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8월 21일 화요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 (Crazy Rich Asians)

아들 닉의 애인 레이철을 맞이하는 엘리노어(왼쪽)의 표정에 온기가 감돌지 않는다.

재벌가 아들과 우여곡절 사랑 화사하게 묘사 ‘수작’


할리웃 메이저가 25년 전에 아시안 감독과 아시안 배우들을 사용해 만든 ‘조이 럭 클럽’ 이후 처음으로 아시안 감독(존 추)과 아시안 배우들을 동원해 만든 막대한 재산과 편견을 극복한 사랑의 승리의 코미디 드라마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화사하고 재미있다. 
둘 다 뉴욕에 사는 싱가포르의 중국계 거대 부동산 재벌집 아들과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성공한 중국계 딸과의 우여곡절이 심한 사랑의 얘기인데 원작은 싱가포르 작가 케빈 콴의 베스트셀러. 가족과 전통과 명예에 집착하는 아시안들에게 특히 어필할 영화지만 내용은 보편적인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찍은 초현대식 건축과 의상과 음식 그리고 장식 등이 눈부신 칼라 촬영에 의해 화면을 야단스러울 정도로 찬란하게 장식하는데 이와 함께 주인공의 일가친척과 친구 등 수 많은 배역이 나와 누가 누구인지를 잘 구별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개개인의 묘사가 뚜렷하고 부와 호사의 극치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천박하게 처리하지 않은 감독의 재치 있는 솜씨와 배려가 가상하다.
레이철 추(콘스탄스 우)는 2세 때 홀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NYU의 경제학 교수가 된 아름답고 독립심 강한 여자. 그의 애인은 싱가포르의 엄청난 재벌집 아들 닉 영(헨리 골딩)인데 닉은 레이철에게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숨긴다. 닉의 절친한 친구 콜린(크리스 팽)이 자기 결혼식에 닉을 들러리로 서달라고 부탁하면서 닉은 레이철에게 동행을 제의한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레이철은 궁궐 같은 저택에 사는 닉의 가족이 동양 굴지의 부자라는 것을 알고 놀라고 당황한다. 그런데 레이철을 예의를 갖춰 맞는 닉의 어머니 엘리노어(미셸 여)의 표정에 온기가 안 돈다. 엘리노어는 미국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미국화한 레이철을 중국가족의 전통을 이해 못하는 여자라고 치부한다. 이와 함께 엘리노어의 친척들과 이웃 가십꾼들은 레이철이 닉의 재산을 노리는 여자라고 입방아들을 찧는다. 
레이철이 닉의 가족들에게 일일이 소개되면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이 닉의 근엄한 친할머니 아 마(리사 루-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아마는 처음에는 레이철을 친절하게 맞는다. 
물 떠난 물고기 신세처럼 된 레이철의 싱가포르 문화와 풍습 안내자요 위로가 되는 사람이 미국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졸부 아버지(켄 정이 웃긴다)를 둔 딸 펙 린 고(한국계 어머니와 중국계 아버지를 둔 래퍼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다른 배우들을 제치고 영화를 훔치다시피 한다).
연일 파티와 대연회가 열리고 장소도 도시와 휴양지 섬 등으로 이동하면서 눈요기 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이런 상황 하에서 레이철은 자기를 수용 못하는 닉의 가족으로 인해 깊은 좌절감에 빠져 닉을 떠날 생각마저 한다. 그러나 참 사랑은 모든 악조건을 이기는 법.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을 티 나지 않게 강조한 흥미진진하고 진지한 작품으로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여의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연기와 함께 우의 지적이요 민감하며 또 감정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우와 골딩의 콤비도 일품. 연출이 물 흐르듯 매끄럽고 촬영과 음악도 좋다. 
PG-13 WB.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우리는 짐승들(We the Animals)

세 형제 중 막내인 조나(왼쪽)는 엄마와 감정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다.

