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3월 24일 월요일

‘신 시티: 어 데임 투 킬 포’(Cin City: A Dame to Kill For)

스트립 댄서 제시카 알바




부패하고 폭력적인 도시 속의 사납고 거친 무법자들과 스트리퍼를 비롯한 발가벗은 여자들이 나오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신 시티’는 2005년에 밀러와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공동으로 연출한 올스타 캐스트의 실루엣 스타일이 멋있는 흑백 필름 느와르로 만들어져 컬트무비가 됐었다.
이 영화의 속편인 ‘신 시티: 어 데임 투 킬 포’(Cin City: A Dame to Kill For)가 역시 두 감독에 의해 입체영화로 만들어져 8월22일에 개봉된다. 영화에는 전편에서 스트리퍼로 나온 제시카 알바가 역시 스트리퍼 낸시 캘래한(사진 왼쪽)으로 나와 존 하티간(브루스 윌리스)의 죽음에 앙갚음하는 복수의 천사로 나온다.        
전편에서 악한 마브로 나온 믹키 로크(사진 오른쪽)가 같은 역을 다시 맡고 조셉 고든-레빗이 운수 나쁜 도박자로 나온다. 이밖에도 한국계 배우 제이미 정과 가수 레이디 가가 그리고 에이바 그린과 파워즈 부스 및 로사리오 도슨 등 전편처럼 초호화 올스타 캐스트가 나온다.


‘멀레피슨트’(Maleficent)

마녀가 된 앤젤리나 졸리




디즈니의 1959년작 만화영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Sleeping Beauty)에서 공주 오로라를 영원한 잠 속에 빠지게 만든 저주를 한 마녀 멀레피슨트(아래 사진 왼쪽)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멀레피슨트’(Maleficent)가 5월30일에 개봉된다. 
제작비 2억달러가 든 영화에서 멀레피슨트 역은 앤젤리나 졸리(38)가 맡았는데 졸리는 머리에 뿔을 하고 새 빨간 입술에 노란 눈알 그리고 갈퀴 같은 손톱을 한 무시무시한 마녀(사진 위)로 분장한다.
멀레피슨트가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한 까닭은 공주의 세례 때 초청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멀레피슨트는 화가 나면 입에서 파란 불을 뿜는 겁나게 사악한 용으로 변신한다. 그런데 졸리는 한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무서웠으면서도 자기가 가장 좋아한 동화 속 인물이 멀레피슨트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아기 오로라로는 졸리의 친딸 비비엔(아래 사진 오른 쪽)이 나오고 10대의 오로라로는 엘리 패닝이 나온다. 

머핏 모스트 원티드 (Muppets Most Wanted)

머핏 일당의 난장판 코미디 속편


신원 오인으로 시베리아 수용소에 구치된 개구리 커밋과 예쁘지만 
모진 수용소장 나디아(티나 페이).

2011년에 나온 머핏 일당의 난장판 코미디의 속편으로 가족용 액션 코미디 뮤지컬이다. 그런데 릭키 제르베스와 티나 페이 등 1류 코미디언들이 개구리 커밋과 미스 피기 등 머핏 일당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고 또 셀린 디온과 레이디 가가와 조쉬 그로반 등 여러 가수와 레이 리오타와 크리스토프 월츠 등 많은 배우들이 캐미오로 나온 영화 치곤 재미가 드문드문하다.
영국인 감독 제임스 보빈이 공동으로 쓴 각본이 매우 약한데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해 신선함이 모자라고 독창성이 결여됐다. 영화에서 하나 건질 만한 것은 활기차고 즐거운 음악과 노래로 신난다.
서푼짜리 날사기꾼으로 순회공연 매니저를 자처하는 ‘넘버 투’ 도미닉(제르베스)이 전편서 재결합한 커밋과 미스 피기 등 머핏 일당과 유럽 순회공연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도미닉의 본 목적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탈출한 커밋과 똑같이 생긴(오른쪽 볼에 검은 사마귀가 하나 있는 것 빼고) 사악한 범죄자로 자신의 두목인 ‘넘버 원’ 콘스탄틴과 함께 런던의 국보급 왕관을 훔쳐내는 것이다.
러시안  액센트를 쓰는 콘스탄틴이 커밋의 신원을 도용해 머핏들과 순회공연에 나서고 진짜 커밋은 콘스탄틴으로 오인 받고 체포돼 시베리아로 송환된다. 커밋은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나 아름다우나 무서운 수용소장 나디아(페이)는 들은 척도 안 한다. 더구나 나디아는 오래 전부터 커밋을 열렬히 사모해 와 커밋을 놓아줄 생각이 전연 없다.
머핏들의 순회공연은 런던과 마드리드와 더블린과 베를린을 돌면서 진행되는데 도미닉과 콘스탄틴은 목적지를 옮길 때마다 귀중한 미술품들이 소장된 미술관 옆에 숙소를 마련하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도미닉이 미술관에 침투해 도둑질을 한다.
이 와중에도 미스 피기는 자신의 커밋에 대한 열렬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표시하면서 결혼을 졸라대나 커밋은 미스 피기를 사랑하면서도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어 미스 피기의 적극적 공세에 머무적거린다. 상상의 장면에선 둘이 두 아이까지 둔다.  
콘스탄틴의 뒤를 쫓는 형사가 인터폴 소속의 콧수염을 한 장 피에르 나폴레옹(타이 버렐). 이와 함께 미국에서도 CIA 요원 샘 이글을 파견해 범인을 뒤쫓는데 나폴레옹과 이글은 서로를 고깝게 보면서도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커밋의 지휘와 연출에 따라 수용소의 죄수들이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는 것. 2편이 흥행서 성공하면 3편이 나올 모양인데 흥행서 크게 성공할 것 같지가 않다.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다이버전트 (Divergent)

