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2일 화요일

‘제이슨 본’주인공 맷 데이먼




“두 번째 한국방문 분위기 화끈했다… 서울 정말 굉장해”


29일 개봉되는 스파이 액션 스릴러‘제이슨 본’ 시리즈 제4편‘제이슨 본’(Jason Bourne)의 주인공 맷 데이먼(45)과의 인터뷰가 지난 19일 라스베가스의 코스모폴리탄 호텔에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티셔츠 차림을 한 데이먼은 서민적인 호남으로 스타티를 안내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유머와 농담을 구사해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강건한 신체를 지닌 액션스타 답지 않게 어색한 질문에 대답할 때는 얼굴에 홍조를 띠기까지 했다. 그러나 매우 지적인 배우로 미소 속에서도 눈매는 매서웠다. 그는 이 영화 선전차 얼마 전에 서울에 다녀 왔는데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서울 정말 굉장해”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당신은 끊임 없이 영화를 만드는데 좀 쉬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지난 2년 간은 일이 너무 많았다. 먼저 리들리 스캇과 ‘화성인’을 만들었고 다음에는 중국에 가서 장이모 감독과 만리장성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 다음에는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에 나오고 이어 조지 클루니와 일 할 예정이다. 일이 많긴 하나 결코 과한 것은 아니고 내가 해낼 수 있을 만큼 한다. 이렇게 내가 관계한 영화가 많으나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내가 재작자로 참여한 곧 개봉될 케네스 로너간 감독의 소품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다.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다.         

-영화의 속편을 만들 것인가.
“적어도 폴(감독 폴 그린그래스)과 함께 한 편은 더 만들고 어쩌면 더 만들지도 모른다. 난 제이슨 본이라는 인물을 사랑해 폴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것이다. 그러나 속편은 지금 당장 만들지는 않고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이 영화는 시리즈 제3편이 만들어진지 9년만에 나왔는데 다시 제이슨의 액션을 위해 신체단련을 얼마나 했는가.
“정신적으로 다시 제이슨으로 돌아가기는 쉬웠다. 그러나 육체적 액션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처음 제이슨 역을 맡았을 때가 29세였는데 지금 난 45세다. 그래서 몸 단련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음식 조절과 함께 하루에 두 번 신체단련을 했다. 신체단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당신은 벤 애플렉과 친구인데 그가 감독하는 영화에 나올 생각이 없는가.
“사람들이 날 보면 벤은 수퍼히로 역을 했는데 당신도 그럴 생각이 없는가 라고 묻는다. 지금 벤은 ‘배트맨’ 영화를 감독하고 있다. 난 그가 내게 역을 준다면 수퍼히로 노릇을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영화를 감독할 때면 가장 좋은 역도 자기가 하기 때문에 그 버릇이 고쳐질 때야 난 그의 영화에 나올 것이다.”

-제레미 레너가 주연하는 다른 ‘제이슨 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도주하는 제이슨 본과 그를 돕는 CIA 요원 역의 알리시아 비칸더.
“난 제레미의 팬이고 그를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그는 훌륭한 배우다. 그와 나의 영화가 하나로 이어져 조화롭게 만들어진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영화제작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 둘 다 자신들의 영화만이 시리즈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 영화가 하나로 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내 영화를 만드는 유니버설에 보내 달라.”

-당신은 베가스에서 이 영화 외에도 ‘오션의 11인’도 찍었는데 도박을 잘하는가.
“난 도박을 잘 못한다. 그렇다고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내 에이전트와 함께 새벽까지 했다. 처음 두 시간은 많이 따 신이 났지만 곧 이어 다 되돌려줘야 했다. 본전하고 일어났다. 베가스에서 본전하면 딴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박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사람으로서 베가스에 대한 느낌은 도시의 리듬이 생각보다 평온하고 느리다는 것이다.”

-당신은 최근에 이 영화를 위해 서울에 다녀 왔는데 대접을 잘 받았는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대답이다. 한국의 팬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자주 영화관을 찾아간다. 이 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프리미어 때 분위기야말로 화끈했다. 난 극장 밖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느라 1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들은 정말로 영화에 열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저 ‘고맙다’라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영화를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할리웃의 우리들이 계속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 팬들의 열광은 그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은 참으로 멋있고 훌륭한 곳이다.”

-무엇을 먹었는가.
“김치를 포함해 주는 것은 다 먹었다.”

