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차이니스 퍼즐(Chinese Puzzle)

한 남자와 세 여자, 사랑과 갈등이 얽혀


사비에르의 세 여인 이자벨(왼쪽부터), 웬디 그리고 마르틴.


경보하듯이 경쾌하고 유머가 있는 로맨스 영화를 전문으로 만드는 프랑스의 세드릭 클라피시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깨소금 맛 나는 사랑의 영화다. 클라피시는 늘 자기가 고용하는 배우들을 반복해 이용하는데 이번에도 로맹 뒤리와 오드리 토투 그리고 세실 드 프랑스와 켈리 라일리를 모아 아기자기하고 즐겁고 상쾌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뒤리의 장소를 이전해가면서 여러 사람들이 복잡다단하게 사랑의 이야기를 엮는 ‘로맨스 3부작’의 마지막 편. 제1편은 ‘스패니시 아파트먼트’ 제2편은 ‘러시안 인형’으로 이번에는 장소를 뉴욕의 차이나타운으로 옮겨 한 남자와 세 여자의 사랑의 얘기를 제목 그대로 퍼즐 풀어나가 듯이 교묘하게 직조하고 있다. 제1편과 2편을 보고 이 영화를 보면 인물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파리에 사는 작가 사비에르(뒤리)는 나이 40세로 아내 웬디(라일리)와 결혼생활 10년에 어린 두 남매를 두고 있다. 사비에르는 착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작가여서 역시 성격이 복잡한 편으로 쉬운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디가 뉴욕에서 만난 부자 남자에게 빠져 사비에르를 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는다.
이에 사비에르도 아이들과 떨어질 수가 없어 짐을 싸들고 뉴욕으로 간다. 사비에르가 찾아가는 사람이 레즈비언 친구로 고혹적인 중국계 미국 여인 주(산드린 홀트)와 동거하는 이자벨(드 프랑스). 그리고 사비에르는 차이나타운 한복판에 있는 주의 허름한 안 쓰는 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여기에 사비에르의 옛 애인으로 두 아이를 가진 마르틴(토투)이 역시 뉴욕으로 오면서 모두 결점이 있는 1남3녀의 일상과 사랑과 갈등 그리고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로맨틱하면서도 사실적인 드라마가 감나무에 연줄 엉키듯이 엉킨다. 그런데 클라피시는 기차게 재치 있게 이 연줄들을 풀어 질서정연하게 정리한다.
불체자 신분이 된 사비에르는 자전거 메신저로 일하면서 자기가 목격하고 경험한 뉴욕 스토리를 소설로 써나간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사비에르가 불체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인과 가짜로 결혼하는 것. 이민국 직원의 불시단속을 피하려고 벌이는 해프닝이 배꼽을 빼게 우습다.   
서로들 호흡이 잘 맞는 배우들이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쉽게 좋은 연기를 하고 복작대는 차이나타운과 뉴욕의 여러 곳을 그림엽서처럼 찍은 촬영도 훌륭하다. 아주 즐겁고 밝고 우습고 또 로맨틱한 마음과 가슴이 있는 영화다. 
성인용. Cohen Media.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백만달러짜리 팔(Million Dollar Arm)

“메이저리그급 강속구 투수 좀 찾아봐”


스포츠 에이전트 번스틴(왼쪽부터).과 두 인도인 피처 후보 디네쉬와
린쿠 그리고 통역 아미트(왼쪽부터).


