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X-멘'휴 잭맨

“과거로 시간여행, 아주 호기심 가는 일”




23일 개봉된 공상과학 액션영화‘X-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영화평 참조)에서 울버린으로 나온 호주 태생의 휴 잭맨(45)과의 인터뷰가 9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잭맨은 이날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왔다. 그는“아주 가벼운 피부암으로 인한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면서“기사를 쓸 때 꼭 피부에 이상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검사를 받을 것과 외출할 때 선스크린을 바를 것을 명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거구의 미남으로 영화‘레 미제라블’에서 노래 실력을 보여준 잭맨은 액센트가 있는 아름다운 음성으로 질문에 자세히 씩씩하게 답변했다. 아주 쾌적한 사람으로 서민적이어서 호감이 간다. 휴 잭맨의 이름과 기자의 영어 이름은 서로 이니셜이 같은 H.J.로 그래서 잭맨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오, H.J. 우린 이름이 같지”라며 반가워하곤 한다. 인터뷰 후 그와 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 “우린 서로 이름은 같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 동생이지”라고 농을 하자 잭맨은“하 하”며 크게 웃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이것이 당신의 마지막 ‘X-멘’영화가 될 것인가.
- 누가 감독하고 각본이 어떤가에 달려 있다. 지금 나는 짐 맨골드 감독과 함께 또 다른 ‘울버린’ 영화에 대해 논의 중에 있다. 단지 속편을 위한 영화가 아닌 새로운 각도의 방향으로 얘기가 진행되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만큼 나는 울버린에 애착을 갖고 있고 또 팬들을 존경한다. 아직 각본이 완성 안 돼 100% “예스”라곤 말 못하겠지만 ‘울버린’ 속편이 만들어질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당신은 액션영화와 뮤지컬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 나왔는데 어느 장르가 가장 하기 편한가.
- 과거라면 내가 연기생활을 시작한 연극이라고 말했겠지만 이젠 모든 장르에 다 적응하려고 한다. 난 배우는 것과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겐 변화가 중요하다. 

*당신은 영화에서 “난 인내심이 없다”고 말했는데 실제론 어떤가.
- 난 아주 잘 참는다. 날 못 참게 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것들인데 특히 난 아이들을 잘 못 참는다.

*영화 속 돌연변이들의 여러 초능력 중 가장 갖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남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알고 싶지 않다. 신비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울버린과 미스티크(왼쪽)는 막강한 능력을 지닌 로보트들의 공격을 받는다.

*당신은 광고에 잘 나오는데 몽블랑 펜 광고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 그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질과 디자인 때문이다. 난 어렸을 때 글씨를 아주 못 썼는데 그러면서도 품격 있고 스타일 좋은 몽블랑 펜으로 쓰겠다고 우겼다. 그렇다고 글씨가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폼은 좋았다. 그 때부터 배우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모범학생이었는가.
- 난 내용은 잘 몰라도 암기를 잘 했다. 그래서 성적은 좋았다. 지금도 세트에서 즉석으로 각본을 외운다. 그러나 그 뒤론 금방 까먹는다. 난 내 아이들이 나와 같은 학생이 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두 아이는 ‘X-멘’에 대해 어떻게 상각하는가.
-딸아이 에이바(8)는 어렸을 때 영화에 잠깐 엑스트라로 나왔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장면은 잘려 나갔다. 딸아이가 배운 첫 쇼 비즈니스의 교훈이다. 얼마 전에 아들 오스카(13)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울버린’을 봤는데 다 본 다음에 아들이 “차별대우 등 여러 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을 때 참으로 기뻤다. 아들이 여름용 팝콘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아들은 내게 조언까지 했다. 울버린이 그렇게 노상 싸울 것만이 아니라 좀 평화로운 인물로 묘사하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것 좋은 소리네”라고 답했지만 팬들이 그런 울버린을 좋아할지 의문이다.

*이 영화가 다른 ‘X-멘’ 영화에 비해 월등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내용과 특수효과와 음악 등이 다 좋지만 무엇보다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된 올스타 캐스트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대규모이면서 또한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다.

*당신의 패션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 90%는 편한 것이다. 나머지 10%는 가끔 잘 차려 입는다. 생활 중에서 가장 호사스런 것 중의 하나가 잘 만든 수제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이 두 번째 수술인 줄 아는데.
- 그렇다.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수술 후 가족을 비롯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로 검사 받을 것을 권했다. 내 담당의는 단 한 번이라도 피부를 태운 적이 있으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나이와 상관없다. 호주 태생인 난 아마 수 없이 많이 피부를 태웠을 것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당신도 시간여행을 하겠는가.
- 아마 그럴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매우 호기심이 난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가지고 고교시절로 돌아간다면 참 재미있을 것이다. 

*종양 제거수술에 대해 이렇게 공공연히 밝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그것은 내가 숨길 수도 없는 것이며 또 숨겨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울버린으로서 그런 사실을 말한다면 내 나이 또래와 함께 어린 아이들에게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방을 위해서다. 그렇지 않고 숨기자면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 것이고 내 집 앞에는 아마도 50명의 파파라치들이 잠복해 있다가 마스크를 쓴 내 사진을 찍을 것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1970년대로 돌아가는데 70년대의 무엇을 좋아하는가.
- 난 1968년에 태어났지만 80년대의 것들과 더 친밀하다. 특히 어렸을 때보다 자유스러운 고등학교 때가 많이 생각난다. 70년대 비틀즈와 레드 제펠린과 롤링스톤즈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지금도 좋아한다.                 

*당신은 과거와 미래 중 어느 때로 더 가고 싶은가.
- 과거다. 특히 고교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난 그 때 유난히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옛날과 달리 보다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 창가와 복도 옆의 자리 중 어느 자리를 더 좋아하는가.
- 30세가 될 때까지만 해도 비행기 맨 뒷자리에 앉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 앞자리에 앉는다. 앞에만 앉는다면 어느 자리건 상관없다.

*종양제거 수술 후 당신의 아내가 돋보기를 들고 당신의 얼굴을 자주 관찰이라도 하는가.
- 아직은 아니다.

*영화에서 우리의 미래는 매우 황량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당신은 우리의 미래가 실제로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나는 올해 뉴욕의 센트럴팍에서 열릴 나보다 훨씬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시티즌 축제’의 사회를 맡는다. 나는 요즘의 젊은 세대가 나의 세대보다 더 이 세상을 기아에서 해방시키고 또 지구온난화도 방지해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확실히 믿는다. 내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문제들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여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을 자신들의 임무로 여기고 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 목적지는 어디인가.
- 아내와 단 둘이라면 파리다. 아이들도 간다면 모로코다. 모로코야 말로 참으로 흥미 있는 곳이다. 호주는 내 고향이니 답변에서 생략하기로 하겠다. 

*이미 뮤지컬에선 노래를 부른 당신의 음성은 오페라에도 훌륭히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만약 오페라 무대에 선다면 어떤 역을 노래하고 싶은가.
- 사실 난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한 희가극 ‘메리 위도’에 출연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메트에서 있은 오디션에 갔었다. 마이크도 없는 엄청나게 큰 극장에서 노래를 불러야해 겁이 났다. 여감독이 하라는 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극장 앞에서 4분의 3쯤 뒷자리에 앉아 노래를 들은 감독이 “좋아요. 그런데 당신의 노래 소리가 안 들리네요”라고 말했다. 난 있는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나서 난 오페라에 나오려면 적어도 2~3년 정도의 정식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난 오페라 가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러브 펀치(The Love Punch)

이혼한 중년 부부의 보석털이 해프닝

이혼한 리처드(피어스 브로스난·왼쪽)와 케이트(엠마 톰슨)는 
동지가 돼 보석도둑이 된다.