-영화는 정부가 기술을 상용해 개인의 사적인 일들마저 정탐하는 권력남용을 비판한 것이기도 한데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난 늘 개인의 사적인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보관련 단체는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난 옛날 소련처럼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정보부는 모든 수단을 써 개인적인 정보까지 빼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일 안 할 때는 가족과 어떻게 보내는가.
“영화 일을 하다 보면 집에서 저녁 먹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난 노력한다. 우린 단단히 맺어진 가족이다. 우린 여행도 같이 하고 또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다. 세상이 변해도 아이들게 있어 결코 안 변하는 것은 그들의 부모다.”

-아이들이 배우가 될 생각은 없는가.
“내 큰 딸 알렉시아(맷의 부인 루시아나의 보잔의 딸로 맷의 의붓딸)는 지금 18세로 배우가 될 생각은 없으나 영화 만들기를 좋아해 내 세트에 오면 촬영감독을 졸졸 뒤 따라 다닌다. 그 아이는 시진을 좋 한다. 그리고 글도 쓴다. 따라서 앞으로 알렉시아가 카메라 뒤에서 일할지는 모르나 절대로 앞에서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영화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체중을 늘리기도 하는데 당신의 부인은 당신의 어떤 몸을 좋아하는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아내가 토실토실 살이 찐 나를 좋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내도 그렇다고 그랬다. 그런데 내가 이런 영화를 위해 몸의 근육을 단련하다보니 이젠 그런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 늘 짐에 가야 하게 됐다.”

-당신은 영화에서 말이 별로 없는데 하기가 힘들었는가.
“대사가 많지 않은 역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그러나 난 각본을 읽으면서 대사가 얼마나 많은가를 보고 역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감독이 누군가에 따라 결정한다.”

-당신은 영화의 액션을 실제로 얼마나 했는가.
“거의 다 스턴트맨들이 했다 빌딩 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유럽의 암석등반가의 것이고 자동차 질주는 러시안 경주차 운전자의 것이며 모터사이클 질주는 그 방면의 챔피언이 한 것이다. 난 그저 잠깐 흉내만 냈다. 그들은 다 키나 체격이나 체중이 나와 비슷하다”

-자라면서 어떤 액션영화들을 좋아했는가.
“멜 깁슨의 ‘리설 웨펀’과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와 ‘인디애나 존스’를 보고 즐겼다. 이들은 내게 큰 영향을 준 것들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스타 워즈’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에 딸에게 처음으로 ‘인디애나 존스’를 보여줬는데 여전히 재미있고 멋 있었다. 좋은 영화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내 영화도 내 아이들이 언젠가 자기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제이슨 본(Jason Bourne)


그리스 아테네의 시위군중 속에서 제이슨이 자기를 쫓는 킬러에게 총구를 겨냥하고 있다.

9년 만에 제이슨 본으로 돌아온 맷 데이먼


CIA가 만들어낸 초인적 파괴력과 지능을 지닌 킬러 제이슨 본 시리즈(원작은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네 번째로 전 3편에서 본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이 주연하고 제2편과 3편을 감독한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했다. 제3편 ‘번 얼티메이텀’이 나온지 9년만의 본의 컴백인데 콩 튀듯하는 액션은 장관이나 과다하다.
본 시리즈는 액션과 지적인 면이 결합된 보기 드문 팝콘영화인데 이번에는 참신성이나 지적인 면이 전편들보다 뒤떨어진다.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본의 도주와 추격의 ‘복수혈전’이다. 주먹을 비롯한 온 육체가 동원된 격투와 총격 그리고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면서 자행하는 파괴액션이 스크린을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날뛰는 바람에 얘기나 연기 그리고 나름대로 피력하려고 한 메시지 등이 비명횡사한 느낌이다. 물론 액션팬들은 박수를 치겠다.
시의에 맞는 사이버 정보와 해킹, 컴퓨터를 이용한 정부기관의 개인 사생활 탐지 그리고 애국심 등을 다루고 있긴 하나 길길이 날뛰는 액션 때문에 그 의미가 희석됐다. 또 하나 영화에서 약한 것이 오스카상을 탄 연기파인 알리시아 비칸더의 어정쩡한 연기. CIA 간부로 나오는데 미스 캐스팅이다.
‘본 시리즈’는 지난 2102년 제레미 레너 주연으로 일종의 변칙 속편으로 만들어졌으나 평과 흥행이 모두 미지근했다. 그런데도 다시 레너 주연으로 속편이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두 명의 제이슨 본이 서로 대결하게 됐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영화는 레이캬빅, 베를린, 런던, DC를 거쳐 베가스에서 끝나는데 기억상실증에 걸린채 잠적한 본은 불법 격투를 하면서 먹고 산다. 역시 숨어 살던 본이 유일하게 믿는 전 정보요원 닉키(줄리아 스타일스)가 CIA 컴퓨터를 해킹해 본의 과거를 담은 30년 전의 정보를 빼내 본에게 주면서 본격적으로 얘기가 시작된다.
새 CIA 국장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도 무방하다고 믿는 로버트 듀이(타미 리 존스). 그가 강요하다시피 해 얻으려 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거부 아론 칼루어(리즈 아메드)의 ‘디프 드림’ 컴퓨터 시스템의 내용.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지 않고 철저히 보장되는 시스템이다. 듀이 밑에서 일하는 아름답고 총명한 헤더 리(비칸더)는 사이버 분석가.
본은 닉키가 준 정보를 통해 CIA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됐다는 아버지가 사실은 CIA가 고용한 킬러 ‘자산’(뱅상 카셀)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을 알고 이를 득득 갈면서 복수에 나선다. 듀이는 이런 본을 살해하라고 지시하나 리는 본을 다시 받아들여 새로 프로그램해 사용하자고 듀이를 설득한다.  
클라이맥스는 베가스의 아리아호텔에서 열리는 ‘디프 드림’ 시스템 발표장 내에서 벌어지고 이어 심야의 베가스 대로에서의 수십대의 차량이 파괴되는 추격전 액션으로 마감된다. 속편을 예고한다. 데이먼은 본과 동의어다시피 해 역에 익숙한 연기를 하지만 연기들은 다 그저 무난하다. PG-13. Universal.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제인 에어(Jane Eyre·1944)


