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패딩턴 (Paddington)

패딩턴이 양손에 치솔을 들고 용도를 생각하고 있다.

“난 말하는 곰… 귀여운 사고뭉치죠”


진짜로 재미있고 훈훈한 정이 넘쳐흐르는 온 가족용 영국 영화다. 장난이 심한 사고뭉치의 말하는 곰과 이 곰을 집안에 수용한 런던의 한 가족 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로 속도 빠르고 우습고 유연하며 또 재치 넘치고 다정다감하다.
가족의 사랑을 강조한 물 떠난 물고기의 얘기인데 액션과 스턴트가 콩 튀듯 하고 냉소적인 유머와 위트가 촘촘히 담겨 있는가 하면 곰의 표정과 동작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기술 그리고 곰의 음성 연기와 인간 배우들의 연기가 만점이다. 
탐정영화 티를 내면서 액션과 스릴을 마음껏 활용했는데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및 밝고 알록달록한 색깔과 시각효과 등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든 매력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에 주인공인 말하는 곰 패딩턴(벤 위셔의 음성)의 페루 정글에서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1930년대 이곳으로 온 친절한 탐험가 부부가 찍은 필름에 의해 설명되는데 이들 부부 때문에 패딩턴과 그를 키우는 삼촌 곰 파스투조(마이클 갬본 음성)와 아줌마 곰 루시(이멜다 스턴튼 음성)는 완전히 영국통이 된다.
그런데 정글에 지진이 나면서 삼촌은 죽고 아줌마는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자 패딩턴은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런던으로 밀항한다. 도착한 곳이 런던의 패딩턴 기차역. 여기서 패딩턴은 보험회사 중역인 엄격한 헨리 브라운(휴 본느빌)과 그의 생기발랄한 아내 메리(샐리 호킨스) 그리고 이들의 두 남매 주디(마들렌 해리스)와 조나산(새뮤얼 조슬린)에 의해 발견된다.
헨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리가 우겨서 패딩턴을 곱게 단장한 정리정돈이 잘된 집에 데려와 묵게 한다. 정글에 살던 곰이 도시 인간의 집에 살면서 자행하는 온갖 시행착오로 인해 헨리의 인형 집과도 같은 집은 난장판이 된다. 
그러나 패딩턴이 원래 귀엽고 또 속은 착한 곰이어서 곧 이어 브라운네 온 가족과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면서 한 가족처럼 산다. 
이렇게 곰과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희귀종인 패딩턴을 잡아 박제를 해서 자기 수집품으로 만들려는 예쁘게 생긴 독한 여자 박제사 밀리센트(니콜 키드만)가 등장하면서 패딩턴과 브라운네는 뜻하지 않은 액션과 음모와 모험에 휘말려든다.
브라운네 가정부 역의 줄리 월터스를 포함해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다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빼어난 것은 호킨스다. 철저히 꾸밈이 없는 아름답고 편한 연기다. 이와 함께 사파리 복장을 한 키드만의 요부 닮은 차가운 모습과 연기도 일품인데 키드만은 디즈니의 만화영화 ‘101마리의 달마시안’의 나쁜 여자 크루엘라 드 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들 인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것은 패딩턴이다. 패딩턴 곰 인형께나 팔려나가게 생겼다. 100% 귀엽고 즐겁고 신나며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폴 킹 감독. PG. TWC.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휴먼 캐피털(Human Capital)

투자전문가 지오반니(오른쪽)와 그의 아내 칼라가 집에서 연 파티에서 축배를 들고 있다.

