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미술가 경험으로 본 나치와 전후 독일과 예술


‘타인들의 삶’(The Lives of Others)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크의 세 번째 작품으로 다소 감상적이고 상영시간 188분도 좀 길긴 하지만 매우 감동적이요 사려 깊은 작품이다. 도너스마크는 ‘타인들의 삶’을 만든 후 할리웃의 부름을 받아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졸작 ‘관광객’(The Tourist)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 ‘타인들의 삶’과 분위기가 닮은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가 각본도 썼다. 
1930년대 나치 집권 시대에서부터 1960년대 독일의 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미술가가 겪는 개인적 경험과 변화하는 정치 상황 그리고 예술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 및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자 스릴러 기운마저 갖춰 흥미진진하다. 
1937년 드레스덴. 처음에 어린 쿠르트 바나트(카이 코스)가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적인 아주머니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와 함께 나치가 전시한 ‘퇴폐 미술전’을 구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치는 칸딘스키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퇴폐작’으로 취급했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사이나 나치에 가입하지 않아 직장을 잃어 집안 생계가 어렵다. 
쿠르트는 엘리자베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대한 영감과 사랑을 키우는데 엘리자베스가 정신질환을 잃으면서 나치 동조자인 산부인과 의사이자 교수인 칼 제반트(세바스티안 코흐)에 의해 불임수술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이어 개스 처형된다.
2차대전 후 드레스덴은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가고 성장한 쿠르트(톰 쉴링)는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여기서 패션을 공부하는 아름다운 엘리(파울라 베어)를 만나 둘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엘리는 칼의 딸. 물론 쿠르트는 칼이 자기 아주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흉악한 전범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런 내용이 다소 억지 같고 신파적이다. 그런데 칼은 자기 딸에게 까지 수술 칼을 들이대는 가혹한 괴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쿠르트와 칼간의 대결을 예상하게 되지만 감독은 이를 보여주지 않는데 따라서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이 대폭 감소된다. 쿠르트는 그림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신의 예술혼에 위배되는 공산정권의 선전 위주의 요구에 환멸을 느껴 엘리와 함께 서독으로 이주한다(아직 베를린 장벽이 안 세워졌을 때다). 쿠르트가 공산체제 하에서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향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이 효과적으로 묘사되지 못 했다. 
뒤셀도르프에 안주한 쿠르트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현대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창작열을 한껏 불사르나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포토-리얼리즘으로 성공한다. 촬영과 세트와 음악 등도 좋다. 
눈에 띠는 연기는 ‘타인들의 삶’에도 나왔던 코흐의 것이다. 쿠르트는 현존하는 독일의 시각미술가 게르하르트 릭터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Sony Pictures Classic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두가 알고 있어(Everybody Knows)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고향 방문, 딸의 납치, 드러나는 과거의 비밀…
이란 화라디 감독의 다소 느슨한 가족 드라마


‘이혼’(A Seperation)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란의 아스가르 화라디의 가족 드라마이자 납치극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페넬로피 크루즈와 그의 남편 하비에르 바르뎀 등 스페인 배우들을 사용해 스페인에서 찍었다. 인물들의 성격묘사와 이란의 사회상 비판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감독이 자기 보금자리를 떠나 국제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영화가 맥이 빠진 신파 타작이 되고 말았다.
납치극이면서도 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여러 인물들이 나와 엮는 얘기도 중언부언 식이고 결말이 완전히 바람 빠진 풍선 같아 화라디의 촘촘하고 강인한 연출 솜씨를 기대하던 사람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볼만한 것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다시피 하는 크루즈의 연기와 그와 바르뎀의 화학작용이다.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라우라(크루즈)가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오래간만에 스페인의 시골 마을을 찾아온다.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면서 시끌벅적대던 저녁에 라우라의 10대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실종된다. 이어 정체불명의 납치범으로부터 이레네의 몸값을 요구하는 통지가 온다. 이 소식을 들은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아르헨티나의 베테런 배우 리카르도 다린)도 스페인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라우라의 가족들의 삶의 실타래가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안고 있는 과거의 비밀들이 드러난다. 이 과거들 중에는 라우라와 그의 전 애인 파코(바르뎀)의 깊고 뜨거웠던 사랑이 있다. 라우라의 가족이 몸값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겉으론 완벽하게 보이던 그의 가족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난다.
개인들의 비밀과 납치를 다룬 영화로선 감정이 결여됐는데 영화를 멜로드라마처럼 이끌어 가는 바람에 강렬한 긴장감이나 극적 폭발력이 아주 미약하다. 그리고 결말을 맺는 부분이 다분히 조작적인데다가 느슨해 맥이 빠진다. 클라이맥스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기대에는 못 미치나 볼만은 하다. 화라디의 주도면밀한 연출과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얘기 그리고 섬세한 인물과 성격개발이 아쉽다. R등급. Focu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페이버릿(The Favorite)


야심찬 하녀 애비게일은 미소와 친절로 앤 여왕(왼쪽)의 총애를 산다.

