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1950년대 10대여자 팬들의 우상‘탭 헌터’




“젊어 보인다고? 비누와 물, 며칠에 한번 면도가 전부”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잘 생긴 얼굴에 튼튼한 체격을 해 1950년대 10대여자 팬들의 우상이 되었던 탭 헌터(85)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헌터는 이웃 집 소년처럼 친근감이 가는 분위기와 함께 건장한 호남스타일로 인해 왕년의 인기배우들인 나탈리 우드와 데비 레널즈 및 소피아 로렌과 같은 스타들의 상대역으로 나왔다. 그가 나온 영화들로는 전쟁영화 ‘배틀 크라이’, 뮤지컬 ‘댐 S키즈’ 및 웨스턴 ‘불타는 언덕’ 등이 있다.
신심이 강한 가톨릭신자로 동성애자인 헌터는 가수로서도 성공했는데 그가 부른 ‘영 러브’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다. 그의 자서전 ‘탭 헌터 칸피덴셜:메이킹 오브 어 무비 스타’는 베스트셀러로 아직도 잘 팔리고 있으며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기록영화가 작년에 개봉됐었다. 그는 ‘사이코’의 앤소니 퍼킨스와 오랜 관계를 가졌었는데 현재는 파트너 앨란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강건한 모습의 헌터는 유머를 섞어가며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가 자세히 알려주는 할리웃의 과거를 듣자니 어릴 때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할리웃을 동경하던 생각이 났다. 매우 편하고 서민적인 사람으로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다.

-왕년의 스튜디오들은 배우들의 이미지와 재능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겼는가.
“먼저 이미지고 재능은 그 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으로 스튜디오들은 대중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스타를 제조했다. 따라서 한번 코미디언이라고 여겨지면 그 딱지가 계속해 붙어 다녔다. 다른 역을 주질 않았다.”

-그런 제도 밑에서 일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는가.
“그렇다. 난 배우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좋은 역이 주어져야 하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TV의 라이브 드라마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땐 스튜디오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쫓겨나던 때였다.”

-이제 와서 당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바꾸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가.
“나의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물을 네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세상사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난 어머니 말씀대로 산다.”

-명성과 돈이란 무엇인가.
“나는 젊었을 때 그런 것들을 가져 그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서히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에 따라 살아야 한다. 난 나이를 먹으면서 이를 깨달았다.”

-배우 초년생 때 당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스타는 누구였는가.
“처음에는 전부 다였다. 내가 처음 주연한 영화는 린다 다넬과 공연한 별로 안 좋은 ‘욕망의 섬’이었다. 난 다넬의 팬이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다넬이 나보고 ‘긴장을 풀어요. 난 신인들의 행운이에요’라며 달래줬다. 그는 재주만 있었을 뿐 아니라 우아한 사람이었다. 난 그를 무척 사랑했다.”

-당신은 많은 웨스턴에서 자신의 말을 탔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탈리 우드와 나온 ‘버닝 힐즈’에서도 내 말을 탔다.”
나탈리 우드와 공연한 웨스턴 '불타는 언덕'

-어떻게 가수가 됐는가.
“그 전에 난 교회 성가대원이었다. 나탈리 우드와 내가 영화 홍보 차 전국을 순회하며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 도시의 유명한 디스크 자키인 히워드 밀러가 내가 노래하는 것을 듣더니   음반 취입을 권유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가 소개한 닷 레코드로부터 내가 부르면 좋을 노래가 있다며 취입한 곡이 ‘영 러브’였다. 금요일에 녹음했는데 월요일에 차를 타고 선셋길을 달리다가 라디오로 들었다. 너무 놀라 팜트리와 충돌할 뻔했다.”

-책에서 자신 얘기하기가 고통스러웠는가 아니면 속 시원했는가.
“속이 시원한 편이었으나 난 사실 내 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쓰기가 쉽진 않았다. 쓰게 된 이유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내 얘기를 쓰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쓸 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쓰기로 했다.”

-앤소니 퍼킨스 등 당신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 유족으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냥 있는 사실대로 썼다.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필름 느와르의 전문가 에디 멀러였다.”