한밤 빗속 교통사고, 그리고 두 가족 운명은


심야 우중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운명이 연결되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브리안자에 사는 두 가족에 관한 가족 드라마이자 성격탐구 영화이며 스릴러로 블랙 코미디의 기운도 갖춘 이탈리아영화. 화려함 속에 초조와 불안을 감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경기침체와 함께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파헤친 사회 드라마이기도 한데 인간의 가치를 유로로 재려는 황금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제목은 법률용어로 사고의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할 때 계산하는 희생자의 순 가치를 말한다.
영화는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얘기되는 4막극 형식으로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심야의 비극적 교통사고가 재연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 사고에 관한 정보가 확대 제공된다.   
투자전문가인 지오반니(화브리지오 지후네)와 그의 배우 지망생이었던 ‘트로피 부인’ 칼라(발레리아 브루니 타데스키)는 백만장자로 둘 사이에는 고교생 아들 마시밀리아노(구그리엘모 피넬리)가 있다.
지오반니네의 부와 신분을 동경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상류층에 이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중류층 부동산 업자 디노(회브리지오 벤티볼리오)는 쌍둥이를 임신한 착한 아내 로베르타(발레리아 골리노)와 전처 사이에서 본 여고생 세레나(마틸데 베르나스키)가 있는데 둘 다 고급 사립학교에 다니는 마시밀리아노와 세레나는 애인사이다.
그런데 디노가 자기 집을 저당으로 융자를 해 지오반니에게 투자를 부탁한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디노의 돈이 몽땅 날아가면서 디노는 지오반니에게 본전이라도 달라고 부탁하나 거절당한다. 
이와 함께 두 가족의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 표창식이 열리고 있는 밤에 치명적인 교통사고가 나면서 이 사고를 둘러싸고 두 집이 운명적으로 연결된다. 
과연 누가 사고차를 운전했는가. 챕터가 바뀔 때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향해 이야기가 조금씩 조금씩 진전한다. 
이탈리아의 초호화 캐스트의 연기가 볼만한데 특히 자신의 꿈을 접고 상류층 부인 행세하느라고 속이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칼라 역의 브루니 타데스키의 연기가 조용하니 압도적이다. 프로덕션 디자인과 현지에서 찍은 촬영 그리고 서스펜스 기운이 있는 음악도 좋다. 영화는 미국 작가 스티븐 아미돈의 소설이 원작으로 미 코네티컷주가 무대인 것을 이탈리아의 브리안자로 옮겼다. 파올로 비르지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제7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결산

작품상부터 연기상까지‘독립영화들 잔치’


