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7월 17일 일요일

카페 소사이어티(Cafe Society)


바비(왼쪽)가 바니의 안내로 베벌리힐스의 스타들의 집을 구경하고 있다.

우디 알렌의 향수감 짙은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 영화


우디는 언제까지나 그리고 또 어디까지나 우디다. 우디 알렌의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향수감 짙은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 얘기로 약간 가볍긴 하나 그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사랑타령이 사뿐하고 감칠맛나게 그려진 코미디 드라마다. 
우디가 내레이션을 하면서 영화가 서술되는데 1930년대 할리웃 황금기의 LA와 뉴욕의 얘기여서 나이가 듬직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영화다.
철저한 뉴요커로 LA가 문화적으로 깨인 점은 빨간 신호등에 우회전할 수 있는 것 하나 라고 주장하는 우디가 40년 전에 ‘애니 홀’을  찍은 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LA서 찍은 작품이기도 한데 명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촬영이 황금빛과 꿀빛으로 화면을 흥건히 적신다.
우디 영화의 재미는 냉소적이요 위트 있고 또 우습고 신랄하면서도 철학이 담긴 대사. 이 영화에도 젊은 주인공 바비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우디가 쓴 대사를 끊임 없이 재잘대는데 약간 말장난하는 것 같이 들린다. 
8순에도 매년 한 편씩 영화(사랑 얘기가 많다)를 찍는 우디의 정력에 혀를 차게 되는데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우디가 관객들보다 자기를 위해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그저 덤으로 보고 즐기면 된다는 식으로.
브루클린에 사는 청년 바비 도프만(제시 아이젠버그)은 할리웃의 막강한 탤런트 에이전트인 외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한다. 필은 입만 열면 자기가 관리하는 할리웃의 수퍼스타들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는 에이전트 중의 에이전트로 우선 바비에게 잔심부름을 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젊고 예쁜 여비서 바니(크리스튼 스튜어트)에게 바비를 데리고 나가 할리웃과 베벌리힐스를 구경시켜 주라고 시킨다. 그런데 바니는 결혼한 필의 애인. 필은 바니를 지극히 사랑해 바니에게 아내와 헤어지겠다고 몇 번씩 다짐했으나 아직 실행에 못 옮긴 상태. 바니도 필을 사랑해 갈팡질팡하는 상태. 이런 바니에게 바비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촌극이 일어난다.
그러나 바비는 할리웃의 ‘개가 개 잡아 먹는’(우디의 할리웃 경멸의 표현) 풍토에 질려 뉴욕으로 돌아와 갱스터인 형 벤(코리 스톨)이 경영하는 고급 나이트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의 매니저가 된다. 여기서부터 과거와 현재가 오락가락 하면서 애기가 진행되는데 바비는 늘씬한 미녀 베로니카(블레이크 라이블리-왕년의 스타 베로니카 레이크 모양을 냈다)를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비가 아직도 바니를 못 잊고 있으며 바니도 마찬가지라는 점. 라스트신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우디의 젊은 판이라고 해도 좋을 아이젠버그가 어깨를 안으로 숙이고 신경과민한 좌불안석 스타일로 재잘대는 연기를 아주 잘하고 스튜어트도 예쁘고 사랑에 시달리는 연기를 잘 한다. 이와 함께 카렐도 호연한다. 1930년대의 로맨틱한 음악들로 장식된 사운드트랙도 향수감에 잠기게 하는데 오프닝 크레닷의 클라리넷연주는 재즈음악가로 클라리넷을 부는 우디의 것이다.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도 일품이다.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부자(The Infiltrator)


메데인 카르텔 내부로 잠입한 세관 수사관 밥 메이저.