화려한 궁정서 펼쳐지는 세 여인의 권력쟁탈전


신랄한 풍자가로 ‘랍스터’(The Lobster)와 ‘신성한 사슴 살해’(Killing of a Sacred Deer) 등을 만든 그리스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의 세 여인의 궁정 코미디 드라마로 기막히게 화려하고 재미있다. 란티모스는 관객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라고 하겠는데 이번에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다시피 어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시 자기 나름대로 얄궂다시피 한 기지와 위트와 검은 티가 나는 유머 그리고 지적 자유를 마음껏 발휘해 관객의 지와 감성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다.
세 주인공 여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눈부시게 화사한 의상과 세트 그리고 복잡다단한 내용을 아기자기하게 엮어간 각본 및 음악과 일사불란한 연출 등이 다 빼어난 영화로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세 여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관계를 우정으로 위장하고 배신과 음모를 자행하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잔뜩 엮어 넣은 것이다. 18세기 초엽 영국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궁정이 무대. 자녀를 17명이나 두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앤은 고독한 심술쟁이. 성질을 잘 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게다가 한쪽 다리가 몹시 아파 윌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이를 옆에서 극진히 돌보는 여자가 젊은 귀족부인 레이디 사라(레이철 바이스). 사라는 앤의 친구이자 비서요 동성애 애인이자 참모인데 국정에 관심 없는 여왕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나라 일을 처리하면서 권력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는 멍청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실속은 다 차리는 간교한 여자여서 사라의 속셈을 잘 안다.
이런 자리에 사라의 친척인 공손하고 겁먹은 표정을 한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하녀로 들어온다. 사라의 지시에 따라 부엌 막일을 맡은 애비게일이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앤의 아픈 다리에 발라 신통한 효과를 보면서 미소와 친절을 선심 쓰듯 하는 애비게일은 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앤을 둘러싸고 사라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쟁취 극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데 이런 둘의 미소로 덧칠한 독침의 공격과 방어를 앤은 나름대로 조종하며 즐긴다. 남자들도 여럿 나오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여성 위주의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서 논다.
시치미 뚝 뗀 유머와 위트가 날카롭고 사정없이 야박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보여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매력적인 영화로 콜맨과 바이스와 스톤의 연기가 경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콜맨의 아이처럼 철없고 순진하고 심통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차릴 것 다 차릴 줄 아는 연기가 빛을 낸다. 그리고 볼 것 없는 부엌 하녀로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속 다 차리는 스톤과 표독스럽고 차고 간교한 표정의 바이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드 II(Creed II)


크리드(왼쪽)가 록키의 코치 하에 빅터와 대결하려고 모스크바의 링에 올랐다.

‘록키’시리즈 속편… 아폴로와  드라고의 아들, 링 위 사생결단 대결


‘록키 II’에서는 아버지끼리 주먹다짐을 하더니 ‘크리드 II’에선 아들끼리 싸운다. 
2015년에 나온 ‘록키’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생작품인 ‘크리드’의 속편인데 ‘록키’와 그 속편들의 내용을 재탕한 것처럼 진부하고 서스펜스나 긴장감도 또 놀라울 것도 없는 타작이다. 킬링 타임용은 된다.
전편에서 록키(실베스터 스탤론)의 지도 하에 새 헤비급 챔피언이 된 크리드(마이클 B. 조단)는 ‘록키’시리즈 제1편과 제2편에서 록키와 대결한 흑인 선수 아폴로의 아들. 처음에 잠깐 크리드가 링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후에 크리드와 대결할 우크라이나의 젊은 살인무기 빅터 드라고(플로리안 먼테누)가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이어 크리드가 가수인 애인 비안카(테사 탐슨)에게 구혼을 하면서 영화는 주먹대결에 로맨스를 양념으로 치는데 매우 어색하다. 각본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데 크리드와 비안카의 열기 빠진 관계와 함께 록키가 아내의 무덤엘 찾아가 독백을 하는 장면도 이젠 식상하다.
빅터가 크리드에게 대결하자고 선포하면서 록키와 크리드 간에 갈등이 인다. 록키는 크리드에게 폭력자에 지나지 않는 빅터와 대결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붙어봤자 승산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빅터가 ‘록키 VI’에서 크리드의 아버지인 아폴로를 링에서 때려죽인 이반 드라고(돌프 런드그렌)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반은 빅터의 코치로 러시안 챔피언이었던 이반과 록키는 ‘록키 IV’에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싸운 사이. 이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후계자를 내세워 다툰다. 
크리드는 자기를 떠난 록키의 도움 없이 빅터의 도전을 받아들여 링에 오르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그러나 빅터의 반칙으로 크리드는 챔피언십을 유지한다. 
클라이맥스는 빅터의 재도전에 응한 크리드가 25대 1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의 링에서 빅터와 사생결단의 경기를 벌이는 것. 물론 그 전에 크리드를 돕기로 결심한 록키의 지도 하에 크리드가 사막에서 맹훈련을 하는데 이런 것이 다 옛날 ‘록키’의 장면을 답습한 것이다. 
조단은 전편에서는 신선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이번에는 기운이 떨어진 사람 같다. 영화를 보면서 흥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록키’시리즈에서 이반의 아내로 나왔던 브리짓 닐슨(스탤론의 실제 애인이었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 많이 늙었다. 제3편이 나올 것처럼 끝난다. 스티븐 케이플 주니어 감독. PG-13 등급. MGM.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린 북(Green Book)