10대 눈에 비친 어른들 삶·형제애·동성애… 시적이고 아름답게 그려



정열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나 때론 폭력까지 동원해 싸우는 부모를 둔 어린 세 형제의 눈 그 중에서도 10세짜리 막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삶과 형제애 그리고 육체적 성장과 성적 각성(동성애)을 거칠도록 시적이요 거의 초현실적으로 아름답고 강렬하게 그린 보석 같은 소품이다. 
지극히 절제된 영화로 별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나 환상적인 촬영과 애니메이션을 동원해 표현한 아이의 내면의 온갖 생각과 감정이 피부가 상하도록 까칠까칠 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진 인상파 화가의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영화다. 
벗은 육체들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생명력을 과시하는데 특히 경탄스런 것은 세 아이들로 나오는 비배우 소년들의 자연스런 연기다. 그야말로 짐승처럼 뛰고 다투고 도둑질 하고 또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반항하는데 이들이 나오는 첫 장면부터 화면 안으로 빨려들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이 중요한 배역을 맡았지만 실제로 또래 아이들이 보기엔 성적 장면(TV화면이지만)이 많다. 
영화는 10대 안팎의 세 형제 중 막내인 조나(에반 로사도)의 눈과 귀와 내레이션에 의해 서술된다. 뉴욕 주 북부 시골에서 백인 엄마(쉴라 밴드)와 푸에르토 리칸 아빠(라울 카스티요)와 사는 세 형제 매니(아이재이아 크리스찬)와 조엘(조시아 게이브리엘) 그리고 조나는 “우리는 형제다”라며 똘똘 뭉친 아이들. 엄마는 소다공장에서 일하나 아버지는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한다. 영화는 이들 부부를 통해 앞날이 막막한 소시민들의 삶도 얘기한다.
엄마와 아빠는 뜨겁게 사랑하나 좌절감에 의해 자주 다투는데 그러면서도 엄마는 과거가 험남한 아빠의 육체와 성적 매력에 사정없이 빨려든다.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사랑과 애정 행위와 폭력과 화해를 순진한 눈으로 보면서 자란다. 아이들 중 위로 둘은 아버지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나 감수성이 예민한 조나는 어머니와 더 가깝다. 얘기의 부분 부분이 조나가 보고 느낀 것을 노트에 그림과 함께 빽빽이 적은 글로 서술된다. 
세 형제인 어린 아이들의 우정과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과 육체적 감정적 성장 및 막내의 성적 각성이 사랑하고 다투고 헤어졌다 화해하는 부모인 어른들의 삶과 교직되면서 정교하게 서술된다. 특히 훌륭한 것은 시골의 자연 풍경과 함께 클로스업을 자주 이용해 인간의 육체와 감정의 동물적인 근접성을 과시하면서 아울러 조나의 상상을 환상적인 형식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촬영이다. 음악도 좋다. 원작은 저스틴 토레스의 자신의 성장기를 쓴 동명 소설. 제레마이아 제이가 감독. R. The Orchard.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키오카 자매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딱 하나만 고르라면 난 서슴없이 곤 이치가와 감독이 만든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1983^사진)을 고르겠다.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8년 몰락해가는 오사카의 갑부 집 네 딸들에 관한 가족 멜로드라마로  화사하게 아름답고 향수감이 고즈넉하니 배인 작품이다.
원작은 주니치로 다니자키의 ‘세설’(Sesameyuki)로 제목은 봄철 가지에서 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사쿠라꽃을 말한다. 그리고 제목에서 ‘눈’이라는 뜻의 ‘유키’는 네 자매 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셋째인 유키코를 말한다.