마약 카르텔에 잠입한 수사관 실화 얘기 미국판 ‘내부자’


콜롬비아의 악명 높은 마약 카르텔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약거래의 숨통을 조르기 위해 조직의 검은 돈을 세탁하는 은행의 부정을 파헤쳐낸 미 연방세관 소속 수사관 밥 메이저의 실화로 미국판 ‘내부자’라고 하겠다.
메이저는 카르텔과 은행의 내막을 수사하기 위해 돈 세탁자로 위장, 많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카르텔의 고위인사의 깊은 신뢰를 사 그와 친구지간까지 되는데 이런 스릴과 긴장감이 있고 흥미진진한 얘기가 지극히 평범한 마약 드라마로 그치고 말았다.
연기파인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노련한 연기를 잘 하지만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와 마약 딜러의 이중생활에서 오는 갈등과 카르텔의 무자비성 및 얘기인 시간대인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의 열기 같은 것들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이런 내용의 영화로선 극적 충격이 모자라는 직선적이요 통속적인 드라마이지만 볼만은 하다. 
전직 미 국세청 회계사인 메이저는 연방 세관 수사관이 된 후 플로리다주 탬파의 마약조직을 분쇄하기 위해 돈세탁자로 위장한다. 그를 돕는 것이 그의 약혼녀로 위장한 아름다운 풋내기 수사관 캐시 어츠(다이앤 크루거). 메이저는 에스코바르에게 접근하기 위해 에스코바르의 고위급 부두목 로베르토 알카이노(벤자민 브렛)에게 접근, 그의 신임을 산다. 
영화는 메이저의 충실한 가정생활과 위험과 유혹과 돈과 사치가 넘쳐 흐르는 마약집단의 세계를 오락가락 하면서 진행되는데 이런 상반된 세상을 매일 같이 왕래하는 메이저의 삶이 너무 평범하게 그려져 극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겠다. 
특히 메이저와 캐시 그리고 로베르트와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얘기되는데 메이저와 캐시는 로맨스를 꽃 피울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이르나 어디까지나 철저한 가정인인 메이저는 유혹을 물리친다. 흥미 있는 것은 메이저와 로베르토와의 관계. 둘은 친구지간이 될 정도로 가까워지면서 메이저는 로베르토의 가족의 사랑까지 얻는데 로베르토를 때려잡아야 할 메이저가 그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면서 마음에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두 플롯 역시 어떤 성적 긴장감이 있거나 극적 깊이나 강렬성은 모자라게 그려졌다.
크랜스턴의 연기가 좋긴 하나 내적 갈등을 겪는 사람의 고뇌가 완벽하게 묘사되진 못했다. 크루거의 연기는 무난하고 브렛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상하다가 가혹한 드럭 딜러로 변신하는 매서운 모습을 돋보이게 표현한다. 브래드 퍼맨 감독.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 타잔, 유 제인”




