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작별’(Farewell)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주연을 맡은 빌리(앞줄 가운데)와 할머니(빌리 옆 오른쪽)를 둘러싸고 25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이 앉아 있다.

할머니 죽음 앞두고 모인 이민 중국인 가족이야기


미국과 일본으로 이민 온 중국인 가족들이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의 사망을 앞두고 오래간 만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을 확인하는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나는 가족 코미디 드라마다. 역시 중국인 가족들의 얘기인 ‘결혼 피로연’과 ‘조이 럭 클럽’ 및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을 연상케 하는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코믹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본명은 노라 럼으로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주연을 맡아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를 이끌어간다.         
아콰피나의 어머니는 딸이 6세 때 사망해 그 후 아콰피나는 친할머니가 키웠는데 영화의 중심 내용이 할머니를 극진히 사랑하는 손녀와 역시 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친할머니와의 관계를 다뤄 아콰피나의 연기가 더 사실적인 것 같다. 감독하고 각본을 쓴 사람은 중국계 룰루 왕으로 그의 경험을 다룬 반 자전적 작품이다. 
중국 사람들이어서 잘들도 먹는데 이렇게 먹고 마시고 왁자지껄하니 떠들어대는 장면이 계속돼 다소 극적 추진력이 미흡하고 단조롭기는 하지만 매우 감정적이요 민감하게 가족관계와 문화와 세대갈등 그리고 전통과 현대화의 불균형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우습고도 감상적인데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히 어필할 작품이다.          
빌리(아콰피나)는 6세 때 중국 장춘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성장한 작가지망생. 빌리의 어머니 지안(다이애나 린)은 생활에 헌신하다보니 감정이 무뎌졌고 애주가인 아버지 하이안(치 마)은 천하태평형. 영화는 빌리가 장춘에 사는 친할머니 나이 나이(자오 슈젠)와 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빌리와 나이 나이는 못 본 지가 오래 됐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나이가 기침이 심해 여동생 리틀 나이 나이(루 홍)과 함께 병원에 가 CT촬영을 한다. 의사는 리틀 나이 나이에게 언니가 폐암으로 앞으로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통보한다. 리틀 나이 나이는 이를 언니에겐 알리지 않고 빌리 네와 일본으로 이민 간 하이안의 형 하이빈(지앙 용보) 가족에게 통보한다. 
그래서 온 가족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데 핑계는 하이빈의 아들 하오 하오(첸 한)와 그가 만난 지 3개월 밖에 안된 일본인 애인 아이코(아오이 미주하라)의 벼락치기 결혼. 엉겁결에 급조된 결혼식을 올리게 된 한 쌍을 놓고 벌어지는 코미디가 재미있다. 매사에 리더 노릇을 안 하면 몸살이 나는 나이 나이의 진두지휘 하에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하다. 한편 나이 나이는 할머니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이 못 마땅해 속을 썩이고 항의를 하지만 가족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아콰피나가 듬직한 연기를 하면서 영화를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는데 그를 둘러싼 앙상블 캐스트도 아주 좋은 연기를 한다. 특히 자오 슈첸과 치 마의 연기가 돋보인다. 촬영도 좋다. PG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드솜마’(Midsommar)


대니(오른쪽서 두번째)가 크리스천의 기상천와한 행위를 보고 대성통곡하자 마을 여인들이 함께 통곡하고 있다.

