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마크 왈버그




“모든 역은 늘 도전… 날 키울 수 있는 작품 찾아”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서 빅히트를 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소음과 파괴의 난장판 블락버스터 액션영화‘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주인공 마크 왈버그(43)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트랜스포머’는 하스브로 장난감을 모델로 만든 영화. 왈버그는 시리즈 3편에 모두 주연한 샤이아 르부프에 이어 제4편에 주연으로 발탁됐는데 비록 얼굴에 잔 수염이 나긴 했지만 나이에 비해 소년티가 났다. 왈버그는 서민적인 모습과 자세로 위트와 농담 그리고 때론 상소리를 서슴없이 섞어가면서 질문에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매우 겸손해 질문자에게“네”라고 깍듯이 존댓말을 썼는데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내지 않아 마치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이 편안했다. 그런데 왈버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에 보병으로 참전한 용사다.  

―지금까지 보면 당신과 금발미녀가 공연할 경우 그들은 다 당신의 애인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당신 딸로 나왔다. 소감이 어떤가.
“난 너그럽게 아버지 역을 맡기로 했다. 금발미녀들이 다 내 애인이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 그들의 아버지가 됐다는 것이 우습다. 하기야 내 큰 딸도 지금 11세로 곧 데이트할 때가 됐다. 그리고 난 실제로 아버지 노릇을 즐긴다.” 

―당신은 영화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차를 고칠 줄 아는가. 자동차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가.
“캬부레터가 있는 차는 다 고칠 줄 안다. 식구들이 다 각기 차를 갖고 있어서 집에 차가 몇 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첫 차는 1971년산 폭스바겐 버그였다. 15세 때 50달러 주고 친구로부터 샀는데 면허도 없이 차를 몰고 동네를 다니다가 견인 당했다.”

―이 영화가 전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영화를 속편이 아닌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새 인물들과 악인들이 나오는 신제품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위험부담이 더 크다. 내 역은 보통 사람이 비상한 경우를 만나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마이클은 늘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사람이어서 이 영화에서도 전편들과 다른 혁신적인 것들이 많다.”

―영화에서 당신은 딸을 과보호하다시피 하는데 당신의 두 딸에 대해서도 그런가.
“더 할 것이다. 내가 옛날에 데이트할 때 난 아주 망나니여서 난 그런 남자 녀석들을 잘 안다. 난 내 딸과 데이트하려는 녀석들을 모두 망나니로 본다. 그런 녀석들 안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겠다.”

―당신의 드림 카는 무엇이며 속도위반 딱지를 얼마나 받았는가.
“난 제너럴 모터스의 옛날 차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멋은 있을지 모르나 실용적이지 못해 보다 실제적인 차를 선택한다. 최근엔 별로 딱지를 안 받았다.”

―배우로서 컴퓨터 특수효과가 요란한 영화와 대인관계에 치중한 영화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나.
“처음엔 컴퓨터로 만든 인물과 연기를 한다는 것에 놀라 자빠질 것 같았다. 그러나 하고 보니 재미있더라. 물론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더 좋지만 가끔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에 나오는 것도 괜찮다. 나 혼자서 독불장군 식으로 설치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이 좋은 길을 걷도록 어떻게 모범을 보이는가.
“충고와 조언을 해도 아이들이란 말을 잘 안 듣게 마련이어서 학교 가기를 싫어들 한다. 좌우간 말은 싸기 때문에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여덟 살짜리 내 첫 아들은 풋볼만 좋아하고 교회 가기를 싫어한다. 난 가톨릭 신자여서 아들에게 왜 그가 내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바른 길로 가고 바른 일을 하며 또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가난하게 자란 당신으로서 아이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려는 생각이라도 하는가.
“내가 못 가졌던 것을 전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근로의 윤리를 깨닫기를 바란다. 스스로 무언가 창조하면서 가능한 대로 최선의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 아이들은 다 착하다.”  
마크 왈버그(오른쪽)가 트랜스포머 로보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과거에 애인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무슨 일을 했나.
“처음으로 본격적인 데이트를 할 때 애인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감언이설을 사용했지만 영 먹혀들지가 않았다. 내가 애인 오빠의 친구여서 더 마음이 상했다. 하여튼 애인의 아버지는 진짜 심술첨지였다.”

―역을 위해 운동은 얼마나 했는가.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다. 5개월 반 동안 하루에 15시간씩 촬영을 하면서 뛰고 달리고 치고 박기 위한 맹훈련을 했다.”      

―당신은 배우로서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생각했으며 당신에게 도전적인 역은 어떤 것인가.
“가끔 꿈이야 꾸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난 그저 꾸준히 일을 했다. 늘 도전적이요 날 키울 수 있는 역을 찾으려고 했다. 대단한 여정이었지만 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한다. 모든 역은 다 나름대로 도전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만드는데 재미있었고 또 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비평가들은 이런 특수효과 위주의 영화들은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하는데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다. 난 언제나 인간적인 요소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실적이요 또 감정적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어떤 영화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비평가들의 말에 걱정할 필요 없다.”     

―당신의 작고한 아버지는 한국전 침전용사인데 생전에 당신에게 어떤 무용담이라도 들려주었는가.
“전부 거짓말로 허풍이었다. 사실은 하나도 없다. 보병이었던 아버지는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얘기해 달라고 조르면 무용담을 들려주었는데 갈수록 뻥이 더 심해졌다. 어머니도 내게 아버지가 하는 얘기는 다 뻥튀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이제 와서 과거 칼빈 클라인 속옷 광고 모델 한 사실이 잊혀지길 바라는가.
“그런 적 없다. 그 건 그거니까. 난 사람들이 나의 과거가 아니라 내가 현재 하는 일에 따라 날 평가해 주길 바란다. 난 그저 겸손히 좋은 작품을 찾아서 배우로서의 나를 입증하고 그것으로 존경을 받고자 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기술적인 면에서 당신을 놀라게 한 것이라도 있는가.
“전부 다이다. 놀라운 것은 그 모두가 마이클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내 역을 위해 기여한 점은 조금 있지만 이 영화는 순전히 마이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와의 경험으로 나도 감독하고 싶다는 야심이 생겼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도박사’에 주연했는데 언제 나오나.
“크리스마스에 나온다. 시간과 장소는 현재의 LA로 나는 도박과 또 다른 것에 중독된 문학교수로 나온다. 각본은 ‘디파티드’를 쓴 빌 모내핸이 썼는데 멋있는 영화라고 자신한다.”

―이 영화는 일부를 홍콩에서 찍었는데 홍콩 방문 소감은.
“처음 갔는데 좋았다. 하루에 여덟 끼는 먹었을 것이다. 음식 정말 맛있더라. 어떻게나 먹어댔는지 마이클이 나보고 절제하라고 조언을 했다. 너무 먹어 살이 찌는 바람에 점점 옷이 몸에 꼭 끼더라.” 

―할리웃은 배신과 음모의 협잡꾼들의 세계로 알려졌는데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난 배우라는 직업을 진짜로 사랑한다. 이 일을 사랑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들 우정과 관계에 바탕을 두고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너무 부정적인 것에 신경을 쓰면 일하기가 힘들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앤 소 잇 고즈(And So It Goes)

고약한 늙은이와 이웃 여자의 느지막 사랑 웃음터치


오렌(마이클 더글러스·왼쪽)과 레아(다이앤 키튼)가 담소를 즐기고 있다.