-당신은 ‘버닝 힐즈’에서 공연한 나탈리 우드 앞에서 웃통을 벗고 늠름한 상반신을 자랑했는데 감독이 벗으라고 했는가.
“스튜디오들은 늘 그랬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비프케익’(늠름한 남자)이라고 불렀다. 난 그 영화 뿐 아니라 도로시 말론과 나온 ‘배틀 크라이’에서도 상반신을 벗어 제쳤다. 그러다가 유럽영화의 영향으로 영화에서 사실성을 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 배우들은 자신의 동성애를 자유롭게 밝히는데 그에 대한 당신의 소감은.
“난 내 동성애에 대해 결코 얘기하지 않았다. 편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서 얘기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딱지를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난 그 것이 싫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런 딱지가 아니라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점이다. 요즘에는 배우들이 자신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나 난 그 것이 별로 좋다고 생각 안 한다 아직도 할리웃은 동성애자 배우를 주연으로 쓰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아가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지 않는가.
“내게 소셜 미디아는 무의미하다. 난 구식 사람이다.”

-당신과 일한 감독들 중에 누가 가장 인상적인가.
“내가 함께 일한 많은 감독들은 라이브 TV로 연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우들에게 씨를 심어주는 사람들로 그 것을 가꾸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달렸다. 내게 연기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가르쳐준 감독은 시드니 루멧이다. 그 때 우린 뉴욕에서 소피아 로렌과 공연하는  ‘마이 카인드 오브 우먼’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루멧이 내게 오더니 ‘탭 넌 너무 안전하게 연기를 하는데 그러려면 하루 종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침대에서 보내’라고 말 했다. 난 그 뒤로 이 말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요즘엔 어떻게 하루를 지내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앨란과 함께 개들을 데리고 해변에 가서 산책을 한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아침을 만들고 컴퓨터를 검사한다. 이어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뒤 헛간에 가서 내가 사랑하는 암말을 돌본다. 그리고는 다시 집에 돌아와 독서를 하거나 그냥 소일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다. 매우 덤덤한 삶이다.”

-당신 삶에 있어 어떤 때가 가장 행복했는가.
“난 좋고 행복했던 때가 여러 번이다. 어디로 가는가 하는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앨란을 만난 것이 내겐 매우 중요하다. 그로 인해 난 삶의 방향을 찾게 됐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어머니를 비롯한 내 가족과 앨란과 종교다. 난 이들에게 매일 감사한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는 언제인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다. 스키를 타다가 심장마비에 걸려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그 때 난 ‘이 게 마지막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린 그런 걱정과 염려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난 회복한 뒤에 내가 쓰러졌던 곳엘 찾아가 하늘을 보고 감사한 뒤 다시 스키를 타고 내려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가.
“조화 이상이다. 자연은 영적인 것이다. 

-배우 초년 시절에 당신의 넋을 앗아간 빅 스타는 누구였는가.
“그 땐 스타들에게 신비감이 있었다. 요즘엔 그 것이 사라졌다. 난 ‘시 체이스’라는 영화에서 존 웨인과 라나 터너와 공연했는데 라나를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 ‘난 어렸을 때부터 당신의 팬이었다’고 말하면서 어쩔 줄 모르게 황홀해했었다. 라나는 참으로 멋진 여자였다.”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가. 비방이 무엇인가.
“비누와 물이다. 그리고 이를 닦고 며칠에 한번 면도를 한다. 그 것이 전부다.”     
-아직도 당신의 노래를 듣는가.
“난 내 노래나 영화를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 다른 히트송 ‘애플 블라섬 타임’을 앨란의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아직도 내 노래를 틀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 노래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캔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분노한 자들의 운명(The Fate of the Furious)


마지못해 자기편이 된 돔에게 사이버 테러리스트 사이퍼(오른쪽)가 키스를하고 있다.