소설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출판돼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자 검열당국에 의해 ‘온건하고 나약하며 천박하도록 개인적인 여자의 삶을 그렸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됐다. 작품 인물과 사건들은 작가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일들을 바탕으로 구성됐는데 소설은 이전에도 두차례나 영화화 했었다. 인본주의자였던 이치가와의 다른 영화들로는 반전영화들인 ‘버마의 하프’와 ‘들불’ 그리고 기록영화 ‘도쿄 올림피아드’ 등이 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사쿠라꽃이 활짝 핀 숲을 카메라가 롱샷으로 잡으면서 시작된다. 첫 장면에서 수줍은 기색의 화사한 사쿠라꽃을 보여준 카메라는 이어 눈 시린 푸른 기모노 차림에 입술에 새빨간 루즈를 바른 네 자매 중 둘째인 사치코(요시코 사카무)의 얼굴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 한다.
사치코를 비롯해 네 자매 중  첫째인 추루코(게이코 기시)와  유키코(사유리 요시나가) 그리고 막내 다에코(유코 고테가와) 및 사치코의 남편 데이노수케(코지 이시자카)는 연례 사쿠라 꽃 구경차 나들이를 나선 것.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봄이 오면 모처럼 주말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도시락을 싸들고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복작대던 창경원에 가서 사쿠라꽃 구경을 하던 옛날을 떠올렸었다.
추루코와 사치코는 시집을 갔으나 수줍음 많고 보수적이며 과묵한 유키코는 나이 서른이 되었는데도 아직 미혼이어서 언니들의 속을 태운다. 유키코는 여러 번 선을 보긴 하지만 매번 퇴짜를 놓는다. 그런데 데이노수케는 순수한 유키코를 연모한다.
넷 중 가장 신식이요 반항적인 다에코는 한 때 애인과 사랑의 줄행랑을 놓은 ‘모던 걸’로 집안 전통상 언니가 시집을 가기 전에는 결혼을 할 수가 없어 아예 시집 갈 생각을 포기한 상태. 다에코는 마키오카 가문의 미운 오리 새끼.
마키오카 네는 과거 부상으로 크게 성공, 부와 호사를 누리던 집이었으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운이 기울어가는 처지. 영화는 시대와 사회상과 가치관 및 가족의 전통 등이 변화하고 있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구시대를 상징하는 네 자매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고요하고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네 자매는 몰락한 귀족사회를 상징하는데 이들의 현대화의 물결 앞에서 과거를 지키려는 안쓰러운 모습이 자매들의 내밀하고 세세한 일상사를 통해 거의 긴장감 감돌도록 무게 있게 묘사된다.
과거에 사는 자매들의 얘기이니만큼 작품 전체에 애잔한 노스탤지어가 고여 있다. 품위와 자존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권위의식과 체면과 신분유지의 꼿꼿함이 의연한데 이런 자매들의 양반의식은 이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기모노에 의해 함축성 있게 상징된다.
영화는 기모노와 오사카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카메라가 형형색색의 무늬와 색깔로 물든 기모노를 관상하면서 아울러 이를 입은 아름다운 자매들의 얼굴과 자태를 우아하게 포착한 촬영이 관능적이다. 이치가와는 색깔을 마치 무지개를 채색한 신의 조화처럼 부리고 있다. 봄의 분홍 일색인 사쿠라꽃들과 붉고 노란 가을 단풍 그리고 사방에 가득히 내리는 백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몽롱하게 감각적이다.
끝에 도쿄로 전근하는 남편 다추오(‘담포포’ 등을 감독한 주조 이타미)를 따라 이사를 가기로한 추루코의 독백이 우리들의 삶을 잘 대변하고 있다. “계절도 변하고 일들도 벌어지지만 결국 변하는 것은 없구나.” 기품 있고 조락의 비감이 깃든 고운 영화로 가족을 한데  묶는 사랑을 강조한 작품인데 개봉이 되면서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 ‘기모노 쇼’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이치가와는 기모노상의 아들이다.
‘마키오카 자매들’이 개봉 35주년을 맞아 22일 하오 7시 로열(11523 Santa Monica Blvd.)과 플레이하우스 7(673 E. Colorado Blvd. Pasadena) 및 타운센터 5(17200 Ventura Blvd, Encino) 등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8월 10일 금요일