토니(왼쪽)가 단 셜리 박사를 차에 태우고 미 남부를 여행하고 있다.

순회콘서트 동행 흑백, 서로 이해하는 과정 훈훈


온 천하 만백성이 모두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안전위주의 인종차별에 관한 드라마 코미디다. 뛰어난 연기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재미있는 내용과 재즈와 클래식을 혼성한 듯한 음악과 다소 감상적인 연출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의 마음을 훈기로 채워주는 연말 할러데이용 작품이다.
오스카상을 탄 ‘데이지 마님 모시기’를 연상시키는 얘기로 놀라운 것은 감독이 ‘덤 앤 더머’와 ‘메리에겐 뭔가 있어’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야한 코미디를 만든 화렐리 형제 중의 하나인 피;터 화렐리라는 점. 그는 물론 코미디 전문이어서 영화가 코미디 분위기가 다분하긴 하나 진짜 알맹이는 진지한 드라마다. 
연기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작품인데 흠이라면 흑백문제를 너무 쉽고 안이하게 다룬 것. 이 영화만 같다면 미국의 흑백문제는 쉽사리 풀릴 것인데 인물들이나 상황이 모두 너무나 틀에 박힌 공식을 따라 끝이 어떻게 될지 영화가 시작되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연출 방식이 영화의 내용을 사람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접근시킨다기보다 조작하는 식이어서 다소 거부감이 인다. 그러나 심각한 내용을 매우 우습고 흥미진진하며 또 진지하게 다룬 좋은 영화다. 
1962년.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토니(비고 모텐슨)는 일자무식의 클럽 바운서로 아내(린다 카델리니)와 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나 마음은 곱다. 토니는 이탈리아계인데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여 떠들어대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틀에 박힌 듯이 묘사했다. 
토니가 일하던 클럽이 보수공사로 문을 닫으면서 토니는 자가용 운전사를 구하는 재즈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흑인 단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문라이트’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집을 방문한다. 유명하고 돈 많고 박식한 셜리는 카네기홀 위층의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데 태도가 아프리카의 임금님처럼 도도하기 짝이 없다.
셜리는 8주간 미 남부 순회연주를 위해 토니를 고용하는데 셜리의 밴드 구성원인 백인들인 베이시스트와 첼리스트는 다른 차를 타고 셜리와 동행한다. 성격과 성장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로드 무비인데 둘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셜리는 온갖 인종차별을 겪게 되나 그가 곤경에 처할 때면 완력과 입심이 센 토니가 나타나 구해준다. 
둘이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고 겪는 갖가지 사건과 해프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둘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깊은 정으로 맺어지게 된다. 둘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나 모두 정직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처음에는 각자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다가 시간이 가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존중하고 또 그것을 따르는 과정이 두 배우의 기막힌 화학작용에 의해 아름답게 그려진다.
모텐슨의 다소 어릿광대 같은 우습고 으스대는 연기도 일품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것은 알리의 위풍당당하면서도 자비로운 연기다. 오스카 조연상을 다시 탈 가능성이 많다. 알리가 밴드의 반주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이 박수갈채를 받을만하다. 제목은 흑인들이 미 남부를 여행할 때 백인들의 박해를 피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PG-13 등급.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영원의 문턱에서(At Eternity’s Gate)


고흐는 친구 고갱이 자기를 떠나자 왼쪽 귀를 잘라버린다.