60대 말의 심술첨지 홀아비가 있는 줄도 몰랐던 손녀와 자기 나이 또래의 착한 이웃 과부로 인해 대인기피적이요 냉소적인 마음이 눈 녹듯 녹아 좋은 할아버지와 로맨스의 대상이 된다는 새로울 것이 없는 틀에 박힌 얘기.
이런 뻔한 내용과 결말을 지녔지만 두 베테런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다이앤 키튼의 누워서 떡 먹기 식의 연기와 찰떡궁합 그리고 온건하고 무해한 코미디와 드라마를 잘 만드는 로브 라이너 감독의 스무스한 연출력에 의해 그냥 편안히 보고 즐길 만한 영화가 됐다. 
제임스 L. 브룩스가 감독하고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 주연한 ‘애즈 굿 애즈 잇 게츠’와 라이너가 감독하고 역시 잭 니콜슨이 나온 ‘버켓 리스트’를 두루 뭉실 짬뽕한 기운이 느껴진다. 60세 넘은 사람들을 위한 느지막하게 사랑을 찾아 불태우는 조부모의 러브 스토리로 늘 먹어 그 맛을 잘 아는 디저트 같은 영화다.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코네티컷주의 해변 아파트에 사는 오렌 리틀(더글러스)은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부동산 업자. 이기적이요 고집불통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인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지금 자기와 아내가 살던 고급주택이 팔리면 타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통 소식이 없던 마약중독 전력이 있는 오렌의 아들 루크(스캇 셰퍼드)가 10세난 딸 새라(스털링 제린스)를 데리고 오렌의 아파트를 찾아온다. 마약관계로  실형을 선고 받고 9개월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새라를 돌봐달라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손녀를 느닷없이 맡아 키우게 된 오렌은 어쩔 줄을 모르고 공포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오렌은 새라를 자기 옆 아파트에 사는 미망인으로 늙었지만 아직도 아름답고 신선하면서 약간 말괄량이 기질이 있는 라운지 가수 레아(키튼)에게 거의 반강제적으로 떠맡긴다.
착하고 영리하고 조숙한 새라와 마음이 고운 레아는 시간이 가면서 정이 들어 할머니와 손녀 같은 관계를 맺게 된다. 사실 오렌과 레아는 만나기만 하면 사사건건 시비가 붙는 사이인데 이런 앙숙과도 같은 관계는 결국 새라로 인해 사랑으로 변화하고 오렌의 마음도 달라진다. 
이런 중심 얘기를 에워싸고 오렌의 자기 집을 사러온 각 인종에 대한 편견과 부동산 회사의 고참 할머니 직원(프랜시스 스턴헤이건이 깨물듯이 우스운 대사와 연기를 구사한다)과의 관계 그리고 그와 아파트 이웃과의 관계 등이 에피소드 식으로 묘사된다.
그 중에서 보기 좋은 것은 레아의 라운지 공연과 오디션. 언제나 멋있는 의상을 입을 줄 아는 키튼은 여기서도 산뜻하게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노래하는데 흘러간 무드 짙은 로맨틱한 노래들이 듣기 좋다.               
대머리 라이너가 잘 어울리지 않는 가발을 쓰고 레아의 피아노 반주자로 나오고 ‘빅 걸즈 돈 크라이’ 등 1960년대 빅히트 곡을 양산한 ‘포 시즌스’의 프론트맨 프랭키 밸리가 레아를 고용하는 라운지 주인으로 캐미오 출연한다. 더글러스와 키튼의 화학작용이 일품이고 꼬마 제린스도 아주 잘한다.  PG-13.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카니벌(Cannibal)

아름다운 여인들의 인육을 즐기는 엽기 스릴러


칼로스(왼쪽)와 니나가 눈 덮인 산정에서 깊은 감정에 젖어 있다.


고독하고 과묵한 고급 양복 재단사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인육을 즐기는 식인종으로 나오는 무드 짙고 스산한 기분을 자아내는 스페인 영화로 화면구성과 롱샷을 즐겨 쓴 촬영이 아찔하게 아름답다.
주도면밀하고 서행하는 작품으로 식인의 얘기이지만 센세이셔널 하지 않고 끔직한 장면은 화면 밖에서 벌어진다. 주인공이 정성껏 만드는 옷과 같은 고급 공포 스릴러이자 종교적 상징이 많은 드라마인데 주인공의 가라앉는 듯한 연기와 함께 치밀하고 신중한 연출 그리고 유혹적인 분위기가 보는 사람을 화면 속으로 깊이 빨아들인다. 
스페인의 그라나다. 처음에 카메라가 극단적인 롱샷으로 밤의 외딴 주유소에서 두 남녀가 차에 주유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칼로스(안토니오 데 라 토레)가 자기 차로 이들이 탄 차를 길 밖으로 떨어지게 한 뒤 죽은 여자의 사체를 자기 차에 옮겨 싣고 눈에 덮인 산 위에 있는 자신의 별장인 오두막집으로 간다.
여기서 칼로스는 여인의 옷을 벗겨 테이블 위에 누인 뒤 사체를 절단할 도구를 고른다. 그리고 테이블에 패인 곳으로 선혈이 흐른다. 그라나다의 자기 아파트로 돌아온 칼로스는 플래스틱으로 싼 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칼로스가 고기를 프라이팬에 살짝 데친 뒤 포도주와 곁들여 먹는 장면이 몸서리를 치게 한다.
칼로스의 식인은 그와 여자와의 성적관계이자 일종의 종교적 의식처럼 묘사되지만 그가 왜 식인을 즐기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칼로스는 낮에는 자기 아파트 앞의 양복점에서 마치 명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정성껏 양복을 재단한다. 대인관계가 전연 없다시피 한 칼로스에게 이층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섹시한 루마니아계 금발미녀 알렉산드라(올림피아 멜린테)가 접근하면서 그의 시간표를 짜 사는 듯한 생활의 리듬과 공간이 침해를 당하게 된다.
알렉산드라가 칼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그의 비밀에 참견을 하면서 실종된다. 이어 알렉산드라의 여동생 니나(멜린테의 1인 2역)가 언니의 행적을 알기 위해 칼로스를 방문하면서 니나와 칼로스 간에 미묘한 감정적 관계가 서서히 형성된다. 그리고 칼로스는 니나를 자기 오두막집으로 초청한다. 
데 라 토레가 마치 양복을 정성껏 재단하듯 빈틈없는 연기를 하는데 침통한 그의 모습과 연기에 반해 밝고 신선한 모습의 멜린테의 모습과 연기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마누엘 마틴 쿠엔카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제임스 가너’