인도 깡촌의 강속구를 던지는 두 10대를 미국에 데려와 몇 달만에 메이저리그의 피처로 만든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인데 실화다.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코미디 터치의 스포츠 드라마이자 ‘물 떠난 물고기’ 얘기로 지나치게 관객에게 아첨은 하고 있지만 로맨스에 자아 구제라는 심각한 주제까지 곁들인 재미 만점의 작품이다.
AMC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매드 멘’의 주인공 단 드레이퍼로 나오는 존 햄의 본격적인 빅스크린 주연 작품으로 매우 튼튼하고 호감 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인도에서 현지 촬영한 도떼기시장 같은 뭄바이 모습과 시골 경치도 좋다. 
2007년. 스포츠 에이전트 J.B. 번스틴(햄)은 한 때 배리 본즈와 에멧 스미스 같은 거물들을 고객으로 가졌으나 인도계 파트너 아쉬(아시프 만드비)와 함께 자신의 독립 에이전시를 차린 뒤로는 슬럼프에 빠진다.
고객 없는 에이전트로 몰락한 번스틴은 어느 날 아쉬와 함께 TV로 인도의 크리켓 경기를 보다가 인도에 가서 강속구를 던지는 피처를 고르기로 작정하고 뭄바이로 간다. 여기서 번스틴은 우선 재잘대는 아미트(피토바쉬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를 심부름꾼 겸 통역으로 고용한 뒤 성마른 은퇴한 야구선수 스카웃 레이(알란 아킨)를 미국에서 불러온다.
그리고 전 인도를 무대로 피처 선발 콘테스트를 연다. 상금은 10만달러이고 뽑히면 미국으로 가서 메이저리그와 계약을 맺는다는 조건. 이어 번스틴과 레이는 인도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면서 콘테스트를 연다.
여기서 뽑힌 두 사람이 시속 96~97마일의 강속구를 던지는 18세난 린쿠 싱(수라지 샤르마-‘파이의 인생’)과 디네쉬 파텔(마두르 미탈-‘슬럼독 밀리어네어’). 린쿠와 디네쉬는 번스틴의 집에 유숙하면서 USC의 피칭코치 탐(빌 팩스턴)으로부터 코치를 받는데 둘이 강속구일는지는 모르나 공이 캐처의 글로브에 들어가질 않는다.
이런 연습장면과 함께 린쿠와 디네쉬의 미국에서의 문화 갈등이 코믹하게 그려지는데 둘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도 타보지 못한 깡촌 출신이어서 미국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번스틴은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둘을 피처로 만들어 돈 벌 생각에만 몰두하는데 이와 달리 새 장소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두 10대를 위로해 주고 또 조언하는 사람이 번스틴의 뒤채에 세든 똑똑하고 섹시한 브렌다(레이크 벨). 결국 번스틴은 브렌다의 사랑과 린쿠와 디네쉬의 진심과 열의에 감동해 이 둘을 상품 취급하던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처럼 둘을 돌보게 되면서 자기 각성을 하게 된다.
극중 인물들이 모두 개성 있게 잘 개발됐는데 햄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연기를 잘한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의 연출력도 기민하고 빈 곳이 없다. 온 가족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영화다. 
PG.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지붕 위의 도둑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다이아몬드바와 샌개브리엘 등 LA 주변 도시들을 돌면서 심야 은행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고 속의 수천만달러어치의 현찰과 귀금속을 턴 5인조가 체포돼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고 LA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은행강도하면 바니와 클라이드처럼 총을 들고 대낮에 정문을 통해 들어가 돈을 터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 5인조는 한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은행 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고를 말짱히 비워 경찰도 희귀범들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3년간 모두 8개의 은행을 턴 5인조의 첫 범행은 2011년 8월 로랜하이츠의 이스트웨스트 뱅크에서 감행됐다. 이들은 100만달러의 은행 현찰과 65개의 세이프티 디파짓박스 안의 1,400만달러어치의 현찰과 귀금속 등을 털어 달아났다.
