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아메리칸 메이드’(American Made)

배리 실이 콘트라반군에게 전달할 무기를 비행기로 나르고 있다.

‘탑 건’서 밀수 조종사로… 탐 크루즈의 범죄 액션


100만 달러짜리 미소를 지닌 만년 소년티가 나는 탐 크루즈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중남미를 오락가락하면서 마약과 총과 현찰을 수송, 수수료조로 떼돈을 버는 코미디기가 있는 범죄 액션 스릴러로 경쾌하고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다. 
1980년대 레이건의 하수인인 올리버 노스 대령이 주도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개입했던 에이스 조종사 배리 실의 실화에 허구를 잔뜩 입힌 비도덕적인 배달꾼의 터무니없을 정도로 대담무쌍한 모험 얘기다. 
아메리칸 드림의 하나인 황금만능주의를 풍자한 얘기이기도 한데 여러 가지 정치적 스캔들을 깊이 파헤치기보다 피상적으로 다루면서 재미 일변도의 영화로 만들어 주인공도 만화 속 인물처럼 묘사되긴 했으나 오락영화로선 A급이다.
얘기는 실이 자기 과거를 고백한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내레이션을 하면서 진행된다. 1970년대. 아내 루시(새라 라이트)와 두 아이를 둔 실(크루즈)은 TWA 조종사로 부업으로 쿠바 시가를 밀반입해 돈을 번다. 
이를 파악한 CIA로부터 몬티 셰이퍼(돔날 글리슨)가 실을 찾아와 시가 밀반입을 눈감아주는 대신에 임무를 지시한다. CIA가 제공한 프로펠러 비행기로 파나마로 날아가 노리에가 대령에게 현찰을 주고 정보를 받아오는 일. 
실의 잦은 중부 아메리카 비행이 콜롬비아의 메데인 마약 카르텔에 의해 포착이 되고 이 카르텔의 두 두목 호르헤 오초아(알레한드로 에다)와 파블로 에스코바르(마우리시오 메이아)는 실을 붙잡아 미국으로 코케인 수송을 지시한다. 그리고 실에게 코케인 킬로 당 2,000달러를 지불한다. CIA의 묵인 하에 실은 코케인 밀반입으로 엄청난 돈을 번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이런 밀반입 수송으로 떼돈을 벌던 실은 마약단속국에 걸리지만 셰이퍼가 개입해 풀려난다. 그리고 메데인 카르텔로부터 손을 뗀 실은 CIA에 의해 거주지를 바톤 루지로부터 아칸소주의 작은 마을 메나로 옮긴다. 집과 함께 개인 비행장이 있는 2,000에이커의 땅주인이 된 실은 밀반입으로 번 현찰이 너무 많아 창고에 쌓아두다 못해 집 마당에 나무를 심듯 구덩이를 파고 감춘다. 
셰이퍼는 이번에는 실에게 니카라과 좌파정부에 저항하는 콘트라 반군들에게 무기를 전달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줄 타는 곡예사처럼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잘도 피해 다니던 실은 결국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크루즈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약삭빠른 비도덕적인 인간의 연기를 잽싸게 해낸다. 덕 라이만 감독. R.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크 펠트: 백악관을 무너뜨린 남자’(Mark Felt: The Man Who Brought Down the White House)

워싱턴 포스트에 정보를 제공하는 마크 펠트.

워터게이트 사건 제보‘딥 스로트(Deep Throat)’ 정체는 바로…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인해 닉슨이 하야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FBI 부국장 마크 펠트에 관한 실화로 정석 전기영화의 틀을 밟은 드라마다. 너무 고지식하게 직선적이어서 딱딱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지만 미국 정치사의 희대의 스캔들을 돌아보는 흥미는 있다.
펠트 역의 리암 니슨이 견실한 연기를 하는데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은 지극히 피상적으로 그려졌다. 따라서 니슨의 독무대이다시피 해 극적 다양성이 모자라고 강한 충격도 없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그 내막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의 얘기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흥미진진하게 묘사된 바 있다.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펠트인데 그의 암호명은 ‘딥 스로트’(Deep Throat)였다. ‘딥 스로트’는 최초로 극적 구성을 한 빅 히트 포르노영화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영화는 닉슨의 첫 번째 임기 말년에 시작된다. 펠트는 경력 30년의 베테런으로 정의감이 강하고 FBI의 독립성을 철저히 강조하는 사람으로 그는 FBI를 ‘세계에서 최고로 존경 받는 기관’으로 여긴다. 그래서 백악관을 비롯한 외부기관의 내부간섭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수십 년간 FBI 국장직을 맡았던 후버가 사망하고 모두가 당연히 국장직을 승계하리라고 생각했던 펠트를 제치고 닉슨은 법집행 경력이 전무하나 자기에게 충실한 L. 패트릭 그레이(마턴 시소카스)를 임명한다. 이어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면서 펠트가 이를 수사하자 닉슨의 보좌관인 존 딘(마이클 C. 홀)과 그레이는 펠트에게 수사를 빨리 종결지으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러나 FBI의 독립성과 진실과 정의에 집착하는 펠트는 이를 무시하고 수사를 계속하면서 백악관이 FBI를 훼손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에 분노, 자신의 수사정보를 우드워드에게 전달한다. 이런 과정이 매우 스릴이 있어야 하는데도 너무 평범하게 처리돼 심심하다.
곁가지로 펠트의 좌파 무장저항단체 웨더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대처가 묘사되나 별 의미가 없다. 펠트가 이 단체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자신의 가출한 딸이 이 단체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이유 탓이다.
펠트가 고발자 역을 자임한 것이 승진하지 못한데 대한 반감 탓일지도 모른다는 기색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그의 정의와 진실 그리고 FBI에 대한 사랑을 그 이유로 그리고 있다. 펠트의 아내 오드리로 다이앤 레인이 나온다. 피터 란데스만 감독. PG-13. Sony.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베카’디지털로 복원