공동생활촌 축제 중 벌어지는 한여름의 공포·악몽


제목은 스웨덴어로 한 여름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한 여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눈을 뜨고 꾸는 악몽이다. 
감독 겸 각본을 쓴 아리 애스터의 재주 자랑이 장난이 지나치다시피하다고 여기질 만큼 변덕을 부리는 공포영화로 과다하게 끔찍한 장면(눈 뜨곤 못 본다)을 사용해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요 흥미를 오히려 저해한다.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힘든 영화로 북구라파의 민화요 전설 같기도 하고 피범벅 변태적인 동화이기도 한데 영화가 잘 나가다가 어디로 빠진다는 식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얘기를 서술하다가 돌연 너무 터무니가 없어 폭소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잔인하고 해괴한 내용을 섞어 넣어 “또 저러네. 별짓 다하네”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스타일과 무드가 얘기를 앞지르고 배우들의 역이나 성격 묘사가 충분히 개발 되진 못 했지만 보면서도 도저히 믿지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해괴망측하고 이상하고 얄궂은 영화다. 그러나 상영시간 2시간 26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보기 전에 마음 단단히 간직할 각오들을 하도록 충고한다. 
외지인을 산 제물로 바치는 공동 생활촌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삶의 순환 같은 철학적인 소리도 하고 있지만 그 것은 괜한 소리. 
주인공인 젊은 여자 대니(플로렌스 퓨)의 끔찍한 가족 비극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대니는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달린다. 그에겐 대학원생으로 인류학 논문을 준비 중인 애인 크리스천(잭 레이노)이 있는데 둘의 관계는 파경 직전에 이른 상태. 크리스천은 다소 감정이 둔해 대니의 아픔 달램에 별 도움이 못 된다. 
크리스천에게는 3명의 친구가 있는데 이들은 역시 인류학을 공부하는 진지한 조쉬(윌리엄 잭슨 하퍼)와 스웨덴에서 유학 온 펠레(빌헬름 블롬그렌)와 막돼먹은 마크(윌 풀터). 이들은 펠레의 초청으로 그가 자란 스웨덴의 공동 생활촌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에 대니가 합류한다. 그리고 이들의 2주간의 여름 여행은 악몽과 공포와 유혈참극으로 끝난다.
모두 얇은 백의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두른 채 친절한 미소를 짓는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크리스천 등은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약초를 서비스 받으며 여름의 목가적 분위기를 즐기는데 마을은 9일간의 여름 축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축제과정의 하나로 방문객들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한 일을 목격한다. 이들이 그 후에도 마을을 왜 안 떠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역시 외지인인 펠레 동생의 영국인 친구와 그의 애인은 짐을 꾸려 마을 떠나나 그 후 행방불명이 된다. 
축제가 계속되면서 크리스천 일행은 기상천외한 일들을 목격하는데 이어 동네 처녀의 유혹을 받은 마크가 사라지고 그 다음 희생자는 조쉬. 그러나 대니는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하는 댄스(상-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댄스’가 들려오는 것 같다)에서 이겨 ‘메이 데이’ 여왕이 되면서 제물로 바칠 마을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갖는다. 처음에 크리스천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 갇힌 거대한 누런 곰을 보게 되는데 이 곰의 역할은 영화 끝에 끔찍하면서도 폭소가 터져 나올 만큼 해괴한 용도로 쓰여진다. 마지막 대니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영화를 본 필자의 느낌을 대변한다. 촬영과 함께 음악과 음향효과가 아주 좋다. R등급. A24배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르탕 게르의 귀환’(The Return of Martin Guerre)


베르트랑드는 9년 만에 귀환한 남편 마르탕을 반갑게 맞는다.

전쟁 나갔다 9년만에 돌아온 남편이 가짜? 스릴 넘치는 기상천외 프랑스영화


재미있게 지어낸 전설과 같은 얘기인데 실화다. 신분 도용에 관한 이상하고 얄궂은 미스터리 드라마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실화인데도 내용이 하도 기상천외해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흥미진진한 옛날 애기를 듣는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서스펜스와 스릴마저 갖추면서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까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일종의 재판 드라마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16세기 중엽 프랑스의 농촌의 모습과 가족관계, 결혼의 신성 및 교회의 역할 그리고 재산과 돈에 관한 역사도 함께 알아 볼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프랑스 작품이다. 
1549년 프랑스 남부 피레네산맥 아래 농촌 마을 아티가. 근면하고 아름다운 아내 베르트랑드(나탈리 바이가 고혹적이다)와 어린 아들을 둔 마르탕은 농사에는 관심이 없고 전쟁에 나가 세상 구경이 하고파 안달이 났다. 그리고 마르탕은 어느 날 아내와 아들과 부모를 버리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9년 후 마르탕(제라르 드파르디외)이 느닷없이 귀환한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달라진 마르탕을 거리를 두고 대하다가 마침내 받아들인다. 그리고 베르트랑드도 마르탕과 포옹을 나눈다. 마르탕은 과거와 달리 근면하게 일하면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전쟁에서 겪은 경험을 재미있게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주민들의 큰 환심을 산다. 
그런데 마르탕이 자기 없는 동안 자기 농토를 돌본 삼촌 피에르(모리스 바리에)에게 자기 땅으로 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친척 간에 반목이 생기고 이 반목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까지 번진다. 어느 날 마을에 떠돌이 세 명이 도착해 마르탕을 보더니 그가 마르탕이 아니라 마르탕과 함께 전쟁에 나갔던 아르노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밝힌다. 진짜 마르탕은 한 쪽 다리를 잃은 채 플란더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탕은 이를 부인하나 조카에게 앙심을 품은 피에르가 마르탕을 가짜라고 고소하면서 재판이 열린다. 재판에서 마르탕이 자기 결혼과 마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면서 승소한다. 그러나 피에르가 얼마 후 다시 마르탕을 고소하면서 두 번째로 재판이 열리고 여기서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돌아온 마르탕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가짜라면 어떻게 해서 아내가 그 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대답은 재판에서 나온다. 드파르디외가 차분하게 연기를 잘하고 바이도 조용하나 알찬 연기다. 촬영과 이미지도 마치 한 폭의 농촌화를 보는 것 같다. 1982년 작으로 새 프린트로 재개봉된다. 이 영화는 1993년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소머스비’로 리메이크됐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예스터데이’(Yesterday)