모든 것이 너무 무던해도 탈인 것이 17일 86세로 LA서 타계한 배우 제임스 가너의 경우라고 하겠다. 가너는 생긴 것도 무던하고 연기도 무던하고 음성마저 무던한 바리톤으로 철두철미하게 무던했던 배우였다.
그가 자기 또래의 배우로 모가 났던 스티브 매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수퍼스타가 못된 것도 바로 이 무던함 때문이다. 가너가 나온 코미디 ‘헬스’를 감독한 로버트 알트만도 “가너는 연기를 너무 쉽게 해서 인정 못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생전 근면 성실했던 가너는 배우라는 직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배우 같지 않은 배우로 그의 연기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케리 그랜트를 닮았다.
반세기 배우 생애에 80여편의 영화와 TV 작품에 나온 가너는 웨스턴(‘총의 시간’), 드라마(‘그랑프리’) 및 전쟁 액션영화(‘위대한 탈주’) 등 여러 장르에 나왔지만 특히 코미디에 능했다. 도리스 데이와 ‘무브 오버 달링’ 등 2편 그리고 줄리 앤드루스와 ‘빅터/빅토리아’ 등 역시 2편의 로맨틱 코미디에 나와 누워서 떡먹기 식의 경쾌한 연기를 했는데 그의 유일한 오스카상 후보작으로 샐리 필드와 공연한 ‘머피의 로맨스’도 삼삼한 로맨틱 코미디다.
내가 본 첫 가너의 영화는 2차 대전 때 미 해군 잠수특공대의 액션을 다룬 ‘잠망경을 올려라’였다. 그러나 이보다 내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그의 영화는 시드니 포이티에를 이색적으로 쓴 웨스턴 ‘디아블로의 결투’와 가너가 와이앗 어프로 그리고 제이슨 로바즈가 닥 할러데이로 나온 ‘총의 시간’이다.  
가너는 영화보다 TV로 더 유명한 배우였다. 가너가 수퍼스타가 된 것은 영화가 아니라 1957년에 시작된 ABC-TV의 코믹터치의 웨스턴 시리즈 ‘매버릭’에 의해서다. 여기서 가너는 ‘쉽게 쉽게 삽시다’는 식의 떠돌이 도박사건 맨으로 나와 총과 주먹보다 조롱기가 섞인 자기 비하적인 말로 상대를 처리한다.
이로 인해 터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마지못한 영웅’이 가너의 상표가 되었는데 가너는 이런 자기 풍자적 기질을 코미디 웨스턴 ‘당신 동네 보안관을 지원하라’와 이의 속편격인 ‘당신 동네 총잡이를 지원하라’에서도 잘 써 먹었었다.
가너는 후에 시리즈 ‘매버릭’을 바탕으로 만든 멜 깁슨 주연의 동명영화에서 나이 먹은 보안관으로 나왔다.
빅히트한 ‘매버릭’ 만큼이나 크게 성공하고 가너가 에미상을 받은 TV 시리즈가 1974년에 시작된 ABC-TV의 탐정물 ‘록포드 파일즈’(사진)다. 귀에 익은 가너의 전화녹음 메시지가 나오는 오프닝 크레딧 장면으로 잘 알려진 시리즈에서 가너는 LA 인근 말리부 해변의 트레일러에 사는 빈털터리 사립탐정 짐 록포드로 나온다. 그는 여기서도 총과 주먹 대신 말로 상대를 제압한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체구의 록포드는 폭력을 싫어해 남을 때리기보다 얻어맞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가너가 할리웃에서 어떤 남자로부터 구타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당시 이 뉴스를 들으면서 ‘아니 록포드가 얻어맞다니’하면서 혀를 찼었는데 아마 가너는 실제로도 평화주의자였던가 보다.      
록포드나 매버릭이나 시대만 달랐지 사실은 같은 반영웅으로 가너는 쉽게 친근감이 가는 터프가이였다. 영어대사를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나도 한국에서 ‘록포드 파일즈’를 AFKN-TV로 보면서 즐겼었다.
가너의 또 다른 유명한 TV 출연은 매리엣 하틀리와 부부로 나온 폴라로이드 카메라 광고다. ‘록포드 파일즈’는 몰라도 이 광고 안 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광고였다.
오클라호마 태생인 가너는 4세 때 생모를 잃고 계모에 의해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다. 16세 때 고교를 중퇴하고 선원, 유정 노동자 및 카펫 까는 일 등 온갖 잡일을 하면서 살았다. 가너는 현재도 있는 라나 터너도 다닌 할리웃 고교에 잠시 다닐 때 잡지용 수영복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이 나면서 가너는 군에 징집돼 전선에서 싸우다 두 번이나 부상을 입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한국전의 영웅이기도 하다.
가너가 처음 연기를 한 것은 헨리 폰다가 나온 무대극 ‘케인호의 반란’으로 말 한마디 없는 단역이었다. 그란데 가너는 무대공포증이 있어 그 후 무대를 기피했다. 가너는 이브 몽탕과 토시로 미후네가 공연한 자동차 경주 영화 ‘그랑프리’를 찍으면서 이 경기에 빠져 그 후 세 번이나 인디 500에 출전해 직접 차를 몰기도 했다.      
제임스 가너는 여자는 한 번쯤 사랑하고 싶고(줄리 앤드루스의 말) 남자는 친구로 사귀고 싶은 매력적이요 편안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쩌면 할리웃의 이지고잉 스타일의 마지막 배우일는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7월 24일 목요일

위시 아이 워즈 히어(Wish I Was Here)

“생계 때문에 배우 꿈을 접어야 하다니…” 

에이단(가운데)이 아들 터커와 딸 그레이스를 데리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배우인 잭 브래프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주연한 소박한 가족 드라마 ‘가든 스테이트’를 만든지 10년 만에 역시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주연도 겸한 차분하게 감정적이요 사실적이며 마음을 파고드는 가족드라마로 코미디 터치를 가미해 심각한 플롯을 경쾌하게 처리했다.
죽음과 종교와 가장으로서의 가족 생계유지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으려는 고집 등 우리가 일상 겪는 문제들을 힘을 주지 않고 약간 변덕스럽고 자기비하적이며 또 우습고 솔직하게 다뤄 충분히 공감하면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30대 가장의 자신과의 타협을 삼삼하게 그린 드라메디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브래프가 사람들로부터 제작비를 십시일반 하는 식으로 후원받은 킥 스타터 영화로 총 제작비 500만달러 중 300만달러(4만6,520명 모금)가 이렇게 조달됐다.      
LA에 사는 에이단 블룸(브래프)은 안 팔리는 배우로 오디션마다 뛰어다니지만 최근에 나온 것이 비듬약 광고. 그래서 집안 생계비는 따분한 컴퓨터 일을 해야 하는 직장(남자 동료들의 성희롱을 받으면서)에 다니는 에이단의 아내 새라(케이트 허드슨)가 꾸려나간다. 둘 사이엔 탐보이인 틴에이저 딸 그레이스(조이 킹)와 그의 남동생 터커(피어스 개그논)가 있다.
그런데 힘은 들지만 그런대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에이단의 삶이 암을 앓는 아버지 게이브(맨디 패틴킨) 때문에 균형이 깨어진다. 게이브가 여태껏 지불한 그레이스와 터커의 유대인 학교 학비를 더 이상 낼 수가 없다고 아들에게 통보를 했기 때문.
그런데도 에이단은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기를 거부하면서 학교 교장인 랍비를 면담해 도와달라고 사정하나 거절당한다. 게이브와 현모양처로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남편의 배우로서의 꿈을 말리지 않던 새라마저 에이단에게 배우직업을 포기할 것을 종용하면서 에이단은 큰 삶의 시련에 직면한다. 
가족의 위기를 맞은 에이단은 할 수 없이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시키기로 하고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은 자신이 선생 노릇을 한다. 그리고 에이단은 감정적으로 힘이 들면 자기가 14세 때 상상하던 환상의 나라로 들어가 수퍼히로 우주인이 되면서 시름을 잊는다.
서브플롯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에이단의 노총각 동생 노아(조쉬 개드). 노아는 해변의 트레일러하우스에서 두문불출하듯이 혼자 사는 컴퓨터와 만화 속 인물에 빠져 사는 너드로 아버지와 말을 안 한지 1년이 넘는다. 끝에 가서 그와 게이브가 그레이스의 주선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종교와 신과(유대인을 자아비판하고 비하하는 대사들이 웃긴다) 죽음과 자신의 꿈과 책임 사이에서 애를 먹는 가장의 갈등 그리고 직면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당황과 같은 여러 가지 영적이요 심각한 요소들을 모가 나지 않게 서로 잘 조화시켜 엮은 연출 솜씨가 좋다. 아주 희망적인 영화다.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허드슨(코미디언 골디 혼의 딸)의 연기다. 자주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로맨틱 코미디(올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와 여러 편에서 공연했다)에 나온 허드슨이 매우 굳건하고 꾸밈없고 믿음직한 연기를 한다. 이를 계기로 허드슨도 매코너헤이처럼 괄목할 변신을 하기를 기대한다. 
R. Focus.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섹스 테입(Sex Tape)

