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나의 베스트 10

'버드맨'

매년 300여편의 영화를 보지만 가슴을 강렬하게 진동시키는 영화 10편을 고르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잔상을 남기는 것들이 별로 많지가 않다. 할리웃의 메이저들은 예술성보다는 흥행위주의 영화들에 집착하기 때문에 연말 결산 때면 늘 마음이 흡족하다기보다는 어딘가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올해 나의 베스트 10 미국 영화 중 넘버원은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가 만든 ‘버드맨’(Birdman·사진)이다. 한물 간 할리웃 스타(마이클 키튼)가 브로드웨이를 통해 재기를 노리는 블랙 코미디로 도전적이요 파격적이다. 현재 상영중이다.
나머지 9편을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새 출발’(Begin Again) - 음악과 함께 균열된 관계를 재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그린 아름다운 드라마. 마크 러팔로와 키라 나이틀리 주연.
▲‘빅 아이즈’(Big Eyes) - 눈이 큰 아이들의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마가렛 킨(에이미 애담스)의 작품을 자기 것으로 속여 명성과 돈을 차지했던 마가렛의 사기꾼 남편 월터(크리스토프 월츠)의 실화. 알록달록하다. 상영중.
▲‘보이후드’(Boyhood) - 소년의 12년간의 성장과정과 소년과 그의 부모의 관계를 12년 동안에 걸쳐 찍은 리처드 링크레이터 감독의 유려한 작품.
▲‘갈보리’(Calvary) - 남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는 아일랜드 작은 마을 신부(브렌단 글리슨)의 심오하고 우스우며 종교적이요 또 세속적인 다크 코미디 드라마.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The Fault in Our Stars) - 암을 앓는 두 10대 소년과 소녀(앤셀 알고트와 쉐일린 우들리)의 청순한 사랑이 감상적으로 곱다. 클리넥스 한 상자가 필요하다.
▲‘폭스캐처’(Foxcatcher) - 펜실베니아주의 억만장자 존 E. 뒤판트(스티브 카렐)의 미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 살인사건을 다룬 어둡고 긴장감 있는 심리 드라마이자 성격 탐구영화. 상영중.
▲‘미스터 터너’(Mr. Turner) - 19세기 영국의 낭만파 화가 조셉 맥로드 윌리엄 터너(티머시 스팔)의 삶을 얘기한 짙은 물감으로 그린 풍경화와도 같은 150분 짜리 드라마. 터너의 그림과 성격을 탐구했다. 상영중.  
▲‘셀마’(Selma) - 1965년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일어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데이빗 오이엘로)의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한 민권운동을 그린 강력한 드라마. 상영중.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디 레드메인)의 업적과 그의 부인 제인(펠리시티 존스)과의 사랑과 이혼을 그렸다. 이 영화와 역시 영국인으로 2차 대전 때 나치의 암호를 해독한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의 삶을 그린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을 함께 묶는다. 상영중.
이 밖에 웨스 앤더슨 감독의 기발 난 코미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호전적인 이라크전 실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상영중)도 잘 만든 영화다.
다음은 나의 베스트 10 외국어 영화들이다. 넘버 원 ‘윈터 슬리프’ 이후는 알파벳 순이다.
★‘윈터 슬리프’(Winter Sleep) - 터키의 한 시골을 무대로 갈등을 겪는 부부관계와 빈부 그리고 힘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심각한 차이를 고찰한 강력한 196분짜리 작품. 올 칸영화제 대상 수상. 누리 빌지 세일란 감독. 상영중.
▲‘불가항력’(Force Majeure) - 알프스로 스키 휴가를 온 스웨덴의 부르좌 기족이 눈사태를 겪은 뒤 맞는 후유증. 깨어지기 쉬운 부부관계와 남성적인 것의 정체를 묻는 심리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 스웨덴영화. 상영중. ▲‘게트’(Gett) - 남편 동의 없이는 이혼이 안 되는 이스라엘에서 사랑 없는 결혼에 시달리는 여자가 이혼소송을 낸다. 여인의 5년간의 법정투쟁 실화를 다룬 긴장감 있는 드라마. ▲‘이다’(Ida) - 예비수녀가 속세를 완전히 떠나기 전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자신이 유대인임을 알게 되자 집안의 어두운 과거를 캐들어 간다. 폴란드 영화. ▲‘리바이아탄’(Leviathan) - 성경의 욥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러시아 영화. 바렌츠 해안의 땅을 소유한 남자가 이 땅을 노리는 부패한 시장 때문에 생고생을 한다. 31일 개봉. ▲‘레이드 2’(Raid 2)-자카르타 경찰의 부패와 비리를 파헤치면서 아울러 강력한 범죄집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언더커버로 이 집단에 가담한 형사의 액션 영화. 작렬하는 액션이 장관이다. 인도네시아 영화. ▲‘탠저린’(Tangerine) - 1990년대 초. 전화 속 구 소련 조지아의 아브하지아에 있는 탠저린 농장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거부하는 나이 먹은 에스토니안 남자를 통한 평화의 메시지. 에스토니아영화. ▲‘이틀 낮 하루 밤’(Two Days, One Night) - 동료 직원들의 투표로 공장에서 해고된 여근로자(마리옹 코티야르)가 복직을 위해 동료들의 집을 하나씩 방문한다. 벨기에 영화. 상영중. ▲‘우리가 최고’(We Are the Best) - 로큰롤에 심취한 세 명의 10대 초반 소녀들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앙증맞은 덴마크 영화. ▲’와일드 테일즈‘(Wild Tales) - 6편의 기차게 재미있고 엽기적인 단편들로 구성된 아르헨티나영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언브로큰 (Unbroken)

와타나베 포로수용소장은 루이를 목검으로 무차별 구타한다.

인간의 생명력 다룬 전쟁실화“다소 밋밋”


인간의 불굴의 생명력에 관한 전쟁실화. 앤젤리나 졸리의 두 번째 감독 작품으로 훌륭하나 졸리의 고고한 이상을 제대로 다 구현치는 못했다. 졸리는 2011년에도 전쟁의 비인간화를 다룬 ‘인 더 랜드 오브 블러드 앤 허니’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졸리의 의식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었다.
2014년 7월 97세로 사망한 루이스 잠페리니의 2차 대전 태평양전쟁 참전 실화인데 영화 전반은 해상 조난을 그린 ‘파이의 인생’과 ‘올 이즈 로스트’를 연상시키고 후반은 가혹한 ‘콰이강의 다리’를 닮았다.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노리고 나왔는데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서는 완전히 물을 먹었다.
뛰어난 기능인의 솜씨로 별 흠잡을 데 없이 준수하게 만들었으나 47일간의 해상 표류와 2년간의 끔찍한 포로수용소 생활을 그린 영화가 피와 땀이 결여됐다. 졸리의 정열과 드높은 예술정신 그리고 강렬한 영화제작에 대한 의무감이 느껴지기는 하나 극적인 강한 충격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더럽고 냄새 나고 또 거칠고 사납고 내장이 들여다보여 할 영화가 악착같은 근성이 모자라고 말끔히 소독이 된 것 같아서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마치 파도가 잔잔한 태평양 바다처럼 펑퍼짐한 영화다.
그러나 주인공 루이스 잠페리니 역의 잭 오코넬의 뛰어난 연기와 탁월한 촬영과 음악 및 믿기 어려운 생존투쟁 실화인 내용 등 여러 가지로 볼만하다. 이 영화는 일본군을 냉혹한 학대자로 묘사했다고 해서 일본이 졸리에 대한 보이콧운동을 펴려고 한다는 보도와 함께 잔인한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나온 일본의 인기 팝가수 미야비에 대한 자국내 비판도 일고 있다. 원작은 로라 힐렌브랜드의 소설.
1943년 5월27일 일본 기지를 공격하던 미군 폭격기가 태평양에 추락하면서 8명이 죽고 루이스(루이라고 부른다-오코넬의 얼굴표정 연기가 아주 좋다)와 조종사 러셀 앨란 필립스 대위(돔날 글리슨)와 기총사수 프랜시스 맥나마라(핀 위트락) 등 3명만 살아남는다. 여기서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루이의 과거를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주 LA 인근의 토랜스 태생인 루이는 어렸을 때 사고뭉치였으나 달리기를 잘해 고교 육상선수(‘토랜스의 토네이도’라 불렸다)로 발탁되고 이어 베를린 올림픽에도 출전한다. 
셋은 두 개의 구명 래프트에 의존해 기아와 갈증 그리고 태양과 상어 및 일본 제트기의 폭격 등 온갖 악조건을 견디어내면서 구출을 기다리다가 한 달 만에 맥나마라는 숨진다. 그리고 표류 47일 만에 루이와 필립스는 일본군에 의해 발견된다. 별 일도 없는 해양 표류 장면이 너무 길다. 그리고 포로수용소 장면도 길다. 이를 잘라 137분의 상영시간을 줄였어야 한다. 
둘은 여기서 헤어지고 루이는 도쿄의 오모리 연합군 포로수용소(그는 1945년 3월에 나오에추 수용소로 이송된다)에 수감되면서 루이의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악몽이 시작된다. 별명이 ‘새’인 새디스틱한 수용소 소장 미추히로 와타나베(미야비)가 반항정신이 강한 루이를 점찍고 가혹한 학대를 하는데 그는 특히 자기가 들고 다니는 목검을 사용해 루이에게 가차 없는 폭행을 행사한다. 와타나베의 이런 끔찍한 가혹행위는 자기와 비슷한 강한 생명력을 루이에  대한 질투의 표시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내용의 영화가 등급 PG-13이라는 것만 봐도 영화의 온순함을 알 수 있다. Universal.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터뷰 (The Interview)

김정은이 데이브를 소련제 탱크 안으로 초청해 무기를 자랑하고 있다.

‘정치풍자’불구 유치하고 어설픈 코미디


영화를 만든 컬럼비아의 모회사 소니 엔터테인먼트의 컴퓨터 해킹으로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세계적 화제가 된 넌센스 코미디로 연출력이 고르지 못한 어설픈 스케치 코미디식의 작품이다. 물론 우습기는 하지만 어리석고 거칠고 상스럽고 또 음탕하고 유치한데 영화에서 암살의 표적이 되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을 조롱한 만화영화 ‘팀 아메리카: 월드 폴리스’가 이 보다 훨씬 낫다.     
정치풍자 영화의 옷을 입은 영화이지만 그러기엔 수준 미달이다. 그냥 두서없이 늘어놓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한 스케치로 마음대로 자란 아이들 장난질을 보는 것 같다. 섹스와 드럭과 음주와 상소리의 난장판으로 보면서 낄낄대며 웃으면서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블로이드 인기 TV쇼(영화는 이런 쇼에 대핸 조소가 섞인 비판이기도 하다)의 사회자 데이브 스카이라크(제임스 프랭코가 심한 오버액팅을 한다)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쇼의 제작자 아론(세스 로갠-공동 감독에 공동 각본)을 꼬드겨 자기 쇼의 팬인 김정은에게 인터뷰를 청한다. 뜻밖에도 좋다는 회신이 온다. 
데이브는 미디어 사상 전무후무한 단독 인터뷰를 하게 돼 좋아서 길길이 날뛰는데 이 때 CIA의 예쁜 여자 요원 레이시(리지 캐플랜)가 둘을 찾아와 조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김정은을 암살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둘은 이를 수락하는데 레이시가 섹시하지 않았더라면 “노”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평양에 도착한 둘은 시가를 태우는 김정은(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이 체중을 늘리고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을 한 채 아주 잘 하는데 그냥 우스운 연기가 아니라 매우 민감하고 깊이가 있 다)의 융숭한 접대를 받는다. 김정은은 데이브만 개인 주색을 겸한 대마초 파티에 초청하고 또 소련제 탱크 안으로도 안내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데이브와 김정은의 농구장면. 이 장면은 농구광인 김정은의 초청을 두 번이나 받고 평양에 간 데니스 로드맨의 북한 여행을 상기시키는데 아마 그도 데이브와 같은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둘을 돌보는 총책은 겉으로는 세나 안은 따뜻한 도전적인 섹스 덩어리 숙(캐나다의 한국계 다이애나 방이 매운 연기를 잘 한다). 아론이 숙에게 반하는데 숙도 마찬가지.  
그런데 데이브는 자기를 친구처럼 대해주는 김정은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그를 암살할 계획에 대해 주춤하다가 여차 저차 하여 제 정신을 차리고 전 세계적으로 방영되는 김정은 인터뷰에 들어간다. 백두산에서 나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순종 한국산 호랑이도 나온다. 세스 로갠과 에반 골드버그 공동 감독. R. Columbia.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시집 출간한 커크 더글라스

커크 더글라스와 아내 앤.