제임스 본드로 이름을 날린 피어스 브로스난과 오스카 각본상을 탄 엠마 톰슨의 이름과 풍채가 아깝다. 이혼한 중년 후반의 부부가 보석도둑을 하는 불면 날아갈 듯한 가벼운 털이범죄 코미디인데 각본이 약해 내용과 인물 개발 등이 아주 미숙하다.
보석 도둑질 코미디의 금자탑과도 같은 ‘핑크 팬서’ 영화 흉내를 낸 3류작으로 볼만한 것이 있다면 그런대로 호흡이 맞는 브로스난과 톰슨의 모습과 파리와 현재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렌치 리비에라의 경치. 역시 이곳을 무대로 한 히치콕의 코믹터치의 로맨틱한 보석털이 영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와 이 영화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회사 사장 리처드(브로스난)와 아동심리의인 케이트(톰슨)는 이혼한 사이. 그런데 최근 젊은 애인을 버린 리처드는 케이트와 재결합 하고파 한다. 둘의 재결합을 원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이들의 이웃이자 친구인 제리(티머시 스팔)와 페넬로피(셀리아 임리).
그런데 리처드가 회사를 파리의 무모한 기업 합병가인 뱅상(로랑 라피트)에게 팔아넘긴 뒤 뒤늦게 자신과 케이트는 물론이요 전 직원의 연금이 몽땅 날아가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리처드는 남매가 다 대학에 가 혼자 외로운 케이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에 함께 가자고 제의한다.
물론 뱅상은 자기를 찾아온 리처드와 케이트의 항의에 콧방귀를 뀐다. 이에 리처드는 뱅상이 코트 다주르에서 치를 약혼녀 마농(루이즈 부르고앵)과의 결혼식을 위한 선물로 1,000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샀다는 것을 알고 케이트와 함께 이를 훔칠 작전을 짠다. 
실제 도둑질에 들어가기 전 둘은 사전탐사를 시작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케이트가 자기 큰 딸 같은 마농이 친구들과 비치파티를 즐기는데 합류하는 것. 그런데 이 엉성한 플롯은 아주 어리숙해 보기가 민망하다.
이윽고 결혼식이 열리고 변장을 한 리처드와 케이트는 제리와 페넬로피와 함께 식장엘 침투한다. 보석털이하기까지의 얘기가 서푼짜리 해프닝으로 이어지는데 마치 아이들 장난 같다.
구식 스타일의 로맨스와 털이를 짬뽕한 영국산 코미디로 양념이 전연 안 쳐진 음식처럼 싱겁기 짝이 없다. 좋은 배우와 멋진 경치를 소모시킨 불량품이다. 조엘 합킨스 감독(각본 겸).
 PG-13. 일부지역.  ★★½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X-Men: Days of Future Past’ (X-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수용소 돌연변이 인간들의 반란


과거로 돌아간 울버린(휴 잭맨·왼쪽)과 다투는 
젊은 제이비어(제임스 매카보이).

마블만화의 주인공들인 초능력을 지닌 돌연변이 인간들의 액션과 모험을 그린 공상과학영화로 나온 인물들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얘기가 질서정연하다기 보다 부분 부분을 짜깁기한  것처럼 산만하긴 하나 화려한 캐스트와 눈부신 시각특수효과(입체영화) 그리고 유머를 곁들인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요란한 액션 등 보고 즐길 만하다.
X-멘들의 얘기는 늘 사회에서 변종으로 괴리돼 추방자들처럼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자기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금기에 대항한다는 어느 시대에나 부합하는 의미를 지녔다. 
알쏭달쏭한 제목을 지닌 이번 영화는 X-멘 시리즈 제1편과 2편을 만든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했는데 그 동안 스핀오프를 비롯해 모두 6편이나 만들어진 X-멘 시리즈에 나온 돌연변이들이 총출동해 자신들의 멸종위기를 막으려고 세계를 돌고 시간여행을 하면서 화려한 특수효과를 바탕으로 치고 박으면서 난리법석을 떤다. 제작비 2억달러짜리 대작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락가락 하지만 대부분 과거에서 얘기가 진행된다.
현재의 황폐한 뉴욕. 돌연변이들과 이들을 동정하는 인간들은 수용소에 감금돼 있다. 장소는 역시 황폐한 모스크바로 이동한다. 키티(엘렌 페이지)와 아이스맨(션 애쉬모어) 및 이들의 일단의 동지들이 미 국방연구원 볼리바 트래스크 박사(피터 딩클리지)가 개발한 막강한 힘을 지닌 로보트들인 센티널스의 공격을 받는다. 
이 공격에서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은 중국의 폐허가 된 옛 절에 사는 제이비어 교수(패트릭 스튜어트)와 그와 사이가 안 좋은 마그네토(이안 맥켈렌) 그리고 울버린(휴 잭맨) 및 스톰(할리 베리) 등과 재규합을 한다. 이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족을 살리기 위해 울버린을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푸른 파충류의 껍질 같은 피부를 가진 미스티크(제니퍼 로렌스)가 트래스크를 암살한 1973년 베트남전 종전 파리평화협정이 조인되는 날로 시간여행을 시킨다. 이 암살 이후 인간의 돌연변이들에 대한 히스테리화 했다.
울버린은 젊은 제이비어(제임스 매카보이)와 마그네토(마이클 화스벤더)를 설득해 미스티크의 트래스크 암살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 과거로 온 것이다. 그런데 제이비어는 친구로 푸른 털북숭이인 행크/비스트(니콜러스 훌트-제니퍼 로렌스의 실제 애인)가 주는 혈청중독자가 돼 은둔생활을 하고 마그네토는 케네디 암살자로 몰려 국방부 내 철통같이 보안시설이 엄격한 감방에 수감 중이다.
울버린과 제이비어 및 행크가 마그네토를 탈출시키는데 협조하는 것이 총알처럼 빠른 퀵실버(이반 피터스). 느린 동작으로 진행되는 이 탈출장면이 코믹할 정도로 압권이다. 옛날 돌연변이들 외에 새로 나오는 젊은 돌연변이들로 퀵실버 외에 비숍(오마 사이), 블링크(환 빙빙). 선스팟(애에단 캔토) 및 원주민 돌연변이인 워패스(부부 스튜어트) 등이 있다. 복잡하네. 연기가 특히 돋보이는 것은 유머와 함께 안팎으로 깊이가 있는 잭맨과 표독스런 로렌스다. PG13.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스포츠 영화