최악의 적이 되어버린 돔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


이제 제발 좀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15년 전에 만들어진 ‘분노의 질주’(Fast and Furious) 제 1편이 빅히트하면서 속편이 줄줄이 만들어지고 지금 그 일곱 번째 속편이 나왔는데 굉음과 파괴와 자동차들의 스피드가 편을 거듭할수록 자심하기 짝이 없다. 
마치 어디까지 가나 보자면서 터무니없고 환상과도 같은 액션과 소음과 스턴트를 폐기물 덤핑하듯이 쏟아 놓는데 필자는 그런 소음 속에서 졸았다.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모든 것이 지나친 보잘 것 없는 잉여물의 퇴적과도 같은 꼴불견이다. 그러나 빅 히트할 것이다.   
내용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벌린 입이 안 다물어진다. 내용은 액션을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데 각본이 어린 아이의 작문수준으로 되는대로 썼다. 이런 영화에 샬리즈 테론과 헬렌 미렌과 같은 오스카 수상자들이 나온 것이 불가사의한데 주인공 빈 디즐에 의하면 미렌은 이 시리즈의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뒤 늦게 미렌의 역을 삽입했다. 
영화는 쿠바의 하바나에서 시작된다. 돔(디즐)과 그의 일당인 ‘가족’은 이제 뿔뿔이 헤어졌고 돔은 변치 않는 연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스)와 결혼, 하바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 하바나의 거리에서 초고속으로 돔이 모는 차가 경주를 벌인다. 차가 온통 불에 타면서도 맹속력으로 질주해 물론 돔이 이긴다. 
이어 돔 앞에 사이퍼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여자(테론)가 나타나 자기가 하는 일에 합류하라고  요구한다. “난 은퇴했다”라는 돔에게 사이퍼가 셀폰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돔의 얼굴이 이글어지고 그는 레티를 버리고 사이퍼와 함께 쿠바를 떠난다. 
사이퍼는 무정부주의자 사이버 테러리스트로 가공할 무기로 세계를 초토화 하려고 벼르고 있는데 무기 탈취를 위해 돔을 억지 춘향 격으로 자기에게 합류케 한 것. 그러나 돔이 사이퍼의 편이 되면서 그는 레티를 비롯한 왕년의 ‘가족’의 배신자가 된다. 나머지 ‘가족’이란 코미디언 같은 ‘레이디즈 맨’ 로만(타이리스 깁슨)과 테크니션 테지(크리스 ‘루다크리스’ 브리지스) 등 전편들에 나온 서너 명.
사이퍼를 잡기 위해 정부요원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가 신참으로 엉성한 에릭(스캇 이스트우드-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을 데리고 교도소에 수감된 전직 특수요원 홉스(드웨인 잔슨)를 찾아와 협조를 요구한다. 그런데 같은 교도소에는 홉스가 집어넣은 입 건 암살자 데카드 원수는 외다리에서 만났다고 돔과 데카드가 서로 말로 티격태격하다가 육박전을 벌이는데 둘의 이런 앙앙불락이 시끄러워 골치 아픈 영화에 재미를 제공한다. 액션신이 장관인 홉스와 데카드의 교도소 탈출에 이어 ‘가족’도 이들과 합류해 배신자 돔과 사이퍼를 쫓으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뉴욕 맨해탄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전과 북극 바렌츠해 얼음 벌판 위에서의 추격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비디오게임이요 만화로 높은 주차장에서 수십대의 동차들이 길바닥으로 떨어지고 로만은 얼음판 위에서 자동차 문짝에 매달려 아이스 서핑을 한다.
사이퍼의 초고성능 비행기 안에서 사이퍼와 그의 졸개들과 데카드 간에 총격전과 육박전이 벌어지는데 데카드는 아기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살인을 한다. 주윤발의 ‘하드-보일드’를 흉내 냈다. 미렌은 스테이담의 어머니로 나와 아들의 따귀를 때린다. 
디즐을 비롯한 제작자들은 이 영화가 시리즈 마지막이라고 말하지만 또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이 난다. 갓 세이브 미! F. 게리 그레이 감독.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잃어버린 도시 Z(The Lost City of Z)