98세 전설적 수퍼스타, 아내에게 띄우는‘연시’


할리웃의 전설적인 수퍼스타 커크 더글라스가 12월9일 98세가 되었다. 1996년 거의 치명적인 뇌졸중을 일으켜 그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가 있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쇠약한 몸이지만  여전히 강한 생명력과 좋은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베벌리힐스에 아내 앤과 함께 살고 있다. 
더글라스는 최근 시집‘인생은 시’(Life Could Be Verse)를 출판했다. 그의 첫 책은 1988년에 쓴 자서전‘넝마주이의 아들’인데 2012년에는 할리웃의 블랙리스트를 깨는데 앞장 선 뒷얘기를 다룬‘나는 스파르타커스!’를 출판했다.
‘인생은 시’는 사랑과 상실과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에 대한 회고록이자 60년을 함께 해로한 아내 앤에게 바치는 연애편지로 더글라스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더글라스는 1953년 파리에서 자기 영화 ‘사랑의 행위’의 홍보를 맡았던 앤을 만났는데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앤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시 ‘로맨스는 80에 시작하지/난 그것을 알고도 남지/나는 내게 사랑이 그렇다는 것을/ 얘기해 주는 여자와 살고 있지’는 그의 이런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글라스는 1946년 느와르 ‘마사 아이버스의 이상한 사랑’으로 데뷔한 후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챔피언’(1949)과 ‘악인과 미녀’(1952) 그리고 반 고흐로 나온 ‘생의 욕망’(9156) 등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더글라스는 뇌졸중 후에서야 오스카 명예상을 받았다. 한편 그는 2011년 오스카 시상식에 깜짝 시상자로 나왔었다.
더글라스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들로는 ‘에이스 인 더 호울’과 ‘영광의 길’ 및 ‘O.K. 목장의 결투’ 등이 있다. 
더글라스의 생애에 있어 가장 빛나는 일은 1950년대 말 아직도 할리웃에 남아 있던 좌경 영화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파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작과 주연을 겸한 사극 ‘스파르타커스’(1960)의 각본을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달턴 트럼보에게 맡긴 뒤 영화 크레딧에 그의 실명을 정식으로 올렸다. 이를 계기로 할리웃의 블랙리스트가 사라졌다.       
시와 자전적 이야기 그리고 영화와 가족사진으로 짜여진 시집은 더글라스기 낸 책 중에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그는 한 동안 자기가 시를 쓰는 것을 감추었으나 나이 98세에 용기를 얻어 냈다고 한다.                         
더글라스는 대학시절부터 시를 썼는데 세인트 로렌스 대학에 다닐 때 교실의 자기 앞 자리에 앉아 있던 빨강머리의 여학생에게 빨강머리를 찬미하는 시를 써 보내 2년간 데이트를 했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더글라스는 또 자신이 연기뿐 아니라 브로드웨이에서 노래도 부르는 배우로 성공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1944년 뮤지컬 ‘온 더 타운’에 캐스팅됐으나 노래 ‘론리 타운’의 고음에 이르지 못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비록 브로드웨이에는 서지 못했지만 더글라스는 여러 편의 영화에서 콤비를 이룬 버트 랭카스터와 함께 오스카 쇼에 나와 춤추고 노래를 불러 한을 풀었다. 이 밖에도 더글라스는 디즈니의 1954년 작 모험영화 ‘해저 2만리’에서도 ‘웨일 오브 어 테일’을 노래해 잠수함에 동승한 물개의 박수를 받은 바 있다. 
더글라스의 아들 마이클도 오스카상을 받은 제작자이자 배우로 둘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골든 글로브 ‘3강’ 각축



‘버드맨’ ‘보이후드’ ‘이미테이션 게임’ 5~7개 부문 후보 올라


‘버드맨'(Birdman)과 ‘보이후드'(Boyhood) 그리고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이 11일에 발표된 제72회 골든 글로브상 후보 발표에서 여러 부문 부문에서 지명되면서 최종 수상작 경쟁에서 선두에 나서게 됐다.  
한물 간 영화배우의 브로드웨이 재기 시도를 그린 ‘버드맨’은 작품상(코미디/뮤지컬)을 비롯해 감독(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과 주연남우(마이클 키튼) 등 총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가장 많은 지명을 받았다. 
소년의 성장기를 12년간에 걸쳐 찍은 인디영화 ‘보이후드’는 작품(드라마)과 감독상(리처드 링크레이터) 등 총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고 2차 대전 때 독일의 군사용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한 기계를 발명한 영국의 알란 튜링의 실화를 그린 ‘이미테이션 게임’도 역시 작품(드라마)과 주연남우(베네딕 컴버배치) 등 총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작품과 남녀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TV 부문에 대해서도 상을 준다.
상기 3영화가 골든 글로브 각 주요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름에 따라 이들은 오스카상 수상 후보 명단에 오를 것이 분명해졌다. 골든 글로브는 오스카상 후보 선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이밖에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기상천외한 코미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작품과 감독 등 4개)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1965년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그린 ‘셀마'(Selma-작품과 감독과 남우주연 등 4개) 그리고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로 루 게릭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호킹의 삶을 그린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드라마 부문 작품과 남녀주연 등 4개) 및 결혼 5주년이 되는 날 실종된 아내(로자문드 파이크-드라마 부문 주연)를 둘러싼 선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곤 걸'(Gone Girl-감독과 음악 등 4개) 등이 있다.
그런데 ‘셀마’를 감독한 사람은 흑인 여류 에이바 뒤버네이로 흑인 여자감독이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에 이어 2개 이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폭스캐처'(Foxcatcher-드라마 부문 작품, 남우주·조연) *‘빅 아이즈'(Big Eyes-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과 남녀주연) *‘인투 더 우즈'(Into the Woods-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 여우주·조연) *‘애니'(Annie-코미디/뮤지컬 부문 여우주연과 주제가)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과 남우주연).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들 중에서 이색적인 사람은 ‘케익'(Cake)으로 지명된 제니퍼 애니스턴. 이 영화는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 자신은 얼굴을 비롯해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끊임없이 영육으로 고통 하는 여인의 드라마다.
평소 가벼운 코미디나 로맨스 영화 배우로 알려진 애니스턴이 심각한 역을 맡고 상을 노린 영화로 그는 미 배우노조에 의해서도 수상 후보로 올라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역시 드라마 부문에서 ‘스틸 앨리스'(Still Alice)로 주연상 후보로 오른 줄리안 모어는 ‘스타의 집 지도'(Maps to the Stars)로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도 주연상 후보에 올라 2차례나 지명 됐다. 만약에 모어가 상을 두 개 다 타면 이는 골든 글로브 사상 4번째의 기록이다. ‘스틸 앨리스’는 50세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언어학 교수의 드라마이고 ‘스타의 집 지도’는 한물 간 스타의 냉소적인 코미디인데 모어는 이 역으로 5월 칸영화제서 주연상을 탔다. 
영화 ‘세인트 빈센트’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빌 머리도 HBO-TV의 미니 시리즈 ‘올리브 키트리지'(Olive Kitteridge)로 남우조연상 후보로도 올라 2번 호명을 받았다.  
해마다 수상 후보가 발표될 때마다 흥미와 관심을 끄는 것은 어느 영화와 배우가 후보로 지명 됐느냐 하는 것보다 후보에서 탈락된 작품과 배우들이다. 
올해도 그런 이변(?)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 크리스마스에 개봉할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전쟁 실화 ‘언브로큰'(Unbroken)이다. 이 영화는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미 올림픽 육상선수 루이스 잠페리니의 해상 조난 표류와 일본군에 의해 붙잡혀 겪은 고난을 그린 것으로 여러 면에서 오스카상 감이라는 사전 입소문이 나돌았으나 단 한 개의 부문에서도 지명을 못 받아 오스카상 후보에서도 탈락될 지도 모른다.
졸리와 함께 그의 파트너인 브래드 핏이 나온 역시 2차 대전 때 미군 탱크부대의 독일 전선 활동을 그린 ‘퓨리'(Fury)도 완전히 물을 먹었다. HFPA의 달링들인 부부 수퍼스타가 찬밥을 먹었는데 두 영화가 다 평범한 전쟁영화 수준을 못 넘어서고 있다.      
역시 연말에 상을 노리고 개봉되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Exodus: Gods and Kings)과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도 마찬가지다. 12일에 개봉된 리들리 스캇 감독의 모세의 출애굽기를 다룬 ‘엑소더스’와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 저격수(브래들리 쿠퍼)의 실화인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단 한 개의 부문에서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특히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 후보 부문에서 오스카상 감이라는 예견이 나돌았던 영화다. 
이와 함께 수상 후보의 희망이 있었던 호빗 시리즈 마지막 편인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Hobbit: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도 역시 찬물을 마셨다. ’인터스텔라‘는 달랑 음악상 후보 하나에만 올랐다. 그리고 한국 영화 ’해무‘도 외국어 영화 부문 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과거 골든 글로브상은 영화의 질보다 스타 파워에 의존한 작품들을 시상 후보로 선정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2년 전부터 서서히 이런 태도를 벗어나 진짜로 상을 탈만한 예술적으로나 질적으로 훌륭한 영화들을 고르고 있다. 올해 졸리와 핏 부부 그리고 이스트우드와 브래들리 쿠퍼 및 리들리 스캇과 크리스토퍼 놀란 등을 배제한 것도 이런 흐름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골든 글로브 생애 업적상은 조지 클루니가 받는다. 
제7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2015년 1월11일 하오 5시부터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리며 NBC-TV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생중계 된다.                 
★작품(드라마)
*‘보이후드’ ‘폭스캐처’ ‘이미테이션 게임’ ‘셀마’ ‘모든 것의 이론’
★작품상(코미디/뮤지컬)
*‘버드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인투 더 우즈’ ‘프라이드'(Pride) ‘세인트 빈센트’
★남우주연(드라마)
* ‘스티브 카렐(폭스캐처) *베네딕 컴버배치(이미테이션 게임) *제이크 질렌할(나이트크롤러) *데이빗 오이엘로(셀마) *에디 레드메인(모든 것의 이론)
★남우주연(코미디/뮤지컬)
*레이프 화인즈(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마이클 키튼(버드맨) *빌 머리(세인트 벤센트) *화킨 피닉스(인히런트 바이스-Inherent Vice) *크리스토프 월츠(빅 아이즈-Big Eyes)
★여우주연(드라마)
*제니퍼 애니스턴(케이크) *펠리시티 존스(모든 것의 이론) *줄리안 모어(스틸 앨리스) *로자문드 파이크(곤 걸) *리스 위더스푼(와일드-Wild)          
★여우주연(코미디/뮤지컬)
*에이미 애담스(빅 아이즈) *에밀리 블런트(인투 더 우즈) *헬렌 미렌(100후트 여행-The Hundred-Foot Journey) *줄리안 모어(스타의 집 지도) *큐벤자네 월리스(애니)
★감독
*웨스 앤더슨(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에이바 뒤버네이(셀마) *데이빗 핀처(곤 걸)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버드맨) *리처드 링크레이터(보이후드)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미스터 터너 (Mr. Turner)

터너(티머시 스팔)가 해변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빛이 가득찬 풍경화 속 거니는듯 황홀


인상파의 전위 구실을 한 영국의 낭만파 화가로 빛을 뛰어나게 이용한 풍경화 화가 조셉 맬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후반기 삶을 그린 전기영화로 그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섬세하고 수려하다. 짙은 물감으로 그린 화폭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황홀감에 젖게 되는데 150분간 서술되는 영화의 진행속도가 굉장히 느려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정말로 명화다.  
영국의 명장 마이크 리와 그의 영화에 많이 나온 티머시 스팔이 다시 콤비가 되어 만든 영화로 미술과 상업에 관한 연구이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터너의 인물 탐구영화인데 촬영이 그림처럼 유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볼이 두꺼비 배처럼 튀어나온 스팔의 연기다. 불만에 찬 짐승의 속 끓는 소리를 내면서 끙끙 앓는 듯한 연기를 하는데 묵직하고 압축된 연기로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그는 이 영화로 얼마 전 뉴욕 영화비평가 서클에 의해 2014년도 최우수 주연남우로 선정됐다. 
영화는 시각적 이야기꾼인 터너의 마지막 25년을 그리고 있는데 1820년도 후반에서 시작된다. 터너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벨기에에 갔다가 아버지와 충실한 하녀 하나(도로시 앳킨스가 뛰어난 연기를 한다)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재정착한다. 
그런데 하나는 터너의 애인 노릇을 겸한다. 터너에게는 이밖에도 숨겨 놓은 정부 새라(루스 쉰)와 장성한 두 딸 그리고 손주가 있으나 터너는 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터너는 가정보다는 그림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림의 대상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 때나 불쑥 그 곳을 향해 떠나곤 한다.
특히 터너가 좋아한 곳이 영국 남동부의 해변마을 마게이트로 그는 여기서 가명을 쓰고 한 집에 세를 든다. 주인 여자는 두 번이나 이혼한 성격이 활달한 소피아 부스(매리온 베일리도 출중한 연기를 한다). 그리고 소피아는 터너의 마지막 정부가 된다. 
영화의 감정적 중심은 터너와 소피아의 관계. 성질이 고약할 정도로 까다롭고 반사회적인 터너와 마음이 넓고 명랑하고 낙천적인 소피아가 서로 균형을 맞춰가면서 맺는 관계가 아주 아름답고 정성껏 그려진다. 소피아는 터너에게 풍경화가가 필요한 빛 구실을 한다. 
당시 화가들의 꿈은 콧대 높은 기득권을 지닌 화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된 대영제국 미술 아카데미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식 절차인데 이미 유명해진 고집 센 통뼈인 터너는 그런 것에 아랑곳 않는다. 터너가 유명해지면서 그를 질시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터너를 야유하는 풍자화도 나오는데 특히 부르좌들이 터너를 고운 눈으로 보질 않는다. 
터너는 얼마나 성질이 고약한 사람인가 하면 자기 그림을 호평하는 영향력 있는 젊은 비평가 존 러스킨(조슈아 맥과이어)마저 별로 달갑게 여기질 않는다. 때론 심술부리는 아이 같은 독불장군이다.      
영화는 터너의 그림을 많이 보여 주기보다는 그와 그가 살던 시대의 성질과 상황을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터너가 스케치를 하고 캔버스에 페인트로 적신 붓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 명화 감상하고 나온 기분이다. 
R. Sony Classics. 일부지역. ★★★★½(5개 만점)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애니 (Annie)

애니(앞줄 곱슬머리)가 윌(제이미 팍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있다.