미국은 스포츠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연중 내내 스포츠 경기가 열리지만 묘하게도 스포츠 영화는 빅히트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최근의 예가 16일에 개봉된 야구영화 ‘백만달러짜리 팔’. 디즈니의 대대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개봉주말 사흘간 1,050만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이 영화는 LA의 스포츠 에이전트(존 햄)가 인도에 가 강속구를 던지는 두 시골청년을 골라 미국에 데려와 훈련을 시킨 뒤 프로야구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시킨 실화로 재미있는 데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리고 올 해 최초로 4월11일에 개봉된 스포츠 영화로 케빈 코스너가 프로풋볼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로 나온 ‘드래프트 데이’도 고작 번 돈이 총 2,800만달러였다. 
스포츠 영화는 오래 전부터 할리웃의 단골장르로서 히트와 실패의 희비쌍곡선을 탔지만 특히 최근 들어 장사가 잘 안되고 있다고 최근 USA 투데이가 보도했다. 그 중에서도 야구영화가 성적이 안 좋은데 과거 10년간 흥행서 성공한 야구영화는 미 프로야구의 흑백차별을 무너뜨린 재키 로빈슨의 실화인 ‘42’(9,500만달러)와 브래드 핏이 나온 ‘머니 볼’(7,600만달러) 둘뿐이다.
야구 외의 다른 스포츠 영화들의 평균 흥행수입도 신통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 드라마는 2,700만달러, 스포츠 코미디는 3,000만달러 정도다. 
미국의 스포츠 영화는 해외에서는 더 맥을 못 춘다. 외국인들이 미국인들의 전용물인 스포츠를 즐기기는커녕 이해마저 힘든 것이 그 이유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요즘 할리웃 영화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액수는 편당 총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러나 스포츠 영화는 여기에 큰 기여를 못하고 있다. ‘머니 볼’의 경우 국제적 수퍼스타 브래드 핏이 나오고 조연인 조나 힐이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지만 해외수입은 달랑 3,500만달러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예정이다. 풋볼영화 ‘크누트 로크니 올 아메리칸’(1940)에서 명문대 노터데임의 스타선수로 나온 전 미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전통을 이어 받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8월22일에는 짐 캐비즐이 1993~2003년 캘리포니아주 콩코드의 드 라살 고교 풋볼팀을 151경기 전승으로 이끈 코치 밥 라두쇠로 나온 ‘웬 더 게임즈 스탠드 톨’이 11월21일에는 케빈 코스너가 캘리포니아주 작은 마을 맥팔랜드의 라티노 고교 트랙 팀을 챔피언 전에까지 진출시킨 코치 역을 맡은 ‘맥팔랜드’가 개봉된다. 둘 다 실화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영화가 흥행서 성공하려면 영화 속 인물들이 스포츠 문외한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요소가 스포츠를 너머서야 보다 넓은 팬들의 관심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샌드라 불락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블라인드 사이드’와 노터데임대 풋볼선수의 감동적인 드라마 ‘루디’가 빅히트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스카 작품상을 탄 ‘로키’와 ‘불의 전차’도 모두 스포츠보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 영화들이다. 
다음은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10편의 야구영화다.
1.‘불 더램’(Bull Durhamㆍ1988ㆍ사진)-노스캐롤라이나주 야구팀의 베테런 캐처(케빈 코스너)와 재주 있으나 훈련 부족인 피처(팀 로빈스) 그리고 이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그루피(수전 서랜던)의 드라마. 2.‘꿈의 구장’(Field of Dreamsㆍ1989)-아이오와주의 농부(코스너)가 ‘지으면 그들이 올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고 농장에 야구장을 짓는다. 버트 랭카스터 출연. 3.‘북을 천천히 쳐라’(Bang the Drum Slowlyㆍ1973)-뉴욕주 야구팀의 서로 판이한 성격의 피처와 캐처(로버트 드 니로)의 관계. 4.‘8명 아웃’(Eight Men Outㆍ1988)-1919년 월드 시리즈 부정경기 ‘블랙 삭스’ 사건을 다룬 드라마. 5.‘양키즈의 자랑’(The Pride of Yankeesㆍ1942)-루 게릭병으로 사망한 양키즈의 강타자 루 게릭(게리 쿠퍼)의 실화. 베이브 루스가 나온다. 6.‘배드 뉴스 베어즈’(Bad News Bearsㆍ1976)-꼴찌 리틀리그 팀의 여자투수(테이텀 오닐)와 맥주고래 코치(월터 매사우)의 코미디. 7.‘내추럴’(The Naturalㆍ1984)-야구에 뛰어난 재질이 있는 남자(로버트 레드포드)의 삶과 사랑. 글렌 클로스와 킴 베이신저 공연. 8.‘그들만의 리그’(League of Their Leagueㆍ1992)-2차 대전 때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자 우후죽순 격으로 생긴 여자리그의 코미디. 탐 행스와 마돈나 공연. 9.‘샌드랏’(The Sandlotㆍ1993)-1960년대 동네 아이들 야구팀의 이야기. 10.‘메이저 리그’(Major Leagueㆍ1989)-엉망진창 선수들로 구성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포복절도할 코미디. 찰리 쉰 주연.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차이니스 퍼즐(Chinese Puzzle)

한 남자와 세 여자, 사랑과 갈등이 얽혀


사비에르의 세 여인 이자벨(왼쪽부터), 웬디 그리고 마르틴.


경보하듯이 경쾌하고 유머가 있는 로맨스 영화를 전문으로 만드는 프랑스의 세드릭 클라피시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깨소금 맛 나는 사랑의 영화다. 클라피시는 늘 자기가 고용하는 배우들을 반복해 이용하는데 이번에도 로맹 뒤리와 오드리 토투 그리고 세실 드 프랑스와 켈리 라일리를 모아 아기자기하고 즐겁고 상쾌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뒤리의 장소를 이전해가면서 여러 사람들이 복잡다단하게 사랑의 이야기를 엮는 ‘로맨스 3부작’의 마지막 편. 제1편은 ‘스패니시 아파트먼트’ 제2편은 ‘러시안 인형’으로 이번에는 장소를 뉴욕의 차이나타운으로 옮겨 한 남자와 세 여자의 사랑의 얘기를 제목 그대로 퍼즐 풀어나가 듯이 교묘하게 직조하고 있다. 제1편과 2편을 보고 이 영화를 보면 인물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파리에 사는 작가 사비에르(뒤리)는 나이 40세로 아내 웬디(라일리)와 결혼생활 10년에 어린 두 남매를 두고 있다. 사비에르는 착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작가여서 역시 성격이 복잡한 편으로 쉬운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디가 뉴욕에서 만난 부자 남자에게 빠져 사비에르를 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는다.
이에 사비에르도 아이들과 떨어질 수가 없어 짐을 싸들고 뉴욕으로 간다. 사비에르가 찾아가는 사람이 레즈비언 친구로 고혹적인 중국계 미국 여인 주(산드린 홀트)와 동거하는 이자벨(드 프랑스). 그리고 사비에르는 차이나타운 한복판에 있는 주의 허름한 안 쓰는 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여기에 사비에르의 옛 애인으로 두 아이를 가진 마르틴(토투)이 역시 뉴욕으로 오면서 모두 결점이 있는 1남3녀의 일상과 사랑과 갈등 그리고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로맨틱하면서도 사실적인 드라마가 감나무에 연줄 엉키듯이 엉킨다. 그런데 클라피시는 기차게 재치 있게 이 연줄들을 풀어 질서정연하게 정리한다.
불체자 신분이 된 사비에르는 자전거 메신저로 일하면서 자기가 목격하고 경험한 뉴욕 스토리를 소설로 써나간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사비에르가 불체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인과 가짜로 결혼하는 것. 이민국 직원의 불시단속을 피하려고 벌이는 해프닝이 배꼽을 빼게 우습다.   
서로들 호흡이 잘 맞는 배우들이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쉽게 좋은 연기를 하고 복작대는 차이나타운과 뉴욕의 여러 곳을 그림엽서처럼 찍은 촬영도 훌륭하다. 아주 즐겁고 밝고 우습고 또 로맨틱한 마음과 가슴이 있는 영화다. 
성인용. Cohen Media.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백만달러짜리 팔(Million Dollar Arm)

“메이저리그급 강속구 투수 좀 찾아봐”


스포츠 에이전트 번스틴(왼쪽부터).과 두 인도인 피처 후보 디네쉬와
린쿠 그리고 통역 아미트(왼쪽부터).


