 찍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제이미와 나 사이에 먼저 신뢰와 이해를 쌓기 위해 섹스신은 촬영 마지막에 찍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그 장면에 대해 준비를 했어도 별 도움이 못됐고 촬영할 때 가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몹시 노골적이요 또 감정적이어서 취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내 역을 바닥에서부터 철저히 이해해야 했다.”

-감독 샘 테일러-존슨은 당신에게 그 장면에 대해 어떤 준비를 시켰는가.
“우린 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난 노골적인 성애장면의 모든 면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했다. 카메라 각도는 어떤 것이며 촬영팀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비롯해 모든 것을 안 뒤 촬영에 임했다.”

-영화제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크리스천(오른쪽)과 아나스타시아는 변태적 성애를 즐긴다.
“이 기자회견이다(웃음). 감정적으로 강렬히 도전적인 마지막 부분이다.”

-아나스타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 가치관이 투철하고 자신만만한 여자다. 여자에게 있어 처녀성을 잃는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도 아나스타시아는 힘과 자존을 지켰다. 난 그 점을 존경했고 그것의 한 부분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여성들이 아나스타시아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역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무엇인가.
“난 처음에 나체와 섹스신을 실제로 할 때가 가장 두렵고 힘들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것을 하기 전이 훨씬 더 두렵고 힘들었다. 막상 연기에 들어가니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역에 몰두할 수가 있어 보다 쉬웠다.”

-역을 한 뒤로 당신에게 뭔가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보다 편해졌다. 그리고 과거보다 자기 가치를 더 많이 얻게 됐다. 또 아나스타시아로부터 힘도 얻었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매주 바뀌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어떻게 용감히 받아들일 것인가.
“내 마음 어딘가에 용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이 영화를 좋아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싫어할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난 그 모두를 순순히 수용하겠다”

-역을 맡고 나서 어떻게 감정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가 있었는가.
“영화 속의 나는 실제의 내가 아니고 또 그 감정도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감정에 다다르기 위해 매우 취약하고 또 야생적인 곳에 찾아가야 했다. 몹시 지치고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작중인물을 집에까지 데려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스크린에서 자신을 본 소감은.
“아주 옛날 일 같기만 하다.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영화 출연에 대한 당신 부모의 반응은 어땠는가.
“출연이 확정되기 전에는 부모에게 그에 대해 말을 안 했다. 내가 역을 맡았다는 것을 안 뒤로 할머니와 어머니는 나를 전적으로 후원했다. 그들은 그것이 단지 직업이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 영화를 안 볼 것이며 나도 그러기를 원한다.”

-당신은 어머니 쪽을 닮았는가 아니면 아버지를 닮았는가.
“나는 할머니의 힘과 우아함을 다소 지녔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 할머니처럼 우아한 여자도 보기 드물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영리하고 우습다. 나도 어느 정도 그렇다. 그러나 난 부모 양쪽을 함께 닮은 편이다.”

-나체와 노골적인 섹스가 있는 영화에 나온 뒤로 자신의 몸에 대해 보다 더 편해졌는가.
“난 언제나 내 몸에 대해 상당히 편안하게 느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면들은 철저히 기술적인 것이어서 난 내 육체의 이미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이미와 섹스신 연습을 했는가.
“훈련과 함께 연습을 했다.

-크리스천과 같은 남자가 당신의 꿈의 남자인가.
“아니다. 내 꿈의 남자는 우습고 나이스한 남자다.”

-부모가 모두 배우여서 당연히 배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속에서 자라 나도 배우가 되리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영화의 원전인 책을 읽었을 때의 소감은.
“읽어 나가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쏜살같이 읽었다. 내가 반했던 점은 내용이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은 괴상하고 흥미 있는 동화와도 같다는 것이다. 사랑의 얘기라는 점에 사로 잡혔었다. 제1권은 이미 읽었고 나머지 두 편은 내가 할 일을 정확히 알기 위해 오디션 과정에서 읽었다.”

-애인이 있는가.
“없다. 애인이 있다면 이 영화에 대해 나와 자유롭게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남자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존경할 수 있다.”

-영화에 나오기 전에 에로틱한 작품에 흥미가 있었는가.
“난 에로틱한 책을 많이 읽었다. 난 특히 에로틱한 그림에 관심이 큰데 그 중에서도 에곤 쉴레와 그의 여자의 육체에 대한 개념을 좋아한다.”