블랙클랜스맨 (BlacKkKlansman)


플립 짐머만(애담 드라이버-왼쪽)이 론 스탈워드(존 데이빗 워싱턴)가 받은 KKK 신분증을 보고 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흑백차별 고발‘반트럼프 영화’


똑똑 소리가 날 것처럼 총명하고 백인들을 몽땅 증오하는 것이나 아닌가 할 정도로 흑백차별에 대해 끊임없이 항변하고 저항하는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의 흑백차별에 관한 거의 황당무계한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요란하고 야단스러우면서도 강한 의식이 엿보이는 걸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1970년대 중반 백인 흑백차별주의자들의 모임인 KKK의 내막을 파헤친 흑인 경찰의 실화인데 도무지 실화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왜 뒤늦게 이제야 이런 사실이 영화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리의 야단스러울 정도로 다채로운 솜씨가 마음껏 뽐을 낸 작품으로 올 칸영화제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우습고 흥미진진하고 신랄하고 진지하며 터무니없고 야유조소하며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겁나고 또 아슬아슬한 서스펜스와 스릴마저 감도는 도전적이요 시의에 잘 맞는 영화다. 일종의 반-트럼프영화라고도 하겠는데 트럼프가 보면 “엉터리 영화요 나쁜 영화”라고 할 것이 뻔하다. 
본 얘기가 시작되기 전에 알렉 볼드윈이 인종차별주의 지도자로 나와 흑백차별을 조장하는 연설을 하는 장면이 배꼽을 뺀다. 콜로라도주에 사는 애프로 헤어스타일을 한 순진한 청년 론 스탈워드(존 데이빗 워싱턴-덴젤 워싱턴의 아들)는 정의를 구현한다는 의식 하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경찰에 들어간다. 경찰서의 첫 니그로 경찰인 그의 첫 임무는 흑인 민권운동가로 달변인 스토클리 카마이클이 연설하는 군중집회에 민간인으로 위장, 참석해 흑인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 
카마이클의 연설이 뜨끈뜨끈한데 그가 어렸을 때 본 타잔영화에서 백인 타잔이 원주민 흑인들을 죽이는 장면부터가 다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우월의식이라고 열변하는 모습을 보는 스탈워드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연설에 깊이 빨려든다. 이로 인해 스탈워드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 새삼 깨닫는데 그렇다고 그가 인종차별주의자들로 득시글대는 경찰에 대한 충성심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스탈워드는 이 집회에서 아름다운 흑인민권운동가인 패트리스(로라 해리아)를 만나 가까워지는데 로라는 경찰을 “돼지들”이라고 부른다.
스탈워드는 본부로 돌아와 서장에게 KKK의 내막을 언더카버 형사로서 수사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자기는 전화로만 KKK지부와 통화하고 동료 경찰로 유대인인 플립 짐머만(애담 드라이버)은 KKK단원을 만날 때 스탈워드로 위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KKK뿐 아니라 경찰에서도 유대인들도 차별을 받는다. 서장의 승낙을 받은 스탈워드는 음성을 바꿔 KKK지부와 통화를 시작하는데 이 장면들이 기차게 우습고 재미있다.
스탈워드로 위장한 짐머만이 KKK단원들을 만나 친분을 맺으면서 스탈워드는 마침내 KKK본부장 데이빗 듀크(토퍼 그레이스)와도 통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본부장의 특혜로 KKK단원 신분증도 신속하게 받는다. 영화는 경찰과 KKK 그리고 흑인민권운동가들 등 셋으로 구분해 얘기를 진행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KKK를 무지몽매한 깡패집단 식으로 묘사한데다 흑인과 유대인 경찰로부터 농락을 당하는 얘기여서 KKK단원들이 보면 땅을 치면서 울분을 토할 것이다. 
감동적이요 공포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마지막에 KKK 집회에서의 듀크의 인종차별 연설과 흑인들이 모인 가운데 영화배우이자 가수요 민권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가 1916년에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일어난 흑인 소년 제시 워싱턴에 대한 린치사건을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모습이 장시간 교차 묘사되는 장면. 숨통이 조여드는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데이빗 워싱턴을 비롯해 배우들이 다 연기를 매우 잘 한다. 영화는 ‘증오는 설 자리가 없다’라는 문구와 함께 끝난다. R. Focu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새벽 전의 기도(A Prayer Before Dawn)


영국인 죄수 빌리 모어(조 코울)가 태국의 교도소에서 열리는 권투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폭력·살인 난무 지옥 같은 태국 교도소 다룬 실화


