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경찰 (Policeman)

이스라엘 사실적으로 그린 사회정치영화


쉬라(앞)와 동료들이 결혼식장 하객들을 납치하고 있다.

간장에서 쓴물이 나오도록 에누리 없이 사실적이요 살벌한 이스라엘 사회정치 영화로 전연 다른 두 개의 얘기를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가서 격렬하게 충돌시키는 독특한 서술방식을 갖췄다. 밖으로 폭발하지 않고 안에서 격렬하게 들끓고 있는 감정적 압축감에 부담이 갈 정도로 절제와 방관자적 거리를 느끼게 되는데 내용과 형식적인 면이 다 로베르 브레송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테러진압 경찰과 폭력을 앞으로 내세워 이스라엘 시민의 계급과 신분 차이 그리고 그들의 빈부차이를 제3자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묘사한 이색적인 영화로 인내심을 요구한다.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나다브 라피드의 솜씨가 뛰어나다.
영화는 정예 테러진압 요원 아론(이프타치 클라인)과 그의 임신한 아내 그리고 그의 동료들 간의 관계를 40분 정도 그리다가 돌연 젊은 이스라엘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행위로 뛰어넘는다. 이 둘의 얘기는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가서 강렬한 펀치를 휘두르듯이 부닥치는데 끝이 끝 같지가 않다.
아론은 집에서는 만삭의 아내를 극진히 돌보고 밖에서는 동료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애국자. 진압요원들은 공동체 의식에 매달려 사는 마초들로 최근에 치른 한 작전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가족 간의 관계와 우정 그리고 집단의식이 아론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이야기 된다.
이어 내용은 사회 환경에 불만을 품은 정열적이요 이상적이며 또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몇 명의 청춘남녀들의 얘기로 급전환한다. 부잣집 딸 쉬라(야라 펠직)를 비롯한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적 격차와 계급 차이에 반발, 자신들의 삐딱한 이상을 현실화하기로 한다. 
자신들을 혁명전사요 로빈 후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백만장자의 딸의 결혼식장을 덮친 뒤 결혼식 당사자들과 하객들을 지하실에 인질로 붙잡아놓고 경찰과 대치한다. 그리고 그동안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진압에 멸사봉공해 왔던 아론과 그의 동료들은 자기와 같은 시민들에게 총을 들이대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            
촬영도 엄격하게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데 무엇보다 라피드 감독의 냉정한 연출솜씨가 돋보인다. 성인용.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용 길들이기 2 (How to Train Your Dragon 2)

불 내뿜는 용을 타고 대결전


히컵이 투스리스를 타고 신나게 공중비상을 즐기고 있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대부’ 제2편 등 몇 편에 불과한데 이 입체 만화영화는 전편보다 얘기와 눈부신 애니메이션 그리고 인물 개발과 작품의 무대 및 감정 등 여러 면에서 훨씬 더 확대됐고 또 훌륭하다. 어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웬만한 라이브액션 영화보다 월등한 만화영화로 오히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충분히 소화하기엔 다소 내용이 복잡하고 어둡다. 
드림웍스의 대하 스펙터클 액션 모험극인데 굉장한 액션 외에도 가족관계와 개척과 모험정신 그리고 청년의 성장기 및 우정과 로맨스까지 다양한 내용을 화려하고 장엄한 화면 속에 일사분란하게 그렸다. 크레시다 카웰의 영 어덜트를 위한 동명소설 시리즈를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또 연출한 딘 드블로이스 감독의 솜씨가 가히 거장급이다.
2010년에 나온 전편에서 5년쯤 지났다. 외딴 바이킹 마을 버크 주민들은 이제 입에서 불을 내뿜는 용들과 평화공존하며 산다. 청년이 된 모험심 강한 용감한 개척자 히컵(제이 바루켈 음성연기)이 자기가 사랑하는 까만 색깔의 용 투스리스를 타고 역시 용을 탄 자기 애인으로 톰보이인 애스트리드(아메리카 훼라라) 및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공중비상 용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퀴디치 경기를 연상시킨다.
마을 지도자로 히컵의 아버지인 스토익(제라드 버틀러)은 아들이 자기 대를 이어줄 것을 바라나 모험심 강한 히컵은 그런 책임을 지기보다는 버크의 경계를 넘어 있을 다른 나라에 대한 탐험에 더 관심이 있다.
히컵과 애스트리드는 어느 날 나들이를 나갔다가 노예로 삼기 위해 용들을 잡는 해적 에렛(킷 해링턴)과 그의 졸개들에 붙잡힌다. 에렛은 세상을 지배할 권력에 눈이 먼 사악한 용 사냥꾼 드래고 블러드비스트(자이먼 훈수)의 하수인. 히컵은 여기서 드래고의 흉악한 계획을 막기 위해 애쓰는 자기들 외에 또 다른 용을 타고 비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히컵과 애스트리드는 투스리스의 막강한 불의 힘을 빌려 여기서 탈출한다.
이어 히컵은 들은 대로 자기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을 떠나 곧 이어 아름다운 얼음으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용들과 다른 비상하는 온갖 파충류(다채로운 색깔과 모습을 한 용들의 애니메이션이 진풍경이다)들과 20년간을 살아온 여인 발카(케이트 블랜쳇)를 만난다. 이 얼음나라는 ‘용 중의 용’이라 불리는 비윌더비스트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히컵은 뒤늦게 자기를 찾으러 온 아버지와 애스트리드와 함께 발카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배우고 아울러 자신의 앞날의 운명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이어 지고한 희생이 일어나고 히컵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버크를 침공해 온 드래고 일당을 맞아 대결전을 벌이는데 이 전투장면이 전쟁 극영화를 방불케 한다.
액션과 감정적인 부분을 균형을 맞춰 분배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플롯이 매우 다단하게 이어져 흥미진진한 옛날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색깔이 눈이 따갑도록 알록달록하고 음악이 흥겹다. 제3편이 나오도록 얘기가 끝난다. PG.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남 남쪽 섬의 나라’