-당신의 아버지는 남자관계에 대해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으며 당신이 애인을 집에 데려왔을 때 반응이 어땠는가.
“관계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었다. 언제나 나를 존경하며 또 늘 사랑 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남자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내가 애인을 집에 데려오면 달가워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으나 진짜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왕이면 스포츠를 좋아하는 애인을 택하기를 바랐다.”                   

-배우가 되기로 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17세 때 몰리에르의 ‘건성으로 앓는 남자’를 읽고 극중의 계모 역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그리고 난 어렸을 때 매우 격한 감정적 과정을 거치면서 옷도 자주 바꿔 입었다. 그래서 영화에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 노릇을 하면 그것이 진짜 내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나체에 대해 편안하게 느끼게 만드는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편안하게 느끼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내 부모가 내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The Second Best Exotic Marigold Hotel


쿠퍼 부인과 가이(리처드 기어)가 로맨스 무드에 젖어 있다.

이국적 풍광 속 결말 뻔한 ‘실버 로맨스’


2011년에 나와 히트한 은퇴한 영국 남녀 노인들의 인도 자이푸르에서의 삶과 티격대격과 로맨스를 그린 코미디 드라마의 속편인데 나태하고 당분이 너무 많은 소프 오페라다. 전편에 나온 영국의 연기파들이 다시 나오는데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돈을 벌 목적으로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를 영국 노인들 사이에 편입시켰다.
‘물 떠난 물고기’ 얘기인 전편은 감상적이요 플롯도 크게 놀랄 것 없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는데 속편은 같은 인물들 모아놓고 아이디어가 달려 옛 애기를 반복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가 궁하다 보니 공연히 노인네들의 사랑의 줄다리기를 억지로 엮어 뻔한 결말에 장애물을 놓아 서술이 덜컹거린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로라하는 고참 배우들과 자이푸르의 풍족과 가난이 범벅을 이룬 이국적이요 다양한 풍경을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영화 너무 사탕발림 식인데다가 모든 것이 다 말끔하고 행복하게 마무리 지어지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처리 때문에 노인용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전편에서 구닥다리 호텔을 개수해 거주를 겸한 호텔로 만들어 크게 성공한 매리골드 호텔에는 전편에서 남은 여섯 명의 영국인 노인 거주자들이 그대로 살고 있다. 주인은 아름다운 미망인 어머니 쿠퍼 부인(릴리엣 더비)과 함께 호텔을 운영하는 활기찬 청년 소니(데브 파텔이 호들갑을 떤다). 소니가 호텔 직원으로 고용한 영국인 할머니는 산성 혀를 지닌 뮤리엘 도넬리(매기 스미스). 
파텔은 호텔을 프랜차이즈로 만들려고 샌디에고에 와서 투자회사 사장 타이 벌리(데이빗 스트레테언)에게 융자를 요구한다. 자이푸르로 돌아온 소니는 벌리가 보낼 신분을 숨긴 호텔 평가자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 때 달랑 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난 남자가 미국인 가이 체임버스(리처드 기어). 그와 같은 시간에 영국인 여자 라비니아 비치(탐신 그레이그)가 어머니를 위해 호텔을 둘러보러 왔다며 투숙한다.
한편 소니는 호텔 확장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결혼식을 앞둔 약혼녀 수나이나(티나 데사이)를 소홀히 하면서도 수나이나가 자기 오빠의 번지르르한 친구 쿠샬(샤자드 라티프)과 시간을 보내자 질투를 부린다.
노인들이라고 연애 못하라는 법 있느냐는 듯이 두 쌍의 노인들의 애정문제가 서브플롯으로 나선다. 전편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한 이블린(주디 덴치)과 더글러스(빌 나이)는 공연히 아직도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고 부부인 노만(로널드 피컵)과 캐롤(다이애나 하드캐슬)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바람을 피워댄다. 그리고 노인 섹스덩어리인 매지(셀리아 임리)는 두 명의 동네 부자로부터 구애를 받는다. 
여기에 가이가 쿠퍼 부인과 로맨스를 엮으면서 노인들의 사랑에 반주를 넣는데 둘의 로맨스는 아주 어색하고 기어도 내가 왜 이 영화에 나왔지 하며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다. 끝은 요란하고 화려한 춤이 있는 소니의 결혼식으로 장식된다. 뒤는 빈민촌인데 겉만 다색으로 페인트칠한 건물과도 같은 영화다. 존 매든 감독. PG. Fox Searchlight.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채피 (Chappie)


좋은 로봇 채피(오른쪽)가 나쁜 로봇을 공격하고 있다.