연타 강펀치로 온 몸을 사정없이 구타당하는 듯한 충격을 느끼게 만드는 영국인의 태국 교도소에서의 지옥과도 같은 삶을 다룬 실화로 2시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는 액션과 폭력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앨란 파커가 감독한 미국인 청년의 터키 교도소에서의 삶을 다룬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와 탐 하디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육체가 큰 역할을 하는 ‘브론슨’을 연상시킨다.
청년 시절 3년간 태국 교도소에서 권투 하나로 생명을 유지했던 영국인 빌리 모어가 2014년에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하다. 그러나 주인공 역의 조 코울의 시종일관 거의 말없이 속을 앓는 듯한 연기와 함께 사람의 감관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가 펄펄 끓는 야수적이요 야만적인 작품이다.
태국에 사는 모어(코울)는 아마추어 권투선수이자 헤로인 중독자요 마약딜러로 경찰에 붙잡혀 교도소에 들어간다. 교도소 감방 상황이 큰 방에 죄수들을 터지도록 집어넣고 바닥에서 서로 몸을 맞대고 자야 할 정도로 조악하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흉악범들(진짜 범죄자들 출연)이 약자를 지배하는 세상으로 폭력과 강간은 다반사로 일어나며 살인마저 자행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모어는 어떻게 해서든지 헤로인을 구하고 아울러 배짱과 담대함 그리고 강인한 육체로 견뎌낸다. 그리고 과거 권투 경력이 있는 그는 타이박싱 챔피언십 경연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은 특혜를 누린다는 것을 알고 사정사정해 링에 오른다. 이어 모어는 실력을 발휘해 감방도 보다 나은 환경의 곳으로 이감된다.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기까지 교도소 내 정글과도 같은 모습과 모어의 피나는 연습이 있고 마침내 결승전이 열린다. 손으로 든 카메라가 육체의 근육과 폭력을 클로즈업으로 찍으면서 절박하도록 사실감을 부추기고 있다. 아무나 보고 즐길 영화는 아니지만 격렬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무자비한 영화다. 모어는 3년간의 복역 생활 끝에 영국 교도소로 이감된 뒤 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그는 지금 마약 사용을 방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인 장-스테판 소베르 연출. R. A24 배급.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8월 6일 월요일

사람들이 뭐라고 말 하겠니 (What Will People Say)


노르웨이에 사는 파키스탄인  니샤(마리아 마즈다)는 보수적인 부모와의 세대간 갈등에 시달린다

무슬림 이민가정의 세대 갈등 사실적 묘사


파키스탄계 노르웨이 여류 감독 이람 하크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노르웨이에 사는 보수적 무슬림 가정의 1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문화적 갈등과 여성의 권리 그리고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및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사실적이요 통절하게 다룬 알찬 영화다. 
하크가 10대 때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노르웨이에서 파키스탄으로 보내져 1년 반을 산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촉박한 현실감과 함께 그 충격이 더 강력한데 보수적인 이민 1세대와 새 환경에 익숙한 2세대 간의 갈등과 충돌이라는 점에서 같은 이민자들인 한국인들에게 남 다른 느낌을 줄 영화다.
하크의 빈틈 없이 확실한 연출력과 표정으로 내면의 착잡한 감정을 절실하게 표현한 신인 마리아 마즈다(18)의 연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출중한 작품으로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좌절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분노와 함께 주인공 소녀를 깊이 연민하게 되면서 그의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게 된다.
파키스탄인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식품점을 경영하는 아버지(아딜 후세인)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의대지망생인 오빠와 함께 사는 16세의 니샤(마즈다)는 총명하고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소녀. 니샤는 학교에서는 팝음악을 들으며 서구적인 삶을 사나 집에 돌아오면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산다. 
어느 날 밤 니샤가 자신의 동급생인 백인 애인을 몰래 자기 방에서 만났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서 니샤의 긴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버지가 딸의 애인을 구타하면서 이 소문이 동네에 퍼지고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면서 니샤의 가족은 동네사람들로 부터 왕따를 당한다. 이에 니샤의 아버지는 싫다는 딸과 함께 파키스탄행 비행기를 타고 시골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니샤를 자기 어머니와 친척들이 사는 집에 맡기고 혼자 귀국한다. 
서구에서 누리던 자유를 잃은 니샤는 낯설고 물선 곳에서 새 문화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아뿔싸 니샤와 친척의 또래 소년이 서로 눈이 맞아 밤에 골목에서 키스를 나누다가 경찰에 들키면서 니샤는 이번에는 친척집에서도 금기의 인물이 된다. 
니샤는 노르웨이서 다시 온 아버지와 함께 귀국하는데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집에서 완전히 죄수처럼 산다. 그리고 니샤의 부모는 캐나다에 사는 파키스탄계 의사와 딸을 영상으로 약혼시킨다. 주인공 소녀의 자유와 자립과 자존을 찾는 불굴의 의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혹독하고 잔인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지녔지만 용서와 희망과 관용의 여운을 품고 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니코,1988’(Nico,1988)