캐메론 디애즈 몸매만 볼 만한 섹스 코미디

섹스를 위한 준비태세에 들어간 제이(왼쪽)와 애니.

천하고 상스럽고 추하고 야하고 볼품없고 재미없고 우습지도 않은 섹스 코미디로 모든 것이 억지다. 아무 내용도 없는 지극히 공허한 영화로 허무하기까지 한데 별로 우습지도 않은 얘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려고 두 주연 배우인 캐메론 디애즈와 제이슨 시겔이 쥐어짜듯이 해대는 연기 같지도 않은 연기가 보는 사람을 오히려 피곤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속빈 강정식의 할리웃 영화로 어떻게 이런 흉물을 보라고 버젓이 내놓았는지 배급사인 소니의 속셈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나 볼 것이 있다면 40넘은 나이에도 싱싱한 육체와 뒤태를 지닌 디애즈의 전봇대만큼이나 긴 다리. 디애즈는 ‘내 몸 좀 봐 주세요’라는 식으로 브라와 손수건만한 팬티로 중요한 곳만 가리고 요사를 떠는데 언제나 배우로서 철이 들는지 한심하다.
영화는 처음에 애니(디애즈)가 컴퓨터로 자기와 남편 제이(시겔-공동 각본)가 결혼 초창기 끊임없이 즐기던 섹스장면을 보면서 섹스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고 자랑하면서 시작된다. 결혼생활 10년에 두 남매를 둔 둘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나 정열은 시들해진 상태. 그래서 변태적인 스타일까지 동원해 섹스를 즐기려 해도 뜻대로 되지가 않아 좌절감이 심하다. 이에 기발 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애니로 애니는 제이에게 섹스교본 ‘섹스의 즐거움’에 있는 그대로 온갖 자세로 둘이 섹스를 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남기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애니와 제이는 발가벗고 3시간 난스탑으로 섹스를 하면서 그 모습을 아이패드로 찍는다. 3시간의 마라톤 섹스 후 애니는 제이에게 촬영한 것을 꼭 지우라고 부탁하는데 아뿔싸 제이가 지우는 것을 잊으면서 난리법석이 난다.
애니와 제이의 섹스 비디오가 공공연하게 살포되면서 공포에 질린 둘은 밤새 이것을 회수하려고 친구와 애니의 직장사장 행크(로브 로우)의 집을 찾아 헤맨다. 애니와 제이가 행크의 집에서 벌이는 해프닝은 터무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데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로우는 과거 자신의 섹스 테입을 찍어 스캔들에 올랐던 장본인이다.        
시종일관 철저하게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억지를 부린 영화로 다행히 상영시간은 1시간35분이나 그것도 길다. 코미디언 잭 블랙이 사람들이 컴퓨터에 옮긴 섹스 비디오를 대중에게 살포하는 소스의 사장으로 잠시 나온다. 제이크 캐스단(명장 로렌스 캐스단의 아들) 감독. 
R.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터뷰’



히틀러와 스탈린과 김정일 같은 독재자들은 영화의 힘을 파악, 이를 통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내가 1991년 북한을 방문, 평양의 조선영화예술촬영소를 구경했을 때 안내를 맡은 공훈배우 김선남씨도 “김정일 동지는 영화를 통해 인민을 교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에 더 애착을 둔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괴물들이어서 풍자영화의 좋은 노리갯감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 북한이 전쟁 불사를 부르짖으며 노발대발하고 있는 미국제 코미디 ‘인터뷰’(10월10일 개봉ㆍ사진)도 북한이 하느님처럼 떠받들고 있는 김정은에 대한 암살시도를 다룬 것이다.
소니 작품인데 두 TV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프랭코와 세스 로겐(공동 각본 및 감독)이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되자 CIA가 둘에게 김정은 암살을 지시한다는 내용이다. 김정은으로는 한국계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랜달 박(40)이 나온다.
얼마 전에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자 북한 외무성은 “결정적이요 무자비한 반격을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은데 이어 최근에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주권국가의 현직 지도자에 대한 암살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것은 노골적인 테러리즘에 대한 후원이자 전쟁행위”라면서 “미국은 즉각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중단하라”는 항의편지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이에 대해 유엔이 아무 말이 없자 북한은 이번에는 백악관의 오바마에게 이 영화의 배급을 중단케 하라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이나 소니가 이런 공갈협박에 넘어갈 리가 없으니 ‘인터뷰’는 100만달러짜리 공짜 선전만 받은 셈인데 이 덕분에 영화의 예고편이 전 세계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평양에까지 상륙했다고 한다.
악몽이자 공포영화요 공상과학 영화이자 넌센스 다크 코미디와도 같은 북한은 철저한 비밀국가인 데다가 인민은 굶어죽는데 괴물 전직 미 프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을 초청해 경기를 즐기는 김정은의 기발 난 행동 탓에 풍자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정은의 아버지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도 2004년작 미국산 꼭두각시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에서 고독한 미치광이 지도자로 묘사돼 화가 난 북한 정부는 체코 정부에 영화의 상영금지 조치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했었다. 또 제임스 본드 팬이던 김정일은 007 시리즈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이 악의 국가로 그려진 것에 대해서도 크게 역정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같은 미제 영화라도 북한군이 미국을 침공한 ‘레드 던’과 북한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박살내는 ‘올림퍼스 함락되다’에 대해서는 아무 불평을 안 했다. 불평은커녕 북한은 영화의 부분을 북한의 막강한 무력을 과시하는 선전용 비디오로 쓰고 있다고 한다.  
현직 국가수반인 독재자를 무차별 야유 비판한 걸작 코미디가 채플린이 제작ㆍ감독ㆍ작곡하고 각본을 쓰고 1인2역으로 주연한 ‘위대한 독재자’(1940)다. 영화를 만들기 전 이미 히틀러의 암살대상 리스트에 올랐던 채플린은 영화에서 콧수염을 한 독재자로 나와 이웃 국가들을 침략하는데 그 모습이나 행동이 히틀러를 똑 닮았다.
영화가 나오자 나치 정부가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 그래서 당시만 해도 독일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국무부는 “미국 정부와 이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성명까지 냈었다. 그리고 영국도 처음에는 영화 상영을 금지했다가 독일과 전쟁을 시작한 후에야 상영을 허락했다. 영화는 독일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상영이 금지됐는데 빅히트해 채플린의 영화로선 사상최대의 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히틀러뿐 아니라 무솔리니도 조롱하고 있는데 무솔리니는 막스 브라더스의 요절복통 코미디 ‘누워서 떡 먹기’에서도 가차 없이 야유를 받았다. 물론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상영이 금지됐었다.
‘인터뷰’ 때문에 골이 잔뜩 난 북한의 심기를 더욱 불편케 할 또 다른 영화가 ‘수용소의 노래’(해외 제목: ‘평양의 어항’)다. 현재 한국의 북한 전략센터 대표로 있는 강철환씨가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10년간의 경험을 다룬 책이 원작으로 최근 제작발표가 있었다. 강철환 역은 AMC-TV의 인기 산송장 시리즈 ‘워킹 데드’에 나와 호평을 받은 한국계 스티븐 연(30)이 맡는데 그는 제작도 겸한다.
북한으로선 또 하나의 ‘전쟁 불사’감이다. 우려이길 바라나 아이가 불장난하듯 노는 북한이 미국 대신 한국에 대해 국지전 형태의 ‘영화전쟁’이라도 일으키지나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그런데 과연 김정은은 ‘인터뷰’를 볼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인 북한-미 평화센터 김명철 사무국장은 한 인터뷰에서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자 로겐은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이 ‘인터뷰’를 볼 것이 분명하단다. 그가 영화를 좋아하길 바란다”고 능청을 떨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 쉐일린 우들리