인도 깡촌의 강속구를 던지는 두 10대를 미국에 데려와 몇 달만에 메이저리그의 피처로 만든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인데 실화다.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코미디 터치의 스포츠 드라마이자 ‘물 떠난 물고기’ 얘기로 지나치게 관객에게 아첨은 하고 있지만 로맨스에 자아 구제라는 심각한 주제까지 곁들인 재미 만점의 작품이다.
AMC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매드 멘’의 주인공 단 드레이퍼로 나오는 존 햄의 본격적인 빅스크린 주연 작품으로 매우 튼튼하고 호감 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인도에서 현지 촬영한 도떼기시장 같은 뭄바이 모습과 시골 경치도 좋다. 
2007년. 스포츠 에이전트 J.B. 번스틴(햄)은 한 때 배리 본즈와 에멧 스미스 같은 거물들을 고객으로 가졌으나 인도계 파트너 아쉬(아시프 만드비)와 함께 자신의 독립 에이전시를 차린 뒤로는 슬럼프에 빠진다.
고객 없는 에이전트로 몰락한 번스틴은 어느 날 아쉬와 함께 TV로 인도의 크리켓 경기를 보다가 인도에 가서 강속구를 던지는 피처를 고르기로 작정하고 뭄바이로 간다. 여기서 번스틴은 우선 재잘대는 아미트(피토바쉬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를 심부름꾼 겸 통역으로 고용한 뒤 성마른 은퇴한 야구선수 스카웃 레이(알란 아킨)를 미국에서 불러온다.
그리고 전 인도를 무대로 피처 선발 콘테스트를 연다. 상금은 10만달러이고 뽑히면 미국으로 가서 메이저리그와 계약을 맺는다는 조건. 이어 번스틴과 레이는 인도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면서 콘테스트를 연다.
여기서 뽑힌 두 사람이 시속 96~97마일의 강속구를 던지는 18세난 린쿠 싱(수라지 샤르마-‘파이의 인생’)과 디네쉬 파텔(마두르 미탈-‘슬럼독 밀리어네어’). 린쿠와 디네쉬는 번스틴의 집에 유숙하면서 USC의 피칭코치 탐(빌 팩스턴)으로부터 코치를 받는데 둘이 강속구일는지는 모르나 공이 캐처의 글로브에 들어가질 않는다.
이런 연습장면과 함께 린쿠와 디네쉬의 미국에서의 문화 갈등이 코믹하게 그려지는데 둘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도 타보지 못한 깡촌 출신이어서 미국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번스틴은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둘을 피처로 만들어 돈 벌 생각에만 몰두하는데 이와 달리 새 장소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두 10대를 위로해 주고 또 조언하는 사람이 번스틴의 뒤채에 세든 똑똑하고 섹시한 브렌다(레이크 벨). 결국 번스틴은 브렌다의 사랑과 린쿠와 디네쉬의 진심과 열의에 감동해 이 둘을 상품 취급하던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처럼 둘을 돌보게 되면서 자기 각성을 하게 된다.
극중 인물들이 모두 개성 있게 잘 개발됐는데 햄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연기를 잘한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의 연출력도 기민하고 빈 곳이 없다. 온 가족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영화다. 
PG.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지붕 위의 도둑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다이아몬드바와 샌개브리엘 등 LA 주변 도시들을 돌면서 심야 은행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고 속의 수천만달러어치의 현찰과 귀금속을 턴 5인조가 체포돼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고 LA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은행강도하면 바니와 클라이드처럼 총을 들고 대낮에 정문을 통해 들어가 돈을 터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 5인조는 한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은행 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고를 말짱히 비워 경찰도 희귀범들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3년간 모두 8개의 은행을 턴 5인조의 첫 범행은 2011년 8월 로랜하이츠의 이스트웨스트 뱅크에서 감행됐다. 이들은 100만달러의 은행 현찰과 65개의 세이프티 디파짓박스 안의 1,400만달러어치의 현찰과 귀금속 등을 털어 달아났다.
마치 ‘오션의 11인’과 ‘분노의 질주’의 털이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범행은 치밀하고 주도면밀했다. 5인조는 한 달간 낮에는 범행목표 은행의 고객행세를 하며 은행내부를 관찰한 뒤 밤에도 은행과 주변의 보안체계를 체크했다.
이들의 털이도구는 총과 칼 대신 사다리와 지붕수리 재료 및 드릴. 이것들을 사용해 은행 지붕을 뚫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시간. 그런데 5인조는 지붕을 뚫고 나서도 은행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뚫은 곳을 다시 덮고 일단 철수했다. 공중에서 봤을 때 지붕의 이상이 발견되는지를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5인조의 두 번째 범행은 2012년 9월 다이아몬드바의 BBCN 은행에서 벌어졌다. 43만달러의 은행 현찰과 60개의 세이프티 디파짓박스에 담긴 200만달러 상당의 현찰과 귀금속 등이 털렸다. 경찰에 의하면 5인조는 턴 돈으로 고급차와 보트와 1950년대 산 동페리뇽을 즐겼고 베이가스에서 도박으로 6만달러를 날리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을 수사하던 경찰이 획득한 결정적 단서는 5인조가 BBCN 은행을 털 때 남기고 간 워키토키의 뒤 뚜껑. 여기서 범인들 중 1명의 DNA가 채취됐고 그 후 경찰은 이것을 단서로 5인조를 24시간 감시하고 미행하다가 2013년 4월 이들이 다이아몬드바의 시티뱅크를 턴 뒤 체포했다. 그런데 이들이 턴 돈 중 상당액이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5인조처럼 지붕은 아니지만 위에서 아래로 뚫고 내려가 금고 속 거액의 보석을 턴 4인조의 범행을 숨이 막힐 정도로 스릴과 서스펜스 가득하게 묘사한 영화가 프랑스산 흑백 ‘리피피’(Rififiㆍ1955ㆍ사진)다. 이 영화는 중절모에 코트 깃을 올린 채 냉정하게 범행하는 전형적 프랑스 갱스터들의 에누리 없이 사실적인 ‘하이스트 무비’(털이영화)다.
매카시즘을 피해 유럽으로 도주한 미국 감독 줄스 댓신의 스릴러이자 멜로물로 대신은 영화에서 4인조 중 한 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대신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원작은 오귀스트 르 브르통의 베스트셀러 소설인데 ‘리피피’는 프랑스 암흑가의 라이벌 갱 간의 적의를 말하는 은어다.
5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옥한 토니(장 세르베-프랑스의 코주부 명우로 역시 갱스터 영화에 많이 나온 장 가뱅만큼이나 얇은 입술을 가졌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범죄자. 기침을 하면서도 줄담배를 태우는 토니는 자기 아들 처럼 아끼는 조와 그의 친구 마리오의 권유에 따라 파리 시내 번화가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다. 이들에게 합류하는 것이 이탈리아서 온 금고털이 전문의 세자르(댓신).
4인조는 ‘소방서보다 더 경보장치가 많은’ 보석상을 털기 위해 사전 치밀한 계획을 짜고 현장답사를 한다. 그리고 경보기 소리를 약하게 하는 도구로 소화기를 선택한다. 이어 이 영화가 절도영화의 금자탑으로 불리게 된 장면이 연출된다.
4인조는 보석상 2층의 보석상 주인 아파트에 침입, 마룻바닥을 드릴로 뚫기 시작한다. 드릴 외에 밧줄과 우산이 범행도구로 사용된다. 마침내 구멍이 뚫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30여분. 댓신은 이 30분간 일체 대사와 배경음악을 배제하고 범인들의 움직이는 소리와 마루와 금고를 뚫는 소리만 살리면서 가끔 일당의 땀 밴 얼굴을 클로스업으로 잡는다.
관객은 거의 정적 속에서 진행되는 30분간 4인조와 공범이 돼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하는 범인들의 작업 모습을 숨 죽여 목격하게 된다. 이들이 훔친 보석의 총 시가는 2억여프랑.
그러나 이 털이가 토니일당의 행위임을 확신한 토니의 라이벌로 몽마르트르에서 ‘황금시대’ 클럽을 경영하는 피에르와 그의 일당이 보석에 탐을 내면서 양측 간 살육전이 일어나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늦가을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속살을 드러낸 음울한 파리의 번화가와 뒷골목이 스산하게 아름다운 도시에 바치는 염세적 교향시와도 같은 영화다. 이와 함께 못 잊을 것은 세르베의 연기. 피곤과 우수에 절은 주름 패인 얼굴에 죽은 자의 독백을 듣는 듯한 음성을 내는 그의 체념적 연기는 장엄미마저 띠고 있다. ‘범죄 미학’이라 부를 만한 영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트랜센던스' 자니 뎁


“공상과학 내용, 가까운 미래에 얼마든 가능”


현재 상영 중인 공상과학 스릴러‘트랜센던스’(Transcendence)에서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죽은 뒤 애인 과학자(레베카 홀)에 의해 자신의 지능과 감정이 컴퓨터에 옮겨진 과학자로 나오는 자니 뎁(50)과의 인터뷰가 4월6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엷은 푸른색 안경을 쓰고 다듬지 않은 콧수염ㆍ턱수염과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와 50년대 재킷을 입은 상거지 차림의 뎁은 버릇대로 인터뷰장에 늦게 나타났다. 바지 주머니에 손수건을 늘어뜨린 채 목걸이 2개와 반지 2개 그리고 헝겊 팔찌에 손에 문신을 한 뎁은 매우 지저분해 보여 도저히 수퍼스타 같지가 않았다. 나이에 비해 동안인 뎁은 2013년 16년간 두 남매까지 두고 함께 살아온 배우이자 가수인 프랑스인 연인 바네사 파라디와 헤어지고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럼 다이어리’(2011)에서 공연한 젊고 섹시한 앰버 허드(27)와 약혼했다. 뎁은 인터뷰에서 수줍어하면서도(그는 매우 내성적이요 부끄러움을 탄다) 손가락에 찬 약혼반지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들어 보여주며“유 노”를 연발하면서 허드와의 관계를 떳떳이 밝혔다. 얇은 미소와 함께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에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대답했는데 가끔 유머도 구사하면서 능청을 떨기도 했다.                 