고갱과 우정과 갈등 그리고 정신질환… 고흐의 생애 마지막 부분 그린 전기영화 


반 고흐의 남프랑스에서의 생애 마지막 부분을 그린 전기영화로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과 고흐 역의 윌렘 다포의 정열적인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고흐의 그림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너무 고답적이요 지적이며 예술적이어서 정이 쉽게 가질 않는다.
감독은 유명한 미술가인 줄리안 슈나벨로 그는 질서 있는 서술을 무시하고 고흐의 화가로서의 영감과 그림에 치중해 보기에는 다채롭고 화려하나 실제로 고흐의 불우했던 삶을 체감하기가 힘들다. 슈나벨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지지만 그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고흐라고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으로 볼 만하다.
영화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고흐의 남프랑스의 알르와 생-레미 등지에서 창작활동과 함께 그와 화법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화가 고갱과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화상인 형 테오(루퍼트 프렌드)와의 관계 및 고흐가 자기 왼쪽 귀를 자르면서 지낸 정신병동에서의 삶 등을 다루고 있다.
고흐(다포)와 고갱(오스카 아이작)은 먼저 파리에서 만난다. 고갱은 태양을 그리워하는 고흐에게 남프랑스로 내려가라고 조언한다. 알르에 내려온 고흐는 가난에 시달리면서 형의 도움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정열이 불길처럼 타올라 계속해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그림책을 통해 많이 본 그림들이 나온다.
감독은 고흐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색깔과 형체미를 통해 자주 보여주면서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을 유혹하는 반면 이야기가 약하다. 각본은 감독과 프랑스의 베테런 각본가인 장-클로드 카리에리 등 세 사람이 썼다. 감독은 고흐가 희열에 젖어 자연과 인물 모델 그리고 정물 등을 그리는 모습을 화가의 눈으로 관조하고 있다. 
고흐는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면서 어두운 삶을 살지만 생명력의 활화산인데 자기와 극진한 사이이던 고갱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면서 평소의 정신질환이 악화, 자기 왼쪽 귀를 잘라버린다. 이어 정신질환자 요양소에서 살던 고흐는 자신의 정신질환 상태를 판단하러 온 신부(매즈 미켈슨)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화에서 고흐는 자기를 시대에 앞서간 예수에 비유한다. 그런데 고흐역의 다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에서 예수로 나온바 있다. 고흐는 37 세로 요절했다.
마티외 아말릭, 에마뉘엘 세녜, 닐스 아레스트룹 및 안 콩시니 등 유럽의 스타들이 단역으로 나온다. 서술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촬영과 다포의 영육을 다 바친 경직되다시피 강력한 연기가 빼어난 작품이다. PG-13 등급. CBS Film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20년 조사위 보고’


트럼프와 김정은(사진) 간의 화해무드가 온탕냉탕을 들락날락하는 요즘 실수와 판단착오로 인해 미국과 북한 간에 핵전쟁이 벌어지는 내용의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루이스가 쓴 ‘북한의 대미 공격에 관한 2020년 조사위 보고’(The 2020 Commission Report on the North Korean Attacks Against the United States)다. ‘상상해본 소설’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둘 다 예측 불허한 사람들이 통치자로 있는 핵보유국인 미국과 북한 간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룬 것이어서 사실감이 절실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보고 교훈으로 삼을만한 책이다.
사흘 동안 벌어진 양국 간의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300여만 명이고 부상자는 80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미국과 북한 간에 전쟁이 나면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사상자가 포함된다. 
마치 007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과 긴장감에 블랙 코미디 분위기마저 갖춘 이 소설은 미국과 북한 간의 핵전쟁 직전 상황과 전쟁발발 그리고 그 후유증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지도자들의 판단 착오와 우발적 충동심이 인류의 참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 책은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무지와 대북 관계에 관한 어리석은 낙관과 판단의 오류 및 즉흥적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래서 책에서 트럼프는 이 보고서를 ‘마녀 사냥’이며 ‘가짜 뉴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책은 핵전쟁과 그 후유증을 다뤘다는 점에서 같은 내용을 다룬 영화와 TV드라마인 ‘온 더 비치’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및 ‘더 데이 애프터’를 생각나게 만드는데 그 현실감과 함께 재미 있는 내용과 쉽게 진행되는 서술로 인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2020년 3월 21일 한반도 위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한국 부산의 김해국제공항에서 부산(BX) 411편을 탄 288명의 승객들 중 그 누구도 이 비행이 대참사의 비행이 되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288명 중 절반가량이 몽고의 자매학교를 방문하러 가는 부산중학교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안 돼 계기고장으로 비무장지대로 넘어서자 북한 측의 공격을 받고 추락한다. 북한 측이 이 여객기를 격추한 이유는 그 동안 미 폭격기가 훈련을 빙자해 자주 비무장지대에 근접 비행하는 신경전을 벌인데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북한 측은 여객기를 이번에도 훈련을 빙자해 접근하는 미 폭격기로 오인한 것이다.
 여객기 격추 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참모회의를 열고 대 북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는데 그가 북한과의 전쟁 불사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의 참사와 그 후유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편 김정은은 한국이 미국의 동의 없이 자기를 공격할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서 보복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괌의 미국기지를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한다. 이 때 트럼프는 플로리다주의 마-라-라고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 공격 생존자들인 서울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도쿄의 소방서장 그리고 부산의 한 여의사의 중언을 토대로 핵의 재앙을 상세히 보여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부 중앙청사로 피신했다가 핵폭탄을 맞으면서 사망한다.           
이어 김정은은 트럼프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판단,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지시한다. 3월 22일 새벽 총 13개의 핵탄두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 14와 15호가 발사된다. 이 들이 미 본토까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40여분.
공격 목표는 진주만과 샌디에고와 워싱턴 D.C. 그리고 9/11 때 부시가 피신했던 루이지애나주 슈레비포트의 박스데일 공군기지(트럼프도 이리로 피신하리라는 예측에서)와 뉴욕과 마-라-라고. 핵미사일이 북한을 떠나 미 본토에 떨어지기 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3개중 6개는 불발탄인데 미사일은 백악관은 빗겨가나 뉴욕의 맨해탄에 명중, 당시 트럼프타워에 있던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가 즉사한다.
북한 측 공격에 뿔이 난 트럼프는 김정은이 중국의 허락 없이 미국을 공격할 리가 없다고 판단,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핵 공격을 결심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참모가 핵 공격을 지시할 수 있는 코드가 있는 가방 ‘풋볼’을 트럼프로부터 가로채 이를 저지한다. 이어 트럼프는 오마하주 네브라스카의 미 전략사령부 지하벙커로 피신하기 위해 전용기에 오른다. 트럼프는 비행기 창밖으로 플로리다에 떨어진 핵폭탄이 만들어낸 치솟는 불덩이를 보면서 “진짜 아름답네”라고 찬탄한다.
이어 미 공군의 북한에 대한 공중 폭격과 김정은 제거를 위한 특공대를 포함한 미군 지상공격이 벌어지면서 북한군은 궤멸한다. 김정은은 묘향산의 벙커로 피신했다가 특공대가 들이닥치기 직전 자살한다. 그리고 트럼프는 상원 덕분에 간신히 탄핵을 면하고 재출마를 포기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거미줄에 걸린 여인(The Girl in the Spider’s Web)