“평화를 지켜라” 착한 로봇의 분투


액션이 요란한 로봇과 인공지능의 얘기로 공상과학 영화들인 ‘디스트릭 9’과 ‘엘리지움’을 감독한 남아공의 닐 블롬캠프가 연출하고 각본을 썼다. 무대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블롬캠프는 자기 영화에서 늘 사회경제적 문제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 영화는 초능력을 지닌 사악한 로봇이 인간세상을 풍비박산 내기가 일수인데 이번에는 채피라는 이름을 지닌 로봇이 범죄가 판을 치고 싸움질을 하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못난 인간을 계도하는 로봇인데 괜히 하는 소리다.  
휴 잭맨과 시고니 위버 같은 빅스타가 나오고 요즘 매우 분주한 인도 청년 데브 파텔(위 영화 참조)이 나오긴 하지만 영화는 평범한 공상과학 액션영화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과거   의 여러 로봇영화들을 얘기를 짬뽕한 것처럼 신선미가 부족한데 마치 비디오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상품을 장면에 내놓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컴퓨터와 액션 좋아하는 젊은 층을 위한 영화다.
멀지 않은 미래. 요하네스버그는 범죄가 판을 치는 험악한 도시로 전락했고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로봇들. 경찰서장 미셸(시고니 위버)이 관리하는 로봇 조종실의 프로그래머 디온(데브 파텔)은 로봇에 인공지능 칩을 넣어 사람과 또 같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하는 연구에 몰두한다.
이런 디온에 적수로 등장하는 사람이 역시 같은 경찰서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빈센트 모어(휴 잭맨). 그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 지시대로 행동하는 거대한 로봇 무스를 고안, 디온에 한 발 앞서 가려고 한다. 둘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일단 디온이 먼저 인공지능 칩을 개발해 로봇에 집어넣고 이를 채피라 명명한다.
채피(‘디스트릭 9’의 주연 샬토 코플리의 음성)의 인공지능은 아직 어린 아이의 수준이어서 아기 같이 군다. 이런 채피를 남녀 3인조 갱이 훔쳐다 자기들 졸개를 만드는 과정이 우습고 재미있다. 닌자와 요-란디 및 양카라는 이름을 지닌 3인조는 아이 같은 지능의 채피에게 도둑질하는 방법과 총 쏘는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범죄로봇으로 교육시킨다. 이를 막는 것이 채피의 창조자인 디온.
한편 빈센트는 마치 ‘로보캅’처럼 자기가 기계 안에 들어가 자의대로 조종할 수 있는 무스를 동원해 채피를 처치하려고 나선다. 그리고 보통 체격의 채피와 덩지가 산 만한 무스 간에 생사결단의 격투가 벌어진다. 여기에 채피를 위험분자로 간주한 당국마저 채피 처리에 나서면서 채피의 위험은 배가한다.
고철처럼 덜렁거리는 고장난 장난감 같은 영화로 나오는 인물들이 한 결 같이 1차원적인데다가 플롯이 씨도 안 먹히는 소리를 하고 있어 관심이 안 간다. 연기도 볼 것 없다. 
PG-13. Son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다운턴 애비’