“첫 데이트는 12세 때… 키스 안할것 서약했죠”


암에 걸린 두 10대 남녀의 아름답고 청순한 사랑을 곱게 그린 슬프고 아담한 소품‘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The Fault in Our Stars)에서 헤이즐 역을 맡은 떠오르는 연기파 청춘스타 쉐일린 우들리(22)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단발에 갈비씨인 우들리는 명랑하고 다정했는데 약간 굵은 음성으로“흐흐, 헤헤”하고 웃으면서 질문에 속사포식으로 거침없이 대답했다. 생긴 것처럼 매우 총명했는데 명확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대답을 들으면서 나이보다 성숙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계속해 울면서 본‘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는 지금까지 1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린 빅히트작으로 영화의 기둥이다시피 한 우들리가 내년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우들리가 처음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역은 알렉잰더 페인이 감독한‘디센던트’에서 조지 클루니의 딸 역으로 우들리는 올해 영 어덜트 소설이 원작으로 역시 히트한‘다이버전트’에도 주연했다. 대성할 배우다.                     
―당신은 운명과 고통을 얼마나 잘 감수할 수 있는가.
“내가 ‘디센던트’에 나왔을 때 페인 감독이 내게 ‘운명을 믿어라’고 말했다. 당시 18세였던 내게 그 말은 깊은 여운을 남겼고 그로 인해 이 세상에서 살려면 운명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통은 행복과 슬픔과 흥분과도 같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난 동물들도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은 하나 그것을 진짜로 증명할 방법은 없다고 본다) 특혜로 비록 아프긴 하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첫 애인을 집에 데리고 갔을 때 당신의 부모의 반응은 어땠는가.
“나의 부모는 모두 심리학자인데 매우 개방적이요 진보적이다. 늘 나를 후원하고 또 염려한다. 내 첫 데이트는 12세 때로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갔더니 아버지가 우리 둘에게 서약서에 서명을 하도록 시켰다. 내용은 키스를 하지 말 것과 둘이만 방에 있을 때 문을 닫지 말 것 그리고 손을 잡으려면 반드시 사람이 있는 곳에서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지금도 이 서약대로 남이 없는 데서는 남자의 손을 잡지 못한다.”

―당신은 영화에서 당신에게 큰 감동을 준 작가를 만나기 위해 암스테르담엘 가는데 실제로 당신에게 큰 감동을 준 작가는 누구인가.
“작고한 아나이스 닌이다. 그는 정말로 총명한 작가로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난 무슨 일이라도 다할 것이다.”

―당신은 애인 거스(안셀 엔골트)와 함께 앤 프랭크가 숨었던 다락에 올라갔을 때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애인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데 기분이 어땠는가.
“다락방까지 오르려면 가파른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이 계단은 내가 겪는 질병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는 계단을 올라 다락방에 도착함으로써 내 장애를 극복한 것이다. 키스신은 정말로 사실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엄청난 고난을 견디어낸 앤이라는 소녀가 헤이즐에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위한 조사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거스(왼쪽)와 헤이즐이 암스테르담에서 사랑의 기운에 젖어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니 알 수가 없다.”

―이 영화에 나오면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삶에서 보장된 것이나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걱정과 죄의식 또는 스트레스에 소모한다는 것은 공정치가 못하다는 것이다. 삶은 순간적이라는 것을 진실로 배웠다. 우리는 앞으로 몇 분을 더 살고 호흡을 몇 번이나 더 할지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그 날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라 먼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선 강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십을 남발하는 매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난 신경을 안 쓴다. 불안이나 불확실성 그리고 취약함은 자기를 외적 환경에 비유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좌우지간 가십들은 다 가짜다.”

―당신은 ‘디센던트’에선 버릇없는 못된 10대로 그리고 이 영화에선 성숙하고 지적인 10대로 나왔는데 요즘 10대는 이 중에 어디에 속한다고 보는가.
“우린 다 천성적으로 복잡한 개체여서 난 무언가에 어느 특정 딱지를 붙이고 싶지 않다. 설사 그들이 겉으로 못돼 보이더라도 우린 그들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를 모르는 것 아닌가. 배우가 된 것의 대단한 혜택은 각기 다른 인물들과 이야기들의 내적 복잡한 성질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서로 다르듯이 10대들도 모두 각기 다르다. 10대들은 책이나 미디어 및 영화가 종종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적이요 똑똑하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의 작가 존 그린은 10대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음성을 주고 있다. 그는 10대의 음성을 있는 그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암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라도 했는가.
“그것은 세상에 만유하는 것이다. 난 영화를 위해 내 또래의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후 나는 내 삶을 감사하게 되었고 산소마저도 감사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과 삶을 찬양하게 되었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암과 죽음을 제물로 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신 삶의 금언은 무엇인가.
“먼저 ‘유 두 유’ 즉 너 자신이기를 충분히 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모든 것은 늘 다 잘 될 것이고 그리고 너는 죽는다’이다. 마지막은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다’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연민 없는 정직은 잔인이다’이다.”

―헤이즐은 늘 산소통을 끌고 다니면서 숨을 쉬는데 연기하기가 힘들었는가.
“두 달 내내 산소통을 끌고 다니느라 한 손으로 생활하다시피 했다. 영화 후 산소의 고마움과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숨 쉬는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하게 되었다.”

―당신에게 우정은 얼마나 중요하며 일하지 않을 땐 어떻게 지내는가.
“다행히도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내 분장사여서 우린 늘 함께 여행한다. 일하지 않을 때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다. 집에 가 설거지하고 세탁하는 매우 정상적인 삶이다. 난 50%는 혼자 있는 것이 필요하고 나머지 50%는 친구와 사교활동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 영화는 비극적이면서 아울러 로맨틱한데 당신에게 있어 로맨스는 무엇인가.
“난 불치의 로맨틱이요 백일몽가다. 난 그 어느 것도 내가 창조한 기대치를 넘어설 수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로맨틱한 것을 결코 찾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로맨틱한 것 중의 하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당신의 얘기를 진정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적은 쪽지 같은 전연 기대치 않은 것을 받는 것도 로맨틱한 일이다.”