40여년 전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늦게 군에 가 동해안 야간보초를 서고 있는데 분초에서 즉시 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렸다. 월남 파병령이 떨어졌으니 더플백을 싸놓고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었다. 전쟁에 나가게 됐구나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돌연 이 명령이 취소됐다는 연락이 왔다. 난 다시 M16 소총을 메고 허리에 수류탄을 매달고 해안으로 보초를 서러 나갔다. 그 때 내가 월남전에 갔더라면 난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대리전을 치른 베트남에 갔다 왔다. 윤일로가 ‘남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이라며 지리학상으로 틀린 노래를 부른 베트남의 항구도시 다낭에서 열린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이 마련한 기내식과 영화 관계자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베트남하면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본 살육의 땅이라는 선입견부터 떠오른다. 둘 다 내 중ㆍ고등학교 친구들인 황석영이가 글을 쓰기 위해 자진 입대해 전쟁을 겪었고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신양호가 소대를 이끌고 치열한 전투 끝에 부상을 입었던 전쟁터로 기억되는 것이 베트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6.25를 모르듯이 베트남 젊은이들도 그들의 전쟁에 무심했다. 내가 묵은 올라라니 호텔의 청년 직원에게 “한국이 월남전 때 너의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싸운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공산국가였던 적의 나라에 관광객으로 찾아와 한국 주인의 해변식당에서 해산물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청춘 남녀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광란의 춤을 추는 클럽 인파 속에 서 있던 나는 역사의 역설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젠 사회주의 국가가 돼 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민들이 돈벌이에 치열하다는 것이 오랜 역사를 지닌 무역항 도시 호이안으로 가는 관광버스 안내원의 말이다. 그는 “모두 돈과 집과 차가 있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이다”고 알려줬다. 호이안의 노점에서 국가의 영웅인 호치민의 얼굴이 새겨진 매그닛을 사면서 새삼 자본주의의 위력을 실감했다.
호이안은 ‘귀신 잡는 해병’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 다낭에는 아직도 미 해병이 썼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전쟁이 남기고 간 오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매우 동경하고 있다고 현지 한국인이 알려줬다. 한류바람 외에도 전쟁을 겪고도 잘 사는 한국의 발전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조반으로 매일 맛있는 쌀국수만 먹은 숙소의 아오자이를 입은 리셉셔니스트는 “A급 리조트호텔에 취업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호텔 식당에서는 ‘언체인드 멜로디’와 ‘리듬 오브 더 레인’ 같은 옛날 미국 팝송을 계속해 틀어댔다.  
그런데 객실이 300여개나 되는 호텔이 텅텅 비어 이유를 물었더니 최근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중국 관광객들과 안전을 우려한 다른 외국인들이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한강(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다)을 건너 다운타운에 가는 길에 오토바이가 넘쳐흐른다. 아빠 엄마 아이가 탄 가족용 자가용인데 거리에 신호등이 많지가 않다. 베트남 제3의 도시 다낭은 사방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붐타운으로 한국의 1960년대를 연상시킨다.
다낭보다는 유서 깊은 호이안이 진짜 구경거리다. 호이안 올드시티는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명된 후 관광으로 먹고 사는데 작은 도시에 호텔만 줄잡아 70여개요 연중 관광객이 300여만명에 이른다고. 관광객들로 거리가 바글바글 댄다.
전쟁에도 파괴 안 된 옛 모습 그대로로 시장바닥에 들어서는데 삿갓을 쓰고 베트남 지게에 바나나 등 과일을 담아 파는 아주머니들이(사진) 사달라는 미소를 보낸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에서 영어를 기차게 잘 하는 허슬러 같은 젊은 주인으로부터 매그닛과 기념품을 사고 값은 달러로 냈다. 1달러가 2만동으로 어디서나 달러가 통용됐다. 달러벌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낮이고 밤이고 덥고 끈끈하다. 걷는데 온몸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옛날에 에어컨 없던 서울의 여름밤 더위와 습기에 지쳐 후줄근하니 가사상태에 빠졌던 무기력감이 사로잡는다.  
다낭에 도착한 이튿날 새벽 바다로 면한 호텔방 창문이 노랗게 달아오른다. 커튼을 여니 바다 아래서 불뚝불뚝 치솟아 오르는 태양이 자기 몸을 붉게 태우다 못해 백열을 내뿜으며 치를 떤다. 문득 강원도 해안 보초 생각이 났다. 그 때 난 매일 아침 저 불덩어리를 봤다. 베트남은 정말로 덥고 끈적끈적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