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트랜센던스' 자니 뎁


“공상과학 내용, 가까운 미래에 얼마든 가능”


현재 상영 중인 공상과학 스릴러‘트랜센던스’(Transcendence)에서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죽은 뒤 애인 과학자(레베카 홀)에 의해 자신의 지능과 감정이 컴퓨터에 옮겨진 과학자로 나오는 자니 뎁(50)과의 인터뷰가 4월6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엷은 푸른색 안경을 쓰고 다듬지 않은 콧수염ㆍ턱수염과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와 50년대 재킷을 입은 상거지 차림의 뎁은 버릇대로 인터뷰장에 늦게 나타났다. 바지 주머니에 손수건을 늘어뜨린 채 목걸이 2개와 반지 2개 그리고 헝겊 팔찌에 손에 문신을 한 뎁은 매우 지저분해 보여 도저히 수퍼스타 같지가 않았다. 나이에 비해 동안인 뎁은 2013년 16년간 두 남매까지 두고 함께 살아온 배우이자 가수인 프랑스인 연인 바네사 파라디와 헤어지고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럼 다이어리’(2011)에서 공연한 젊고 섹시한 앰버 허드(27)와 약혼했다. 뎁은 인터뷰에서 수줍어하면서도(그는 매우 내성적이요 부끄러움을 탄다) 손가락에 찬 약혼반지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들어 보여주며“유 노”를 연발하면서 허드와의 관계를 떳떳이 밝혔다. 얇은 미소와 함께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에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대답했는데 가끔 유머도 구사하면서 능청을 떨기도 했다.                 

*영화 내용이 현실로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처음에 각본을 읽었을 때는 클래식 공상 과학영화처럼 느껴졌으나 얘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내용이 얼마든지 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시용되는 기술은 현재 실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간의 의식을 거대한 컴퓨터나 하드드라이브에 옮기는 일도 곧 현실화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의 반영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갈 데까지 갈 것이다. 영화에서 나와 홀이 말했듯이 기술이 지나치게 나아갔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인명을 구할 수가 있으니 양날의 칼이라고 하겠다. 순간적으로 선택을 하라면 나도 확실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에 옮길 것이다.

*자니 뎁의 어떤 면을 컴퓨터에 옮기고 싶은가.
-그렇게 하면 컴퓨터가 깨지고 말 것이다. 난 결코 컴퓨터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대답이다.

*당신은 영화의 절반 정도를 컴퓨터 안에서 보내는데 그 경험이 어땠는가.
-난 영화의 절반 정도를 배우들과 다른 방에서 혼자 있으면서 모니터를 보면서 연기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것이 배우들과 같은 세트에 있으면서 숨어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와 상대방이 서로 고립되는 것이 영화의 뜻에도 맞는 것이었다.

*지능의 한계를 언제 느껴 봤으며 컴퓨터가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컴퓨터 속에 지능이 업로드된 캐스퍼 박사(위).
-물론이다. 컴퓨터와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기술은 분명히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난 5분마다 머리가 꽉 막히는데 기계에 대해선 엉망이다. 문자메시지가 와 답을 하려면 열손가락을 총동원해도 제대로 못한다. 그런 일 하는 것이 터무니가 없다고 느껴진다.

*당신은 여태껏 결혼을 마다하다가 왜 앰버를 만나서야 결혼을 생각하게 됐는가.
-사람이 나이를 먹다보면 조금씩 현명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보다 잘 볼 수가 있다. 배우가 배우와 사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앰버는 자신의 생애에 대해 뚜렷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난 앰버와 만난 뒤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는데 대해 깜짝 놀랐다. 그는 남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블루스와 컨트리 뮤직의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앰버는 강하고 똑똑한 여자다. 생의 어느 지점에 와서 자신의 삶을 어떤 한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앰버는 멋진 사람으로 난 행운아다.   

*손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약혼반지인가.
- 그렇다. 앰버가 끼기엔 너무 커 내가 가졌다. 앰버에겐 보다 얌전한 반지를 만들어줄 것이다. 약혼반지는 내가 디자인했는데 보석상에서 만들어온 것을 보니 다이아몬드가 사람 눈알 만해 앰버가 끼기엔 다소 불편할 것 같더라. 