*영화 내용이 현실로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처음에 각본을 읽었을 때는 클래식 공상 과학영화처럼 느껴졌으나 얘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내용이 얼마든지 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시용되는 기술은 현재 실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간의 의식을 거대한 컴퓨터나 하드드라이브에 옮기는 일도 곧 현실화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의 반영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갈 데까지 갈 것이다. 영화에서 나와 홀이 말했듯이 기술이 지나치게 나아갔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인명을 구할 수가 있으니 양날의 칼이라고 하겠다. 순간적으로 선택을 하라면 나도 확실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에 옮길 것이다.

*자니 뎁의 어떤 면을 컴퓨터에 옮기고 싶은가.
-그렇게 하면 컴퓨터가 깨지고 말 것이다. 난 결코 컴퓨터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대답이다.

*당신은 영화의 절반 정도를 컴퓨터 안에서 보내는데 그 경험이 어땠는가.
-난 영화의 절반 정도를 배우들과 다른 방에서 혼자 있으면서 모니터를 보면서 연기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것이 배우들과 같은 세트에 있으면서 숨어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와 상대방이 서로 고립되는 것이 영화의 뜻에도 맞는 것이었다.

*지능의 한계를 언제 느껴 봤으며 컴퓨터가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컴퓨터 속에 지능이 업로드된 캐스퍼 박사(위).
-물론이다. 컴퓨터와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기술은 분명히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난 5분마다 머리가 꽉 막히는데 기계에 대해선 엉망이다. 문자메시지가 와 답을 하려면 열손가락을 총동원해도 제대로 못한다. 그런 일 하는 것이 터무니가 없다고 느껴진다.

*당신은 여태껏 결혼을 마다하다가 왜 앰버를 만나서야 결혼을 생각하게 됐는가.
-사람이 나이를 먹다보면 조금씩 현명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보다 잘 볼 수가 있다. 배우가 배우와 사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앰버는 자신의 생애에 대해 뚜렷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난 앰버와 만난 뒤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는데 대해 깜짝 놀랐다. 그는 남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블루스와 컨트리 뮤직의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앰버는 강하고 똑똑한 여자다. 생의 어느 지점에 와서 자신의 삶을 어떤 한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앰버는 멋진 사람으로 난 행운아다.   

*손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약혼반지인가.
- 그렇다. 앰버가 끼기엔 너무 커 내가 가졌다. 앰버에겐 보다 얌전한 반지를 만들어줄 것이다. 약혼반지는 내가 디자인했는데 보석상에서 만들어온 것을 보니 다이아몬드가 사람 눈알 만해 앰버가 끼기엔 다소 불편할 것 같더라. 

*어떤 장르가 가장 하기 좋은가.
-코미디다. 코미디에는 보다 많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의 인물은 여러 가지로 표현해낼 수가 있다. 그런데 난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극중 인물로 숨고 위장하는 것이 더 편하다. 난 골든 글로브 시상자로 무대에 오를 때면 뼈까지 떨린다. 그러나 극중 인물이면 두려운 것이 없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과 과거의 기본적인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해 본 적이 있는가.
-난 솔직히 말해 1940년대 제작된 타이프라이터를 들고 다니면서 종이 위에 타자하고 기타도 구식 기타를 들고 다닌다. 타이프를 사용 안 할 때면 펜으로 글을 쓴다. 아주 기본적인 수준을 지키는데 난 그것이 평화스럽다. 기계에선 큰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공 팔을 제조할 수 있는 지적인 기계가 나와 그것을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의 아이들에게 부착해 아이들이 그 팔로 숟갈을 들어 음식을 집어 먹고 돌을 던지고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집어 올릴 수가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보다 나은 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겁나는 것은 과연 이런 기술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며 그들이 그것으로 무슨 짓을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의사가 당신에게 앞으로 5주밖에 더 못 산다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옛날 애인들을 다 불러 성대한 파티라도 하겠는가.
-내 옛날 애인들이라니 당신이 오히려 그들과 파티하고 싶은 것 같네. 그럴 경우 내게 전화하면 내가 그들에게 잘 말해 주겠다. 의사의 그런 선언을 받으면 난 매일을 즐기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 즐기고 웃겠다.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즐기겠다. 자신의 의식을 이 영화처럼 컴퓨터에 옮기지 못하는 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

*‘트랜센던스’(초월ㆍ초절)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데 당신이 이 말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생을 통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초월하려고 하고 있다. 나이를 먹고 지혜로워지면 삶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세상사의 물질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되고 보는 관점이 생기게 된다. 공포와 고통과 이고를 초월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왜 이 영화에 매력을 느꼈는가.
- 그것은 주인공인 캐스퍼 박사가 비록 인공지능에 관해선 뛰어난 과학자였으나 평소에는 아주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컴퓨터에 의식이 옮겨지면서 갱생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 내용은 애매모호하다고도 하겠는데 난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캐스퍼가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를 묻기를 바랐다. 결국 영화는 인간성에 관한 것으로 거기에 로맨스까지 있어 좋다. 

*당신은 죽은 다음에 환생하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도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의 신을 창조하고자 하는가. 
-신의 개념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신을 갖고 있다. 신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내 아이들이 내 신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숨을 쉬고 걷고 산다는 것이야 말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내게 불사가 찾아온다 해도 난 그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저 천천히 그리고 단순히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그보다 낫다. 앰버와 내 아이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순간적으로 앰버와 아이들의 삶과 의식을 살리고야 싶겠지만 난 그보다도 해변에 앉아 미풍을 맞으며 물결이 해변의 모래를 스치고 물러가는 것을 보는 것을 즐기고 싶다.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면 족하다.

*‘카리브의 해적’ 5편은 언제 찍는가.
-지금 완벽한 각본을 쓰기 위해 나와 각본가가 열심히 집필 중이며 만족스럽게 되어가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편이 되기 때문에 그동안 영화를 사랑해 준 팬들에게 정당히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만큼 기대도 크다. 

*아이를 더 나을 생각인가.
-남자인 내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 걸 연습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자다. 앰버가 원한다면 마땅히 그럴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당신처럼 노래하고 연기할 것을 권하는가.
-아들 잭(12)은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 그리고 악기도 잘 연주한다. 그러나 연기는 학교 연극 외에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딸 릴리 로즈(14)는 무지무지하게 똑똑하다. 연기와 노래와 엔터테인먼트에 모두 관심이 있다. 난 아이들이 연예생활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결정은 그들이 할 일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셰프 (Chef)

고급식당 셰프가 푸드트럭을 차리는데…


퍼시와 마틴과 셰프 칼과 그의 전처 이네스(왼쪽부터)가 음식주문을 받고 있다.