―로맨틱하려면 무드가 중요한가.
“순수하고 진짜이고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단 한 가지 로맨틱한 무드를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은 조명이다.”

―최근에 남자를 보고 숨이 막힌 적이 있는가.
“얼마 전에 파리에 갔을 때 거리를 걷고 있는데 내 옆에 누군가 걷고 있어 올려다 봤더니 숨이 막힐 정도로 멋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운명이 가혹하기도 해라.”

―질과 양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가.
“두 말 할 것 없이 질이다.” 

―당신이 불치의 병에 걸린다면 그것과 싸우겠는가 아니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아 대답할 수가 없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눈물 짜는 로맨스 영화는 무엇인가.
“‘더티 댄싱’과 ‘프리티 우먼’이다. 난 이런 영화에 사족을 못 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혹성 탈출: 봉기의 새벽(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원숭이들의 습격


인간 언어를 스는 시저(댄디 서키스)가 원숭이들을 이끌고 사냥에 나서고 있다.
투 머치 몽키 비즈니스다. 이건 완전히 원숭이판이다. 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원숭이들이 말하고 글 쓰고 사냥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배신하고 음모를 하는데 결국 인간과 원숭이가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인간을 증오하는 원숭이 코바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양손에 든 총으로 인간을 공격하는데 그 모습이 꼭 존 웨인이 오스카상을 탄 웨스턴 ‘트루 그릿’의 장면을 닮았다. 그는 또 램보처럼 한 손으로 기관총을 들고 가차 없이 사격, 사람을 잡기도 한다.   
입체영화로 기술적인 면 특히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을 포착해 원숭이들의 그것으로 사용한 컴퓨터 특수효과가 뛰어난데 너무나 원숭이들이 판을 쳐서 다소 부담감이 가고 황당무계한 감은 있지만 지적인 면과 막강한 액션 스릴을 잘 겸비한 좋은 오락작품이다.
2011년에 나온 ‘혹성 탈출: 원숭이들의 봉기’의 속편으로 주인공들이 원숭이기 때문에 인간 배우들은 B급을 썼다. 전편은 실험실에서 탈출한 원숭이들이 샌프란시스코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끝난다. 그로부터 10년 후. 바이러스로 인간들이 대량 사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외부와 분리된 채 원숭이들의 공격이 무서워 무기를 대량으로 비축해 두었다. 인간들의 리더는 전직 경찰 드라이퍼스(게리 올드맨). 
한편 원숭이들은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뮈어 숲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2,000마리의 원숭이들의 리더는 평화주의자요 온건파인 시저(앤디 서키스). 시저는 전편에서 어릴 때부터 인간에 의해 키워진 고도로 발달된 지능을 지닌 지혜로운 리더다. 
시저 외에 중요한 역을 맡은 원숭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서커스 오랑우탕 모리스(카린 코노발)와 상냥한 코넬리아(주디 그리어) 그리고 투사 로켓(테리 노타리)과 실험실에서 살아남아 인간을 극도로 증오하는 코바(토비 케벨) 등. 대부분의 원숭이들은 수화로 소통하고 시저 등 몇 마리의 뛰어난 지능을 가진 원숭이들은 인간 언어를 쓴다. 
시저의 통치 하에 원숭이들은 사냥하고 새끼들 교육시키고 험악한 육식동물과 싸우고 집을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인간들이 숲속에 나타나면서 원숭이 대 인간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다. 전력이 끊긴 인간들이 숲속에 있는 수력발전소를 재가동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 
발전소 설계자 말콤(제이슨 클라크)과 그의 간호사 애인 엘리(케리 러셀) 그리고 말콤의 10대난 아들 알렉잰더(코디 스밋-맥피)와 몇 명의 전기공들이 숲속에 들어오면서 코바를 비롯한 원숭이들은 이들을 제거하려고 하나 시저가 이를 말린다. 그리고 인간을 극도로 증오하는 코바가 쿠데타를 일으켜 리더 자리를 차지한 뒤 원숭이들을 이끌고 인간을 공격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온건파인 시저와 극보수파인 코바 간의 불화와 충돌 그리고 인간 대 원숭이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요즘 시의에도 맞는 내용으로 원숭이의 입장에서 본 인간의 얘기라고 하겠다. 수려한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근육질의 음악 등이 다 좋은데 무엇보다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전편에서도 시저 역을 맡은 서키스의 눈 연기. 희로애락의 감정이 미묘하게 흐르는 영혼 충만한 연기다. 그는 2011년 이 눈 연기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야 한다는 평을 들었다. 
카메라가 시저의 응시하는 강렬한 눈동자를 서서히 클로스업 하면서 시작되고 끝이 나는데 제3편을 예고하면서 막이 내린다. 맷 리브스 감독. PG-13. Fox.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양키즈의 자랑’


미 전국민들의 오락인 야구의 시즌이 어느 듯 중반에 접어들었다. 비록 류현진은 10승 도전에 세 번째 실패했지만 LA 다저스는 10일 현재 내셔널리그 서부조 2위에 올라 있다. 
7월4일은 미 독립기념일이기도 하지만 야구팬들에게는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뉴욕 양키즈의 강타자로 나이스 가이였던 루 게릭이 병으로 조기 은퇴하면서 남긴 감동적인 작별사로 기억되는 날이다.
‘철마’라 불렸던 퍼스트 베이스맨 게릭(1903~1941)은 선수생활 17년간 연속 2,130경기에 출전하면서 493개의 홈런과 3.40의 타율 그리고 1,995개의 타점을 낸 공포의 강타자였다. 이 같은 성적은 모두 당시 최고의 기록이었다.
그런데 게릭은 1939년 갑자기 슬럼프에 빠진다. 그 해 6월 병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치명적인 희귀병인 신경조직 붕괴병이라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이 병은 후에 게릭의 이름을 따 통상 루 게릭병이라고 불리고 있다. 
게릭은 곧 은퇴를 선언했고 그의 은퇴기념식이 7월4일 양키스테디엄에서 6만1,00여명의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워싱턴 세네터즈와의 더블헤더 중간에 열렸다. 평소 수줍음이 심했던 게릭은 선물을 받고 팬들에게 손인사만 하고 퇴장하려고 했으나 팬들이 “우린 루를 원해”라고 합창을 하는 바람에 마이크 앞에 섰다고 한다. 
게릭은 목이 멘 음성으로 “지난 2주간 여러분들은 불운에 대해 읽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을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별사를 했다(사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미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고별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게릭은 이 고별사를 남긴지 2년 후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지난 4일 다저스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유니폼에 ‘75’라는 숫자를 새긴 마크를 달고 경기를 한 것은 게릭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게릭의 삶은 그가 죽은 바로 다음 해 명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이 제작하고 샘 우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감독한 흑백명화 ‘양키즈의 자랑’(The Pride of the Yankees)에서 약간 감상적이지만 고상하고 품위 있게 다루어졌다.
게릭 역은 자기를 닮은 게리 쿠퍼가 맡아 성실하게 표현했는데 게릭이 ‘인생의 반려자’로 지극히 사랑한 아내 엘리노어 역은 백합의 청순미를 지닌 테레사 라이트가 맡았다. 둘의 화학작용이 절묘하다.
전기영화요 스포츠영화이자 로맨스영화인 ‘양키즈의 자랑’은 게릭이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1920~30년대의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거쳐 그의 은퇴식으로 클라이맥스를 맺는다. 담담하고 진지한 영화로 물론 영화이니만큼 사실에 허구를 접목했다.
뉴욕 이스트할렘의 가난한 이민자 집에서 태어난 게릭은 컬럼비아대학에 다니면서 부모의 뜻대로 엔지니어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방망이질에 괴력을 보인 게릭은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는데 그의 실력을 목격한 스포츠 기자 샘(월터 브렌난)이 게릭을 양키즈에 소개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된다. 
영화에는 게릭과 쌍벽을 이루던 강타자 베이브 루스와 명캐처 빌 딕키 및 마크 코닉 등 양키즈의 실제 선수들이 나와 사실감을 살리고 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유별나게 뛰어나거나 눈부신 것이 없다는 점이다. 게릭이라는 인물처럼 매우 평범하고 솔직한 영화로 유머가 있고 달콤 쌉싸래하며 로맨틱하고 자연스러운 데다가 아주 인간적이어서 친근감이 간다. 그리고 얘기가 진실해 믿음성이 있을 뿐 아니라 장면 하나 하나마다 정성이 깃들어져 있어 감동을 준다. 
쿠퍼는 게릭 역을 맡게 되자 야구코치와 함께 몇 주간 피나는 연습을 한 뒤 촬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오른손잡이인 쿠퍼가 왼손잡이인 게릭이 공을 때리거나 던지는 흉내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쿠퍼로 하여금 오른손으로 배팅을 하게한 뒤 그 장면을 찍은 필름을 역회전해 왼손잡이처럼 보이게 했다. 또 쿠퍼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장면은 대역을 썼다.
영화에 추억의 감미로운 기분을 주는 것은 어빙 벌린의 노래 ‘얼웨이즈’. 이 노래는 게릭과 엘리노어가 좋아하던 사랑의 노래다. 그런데 골드윈은 처음에 영화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흥행에 망할 아이디어”라면서 “사람들이 야구를 원하면 야구장에 간다”라고 콧방귀를 뀌었다고. ‘양키즈의 자랑’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작품과 남녀 주연 등 총 10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편집상 하나로 그치고 말았다. 
둘 다 미 프로권투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록키 그라지아노와 제이크 라모타가 각기 그들의 삶을 그린 영화 ‘상처뿐인 영광’과 ‘성난 황소’로 인해 우리의 인식에 뚜렷이 남게 됐듯이  게릭도 ‘양키즈의 자랑’ 때문에 팬들의 기억에 더욱 깊이 머무르게 됐다고 하겠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7월 8일 화요일