니코(트린 디르홀름)가 통곡하며 고통을 호소하듯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록그룹 미녀 가수의 ‘추락’… 약물중독 등 요절 3년 전의 극적이고 강렬한 삶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미국의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드 싱어로 독일 태생의 미녀 가수이자 모델이며 배우(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출연)였던 니코(본명 크리스타 페프겐)의 삶의 마지막 3년을 극적으로 강렬하고 또 꾸밈없이 거칠도록 사실적으로 그린 준수한 이탈리아와 영국의 합작품이다. 
니코는 재능 있는 미인으로 한때 앤디 와홀의 ‘팩토리’의 간판 가수였고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과의 사이에 아들 아리를 두었으나 들롱은 자기가 아버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니코는 인기가 시들면서 헤로인을 비롯한 약물중독자가 되어 1988년에 49세로 요절했다. 
이 영화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결별한 니코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밴드와 함께 자신의 최근 앨범을 선전하기 위해 영국의 맨체스터와 이탈리아 그리고 체코의 프라하 등지에서 공연한 내용을 그렸다. 헤로인이 없으면 못 사는 니코가 삶의 내리막길로 추락하는 과정이 덴마크 배우이자 가수인 트린 디르홀름의 치열하고 방기하는 듯한 압도적인 연기에 의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니코가 영국인 매니저 리처드(존 고던 싱클레어)와 밴드와 함께 순회 공연을 하는 모습과 약물에 중독된 니코의 자포자기적인 삶을 중점적으로 그리면서 니코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회상에서 니코와 다른 유명 가수들인 짐 모리슨, 밥 딜란, 믹 재거, 루 리드 및 레너드 코엔 등과의 교류가 얘기된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은 니코는 헤로인이 없으면 노래를 못 부를 정도로 중증 약물 중독자로 일단 마이크를 붙잡으면 굵은 저음으로 통곡하고 고통에 울부짖는 듯이 노래하는데 매니저와 밴드멤버 등 대인 관계는 엉망이다. 아무렇게나 자른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가죽 재킷에 검은 부츠를 신고 마치 관중을 향해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디르홀름이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가득하게 연기하는데 완전히 그의 원-우먼 쇼다. 
마지막에 니코가 정신병동에 있는 아리를 오래간만에 찾아가 재회하는 장면이 비감하다. 니코는 너무 젊었을 때 아리를 낳아 아들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 법원에 의해 양육권이 박탈돼 아리는 프랑스인 할머니가 키웠으나 탈선에 이어 정신병을 앓게 된다. 
화면을 가득히 메우는 디르홀름의 고통과 열정이 뒤엉킨 도발적이며 퉁명스럽고 또 때로는 우습기까지 하면서도 자기를 내던지는 듯한 연기가 보는 사람을 화면 안으로 끌어당긴다.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겁나는 연기다. 수잔나 니키아렐리 감독(각본 겸).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화이드 탈옥하다


