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가 된 빌리가 링에서 짐승처럼 소리지르고 있다. |
“딸을 위하여”몰락한 챔피언의 최후일전
주인공 역의 제이크 질렌한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와 권투액션 신을 박진하게 찍은 촬영 그리고 튼튼한 각본과 연출 등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가족 드라마이자 권투영화인데 문제는 예전에 이런 영화는 많이 봤다는 기시감이다. 언더독의 당연한 최후의 승리와 자기 구제의 얘기가 주제로 액션이 있는 권투보다 앞서 가는데 따라서 처음과 마지막의 피가 튀는 두 경기 사이의 드라마가 너무 길고 느린 느낌이다.
안톤 후콰 감독(‘이퀄라이저’)은 마치 이 영화는 권투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이 드라마 부분에 역점을 두고 영화의 상당부분을 장황하게 끌고 가 권투액션을 기다리느라 좀이 쑤신다. 왕년에 만든 권투영화들인 ‘챔피언’ ‘상처뿐인 영광’ ‘레이징 불’ 및 ‘로키’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은 것도 영화의 신선미를 감소시키는 큰 이유. 그러나 보고 즐길 만한 영화다.
첫 장면은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전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된 빌리 호프(질렌할)가 고함을 지르면서 상대방을 공격, 챔피언 벨트를 따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라커룸에 들어온 빌리는 섹시한 아내 모린(레이철 맥애담스가 잘 한다)이 보는 앞에서 의사로부터 찢어진 왼쪽 눈을 치료 받는다. 이 왼쪽 눈이 빌리의 결정적 핸디캡이 된다.
11세난 영리한 딸 레일라(우나 로렌스)와 함께 거대한 저택에서 호사를 누리면서 사는 빌리와 모린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데 모린은 빌리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은퇴할 것을 원한다. 이어 얘기는 이런 영화의 정석대로 빌리의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진다(이 부분이 너무 급작스럽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빌리의 매니저 구실을 하던 모린이 떠나고(영화의 후반부 대부분 모린은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빌리는 자신의 벨트를 노리는 젊고 오만한 미구엘 에스코바르(미구엘 고메스)와 언쟁을 벌이다가 둘이 주먹싸움을 하면서 빌리는 왼쪽 눈을 크게 다친다.
빌리는 여기서부터 빚더미에 올라 앉아 가산을 몽땅 차압당하고 알거지가 되고 레일라까지 뺏겨 레일라는 아동보호소에 들어간다. 물론 빌리는 재기를 하는데 폐인이 되다시피 한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링에 오르기로 결심하는 까닭은 오로지 딸을 되찾기 위해서다.
빌리가 찾아간 체육관은 왕년의 명 박서 틱(포레스트 위타커)이 경영하는 동네 불우아동과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후진 장소. 빌리는 프로는 안 받는다는 틱의 거절에도 불사하고 집요하게 틱에게 자기 트레이너가 돼 줄 것을 요구, 둘은 일치 합심해 맹훈련에 들어가 돈에 눈이 먼 경기 알선책(며칠 전 파산신청을 한 커티스 ‘50센트’ 잭슨)의 주선으로 베이가스에서 미구엘과 한판 붙는다.
올해 ‘나이트크롤러’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질렌할의 피비린내 나면서도 민감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로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영화음악 작곡가 제임스 호너의 유작인데 음악이 무드가 짙다. R. Weinstein.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