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로레인이 좁은 복도에서 발길질로 적을 제압하고 있다.

냉전시대 미녀 스파이의 핵폭탄급 액션


제목 그대로 원자탄급 폭력과 격투기술을 지닌 백금발의 장신 미녀 스파이가 냉전시대 베를린에서 이중삼중의 음모와 배신을 겪으면서 닥치는대로 적국의 스파이를 때려누이는 스파이 액션 스릴러로 주인공 역의 샬리즈 테론의 핵폭탄 액션이 장관이다. 
얘기에 신경 쓸 것 없이(이런 장르의 영화의 결점인 약한 얘기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공연히 플롯이 복잡하다) 테론의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온 몸으로 가격하는 액션을 보면서 즐기면 될 영화다. 멋있고 아찔하고 사납고 쿨한 액션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스카 수상자인 연기파 테론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도 머리를 밀고 나와 맹렬한 액션을 구사했는데 이 영화로 명실공히 액션에 능한 배우가 된 셈이다. 이 영화는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액션 영화 ‘존 윅’을 연출한 스턴트맨 출신의 데이빗 리치가 감독했는데 두 영화가 서로 액션 장면이 닮았다. 
시대가 냉전시대여서 복고풍인데 특히 제임스 본드 영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본드가 영국 해외첩보부인 MI6 소속이듯 테론이 영화에서 소속된 기관도 MI6여서 더 그렇다. 차갑고 스타일 갖춘 여름철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줄 오락영화다. 그래픽 노블 ‘더 콜디스트 시티’가 원작.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영화는 처음에 얼굴과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영국 스파이 로레인 브러턴(테론)이 얼음으로 채워진 욕조에 몸을 담은 뒤 얼음이 든 보드카를 마시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막 베를린에서 돌아온 로레인이 MI6 본부에서 자기 상사(토비 존스)와 미 CIA고위 요원(존 굿맨)에게 베를린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장면이 과거로 돌아간다. 
로레인은 망명한 러시아 스파이(에디 마산)가 가로챈 영국과 미국 스파이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회수하기 위해 베를린에 온 것이다. 여기서 로레인을 돕는 사람이 베를린 주재 영국 스파이 데이빗 퍼시발(제임스 매카보이). 그런데 완전히 베를린의 지하세계와 펑크문화에 젖어든 데이빗은 로레인의 동료이면서도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명단 회수 과정에서 로레인은 겹치는 배신 속에서 과연 누가 적이고 누가 동료인지를 몰라 혼란에 빠지는데 러시아 스파이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스파이도 로레인을 감시하고 추적한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스파이 델핀(소피아 부텔라)과 로레인과의 관계가 자극적인데 처음에는 서로 적으로 격투를 벌이던 둘이 급기야 침대에 들어 액션만큼이나 격렬한 정사를 치른다.
영화에서 가공할 정도로 멋있고 치열하고 흥분되는 장면은 로레인이 아파트 실내와 좁은 계단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을 상대로 장시간 육박전을 벌이는 것. 주먹과 굽이 칼날 같이 뾰족한 구두와 온 몸을 사용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서로 치고받는데 액션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박력 있는 격투다. 이와 함께 로레인이 정원용 호스를 사용해 높은 아파트에서 지상으로 비상하는 장면도 아찔하게 멋있다. 액션을 찍은 촬영도 보기 좋다.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릭스비 곰(Brigsby Bear)


곰의 탈을 들고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제임스.

지하벙커서 자란 남자 세상에 나왔는데…


세속의 때에 오염된 우리 모두가 보고 내면을 정화시킬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거의 선험적 경험을 겪게 만드는 아름답고 우습고 통찰력 있는 선한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외부와 차단된 지하벙커에서 자란 남자가 뒤늦게 자유를 맞아 사회에 자기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아울러 주변 사람들을 순진무구한 영역으로 안내하는 얘기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제임스는 아기 때 한 부부(마크 해밀과 제인 애담스)에 의해 납치돼 지하벙커에서 자란다. 이들은 지상은 오염됐다며 제임스에게 외부 세상에 대한 공포를 주입시킨다. 제임스는 TV로 사람 크기의 장난감 곰 브릭스비가 쌍둥이 인간 자매와 함께 우주를 위험에서 구하는 싸구려 시리즈를 보면서 자라 이에 중독이 됐는데 이 프로는 자기를 납치한 남자가 만든 것.
제임스(카일 무니)가 어른이 된 뒤 경찰에 의해 구출이 되고 사건 전담형사 보겔(그렉 키니어)은 제임스와 친부모(맷 월시와 미카엘라 왓킨스)와의 재결합을 주선한다. 제임스의 새 사회에의 적응을 적극적으로 돕느라 노력하는 부모와 제임스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이 제임스의 고교생 여동생 오브리(라이안 심킨스). 
제임스의 새 세상에 대한 적응 노력과 오해와 실수와 좌절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제임스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 구경을 갔다가 누구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어  자기도 브릭스비 곰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이런 제임스를 돕는 사람이 오브리의 학교 친구 스펜서(호르헤 렌데버그 주니어). 
그리고 스펜서가 제임스가 소유한 ‘브릭스비 곰’ 에피소드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에 힘입어 제임스와 스펜서는 제임스를 납치했던 남자가 쓴 장난감 곰 옷과 소도구를 사용해 영화를 만든다. 제임스의 이런 천진난만한 의도에 점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브리와 보겔까지 전염이 되면서 영화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론 각본도 제임스가 썼다. 영화가 완성되고 시사회가 열린다.
세상의 때가 아직 하나도 안 묻은 아기의 마음을 지닌 가슴이 뭉클하도록 감동적인 영화로  이 풍진 세상을 분투하면서 사느라 오염된 마음을 돌아다보게 만든다. 제임스가 되고픈 마음이 든다. 무니의 티 없이 순진하고 순수한 연기가 보기 좋다. 
데이브 맥케리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 보울의 토니 베넷




