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이야기 중의 이야기(Tale of Tales)


임신 못하는 왕비(샐마 하이엑)가 왕이 죽인 바다 괴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


세 왕국에서 벌어지는‘무궁무진한 환상의 세계’


옛날 옛적 먼 나라 성에 임금님과 왕비와 공주와 왕자가 살았으니 하면서 시작되는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동화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또 어둡고 겁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공동제작 영화다. 
17세기에 쓰여진 나폴리 동화가 원작인데 섹스 신과 무서운 장면이 있어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당치 않다.
이웃에 사는 세 나라의 왕과 왕비의 얘기가 오락가락하면서 이어지는데 왕과 왕비뿐 아니라 괴물 같은 인간과 바다괴물에 벼룩과 곡예사 등이 나와 보는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야말로 이야기 중의 이야기로 총천연색 촬영과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약간 귀기 서린 잔잔한 음악(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유명 스타들의 앙상블 캐스트 등이 다 좋은 얘기 풍성한 작품이다. 
먼저 아기를 못 낳아서 고민하는 왕비(샐마 하이엑)의 얘기. 왕(존 C. 라일리)은 귀신같은 무당이 왕비에게 말해준 임신 비법을 실현키 위해 자살임무나 마찬가지인 해저 괴물의 심장을 꺼내려고 잠수한다. 왕은 임무수행 후 죽는다. 이 심장을 뜯어 먹은 왕비는 그 날로 임신, 이튿날 왕자를 낳는다. 그런데 심장을 요리한 처녀 하녀 역시 요리 연기를 맡고 임신, 왕비와 같은 날 남아를 낳는다. 
두 아이는 모두 피부색소 결핍증의 눈 같이 하얀 머리와 피부를 지녔는데 왕비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둘(크리스티안과 조나 리스)은 없으면 못 사는 형제애로 뭉친다. 이 아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왕비가 무당말을 들었다가 불상사가 생긴다.
두 번째 얘기는 벼룩을 지극히 사랑하는 왕(토비 존스)과 그의 혼기가 찬 공주(비비 케이프)의 얘기. 자기 피를 먹여 키운 벼룩이 죽자 실의에 빠진 왕이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정, 신랑감을 찾기 위한 퀴즈를 내는데 이를 푼 것이 괴물인간(기욤 드로네이). 공주는 괴물이 사는 암산 꼭대기 동굴에 살면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줄 타는 곡예사의 도움으로 탈출을 하나…
마지막 얘기는 이 두 얘기 사이에 낀 여자 좋아하는 왕(뱅상 카셀)의 이야기. 왕은 얼굴을 못 본 동네 여자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반해 여자의 집을 방문하는데 노래를 부른 여자는 얼굴과 온 몸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도라(헤일리 카마이클). 도라는 언니 임마(셜리 헨더슨)와 함께 사는데 마법이 일어나면서 도라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다. 이 세 얘기가 서로 교묘하게 연결된다.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냥꾼: 겨울 전쟁(The Huntsman: Winter’s War)


사악한 여왕 언니에게 배신당한 프레이아는 얼음여왕(왼쪽)이 된다.

내용도 엉성하고 연기도 어정쩡한 얼어붙은 동화



2012년에 크리스튼 스튜어트가 백설공주로 나온 ‘백설공주와 사냥꾼’의 후속편으로 동화 ‘백설공주’를 제멋대로 변용한 특수효과 위주의 친근감 없는 영화다. 제목처럼 내용과 연기와 배우들의 상호작용이 얼어붙어 동화가 영혼이 빠진 딱딱한 습작문 같다.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잘 생긴 배우들과 의상은 구경거리이나 얘기도 엉성하고 연기도 어정쩡한데 특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백설공주는 간 곳이 없고 그 주위의 인물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허전하다. 전형적인 외화내빈의 스튜디오 영화로 배우들이 아깝다.
백설공주의 계모로 수리수리 마수리를 할 줄 아는 사악한 여왕 라베나(샬리즈 테론)에게 착한 여동생 프레이아(에밀리 블런트)가 있는데 라베나가 마법을 써 프레이아의 애인으로 하여금 둘 사이에서 난 아기를 태워 죽이게 한다.
그래서 프레이아는 사랑을 저주하는 얼음여왕이 돼 북쪽에 왕국을 차리고 혼자 살면서 납치해온 아이들로 ‘사냥꾼’이라는 부대를 구성해 지상에서 사랑을 쓸어버리려고 한다. 납치된 아이들 중에 소년 에릭과 소녀 새라가 있는데 둘은 커서 얼음여왕의 명을 어기고 사랑에 빠진다. 이를 본 얼음여왕이 에릭(크리스 헴스워드)과 새라(제시카 채스테인) 사이에 얼음벽을 치고 둘을 갈라놓은 뒤 부하를 시켜 새라를 살해한다.            
그로부터 7년 후. 백설공주(등만 보인다)의 명에 의해 괴물의 손에 들어간 라베나 소유의 마법의 황금거울 회수에 나선 에릭이 자기를 돕는 7~8명의 남자 난쟁이와 두 명의 여자 난쟁이(이 두 여자 난쟁이와 두 명의 남자 난쟁이의 코믹한 콤비가 헴스워드와 채스테인의 그것보다 백배 낫다)와 함께 적을 맞아 칼부림을 하면서 액션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7년 전에 죽었는 줄 알았던 새라가 살아나 에릭 앞에 나타난다. 에릭은 새라에게 “난 네가 죽는 것을 분명히 봤다.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고 호소하나 새라는 “넌 날 버린 배신자다. 난 사랑을 더 이상 안 믿는다”고 억지를 쓴다. 둘이 노는 모습이 아주 어색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라베나와 프레이아의 사생결단의 자매 싸움이 벌어지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피곤한 영화다.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이얀의 연출 솜씨가 무디다.
PG-13. Universal.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의 아시안