로체스터(왼쪽)가 제인을 뜨거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음산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흑백 드라마


영국의 여류작가 샬롯 브론테의 소설을 원작으로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이 연출한 음산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흑백 드라마다. 샬롯의 여동생 에밀리도 작가로 역시 뜨거운 사랑의 얘기인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썼다. ‘폭풍의 언덕’은 1939년 로렌스 올리비에와 멀 오베른 주연으로 윌리엄 와일러가 흑백 영화로 연출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둘 다 애절하기 짝이 없는 로맨스 스토리로 전자는 해피 엔딩이나 후자는 비극으로 끝난다.
고아원에서 자란 제인 에어(조운 폰테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 요크셔 황무지에 있는 손필드홀이라 불리는 대저택의 주인 에드워드 로체스터(오손 웰즈)의 어린 후견인 아델의 보모로 들어간다. *고아원 시절 제인의 병약한 친구로 나오는 꼬마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로체스터는 침울하고 폭군적이며 비밀에 싸인 사람으로 제인은 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로체스터도 제인을 극진히 사랑해 둘은 결혼식을 올리나 식 도중에 대저택 꼭대기 다락방에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제인은 로체스터를 떠난다.
그 후로 제인은 다시 갖가지 역경에 처해 고생을 하면서도 로체스터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로체스터가 외치는 “제인”이라는 소리를 영감으로 듣고 다시 손필드홀을 찾아간다. 저택은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지른 불로 다 타버리고 제인은 폐허에 눈이 멀어버린 로체스터를 만나 뜨겁게 포옹을 나눈다.
로맨스, 공포, 광기 및 감정의 모든 요소를 갖춘 사랑의 이야기로 연기와 음산하고 황량한 흑백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음악 등이 다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순결하고 온순하고 겁먹은 듯한 폰테인과 폭군적이요 위압적이면서도 안에는 뜨거운 사랑의 불길을 지닌 웰즈의 대조적 연기와 콤비가 아주 좋다.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마가렛 오브라이언 공연. 
‘제인 에어’는 이 것 외에도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1996년에는 이탈리아의 프랑코 제피렐리가 윌리엄 허트와 샬롯 갱스부르를 기용해 만들었고 2011년에는 미아 와시코스카와 마이클 화스벤더 주연으로 만들어졌다. 감독은 케리 조지 후쿠나가. ‘제인 에어’는 8월2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에서 상영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동그란 얼굴에 사슴의 눈을 한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가 지난 1일로 파리에서 100세 생일을 맞았다. 착하고 친절한 이웃집 아주머니를 연상케하는 그녀는 할리웃 황금기인 지난 1930년대부터 시작해 반세기에 걸친 생애를 통해 49편의 영화에 나왔지만 디 해빌랜드하면 대뜸 생각나는 사람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멜라니 해밀턴(사진)이다.
디 해빌랜드는 고요한 위엄과 내적 힘을 지닌 여인으로 늘 남을 생각하는 멜라니 역을 완벽히 해내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상주의자인 애슐리(레즐리 하워드)가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불꽃처럼 타오로는 미모의 스칼렛(비비안 리)을 마다하고 멜라니를 선택한 까닭을 알만하다.
디 해빌랜드는 아름답고 천진한 색시형이어서 할리웃의 멋쟁이 미남 배우들의 애인으로 자주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남자가 할리웃의 유명한 플레이보이 에롤 플린이었다. 둘은 모두 신인시절 해적 영화 ‘캡틴 블러드’(1935)에 나왔는데 이 영화가 빅히트를 하면서 둘 다 스타의 길로 접어들었다.
디 해빌랜드와 플린을 할리웃의 가장 인기 있는 로맨틱한 한 쌍으로 만들어준 영화가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로 장식된 흥미진진한 올타임 클래식 ‘로빈 후드의 모험’(1938)이다. 플린은 의적 로빈 후드로 디 해빌랜드는 로빈 후드의 적인 노르만족의 왕실 궁녀 매리안으로 나와 사랑을 나눈다.