살라만더가 아내를 학대하는 남자를 공중에 매단 채 징벌하고 있다.

스릴러서 액션물로 … ‘밀레니엄’시리즈의 변종


‘용의 문신을 한 여자’를 시작으로 한 스웨덴의 스릴러 작가 스틱 라슨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후속편인 셈이지만 이 영화는 라슨의 사망 후 데이빗 라거크란츠가 ‘밀레니엄’ 시리즈의 여주인공 리스베스 살란더를 기용해 쓴 소설이 원작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밀레니엄’ 시리즈의 변종이라고 하겠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누미 라파스가 주연한 3부작 스웨덴 영화와 루니 마라가 주연한 미국영화 ‘용의 문신’ 등이 히트를 했는데 이번에는 BBC-TV시리즈 ‘크라운’에서 젊은 엘리자베스여왕으로 나온 클레어 포이가 살라만더로 나와 치고 박고 쏘고 맹속력으로 도주하면서 액션연기를 한다. 
속도감 있고 액션이 많아 눈요깃거리 오락영화로선 큰 손색이 없지만 살란더의 내면 묘사와 성격 개발이 아주 미흡해 포이의 맹렬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스릴러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에서 표현되었던 살라만더의 분노와 복수심과 고통당하는 내면이 거의 보이지 않고 세계를 핵의 위협으로부터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액션에 치중하고 있다. 어둡고 심각했던 다른 영화들에 비해 격이 한층 떨어졌다. 
처음에 살라만더의 어린 시절이 서막식으로 나온다. 살라만더의 아버지는 살라만더와 그의 언니를 성적으로 유린하는데 이런 아버지를 피해 살라만더는 도주하나 언니 카밀라는 아버지 곁에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헤어진 살라만더와 카밀라(실비아 혹스)는 성인이 되어 치명적인 적으로서 만난다. 
이어 천재적인 해커가 된 짧은 머리의 살라만더가 아내를 폭력으로 학대하는 남편을 응징하는 장면이 또 다른 서막식으로 나오면서 살라만더가 소개된다. 미국의 국가안보위(NSA) 전직 요원 프랜스 발더(스티븐 머천트)가 전 세계의 핵폭탄이 저장된 장소를 해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 ‘화이어폴’을 고안한다. 그런데 이것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악인이 고용한 ‘스파이더스’라는 범죄 조직에 의해 탈취되면서 NSA가 ‘화이어폴’의 회수 임무를 살라만더에게 맡긴다.
살라만더가 이를 회수하자마자 그의 아파트가 폭파되고 이어 살라만더는 영화 내내 악인들을 쫓고 또 그들에게 쫓기면서 액션이 삼빡하게 벌어진다. 맹렬히 달리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추격과 개스 마스크를 쓴 살라만더가 가축용 충격봉으로 적과 싸우는 등 박력 있는 액션 장면이 많다. 
과연 ‘스파이더스’의 관계자는 누구인가. 대충 알만하다. 영화의 또 다른 결점 중 하나는 살라만더를 돕는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스베리르 구드나슨)가 완전히 장식품으로 소모된 것. 마지못해 쓰여진 것 같다. 이와 함께 플롯도 허술한 데가 있고 작품의 톤이 무질서하지만 포이의 단단한 연기가 볼만한 효과적이요 말끔한 스릴러다. 페데 알바레스 감독. R등급, Son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선두주자(The Front Runner)