퍼시(앞)와 아들 잭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정글 깊은 곳 문명 찾기에 나선 영국 군인 퍼시 포셋 일대기


옛 할리우드 스타일의 사나이가 정글을 누비는 대하 액션 모험영화로 모양은 그럴듯하고 경치도 좋지만 기력이 모자란다. 허우대만 멀쩡한 영화로 보고 즐길 만은 하나 모험영회치곤 극적 높낮이와 폭 그리고 강렬한 흥분감이나 에너지가 부족해 건장하고 젊은 남자의 얘기인데도 노인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런 영화가 갖춰야 할 박력과 긴장감이나 추진력이 모자라 나태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2시간 20분의 상영시간에 정글과 도시와 전장을 넘나들면서 너무 많은 얘기를 하려고 시도, 얘기 서술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흥미 있는 실화 내용과 정글의 경치를 잘 찍은 촬영 및 이름 난 배우들의 무난한 연기 등으로 인해 큰 기대를 안 한다면 볼만하다. 
주인공은 1906년부터 시작해 수십 년간 아마존 정글을 탐험하다 실종된 실존 인물인 영국의 퍼시 포셋(찰리 헌남). 영화는 한 남자의 집요하게 꿈을 좇는 드라마로 이 남자는 자신의 샹그릴라를 지상에서 찾으려다 사라졌는데 그 이상이 참으로 가상하다.
육군 소령인 퍼시는 왕립지리학회(RGS)의 지시에 따라 지도상에 아직 그려져 있지 않은 볼리비아와 브라질 사이의 국경을 지도에 올리기 위해 헌신적이요 독립적인 아내 니나(시에나 밀러가 소모됐다-남자의 영화여서 어쩔 수가 없다)와 아들 잭을 두고 정글로 떠난다. 동행하는 탐험가는 과묵한 학자 스타일의 헨리 코스틴(‘트와일라이트’ 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
이들은 원시림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재해와 질병과 기아와 원주민의 습격 등을 받으면서 정글을 뚫고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퍼시는 깨어진 도기와 나무에 새겨진 얼굴을 발견하면서 오래 전 아마존에 문명이 있었다고 믿고 그 때부터 이 잃어버린 문명 찾기에 집념한다. 퍼시가 잃어버린 문명 찾기에 집념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위대한 업적을 이뤄 아버지로 인해 실추된 가문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것.               
퍼시는 귀국해 RGS에 아마존에 문명이 있었다고 보고하나 회원들의 야유만 받는다. 두 번째 정글탐험에 동반하는 것은 기회주의자요 배신자인 제임스 머리(앵거스 맥파디엔). 그러나 퍼시는 뜻을 못 이루고 귀국 한다. 1차 대전이 발발, 퍼시는 전장에 나가 혁혁한 무공을 세운다.  마지막 탐험에 동행하는 사람이 그 동안 집안을 돌보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잭(탐 홀랜드). 그리고 둘은 1925년 정글에서 실종된다. 과연 둘은 원주민들과 자연의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식인종에게 먹혔을까. 제임스 그레이 감독. PG-13. 랜드마크(피코&웨스트우드) 등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태복음’