모피 입은 비너스(Venus in Fur)

여배우 지망생의 성적 매력에 그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 남자의 성적환상 다뤄


연극 감독 토마(마티외 아말릭·오른쪽)는 방다(에마뉘엘 세녜)의 성적 도전에 넋을 잃을 정도다.

여자의 막강한 성적 매력에 녹초가 되고 마는 남자의 우월성을 위트 있고 악마적으로 그린 로만 폴란스키의 자기학대성 쾌락에 빠진 2인극 프랑스 영화로 다시 한 번 전지전능한 여성의 성적 힘에 경배를 드리게 만든다.
미국인 극작가 데이빗 아이브스의 연극이 원작(10월 코스타메사의 사우스코스트 레퍼토리에서 공연한다)으로 신작 발표를 앞둔 감독과 뒤늦게 오디션에 나타난 껌을 질겅질겅 씹는 헤픈 자세의 육체파 배우 지망생의 힘의 균형의 변화와 함께 남자들이 잘못 갖고 있는 여자의 성적 매력에 대한 개념과 남자의 자기학대성 환상을 새카맣게 웃어댄 일종의 풍자영화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장 안에서 대사로 진행되는데 이런 협소감이 영화의 집념성을 잘 살리고 있으며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지적이요 때로는 희롱하듯 하면서도 가혹하게 진실한 대사가 재미있다.  
콧대 높은 극작가이자 연극 감독인 토마(마티외 아말릭-폴란스키와 매우 닮아 마치 폴란스키가 출연한 것 같다)가 자신의 차기 작품 ‘모피 입은 비너스’의 주연 여배우 오디션을 끝내고 귀가하려는데 뒤늦게 큰 키에 풍성한 육체를 한 플래퍼 스타일의 방다(에마뉘엘 세녜-폴란스키의 부인)가 들어온다.
껌을 질겅질겅 씹는 방다는 오디션이 끝났다는 토마에게 사정사정하면서 대본을 읽게 해달라고 조른다. 이에 마지못해 방다에게 극본을 읽게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방다는 연극 속의 주인공인 방다(이름이 같다)의 내성을 마치 자기 것 같이 잘 알아 대본을 기차게 잘 익어낸다.
여기서부터 극적 굴곡이 교묘하게 높낮이를 이루면서 신과도 같은 감독과 보잘 것 없는 오디션 참가자 간의 힘의 균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토마는 방다의 역해석과 거의 완벽한 낭독에 아연실색하면서 감탄을 한다. 감탄은 서서히 경탄의 지경에 이르면서 토마는 완전히 방다의 개인적 성적 매력과 배우로서의 능력에 휘말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벌린 입을 닫지 못한다.
방다야말로 또 하나의 팜므 파탈로 남자가 이런 여자에게 한 번 빠지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인데 과연 토마도(아내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오디션을 밤이 늦도록 진행한다) 그랬는지 아니면 오디션 끝에 방다를 발탁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방다는 이제 마치 풀 죽은 강아지처럼 된 토마에게 남자들이 갖고 있는 여자의 남자에 대한 변태적인 성적 지배력에 대한 관념은 순전히 남자 위주의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그것은 남자들의 여자 혐오증을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어든다. 
그리고 방다는 토마에게 당신도 순전히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를 본 극본을 쓰고 있다면서 옷을 훌훌 벗어젖히고 자기주장을 실증하겠다고 도전한다. 방다의 길고 탐스럽고 미끈한  맨살 다리 밑의 섹시한 검은 하이힐을 신은 발에 입 맞추는 토마. 
세녜와 아말릭의 호흡이 잘 맞는데 기차게 훌륭하고 볼 만한 것은 때론 응석 부리는 순진한 아이 같고 때론 오만방자하고 또 때론 치명적 매력을 지닌 세녜의 자태와 연기다. 이런 여자에게 굴복 당하지 않는 남자는 성인이다. 그리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유희하는 듯한 음악도 좋다. 성인용. Sundance Select. 10일까지 뉴아트(310-470-0492), 11일부터는 패사디나와 엔시노 및 오렌지카운티에서 상영.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Deliver Us from Evil)