게리 하트(휴 잭맨)가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대답 없이 피해 가고 있다.

섹스스캔들로 대선 중도하차 게리 하트 상원의원 실화… 휴 잭맨, 정치인 변신


1988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콜로라도주 상원의원 게리 하트가 섹스스캔들로 도중하차 한 사실을 다룬 드라마로 너무 고지식하게 실화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 극적 흥분감이나 긴장감이 모자란다. 하트는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온 조지 H. W. 부시를 앞지르고 선두를 달렸으나 모델인 다나 라이스와의 섹스 스캔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몰락의 길로 급전직하 하고 말았다.
영화는 과연 정치인은 사생활에서 반드시 투명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데 이와 함께 하트를 도중하차 하게 만든 태블로이드의 전횡과 스캔들에 흥분하는 대중의 천박한 호기심까지 비판하고 있다. 포르노 여배우와의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보면 콧방귀를 뀔 영화다.
옛날에만 해도 언론은 대통령의 혼외정사에 관해 관대했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와 아이젠하워를 비롯해 존 F. 케네디 등이 다 혼외정사를 즐긴 대통령들이다. 하트 이후의 대통령인 빌 클린턴도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를 비롯한 몇 명의 여자와의 관계로 인해 크게 혼이 났지만 8년을 백악관에서 살았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언론과 대중은 대통령의 정직성을 따지게 됐는데 전문가들은 특히 1980년대 들어 태블로이드가 워터게이트 같은 빅 스캔들 보도 특종에 혈안이 되면서 정치가들이 이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게리 하트(휴 잭맨)와 모델인 다나 라이스(새라 팩스턴)와의 관계는 처음에 이에 대한 팁을 받은 마이애미 헤럴드지에 의해 보도됐다. 신문의 기자들이 증거를 잡으려고 하트의 집 밖에서 잠복했다가 그를 덮치는데 처음에 하트는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기자들에게 오만하게 “따라 붙으려면 따라 와봐”라면서 대응한다. 
그러나 기사가 나가면서 후폭풍이 몰아치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 문제를 가십정도로 생각하던 워싱턴포스트가 스캔들을 보도하면서 하트는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된다. 하트가 플로리다 요트에서 만난 라이스와 관계를 가졌을 때 그와 그의 부인(베라 화미가)과의 관계는 원만치가 못했을 때다.
하트는 선거유세에서는 개인의 정직과 올바른 정체성을 얘기하면서도 자신은 부정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해 선거참모들과 대중에 의해 위선자로 여겨지면서 참신하던 그의 정책과 에너지와 젊음과 함께 매장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화는 하트를 단죄하지는 않는다. 잭맨이 가발을 쓰고 열연을 하는데 어딘가 어색하다.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 R 등급. Columbia.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  역동적인 무대 매너를 구사하면서 노래 부르고 있다.