신나는 음악과 춤… 가족이 함께 보기에 제격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을 초호화 현대판으로 스크린에 옮긴 할러데이 시즌용 온 가족영화로 춤과 노래와 웃음과 훈훈한 정이 담긴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이다.
‘애니’는 그동안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것이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알버트 피니(대디 와벅스)와 에일린 퀸(애니)이 나온 1982년도 영화. 그러나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받고 흥행도 실패했다.
이번에 나오는 ‘애니’ 역시 비평가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나 기자는 매우 재미있게 즐겼다. 현대 감각에 맞추느라 너무 외모가 요란하고 화사한 점은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음악과 얘기를 적절히 잘 섞은 연출 그리고 흐뭇한 내용에 밝고 명랑한 음악과 춤 등 볼만한 것이 많은 영화로 가족이 함께 가서 보고 즐기기를 권한다.
갓난아기 때 뉴욕의 한 식당 앞에 ‘언젠가 다시 찾아오겠다’는 쪽지와 함께 버려진 애니(큐벤자네 월리스-골든 글로브 코미디/뮤지컬 부문 주연여우상 후보)는 다른 고아들과 함께 허영에 들뜬 심술단지 여자 해니간(캐메론 디애즈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지만 재미있다)이 돌보는 포스터홈에서 산다.
어느 날 애니를 교통사고 직전에 구해 주는 사람이 셀폰 재벌로 뉴욕시장 선거에 나선 윌 색스(제이미 팍스). 윌의 간교한 선거운동 참모 가이(바비 카나베일)가 윌에게 선거 홍보용으로 애니를 집에 갖다 키우라고 권고하면서 애니의 운명이 변하게 된다.
일 밖에 모르는 윌은 처음에는 마지못해 애니를 집에 데려다 돌보나 명랑하고 밝고 총명한 애니에 의해 서서히 닫혔던 마음 문이 열리면서 부녀처럼 된다는 해피 엔딩. 그리고 윌은 사무적으로만 대하던 자기를 사랑하고 돌보는 여부사장 그레이스(로즈 번이 예쁘고 폭스와의 화학작용도 좋다)에게도 사랑을 고백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가이가 꾸민 애니의 가짜 부모 모집 오디션 장면. 배우들이 호흡이 서로 잘 맞는데 뛰어난 것은 월래스의 연기다. 2012년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로 오스카 사상 최연소 수상 후보라는 기록을 남긴 소녀의 밝은 모습과 약간 어른스럽지만 자유자재로운 연기가 일품이다.
배우들이 다 자기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호주 가수 시아가 부르는 주제가 ‘오퍼튜니티’는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신나는 음악과 춤이 있는 마음을 고양시키는 영화다. 윌 글럭 감독. PG. Sony. 전지역. ★★★★(5개 만점)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초상집 소니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평화의 수호자들’에 의한 소니 영화사의 컴퓨터에 대한 해킹의 후유증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수천명 소니 직원들의 소셜시큐리티 번호와 고급 간부들의 봉급 내역 그리고 수퍼스타들의 여행 때 암호명 등이 공개됐고 19일 개봉되는 ‘애니’ 등 총 5편의 영화가 해적질을 당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혹스런 일은 영화사 공동 사장 에이미 패스칼의 이메일 내용이 폭로된 것이다. 그 내용이 공개되면서 영화사와 제작자 및 배우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영화사의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코미디언 애담 샌들러의 작은 불독을 소니사의 전용기에 태울 것이냐는 하찮은 것에서부터 특정 배우 흉보기 그리고 패스칼이 자기는 할리웃 리포터가 연말에 발표하는 연례 ‘100명의 연예계 여성 실권자’ 명단에 3위 안에만 들면 만족하겠다(유감스럽게도 4위에 올랐다)는 소망을 비롯한 가십거리들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큰 화제와 논란거리가 된 것이 패스칼의 오바마에 대한 인종편견적인 농담. 패스칼은 제작자 스캇 루딘과의 서신교환에서 오바마에게 ‘버틀러’와 ‘쟁고 언체인드’ 같은 흑인영화들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어볼 것인가 라고 물었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패스칼과 루딘은 공개사과를 했다.
‘평화의 수호자들’은 처음부터 소니작품으로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예정이었던 김정은 암살을 그린 ‘인터뷰’(사진)의 개봉 중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으나 소니측은 개봉을 강행하기로 했었다. 그러자 ‘평화의 수호자들’은 16일 다시 성명을 내고 이번에는 ‘인터뷰’ 관람객들에 대해 보복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일부 극장체인이 영화 상영을 취소한데 이어 다른 스튜디오들의 압력에 못 견뎌 소니는 두 손을 들고 전격적으로 영화 개봉을 취소했다. 할리웃은 지금 소니측의 이런 결정을 두고 이 것이 과연 앞으로 어떤 전례로 남게 될지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세스 로갠이 감독(공동)하고 제임스 프랭코와 공연하는 이 영화는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된 미 TV 토크쇼의 사회자(프랭코)와 제작자(로갠)에게 CIA가 김정은 암살지령을 내리면서 일어나는 야단스런 코미디다. 거칠고 상스럽고 음탕하고 어리석지만 우스운데 특히 김정은으로 나오는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의 김정은 흉내가 볼만하다.
소니에 대한 해킹의 주원인이 ‘인터뷰’로 밝혀짐에 따라 영화제작에 파란 불을 켜준 패스칼의 판단력이 새삼 검증되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한 국가의 수반을 암살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원수처럼 여기는 북한의 신성불가침적인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을 암살하는 영화를 일본 회사인 소니와 그것의 미국 자회사인 컬럼비아가 만들었으니 그들이 지금 겪는 고통은 자업자득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런데 일본 소니 본사와 패스칼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이같은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과 김정은을 가공국가의 가공인물로 바꾸는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 국토안보부도 컬럼비아에 대해 이 영화로 인해 미국과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더 악화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낸바 있다.      
‘인터뷰’는 끝 부분 클라이맥스에서 헬기에 탄 김정은이 탱크포탄에 맞아 불길에 휩싸여 타 죽는데 이 장면은 원래 장면을 덜 끔찍하게 다시 손질한 것이다. 카주오 히라이 소니 회장이 일본과 북한 간의 긴장관계를 염려해 패스칼에게 가급적 영화에서 정치적 색채와 함께 김정은의 처참한 죽음도 묽게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따른 것이다.
패스칼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 “김정은의 얼굴과 머리털이 불길에 타 녹고 머리가 터지는 장면을 약하고 어둡게 손질했다”고 히라이 회장에게 답신을 보냈다. 히라이 회장은 현재 일본이 북한과 피랍 일본인 송환문제를 협상 중이라는 점과 긴장관계에 있는 두 나라의 지역적 근접성을 거론하면서 패스칼에게 영화 제작과 개봉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이 ‘인터뷰’ 개봉을 놓고 미국에 대한 보복을 선언한 것에 대해 최근 주한 미대사를 지낸 성 김 미 북한문제 특별대표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북한은 그 영화에 집착하기보다 인권과 경제문제에 신경을 쓰기를 바란다”고 성명까지 냈다.
영화 하나를 놓고 미국과 일본이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영화의 막강한 위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 소니가 이번 해킹으로 당한 컴퓨터 체계 복구비가 수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전미 미디어들이 소니의 집안사정을 시시콜콜히 보도하자 견디다 못한 소니 측은 최근 LA타임스를 비롯한 언론매체에 ‘도둑맞아 새어 나간 회사의 정보를 파괴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언론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소니의 이번 불상사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지고 목이 날아갈 사람은 패스칼과 그의 공동 사장인 마이클 린턴이라는 설이 지금 할리웃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한편 ‘평화의 수호자들’은 ‘인터뷰’가 개봉될 예정이었던 크리스마스에 소니에게 큰 선물을 보내겠다고 통보했었다. 과연 소니가 영화 개봉을 취소했는데도 그 선물이 배달 될 것인지 그렇다면 선물 보따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인터뷰’ 랜달 박



“뚱보 김정은 닮기 열흘간 도넛·핫독만 먹어”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코미디‘인터뷰’(The Interview)에서 김정은으로 나오는 미국 태생의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40)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에 있는 한국식당 겐와에서 있었다.‘인터뷰’는 미 TV의 저속한 토크쇼 사회자(제임스 프랭코)와 제작자(세스 로건)가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되자 CIA가 이들에게 김정은 암살 지령을 내리면서 일어나는 야단스런 코미디. 북한이 제작사인 소니가 영화의 개봉을 취소하지 않으면‘결정적이요 무자비한 응징을 받을 것’이라고 공갈을 쳐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저속하고 음탕하고 상스럽고 터무니없지만 웃지 않을 수가 없는데 특히 랜달 박의 김정은 묘사가 일품이다. 그는 역을 위해 체중을 늘렸다. 김정은 역은 영화보다 TV 쇼로 더 잘 알려진 랜달이 영화배우로 큰 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될 영화다. 타이 없는 셔츠 위에 검은 색 정장을 하고 동양인 특유의 상고머리를 한 랜달은 나이보다 어려 보였는데 좌우로 북한의 인공기가 놓인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겸손하게 질문에 답했는데 기자가 그에게 “나도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하자“형님 만나서 반갑습니다”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꾸밈이 없어 친근감이 갔다.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이 역은 내가 나온 영화 중에 가장 큰 역으로 이 자리에 나오게 돼 마음이 심하게 들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의 경력과 가족에 관해 말해 달라.
“나의 부모는 1960년대 한국에서 이 곳에 왔으며 나는 1974년에 여기서 멀지 않은 할리웃 프레스비테리언 병원에서 태어났다. 내가 이 역을 맡게 된 것은 나를 자기 영화에 여러 번 쓴 닉 스톨러 감독이 이 영화의 두 감독인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에게 김정은 역으로 날 꼭 쓰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디션에 나가 역의 대사를 읽었더니 다음 날 역이 주어졌다. 나 말고 다른 배우들은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참 놀라운 일이다.”

-감독이 당신 보고 체중을 늘리라고 했는가.
“원래는 뚱보옷을 입고 하려고 했으나 촬영이 시작되기 10일 전쯤에 카메라 테스트를 한 결과 그것이 어색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두 감독은 내게 10일간 체중을 마음껏 늘리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10일간 도넛과 핫독만 먹었는데 재미있었다. 그런데 체중을 늘리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빼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유머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솔직히 말해 난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일상이 천양지차로 다른 만큼 유머도 그러리라고 본다. 남한의 감각은 폐쇄사회인 북한과 달리 서양화했고 또 미국의 그것과 서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남한 사람들의 유머는 이 곳의 유머와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으리라고 본다. 북한에 대해선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

-한국에 가 봤는가.
“열 살 때쯤 가 봤다. 그 때와 지금의 한국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들었다. 매우 발전하고 현대화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가 갔을 땐 아주 달랐다. 대부분이 막 개발되기 시작하는 시골 같았는데 매우 빨리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결혼했는가.
“내 아내도 배우로 이름은 박재서이고 두 살 난 딸 루비가 있다. 우린 여기서 언덕 하나 넘어에 있는 밸리에 산다.  

-노호(할리웃 북쪽)에 있는 예술인 동네에서 코미디를 한 적이 있는가.
“난 코미디언 생활 12년째로 여러 번 그곳에서 연극과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했다.”

-그렇게 오래 연예인 생활을 했는데 왜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났는가.
“그것은 많은 배우들이 겪는 진보의 과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많은 배우들이 오랫동안 조금씩 경력을 쌓다가 10년쯤 지나면 느닷없이 하룻밤 새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지난 5~6년간 조금씩 조금씩 분주한 경우가 늘어나더니 이 역을 얻게 됐다. 경력을 꾸준히 쌓은 결과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김정은이 시가를 태우며 미 TV 쇼 관계자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갈 만큼 수입도 되는가.
“지난 5~6년간은 연기만으로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가 있었으나 그 전에는 웨이터와 각종 잡일을 해야 먹고 살았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도 광고와 영화와 TV 프로에 단역으로 나오면서 점차 조금씩 보다 큰 역을 맡고 있다. 물론 내게 있어 이 역은 생애 가장 큰 역이다.”

-제임스 프랭코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참으로 흥미 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모두 다 잘한다. 이 영화를 밴쿠버에서 찍을 때도 쉬는 때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고 또 서점에서 자기 책에 서명을 하면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줬다. 그는 참으로 생산적인 사람으로 자기 하는 일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거기에 전력투구를 한다. 아주 배울 점이 많은 사람으로 놀라울 뿐이다.”

-북한이 이 영화 개봉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미국을 박살내겠다고 했는데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을 조롱한 당신은 신변위협을 느끼지 않는가.
“내 안전은 걱정 안 했지만 북한의 그런 반응에 대해 놀랐다. 특히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면서 일찍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놀랐을 뿐이지 크게 우려하진 않았다. 결국 그런 반응이 있으리라고 어느 정도 예측은 했었다. 영화를 위해 북한에 관해 공부한 결과 나온 예측이다. 그러나 난 그들이 코미디를 놓고 국가 정책을 마련할 정도로 돈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두려워할 것 없다.”

-위대한 지도자로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묘안이라도 있는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난 그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아니지만 혹시 당신의 부모는 걱정하지 않았는가.
“내 부모조차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코리아타운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걱정하지 않더라. 그러나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친구들은 걱정들을 했는데 어떤 친구는 전화를 걸어 ‘너 괜찮겠니, 너 어디에 숨어 있니’하고 묻기도 했다. ‘꼭꼭 숨어라’며 걱정들을 하기에 ‘나 괜찮아’라고 안심시켰다.”

-인종에 관계없이 여러 역을 얻을 수가 있다고 보는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내 경력에 비추어 보건데 반반이라고 하겠다. 내가 처음에 연기를 시작했을 땐 대부분의 역이 인종과 연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과 관계없이 여러 역을 맡고 있다. 미 영화계가 그런 면에서 발전했고 또 모든 인종에 대해 문도 점점 더 개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배역을 얻기가 쉬운가.
“내 경우는 기회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나 그것이 모든 아시안 아메리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들에겐 기회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점점 문이 열리면서 원래 아시안 아메리칸을 위한 역이 아닌 것도 그들이 맡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느리지만 문은 열리고 있다고 본다.”

-김정은의 행동과 말투를 모방하려 했는가.
“오디션 통보를 받자마자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나 태도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어 애를 먹었다. 내가 본 것은 전 프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와 김정은의 모습을 찍은 HBO의 ‘바이스’ 프로였다. 그것을 자세히 보면 김정은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오던 로드만을 처음 만나면서 다소 안절부절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도 영화에서 내가 평소 존경하던 데이브(프랭코)를 만날 때 실제 김정은의 그런 태도와 로드만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을 모방했다. 

-그밖에 그 프로에서 또 다른 점을 터득한 것이라도 있는가.
“그 프로에서 얻은 것은 아니지만 난 김정은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최고 권자에 오른 사실과  자신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의 정보를 역에 맞도록 사용했다.”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말을 하며 한국음식을 만들 줄 아는가. 딸에게 한국인의 뿌리를 전수해 주려고 생각하는가.
“내 한국어는 별로 안 좋다. 많이 연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난 내 아내는 한국말이 유창하다. 딸이 한국어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도 딸과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한다.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음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말해 달라.
“영화를 찍는 두 달간 내내 그 헤어스타일을 지녀야 했다. 그래서 영화를 안 찍을 땐 그 끔찍한 모양을 감추기 위해 귀 덮개가 있는 방한모를 늘 쓰고 있어야 했다. 땀이 뻘뻘 날 때도 있었으나 난 결코 모자를 벗지 않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모두들 깔깔대고 웃더라. 특히 내 친구들은 우스워 죽겠다며 즐겼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영 반대다. 영화의 팬이 아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Exodus:Gods and Kings)

모세(왼쪽)와 램지즈가 전투에 출정하고 있다. 가운데가 둘의 아버지 세티 왕.