*어떤 장르가 가장 하기 좋은가.
-코미디다. 코미디에는 보다 많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의 인물은 여러 가지로 표현해낼 수가 있다. 그런데 난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극중 인물로 숨고 위장하는 것이 더 편하다. 난 골든 글로브 시상자로 무대에 오를 때면 뼈까지 떨린다. 그러나 극중 인물이면 두려운 것이 없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과 과거의 기본적인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해 본 적이 있는가.
-난 솔직히 말해 1940년대 제작된 타이프라이터를 들고 다니면서 종이 위에 타자하고 기타도 구식 기타를 들고 다닌다. 타이프를 사용 안 할 때면 펜으로 글을 쓴다. 아주 기본적인 수준을 지키는데 난 그것이 평화스럽다. 기계에선 큰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공 팔을 제조할 수 있는 지적인 기계가 나와 그것을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의 아이들에게 부착해 아이들이 그 팔로 숟갈을 들어 음식을 집어 먹고 돌을 던지고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집어 올릴 수가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보다 나은 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겁나는 것은 과연 이런 기술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며 그들이 그것으로 무슨 짓을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의사가 당신에게 앞으로 5주밖에 더 못 산다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옛날 애인들을 다 불러 성대한 파티라도 하겠는가.
-내 옛날 애인들이라니 당신이 오히려 그들과 파티하고 싶은 것 같네. 그럴 경우 내게 전화하면 내가 그들에게 잘 말해 주겠다. 의사의 그런 선언을 받으면 난 매일을 즐기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 즐기고 웃겠다.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즐기겠다. 자신의 의식을 이 영화처럼 컴퓨터에 옮기지 못하는 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

*‘트랜센던스’(초월ㆍ초절)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데 당신이 이 말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생을 통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초월하려고 하고 있다. 나이를 먹고 지혜로워지면 삶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세상사의 물질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되고 보는 관점이 생기게 된다. 공포와 고통과 이고를 초월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왜 이 영화에 매력을 느꼈는가.
- 그것은 주인공인 캐스퍼 박사가 비록 인공지능에 관해선 뛰어난 과학자였으나 평소에는 아주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컴퓨터에 의식이 옮겨지면서 갱생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 내용은 애매모호하다고도 하겠는데 난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캐스퍼가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를 묻기를 바랐다. 결국 영화는 인간성에 관한 것으로 거기에 로맨스까지 있어 좋다. 

*당신은 죽은 다음에 환생하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도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의 신을 창조하고자 하는가. 
-신의 개념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신을 갖고 있다. 신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내 아이들이 내 신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숨을 쉬고 걷고 산다는 것이야 말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내게 불사가 찾아온다 해도 난 그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저 천천히 그리고 단순히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그보다 낫다. 앰버와 내 아이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순간적으로 앰버와 아이들의 삶과 의식을 살리고야 싶겠지만 난 그보다도 해변에 앉아 미풍을 맞으며 물결이 해변의 모래를 스치고 물러가는 것을 보는 것을 즐기고 싶다.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면 족하다.

*‘카리브의 해적’ 5편은 언제 찍는가.
-지금 완벽한 각본을 쓰기 위해 나와 각본가가 열심히 집필 중이며 만족스럽게 되어가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편이 되기 때문에 그동안 영화를 사랑해 준 팬들에게 정당히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만큼 기대도 크다. 

*아이를 더 나을 생각인가.
-남자인 내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 걸 연습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자다. 앰버가 원한다면 마땅히 그럴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당신처럼 노래하고 연기할 것을 권하는가.
-아들 잭(12)은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 그리고 악기도 잘 연주한다. 그러나 연기는 학교 연극 외에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딸 릴리 로즈(14)는 무지무지하게 똑똑하다. 연기와 노래와 엔터테인먼트에 모두 관심이 있다. 난 아이들이 연예생활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결정은 그들이 할 일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셰프 (Chef)

고급식당 셰프가 푸드트럭을 차리는데…


퍼시와 마틴과 셰프 칼과 그의 전처 이네스(왼쪽부터)가 음식주문을 받고 있다.