격정적인 음악‘록뮤직 화신’
영화로 환생한 프레디 머큐리


화끈하고 뜨겁고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록뮤직의 흥분과 노래 부르는 가수의 정열에 화상을 입겠다. 영국의 록밴드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영화로 프레디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의 영육을 불사르는 맹렬하면서도 미묘한 감정 표현의 연기가 눈부시다.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말렉이 혼자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해 다른 배역들의 묘사가 약한 것이 흠이다. 
퀸은 ‘보헤미안 랩소디’와 ‘위 아 더 챔피언스’ 및 운동경기 때 관중들이 잘 부르는 ‘위 윌 록 유’ 등의 히트곡을 낸 밴드로 이 영화는 전기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거려지는 콘서트 장면들은 그야말로 불덩이인데 이에 반해 인간탐구와 성격묘사를 비롯한 무대 뒤의 드라마적 요소가 다소 미약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흥미진진하고 가슴을 뛰게 만들며고 눈시울마저 붉게 만드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퀸이 조직된 1970년부터 퀸이 영국의 웸블리 스태디엄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 공연한 198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수하물을 취급하는 프레디 불사라(이란계인 그의 본명은 화로크 불사라)는 어느 날 바에 들렀다가 여기서 연주하고 나온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그윌림 리)와 치과공부를 하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벤 하디)에게 다가가 “너희들은 나 같은 리드 싱어가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프레디가 한 곡조 뽑는데 네 옥타브를 구사하는 그의 성량에 둘은 놀란다. 이어 베이시스트 존 디콘(조셉 마젤로)이 합류, 퀸이 구성된다.
프레디 불사라는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로 고치고 본격적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하는데 물론 그의 부모의 실망이 적지 않다. 프레디가 작곡한 노래들이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는데 이런 인기는 프레디의 가창력과 변화무쌍한 무대 매너 탓이다. 이어 이들은 음반회사 EMI와 계약을 맺는다. 프레디와 음반회사 사장(마이크마이어스)간에 노래의 길이와 통상 장르를 무시한 독특한 스타일로 충돌이 빚어진다.
프레디는 자기 팬 중의 하나인 아름다운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이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과 사랑 끝에 결혼하나 순회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동성애 기호를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에이즈로 사망한다. 
퀸의 잘 나가던 활동은 프레디의 매니저 폴 프렌터가 프레디에게 솔로로 전향하라고 유도하면서 깨어지게 된다. 그러나 프레디는 솔로로서 성공하지 못한다. 프레디는 뒤늦게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에게 사과하고 팀을 재구성, 1985년 런던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출연하면서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는다. 
이 공연이 작품의 절정으로 프레디가 땀을 흘리면서 피가 솟구치도록 노래하는 연기가 아찔하도록 눈부시다. 눈물이 나오는 격정적인 감동을 느끼게 된다. 말렉이 프레디처럼 뻐덩이를 하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무대에서 길길이 뛰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 하나만으로 볼만한 작품이다. 
감독은 브라이언 싱어로 그는 성질을 부려 제작 종료를 얼마 앞두고 해고당했다. PG-13. Fox.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버닝(Burning)


가난한 종수(왼쪽)와 부자 벤은 해미를 사이에 놓고 삼각관계를 이룬다.

극심한 빈부차 속 삼각관계
청춘의 좌절과 분노, 응징
이창동 감독 치밀하게 고찰


수줍고 소심한 작가 지망생인 배달부 청년과 삶의 욕구로 가득 찬 적극적인 젊은 여자 그리고 돈이 많아 일하는 것이나 노는 것이 마찬가지인 플레이보이 청년 간의 인간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고찰한 이창동 감독의 3인극 성격 드라마다. 이와 함께 계급과 빈부 차 그리고 성적 질투와 질시와 함께 꿈의 좌절과 분노와 응징 및 가족의 유래와 정의 등 다양한 소재를 주도면밀하게 다뤘는데 굉장히 느려 인내심이 필요하다. 불길이 서서히 타 들어가다가 마지막에 가공할 화염으로 작가 지망생의 분노를 태워버리는데 영화가 너무 예술적이어서 관객보다 비평가들이 더 좋아할 작품이다. 올 칸영화제서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을 탔다. 2017년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 출품작.
작가 지망생으로 막일을 하면서 사는 내성적인 종수(유아인)가 어느 날 길에서 자기와 어렸을 때 같은 반이었다는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해미는 비록 길거리 상품 선전원이나 생명력 넘치고 상상력 풍부한 여자. 둘은 대뜸 연인 사이가 돼 해미의 손바닥만한 아파트에서 섹스를 즐긴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기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 다음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고양이는 정말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미의 상상의 산물인가. 착실한 종수는 해미가 여행을 간 뒤 가끔 해미의 아파트에 찾아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청소도 한다. 그리고 해미의 침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성적 욕망도 푼다. 여전히 고양이는 안 보인다.
귀국한 해미는 종수에게 여행 중에 만났다는 미끈하게 잘 생긴 부자 벤(한국계 미국배우 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종수는 포르셰를 몰고 다니는 벤 앞에서 완전히 주눅이 드는데 이 때부터 3각관계가 발생하면서 종수는 벤의 심부름꾼 비슷한 처지가 된다. 벤은 종수를 예의 바르게 대하지만 그 태도에서 은근히 종수를 아랫사람으로 깔보는 기색이 느껴진다. 이를 못 느낄 종수가 아니다. 영화는 벤을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에 비유하고 있다.
한편 종수는 판문점 부근의 자기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데 확성기로 북한의 선전방송이 들린다. 영화는 한국의 분단상황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종수의 농부 아버지는 공무원을 폭행, 수감된 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해미와 함께 종수를 찾아온 벤은 자기는 빈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는 것을 즐긴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느닷없이 해미가 사라지고 종수와 벤이 함께 갈등과 충돌을 향한 2인무를 추다가 충격적인 클라이맥스에 이르는데 이 같은 결말은 예측이 가능하다. 성격 드라마이자 긴장감을 갖춘 미스터리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도 한데 원작은 하루키 무라카미의 단편 ‘헛간 태우기’. 세 배우가 다 뛰어난 연기를 한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 페이스