할리웃의 스크린을 주름 잡는 영웅들은 한두 명이 아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원시적이요 멋들어진 자는 아마도 몸 아래 중요한 것만 가린 늠름한 체구의 타잔일 것이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1912년에 쓴 소설 ‘원숭이들의 타잔’으로 태어난 타잔이 처음 스크린에 등장한 것이 1918년. 소설과 같은 이름의 무성영화로 타잔 역은 엘모 링컨이 맡았다. 그런데 LA 인근 도시 타자나는 버로스가 이 곳에 살며 소유했던 타자나 목장 이름을 딴 것이다.
‘원숭이들의 타잔’에 이어 현재 상영 중인 ‘타잔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타잔영화는 무려 50여편에 이르고 최근의 타잔 역을 하고 있는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포함해 그 동안 타잔 노릇을 한 배우는 총 25명에 이른다.
정글을 누비고 다니며 액션과 모험으로 남녀노소를 흥분과 즐거움 속으로 안내했던 많은 타잔 배우들 중에 기억될 만한 사람들로는 버스터 크랩, 고든 스캇, 론 엘리, 렉스 바커, 족 마호니 및 크리스토퍼 램버트 등이 있다. 
그러나 타잔 하면 대뜸 떠오르는 배우는 잘 생긴 자니 와이스멀러(사진)다. 그는 ‘유인원 타잔’(1932)으로부터 시작해 지난 1930~40년대 무려 12편의 타잔영화에 나와 타잔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나도 꼬마 때 부산 피난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타잔의 정글모험에 넋을 잃었었다. 얼마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카스가드도 “어렸을 때 타잔 팬인 아버지(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본 와이스멀러의 타잔이 최고”라고 말했다.
와이스멀러(1984년 78세로 사망)는 오스트리아-헝가리계 미국인으로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다. 떡 벌어진 알몸 가슴이 난공불락의 성벽과도 같은 강건한 근육질의 신체를 지녔었다. 타잔의 애인으로 도시인인 제인이 타잔에게 반한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그의 이 늠름한 가슴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간다.
타잔과 제인은 잉꼬 한 쌍인데 재미 있는 것은 제인이 타잔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 제인이 타잔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쿡 찌르면서 “유 타잔, 미 제인”하고 통성명을 하자 타잔이 역시 손가락으로 제인의 가슴을 찌르면서 “미 타잔, 유 제인”이라고 응답한다. 아이들 소꿉장난 하는 것 같다. 와이스멀러의 제인 역은 미아 패로의 어머니인 모린 오설리반이 했다.
타잔 노릇을 한 배우 중 특이한 사람이 프랑스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다. 그는 지난 1984년작 ‘그레이스토크: 타잔의 전설, 원숭이들의 지배자’라는 영화에 나와 셰익스피어의 연극에나 나온 듯이 시종일관 인상을 쓰면서 심각하게 굴었다. 영화도 액션과 모험보다 내면성찰적인 심각한 것으로 타잔영화로선 최초로 오스카 남우 조연상(영국의 명우 랄프 리처드슨의 사후 지명)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랐었다.
그런데 지금 상영 중인 타잔 영화의 스카스가드가 생긴 것이나 연기가 램버트를 닮았는데 램버트가 한 수 위다. 이 영화는 내용과 연기가 별 볼품이 없는데도 흥행이 잘 되고 있다.
타잔의 인간 짝이 제인이라면 그의 동물 단짝은 자기를 키워준 원숭이들의 무리에 속한 꼬마 침팬지 치타다. 똑똑하기가 사람 못지 않은 치타는 재롱꾼이어서 영화에 코믹터치를 가미하는데 재롱만 떨 뿐 아니라 ‘타잔과 그의 배우자’에서처럼 타잔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다.
와이스멀러의 치타는 지난 2012년 80세로 영면했는데 당시 동물학자들이 치타는 평균수명이 40년이어서 이 치타가 와이스멀러의 치타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한편 치타의 부음이 전해지자 패로는 제인 역을 한 자기 어머니 모린이 “치타는 기회만 있으면 무는 후레새끼”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정글 스피크’로 코끼리 등 온갖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타잔의 가족인 제인과 치타 외에 새 가족이 된 것이 소년 ‘보이’. 타잔과 제인은 ‘타잔 아들을 발견하다’에서 정글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아기를 입양해 ‘보이’라고 명명, 세 식구가 네 식구가 된다. 
와이스멀러의 타잔 영화 중 이색적인 것이 ‘타잔의 뉴욕 모험’. 타잔과 제인이 뉴욕으로 돌아간 ‘보이’를 찾아 맨해턴으로 오는데 신사복을 입은 타잔이 처음 보는 문명세계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우습다. 
와이스멀러의 타잔영화를 보면 타잔은 물론이요 제인도 거의 전라에 가까운 차림으로 수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1930년대 초만 해도 할리웃에 검열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타잔 하면 또 잊지 못할 것이 “아 아 아 아”하며 내지르는 타잔의 요델 고함소리. 이 소리는 와이스멀러의 육성으로 그 후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 타잔영화에서도 사용됐다. 
수퍼맨, 뱃맨, 아이언 맨 등 할리웃의 스크린을 누비는 수퍼히로들이 많기도 하지만 타잔만큼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영웅도 없다. 타잔은 영원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