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스트릿 저널에 난 독일의 저명한 지휘자 크리스토프 폰 도크나니(84)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새삼 예술가를 포함한 지식인들의 사회ㆍ정치문제 참여를 생각했다. 2차 대전 때 법학자였던 아버지와 신학자를 포함한 3명의 삼촌이 반히틀러 음모죄로 나치에 의해 처형된 도크나니는 “난 예술가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달갑지 않다”면서 “예술을 보다 많이 알고 이해할수록 그것의 가치를 더욱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당신은 일찌감치 음성을 높이고 또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면서 나치 선전상 괴벨스 앞에서 지휘를 한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비판했다.
난 이 글을 보고 요즘 자기 조국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ㆍ사회적 혼란에 대해 음성을 높이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LA필의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사진)이 생각났다. 두다멜은 2월12일 카라카스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던 군에 의해 사상자가 생긴 와중에 정부를 비롯한 각계 유명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시몬 볼리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이에 대해 그의 고국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가브리엘라 몬테로가 페이스북을 통해 “두다멜은 더 이상 시민들에 의해 독재적이라고 비난 받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가 없다”는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두다멜을 난처한 입장에 몰아넣었다.
두다멜은 이에 “우리의 음악은 평화의 전세계언어다. 우리의 음악과 우리 손에 쥔 악기로 우리는 폭력에 대해 절대적 반대를 그리고 평화에 대해 전폭적인 찬성을 선언한다”면서 “내가 정치가라면 개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행동하겠지만 나는 예술가로서 모두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답했다.
두다멜은 조국의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들려준 뒤 협동과 근면과 음악을 가르쳐주는 전국적 음악교육제도인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그는 이 제도의 비정치적 정신을 이유로 정치적 발언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몬테로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두다멜의 이런 상징적 발언에 불만을 표하면서 정부제도인 엘 시스테마를 위해 지휘를 하는 것은 독재적이요 비기능적인 정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르트르의 철학으로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Engagement)은 사회ㆍ정치적 혼란 속에서 활기를 띤다. 예술가와 작가, 성직자와 언론인 등 정의와 선과 진실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나머지 보통 사람들을 대신해 ‘앙가주망’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런 뜻에서 예수야말로 ‘앙가주망’의 선두주자라고 하겠다.
프랑스의 두 실존주의 작가이자 철학가인 사르트르와 카뮈는 ‘앙가주망’의 대표적 인물이다. 사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전쟁 때 정부의 알제리 정책을 맹렬히 비판한 한 때 공산주의자였고 , 알제리 태생의 카뮈는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활약했고 정치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였었다. 실존주의 작품은 ‘앙가주망’의 작품이라고 봐도 좋겠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공화군을 위해 싸웠고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정책의 강력한 비판자였으며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활약, 후에 드골 정부의 문화상을 지낸 앙드레 말로도 ‘앙가주망’ 작가로 볼 수 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정복자’나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 실존문학 냄새가 물씬 난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또 다른 대표적 인물이 어네스트 헤밍웨이다. 술꾼이자 모험가인 그는 1차 대전 참전경험을 ‘무기여 잘 있거라’로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가, 공화군을 위해 싸운 경험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써냈다. 그가 엽총으로 자살한 것까지 매우 실존적이다.
오랜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시달린 우리나라의 행동과 참여문학의 대표자는 김지하 시인이다. 그리고 내 중ㆍ고교 친구인 황석영이도 다소 유보사항은 있지만 행동 문학인이다. 석영이는 내게 문학에서의 행동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는데 그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탑’은 자원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자기 경험 얘기다.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이 거론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내가 서울서 잠시 다닌 S대학의 국문학 교수 고 김열규씨다. 그는 어느 날 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해 얘기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현실서 뒷전으로 물러나 연애 시나 쓴 소월을 못마땅하게 평가했었다.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성직자들이야 말로 ‘앙가주망’의 귀감이라 하겠다. 군사독재에 항거한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그리고 김지하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민주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군사정부 시대 내 평생 직업인 신문기자 중에서도 자기 몸과 가족을 희생해 가면서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다. 행동인이 못 되는 난 그들을 생각하면 남의 땀과 피로 공짜로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