배우와 감독과 각본가를 겸한 재주꾼 코미디언 존 홰브로의 온순한 가족용 코미디 드라마로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이 틈만 나면 화면을 장식해 영화 내내 군침을 삼키다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요리와 음식영화이기도 하다.
기자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함께 영화를 본 스웨덴 동료 기자와 함께 식당으로 직행, 맥주와 칼라마리를 시켜 먹었다. 선 보이는 음식 중에는 한국식 매운 오징어도 있고 디저트로는 고기 BBQ의 창업자인 로이 최가 개발한 ‘베리즈 앤 크림’도 있다.    
로드무비이기도 한 영화로 다채로운 요리만큼이나 대륙을 횡단하는 경치도 좋은데 가족관계 특히 부자지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셰프가 음식 비평가를 저주하면서 강렬히 비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홰브로가 2011년에 감독한 해리슨 포드가 나온 ‘카우보이와 외계인’이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고 흥행서 망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도 모른다. 간혹 플롯에 구멍이 나고 너무 단맛이 나긴 하지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초호화 앙상블 캐스트가 나오는 알록달록한 영화다. 
LA의 고급식당의 셰프 칼(홰브로)은 창의적인 메뉴 개발에 매달리는 사람인데 이름난 음식비평가 램지(올리버 플랫)가 오는 날 주인(더스틴 호프만)의 지시로 구태의연한 음식을 제공했다가 악평을 받는다. 이에 화가 난 칼은 다시 식당을 찾아온 램지에게 온갖 상소리를 퍼붓는데 이 장면이 트위터를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지면서 칼은 일약 유명 인사가 되고 식당에서 해고당한다.
이런 칼에게 늘 자기 메뉴를 마음대로 선보일 수 있는 음식트럭을 운영하라고 조언하는 돈 많은 전처 이네스(소피아 베르가라)가 마이애미의 친정집에 10세난 아들 퍼시(엠제이 앤소니)와 함께 가는데 동행하자고 제의한다.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칼은 이에 마이애미로 가서 쿠바 샌드위치의 맛에 빠지고 이네스의 전 남편 마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호의로 구닥다리 음식트럭을 선물 받아 아들과 함께 이를 개조한다.
주 메뉴는 쿠바 샌드위치인데 주방에 동참하는 사람이 퍼시와 칼이 셰프로 있던 식당의 보조 마틴(존 레구이사모). 셋은 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와 오스틴을 거쳐 LA로 향하는데 퍼시가 아버지의 메뉴를 트위터로 날리면서 이미 소셜네트웍으로 유명해진 칼의 트럭 앞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친다. 끝이 너무 조작적으로 말끔히 매듭을 짓는데 스칼렛 조핸슨이 칼이 해고당하기 전의 식당 리셉셔니스트이자 칼의 애인으로, 앤디 가르시아가 마이애미의 경찰로 나와 웃긴다.
R. Open Road. 아크라이트, 센추리 15, 랜드마크.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웃(Neighbors)

옆집 대학생들의 파티 소음으로 큰 싸움


맥과 켈리 부부가 테디(왼쪽)를 찾아와“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다.

더럽고 음탕하고 추하고 시끄럽고 상스럽고 고약한 젊은이들 영화로 10대의 우상이었던 잭 에프론(툭하면 상체를 벗어 제치고 근육미를 자랑한다)이 비로소 성인 배우로 우뚝 선 코미디다. 이런 영화에 능통한 우유 살이 토실토실 찐 세스 로건이 에프론의 옆집 원수로 나와 둘이 욕설과 육박전을 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데 여기 합류하는 것이 남편 로건 못지않게 입이 건 아내로 나오는 로즈 번. 
처음부터 끝까지 F자 상소리와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퉁퉁 부은 유방과 섹스와 나체 그리고 콘돔과 대마초와 술과 파티와 소음으로 화면을 메우는 난장판 코미디로 영화 속 에프론 처럼 대학생 또래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영화다. 얼굴을 찡그리며 봤지만 재미없다고 할 수는 없다. 빅히트할 것이다. 
갓난 여아를 둔 월급쟁이 맥(로건)과 그의 호주 태생 아내 켈리(번)는 있는 돈 다 털어 교외에 집을 사 이사한다. 그런데 이들의 옆집에 대학교 4학년생들이 집단 거주하려고 이사 오면서 파티 소음문제로 양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얘기의 전부다. 이 영화는 무슨 플롯이 정연하게 서술되는 얘기가 있는 영화가 아니라 악을 쓰면서 욕질을 해대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파티를 하면서 터무니없는 광란의 에피소드를 엮어 놓은 것이다. 
대학생 동아리 델타 사이의 리더로 놀자 판인 테디(에프론)와 그의 친구로 똑똑한 피트(데이브 프랭코-제임스 프랭코의 동생)와 일단의 그룹은 맥의 옆집으로 이사 오자마자 매일 같이 파티를 연다. 이에 죽어나는 것이 맥과 켈리.
그래서 둘은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테디를 찾아갔다가 테디의 초청으로 파티에 참석, 젊은 시절로 돌아가 대마초 태우고 술 마시고 춤추면서 신나게 즐긴다. 영화는 다시는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 돼버린 부부의 청춘 동경과 함께 얼마 안 있으면 이 둘처럼 되고 말 테디의 성장 공포를 다루었다. 그리고 맥 부부와 테디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테디네 파티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음 난장판이 되면서 맥은 견디다 못해 경찰을 부른다. 이로 인해 테디와 맥은 원수지간이 되고 서로 상대에게 해코지를 하기 시작한다. 맥의 테디에 대한 복수작전에 동참하는 것이 맥의 철딱서니 없는 친구(아이크 바린홀츠).
에프론이 사악하면서도 천진한 연기를 잘 하고 로건과 번의 콤비와 연기도 좋다. 리사 쿠드로가 테디의 대학 학장으로 나온다. 대학을 쫓겨난 테디가 벗은 상체를 자랑하며 애버크롬비 & 피치 가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발견한 맥이 자기 역시 상체를 벗은 뒤 비곗살을 드러낸 채 테디와 함께 호객행위를 하는 마지막 장면이 웃긴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마”



어머니는 공기다. 늘 사방에 가득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살지만 없으면 못 사는 대기다. 11일이 어머니날인데 그가 곁에 없으니 산소가 모자라는 듯이 가슴이 막힌다. 4일 예배시간에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을 부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나의 어머니도 나를 어릴 적에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쓰다듬어 주셨다. 그 모습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포옹하듯이 성스러운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성모다.
육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할지 모르나 내성이 강하기론 남자가 여자를 쉽게 못 따른다. 난 늘 여자가 남자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여자의 근본인 모성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구태여 이름이 없어도 좋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이 퓰리처상을 받은 ‘분노의 포도’의 조드 일가의 기둥인 어머니도 이름이 없다. 그냥 ‘마’(Ma)다. 글에서 마는 덩지가 크고 뚱뚱한 여자로 묘사되는데 마는 그 몸집만큼이나 결단력이 강하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자다.
경제공황시대 오클라호마의 농토를 잃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캘리포니아로 고물차를 타고 온 가족이 남부여대해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상주의자인 탐이다. 그러나 온갖 난관 하에서도 막상 이 ‘오키즈’ 대가족을 결집시키는 초석이자 뿌리는 마다.
마의 모습은 존 포드가 감독한 동명영화에서 제인 다웰에 의해 강하면서도 인자한 구원의 어머니상으로 성스럽게 묘사된다. 정든 땅을 떠나기 전 회한이 가득한 표정의 마가 때가 잔뜩 묻은 거울을 보면서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귀고리를 양쪽 귀에 대어보는 장면(사진)에서 미국 민요 ‘홍하의 골짜기’가 흘러나온다. 강렬한 장면으로 다웰이 마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포드는 감독상을 받았다.
마는 불굴의 인간 혼을 지닌 여자로 그의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내성이야말로 모성의 또 다른 형상이다. 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 올 거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 누구도 우리를 쓸어버릴 수 없어. 누구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 거야. 우리가 사람들이지.” 이런 말은 9개월간 체내에 생명을 잉태했다가 고통 끝에 피붙이를 토해낸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은 멜로드라마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드라마 ‘스텔라 달라스’가 그 대표작이다. 바바라 스탠윅이 열연하는 이 신파극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 없이는 못 본다. 우리 어머니도 스텔라 달라스 못지 않으셨다.
조운 크로포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밀드레드 피어스’도 가정주부에서 웨이트리스를 거쳐 식당 주인으로 성공하기까지 죽을 고생을 하면서 딸(앤 블라이스)을 키우는 어머니의 악착같은 생활력과 모성애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딸이 어머니의 애인을 가로채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이 밖에도 라나 터나가 주연하는 ‘인생의 모방’과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 ‘애정의 조건’ 및 ‘조이 럭 클럽’ 등도 좋은 모정에 관한 영화들이다. 한국 어머니들도 외국 어머니 못지않게 모성애가 강해 김혜자는 ‘마더’에서 살인범인 외아들의 죄를 감추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김혜자의 연기가 뛰어나 LA영화 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최우수여우로 뽑혀 본인이 상 받으러 LA까지 왔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사랑이 꼭 역시 혼자이셨던 우리 어머니의 외아들인 나에 대한 사랑 같아서 난 영화를 보면서 남 다른 감회에 젖었었다.
죽어가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들의 얘기를 감정 가득히 그린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은 영적이요 심오한 모자관계의 드라마로 촬영이 몽환적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아들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쁜 엄마도 있다.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것이 페이 더나웨이가 나온 ‘마미 디어리스트.’ 할리웃 황금기 수퍼스타였던 조운 크로포드와 그의 양녀 크리스티나의 실화로 크로포드가 어린 딸을 철사 옷걸이로 패는 장면이 유명하다.
11일에는 제리 베일이 부르는 ‘포 마마’(For Mama)라도 들어야겠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눈은 젖어요. 우리가 ‘아베 마리아’를 부르는 것을 듣기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하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날 위해 해주신 것에 비하면 그것은 여전히 너무 작은 것 같아요”라며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해피 마더스 데이!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5월 6일 화요일