텍사스에 사는 한 소년의 삶과 그의 부모와의 관계를 12년 간에 걸쳐 만든 ‘보이후드’는 리처드 링크레이터가 감독상을 그리고 소년의 어머니로 나온 패트리샤 아켓이 여우조연상을 타 3관왕이 됐다. 이로써 LA와 뉴욕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서도 2014년도 최우수 영화로 뽑힌 이 영화는 2월에 있을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을 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보이후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에디 레드메인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둘러싼 과격하고 파격적으로 상상력이 무성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작품상 수상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상은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가 연출한 ‘버드맨'(Birdman)이 탈 것으로 예상됐었기 때문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감독한 웨스 앤더슨은 수상소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상‘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에서 골든 글로브를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의 일부 회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3년 연속 두 여류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이번으로 마지막 사회)의 재치 있는 사회로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사회자를 비롯해 수상자들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 강한 지지발언들을 했는데 이는 지난해에 발생한 소니사에 대한 북한 측(미 정부의 주장)의 해킹과 얼마 전 파리에서 발생한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무슬림 테러 때문이다. 
이날 뜻밖의 손님은 북한군 복장을 한 한국계 여류 코미디언 마가렛 조. 마가렛은 시종 엄격한 표정을 지으면서 김정은의 표지사진이 있는 북한 영화잡지 ‘무비즈 워우’의 기자로 나와 잡지를 들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 메릴 스트립과 셀피를 찍겠다고 요구했다. 이어 마가렛은 무대로 올라가 나치군인처럼 거위걸음으로 퇴장해 만장의 폭소와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전에 두 사회자는 인사말에서 “오늘 우리는 북한이 O.K.하는 모든 영화들에 시상할 것을 기대한다”고 이죽거렸다.           
드라마 부문 남자주연상은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에서 근육위축증을 앓는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으로 나온 에디 레드메인이 그리고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는 ‘버드맨’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재기를 노리는 한물 간 영화배우로 나온 마이클 키튼이 각기 받았다. 그리고 ‘모든 것의 이론’은 음악상을 ‘버드맨’은 각본상을 추가로 받았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에이미 애담스.
드라마 부문 여자주연상은 ‘스틸 앨리스'(Still Alice)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대학 교수로 나온 줄리앤 모어가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는 ‘빅 아이즈'(Big Eyes)에서 날사기꾼 남편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남편이 그린 것처럼 묵인한 실존하는 여류화가 마가렛 킨 역을 맡은 에이미 애담스가 각기 받았다.
드라마 부문 남녀주연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상은 주인공이 아프거나 죽어야 탄다’는 말이 또 한 번 여실히 증명됐는데 레드메인과 모어는 이로써 오스카상도 탈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모어는 떼 놓은 당상이나 레드메인은 키튼과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이다.   
남자조연상은 재즈드라마 ‘윕래시'(Whiplash)에서 제자를 독재자처럼 다루는 선생으로 나온 베테런 J.K. 시몬스가 탔다.
주제가상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지지자들과 함께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해 앨라배마주의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까지 행진한 역사를 다룬 ‘셀마'(Selma)의 ‘영광'(Glory)이, 만화영화상은 속편 ‘용 훈련법 2'(How to Train Your Dragon 2)가 받았다. 만화영화상은 ‘레고영화’(The Lego Movie)가 그동안 죽 상승세를 타왔으나 이번에 밀려나면서 오스카상 수상에도 다소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외국어 영화상은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을 무대로 부패관리에 저항하는 소시민의 얘기를 그린 ‘리바이아탄'(Leviathan)이 받았다. ‘리바이아탄’은 성경의 욥기를 현대화한 것이다. ‘리바이아탄’의 수상도 다소 이변으로 이 부문 수상작으로 가장 유력시됐던 것은 예비수녀의 얘기를 그린 폴랜드영화 ‘이다'(Ida)였다.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탄 사람은 국제 인권변호사인 레바논 태생의 아말 알라무딘과 갓 결혼한 조지 클루니. 옷에 프랑스어로 쓴 찰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나는 샤를리’라는 배지를 단 클루니는 자리에 앉은 아내를 내려다보면서 “53세에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어떤 연금술의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당신의 남편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대해서 언급, 시상식 날 파리에서 열린 세계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행진을 상기시면서 “그들은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공포 속에서 걷지 않을 것이라는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걸었다. 우리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샤를리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골든 글로브는 TV 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이날 이 부문 수상작을 보면 여러 작품이 신작들로 TV가 아닌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을 통해 관람이 가능한 것들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HFPA는 통상 사기진작을 위해 좋은 신작에 대해 시상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은 각부문 수상작들이다.
*시리즈(드라마)-‘정사'(The Affair 신작) *드라마(코미디)-‘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 신작) *영화/미니 시리즈-‘파고'(Fargo) *여자주연(드라마 시리즈)-루스 윌슨(정사) *남자주연(드라마 시리즈)-케빈 스페이시(‘하우스 오브 카즈’ House of Cards) *여자주연(코미디 시리즈)-지나 로드리게스(처녀 제인 Jane the Virgin-신작) *남자주연(코미디 시리즈)-제프리 탬보(트랜스페어런트) *여자주연(미니시리즈/영화)-매기 질렌할(‘명예로운 여인’ The Honorable Woman) *남자주연(미니시리즈/영화)-빌리 밥 손턴(파고) *여자조연(미니시리즈/영화)-조앤 프로갯(‘다운턴 애비’ Downton Abbey) *남자조연(미니시리즈/영화)-맷 보머(‘노말 하트’ The Normal Heart)     

11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독립영화들의 잔치였다. 이날 드라마 부문과 코미디/뮤지컬 부문(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에서 각기 작품상을 받은‘보이후드’(Boyhood)와‘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은 모두 독립영화사나 메이저에 속한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들의 작품이다. 이 밖에도 각본과 여우주연과 남우주연 및 조연상 등을 받은 작품도 모두 메이저의 영화들이 아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북한 HFPA 기자