올 오스카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몽땅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던 할리웃이 이번에는 2편의 메이저 영화에서 주요 아시안 역에 백인을 써 또 다른 구설수에 말려들고 있다.
오는 11월4일에 개봉될 마블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가 자기 계몽과 구제를 찾아 히말라야에 가 티벳인 여도사 에인션트 원 밑에서 수련 후 세상을 보호하는 마법사가 된다는 얘기. 그런데 이 아시안 도사 역을 순백의 틸다 스윈튼이 맡고 있다. 또 내년 3월에 개봉될 패라마운트의 공상과학 액션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은 일본의 인기 만화와 영화가 원전으로 여기서 초정밀 기계와도 같은 특수부대 요원 메이저 소령의 본명은 구사나기 모도꼬. 그런데 이 구사나기 역도 역시 순백의 스칼렛 조핸슨이 맡았다. 
할리웃이 아시안 역에 백인배우들을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희극적인 것이 ‘정복자’에서 징기스칸으로 나온 존 웨인. 말론 브랜도도 ‘8월 달의 찻집’에서 찢어진 눈을 한 일본인 통역사로 나온다. 또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는 ‘대지’에서 중국인 부부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아시안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일본인으로 나온 미키 루니. 큰 뿔테안경에 기모노를 입고 뻐드렁니를 한 루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같은 아시안으로서 모멸감에 속이 다 메슥거린다.
할리웃은 백색지대여서 오래 전부터 아시안뿐 아니라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등 소수계 역을 백인배우들이 해왔다. 첫 유성영화 ‘재즈 싱어’에서는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백인배우들로 아메리칸 인디언 역을 한 사람들은 록 허드슨, 제프 챈들러, 찰스 브론슨, 버트 랜카스터와 오드리 헵번 및 데브라 패젯 등이 있다. 자니 뎁도 몇년 전에 ‘로운 레인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톤토로 나왔다. 백인 수퍼스타로 유명 멕시칸 실제인물 역을 한 것이 말론 브랜도. 그는 ‘비바 사파타!’에서 멕시코의 풍운아 사바타로 나왔다. 
할리웃이 이렇게 제멋대로 피부색을 무시하는 이유는 물론 흥행 때문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에 인기 백인스타가 아닌 아시안을 비롯한 비백인을 썼을 경우 흥행에 실패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요즘 할리웃 흥행 총수입의 70%가 해외시장 몫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아시안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몫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도 할리웃은 영화의 중요한 역에 아시안 배우를 쓰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한국시장이 할리웃의 중요한 판매처로 등장하면서 최근 들어 할리웃은 한국 팬들 나아가서 아시아권 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양권에서 잘 알려진 한국 배우들을 더러 쓰고 있다.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이지만 아주 가끔 주연으로도 쓴다. 
오래 전에 박중훈이 ‘찰리의 진실’에 조연으로 나왔고 가수 비도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새신’에서 각기 조연과 주연으로 나왔으며 장동건도 ‘워리어스 웨이’에서 주연을 맡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영화들은 다 평과 흥행면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한국 배우가 할리웃 영화에 조연으로 나와 빅히트한 것은 스칼렛 조핸슨이 나온 액션 스릴러 ‘루시’. 여기서 최민식이 킬러 두목으로 나와 칭찬을 받았는데 흥행성공은 물론 조핸슨 탓이다.               
배두나도 2012년 탐 행스가 나온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조연했으나 이 영화는 평과 흥행이 다 나빴다. 
한국 배우로 명실 공히 국제적 배우의 문턱에 올라선 사람이 이병헌이다. 물론 다 조연이나 그는 ‘G.I. 조’ ‘레드 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및 ‘미스칸덕트’ 등 여러 편의 할리웃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그의 할리웃 영화로 지금 기대되고 있는 것이 오는 9월23일에 개봉될 웨스턴 ‘황야의 7인’. 이 영화는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매퀸이 니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로 원작은 구로사와 아끼라의 ‘7인의 사무라이’. 안트완 후콰가 감독하는 리메이크에는 덴젤 워싱턴과 이산 호크 등이 나오는데 이병헌은 검은 옷차림의 건맨 빌리 락스(사진)로 나온다.   
할리웃의 아시아계 배우 홀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타 아시안들보다 유난히 많이 할리웃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 마가렛 조, 켄 정, 릭 윤, 윌 윤 리, 성 강, 스티븐 연, 랜달 박, 존 조, C.S. 리, 대니얼 대 김, 그레이스 박, 샌드라 오, 제이미 정, 그레타 리 등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영화와 TV에서 활동하고 있다.      
할리웃이 비백인 역에 백인을 쓸 때마다 내세우는 말이 “배역 선정은 색맹이다”라는 것. 그런데 이 말은 소위 유색인종 역에 백인배우를 쓸 때만 적용되는 일방통행용이다. 할리웃은 언제나 백색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