출애굽 기적 이성적 접근… 밋밋하고 느슨


성경 얘기인데 영혼이 없다. 옛날에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갈랐던 모세 찰턴 헤스턴이 봤다간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다 아는 모세의 출애굽기 액션 모험 드라마인데 특이한 것은 감독 리들리 스캇이 성경 속 신의 역사와 기적을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이 이집트에 내린 10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진 것을 모두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홍해가 갈라진 것은 간만의 차이가 심한 홍해의 지형과 쓰나미 때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대규모의 입체영화로 세트와 의상과 촬영 그리고 컴퓨터 특수효과 등 볼만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영화가 별 재미가 없고 감동과 감정이 모자라 가슴에 와 닿질 않는다. 세실 B. 드밀이 감독하고 헤스턴이 주연한 ‘십계’가 훨씬 낫고 재미도 있다. 
이번 영화의 또 다른 결점은 각기 모세와 그의 이복형제 이집트 왕자 램지즈로 나온 ‘배트맨’ 크리스천 베일과 조엘 에저턴이 모두 미스 캐스팅인데다가 카리스마도 없고 연기도 밋밋하다는 것. 둘에겐 헤스턴과 율 브린너가 보여준 강렬한 연기 대결과 라이벌 의식이 결여돼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안 간다. 이모저모로 맥 빠지는 영화다.                
모세가 커서 램지즈와 함께 전쟁에 나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모세는 램지즈의 생명을 구해 준다. 둘의 아버지인 왕 세티와 여왕으로는 각기 존 투투로와 시고니 위버가 나오는데 이상한 액센트를 써 가면서 우습게 군다. 이들 외에도 여호수와 역의 아론 폴과 유대인 장로 눈 역의 벤 킹슬리 및 모세를 싫어해 그의 정체를 폭로하는 헤겝 역의 벤 멘델손 등 조연진의 역이나 연기도 하찮다.
유대인 신원이 들통이 나 왕이 된 램지즈에 의해 이집트에서 쫓겨난 모세는 방황하다가 한 마을에 도착,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는다. 모세가 신을 만나는 것도 이색적이다. 모세의 신은 소년(아이잭 앤드루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모세는 신의 지시에 따라 동족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모세의 신이 이집트에 내린 10대 재앙 장면. 재앙에 아들을 잃은 램지즈가 유대인들을 풀어주자 모세는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한다. 램지즈가 유대인들을 추격하는데 모세 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는다. 
홍해가 갈라졌다가 이집트 병사들을 수장하고 다시 합해지는 장면이 장관이다. 영화는 여기서 끝났어야 하는데 쓸데없이 뒷얘기를 장광설로 늘어놓으면서 상영시간이 무려 150분. 지루하다. ‘글래디에이터’로 오스카상을 탄 스캇 감독의 야심작인데 야심의 중압감에 눌렸는지 연출력이 신통치 못하다. 그리고 대사도 유치한 것들이 많다. 기독교도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PG-13.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히런트 바이스 (Inherent Vice)

닥(왼쪽)이 배우가 되려는 부패형사 빅후트와 대화하고 있다.

분위기 있고 선정적이지만 스토리는 ‘몽롱’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영화인데도 무드 하나만은 죽여준다. 마리화나를 흡연하면서 보거나 스카치 한두어 잔 마신 뒤 몽롱한 기분으로 봐야 딱 좋을 영화로 한 번 보고 이해하는 사람은 존경할 만하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처럼 세상에 지치고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아 술과 담배로 권태를 달래는 전형적인 필름느와르의 사립탐정이 주인공인 영화로 이런 영화의 필수품인 남자 잡는 팜므파탈로 나오는 비교적 신인인 캐서린 워터스톤(명배우 샘 워터스톤의 딸)이 선정적이다.
특이한 영화를 만드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부기 나잇’ ‘매그놀리아’ ‘매스터’)의 괴이하기 짝이 없는 영화로 너무 쿨해서 탈인데 원작은 토머스 핀천의 소설.
1970년(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남가주 해변의 방갈로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히피 출신의 사립탐정 닥(화킨 피닉스)에게 느닷없이 달아났던 젊은 연인 샤스타(워터스톤)가 찾아온다. 샤스타가 한다는 소리가 자기 애인으로 부동산 재벌인 유부남 믹키(에릭 로버츠)의 부인이 남편을 자기 애인과 함께 납치해 정신병원에 가둘 계획을 짰으니 거기에 동조하라고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곤 샤스타와 믹키가 모두 사라진다. 
이 때부터 닥이 사건을 파헤쳐 가는데 그 과정에서 서퍼와 치과의사(마틴 쇼트)와 색서폰 연주자(오웬 윌슨) 등 온갖 군상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감나무에 연줄 얽히듯이 얽힌다. 닥이 접촉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빅후트라 불리는 부패한 형사(조쉬 브롤린이 연기 잘 한다). 자기 얘기를 영화나 TV용으로 팔아먹으려는 배우 지망생 빅후트와 닥은 서로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상대로 걸맞지 않는 친구라고 하겠는데 둘의 악연과도 같은 콤비가 찰떡궁합이다.
영화에서 기차게 선정적인 장면은 카우치에 발가벗고 앉은 샤스타가 굼벵이 담 넘어가듯이 천천히 말을 하면서 맨발로 자기 옆에 옷을 입고 앉은 닥의 은밀한 부분을 애무하는 장면.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먹어치우려는 나체의 육감적인 뱀과도 같다. 
베네시오 델 토로, 제나 말론, 마야 루돌프, 리스 위더스푼(검사 역) 등 앙상블 캐스트가 나와 화면을 부평초처럼 떠다니는데 잠깐이나 다들 잘 한다. 촬영과 음악도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데 ‘수키야키’를 비롯한 여러 팝송들을 적절히 잘 쓰고 있다. 뛰어난 것은 구레나룻을 한 피닉스의 축 처진 연기. 2시간반짜리 얘기가 전체적으로 아귀가 잘 맞진 않지만 희한한 영화다. R. WB. 일부 지역. ★★★1/2(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LAFCA의 베스트



텍사스에서 활동하는 독립영화 감독 리처드 링크레이터가 만든 ‘보이후드’(Boyhood·사진)가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2014년도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됐다. 기자가 속한 LAFCA는 7일 이 영화를 최우수 작품으로 뽑은 것 외에도 여자주연(패트리샤 아켓)과 감독 및 편집 부문에서도 베스트로 선정, ‘보이후드’는 4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보이후드’는 텍사스에 사는 소년의 12년간의 성장과정과 그를 키우는 부모(이산 호크와 패트리샤 아켓)와의 관계를 그린 아름다운 드라마로 12년간에 걸쳐 찍었다.  
이 영화는 뉴욕 영화비평가서클(NYFCC)과 보스턴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서도 올해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돼 내년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를 것은 떼 놓은 당상이 됐다. NYFCC는 또 ‘보이후드’의 아켓을 최우수 조연여우로 그리고 링크레이터를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 최우수 작품과 함께 3관왕이 됐다.  
LAFCA와 NYFCC는 서로 라이벌로 매년 각 부문에서 서로 다른 베스트를 뽑곤 하는데 올해는 무려 6개 부문에서 같은 베스트를 뽑는 이변(?)을 낳았다. ‘보이후드’를 작품과 감독 부문에서 각기 베스트로 뽑은 것 외에도 최우수 각본으로는 웨스 앤더슨(감독 겸)이 쓴 기괴할 정도로 독특한 코미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을 그리고 ‘윕래쉬’(Whiplash)에서 독재적인 재즈 전문학교 음악선생으로 나온 J.K. 시몬스를 최우수 조연남우로 각기 선정했다. 한편 LAFCA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최우수 프로덕션 작품으로도 뽑았다.
이 밖에도 두 단체는 20세기 공산 정권 하의 폴란드의 예비 수녀와 그의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그린 흑백영화 ‘이다’(Ida)를 최우수 외국어 영화로 그리고 미 국가안보위의 정보를 폭로한 뒤 러시아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인터뷰한 ‘시티즌 포’(Citizen Four)를 최우수 기록영화로 각기 뽑았다.
LAFCA는 최우수 주연남우로는 영국 영화 ‘로크’(Locke)에서 자신의 직업과 결혼생활이 파괴 될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건축공사 매니저로 나온 탐 하디를 뽑았다. 하디가 혼자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차를 몰면서 독백하다시피 하는 영화로 본 사람이 별로 없을 영화다.
LAFCA는 또 최우수 조연여우로는 뜻밖에도 ‘이다’에서 예비수녀의 삶에 지친 아주머니로 나온 아가타 쿠레사를 그리고 최우수 촬영작품으로는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가 감독하고 마이클 키튼이 주연한 ‘버드맨’(Birdman)을 각기 선정했다.
또 최우수 만화영화로는 일본 만화영화의 명장 하야오 미야자키의 영화사가 만든 손으로 그린 ‘카구야 공주의 이야기’(The Tale of the Princess Kaguya)를 그리고 신세대상 수상자로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앨라배마주 셀마에서의 민권운동을 그린 ‘셀마’(Selma)를 감독한 에이바 뒤버네이를 각기 선정했다.
그리고 최우수 음악작품으로는 화킨 피닉스 주연의 필름느와르 ‘인히런트 바이스’(Inherent Vice)와 스칼렛 조핸슨이 주연한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이 공동으로 선정됐다. 한편 생애 업적상 수상자로는 배우이자 인디 감독이었던 작고한 남편 존 캐사베이티즈(‘더티 더즌’)의 영화 ‘우먼 언더 디 인플루언스’와 ‘글로리아’ 등 총 10편에 주연한 연기파 제나 롤랜즈(84)가 선정됐다.
그런데 롤랜즈가 플로리다의 부자 은퇴마을에 사는 여자로 나와 젊은 남자 게이 댄스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우는 코미디 드라마 ‘6주간 6번 댄스교습’(Six Dance Lessons in Six Weeks)이 현재 상영 중이다.
LAFCA는 각 부문의 차석도 발표하는 것이 특징인데 다음은 그들의 명단이다.
▲작품-‘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웨스 앤더슨(‘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주연남우-마이클 키튼(‘버드맨’) ▲주연여우-줄리안 모어(‘스틸 앨리스’) ▲조연남우-에드워드 노턴(‘버드맨’) ▲조연여우-르네 루소(‘나이트크롤러’) ▲각본-‘버드맨’ ▲기록영화-‘라이프 잇셀프’(Life Itself-작고한 영화비평가 로저 이버트의 삶) ▲편집-‘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로덕션 디자인-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Snowpiercer) ▲만화영화-‘레고 무비’(The Lego Movie) ▲촬영-마이크 리 감독의 ‘미스터 터너’(Mr. Turner) ▲외국어 영화-터키 영화 ‘윈터 슬리프’(Winter Sleep).
LAFCA와 NYFCC는 아카데미가 주는 오스카상이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상과는 달리 가급적 흥행성 있는 영화들을 배제하고 예술성이 뚜렷한 작품을 선호해 두 협회가 뽑은 베스트들 특히 최우수 작품이 오스카나 골든 글로브상을 타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 LAFCA의 2014년도 각 부문 베스트에 대한 시상만찬은 2015년 1월10일 센추리시티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케익’ 제니퍼 애니스턴



“유머야 말로 고통스런 삶에 가장 좋은 처방”


2015년 1월에 개봉될 드라마‘케익’(Cake)에서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채 영육으로 고통하는 이혼녀 클레어로 나오는 제니퍼 애니스턴(45)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애니스턴은 탄력 있는 몸에서 윤기가 났는데 갈색 긴 머리로 가린 얼굴이 예뻤다. 아주 명랑하고 재치가 넘쳤는데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면서 솔직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나 가벼운 드라마로 잘 알려진 애니스턴이 시상시즌을 맞아 심각한 배우로 인정받고자 시도한 작품인데 이 날도 영화 속 인물처럼 짙은 화장도 안 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어떻게 이 영화에 나왔는가.
“매니저로부터 각본을 받아 읽으면서 강한 충격을 받고 클레어 역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을 따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그리고 감독 대니얼 반즈를 만나 역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으며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당신은 평소 명랑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이 같은 고통스런 역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는가.
“배우란 어떤 고통스런 역도 할 수 있는 무기를 지녔다. 단지 그것을 정직하게 해내는 것이 문제다. 난 평소 클레어처럼 세상에서 고립돼 매우 어둡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 자신에서 탈피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역을 한다는 것은 배우로선 꿈과도 같은 일이다.”

-당신은 평소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유머로 대처한다. 난 각본을 읽으면서 클레어가 고통 속에서도 신랄한 유머를 지닌 여자로 느껴 깔깔대고 웃었다. 고통과 정반대인 유머야 말로 고통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이다.”

-감사의 계절이다. 당신은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가.
“모든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감사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온 것에 감사한다.”

-당신은 분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분노를 느낄 때마다 잠시 멈춘다. 난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무엇이 당신을 뿔나게 하는가.
“거짓말쟁이와 꾸민 이야기 따위들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케익을 만드는데 좋아하는 케익은 무엇인가.
클레어는 교통사고 후 영육이 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홍당무 케익이다.”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보내는가.
“지금이야 말로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낼 때다. 난 손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용 장식을 만들어 선물로 친구들에게 보낸다.”

-실제 삶에서도 클레어처럼 귀중한 사람을 잃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 가까운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었다. 다시는 그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손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감독과 제작자이기도 한데 연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난 질서와 상호교통을 좋아한다. 배우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나 같으면 이 장면을 다르게 찍을 텐데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또 나 같으면 얘기를 다르게 서술할 텐데 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자기 비전을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다.”

-당신은 갈수록 젊어지는데 피부에서 광채마저 난다. 비결이 무엇인가.
“물을 많이 마시고 잠을 잘 자며 야채를 비롯해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인의 피를 물려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당신의 약혼자인 배우 저스틴 테루가 과거 당신의 애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정직하고 친절하며 관대하며 깊은 동정심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일에 열광하며 짓궂은 유머감각이 넘쳐흐른다.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다. 그는 나의 최고의 친구다”

-결혼할 생각인가.
“그럴 계획이나 서두를 것은 없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 결혼할 때가 오면 내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통보할 것이다.”