배우와 감독과 각본가를 겸한 재주꾼 코미디언 존 홰브로의 온순한 가족용 코미디 드라마로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이 틈만 나면 화면을 장식해 영화 내내 군침을 삼키다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요리와 음식영화이기도 하다.
기자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함께 영화를 본 스웨덴 동료 기자와 함께 식당으로 직행, 맥주와 칼라마리를 시켜 먹었다. 선 보이는 음식 중에는 한국식 매운 오징어도 있고 디저트로는 고기 BBQ의 창업자인 로이 최가 개발한 ‘베리즈 앤 크림’도 있다.    
로드무비이기도 한 영화로 다채로운 요리만큼이나 대륙을 횡단하는 경치도 좋은데 가족관계 특히 부자지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셰프가 음식 비평가를 저주하면서 강렬히 비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홰브로가 2011년에 감독한 해리슨 포드가 나온 ‘카우보이와 외계인’이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고 흥행서 망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도 모른다. 간혹 플롯에 구멍이 나고 너무 단맛이 나긴 하지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초호화 앙상블 캐스트가 나오는 알록달록한 영화다. 
LA의 고급식당의 셰프 칼(홰브로)은 창의적인 메뉴 개발에 매달리는 사람인데 이름난 음식비평가 램지(올리버 플랫)가 오는 날 주인(더스틴 호프만)의 지시로 구태의연한 음식을 제공했다가 악평을 받는다. 이에 화가 난 칼은 다시 식당을 찾아온 램지에게 온갖 상소리를 퍼붓는데 이 장면이 트위터를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지면서 칼은 일약 유명 인사가 되고 식당에서 해고당한다.
이런 칼에게 늘 자기 메뉴를 마음대로 선보일 수 있는 음식트럭을 운영하라고 조언하는 돈 많은 전처 이네스(소피아 베르가라)가 마이애미의 친정집에 10세난 아들 퍼시(엠제이 앤소니)와 함께 가는데 동행하자고 제의한다.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칼은 이에 마이애미로 가서 쿠바 샌드위치의 맛에 빠지고 이네스의 전 남편 마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호의로 구닥다리 음식트럭을 선물 받아 아들과 함께 이를 개조한다.
주 메뉴는 쿠바 샌드위치인데 주방에 동참하는 사람이 퍼시와 칼이 셰프로 있던 식당의 보조 마틴(존 레구이사모). 셋은 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와 오스틴을 거쳐 LA로 향하는데 퍼시가 아버지의 메뉴를 트위터로 날리면서 이미 소셜네트웍으로 유명해진 칼의 트럭 앞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친다. 끝이 너무 조작적으로 말끔히 매듭을 짓는데 스칼렛 조핸슨이 칼이 해고당하기 전의 식당 리셉셔니스트이자 칼의 애인으로, 앤디 가르시아가 마이애미의 경찰로 나와 웃긴다.
R. Open Road. 아크라이트, 센추리 15, 랜드마크.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웃(Neighbors)

옆집 대학생들의 파티 소음으로 큰 싸움


맥과 켈리 부부가 테디(왼쪽)를 찾아와“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다.

더럽고 음탕하고 추하고 시끄럽고 상스럽고 고약한 젊은이들 영화로 10대의 우상이었던 잭 에프론(툭하면 상체를 벗어 제치고 근육미를 자랑한다)이 비로소 성인 배우로 우뚝 선 코미디다. 이런 영화에 능통한 우유 살이 토실토실 찐 세스 로건이 에프론의 옆집 원수로 나와 둘이 욕설과 육박전을 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데 여기 합류하는 것이 남편 로건 못지않게 입이 건 아내로 나오는 로즈 번. 
처음부터 끝까지 F자 상소리와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퉁퉁 부은 유방과 섹스와 나체 그리고 콘돔과 대마초와 술과 파티와 소음으로 화면을 메우는 난장판 코미디로 영화 속 에프론 처럼 대학생 또래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영화다. 얼굴을 찡그리며 봤지만 재미없다고 할 수는 없다. 빅히트할 것이다. 
갓난 여아를 둔 월급쟁이 맥(로건)과 그의 호주 태생 아내 켈리(번)는 있는 돈 다 털어 교외에 집을 사 이사한다. 그런데 이들의 옆집에 대학교 4학년생들이 집단 거주하려고 이사 오면서 파티 소음문제로 양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얘기의 전부다. 이 영화는 무슨 플롯이 정연하게 서술되는 얘기가 있는 영화가 아니라 악을 쓰면서 욕질을 해대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파티를 하면서 터무니없는 광란의 에피소드를 엮어 놓은 것이다. 
대학생 동아리 델타 사이의 리더로 놀자 판인 테디(에프론)와 그의 친구로 똑똑한 피트(데이브 프랭코-제임스 프랭코의 동생)와 일단의 그룹은 맥의 옆집으로 이사 오자마자 매일 같이 파티를 연다. 이에 죽어나는 것이 맥과 켈리.
그래서 둘은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테디를 찾아갔다가 테디의 초청으로 파티에 참석, 젊은 시절로 돌아가 대마초 태우고 술 마시고 춤추면서 신나게 즐긴다. 영화는 다시는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 돼버린 부부의 청춘 동경과 함께 얼마 안 있으면 이 둘처럼 되고 말 테디의 성장 공포를 다루었다. 그리고 맥 부부와 테디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테디네 파티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음 난장판이 되면서 맥은 견디다 못해 경찰을 부른다. 이로 인해 테디와 맥은 원수지간이 되고 서로 상대에게 해코지를 하기 시작한다. 맥의 테디에 대한 복수작전에 동참하는 것이 맥의 철딱서니 없는 친구(아이크 바린홀츠).
에프론이 사악하면서도 천진한 연기를 잘 하고 로건과 번의 콤비와 연기도 좋다. 리사 쿠드로가 테디의 대학 학장으로 나온다. 대학을 쫓겨난 테디가 벗은 상체를 자랑하며 애버크롬비 & 피치 가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발견한 맥이 자기 역시 상체를 벗은 뒤 비곗살을 드러낸 채 테디와 함께 호객행위를 하는 마지막 장면이 웃긴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마”