둘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웨스턴 ‘그들은 군화를 신고 죽었다’(1941)에 이르기까지 모두 8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스크린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서로를 사랑했다. 플린은 디 해빌랜드와 공연한 ‘경기병의 진격’(1937)을 찍은 직후 지금은 중학교가 된 LA 윌셔가의 구 앰배서더 호텔의 코코넛 그로브에서 열린 파티에서 디 해빌랜드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역시 플린을 사랑하던 디 해빌랜드는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 플린이 당시 별거 중이던 아내와 채 이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디 해빌랜드를 사랑한 남자는 플린만이 아니다. 그녀와 짧지만 사랑을 한 남자들은 하워드 휴즈, 제임스 스튜어트 및 감독 존 휴스턴 등이 있다.
디 해빌랜드는 다재다능해 전 장르에 걸쳐 나왔다. 디 해빌랜드가 최초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영화가 신파극 ‘투 이치 히즈 오운’(1946). 갓난 아들을 남에게 준 여인이 자신을 아이의 아주머니로 위장하고 평생을 돌보는 얘기인데 훌륭하다.
두 번째 오스카 수상작이 내가 디 해빌랜드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less·1949).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원작. 엄격한 홀아비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주눅이든 혼기를 놓친 여자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구애하는 미남 날건달(몬고메리 클리프트)을 사랑했다가 배신을 당한 뒤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여인으로 변신하는 얘기로 디 해빌랜드의 절제된 연기가 황홀하다.
디 해빌랜드는 생긴 것은 양순하게 생겼지만 강한 의지의 소유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자기 연기력을 입증했는데도 자신의 전속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계속해 남자 주인공의 애인 노릇이나 하라고 역을 주자 이를 거절, 정직을 당했다. 1940년대만 해도 배우들은 스튜디오에 고용된 직원에 지나지 않아 영화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해 디 해빌랜드의 출연 거절은 항명이었다.
마침내 디 해빌랜드는 워너 브라더스를 상대로 부당고용 소송을 제기, 승리했으나 그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2년간 쉬어야 했다. 이 소송은 할리웃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이다.
디 해빌랜드보다 한 살 아래인 여동생 조운 폰테인도 오스카상을 탄 스타다. 그런데 둘은 어려서부터 성장해서까지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보인 앙숙지간이었다. 라이벌인 둘은 지난 1942년 공교롭게도 할리웃 사상 지금까지 전무후무하게 자매가 나란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디 해빌랜드는 드라마 ‘홀드 백 더 던’으로 폰테인은 히치콕의 심리 스릴러 ‘의혹’으로 각기 후보에 올라 동생이 언니를 누르고 상을 받았다. 둘의 라이벌 의식은 폰테인이 지난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디 해빌랜드가 파리에 살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프랑스 남자와 결혼, 파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디 해빌랜드는 지난 1953년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칸에 갔다가 당시 파리 매치지의 총 편집책임자인 피에르 갈랑트와 사랑에 빠져 2년 후 결혼, 파리지엔이 됐다.
디 해빌랜드의 중요한 영화들로는 정신병원의 가혹한 실상을 폭로한 ‘스네이크 핏’과 앨란 래드와 공연한 웨스턴 ‘프라우드 레블’, 이탈리아에서 찍은 소프오페라 ‘광장의 불빛’ 그리고 그녀가 보기 드물게 악역을 한 심리스릴러로 베티 데이비스와 공연한 ‘허쉬… 허쉬, 스윗 샬롯’ 둥이 있다. 그러나 디 해빌랜드 하면 뭐니뭐니해도 멜라니다. 해피 버스데이 올리비아!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