-아이를 가질 생각인가. 
“그렇다.”

-새 해가 다가오는데 연초에 한 해 할 일에 대해 결심이라도 하는가.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것을 결심하지 않는다. 새 해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기대치 못한 일들이다.”

-당신의 인기 TV 프로 ‘프렌즈’에서 공연한 배우들과 계속해 교분을 나누는가.
“그들은 나의 영원한 친구들이다. 그 10년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따라서 그들은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우린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 그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한다. 나와 코트니 칵스와 리사 쿠드로는 함께 자란 가족 같아서 정기적으로 만나 저녁을 먹는다.”

-당신은 누구로부터 영감을 얻는가.
“내 친구들인 여배우들이다. 그 중 하나는 셜리 맥클레인이다.”

-당신은 코미디 ‘호러블 보스 2’에도 나왔는데 당신은 어떤 보스인가.
“난 아주 좋은 보스다. 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공평한 보스다.”

-역을 위해 어떤 연구를 했는가.
“보트사고로 다리가 절단 난 친구가 있다. 그는 스턴트우먼으로 30차례 이상 수술을 했을 것이고 또 진통제 약물에도 중독됐다. 그의 얘기를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를 통해 끊임없이 고통하는 사람에 대해 다소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약물에 관해 의사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우리가 진실로 확실히 하고자 원한 것은 어떻게 하면 클레어의 얘기를 솔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당신의 ‘몬스터즈 볼’(할리 베리의 오스카 주연상 수상작)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극히 감동적이요,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비유다. 그 영화는 정말로 훌륭한 영화다.”

-곧 개봉될 당신의 다음 영화 ‘쉬즈 퍼니 댓 웨이’는 어떤 영화인가.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감독한 코미디로 콜걸의 인생을 바꾸어주려고 노력하는 브로드웨이 감독의 얘기인데 난 잠깐 나왔다 사라진다. 주연은 오웬 윌슨과 캐스린 한이다.”

-당신은 역을 위해 체중을 늘렸는가.
“2달간 운동하지 않고 먹기만 한 결과다. 특별히 그래야겠다고 결정해서 된 일이 아니고 난 원래 운동을 안 하면 살이 찐다. 10파운드가 늘었는데 쉽게 빠지질 않는다.”

-당신과 저스틴 테루는 모두 배우로서 바쁜데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우리는 취미가 서로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서 또 직업인으로서 존경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와일드 (Wild)

배낭을 진 쉐릴(리스 위더스푼)이 1,100마일의 산행길에 나서고 있다.

1,100마일 산행을 통해 육체와 영혼의 힐링…


산행은 육체적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쇠약한 영혼의 건강마저 회복시켜 준다. 방탕하고 방향감각을 잃은 젊은 여자가 무작정 길고 긴 산행에 나서면서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인간승리의 아찔한 이야기다.
생전 산행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쉐릴 스트레이드가 26세에 매우 가깝던 어머니를 잃은 뒤 멕시코 국경지대서부터 오리건에 이르기까지 1,100마일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달랑 배낭 하나 지고 혼자 걸은 사실을 적은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모험영화이자 개인의 영혼 구제 얘기이면서 아울러 가족 드라마이기도 한데 가슴을 에이 듯 사실적이자 거칠고 고통스러우면서도 험난한 역경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려는 한 인간의 강인한 정신력에 희망과 환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 간간이 유머가 곁들여져 힘든 여정에 쉼표 구실을 하는데 특히 영육을 완전히 탈바꿈한 리스 위더스푼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영화는 쉐릴(위더스푼)이 산행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작되면서 중간 중간 플래시백으로 그의 개인생활과 어머니 바비(로라 던)와의 관계가 묘사된다. 첫 장면부터 쉐릴이 겪어야 하는 좌절감이 사실 그대로 발톱 빠지듯이 아프게 그려지면서 쉐릴이 내뱉는 “Xuck you”가 산중에 메아리친다.
이어 플래시백으로 쉐릴과 바비와의 가까웠던 관계와 함께 쉐릴의 방종한 개인생활과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남편(토머스 새도스키)과의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이 묘사되면서 쉐릴의 산행 선택의 배경 설명을 한다.
바비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혼자 딸을 키우면서도 삶의 희열에 가득 찬 여자인데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던 바비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면서 쉐릴은 완전히 삶의 방향타를 잃는다. 그리고 쉐릴은 탈출구가 없는 따분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헤로인과 난잡한 섹스로 날을 보낸다.
쉐릴은 바비가 숨진 뒤 거의 즉흥적으로 산행을 결심하는데 등산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그가 모텔 방에서 산행준비를 하는 과정이 웃긴다. 그리고 이윽고 바비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도전으로 산행에 나선다.
그런 결정을 후회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쉐릴은 걷고 또 걷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여자 예수 같다. 산행 중에 갖가지 짐승과 악천후 또 짐승처럼 겁나는 인간도 만나면서 위험한 지경에도 빠지지만 쉐릴은 이를 악물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가 겪는 악조건과 고행이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위더스푼의 모든 것을 벗어던진 도전적이자 통절한 연기 탓이다(뉴욕에서 검문하는 경찰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한 경박함을 뉘우치려는 듯이).
쉐릴의 인간성 회복의 갈망이 남의 것처럼 여겨지지 않아 가슴에 훈기가 감도는데 위더스푼의 연기(오스카상 후보감이다)와 함께 던의 생기발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연기도 아주 좋다. 뜨거운 사막과 장엄한 산을 비롯해 다양한 경치를 찍은 촬영도 좋다. 다소 에피소드 식이어서 맥이 끊어지고 조금만 더 거칠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훌륭한 영화다. 감독은 올해 오스카 남자 주·조연상을 탄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을 만든 캐나다인 장-마르크 발레. R.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와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앨리스(줄리안 모어)가 기억상실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걸린 언어학자의 의연한 삶


50세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언어학자 앨리스는 비록 자기가 사랑하는 언어들을 급속히 잃어버리지만 여전히 앨리스다. 불치의 병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용감하게 수용하는 앨리스를 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을 그와 함께 느끼게 되는데 영화가 결코 감상적이거나 심적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순전히 앨리스 역의 줄리안 모어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고 아름다운 연기 때문이다. 절대적 통제력을 행사하는 감탄할 연기로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자가 이 질병의 공포와 막강한 파괴력에 가족과 함께 대응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50세의 뉴요커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 앨리스 하울랜드(모어). 앨리스는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 존(알렉 볼드윈)과 장성한 세 남매 애나(케이트 보스워드)와 탐(헌터 패리쉬)과 LA에 사는 배우 지망생인 리디아(크리스튼 스튜어트)를 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앨리스가 갑자기 강의를 하면서 단어를 잊어버리고 또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앨리스는 처음에는 이를 숨기다가 상태가 악화하자 남편과 함께 의사를 찾아 간다. 진단은 50세의 사람에게는 극히 드문 경우인 알츠하이머병. 의사는 이 병이 유전된 것이라며 세 자녀가 이 병에 걸릴 확률이 50%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리고 검사 결과 셋 중 하나가 양성반응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앨리스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병에 대해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고통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의연히 이에 대처하면서 삶을 진행해 가는 과정과 그의 가족의 단결된  사랑을 차분하고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질병에 관한 영화인데도 전연 감상적이거나 볼썽사납지가 않은 것은 두 감독 리처드 글래처와 워쉬 웨스트모어랜드(베스트셀러를 공동 각색)의 신중하고 착 가라 앉은 연출과 모어의 확실하면서도 빈 틈 없는 연기 탓이다. 그의 얼굴 표정과 자기 처지와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동작 그리고 내면의 지도를 섬세하게 그려 표현한 연기는 경이로울 정도다.
참담하고 어두운 내용이나 절망을 허락지 않으면서 유머마저 곁들였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행동을 이렇게 처연히 아름다우면서도 유머가 있게 그린 영화는 처음 봤다. 앨리스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컴퓨터에 남겨 놓은 자살지침을 이행하려는 장면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회의에 연사로 참석해 하는 연설도 심금을 울린다. PG-13.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1/2(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행진은 계속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1965년 3월21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해 민권운동가들 및 지지자들과 함께 닷새에 걸쳐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까지 행진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2014년 11월29일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부터 제퍼슨시티 주지사 관저까지 7일간의 120마일에 걸친 ‘정의를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이 행진은 퍼거슨의 백인경관 대럴 윌슨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총기 살해사건을 계기로 백인 경관들의 흑인들에 대한 공권력 남용을 항의하는 걸음이다. NAACP의 행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행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은데 이야 말로 역사의 반추라고 하겠다.
흑인이 대통령이 됐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흑백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 문제인데 최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미국 경찰의 흑인 등 소수 인종 민족을 상대로 한 과잉대응 등을 지적하는 공식 보고서를 채택했을 정도다.
오바마는 최근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경찰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은 삼가고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셀마-몬고메리 행진에 관한 드라마 ‘셀마’(Selma)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말했듯이 “당신은 민권운동가이지만 나는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셀마’는 절묘하게 현실과 타이밍을 맞춰 나온다. 난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야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하면서 참담한 기운에 젖었었다. 그리고 도대체 인종차별 문제는 그동안 과연 얼마나 또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고 궁금해 했다.
퍼거슨시는 뒤늦게 흑인 경관을 더 많이 고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 남부에 뿌리 깊이 박힌 흑백차별 관념이 그것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이 번 퍼거슨-제퍼슨시티 행진에 관한 반응을 보니 많은 백인들이 행진자들을 ‘깡패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여서 웨스턴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총 잘 쏘는 사람이 영웅이다. 존 웨인이 그 대표적 인물로 보통 이들은 정의 구현자들이다. 대럴 윌슨도 자신을 정의 구현자라고 생각했음직한 데 웨스턴의 영웅들은 윌슨과는 달리 총 없는 사람은 쏴 죽이지 않았다.
나는 이번 퍼거슨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정의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었다. 결국 정의란 힘 센 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니 늘 골탕을 먹는 것이 소위 소수계들이다.
브래드 핏과 오프라 윈프리(출연 검) 등이 제작한 ‘셀마’(사진)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동지들과 함께 셀마-몬고메리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행진 그리고 그의 사적 생활을 고루 균형 있게 그린 감동적인 영화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영혼이 고양되는 스릴과 감격을 느끼게 된다.
미국은 1964년에 남부의 흑백 차별을 철폐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앨라배마 같은 주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온갖 방해공작과 탄압으로 유권자 등록을 못해 투표를 할 수가 없었다. ‘셀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고 흑인들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매우 지적이요 날카롭고 민감하게 서술한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의 영국 배우 데이빗 오이엘로의 연기다. 그는 생긴 것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많이 닮았는데 엄숙하고 무게 있는 민권운동가이자 개인적 문제와 자아 회의에 고뇌하는 사적 인물의 서로 다른 면을 빼어나게 보여준다.
흑인 여류 에이바 뒤버네이가 유연한 솜씨로 연출한 영화에서 충격적이요 참혹한 장면은 셀마-몬고메리 행진의 첫 번째 시도를 저지하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 행진자들이 셀마의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에 이르렀을 때 기마경관을 비롯한 경찰의 행진자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행사를 보면서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이를 ‘블러디 선데이’라고 부른다.
이 진압과정이 TV로 생중계 되면서 행진에 성직자들을 비롯한 많은 백인들이 동참하게 되고 결국 행렬은 몬고메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존슨 대통령은 그 해 흑인 투표권 법안에 서명한다.
마틴 루터 킹이 주 청사 앞에서 하는 연설 “하우 롱, 낫 롱”(‘우리들의 하나님은 행군한다!’ 라고도 부른다)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까닭은 아직도 이 땅에 인종차별이 생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홍해를 가르고 유대인들을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모세처럼 보였다. 오이엘로 외에도 존슨 역의 탐 윌킨슨, 조지 월래스 앨라배마 주지사 역의 팀 로스 그리고 코레타 스캇 킹 역의 카르멘 에조그 등 조연진의 연기도 훌륭하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반세기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들은 도대체 언제나 배울 것인가.”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타계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지상의 삶 졸업하고‘전설이 된 예술가’

 오스카·에미·토니·그래미 모두 수상 기록
‘졸업’‘버드케이지’등 무수한 명작들 남겨


니콜스는 독일서 유대계 러시안 아버지와 유대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7세 때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받고 자랐다.
니콜스는 16세 때 데이트 상대와 함께 브로드웨이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의대를 가기로 했던 생각을 바꿨다. 그 뒤로 다니던 시카고의 대학교 연극에 나왔고 뉴욕의 리 스트라스버그 연기학원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니콜스의 이름이 연예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1950년대 말부터 여류 코미디언 일레인 메이와 팀을 이뤄 스케치 코미디를 공연하면서였다. 둘의 공연은 무대와 TV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둘은 1960년대 초 해산했다. 둘은 이 쇼로 그래미상을 탔다. 
이어 니콜스는 연극계에 데뷔 첫 작품으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맨발로 공원을’을 연출했다. 닐 사이먼이 쓴 이 연극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빅히트를 했고 니콜스는 1964년 첫 토니상을 탔다.
니콜스의 첫 영화는 에드워드 앨비의 연극이 원작인 흑백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1966).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움을 하는 중년부부로 나온 이 영화는 테일러의 오스카 주연상과 샌디 데니스의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이어 만든 영화가 찰스 웹의 소설이 원작으로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졸업’(1967). 원래 호프만 역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니콜스가 과감히 당시만 해도 무명씨였던 호프만을 기용해 호평과 함께 빅히트를 했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성격파 배우인 호프만의 기용은 그 후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성격파 배우들이 할리웃의 빅 무비에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방향을 못 찾고 빈둥거리는 캘리포니아의 중상층 청년이 자기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의 아내인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의 섹스놀이개로 지내다가 로빈슨의 대학생 딸(캐서린 로스)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으로 ‘플래스틱이라는 말을 미 대중문화의 사전에 올린 영화다. 
영화에서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한 ‘미시즈 로빈슨’과 ‘스카보로 페어’ 및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등이 효과적으로 사용돼 음반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니콜스는 이 영화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았다.
니콜스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자주 브로드웨이로 돌아가 많은 명작들을 감독했다. 모두 닐 사이먼의 대본이 원작인 ‘아드 커플’(1965)과 ‘플라자 스위트’(1968) 및 ‘2번가의 포로’(1972)로 토니상을 탔다. 이밖에도 ‘리얼 싱’(1984)과 뮤지컬 ‘스패마랏’(2005)으로 역시 토니상을 받았다. 니콜스가 마지막으로 토니상을 탄 연극은 올해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나온 ‘세일즈맨의 죽음’(2012)이다.  
니콜스는 많은 TV 명작도 남겼는데 2001년에는 HBO 영화 ‘위트’와 역시 HBO의 미니 시리즈 ‘미국의 천사들’로 에미상을 탔다. 
생애 모두 22편의 영화를 만든 니콜스의 대표작들로는 ‘카날 날리지’ ‘실크우드’ ‘워킹 걸’ 및 ‘버드케이지’ 등이 있다. 그의 흥행 실패작으로는 오손 웰즈가 나온 ‘캐치-22’와 ‘포천’ 및 ‘어느 혹성서 왔소?’ 등이 있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탐 행스가 나온 ‘찰리 윌슨의 전쟁’(2007)이다. 
나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니콜스를 인터뷰 했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당신의 어렸을 때의 어려운 경험이 당신을 이토록 성공시킨 창조적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고 물었었다. 
이에 대해 니콜스는 “어려운 환경 속의 어린 피난민이었던 나는 새 나라 미국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호기심과 능력을 가졌던 같다”면서 “심지어 나는 사람들의 생각마저 들을 줄 아는 강력한 예술 감각을 지녔었던 것으로 안다”고 대답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이 자기가 고안한 암호해독기 앞에 서 있다.