오손 웰즈의 대표작 감상

6월 7일까지 매주 토요일 LACMA 빙극장
분실된 줄 알았던 `투 머치 잔슨' 포함 걸작 `시민 케인' 도


‘상하이에서 온 숙녀’

아카데미는 3일부터 6월7일까지 매주 토요일 LA카운티 뮤지엄의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에서‘이센셜 오손 웰즈’라는 제목 하에 이 천재 영화인이 감독한 대표작들을 상영한다. 이번 시리즈에서 특이한 것은 그동안 분실된 줄 알았던‘투 머치 잔슨’(Too Much Johnsonㆍ1938)의 66분짜리 필름이 상영되는 것. 웰즈가 영화스타일에 혁신을 일으킨‘시민 케인’을 감독하기 3년 전인 23세 때 찍은 이 필름은 그가 속했던 극단 머큐리 디어터가 공연할 윌리엄 질렛의 3막짜리 동명 소극을 위해 찍은 것이다. 웰즈는 매 막이 시작되기 전 서막식으로 상영하기 위해 4시간 분량의 필름을 찍었고 그 중 66분만이 남아 이번에 복원판으로 처음 일반에게 공개된다. 내용은 바람둥이 남자(조셉 카튼)가 자기 애인의 남편에게 쫓겨 로우어 맨해턴을 사방팔방으로 뛰어 도망 다니는 슬랩스틱 코미디식의 얘기로 사운드트랙이 없어 3일 상영 때 라이브 피아노 연주로 내용을 반주한다. 이 날 상영 때 웰즈의 협조자로 배우인 노만 로이드가 참석한다.

*3일(하오 7시30분)
▲ ‘하츠 오브 에이지’(The Hearts of Age)-웰즈의 첫 영화로 그가 10대 때인 1934년에 찍은 6분짜리 단편영화. ▲ ‘투 머치 잔슨’

*10일(하오 7시30분)
▲ ‘시민 케인’(Citizen Kaneㆍ1941)-웰즈가 25세 때 각본을 쓰고(공동) 주연하고 감독한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닮은 미 언론계 재벌 케인의 흥망성쇠. 

*17일(하오 7시30분)
▲ ‘위대한 앰버슨 가족’(The Magnificent Ambersonsㆍ1942)-세월의 흐름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한 가족의 드라마. ▲ ‘이방인’(The Strangerㆍ1946)-코네티컷주의 한 작은 마을에 숨어 사는 나치 전범(웰즈)과 이를 쫓는 연방 수사관(에드워드 G. 로빈슨)의 드라마.

*24일(하오 7시30분)
▲ ‘상하이에서 온 숙녀’(The Lady from Shanghaiㆍ1948)-태평양을 항해하는 유람선에 탄 아일랜드인 모험가(웰즈)와 유혹녀(리타 헤이워스) 그리고 이 여자의 남편이 엮는 이색 살인 미스터리로 마지막의 거울의 방의 총격장면이 아찔하게 멋있다. ▲ ‘미스터 아카딘’(Mr. Arkadinㆍ1955)-어두운 과거를 지닌 백만장자(웰즈)가 딸의 구혼자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31일(하오 5시)
▲ ‘심판’(The Trialㆍ1962)-이름 없는 나라의 한 남자가 설명되지 않은 범죄의 혐의자로 체포돼 재판을 받는다. 웰즈와 앤소니 퍼킨스, 잔느 모로, 로미 슈나이더 공연. 카프카의 소설이 원작.
▲ ‘악의 손길’(Touch of Evilㆍ1958)-후진 미 멕시코 접경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놓고 멕시코 마약전담 형사(찰턴 헤스턴)와 부패한 미국 형사(웰즈)가 충돌한다. 재넷 리, 마를렌 디트릭, 자 자 가보 공연. 흑백촬영이 뛰어난 걸작 필름 느와르.        

*6월7일(하오 5시)
▲ ‘자정의 차임’(Chimes at Midnightㆍ1965)-셰익스피어의 연극 5개를 엮은 드라마로 웰즈는 팔스탑으로 나온다. 존 길거드, 마리나 블라디, 잔느 모로 공연. ▲ ‘F 포 페이크’(F for Fakeㆍ1974)-가짜에 관한 자유로운 형식의 보고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The Amazing Spider-Man 2)

전기 빨아들이는 괴물과 `타임스퀘어 결투' 


스파이더-맨(왼쪽)이 공중을 비상하며 일렉트로와 격투를 하고 있다.

내가 딱히 앤젤리노가 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난 곤경에 처한 뉴요커만 도와주는 스파이더-맨 영화가 이젠 보면서 졸릴 정도로 지루하다. ‘X-멘’ ‘수퍼맨’ ‘아이언 맨’ ‘뱃맨’ 그리고 ‘어벤저스’와 ‘스파이더-맨’ 등 특수효과가 난장판을 이루는 이들 주인공이나 내용 등이 서로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그게 그것 같은 기시감에 빠진다.
신선하고 독창적이요 새로운 점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사람만 바꿔가면서 한 얘기 또 하는 식으로 계속해 속편이 나오니 영화평 쓰는 사람으로선 안 볼 수도 없고 참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파이더-맨의 팬들은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액션과 모험과 드라마와 로맨스 등을 총망라한 오락작품이다. 121분 상영시간이 좀 길고 너무 많은 내용을 쏟아 넣어 과식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나 마천루 사이를 훨훨 날면서 정의를 구현하는 마블만화 속의 인물 수퍼맨의 활약을 즐길 만하다. 입체영화다. 
제작비가 무려 2억달러가 들었는데 앞으로 제3편과 4편이 나올 예정. 이 속편이 흥행서 소니가 기대하는 흥행성적을 못 내면 최근 일련의 직원 해고조치를 취한 회사가 다시 해고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익명의 소니 직원이 귀띔해 줬다.
어수룩하고 수줍음을 타는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와 그의 애인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의 고교 졸업식으로 시작된다. 둘 다 고등학생이라기엔 너무 늙었는데 특히 나이 30세인 가필드가 원래 틴에이저인 스파이더-맨 역을 하기엔 너무 늙어 10대처럼 찧고 까부는 모양이 어색하다. 그리고 가필드는 늘 울상이어서 비극적 영웅처럼 보이는데다가 카리스마도 부족하다. 여하 간에 그에게 소득이 있다면 전편에서도 공연한 스톤과 실제 애인이 됐다는 점. 그래서인지 둘 간의 콤비는 찰떡궁합이다.
대규모 생명공학연구소인 오스코프의 고급 연구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문의 죽음 이후 백모(샐리 필드)에 의해 자란 피터는 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밖에는 피터는 스파이더 맨 옷을 입고 뉴욕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악인들을 때려누이고 위기에 처한 뉴요커들을 구해 주면서 시민들로부터 영웅 취급 받는 것을 즐긴다(스파이더-맨이 성격이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졌다). 
피터의 또 다른 기쁨은 애인 그웬과의 데이트. 그러나 피터는 자신의 활약에 위험이 너무 많이 뒤따라 그웬을 자꾸 멀리하려 하면서 그웬은 옥스포드대에 들어가기로 작정한다. 그리고도 둘은 다시 만났다 또 다시 헤어졌다 하는데 제3막에 가서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스파이디가 맞서는 첫 천하대적은 오스코프의 소심한 전기공 맥스로 작업을 하다가 실족해 실험용 전기뱀장어들이 우글거리는 물통에 빠진 뒤 뉴욕시 전체의 전기를 자기 몸에 빨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푸른색의 빛나는 괴물이 된 일렉트로(제이미 팍스). 스파이디와 일렉트로가 밤의 타임스퀘어에서 장시간 벌이는 액션신이 볼만하다.
그런데 스파이디의 적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두 번째 적은 불치병을 앓는 오스코프의 상속자이자 피터의 어릴 적 친구인 해리 아즈본(데인 드핸). 그런데 해리는 스파이더-맨 전편에서 나온 악인 그린 가블린이 입고 공중을 날던 비행 옷을 입고 스파이디와 맞선다.
물론 속편을 예고하고 끝나는데 소니는 기자들에게 제발 영화의 중요한 내용을 누설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마크 웹 감독. PG-13.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벨(Belle)