7월 1일 일요일. 헬기가 프랑스의 레오에 있는 교도소 마당에 내린 뒤 헬기에서 복면을 한 괴한들이 튀어나와 연막탄과 철문커터를 사용해 교도소 내로 진입했다. 이어 이들은 강도미수 죄로 25년형을 살고 있는 악명 높은 갱스터 르드완 화이드(46^사진)를 교도소에서 빼내 헬기에 태운 뒤 사라졌다.
마치 특공대작전이나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스릴러 ‘브레이크아웃‘(Breakout)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탈옥에 걸린 시간은 10분 미만. 화이드 일당은 이 시간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화이드는 2013년에도 복역 중이던 리유 인근의 교도소에서 간수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해 탈옥한 경력이 있는 프로 범죄자다.
흥미 있는 사실은 화이드가 영화광이라는 점이다. 그는 특히 범죄영화를 잘 만드는 마이클 맨의 열렬한 팬으로 로버트 드 니로가 범죄자로 나온 ‘하이스트 영화’(털이영화) ‘히트’(Heat)를 극장과 집에서 수밴 번 봤다고 르 피가로지가 보도했다. 신문은 화이드가 영화의 도주 장면을 자신의 강도질에 이용했고 이와 함께 이 영화에 보내는 헌사 식으로 영화 장면처럼 범행 시 하키 마스크를 썼다고 덧 붙였다.         
화이드가 맨에게 매료된 첫 작품은 맨의 데뷔작으로 제임스 칸이 나온 ‘도둑’(Thief). 그 뒤로  화이드는 맨을 우상처럼 섬기게 되었는데 2009년에는 맨을 파리에서 열린 영화 토론회에 찾아가 질문까지 했다. 화이드는 자니 뎁이 미 갱스터 존 딜린저로 나온 ‘공공의 적들’(Public Enemies)의 개봉에 맞춰 있은 토론회에 참석, 맨에게 질문을 던졌다.
화이드는 그 때 무장강도와 보석강도 죄로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을 때였다. 화이드는 먼저 맨에게 자신을 전직 갱스터라고 소개한 뒤 “당신의 범죄영화들은 내겐 사실보도이자 가록영화다. 당신은 나의 기술자문이요 대학교수이자 사부”라고 찬양한 뒤 “당신은 갱스터들이 당신의 영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맨은 매우 당황해 하면서 “고맙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화이드는 범죄를 저지를 때 맨의 영화뿐 아니라 다른 범죄영화도 모방했다. 보석상을 털 때는 퀜틴 타란티노의 보석상 털이영화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에서처럼 범행동지들의 이름을 ‘미스터 와이트’ 등 본명 대신 색깔 이름으로 불렀다.
또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강도영화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에서 영감을 얻어 행한 은행강도 때는 프랑스 대통령들인 샤를르 드골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얼굴가면을 쓴 뒤 영화의 대사까지 인용했다. ‘포인트 브레이크’에서 범인들이 은행강도를 할 때 레이건과 닉슨과 존슨 및 카터 등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가면을 쓴 것을 모방한 것이다.
화이드는 2010년에 낸 자서전 ‘갱스터:슬럼에서 큰 범죄로’에서 자신의 범죄와 영화에 대한 똑 같은 사랑을 고백하면서 범죄로 부터의 은퇴를 선언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영화가 없다면 범죄도 50%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드는 허구와 사실의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겠는데 그의 범죄는 어떻게 보면 꼬마가 서부영화를 본 뒤 장난감 총을 빼들고 사격하는 흉내를 내는 것의 성인판이리고 하겠다. 화이드 못지않게 영화광인 나도 어렸을 때 웨스턴의 건맨 흉내를 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본 프랑스 영화계 누벨 바그의 효시적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가 끝난 뒤 극장 밖에 나와서 주인공 장-폴 벨몽도처럼 하늘에 뜬 눈부신 태양을 쳐다보면서 인상을 쓰기도 했다.
영화의 힘이란 막강한 것인데 유감스런 것은 가끔 범죄나 폭력영화를 모방한 범죄가 저질러지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탠리 쿠브릭의 ‘클라크워크 오렌지’(A Clockwork Orange)다. 이 영화를 본 영국의 10대들이 영화에서처럼 ‘빗속에 노래하며’를 부르면서 소녀를 강간했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선 역시 영화처럼 10대들이 재미로 노숙자를 불태워 죽였다. 이에 쿠브릭은 자기 영화의 영국 내 상영을 오랫동안 금지한 바 있다. 
조승희의 버지니아텍 총기 살육사건 때는 조승희가 손에 망치를 든 사진 때문에 이 사건을 최민식이 망치를 휘두른 ‘올드 보이’와 연결시키려 했다. 콜로라도주 오로라극장 내 총격사건 때는 범인이 ‘다크 나잇’(Dark Knight)의 조커처럼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경찰에 체포될 때 “나는 조커다”:라고 말해 그가 영화의 조커 흉내를 냈다는 말을 들었다
화이드를 영웅으로 여길 범죄자들이 그를 모방한 범죄를 저지르고 화이드의 이번 탈옥을 계기로 그의 범죄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경찰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을 화이드와 그의 일당은 지금 어딘가에 숨어서 맨 감독의 영화를 자신들의 범죄 교본으로 보면서 다음 범죄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와 범죄의 순환 고리가 과연 언제 끊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