황폐화한 미래, 시카고에 쿠데타 음모가…


트리스(셰일린 우들리·왼쪽)와 포(테오 제임스)가
전쟁게임에 나서고 있다.
‘트와일라이트’와 ‘헝거 게임즈’ 시리즈 등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영 어덜트’(YA)를 위한 영화처럼 이 영화도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작가는 베로니카 로스로 그가 22세 때 썼다. 공상과학 액션 모험영화에 로맨스를 곁들인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헝거 게임즈’를 많이 닮았는데(차라리 베껴 먹었다고 해야 옳겠다) 로렌스처럼 영화의 주인공인 셰일린 우들리를 빅스타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사전 소문이 나돌았으나 영화가 진부한 데다가 연기파인 우들리의 연기도 겁먹은 듯이 주춤해 과연 소문대로 될지 극히 의문이다.
140분짜리 긴 영화로 영화가 생명력과 힘이 없고 필요 없이 같은 내용을 반복해 지루하다. 이미 나온 ‘YA’ 영화들의 군데군데를 빌려다가 짜깁기를 한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데 소설이 3부작이어서 이미 제2편이 사전 제작단계에 들어갔으나 제1편이 흥행서 ‘헝거 게임즈’처럼 대박을 터뜨릴 것 같지가 않다. 
지구가 황폐화한 미래의 시카고. 파괴된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있는 시카고에는 사람들이 각기 자신들의 덕목에 따라 다섯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평화 공존하고 있다. 그룹은 ‘박식’ ‘이타주의’ ‘평화’ ‘정직’ 그리고 ‘용기'.
사람들은 누구나 16세가 되면 가상실제의 적성검사와 실험실에서의 테스트를 거쳐 5개의 그룹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부모와 오빠와 함께 ‘이타주의’ 그룹에 속한 베아트리스(우들리)가 테스트를 받은 후 뜻밖에도 3개의 그룹에 속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 이런 사람들은 일종의 변종들인 ‘다이버전트’로 불리는데 시카고의 평화 공존에 해가 되는 부류로 몰려 국외자로서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산다.   
그런데 베아트리스를 검사한 사람(매기 Q)이 결과를 베아트리스에게만 알려주고 보고를 안 한다. 항상 시카고의 경찰 구실을 하는 ‘용기’그룹의 액션을 동경하던 베아트리스는 그룹선택의 날 부모의 기대와 달리 ‘용기’를 선택하면서 이 그룹의 일원이 된다. 영화는 동일화를 요구하는 기성사회 체제에 대한 저항과 보금자리를 떠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10대들의 처지를 얘기하고 있지만 강렬히 어필하도록 묘사되지 못했다.
‘용기’ 그룹에 들어간 베아트리스는 이때부터 트리스라 불리면서 정식 그룹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자기와 같은 신입생들과 함께 맹훈련에 들어간다. 연약한 트리스를 눈여겨보면서 훈련을 도와주는 사람이 젊고 신비에 싸인 미남 교관 포(테오 제임스-잘 생겼는데 연기는 뻣뻣하다). 둘이 사랑에 빠질 것은 뻔한 일.
이 훈련과정이 너무 오래고 계속해 반복되는데 여러 명의 비슷비슷한 젊은 배우들이 치고 박고 떠들고 우정을 맺고 또 반목하면서 쓸데없이 시간을 끈다. 30분 정도는 잘라내도 된다.
한편 성난 황소처럼 콧구멍을 너울거리는 ‘박식’그룹의 지도자 지닌(케이트 윈슬렛)이 ‘다이버전트’를 모두 없애버리고 정부 지도자들로서의 구실을 하는 ‘이타주의’ 그룹을 제거하려는 쿠데타를 음모하면서 트리스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내용이나 연출이나 연기를 비롯해 영화가 전반적으로 활력과 박력 그리고 액션과 긴장감이나 충격이 극히 말랑하고 나태해 크게 관심을 유도하지도 또 큰 재미도 주지 못한다. 닐 버거 감독. 
PG-13. Summi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앙가주망