캡션 추가

대저택 떠도는 죽은 부인의 망령… 히치콕 스릴러물


알프레드 히치콕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빗 O. 셀즈닉과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해 만든 첫 작품으로 로맨틱하고 강렬한 심리 로맨스 드라마다. 히치콕과 셀즈닉은 영화를 만들면서 의견 대립이 심했는데 히치콕은 이 영화 이후 계약 때문에 셀즈닉의 영화들인   ‘망각의 여로’(Spellbound·1945)와 ‘패라다인 케이스’(The Paradine Case·1948) 등 2편을 더 만들고 둘이 헤어졌다.
영화는 또 귀신 이야기이자 살인 미스터리 분위기를 지닌 분위기 스산하면서도 우아한 흑백 명작으로 대프니 뒤 모리에의 1938년 작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작품상과 감독상 등 모두 11개 부문에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촬영상을 탔다. 남우주연(로렌스 올리비에), 여우주연(조운 폰테인), 여우조연(주디스 앤더슨) 및 각색상 등이 오스카 수상 후보에 올랐었다. 
폰테인은 후에 이 영화와 분위기가 매우 비슷한 ‘제인 에어’(Jane Eyre·1944)에도 주연했다. 이 흑백영화는 샬롯 브론테가 쓴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레베카’처럼 서민층의 젊은 여자와 ‘손필드 홀’이라는 음습한 기운을 내뿜는 대저택을 소유한 지체 높고 정체가 신비한 중년 남자 미스터 로체스터의 사랑을 그렸는데 로체스터로 오손 웰즈가 나온다.   
시종일관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 서술되는 신비하고 비가적인 사랑의 이야기로 특이한 것은 제목의 레베카는 남자 주인공 맥심 드 윈터의 첫 아내로 얘기가 시작되기 전에 죽어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영화의 주인공인 여자는 이름이 없다는 것.
그런데 이 죽은 여자 레베카는 영화 전편을 통해 맥심과 그의 젊은 두 번째 아내 그리고 레베카의 충실한 하녀였던 댄버스 부인(앤더슨)을 집요하게 군림한다. 
이름 없는 순진한 젊은 여자(폰테인)는 돈을 받고 나이 먹은 귀부인 이디스 밴 호퍼의 동반자가 되어 몬테 칼로로 여행을 갔다가 귀족가문의 멋쟁이로 침울한 남자 맥심 드 윈터(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만난 지 2주 만에 결혼해 콘월의 맥심의 고풍 창연한 저택 ‘맨덜레이’로 온다. 귀신 들린 집과도 같은 ‘맨덜레이’가 영화에서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구실을 한다.  
새 부인을 맞는 사람이 차갑고 도도한 레베카의 하녀 댄버스 부인으로 사망한 레베카에게 아직도 그가 살아있는 듯이 집착하는 댄버스 부인은 드 윈터 부인을 냉정히 영접한다. 댄버스 부인 역의 주디스 앤더슨이 소름끼치는 사악한 연기를 한다. 
그런데 드 윈터 부인은 ‘맨덜레이’ 곳곳에 레베카의 존재와 흔적이 뚜렷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집의 매스터 베드룸 문과 레베카가 쓴 문필도구와 손수건 그리고 침대의 린넨 쉬트 등에 레베카의 두문자 ‘R‘과 드 윈터의 부인을 뜻하는 ‘R de W’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댄버스 부인은 새 부인에게 수시로 레베카의 미와 우아함과 세련미 및 지성에 대해 얘기해 드 윈터 부인은 레베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다. 
이로 인해 드 윈터 부인은 가끔 자기에게 별 이유도 없이 크게 화를 내는 남편과의 관계에 의심을 갖게 되나 그가 아직도 자기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이어 드 윈터 부인은 남편이 ‘맨덜레이’를 비운 사이 집을 방문한 소위 ‘제일 좋은 사촌’이라 불리는 잭 화벨(조지 샌더스)을 만난다. 과연 화벨은 누구인가. 
레베카의 망령에 시달리던 드 윈터 부인은 마침내 댄버스 부인과 정면 대결을 하고 남편으로부터도 레베카와의 결혼생활이 외부에서 보았듯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레베카의 방종하고 부도덕한 생활 스타일의 희생자였다는 고백을 받아낸다. 그리고 레베카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남편이 첫 아내가 아니라 자기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드 윈터 부인은 그 동안의 소녀처럼 순진하던 삶의 태도를 내던지고 ‘맨덜레이’의 안방 주인 노릇을 시작하면서 아울러 레베카의 죽음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남편의 충실한 조언자 역을 떠맡는다. 
광기에 휩싸인 댄버스 부인에 의해 ‘맨덜레이’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댄버스 부인은 무너져 내린 천장에 깔려 죽고 영화는 레베카의 침대에 놓인 비단 잠옷 케이스에 새겨진 ‘R’자가 불길에 타면서 끝난다. 순진하고 겁먹은 모습의 폰테인의 연기와 허점이 많은 남자의 연기를 교활하도록 기민하게 해낸 올리비에의 연기가 훌륭하다.  ‘레베카’가 새로 4K 디지털로 복원돼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