나치 패망에 공헌한 천재 동성애자 이야기


2차 대전 때 나치의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군사용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를 발명해 종전을 앞당기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긴 영국의 천재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의 삶을 다룬 준수한 전기 드라마다. 
오만한 천재 튜링은 동성애자였는데 (그리고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나치 패망의 원동력이 된 ‘에니그마’ 해독기를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적 기호 때문에 경찰에 체포됐고 그 후 자살했다. 2009년 당시 영국 수상이던 고든 브라운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에 튜링을 사면했다.
영화는 튜링이 극비로 구성된 동료들과 함께 암호를 풀 기계를 고안하는 과정과 그의 개인적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매우 짜임새가 좋고 내용도 재미있고 연기도 좋으며 모양새도 반듯하나 영화가 일종의 전쟁영화 치고는 너무 말끔해 보통 잘 만든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영화가 너무 현대적인 것도 결점이긴 하지만 매우 지적이며 오락적이요 흥미 있는 작품으로 볼만하다.
오만불손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의 튜링은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줄 아는 탁월한 두뇌를 지닌 천재. 그는 나치가 매일 새로 바꿔 자국 해군에 보낸 암호에 따라 공격을 받고 영국과 연합군의 선박들이 무참하게 수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극비리에 조직된 암호 해독팀에 합류한다. 6명으로 구성된 팀은 모두 수학과 체스의 천재들.
고전 스타일의 지휘관 데니스턴(찰스 댄스)이 총괄하고 체스 챔피언 휴 알렉잰더(매투 굿)가 리드하는 팀은 처음부터 무례하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튜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튜링이 지나치게 독단적인 행동을 하자 데니스턴은 그를 해고하나 튜링은 처칠에게 편지를 써 물질적 재정적 지원의 약속을 받아낸다.
팀의 리더가 된 튜링은 통상적인 수단으로 해독하려면 수십년이 걸리는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여러 개의 디스크와 손잡이들이 있는 기계를 조립하는데 이것이 컴퓨터의 원조다. 
이 팀에 유일한 여자인 조운 클라크(키라 나이틀리)가 참여하면서 영화에 감정적 깊이를 주는데 튜링은 유독 조운과만 다정하게 지낸다. 그리고 튜링은 자신의 성적 기호를 아는 조운의 종용에 따라 이 여자와 형식적인 결혼을 한다. 
영화는 많은 시간을 보통 사람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전문용어들을 사용하면서 팀이 암호 해독기를 고안하는 과정에 할애하는데 일반 관객이 좀 이해하기 쉽게 이 부분을 다뤘어야 했다. 여하튼 팀은 2년이 훨씬 지나서야 마침내 해독기를 완성하는데 런던의 정보부 MI6의 국장 스튜어트 멘지시(마크 스트롱)의 지시에 따라 이를 극비에 부친다. 
그리고 나치가 눈치 못 채도록 독일 함정에 대한 공격도 선발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튜링이 고안한 인공두뇌인 기계는 나치의 공격을 받는 연합국 선박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신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카리스마 있는 컴버배치의 연기다. 그는 BBC의 TV 시리즈 ‘셜록 홈즈’에서도 천재적인 현대판 탐정 역을 멋있게 해내는데 여기서도 지와 감정을 겸비한 사람의 내적·외적 면모를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가 동성애자로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또 아파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감독은 노르웨이 태생의 모르텐 틸둠.
PG-13. Weinstein.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5개 만점)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호러블 보스 2 (Horrible Bosses 2)

사장 아들 렉스(오른쪽)가 데일(왼쪽부터), 커트, 닉에게 가짜 납치극을 설명하고 있다.

억지 웃음 강요하는 낡고 엉성한 코미디


2011년에 나와 빅 히트를 한 고약한 사장들에게 시달리는 세 명의 어수룩한 봉급쟁이의 시련과 역습을 다룬 코미디의 속편으로 옛 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신선감이 모자란다. 웃기긴 하지만 자연스런 웃음이라기보다 강제된 웃음이라고 해야 옳겠는데 반복되는 플롯을 에피소드 식으로 늘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초호화 조연진의 모습과 연기. 갱스터 지망생의 제이미 팍스, 상소리를 내뱉는 투옥 중인 케빈 스페이시, 섹스광 치과의사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간악한 사장과 그의 겉멋 들린 아들로 나오는 크리스토프 월츠 및 크리스 파인 등이 엉성한 영화를 빛내준다.
멍청이라 부를 만한 3인조 닉(제이슨 베이트맨)과 셋 중에 제일 멍청한 데일(찰리 데이) 및 커트(제이슨 서디키스)는 비누와 샴푸와 컨디셔너를 동시에 분사하는 ‘샤워 버디’를 발명한 뒤 물주를 찾는다.
이들이 찾아간 사람이 우편주문 캐털로그사의 간교한 사장 버트(월츠). 버트는 이들에게 샤워버디 10만개를 살 테니 만들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3인은 은행서 50만달러를 융자하고 오합지졸 같은 직원들을 뽑아 주문량을 완성한다.
그런데 교활한 버트가 이들을 파산시키기 위해 주문을 취소하면서 닉과 그의 동지는 큰 일이 났다.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아이디어가 버트의 으스대는 아들 렉스(파인)을 납치해 몸값을 받자는 것.
그래서 납치 아닌 납치를 하는데 렉스가 오히려 자기 아버지를 사기 칠 계획을 마련한 뒤 닉 일행에게 협조해 돈을 나눠 먹자고 꼬득인다. 이에 세 멍청이가 마지못해 범행에 참여하면서 온갖 해프닝이 일어난다. 그런데 렉스는 진짜 나쁜 놈이다.    
닉과 그의 친구들은 렉스를 납치하기 전에 흑인 동네의 딘(팍스)과 살인죄로 복역중인 닉의 전직 사장 데이브(스페이시)를 찾아가 범행에 쓸 물건을 구하고 또 자문을 구하는데 이 부분이 웃긴다.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부분 부분은 웃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짜임새가 전연 없는 넌센스다. 션 앤더스 감독. R. New Line. 전지역. ★★½(5개 만점)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흑과 백



둘 다 흑인인 덴젤 워싱턴과 오프라 윈프리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워싱턴에게 “당신은 인종차별을 불치의 병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에 “그렇다”면서 “아마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 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는 윈프리에게는 “당신은 흑백차별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윈프리는 정색을 하면서 “아니다. 그것은 교육에 달린 문제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나는 윈프리와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인종차별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동물적인 반응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거부반응은 관용과 인내와 인간성 그리고 사랑과 연민 또 윈프리의 말처럼 교육으로 휴면시키는 수밖에 없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퍼거슨시의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격 사망케 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퍼거슨을 비롯해 전미 대도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면서 약탈행위도 자행되고 있다. TV로 이를 보면서 4.29폭동이 생각났다.
그 때 사우스LA의 한인 가게들이 흑인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다가 애꿎게 흑인들의 분풀이 상대가 된 한인 가게가 나오는 영화가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고 주연도 한 ‘똑바로 살아’(Do the Right Thing·1989)이다.
뜨거운 여름 브룩클린의 흑인 동네에서 일어나는 인종갈등을 그린 화끈한 영화로 난동 흑인이 한인 가게에 들어가 마구 기물을 파괴한다. 난 언젠가 리를 인터뷰했을 때 그에게 이 장면에 대해 물었더니 리는 “어, 그 거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면서 “어쨌든 미안하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미국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때부터 있어 왔다. D.W. 그리피스의 걸작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1915)도 흑인 박해 단체인 KKK를 찬양해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또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가수’(Jazz Singer·1927)에서는 백인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노래를 불러 구설수에 올랐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의 흑인 하녀들인 매미와 프리시가 하잘 것 없거나 맹하게 묘사돼 흑인차별 영화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미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때문에 라나 터너가 주연한 영화 ‘인생의 모방’(Imitation of Life·1959)에서는 흑인 가정부의 백색 피부를 지닌 딸(수전 코너)이 어머니를 외면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대성통곡을 한다. 또 ‘핑키’(Pinky·1949)에서도 하얀 피부 때문에 백인 행세를 하던 젊은 여인 핑키(진 크레인)가 고향인 남부에 돌아왔다가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고 고향에 봉사하기 위해 정착한다.
내가 어렸을 때 본 영화로 백인의 흑인에 대한 혐오에 혀를 찬 것이 한국전 영화 ‘모든 젊은 남자들’(All the Young Men·1960)이다. 인종차별주의자인 미군 하사관 킨케이드(앨란 래드)가 적의 탱크에 팔이 깔려 절단되면서 수술을 받는다.
이 때 킨케이드에게 수혈을 해주는 전우가 킨케이드가 증오하는 흑인 하사관 에디(시드니 포이티에)다. 에디의 피가 킨케이드의 혈관 내로 들어가면서 흑백통합이 이뤄진다.
영화 ‘흑과 백’(The Defiant Ones· 1958)에서는 흑인을 사갈시 하던 탈옥수 존(토니 커티스)이 쇠사슬에 매인 수갑으로 서로 연결된 흑인 노아(시드니 포이티에)와 같이 숨이 턱에 차도록 도주를 하다가 노아의 인간성에 감복, 흑인에 대한 증오감을 저버리게 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긴장감 있고 훌륭한 연기를 볼 수 있는 드라마다.
포이티에는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탄 배우로 여러 편의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에 나왔다. 그 중에서도 역시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이 공연한 ‘초대 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은 흑백문제를 다룬 명화들 중의 하나다.
백인 처녀(캐서린 휴턴-헵번의 실제 질녀)가 약혼자인 흑인 변호사(포이티에)를 처음으로 부모에게 소개시키는 드라마로 당시만 해도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흑백 결혼이 불법이어서 큰 화제가 됐었다. 트레이시의 유작으로 그의 마지막 인간성에 대한 긴 대사는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2015년 1월에 나올 ‘흑이냐 백이냐’(Black or White·사진)도 흑백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준수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다. 태어났을 때부터 흑인 손녀를 혼자 키워온 외조부(케빈 코스너)가 갑자기 손녀의 흑인 친할머니(옥테이비아 스펜서)로부터 손녀 양육권에 대해 소송을 당하면서 흑백문제가 야기되는 좋은 얘기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퓨리’ 브래드 핏



“난 언제나 본능에 따라 사는 게 생활지침”


현재 상영 중인‘퓨리’에서 1945년 4월 2차 대전 종전 직전 독일전선에 투입된 미군의 셔만탱크를 4명의 전우들과 함께 몰고 독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고참상사 단‘워 대디’ 칼리어로 나온 브래드 핏(50)과의 인터뷰가 뉴욕에서 있었다.“늦어 미안하다”며 보무당당하게 인터뷰장에 들어선 콧수염을 한 핏은 작은 모자에 엷은 갈색 선글라스를 썼는데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였다. 씩씩한 청년 같았는데 제스처와 함께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농담을 섞어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영화에서 당신의 전우들로 나온 배우들과의 관계는 어땠는가.
“데이빗 에이어 감독은 우리를 급박한 상황에 넣어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배우도록 했다. 영화를 찍는 3개월 동안 우리는 맹훈련을 해 탄탄한 동아리로 뭉쳤다. 각기 성격과 배경이 다른 우리는 일종의 찢어진 가족으로 전쟁의 정신적 타격과 전쟁의 공포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지도자여서 내 약점을 전우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당신은 여기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미군으로 나와 독일군을 때려잡는데 ‘인글로리어스 배스타즈’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당신의 전쟁영화다. 당신과 독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독일어 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나는 독일 미술의 열렬한 팬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한 이념에 매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화는 인간의 공포에 흠집을 내는 전쟁의 충격을 다루고 있다. 난 독일어를 좋아하는데 부드럽게 말할 땐 아주 아름다워 고운 음악 같다.”

―2차 대전 참전 군인들의 자문을 받았는지.
“벌지 전투에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에 의하면 독일 탱크가 우리 것보다 성능이 월등했다고 한다. 그들의 포탄은 우리 탱크를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래서 우리 탱크 병사들이 많이 전사했는데 많은 군인들이 탱크 안에서 소사했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과 2차 대전과 어떤 상관관계라도 있다고 보는가.
“그것에 대한 명답은 모르겠다. 그 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전쟁명분이 뚜렷했던 반면 지금은 그것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여하튼 나는 이 영화처럼 탱크부대를 자세히 묘사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잠수함 전투를 그린 독일 영화 ‘보트’의 탱크판이라고 하겠다. 나는 영화를 찍는 동안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책은 독일 보병의 얘기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얘기와 너무나 같다는데 놀랐다.”
‘워 대디’(앞줄 왼쪽)가 이끄는 미군 탱크가 적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당신이 유럽에서 이 영화를 찍을 때 당신의 부인 앤젤리나는 호주에서 또 다른 전쟁영화를 찍으면서 서로 사랑의 편지를 교환했다고 들었는데.
“우린 동시에 일하지 않는데 이번엔 스케줄이 잘 못돼 나는 유럽에서 앤젤리나는 태평양에서 일하게 됐다(연말에 개봉될 태평양전쟁 실화인 ‘언브로큰’을 감독). 그래서 우리는 옛날에 군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듯이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편지를 교환했다.”