최근 월스트릿 저널에 난 독일의 저명한 지휘자 크리스토프 폰 도크나니(84)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새삼 예술가를 포함한 지식인들의 사회ㆍ정치문제 참여를 생각했다. 2차 대전 때 법학자였던 아버지와 신학자를 포함한 3명의 삼촌이 반히틀러 음모죄로 나치에 의해 처형된 도크나니는 “난 예술가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달갑지 않다”면서 “예술을 보다 많이 알고 이해할수록 그것의 가치를 더욱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당신은 일찌감치 음성을 높이고 또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면서 나치 선전상 괴벨스 앞에서 지휘를 한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비판했다.
난 이 글을 보고 요즘 자기 조국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ㆍ사회적 혼란에 대해 음성을 높이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LA필의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사진)이 생각났다. 두다멜은 2월12일 카라카스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던 군에 의해 사상자가 생긴 와중에 정부를 비롯한 각계 유명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시몬 볼리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이에 대해 그의 고국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가브리엘라 몬테로가 페이스북을 통해 “두다멜은 더 이상 시민들에 의해 독재적이라고 비난 받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가 없다”는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두다멜을 난처한 입장에 몰아넣었다.
두다멜은 이에 “우리의 음악은 평화의 전세계언어다. 우리의 음악과 우리 손에 쥔 악기로 우리는 폭력에 대해 절대적 반대를 그리고 평화에 대해 전폭적인 찬성을 선언한다”면서 “내가 정치가라면 개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행동하겠지만 나는 예술가로서 모두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답했다.
두다멜은 조국의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들려준 뒤 협동과 근면과 음악을 가르쳐주는 전국적 음악교육제도인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그는 이 제도의 비정치적 정신을 이유로 정치적 발언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몬테로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두다멜의 이런 상징적 발언에 불만을 표하면서 정부제도인 엘 시스테마를 위해 지휘를 하는 것은 독재적이요 비기능적인 정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르트르의 철학으로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Engagement)은 사회ㆍ정치적 혼란 속에서 활기를 띤다. 예술가와 작가, 성직자와 언론인 등 정의와 선과 진실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나머지 보통 사람들을 대신해 ‘앙가주망’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런 뜻에서 예수야말로 ‘앙가주망’의 선두주자라고 하겠다.
프랑스의 두 실존주의 작가이자 철학가인 사르트르와 카뮈는 ‘앙가주망’의 대표적 인물이다. 사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전쟁 때 정부의 알제리 정책을 맹렬히 비판한 한 때 공산주의자였고 , 알제리 태생의 카뮈는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활약했고 정치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였었다. 실존주의 작품은 ‘앙가주망’의 작품이라고 봐도 좋겠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공화군을 위해 싸웠고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정책의 강력한 비판자였으며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활약, 후에 드골 정부의 문화상을 지낸 앙드레 말로도 ‘앙가주망’ 작가로 볼 수 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정복자’나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 실존문학 냄새가 물씬 난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또 다른 대표적 인물이 어네스트 헤밍웨이다. 술꾼이자 모험가인 그는 1차 대전 참전경험을 ‘무기여 잘 있거라’로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가, 공화군을 위해 싸운 경험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써냈다. 그가 엽총으로 자살한 것까지 매우 실존적이다.
오랜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시달린 우리나라의 행동과 참여문학의 대표자는 김지하 시인이다. 그리고 내 중ㆍ고교 친구인 황석영이도 다소 유보사항은 있지만 행동 문학인이다. 석영이는 내게 문학에서의 행동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는데 그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탑’은 자원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자기 경험 얘기다.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이 거론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내가 서울서 잠시 다닌 S대학의 국문학 교수 고 김열규씨다. 그는 어느 날 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해 얘기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현실서 뒷전으로 물러나 연애 시나 쓴 소월을 못마땅하게 평가했었다.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성직자들이야 말로 ‘앙가주망’의 귀감이라 하겠다. 군사독재에 항거한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그리고 김지하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민주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군사정부 시대 내 평생 직업인 신문기자 중에서도 자기 몸과 가족을 희생해 가면서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다. 행동인이 못 되는 난 그들을 생각하면 남의 땀과 피로 공짜로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