사람이 90세까지 살기도 드문 일인데 9순에 무대에서 춤까지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야 말로 하늘의 복을 타고난 일이다. 오는 8월 3일로 91세가 되는 ‘샌프랜시스코에 마음을 두고온 남자’ 토니 베넷의 할리웃 보울 공연은 그의 히트송 ‘이츠 어 굿 라이프’처럼 베넷의 보통 사람과 가수로서의 길고 좋은 인생을 팬들과 함께 자축하는 파티와도 같았다.
지난 달 14일 저녁 이제 보면 마지막 보는 것이 되리라는 다소 쓸쓸한 마음을 안고 보울에서 노래하는 베넷의 노래를 들으러 갔다. 그러나 나의 이런 운명론적인 생각은 생기발랄하고 원기왕성한 베넷이 1시간여를 쉬지 않고 불러대는 노래들로 인해 생명예찬으로 돌아섰다.
이날 공연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사진)의 반주라는 이색적인 형식으로 이뤄졌다. 제1부는 LA필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과 ‘나부코’ 서곡과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영화 ‘샤레이드’와 ‘문 리버’의 음악연주로 진행됐다.
제2부가 시작되면서 베넷이 종종걸음으로 무대에 나오자 팬들이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그를 맞았다. 나도 신나게 박수를 쳤다. 재즈와 팝가수인 베넷은 특유의 약간 갈라지는 듯한 쇳소리로 ‘스테핑 아웃 위드 마이 베이비’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 ‘후 캔 아이 턴 투’ 등 스탠다드 20여곡을 불렀다. 어딘가 약간 답답한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베넷이 까칠까칠한 비단결을 지닌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들은 클럽에서 스카치를 마시면서 들으면 딱 좋을 노래들로 나는 특히 베넷이 요절한 컨트리 싱어 행크 윌리엄스의 히트송을 편곡해 부른 ‘콜드, 콜드 하트’를 좋아한다.
베넷은 꼿꼿이 서서 왼 손에 마이크를 잡고 미소를 지으면서 ‘저스트 인 타임’ ‘아우어 러브 이즈 히어 투 스테이’ ‘더 웨이 유 루크 투나잇’ 등을 쉬지 않고 노래했는데 반주는 주로 그와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어온 4인조 밴드가 했다. LA필은 베넷의 노래를 몇 곡 반주했지만 들러리 같은 역할이었다.
베넷의 음성은 재즈가수답게 달콤하면서도 로맨틱하지만 강한 고음에 오를 때면 오페라 가수 못지않게 강렬한데 특히 그는 노래 마지막에 이 강한 고음을 자주 사용한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강렬하다.
베넷은 절제되고 깨끗한 제스처를 쓰면서 군더더기 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의 히트송들인 ‘랙스 투 리치즈’ ‘불러바드 오브 브로큰 드림즈’ ‘아이 갓 리듬’ ‘셰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디스 이즈 올 아이 애스크’ 등을 듣고 있자니 ‘올디즈 벗 구디즈’의 기분에 젖어 갖고 간 레드와인을 거푸 마셨다. 그의 노래하는 모습은 우아하고 세련됐는데 생의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노래도 청중보다 자기가 더 즐기는 듯했다. 춤까지 추어가면서 아이처럼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는데 끝나는가하면 “즐기고들 있나요” “가기 전에 한 곡 더 들을래요”라면서 또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불이 켜져 이제 끝나나 했더니 베넷은 “계속하자”면서 다시 노래, 청중의 커튼콜에 답례했다. 베넷의 간판곡은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랜시스코’. 공연 말미에 노래했는데 이날 ‘랙스 투 리치즈‘ 등 일부 노래는 짧게 줄여 메들리 식으로 불렀다.
베넷의 첫 히트곡은 그가 1951년에 음반으로 취입한 ‘비커즈 오브 유’. 그 뒤로 지금까지 무려 66년간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의 큰 업적은 음반을 통해 거쉬인과 어빙 벌린 및 줄 스타인 등 미국 작곡가들의 미국 정통노래들을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도록 편곡해 알려준 것. 지금까지 팔린 음반은 수천만 장이며 그래미상을 무려 19개나 받았다.
이탈리아계로 뉴욕 퀸즈의 아스토리아에서 태어난 베넷은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젊었을 때 노래하는 웨이터로도 일했다. 그림 솜씨가 프로급이어서 그의 그림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됐을 정도다. 베넷은 2차대전시 벌지전투에서 싸운 베테런이며 마틴 루터 킹과 함께 셀마에서 민권운동 행진을 한 인본주의자다. 이 행진에 베넷과 함께 참가한 사람이 유명 흑인 가수이자 배우인 해리 벨라폰테로 벨라폰테도 올 해 90세가 되었다.
베넷은 본명은 앤소니 도미닉 베네데토. 그가 제대 후 뉴욕에서 뮤지컬 배우로 일 할 때 그의 노래를 듣고 반한 밥 호프가 무대 뒤로 베넷을 찾아와 LA로 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름을 토니 베넷으로 고쳐주었다.
베넷은 인본주의자로서의 업적으로 인해 UN으로 부터 ‘세계의 시민 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라이브라리 오브 콩그레스에 의해 ‘거쉬인 프라이즈 포 포퓰라 송’ 수상자로 선정됐다. 다른 작곡가들의 노래를 해석해 부른 가수가 이 상을 받기는 베넷이 처음이다. 베넷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결코 은퇴를 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 리브 토니 앤 시 유 어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