―얼마 전의 결혼을 축하한다. 그 후로 뭐 변한 것이라도 있는가.
“이제 진짜로 결혼한 남자처럼 느껴진다. 우린 이미 아이가 여섯이나 있어서 결혼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가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혼 후 그것이 단지 하나의 축하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언약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시상시즌에 앤젤리나의 영화와 경쟁을 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영화는 종종 내 친구들의 것과 상을 놓고 경쟁을 하는 수가 있었다. 그것은 나로서나 내 친구로서나 다 축하할 일이다. 앤젤리나의 영화는 엄청난 난관을 이겨낸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것으로 규모가 크고 매우 훌륭하다. 우린 서로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나는 앤젤리나가 모든 상을 다 타기를 바란다.”              

―당신과 앤젤리나는 어떻게 서로 스케줄을 조절하는가.
“언제나 누군가는 아이들과 같이 있도록 번갈아가면서 일하도록 짠다. 내가 배우로 일할 때는 앤젤리나가 감독으로 일하는 식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 아이들을 반씩 나눠 돌보면서 시간이 나면 서로 방문하는 식으로 보냈는데 시간 짜기가 쉽질 않았다.”     

―당신은 제작자이기도 한데 제작자와 배우가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이며 감독도 하겠는가.
“감독은 시간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일이어서 다른 할 일이 많은 나로선 할 생각이 없다.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고 싶다. 제작자로선 뭔가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난 내 견해와 취향에 맞는 얘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주관이 뚜렷하다.”     
―당신은 지금 아내가 감독하고 공연도 하는 영화 ‘바이 더 시’(By the Sea)에 나오고 있는데 아내는 세트에서 어떤 주인 노릇을 하는가.
“엄청나게 엄격하다. 유럽을 무대로 슬픔을 다루는 부부에 관한 아름답고 우아하며 또 내밀한 얘기다. 굉장히 도전적인 작품이다. 아내가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결혼 14년에 접어든 부부의 미래에 대한 회의와 그들 주변 사람들에 관한 매우 고상한 얘기다.”

―어렸을 때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는가.
“우리는 언제나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 시간이야 말로 각자의 느낌과 하루의 일을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다른 모든 가족처럼 어쩌다 식탁에 모여 다툴 때가 있었다.”

―앤젤리니와 함께 한국에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앤젤리나의 ‘언브로큰’ 스케줄을 몰라 함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난 가려고 한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다시 그 곳에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11월 중순 쯤이 될 것 같다.”

―당신은 이제 50세인데 25세 때 당신이 생각한 50세의 당신은 어떤 모습이며 지금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감을 느끼는가.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고 또 나의 아이들과 아내로부터 무엇을 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있다. 난 5년 또는 10년 앞을 계획하고 살지는 않는다. 난 언제나 본능에 따라 살았고 또 그것을 믿는다. 그것이 나의 생활 지침입니다.”

―당신은 지난해에 오스카 작품상(12년 노예생활)을 탔고 앤젤리나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는데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아내가 훈장 받은 것 정말로 훈훈한 일이다.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왕실 접견을 했는데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여왕 폐하’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당신 아내보다 12살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확히 말해 11살 반이다. 그러나 우린 다 같은 성숙한 나이다. 그것이 우리 부부간 조화의 비결이다. 우린 전연 다른 점을 못 느낀다. 난 언제라도 젊음과 지혜를 바꿀 용의가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직 거기까진 안 생각했지만 일을 잠시 접어놓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 

―밀폐된 탱크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탱크 안은 사실 평화로웠다. 마치 수영장 물에 머리를 담근 기분이었다. 비록 냄새가 나는 좁은 공간 안에 다섯 명이 비비고 앉아 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사흘이 지나니 아주 편하더라. 마치 자궁 안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탱크 안에 들어가 저녁에 나올 때도 있었는데 점심도 그 안에서 먹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당신의 연기를 연마하는가. 영화를 보는가.
“영화를 본다. 각본을 읽고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화 출연에 마음을 안 둔다. 일단 출연을 정하면 준비를 하는데 준비야 말로 모든 것이다.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은 연기와 진짜로 좋은 연기의 차가 난다. 그래서 나는 역을 위해 연구하고 조사하기를 부단히 한다.”   

―앞으로 더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영화인과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동반자로서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열망을 이루고 싶다.”

―배우로서 어떻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기능과 재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난 요즘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개발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소모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배우란 자기 기능을 부단히 연마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가 있다.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도 같은데 난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면 이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몰두하곤 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헝거 게임: 목킹제이 제1부’ (Hunger Games: Mockingjay Part 1)

캐트니스(제니퍼 로렌스·앞)와 게일(리암 헴스워드)이 캐피톨의 공습을 피해 도주하고 있다.

“캐트니스,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주오”


 3부작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만든 빅히트작의 제3편으로 ‘해리 포터’와 ‘트와일라이트’ 시리즈 마지막 편이 둘로 나뉘어 만들어졌듯이 이것도 제1부와 제2부로 갈라서 만들었다. 시리즈 종결편인 제2부는 내년 11월에 개봉되는데 돈벌이가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영화사(이 영화는 Lionsgate가 배급)의 탐욕이 관객을 우롱하는 행패다.
‘헝거 게임’은 골수팬들이나 즐길 영화로 시리즈를 계속 따라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한 올스타 캐스트가 나오는데다가 모양새도 좋고 액션과 드라마를 고루 섞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나 제2부를 위한 2시간짜리 예고편 같은데 생명력이나 살아 숨 쉬는 기운이 결여돼 그냥 손상된 곳 없이 만들어진 물품 같다.
제2편은 주인공인 캐트니스 에버딘(로렌스)에 의해 헝거 게임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끝난다. 제3편의 제1부는 억눌린 자들의 혁명 봉기를 고취시키는 역을 맡은 일종의 잔 다크로 나오는 캐트니스의 혁명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캐트니스가 캐피톨의 독재자 스노(도널드 서덜랜드)의 공격을 피해 지하 깊숙이 콘크리트 벙커를 만들어 사는 피압박자들의 본거지로 혁명의 온상인 디스트릭 13에서 충격과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스노의 지배하에 있는 파넴의 한 부분인 디스트릭 13의 대통령은 알마 코인(줄리안 모어). 
알마의 목표는 캐트니스를 캐피톨을 전복시킬 혁명의 지도자가 되도록 설득시키는 것. 알마와 함께 캐트니스를 설득하는 사람들은 스노를 배신한 헝거 게임 고안자 플루타크(필립 시모어 하프만-영화를 올해 마약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그에게 헌정했다)와 컴퓨터 귀재 비티(제프리 라이트). 
이들은 캐피톨을 뒤엎을 혁명을 학수고대하는 디스트릭 13의 주민들을 위해 캐트니스가 지도자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나 캐트니스는 처음에 이를 거절한다. 이런 캐트니스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이 죽은 줄 알았던 사랑하는 피타(조쉬 허처슨)의 TV 방송 인터뷰. 그런데 캐피톨의 포로가 된 피타는 방송을 통해 디스트릭 13 주민들에게 봉기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세뇌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캐트니스는 피타의 이런 말에 실망을 하지만 그를 구하겠다는 일념과 자기가 살던 디스트릭 12가 캐피톨의 공격을 받고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피난민들이 된 참혹한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이런 캐트니스의 옆을 바짝 따르는 남자가 캐트니스의 충실한 친구 게일(리암 헴스워드). 
그리고 알마는 캐트니스의 일거수일투족을 크레시다(나탈리 도머)가 이끄는 4인조 비디오카메라 촬영팀으로 하여금 영상으로 담게 한 뒤 이를 파넴 전체 주민들의 혁명분위기 고취용으로 쓴다. 우디 해럴슨과 엘리자베스 뱅스가 전편에 이어 다시 나온다. 배우들의 연기를 거론할 그런 영화는 아니다.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천’은 터키다

캡션 추가

27일은 매사에 감사하면서 터키고기를 먹는 추수감사절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 산지 30년이 넘는데도 아직까지도 터키고기가 별로다. 먹긴 먹는데 그레이비 맛에 먹는다고 하겠다.
이런 터키고기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영화계서 흥행에 참패한 영화를 터키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부터 형편없는 연극이나 영화를 터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터키는 미련하기 때문이라고.
터키고기 먹으면서 구경할 만한(?) 할리웃 역사에 길이 남을 터키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먼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인천’(1982·사진)은 한국인들에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터키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장군으로 주연하고 토시로 미후네, 재클린 비셋 그리고 이낙훈과 남궁원이 공연했는데 혹평과 함께 흥행서도 망 했다.
통일교 돈으로 만들어 말이 많았는데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영화촬영차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에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어쩌자고 셰익스피어의 대가가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그러나 터키 중 터키로 영화사를 들어먹은 영화는 ‘디어 헌터’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Heaven’s Gate·1980)이다. 1880년 와이오밍주의 존슨카운티에서 일어난 유럽서 이민 온 농부들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돈과 권력을 쥔 목축업자들 간의 결전을 그린 웨스턴이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크리스토퍼 월큰 및 이자벨 위페르 등 호화 캐스트의 영화는 제작비 및 제작기간 초과로 화제가 됐었는데 완성된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219분.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악평을 듣고 며칠 만에 극장서 거둬들인 뒤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내놓았지만 비평가나 관객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유나이티드 아티스츠(UA)의 모회사인 투자보험회사 트랜스 아메리카는 UA를 MGM에게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 후 ‘천국의 문’은 지금까지 흥행 참패 영화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나는 219분짜리로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몇년 전에 한 파티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중이던 치미노를 만났을 때 그에게 “나는 ‘천국의 문’을 좋게 봤다”고 말했더니 치미노는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었다.
영화사상 최악의 캐스팅 영화라는 오명을 지닌 것이 ‘정복자’(The Conqueror·1956)다. 존 웨인이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오고 내가 좋아하던 빨강머리의 수전 헤이워드가 타타르족 공주로 나오는 해괴망측한 액션 사극이다.
하워드 휴즈가 제작한 영화는 네바다주의 핵폭탄 실험장소에서 가까운 유타주의 세인트로지에서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출연 배우들인 웨인과 헤이워드 및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그리고 감독 딕 파웰이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워렌 베이티와 더스틴 호프만이 공연한 코미디 ‘이쉬타’(Ishtar·1987)도 역사적인 터키다. 돈 벌어 보겠다고 모로코에 온 서푼짜리 라운지 가수들의 얘기로 베이티와 호프만의 연기가 가관이다. 5,5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4만3,700달러를 벌었다.
오리가 터키가 된 영화가 만화가 원작인 ‘오리 하워드’(Howard the Duck·1986)다. 무지무지하게 재미없고 엉성한 영화로 가혹한 평을 받아 주연 리아 탐슨 등 출연 배우들의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인천’처럼 종교단체가 만들어 구설수에 올랐다가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한 영화가 ‘배틀필드 어스’(Battlefield Earth·2000). 사이언톨로지 창시자 L. 론 허바드의 책을 원작으로 사이언톨로지의 신봉자인 존 트라볼타가 나온 공상과학 영화로 나는 영화를 보다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원초적 본능’을 만든 폴 베어호벤 감독이 연출한 ‘쇼걸즈’(Showgirls·1995)도 야한 터키다. 베가스 쇼걸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인데 본의 아니게 우습다. 혹평을 받아 주연 엘리자베스 버클리의 연기생활이 석양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스타들이 역 선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시 연인 사이였던 제니퍼 로페스와 벤 애플렉이 공연한 ‘질리’(Gigli·2003)는 하마터면 둘의 생애를 망쳐 놓을 뻔했던 악화다. 제작비 5,400만달러에 수입은 고작 600만달러. 버클리와 달리 ‘쇼걸즈’보다 더 나쁜 터키에 나오고도 정정한 여배우가 할리 베리다. 베리는 목불인견의 영화 ‘캣우먼’(Catwoman·2004)에 나와 공연히 몸을 비비 꼬아대 그 해 ‘래지’ 여우주연상을 탔다.
‘래지’(Razzies) 상은 해마다 오스카 시상식 전날 한 해 최악의 작품과 감독 그리고 배우 등에게 주는 상. 이상을 탄 배우들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패리스 힐튼 및 에디 머피 등이 있고 B급 배우 로널드 레이건은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할리웃 터키의 원조는 ‘글렌 또는 글렌다’(Glen or Glenda·1953)와  ‘외계로부터 온 플랜 9’(Plan 9 from outer Space·1959)을 감독한 에드 우드 주니어다. 돈도 재능도 없었던 그의 영화는 아이들의 홈무비 수준이다. 우드 주니어의 얘기는 팀 버튼이 감독하고 자니 뎁이 주연한 ‘에드 우드’(Ed Wood·1994)에서 재미있게 재현됐다. 해피 댕스기빙!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타이론 파워 탄생 100주년

 ‘카스틸의 캡튼’. 여배우는 진 피터스.