어머니는 공기다. 늘 사방에 가득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살지만 없으면 못 사는 대기다. 11일이 어머니날인데 그가 곁에 없으니 산소가 모자라는 듯이 가슴이 막힌다. 4일 예배시간에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을 부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나의 어머니도 나를 어릴 적에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쓰다듬어 주셨다. 그 모습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포옹하듯이 성스러운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성모다.
육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할지 모르나 내성이 강하기론 남자가 여자를 쉽게 못 따른다. 난 늘 여자가 남자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여자의 근본인 모성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구태여 이름이 없어도 좋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이 퓰리처상을 받은 ‘분노의 포도’의 조드 일가의 기둥인 어머니도 이름이 없다. 그냥 ‘마’(Ma)다. 글에서 마는 덩지가 크고 뚱뚱한 여자로 묘사되는데 마는 그 몸집만큼이나 결단력이 강하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자다.
경제공황시대 오클라호마의 농토를 잃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캘리포니아로 고물차를 타고 온 가족이 남부여대해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상주의자인 탐이다. 그러나 온갖 난관 하에서도 막상 이 ‘오키즈’ 대가족을 결집시키는 초석이자 뿌리는 마다.
마의 모습은 존 포드가 감독한 동명영화에서 제인 다웰에 의해 강하면서도 인자한 구원의 어머니상으로 성스럽게 묘사된다. 정든 땅을 떠나기 전 회한이 가득한 표정의 마가 때가 잔뜩 묻은 거울을 보면서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귀고리를 양쪽 귀에 대어보는 장면(사진)에서 미국 민요 ‘홍하의 골짜기’가 흘러나온다. 강렬한 장면으로 다웰이 마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포드는 감독상을 받았다.
마는 불굴의 인간 혼을 지닌 여자로 그의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내성이야말로 모성의 또 다른 형상이다. 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 올 거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 누구도 우리를 쓸어버릴 수 없어. 누구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 거야. 우리가 사람들이지.” 이런 말은 9개월간 체내에 생명을 잉태했다가 고통 끝에 피붙이를 토해낸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은 멜로드라마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드라마 ‘스텔라 달라스’가 그 대표작이다. 바바라 스탠윅이 열연하는 이 신파극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 없이는 못 본다. 우리 어머니도 스텔라 달라스 못지 않으셨다.
조운 크로포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밀드레드 피어스’도 가정주부에서 웨이트리스를 거쳐 식당 주인으로 성공하기까지 죽을 고생을 하면서 딸(앤 블라이스)을 키우는 어머니의 악착같은 생활력과 모성애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딸이 어머니의 애인을 가로채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이 밖에도 라나 터나가 주연하는 ‘인생의 모방’과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 ‘애정의 조건’ 및 ‘조이 럭 클럽’ 등도 좋은 모정에 관한 영화들이다. 한국 어머니들도 외국 어머니 못지않게 모성애가 강해 김혜자는 ‘마더’에서 살인범인 외아들의 죄를 감추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김혜자의 연기가 뛰어나 LA영화 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최우수여우로 뽑혀 본인이 상 받으러 LA까지 왔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사랑이 꼭 역시 혼자이셨던 우리 어머니의 외아들인 나에 대한 사랑 같아서 난 영화를 보면서 남 다른 감회에 젖었었다.
죽어가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들의 얘기를 감정 가득히 그린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은 영적이요 심오한 모자관계의 드라마로 촬영이 몽환적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아들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쁜 엄마도 있다.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것이 페이 더나웨이가 나온 ‘마미 디어리스트.’ 할리웃 황금기 수퍼스타였던 조운 크로포드와 그의 양녀 크리스티나의 실화로 크로포드가 어린 딸을 철사 옷걸이로 패는 장면이 유명하다.
11일에는 제리 베일이 부르는 ‘포 마마’(For Mama)라도 들어야겠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눈은 젖어요. 우리가 ‘아베 마리아’를 부르는 것을 듣기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하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날 위해 해주신 것에 비하면 그것은 여전히 너무 작은 것 같아요”라며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해피 마더스 데이!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