“내 양심은 신의 세계의 포로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한 말을 취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다. 왜냐하면 양심에 거슬리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기릴 일도 못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다. 이 것이 내 입장이다. 신이여 날 도우소서. 아멘!”
이 말은 지난 1521년 4월18일 찰스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주재 하에 독일의 보름스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기가 한 말을 취소하라는 요구에 대해 마틴 루터가 대답한 최후 진술이다. 이어 루터는 파문당했다.    
오는 16일의 부활절을 얼마 앞두고 내 친구 C가 이 말을 E메일로 보내오면서 “나는 이 말이 역경에 처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읽을 때마다 깊이 감동 한다”고 루터의 용기를 찬양했다. 화형에 처해질 것을 각오하고 자기의 믿음을 지킨 용기야 말로 대단한 것이다.
오는 10월31일은 지난 1517년 루터가 면죄부를 팔아먹는 가톨릭을 개탄하면서 자기가 살던 색손 주의 작은 대학도시 비텐베르크의 캐슬 처치 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친구 C부부와 우리 부부는 작년 5월17일 독일여행 때 비텐베르크를 방문 했었다. 그 때 나는 캐슬 처치 안을 돌아보면서 작은 가슴으로 루터의 큰 신앙과 용기를 생각했었다.
동독의 잔영이 아직도 드리워져 있던 시골 마을 비텐베르크의 기차역에 걸린 도시 이름 표지판에는 루터슈타트(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가 묵은 루터호텔을 비롯해 루터 소시지와 루터 맥주잔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마을이었다. 살아서는 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영의 양식을 제공했던 루터는 죽어서도 육의 식량 보급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병기와 방패 되시니’라는 찬송가를 작곡하고 작사한 루터는 혁명가요 작곡가로 평소 위트 있는 논쟁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런 위트는 비텐베르크에서 산 카드에 잘 적혀 있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남자는 잠을 잘 잔다. 자는 남자는 죄를 안 짓는다. 그리고 죄를 안 짓는 남자는 천국에 간다!” “아멘!”이다.
부활절을 맞아 사랑과 용서를 가르쳤던 예수에 관한 영화들을 돌아보자. 예수 넓게는 성경에 관한 영화는 무성영화 사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무성영화 시대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던 사람이 후에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나온 ‘십계’를 감독한 세실 B. 드밀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만든 예수영화들은 모두 예수를 금발에 미끈한 체격의 푸른 눈의 남자로 묘사했다. ‘왕 중 왕’의 제프리 헌터(말리부 예수라고 불렸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스웨덴 배우 막스 본 시도,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의 윌렘 다포 및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이 감독한 ‘그리스도의 수난’(16일과 17일 뉴베벌리 시네마에서 상영) 의 짐 캐비즐 등이 그 좋은 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진짜 예수는 할리웃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 예수 시대 평균 남자 신장은 5피트 3인치, 평균 체중은 110파운드였다는 것. 그리고 예수는 금욕적 생활을 한데다 끊임없이 걸어 다니며 설교를 해 매력과는 거리가 먼 근육이 툭툭 불거진 남자로 추정하고 있다. 예수영화에 관한 책 ‘신성한 모습’을 쓴 로이 키나드와 팀 데이비스도 “푸른 눈에 백색의 길고 품이 큰 옷을 입은 유대 땅에서 온 보이스카웃이 할리웃에 의해 정형화한 예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많은 예수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동성애자 공산주의자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감독한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1964^사진)이다. 흑백영화로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묘사했는데 마태복음에 적힌 글을 그대로 대사로 쓴 엄격하고 표현력 풍부한 명작이다.                      
파졸리니는 요한복음은 너무 신비적이요 마가복음은 저속하고 누가복음은 감상적이어서 마태복음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기 시대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영화 내용에 포함시켰다. 그가 마태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대사로 쓴 이유는 “이미지로서는 도저히 예수의 신성의 시적 극치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수 역은 당시 19세였던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엔리케 이라소퀴가 맡았는데 척박하도록 꾸밈없는 얼굴이다. 나머지 역들도 비 배우들이 맡아해 영화가 매우 자연스럽다.
예수를 말하면 절로 따라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십자가 처형을 면한 범죄자 바라바스와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다. ‘바라바스’라는 영화에선 앤소니 퀸이 바라바스로 나와 그의 입장에서 예수를 얘기했고 내 중고교 친구인 소설가 황석영은 중학생 때 예수의 얘기를 유다의 입장에서 설명한 ‘부활 이전’으로 교내 문예대회에서 장원을 했었다.
예수영화 외에 부활절을 맞아 TV에서 단골로 방영하는 영화가 주디 갈랜드와 프레드 애스테어가 나온 뮤지컬 ‘이스터 퍼레이드’로 오스카 음악상을 탔다. 부활절에 들을만한 클래식 곡으로는 말러의 ‘부활’ 교향곡과 멘델스존의 ‘종교개혁’ 교향곡 등이 있다. 해피 이스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