잘 생긴 게 ‘핸디캡’... ‘진지한 배우 꿈’ 못 이루고 44세에 요절


할리웃에서 잘 생긴 얼굴 때문에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 못 받고 또 통속적인 오락영화에만 나와야 했던 대표적인 배우가 할리웃 황금기의 수퍼스타 타이론 파워였다. 6피트 키에 새카만 눈썹과 깊고 큰 눈 그리고 코끝이 약간 도드라진 절세 미남이자 매력 만점인 파워하면 대뜸 떠오르는 영화가 스와시버클러인 칼싸움 영화다. 그의 많은 스와시버클러 중에서도 가장 유명 것은 아마도‘조로의 마크’(The Mark of Zorro·1940)일 것이다. 여기서 조로로 나오는 파워가 사악한 라이벌 바질 래스본과 칼부림을 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칼싸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파워는 22세 때 영국의 보험회사에 관한 드라마인 ‘런던의 로이즈’(Lloyd’s of London·1936)에 나오면서 대뜸 할리웃의 스타로 부상했는데 이 영화의 프리미어 후 6개월이 채 안 돼 차이니스극장 앞 콘크리트에 손과 발자국을 남겼다.
1939년에 이르러 그는 미키 루니에 이어 두 번째로 흥행성적이 좋은 남자 배우로 부상했는데 이 해 나온 그의 두 영화로 웨스턴인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멜로드라마 ‘비가 내렸다’(The Rains Came)는 그 해 최고 흥행성적 4위권 안에 들었다.
그러나 연극계서 활동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워는 스타로서만 만족 못하고 진지한 배우로 인정  받으려고 노력했으나 당시 배우를 전속으로 계약한 뒤 회사 마음대로 사용하던 스튜디오 체제 때문에 제대로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파워는 생전 배우가 되기 훨씬 이전에 스타가 된 사람이다.
파워는 1914년 5월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출생해 1958년 11월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44세로 요절했다.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공연하던 ‘솔로몬과 시바’(Solomon and Sheba)를 촬영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파워의 대타로 율 브린너가 솔로몬으로 나왔다.
올 해로 파워 출생 100주년을 맞아 할리웃 뮤지엄(1660 노스 하일랜드)에서는 ‘타이론 파워: 남자, 신화 & 영화 우상’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연말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는 파워의 개인적 및 영화인으로서의 삶과 세 번의 결혼과 세 명의 자녀에 관한 자료를 비롯해 그가 나온 영화들의 각종 기념물 등 총 40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품들 중에는 파워가 투우사로 나온 ‘혈과 사’(Blood and Sand·1941)의 의상과 다른 영화들의 로비 카드와 포스터와 프레스킷과 책자 및 영화음악의 악보와 각본들이 선보인다.
이와 함께 14일에는 반스달 갤러리 극장(4800 할리웃·전화번호 323-644-6275)에서는 파워가 나온 뮤지컬 ‘알렉잰더의 랙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1938)를 그리고 15일에는 그의 또 다른 명작 스와시버클러 ‘카스틸의 캡튼’(Captain from Castile·1947)이 각기 상영된다. 또 15일 오전에는 할리웃의 할리웃 포레버 장지에 있는 파워의 무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다. 
전문가들은 파워가 진지한 배우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를 그가 너무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워도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진지하고 심각한 역을 맡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의 전속사인 폭스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워는 2차 대전에 해병으로 근무한 뒤 제대해 할리웃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칼싸움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폭스사 사장에게 “5편 이상의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올 테니 대신 내가 원하는 영화에도 나오게 해 달라”고 간청, 뛰어난 느와르 영화 ‘악몽의 골목길’(Nightmare’s Alley·1947)에 나왔다. 
여기서 파워는 순회곡예단의 손님 끄는 남자로 나와 마음을 읽는 여자와 짜고 목적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훌륭한 연기를 한다. 그러나 폭스는 이 영화를 위해 선전도 하지 않고 일찍 극장에서 철시를 한 뒤 ‘카스틸의 캡튼’을 예정보다 빨리 개봉했다. 
파워가 나온 또 다른 훌륭한 드라마로는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검사 측 증언’(Witness of the Prosecution·1957)과 진 티어니와 공연한 서머셋 모음의 소설이 원작인 ‘면도날’(Razor’s Edge·1946)이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폭스캐처 USA(Foxcatcher USA)

마크(채닝 테이텀·왼쪽)가 존(스티브 카렐)으로부터 레슬링 지도를 받고 있다.

긴장… 갈등… 마치 스릴러 같은 레슬링 영화


1996년에 발생한 펜실베니아주의 억만장자 존 E. 뒤판트의 미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 데이브 슐츠 살인사건을 다룬 단단히 조여진 어둡고 긴장감 가득한 심리드라마이자 성격탐구 영화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지녔다.
묵직한 영화로 내용과 연기와 연출 그리고 촬영 등 여러 부문에서 상감인데 특히 볼만한 것은 코미디언 스티브 카렐과 별로 무거운 역을 하지 않았던 테이텀 채닝의 극적인 변용. 둘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 보여주는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둘 다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인 데이브와 그의 동생 마크 그리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존의 삼각관계를 다루었는데 상영시간이 134분인데도 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해괴한 얘기를 심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바짝 조인 베넷 밀러 감독(‘카포티’ ‘머니볼’-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의 완숙되고 튼튼한 연출력 때문에 무슨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한기마저 느끼게 된다.
둘 다 1984년 LA 올림픽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브(마크 러팔로)와 마크(테이텀)는 형제.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데이브는 자신들의 부모가 이혼한 뒤로 동생 마크를 돌봤는데 둘은 형제애가 돈독하면서도 침울한 성격의 마크는 늘 형의 그림자를 못 벗어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 있다.
데이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코치로서 마크와 맹훈련에 들어가는데 영화는 둘의 레슬링 장면을 통해 형제간의 사랑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펜실베니아의 밸리포지에 대규모 저택과 경마용 녹초지 폭스캐처를 소유한 존(카렐)에게서 마크에게 초청장이 날아든다.
폭스캐처에 있는 자신의 체육관에서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 훈련 중인 레슬링 팀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이에 마크는 데이브에게 함께 가자고 종용하나 아내(시에나 밀러)와 어린 두 아이가 있는 가정적인 데이브는 집을 떠날 수 없다고 사양한다.
마크가 혼자 폭스캐처에 도착하면서 존의 영접을 받는다. 존으로 분장한 카렐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커다란 가짜 코에 눈썹이 거의 없는 창백한 색깔의 얼굴을 한 존은 마치 인조인간처럼 괴이하고 병적인 모습. 게다가 이상한 억양으로 말까지 느리게 해 보고 있자니 기분이 으스스하다.
존은 일종의 과대망상증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성취해야 만족하는 이고 투성이의 인간으로 마크와 팀을 가혹하게 훈련시킨다. 그리고 팀의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마크에게 데이브를 코치로서 폭스캐처로 오게 하라고 보챈다. 이에 데이브가 가족과 함께 폭스캐처로 이사 오면서 3인 간에 깊은 관계가 맺어진다.
그러나 다시 형의 후광에 자신이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마크는 개인적으로 선수로서 타락의 길을 걷는데 데이브는 이런 동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려고 모진 애를 쓴다. 여기에 존이 데이브를 무시하고 팀의 코치 노릇을 자처하면서 존과 데이브의 관계에 갈등이 인다. 마크를 비롯한 폭스캐처 팀은 존을 코치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나 메달권에서 밀려났다.
연기들이 모두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것은 카렐의 연기. 완전히 자신의 생애를 뒤바꾸어 놓을 경탄할 연기로 살아 있는 괴물을 보는 것 같다. 
R. Sony Classics. 랜드마크(310 -470-0492),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888- AMC-4FUN)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홈스맨(Homesman)

조지(왼쪽)가 메리 비에게 험한 여정에 대해 훈시를 하고 있다.

‘다시 동부로’여성들의 거친 여정 담은 이색 웨스턴


2005년 웨스턴 ‘멜퀴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 타미 리 존스의 두 번째 감독작품으로 그가 주연도 한 이색적인 웨스턴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척시대 서부정착에 실패하고 동부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그린 영화로 서부 광야처럼 거칠고 에누리 없이 각박하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환경 속에 인간적인 면을 강조해 오히려 훈기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영화는 서부개척 시대의 여자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웨스턴 ‘서부로 가는 여자들’(Westward the Womanㆍ1951)을 연상케 한다. 비록 ‘홈스맨’의 여자들은 서부를 떠나 동부로 가고 있긴 하지만.
네브래스카주에서 농장을 일궈 성공한 신심과 정의감이 강한 31세의 노처녀 메리 비 커디(힐라리 스왱크)는 열심히 남편감을 물색하나 누구도 줏대가 센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 메리의 이웃들인 세 여자가 혹독한 서부환경에 지쳐 정신이상자들이 된다. 아라벨라(그레이스 거머-메릴 스트립의 딸)는 장질부사로 세 아이를 잃었고 테올린(미란다 오토)은 갓난아기를 변기통에 내던졌고 그로(손자 릭터)는 귀신에 씌었다. 
동네 목사(존 리트가우)의 주선으로 아이오와주의 목사 부인(메릴 스트립)이 이들을 받아주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들을 아이오와주까지 데리고 갈 남자가 없다는 점. 미친 여자들 수송을 자원한 사람이 메리 비. 
메리 비는 미친 여자들을 태운 마차를 몰고 길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탈영병이자 타인 명의의 광구횡령자로 목에 밧줄이 감긴 채 말에 앉아 있는 조지 브릭스(타미 리 존스)를 만난다. 그리고 조지를 살려주는 대신 그가 아이오와까지 함께 간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서부 광야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로드 무비’로 여기서부터 아이오와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가 지 에피소드로 꾸며진다. 이 부분에서 전형적인 웨스턴의 내용을 과감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어 기시감이 있다.              
좋은 점은 메리 비와 조지의 성격묘사가 뚜렷한 것. 둘의 개성과 내면이 매우 풍부하게 그려졌는데 연기파들인 스왱크와 타미 리 존스가 깊이 있는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다. 특히 스왱크의 튼튼한 연기가 출중하다. 심술첨지 모습의 타미 리도 무뚝뚝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잘 하는데 둘의 콤비가 썩 잘 어울린다. 이와 함께 서부를 미화하지 않고 삭막한 모습 그대로 잡아낸 촬영과 음악도 인상적이다. R. Roadside. 랜드마크극장과 아크라이트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새벽’



졸린 눈에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 그리고 주먹코를 한 과묵한 프랑스 명우 장 가방은 1930년대 로맨틱한 염세주의를 상징했던 프랑스 영화의 동의어와도 같은 배우였다. 그는 운명을 트렌치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는 저주받은 반영웅처럼 기억될 만큼 숙명적이요 비극적이며 어두운 영화에 많이 나왔다. 장 가방 하면 세속적인 국외자요 고독자가 연상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방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흐름이었던 ‘시적 사실주의’(Poetic Realism)의 대표적인 스타로 많은 영화에서 자기를 파괴하려는 잔인한 운명과 투쟁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나왔다. 고독이라는 병을 앓은 뒤 순수한 사랑을 찾아 잠시 위로를 받으나 또 다시 기만당하고 자신의 꿈을 빼앗겨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시적 사실주의’는 주로 파리 주변을 무대로 한 노동자 계급의 도시 드라마로 매우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 신화 속 존재 같은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때로 범죄를 저지르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대부분 처절한 종말을 맞는다.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뒤덮은 당시 프랑스의 시민들의 절망과 허무를 대변했는데 뛰어난 형식미 속에 각박한 일상과 서정적이요 감정적인 것의 이중성을 담고 있다. 회색으로 채색된 실존적 영화다.
가방이 나온 ‘사적 사실주의’의 걸작 중 하나가 살인자 프랑스와의 하룻밤을 그린 ‘새벽’(Le Jour se Leve·1939·사진)이다. 노르망디 교외의 노동자층이 사는 6층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분노한 음성과 함께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아파트의 좁은 계단 아래로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가 굴러 떨어져 내린다.
이어 아파트에 들이닥친 경찰들이 프랑스와가 바리케이드를 친 아파트 문을 향해 총알을 쏟아 붓는다(실탄이 사용됐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프링스와의 현재와 그가 회상하는 과거가 교차되면서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권총자살로 끝난다.
공장 노동자인 프랑스와와 그가 사랑하는 가녀린 꽃가게 여점원 프링스와즈(자클린 로랑) 그리고 프랑스와를 사랑하는 클럽 쇼걸 클라라(아를레티) 및 이 두 여인을 소유하다시피 한 쇼맨 발랑탕(쥘르 베리) 등 4인이 맺는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흑백 촬영이 뛰어난 이 영화의 감독은 마르셀 카르네이고 각본가는 시인이기도 한 자크 프레베르인데 프레베르의 아름다운 글이 자칫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절망적인 얘기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시적 사실주의’의 또 다른 걸작으로 역시 가방이 나오고 호심 같은 눈을 지녔던 미셸 모르강이 공연한 음습한 분위기의 ‘안개 낀 부두’(Le Quais des Brumes·1938)와 이 영화사조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마르셀 마르소와 아를레티가 나오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1943-45)도 같이 만들었다.    
‘새벽’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장이 ‘우리 시대 영화의 비극적 영웅’이라고 칭한 가방이 사랑과 희망을 잃고 살인을 한 뒤 스스로를 자기 아파트에 가두어 놓은 킬러의 연기를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치명상을 입은 짐승처럼 불안하고 절실하게 보여준 명화다.
영화는 개봉되면서 당시 나치의 프랑스 괴뢰정부였던 비시 정부의 혹독한 검열을 받고 아를레티의 나신장면과 경찰을 파시스트에 비유한 대사를 비롯해 둘 다 유대인이었던 촬영감독 쿠르트 쿠란트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트러네의 이름이 잘려 나갔다. 그러다가 곧 이어서는 영화가 ‘지나치게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아예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가방의 신화를 창조한 ‘시적 사실주의’의 첫 영화는 쥘리앙 뒤비비에가 감독(공동 각색 겸)한 운명이 판을 치는 로맨틱한 갱스터 영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7)다. 파리에서 은행강도를 한 뒤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항구도시 알지에의 언덕 위 아랍계들이 사는 치외법권 지대나 마찬가지인 달동네 카스바에 숨어 사는 플레이보이 페페의 이야기다.
하구한날 항구를 바라다보며 파리를 그리워하던 페페가 파리에서 놀러와 구경 차 카스바로 올라온 돈 많은 늙은이의 정부로 깊은 눈동자를 지닌 가비(미레유 발랑)을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암흑세계의 갱스터에 대한 동경이요 미녀와 야수의 드라마로 페페가 고동소리를 내며 항구를 떠나가는 귀국선을 탄 가비를 향해 “가비”하고 외치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손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라스트신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이 영화는 1938년 샤를르 봐이에와 헤디 라마 주연의 흑백 미국 영화 ‘앨지어즈’(Algiers)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도 삼삼하다.
가방이 저주 받은 사랑을 하는 남자로 나와 치열한 연기를 한 또 하나의 1930년대의 명작이 장 르느와르(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가 감독한 ‘인간 짐승’(La Bete Humaine· 1938)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에서 열차 기관사인 가방은 역장인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는 요부(시몬 시몽)를 사랑하다가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자기는 달려오는 기차에 투신자살한다.  
‘새벽’ 개봉 7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잘려나간 장면과 대사 그리고 크레딧이 복원된 새 프린트로 14일부터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플레이하우스(패사디나).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