PBS-TV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9시에 방영하는 영국 드라마 ‘다운턴 애비’(Downton Abbey)는 TV 드라마 사상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관람하는 의상 드라마다. 영국 TV의 자랑거리인 ‘매스터피스 클래식’의 한 작품인 이 드라마는 영화 ‘고스포드 팍’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탄 줄리안 펠로즈의 역작으로 한 번 보기 시작하면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나도 이 드라마의 중독자로 얼마 전 본 극중 주인공 백작 로버트 크롤리의 대저택 다운턴 애비에서 그의 온 가족과 하인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로 말미를 장식한 시즌 5가 끝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콧등이 시큰해지는 피날레였다. 현재 시즌 6를 촬영 중이다.
역시 ‘매스터피스’ 시리즈의 하나인 ‘업스테어즈, 다운스테어즈’를 연상시키는 ‘다운턴 애비’는 1910년에 즉위한 국왕 조지 5세의 통치기간에 요크셔 카운티의 다운턴 애비에서 벌어지는 로드 그랜담(로버트 크롤리를 이렇게 부른다)의 가족과 친척과 친지와 하인들의 얘기로 시즌 5는 영국 사회가 서서히 현대화하면서 귀족계급이 신분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1924년에 끝났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사라지고 또 새 인물이 등장하면서 드라마가 엮어지는데 주요 인물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이들이 각자 사연과 비밀이 있고 또 사랑하고 이별하니 그 사정이 얼마나 구구각색이겠는가.
다운턴 애비의 주인은 권위 있고 인자한 로드 그랜담(휴 본느빌)과 그의 돈 많은 현모양처 미국인 아내 레이디 코라(엘리자베스 맥거번). 과거 한 때 돈 많은 미국 여인들이 거액의 지참금을 싸들고 와 영국의 돈이 궁한 귀족 남자들과 결혼했는데 코라도 그 중 하나다.
이들 부부의 장녀로 차가운 젊은 미망인 메리(미셸 도커리)를 비롯한 딸들과(로드 그랜담의 사촌남자 상속자는 타이태닉호의 희생자다) 친척과 친지들이 위층 사람들이요, 우두머리 하인인 미스터 카슨(짐 카터)과 우두머리 하녀 미시즈 휴즈(필리스 로간)를 비롯한 하녀와 발레와 후트맨과 쿡들이 아래층 사람들.
그런데 하인층에서도 계급의식이 위층만큼이나 철저해 미스터 카슨이 식당엘 들어오면 모두들 기립한다. 어깨에 힘 들어간 위층 사람들의 얘기도 재미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흥미 있는 것이 아래층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다.
위층 사람들 중에(다운턴 애비에서 떨어진 곳에 살긴 하지만) 톡톡 튀는 사람이 로드 그랜담의 어머니인 백작 미망인 바이올렛(매기 스미스-시즌 6로 드라마에서 퇴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앙시앙 레짐’의 전형적인 인물인 이 냉소적인 독설가가 “주말, 주말이 뭐야”라며 평민들을 깔보는 발언을 할 때면 웃으면서도 심기가 뒤틀린다. 놀고 먹는 그에겐 매일이 주말이니까 나온 말이다.
아래층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고 흥미롭게 보는 사람은 미스터 카슨이다. 그는 하인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로드 그랜담보다 더 권위적이요 구식이다. 그래서 얼마 전 ‘다운턴 애비’의 세트 방문차 런던에 갔을 때도 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미스터 카슨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내가 “카슨씨, 당신은 로드 그랜담보다 더 보수적이요 귀족적이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아무렴 그렇지요”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큰 코와 검고 굵은 눈썹에 묵직한 마스크를  한 그의 육중한 저음이 오페라에 나왔으면 딱 맞겠는데 그래서 내가 “카슨씨, 오페라 출연 제의 받은 적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나 음치입니다”라며 껄껄대고 웃었다.
2월의 런던답게 런던서 차로 1시간 반쯤 떨어진 다운턴 애비의 실제 모델인 촬영장소 하이클레어 캐슬에 찾아간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뿌연 연무 속에 저 멀리 다운턴 애비(사진)가 보인다. 아는 집이나 방문하듯 반가웠다. 이 캐슬은 1749년에 지은 것으로 현 주인 레이디 카나본이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우리들을 반갑게 맞았다.
로드 그랜담과 레이디 메리가 도서실에서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저택 안팎을 둘러 본(무지무지하게 넓고 크다) 뒤 출연진들과의 기자회견에 이어 점심을 그들과 함께 했다. 줄리안 펠로즈와 매기 스미스를 비롯해 자리에 함께한 배우들이 초면인데도 TV로 자주 봐 구면 같다. 식사 장소에는 귀족들이 사냥할 때 입는 빨간 코트와 검은 모자 등 드라마의 의상이 진열돼 있어 나도 코트 입고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보니 아주 어색하다. 귀족이 될 팔자가 아닌가 보다.
런던에 돌아와 상류층 프라이빗 클럽인 새빌 클럽에서 미스터 카슨의 “레이디즈 앤 젠틀멘 디너 이즈 서브드”라는 통보에 따라 로드 그랜담과 레이디 코라 등 극중 인물들과 함께 포도주를 겸한 저녁을 들면서 훈훈한 기운 속에 얘기를 나눴다. 제일 궁금한 것이 시리즈가 언제 끝날까 하는 점. 그러나 이에 대해 펠로즈를 비롯해 출연진 모두가 “그 건 나도 몰라요”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긴 미리 알면 재미가 없긴 하지. 시즌 6가 학수고대 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