NBC-TV의 모닝쇼 ‘투데이’의 진행자 중 한 사람인 메긴 켈리가 최근 할로윈 얘기를 하면서 “내가 학교에 다니던 과거엔 백인들이 얼굴을 검은 칠로 분장을 해도 괜찮았다”는 망언을 해 쇼에서 퇴출당했다.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그들의 DNA에 들어있다시피 한데 1983년에는 ABC-TV의 ‘먼데이 나잇 풋볼’을 오랫동안 중계해온 베테런 방송인 하워드 코셀이 풋볼중계를 하면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흑인선수를 “작은 원숭이”라고 불러 그 여파로 프로그램에서 자진 사퇴했다.
백인들이 영화나 쇼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근 1세기 동안이나 유행한 버라이어티쇼인 ‘민스트렐 쇼’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백인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고 코미디를 연출하면서 흑인들을 어릿광대요 게으른 멍청이들로 묘사, 인기를 끌었었다.
‘민스트렐 쇼’의 흑인에 대한 이런 묘사는 흑인들과 직접 접촉이 없는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을 열등한 사람으로 인식케 하는데 일조를 했다 켈리가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몰지각한 발언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켈리는 ‘트럼프 방송’인 폭스뉴스 출신으로 과거에도 예수와 산타 클로스를 백인이라고 우겨 물의를 빚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격렬한 대립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증오와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켈리의 발언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노릇을 한 것은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 대표적 영화가 D. W. 그리피스가 감독한 대하 서사극 ‘국가의 탄생’이다. 남북전쟁과 전쟁 직후의 드라마로 백인 배우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백인 여자들을 겁탈하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바람에 이에 대항해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가 조직됐다는 내용이다. 흑인들은 무법자들로 KKK는 백마의 기수들로 묘사된 이 영화를 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작품이다.
얼마 전 ‘블랙클랜스맨’을 감독한 스파이크 리를 만났을 때도 이 영화가 거론됐는데 그는 “‘국가의 탄생’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묘사된 흑인들을 보면 욕지기가 난다”고 열을 올렸다. 그가 오스카상을 받은 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맹렬히 비판 한 것은 영화에 나오는 스칼렛의 충실한 하녀 매미와 또 다른 하녀 프리시를 비롯한 흑인들이 다 노예근성에 사로 잡혔거나 맹한 인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리는 트럼프를 “디스 가이”라고 부르면서 “탄핵 받아야 마땅할 그가 절대로 재선되지 못하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면서 인종차별이 없어지기를 희망하고 싶지만 결코 낙관할 수가 없다”고 비관했다.
백인 배우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낸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사진)다. 여기서 가수로 나온 알 졸슨은 입술은 새하얗게 그리고 얼굴은 새카맣게 칠하고 무대와 나와 ‘마이 매미’를 노래한다.
특히 백인들의 흑인 노릇은 뮤지컬에서 많은데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인 프레드 애스테어, 주디 갈랜드, 빙 크로스비, 미키 루니 및 셜리 템플 등이 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춤추고 노래 불렀다. 불과 6년 전인 2012년 오스카 시상식 때는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유명 흑인가수이자 배우인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흉내를 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
할리웃은 예나 지금이나 백인들의 세상이다. 과거 할리웃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동양인 역을 다 백인 배우들에게 줬다. 특히 웨스턴에 자주 나오는 아메리칸 인디언들로 백인배우들을 썼다.
록 허드슨, 버트 랭카스터, 찰스 브론슨, 잭 팰랜스, 척 코너스, 제프 챈들러, 앤소니 퀸 및 로버트 테일러를 비롯해 심지어 오드리 헵번도 아메리칸 인디언 노릇을 했다.
그 중에서도 실로 가관인 것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온 걸작 웨스턴 ‘윈체스터 ‘73’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으로 나온 록 허드슨이다. 그는 영양상태가 좋은 살이 토실토실 찐 상반신을 벗어 제친 채 서툰 영어를 구사해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연실색 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 할리웃의 백인배우들은 동양인역도 전매특허 냈듯이 자기들이 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 ‘정복자’에서 존 웨인이 옆으로 찢어진 눈에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온 것. 이 밖에도 말론 브랜도, 알렉 기네스, 캐서린 헵번, 미키 루니, 폴 뮤니, 루이즈 레이너 및 피터 로레 등도 모두 동양인들로 인종 변경을 한 배우들이다. 미국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나도 인종차별을 당해 봤는데 나도 이 문제에 관해선 스파이크 리처럼 비관적이다.   .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