18세기 영국 노예제 폐지하던 시절 이야기


디도(오른쪽)와 엘리자베스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18~ 19세기를 통해 펼쳐지는 영국의 노예제 폐지와 이를 주도한 대법원장 윌리엄 머리 백작과 그가 키운 흑백혼혈의 증손녀 디도의 매우 특별나고 흥미 있는 실화에 허구를 섞어 다룬 의상극으로 귀티가 나는 고급 지적영화다.
내용도 재미있고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도 훌륭하고 현지 촬영과 의상과 디자인 등 모든 것이 잘 만들어진 준수한 작품이다. 흑인 여류감독 암마 아산테의 두 번째 영화인데 연출력이 차분하고 튼튼하다. 전형적인 시대극이나 주인공 벨처럼 현대 감각이 다소 가미된 좋은 작품이다.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퍼드셔 스콘 미술관에 소장된 1779년에 그린 벨과 그의 사촌 엘리자베스의 초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얘기는 디도 엘리자베스 벨이 소녀 때인 1769년부터 시작돼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디도의 아버지는 영국 해군 제독인 존 린지(매튜 굿)로 디도는 그와 카리브해 국가의 여자 사이에서 출생했다. 존은 딸을 대법원장인 아저씨 머리 백작(탐 윌킨슨)에게 맡기고 떠난다. 머리 백작과 아내(에밀리 왓슨)는 아이가 없어 이미 둘의 친척의 딸 엘리자베스를 딸처럼 키우고 있다. 머리 부부는 처음에는 이 혼혈녀를 어찌 다룰지 몰라 당황하나 곧 디도를 자기들의 친딸처럼 대한다.
디도는 커서 매우 총명하고 독립적이며 할 말 다하는 훌륭한 숙녀(혼혈인 구구 엠바타 로)가 된다. 디도와 엘리자베스(새라 개돈)는 자매처럼 지내지만 디도는 혼혈이어서 외부 손님을 대접하는 식사에는 참석을 못한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손님에게 소개된다. 
이 같은 디도의 역동적인 가족 드라마와 함께 머리가 다루는 노예선 종에 대한 재판이 중요한 플롯을 이루면서 노예해방 문제가 거론된다. 종의 선장과 선원들은 화물 취급하는 아프리카의 노예를 싣고 오다가 142명의 노예를 수장시킨 뒤 귀국해 상품에 대한 보험금을 요구하면서 재판이 열린 것. 머리는 과연 이들 노예들이 인간인가 아니면 화물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한편 시대를 앞서 가는 신여성인 디도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노예제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존 대비니어(샘 리드)를 알게 되면서 둘이 함께 노예제 폐지운동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디도는 사망한 아버지로부터 매년 2,000파운드의 유산을 받게 되면서 젊고 아름답고 부유한 이 혼혈녀에게 돈 없는 여러 귀족들이 구혼을 한다. 그 중 한 남자가 인종차별주의자인 어머니(미란다 리처드슨)로부터 등을 떠밀리다시피 하는 올리버(제임스 노턴). 
종의 재판 결과 머리는 노예제의 불법을 판결하는데(이는 사실과 다르다) 어쨌든 영국은  미국보다 30년 앞선 1833년 노예제를 폐지한다. 신인 엠바타 로와 윌킨슨의 연기가 돋보인다. 
PG.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별이 빛나는 밤에



야무지게 생긴 데보라 보다는 큰 누나 같았고 동안에 수줍어하는 구스타보 두다멜은 남동생 같았다(사진). 4월29일 할리웃 보울에서 있은 시즌개막 축하파티에 먼저 등장한 데보라 보다 LA필 사장은 “오늘은 여름밤을 즐기는 날”이라고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었다.
뉴욕 필의 사장을 오래 지낸 보다는 뛰어난 사업가로 LA필을 미 굴지의 오케스트라로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했다. 파티에는 칵테일과 함께 일식ㆍ미국식 진수성찬이 제공됐는데 난 한국 소주와 맛이 비슷한 일본 쇼추 칵테일을 즐겼다.
시즌 내용 소개는 보다가 질문하고 LA필 상임지휘자인 두다멜이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보다는 두다멜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얘기를 나눴는데 두다멜의 영어가 아직 완전치 못해서 그런지 두다멜의 발언에 바짝 신경을 쓰면서 틀린 말은 즉시 수정하곤 했다. 두다멜이 좀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두다멜은 두 이탈리아 오페라 ‘팔리아치’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오케스트라 공연(7월 27일)에 관해 설명하면서 할리웃 인근 정경이 이탈리아와 비슷해 이들 오페라 연주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지휘자 칼로 마리아 줄리니가 LA필의 지휘자 직을 수락했을 때 사람들이 “아니 어쩌자고 LA필을 맡느냐고” 의아해 하자 줄리니는 “LA의 정경이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두다멜은 이어 자신의 첫 영화음악도 연주된다고 말했다. 두다멜은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에드가 라미레스)의 삶을 그린 영화 ‘해방자’(The Liberator-8월22일 개봉)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7월 31일에 연주된다.
조국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한 두다멜은 “할리웃에 살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있을 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단지 소량의 음표를 지었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는 이어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8월29일과 30일 공연)를 찬양하면서 “내가 영화음악을 또 작곡할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두다멜은 과거 몸에 꼭 끼는 새빨간 짧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중국의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 유자 왕(7월17일 연주)의 출연을 얘기할 때는 눈알을 굴려가면서 “뷰티풀”이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난 이날 내가 늘 벼르던 두다멜에 대한 질문을 할 기회를 노렸으나 놓치고 말았다. “당신은 해리 벨라폰테가 부른 ‘베네수엘라’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칵테일 바에 있는 보다에게 다가가 우선 날 소개했더니 보다가 내게  “당신 뭐 마시느냐”고 묻는다. 내가 “쇼추 칵테일인데 맛있다”고 했더니 보다도 “그렇다”고 동의했다.
이어 내가 그에게 “누군가 두다멜에게 내가 묻고자 하는 이 질문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보다는 “난 그 노래 모르지만 두다멜은 아마 알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보울의 흰 조가비 지붕 아래 무대에 서니 고교생 때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의 사진이 찍힌 해적판 LP의 재킷을 보면서 현실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의 장소와도 같았던 할리웃과 음악을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할리웃 보울은 세계적 명소여서 영화와 TV에도 자주 나온다. 휴가 받은 수병인 프랭크 시내트라와 진 켈리가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운 뮤지컬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ㆍ1945)가 그 대표적인 영화다. 여기서 둘은 보울 무대에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제2번’을 연습하는 저명한 피아니스트 호세 이투르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보울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들로는 프레데릭 마치와 재넷 게이너가 공연한 ‘스타 탄생’( A Star Is Bornㆍ1937)과 프레드 맥머리와 바바라 스탠윅이 나온 걸작 필름 느와르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ㆍ1944)이 있다. ‘이중 배상’에서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보울에서 연주된다.
보울이 나오는 TV 드라마로 멋있는 것은 콜롬보 시리즈 ‘에튀드 인 블랙’(Etude in Black). 탁월한 지휘자인 존 캐사베티스가 보울 연주 중간 휴게시간에 장소를 떠나 자신과의 혼외정사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여류 피아니스트를 살해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는다.
보울은 현재 1981년에 개수한 벤치를 새 것으로 교체 중에 있다. 보울시즌은 6월21일 불꽃놀이로 말미가 장식되는 ‘홀 오브 페임’ 콘서트로 시작된다. 3일에는 제12회 할리웃 보울 한국일보 음악대축제가 열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