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4월 1일 금요일

마일스 어헤드(Miles Ahead)


마일스 데이비스(단 치들)가 트럼핏을 불고 있다.


전설적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


즉흥적인 연주로 재즈에 혁신을 일으킨 전설적인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의 삶을 허구를 섞어 그의 음악처럼 즉흥적이요 자유롭게 묘사한 에너지 충만하고 흥겨운 전기영화다. 변덕이 심하고 종잡을 수 없으며 고질인 둔부의 통증과 약물과 술과 담배에 절어 살았던 마일스의 삶이 현재와 과거를 쏜살같이 오락가락 하면서 서술되는데 어둠과 고통 그리고 상실과 회한이 가득한 내용인데도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요 정신을 고양시키는 기운을 지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경하할 만한 것은 영화를 감독하고 제작하고 각본을 쓰고 또 주연까지 한 단 치들의 열정과 정성. 그는 마일스라는 인물과 그의 음악을 깊이 존경하면서 경배하듯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뛰어난 연기와 함께 그의 열의가 가슴에 전달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파리에서 연주할 때 프랑스의 명장 루이 말르의 초청을 받고 말르의 데뷔작인 분위기 멋있는 필름느와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8)의 음악을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영화는 마일스가 1970년대 후반 5년간 뉴욕의 아파트에서 칩거생활을 하다가 컴백을 하면서 이를 취재하는 자칭 롤링스톤지의 기자 데이브 브래든(이완 맥그레거-데이브는 허구의 인물)과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마일스는 재즈를 ‘소셜 뮤직’이라고 일컫는다. 얘기는 과거와 현재를 고속으로 왕복하는데 작품의 구조가 마치 마일스의 음악처럼 자유분방하다.
플롯의 골자는 마일스가 발표하지 않은 즉흥연주 테입. 이것을 탐욕적인 레코드 제작자 하퍼(마이클 스툴바그)와 그의 졸개가 훔치자 마일스와 데이브가 이를 회수하려고 하퍼를 찾아가면서 자동차 추격과 총격이 일어나는데 이런 액션은 빌려온 얘기처럼 엉뚱하다  
마일스의 과거가 회상되면서 그의 신체적 고통과 약물복용 그리고 음악세계가 묘사되는데 특히 마일스와 그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댄서 출신의 프랜시스 테일러(에메이야치 코린딜디)와의 애정과 갈등이 중첩된 삶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프랜시스는 자기 직업까지 포기해 가면서 마일스의 곁을 지키나 마일스의 약물복용과 폭력과 부정 그리고 소유욕 때문에 결국 남편을 떠난다. 
데이브 외에 또 다른 허구의 인물은 재능 있는 트럼피터인 젊은 주니어(라키스 리 스탠필드). 주니어는 젊었을 때의 마일스를 대변하고 있다.  ‘스페인 스케치’ 등 마일스의 음악이 많이 사용되는데 마지막에 허비 핸콕과 웨인 쇼터 등 영화에 협조한 재즈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이 나온다. 극적으로 얘기가 다소 약하긴 하나 활기 넘치는데 술과 담배에 절어 쇳소리를 내는 음성과 함께 볶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마일스의 모습을 재연한 치들의 연기에서 불꽃이 튄다. R. Sony Classics.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녹색의 방(Green Room)


다시(패트릭 스튜어트·가운데)와 그의 네오 나치졸개들.

펑크록 밴드의 폭력적인 생존투쟁 드라마


피가 튀고 살이 찢겨지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펑크록 밴드의 생존투쟁 드라마로 액션과 서스펜스 그리고 충격을 잘 배합한 영화이나 너무 폭력이 끔찍해 모두가 즐길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이런 찌르고 쏘고 자르고 베는 영화치곤 연기도 좋고 연출도 손색이 없다. 시종일관 긴장감과 함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살인집단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젊은이들의 얘기는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시감 있는 내용은 감독 제레미 솔리에의 교활할 정도로 기민한 작품 구성과 서술 방식에 의해 거의 새롭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영화에는 영국의 베테런 연기자 패트릭 스튜어트가 악인으로 나와 이색적인 흥미를 제공한다.
버지니아 알링턴이 고향인 남녀 4인조 펑크록 밴드 ‘에인트 라이츠’의 멤버는 이상적인 베이스 주자 팻(안톤 옐친)과 성질 사나운 드러머 리스(조 코울) 그리고 여자 기타리스트 샘(알리아 셔캣) 및 리드싱어 타이거(캘럼 터너).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후진 바에서 연주하며 푼돈을 버는데 돈도 떨어지고 장래도 별 볼일 없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 때 이들의 연주장소를 알선하는 저널리스트 태드의 주선으로 밴드는 오리건 숲 속에 있는 허술한 창고 같은 무대에 서게 된다. 청중은 머리를 박박 깎고 몸에 나치문장을 한 백인우월주의자들. 밴드는 연주를 끝내고 짐을 싸는데 멤버 중 하나가 대기실인 ‘그린 룸’에 두고 온 셀폰을 찾으러 갔다가 한 여자가 살해된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목격자들이 된 멤버들은 ‘그린 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경찰이 오기를 기다린다. 4명 외에 방에 있는 사람들은 죽은 여자의 친구 앰버(이모젠 푸츠)와 멤버들이 제압한 덩지 큰 네오나치 한 명. 무대 매니저 게이브(메이콘 블레어)는 멤버들에게 “나오면 아무 탈 없이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어르나 이들은 나갔다가는 죽을 것이 뻔해 문을 안 연다.
여기서부터 이들을 이 장소의 주인인 다시(스튜어트)와 그의 졸개들이 멤버들을 처치하기 위해 맹견과 온갖 무기를 동원해 공격을 시도하고 멤버들은 탈출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에 응하면서 유혈폭력이 일어난다. 정글용 큰 칼과 개의 이빨과 칼과 총 등이 사용되면서 쌍방에 피해자가 속출한다. 끔찍해 못 보겠다. 펑크록이 요란하게 폭력을 반주한다. 액션 팬들이 좋아하겠다. R. A24.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니카 필름센터