마치 ‘오션의 11인’과 ‘분노의 질주’의 털이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범행은 치밀하고 주도면밀했다. 5인조는 한 달간 낮에는 범행목표 은행의 고객행세를 하며 은행내부를 관찰한 뒤 밤에도 은행과 주변의 보안체계를 체크했다.
이들의 털이도구는 총과 칼 대신 사다리와 지붕수리 재료 및 드릴. 이것들을 사용해 은행 지붕을 뚫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시간. 그런데 5인조는 지붕을 뚫고 나서도 은행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뚫은 곳을 다시 덮고 일단 철수했다. 공중에서 봤을 때 지붕의 이상이 발견되는지를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5인조의 두 번째 범행은 2012년 9월 다이아몬드바의 BBCN 은행에서 벌어졌다. 43만달러의 은행 현찰과 60개의 세이프티 디파짓박스에 담긴 200만달러 상당의 현찰과 귀금속 등이 털렸다. 경찰에 의하면 5인조는 턴 돈으로 고급차와 보트와 1950년대 산 동페리뇽을 즐겼고 베이가스에서 도박으로 6만달러를 날리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을 수사하던 경찰이 획득한 결정적 단서는 5인조가 BBCN 은행을 털 때 남기고 간 워키토키의 뒤 뚜껑. 여기서 범인들 중 1명의 DNA가 채취됐고 그 후 경찰은 이것을 단서로 5인조를 24시간 감시하고 미행하다가 2013년 4월 이들이 다이아몬드바의 시티뱅크를 턴 뒤 체포했다. 그런데 이들이 턴 돈 중 상당액이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5인조처럼 지붕은 아니지만 위에서 아래로 뚫고 내려가 금고 속 거액의 보석을 턴 4인조의 범행을 숨이 막힐 정도로 스릴과 서스펜스 가득하게 묘사한 영화가 프랑스산 흑백 ‘리피피’(Rififiㆍ1955ㆍ사진)다. 이 영화는 중절모에 코트 깃을 올린 채 냉정하게 범행하는 전형적 프랑스 갱스터들의 에누리 없이 사실적인 ‘하이스트 무비’(털이영화)다.
매카시즘을 피해 유럽으로 도주한 미국 감독 줄스 댓신의 스릴러이자 멜로물로 대신은 영화에서 4인조 중 한 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대신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원작은 오귀스트 르 브르통의 베스트셀러 소설인데 ‘리피피’는 프랑스 암흑가의 라이벌 갱 간의 적의를 말하는 은어다.
5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옥한 토니(장 세르베-프랑스의 코주부 명우로 역시 갱스터 영화에 많이 나온 장 가뱅만큼이나 얇은 입술을 가졌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범죄자. 기침을 하면서도 줄담배를 태우는 토니는 자기 아들 처럼 아끼는 조와 그의 친구 마리오의 권유에 따라 파리 시내 번화가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다. 이들에게 합류하는 것이 이탈리아서 온 금고털이 전문의 세자르(댓신).
4인조는 ‘소방서보다 더 경보장치가 많은’ 보석상을 털기 위해 사전 치밀한 계획을 짜고 현장답사를 한다. 그리고 경보기 소리를 약하게 하는 도구로 소화기를 선택한다. 이어 이 영화가 절도영화의 금자탑으로 불리게 된 장면이 연출된다.
4인조는 보석상 2층의 보석상 주인 아파트에 침입, 마룻바닥을 드릴로 뚫기 시작한다. 드릴 외에 밧줄과 우산이 범행도구로 사용된다. 마침내 구멍이 뚫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30여분. 댓신은 이 30분간 일체 대사와 배경음악을 배제하고 범인들의 움직이는 소리와 마루와 금고를 뚫는 소리만 살리면서 가끔 일당의 땀 밴 얼굴을 클로스업으로 잡는다.
관객은 거의 정적 속에서 진행되는 30분간 4인조와 공범이 돼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하는 범인들의 작업 모습을 숨 죽여 목격하게 된다. 이들이 훔친 보석의 총 시가는 2억여프랑.
그러나 이 털이가 토니일당의 행위임을 확신한 토니의 라이벌로 몽마르트르에서 ‘황금시대’ 클럽을 경영하는 피에르와 그의 일당이 보석에 탐을 내면서 양측 간 살육전이 일어나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늦가을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속살을 드러낸 음울한 파리의 번화가와 뒷골목이 스산하게 아름다운 도시에 바치는 염세적 교향시와도 같은 영화다. 이와 함께 못 잊을 것은 세르베의 연기. 피곤과 우수에 절은 주름 패인 얼굴에 죽은 자의 독백을 듣는 듯한 음성을 내는 그의 체념적 연기는 장엄미마저 띠고 있다. ‘범죄 미학’이라 부를 만한 영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