사실감 있게 그린 악령추방 범죄 스릴러


멘도사 신부(에드가 라미레스)가 산티노를 상대로 악령추방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귀신 도깨비영화 치곤 여느 귀신 도깨비영화보다 짜임새가 있고 긴장감 있으며 또 무섭고  사실감 있는 악령추방 범죄공포 스릴러다. 내용이 실화여서 더욱 놀랍고 무서운데 그렇다면 세상엔 분명히 악마와 그 것을 이기는 신성한 영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영화의 주인공인 뉴욕의 형사 랄프 사치와 리사 콜리어 쿨이 공동으로 쓴 ‘밤을 조심하라’(Beware the Night)가 원작으로 제작은 ‘카리브해의 해적’을 만든 블락버스터 제작자 제리 브루카이머가 했다. 뉴욕과 아부다비에서 찍었다.
영화는 처음에 이라크전에 참전한 3명의 병사가 동굴 속의 적을 찾아 들어갔다가 그 중 한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밤의 비오는 뉴욕 뒷골목으로 장면전환 한다. 쓰레기통에서 영아의 살해된 사체가 발견되고 이를 수사하기 위해 형사 랄프 사치(에릭 바나)가 현장에 온다. 이어서 이 사건과 닮은 끔찍한 살인사건이 계속해 일어나는데 피살자들은 다 악마적 의식행위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 젠(올리비아 먼)과 아이를 둔 랄프는 어렸을 때만 해도 가톨릭 신자로 그 뒤 인간의 만행을 못 본 척하는 신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믿음을 버림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늘 신에 대한 어떤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어느 날 랄프에게 홈리스 차림의 신부 멘도사(에드가 라미레스)가 찾아와 피살자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돌보던 귀신 들린 여자라면서 이 사건이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 악마의 행위라며 수사에 동참하겠다고 제의한다. 랄프는 처음에 그게 무슨 도깨비 소리냐고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점차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 못할 일들이 벌어지면서 멘도사와 자기 파트너 버틀러(조엘 맥헤일)와 함께 사건을 파고든다. 
그리고 사건의 핵심인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산티노(션 해리스)가 지목되는데 그의 집을 뒤진 결과 벽에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글들은 산티노가 이라크의 동굴에 들어갔을 때 목격한 뒤 귀신에 들린 것과 또 같은 것이다(악령추방 영화의 금자탑인 ‘엑소시스트’도 이라크 지하에서 악령이 나온다).                
산티노의 최후 목표는 믿음을 버린 랄프. 마침내 랄프는 산티노를 체포한 뒤 멘도사 신부와 함께 둘이서 산티노에 대한 악령추방 의식을 치르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행해지는 이 의식이 진짜로 겁난다. 랄프는 이 사건 해결 후 경찰을 떠나 다시 믿음을 찾고 멘도사 신부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스캇 데릭슨 감독. R. Screen Gems.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추악한 놈 투코’


흑색이 백색보다 더 강렬하고 어두운 것이 밝은 것보다 더 음모적이며 커브가 직선보다 더 멋있고 죄인이 성인보다 더 구할 것이 많듯이 악인이 선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간 것도 악의 치명적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악의 선을 제친 매력과 유혹은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이런 악의 막강한 위력과 매력 때문에 우리는 선인보다 악인을 더 기억하고 즐기고 또 선호하기까지 한다.
영화에 나온 악인이 선인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릭 골드핑거(게르트 프레뵈)가 제임스 본드(션 코너리)보다 더 흥미 있고 ‘케이프 피어’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변호사 샘(그레고리 펙)의 가족을 위협하는 사이코 맥스(로버트 미첨)의 벌거벗은 야수성에 주눅이 들게 되는 것도 ‘배디’들의 그늘진 매력 때문이다. 
늘 좋은 사람이나 영웅으로만 나오던 헨리 폰다가 냉정한 킬러 프랭크로 나온 ‘옛날 옛적 서부에’에서 그가 검은 모자에 검은 부츠 그리고 검은 옷을 입고 가차 없이 사람을 쏴 죽이던 모습과 사람 간을 안주로 키안티를 즐기던 한니발 렉터(앤소니 합킨스)의 식인에 공포와 함께 가학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도 역시 이들의 악마성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악인은 ‘제3의 사나이’의 해리 라임(오손 웰스)이다. 그는 전후 비엔나에서 물탄 페니실린을 팔아 어린 생명들을 희생시키면서 이득을 챙기고도 후회하지 않는 양심을 잊은 자. 그런데도 안나(알리다 발리)가 이 지적이요 냉소적인 악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검은 구름과도 같은 카리스마 때문일 것이다. 
악한 여자로 나와 영원히 기억될 여자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여자는 아마도 ‘이중배상’에서 보험회사 직원(프레드 맥머리)과 짜고 남편을 살해한 필리스 디트릭슨(바바라 스탠윅)일 것이다. 이에 버금가는 간부가 ‘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에서 젊은 떠돌이(존 가필드)와 짜고 나이 먹은 여관주인 남편을 살해한 젊은 아내 코라(라나 터너)다. 이들은 모두 팜므 파탈로 소위 남자 잡는 여자들이다. 
많은 영화와 연극과 TV에 나왔으면서도 유독 두 번의 악역 때문에 영원한 악인으로 기억될 일라이 월랙이 6월24일 고향인 뉴욕에서 98세로 사망했다. 말론 브랜도, 몬고메리 클리프트 및 폴 뉴만과 함께 엘리아 카잔이 세운 액터스 스튜디오의 창립멤버인 월랙은 무대배우 출신으로 특히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 해석에 뛰어났다. 그는 1951년 윌리엄스의 ‘장미의 문신’으로 토니상을 탔다.
내가 월랙의 간사하고 교활하면서도 미소를 결코 잊지 않는 철저한 악인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존 스터제스가 감독한 웨스턴 ‘황야의 7인’에서였다. 아키라 쿠로사와의 ‘7인의 사무라이’를 미국 판으로 만든 것으로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및 로버트 번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나오는 액션이 콩 튀듯 하는 명작이다. 이런 액션을 엘머 번스틴의 질주하는 듯한 음악이 박력 있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월랙은 여기서 멕시코의 작은 깡촌을 정기적으로 터는 산적 두목으로 나온다. 지저분한 모습의 산적 주제에 비단셔츠를 입고 도금한 앞니를 드러낸 채 여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설교조의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악행을 일과처럼 저질러 더욱 얄미운데도 미워할 수 없는 악인의 매력을 풍긴다. 그래서 그가 끝에 율 브린너의 총에 맞아 죽을 때 섭섭하기까지 했다. 
월랙의 칼베라 역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공연한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 제3편 ‘선인, 악인 그리고 추악한 놈’에서의 추악한 놈 투코 역을 위한 리허설이라고 해도 좋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도 그는 황금에 눈이 먼 멕시칸으로 나와 간악한 목적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킬러로 나온다. 늘 경계심을 못 늦춘채 교활하게 눈알을 굴려가면서 감언이설과 가짜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악역을 즐기는 장난꾸러기 아이 같이 굴다가 갑자기 총을 뽑아 사람을 쏴 죽인다. 이 역 때문에 투코와 월랙은 동명이인이 되다시피 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이색적인 음악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관이다. 탐욕스런 투코가 남군이 숨겨놓은 거액의 군자금을 차지하려고 자기가 ‘블론디’라 부르는 이스트우드를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성가시게 굴자 블론디는 투코를 붙잡아 묘지의 십자가 위에 세운 채 나무에 그의 목을 매단다(사진). 투코는 바둥바둥 몸부림을 치면서 말을 타고 떠나가는 블론디를 향해 “블론디, 블론디”하고 소리치는데 총소리가 “빵”하고 난다.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받은 월랙의 스크린 데뷔작은 카잔이 감독한 윌리엄스의 연극이 원작인 ‘베이비 달’. 그는 여기서 미시시피주의 다소 멍청한 남자(칼 말덴)에게 시집 온 소녀 신부(캐롤 베이커)를 어르듯 하면서 유혹하는 남자로 나왔다. 이 영화는 월랙이 가장 좋아는 영화다. 월랙의 마지막 영화는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릿: 머니 네버 슬립스’(2010)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