LA의 양질 영화의 요새라 불리는 렘리극장 체인의 하나였던 모니카 4-플렉스가 지난 2년간의 개보수공사 끝에 최근 6개의 극장과 비어와 와인 바를 갖춘 모니카 필름센터(1332 2nd St. ^사진)로 새 모습을 드러냈다. 품질 좋은 독립영화와 기록영화 및 외국어영화들 상영하면서 지난 44년간 샌타모니카 예술현장의 전당 구실을 해온 모니카 4-플렉스가 이번에 안팎을 새롭게 단장, 명실 공히 아트 하우스 시네마의 본산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모니카 필름센터는 오는 연말에는 1층과 지붕 위에 식당도 마련해 영화 애호가들의 종합 휴식처로 만들 예정이다.
웨스트LA의 로열극장이 본부인 렘리체인은 현 체인의 주인인 그레고리 렘리가 엄선한 예술성이 강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는데 쾌적한 이웃 극장이자 아울러 최신 멀티플렉스 못지않은 고급 시설을 갖춘 LA의 유일한 아트 하우스 시네마다.
렘리극장의 창설자는 그레고리의 조부인 맥스 렘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성장한 맥스의 아저씨는 ‘아저씨 칼’이라 불린 유니버설사의 창립자인 칼 렘리다. 맥스는 베를린과 파리의 유니버설 지사에서 영화배급과 극장 운영 등을 실무경험 한 뒤 2차 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1938년에 LA로 이민, 곧 이어 렘리체인 설립에 들어갔다,
이 체인의 전진기지는 현재도 LA의 버몬트 길 북쪽에 있는 로스펠리즈 극장. 맥스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곤 했다. 관객의 특성과 기호를 파악해 관객을 찾아다니며 관객층을 형성한다는 렘리체인의 기본 모토는 이 때부터 생겼다,
문화의 선봉자요 정열적인 예술가이자 또 뛰어난 사업가였던 맥스는 이런 방식으로 아트 하우스 관객 확보에 성공, 1950년대 미국을 휩쓴 TV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주옥같은 외국어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 체인의 생명을 지켰다. 당시 렘리극장을 통해 미국에 선을 보인 외국인 감독들로는 쿠로사와 아키라, 자크 데미, 프랑솨 트뤼포, 아녜스 바르다 및 비토리오 데 시카 등이 있다.      
그동안 아버지 맥스 밑에서 수련한 로버트가 1960년대 들어 극장 운영에 합류했는데 당시 로스펠리즈에 있던 맥스의 집에서는 은퇴한 LA타임스의 영화평론가 케빈 토머스, 뉴요커지의 영화평론가 고 폴린 케이엘, 영화감독 프리츠 랭과 장 르놔르 등이 모여 매일 같이 영화와 예술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1972년 렘리체인은 본부를 로열극장으로 옮겼고 1987년 로버트의 아들 그레고리가 체인 운영에 가담, 체인은 렘리 가문의 3대째가 운영하고 있는 가족극장이다. 이 극장은 특히 우수한 외국어영화 상영으로 블락버스터 위주의 할리웃 메이저 영화에 식상한 예술영화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여기서 상영된 걸작 외국어영화들로는 ‘란’ ‘디바’ ‘시네마 파라디조’ ‘통곡과 속삭임’ ‘신이 미쳤나봐’ ‘광인들의 우리’ 및 ‘Z’ 등이 있는데 현재 로열극장에서 상영 중인 ‘산하고인’(Mountains May Depart)도 그 중 하나다.
나는 1990년대 중반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상오 10시에 로열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구경하곤 했다. 렘리체인을 통해 상영하는 영화의 기자용 시사회로 모두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들인 케빈 토머스, 앤디 클라인, F/X 피니 및 내 ‘영화 대모’인 해리엣 로빈스 등 6~7명의 기자들과 함께 영화를 열심히 봤다.
그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구 소련연방 소속국가들의 영화와 만든 지 반세기가 넘는 프랑스영화 및 극단적인 독립영화를 비롯해 온갖 희한한 실험영화 등을 봤다. 어떤 영화들은 너무 별나 아침부터 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LA에 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는 나로선 큰 축복이었다. 내가 1990년대 후반 LAFCA 회원이 된 이유 중 하나도 나와 함께 영화를 본 LAFCA 회원들이 나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멀티플렉스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LA의 예술영화 전용 독립극장은 전멸한 상태다. 한 때 영화계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족극장인 렘리체인이 이들 멀티플렉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렘리체인은 그 같은 경쟁을 물리치고 계속해 터전을 넓히고 있다. 2017년에는 글렌데일과 샌타클라리타에도 극장을 열 예정이다. 렘리체인은 로열과 모니카 필름센터 외에도 아리아 파인아츠와 뮤직홀 그리고 클레어몬트5와 플레이하우스7 및 타운센터5 등을 소유하고 있다. 렘리체인의 강한 생명력은 체인이 제공하는 예술성과 고전감각을 지닌 품위 있는 영화들을 사랑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