수퍼스타 가수가 꿈인 잭이 동네 후진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틀즈 없는 시대로 간 가수지망생
환상을 그린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비틀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비틀즈 노래가 계속해 나오는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환상영화로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보고 즐길 만한 영국영화다.
감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이고 각본은 달짝지근한 로맨스 영화들인 ‘노팅 힐’과 ‘러브, 액추얼리’를 쓴 리처드 커티스.
커티스의 이런 영화들처럼 내용이 사카린 맛이 나고 관객에게 아첨하듯이 알록달록 겉치장을 한데다가 감상적이긴 하나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향수감에 젖어볼 만한 영화다.
런던 서부에 살면서 수퍼마켓 창고에서 일하는 인도계 영국청년 잭 말릭(히메쉬 파텔)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 그래서 저녁과 주말이면 동네 후진 술집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잭을 적극 후원하는 사람이 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팬으로 그의 매니저 노릇을 하는 엘리(릴리 제임스). 그런데 엘리는 잭을 속으로 사랑한다.
어느 날 전 세계가 잠깐 정전이 되는 순간 잭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잭이 깨어나 보니 과거 시간과 공간에 변동이 생겨 아무도 비틀즈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잭이 엘리와 친구들 앞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부르니까 친구들이 “너 어떻게 해서 이런 멋진 노래를 작곡했느냐”며 경탄한다. 잭이 구글을 두들겨 보니 ‘비틀즈’는 딱정벌레라고 나온다. 그룹 비틀즈의 스펠링은 Beatles이고 딱정벌레의 그 것은 Beetles이다.
잭은 이제야 말로 출세와 부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하고 비틀즈의 노래들을 자기 것으로 소개하면서 노래 부른다. 잭이 비틀즈의 많은 히트곡들의 가사를 다 못 외워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다. 
잭의 노래를 듣고 접근한 사람이 유명 가수 에드 쉬란(실제 영국의 가수인 쉬란이 캐미오로 나온다). 쉬란은 잭을 자기 순회공연의 백업가수로 기용하는데 자기가 잭보다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잭을 시샘한다.
잭의 노래 실력이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잭을 찾아온 사람이 할리웃의 비도덕적인 에이전트 한나(케이트 맥키논). 그리고 둘은 음악사상 최고의 앨범을 발매할 준비에 들어간다. 잭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잭은 명성과 부에 눈이 멀어 자기를 믿고 후원하던 엘리에 대해 소홀히 하면서 착한 엘리가 가슴앓이를 한다.
‘예스터데이’를 비롯해 ‘헤이 주드’(쉬란은 ‘주드’를 멋쟁이의 속어인 ‘듀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백 인더 U.S.S.R.’, ‘아이 쏘 허 스탠딩 데어’ 및 ‘아이 와나 홀드 유어 핸드’ 등 비틀즈의 노래들이 줄줄이 나온다. 파텔이 명창은 못되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연기도 귀염성 있게 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다소 충분히 사용되지 못한 감이 있다. PG-13 등급. Un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