나는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에 북한 여기자 조영자가 새 회원이 된 것을 11일에 열린 제7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때야 비로소 알았다. 조영자가 HFPA의 회원이 되려면 먼저 회원이 된 같은 한국 사람인 내게 그가 예의상 절차상으로 먼저 회원가입 의사를 밝히는 것이 우리 협회의 관례인데 내가 조영자의 가입을 몰랐으니 이야말로 경악할 지경으로 파격적인 이변이다.
HFPA의 회원이 되려면 2명의 기존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되는데 난 누가 조영자를 추천했는지 알바도 없지만 내가 그를 추천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시상식의 두 사회자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서 있는 무대에 북한 장군 군복 차림의 조영자가 등단(사진)한 뒤 두 사회자가 그를 HFPA의 새 회원이라고 소개했을 때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 이거 강력한 새 경쟁자가 생겼구나’하는 경계심과 함께 ‘아니 이럴 수가’하고 당황했는데 마치 6.25 때처럼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식이 끝난 후 만난 HFPA의 이탈리아 동료회원 루카가 나보고 “너 북한 기자 들어와도 상관없니”라며 약을 올렸다. 
기자란 유독 경쟁심이 심한 직업이어서 나는 조영자가 시종일관 방귀 참는 얼굴을 해가지고 무대에서 익살을 떨어대며 만장의 폭소를 받는 것이 부럽고 속상했다.
HFPA 회원 된지 8년 만에 이제야 비로소 할리웃 스타들과 얼굴을 익혀 서로 “하이”하는 사이인 나와 달리 풋내기인 조영자는 시상식 무대에까지 서고 또 순식간에 자기 이름이 할리웃에 파다하게 알려졌으니 내 속이 상할 것은 당연지사다.
조영자의 매체는 잡지 ‘무비즈 워우!’(Movies Wow!)로 그는 이날 이 잡지를 들고 나와 김정은의 사진이 박힌 표지를 시상식 중계 TV 카메라 앞에다 대고 내휘둘렀으니 앞으로 이 잡지가 불티나게 팔릴 것이라는 생각에 라이벌 의식이 속에서 강하게 요동을 쳤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잡지의 부장인 조영자는 인민군 장군으로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장군이 연예지 기자 노릇도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조영자에 대한 이런 착잡한 감정과 함께 ‘야 이젠 우리 한국에서 남북한 기자가 함께 HFPA 회원이 됐구나’하는 뿌듯한 자긍심 또한 느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우리나라가 통일도 되겠구나 하는 가는 희망마저 가져봤다.
그러나 알고 보니 꿈에서 깨어난 듯이 조영자는 북한 기자가 아니라 유명한 한국계 코미디언 마가렛 조였다. 나는 1994년 TV 시리즈 ‘올-아메리칸 걸’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마가렛을 단독 인터뷰해 그와는 구면이다. 
마가렛은 이날 시상식의 큰 흐름인 표현의 자유를 위트와 농담으로 강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시상식에서는 소니의 해킹과 파리의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를 규탄하고 아울러 어떤 위협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표현됐다.
미 정부가 소니 해킹의 주범으로 밝힌 북한은 이날 여러 차례 야유와 농담의 대상이 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먼저 페이와 폴로가 서두에서 “오늘 우리는 북한이 O.K.하는 영화들을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북한의 소니사 영화 ‘인터뷰’에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현을 비웃었다. 
이어 등단한 조영자는 “너희들 쇼에는 1,000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기타도 치지 않고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카드를 든 사람들도 없으며 데니스 로드맨도 없다”면서 서툰 영어로 북한과 김정은을 조롱했다.
조영자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서는 메릴 스트립을 향해 삿대질을 해가면서 함께 셀피를 찍겠다고 강력히 요구, 자리에 앉았던 마이클 키튼(그는 이날 ‘버드맨’으로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탔다)이 조영자의 셀폰으로 둘을 함께 찍어줬다.
이어 단상에 오른 조영자는 나치 병정식의 거위걸음으로 퇴장했는데 이날 일부에서는 마가렛의 북한 조롱에 대해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트위터가 날아들었다. 이에 대해 마가렛은 “나는 북한과 남한의 부모를 가진 후손이다. 너희들이 나의 사람들을 투옥하고 굶기고 세뇌하니 나에 의해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대응했다. 나도 동감이다.
이어 마가렛은 “내 농담보다는 이날 시상식에 무대에 선 아시아계 연예인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라고 할리웃의 소수민족에 대한 푸대접을 비판했다.
이 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언급한 여러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은 사람은 HFPA 회장 테오 킹마(네덜란드 사진기자). 그는 인사말에서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파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에서나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단결해 맞설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참석자들이 먹고 마시면서 진행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식후 각 영화사들이 마련하는 파티와 함께 통상 샴페인이 넘쳐흐르는 주신 바커스의 야단스런 잔치로 알려졌다. 이날도 샴페인과 캐비아가 모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예년의 쇼와는 달리 재미와 엄숙함이 겸비된 매우 성숙한 시상식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