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3월 8일 금요일

‘트리플 프론티어’ (Triple Frontier)


가르시아(왼쪽)와 레드플라이(벤 애플렉 분)가 돈이 든 백들을 회수하기 위해 남미 원주민 마을에 도착했다

마약자금 터는 전직 특공대원들의 도주극 액션


5명의 전직 미 특공대 요원이 남미의 마약왕국에 침입해 거액의 현금을 탈취해 도주하는 액션영화로 액션 팬들은 즐길만하나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 한참 모자라고 내용도 아이들 딱총 쏘는 장난 같다.
덩지는 크나 철이 덜난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즐기는 것 같은 전형적인 미국 액션영화로 잘 생기고 가슴이 떡 벌어진 사나이들이 탐욕에 굴복해 명예로운 특공대 요원으로부터 강도로 돌변하는데 남의 나라 침입하기를 떡 먹듯이 하는 미국의 마초 정신상태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과 에릭 본 스트로하임이 감독한 4시간짜리 무성영화 ‘탐욕’(Greed)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처음에 남미 한 나라 빈민촌에 있는 마약본거지를 경찰이 습격하는 액션이 장관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때만해도 영화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나 시간이 갈수록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 습격에 가담한 사람이 전직 미 특공대 요원으로 남미 경찰을 자문하는 가르시아(오스카 아이작).
가르시아는 마약왕국에 정보원으로 투입한 여자 요반나(아드리아 아로나)로부터 마약거래로 번 거액의 현찰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아내고 이를 털기로 결정한다. 여기에 가입하는 전우들이 부동산 에이전트로 간신히 먹고 사는 레드플라이(벤 애플렉)와 군사교관 아이언헤드(찰리 헌남)와 격투기 투사 벤(개렛 헤드런드) 그리고 전직 조종사 캣피시(페드로 파스칼). 영화 선전은 이들 중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애플렉이 주인공 것처럼 하고 있지만 실은 아이작이 주연이다. 
다섯 명은 돈이 숨겨진 곳에 침입해 치열한 전투 끝에 수천만 달러의 현찰을 털어 달아난다. 그러나 그 후로 일이 잘 안 풀리면서 탐욕과 도덕 문제 같은 것들이 양념으로 얘기된다. 여러 나라와 국경을 같이한 이 나라에서 현찰을 담은 큰 백들을 싣고 미국으로 튀기 위해 구닥다리 소련제 비행기가 이용된다.
그런데 비행기가 고장이 나면서 이들은 돈이 담긴 백들을 지상으로 내던진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 가르시아 일행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원주민들의 족장과 현찰로 타협해 당나귀에 백을 싣고 자신들을 태울 배가 기다리고 있는 해변을 향해 대장정에 돌입한다. 이들을 뒤쫓는 사람들이 마을 주민들.     
이 과정에서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나고 도저히 많은 백들을 운반할 수단과 여력이 없어진 이들은 대부분의 백들을 안데스 산맥 속의 깊은 협곡에 내던진다. 영화는 속편을 만든다는 식으로 끝난다. 액션 위주의 영화이긴 하지만 연기들이 단편적이요 볼품 없는데 특히 애플렉이 마지못해 한다는 식의 연기를 한다. 오스카상을 탄 캐스린 비글로가 제작하고 마크 보알이 영화의 감독인 J.C. 챈도르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영화치곤 수준 미달이다. 오늘부터 1주일간 극장에서 상영한 뒤 넷플릭스로 방영된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글로리아 벨’ (Gloria Bell)


중년여인 글로리아가 퇴근 후 클럽에 들러 격렬하게 춤을 추면서 고독을 털어버리고 있다.

중년여인의 고독·사랑... 줄리안 무어 '눈부신 연기'


고독한 중년 여인의 텅 빈 가슴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 그리고 모처럼 찾은 사랑의 붕괴를 강렬히 탐색했던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각본 겸)의 2013년 작품 ‘글로리아’의 미국판 리메이크로 렐리오가 감독했다. 렐리오는 산티아고에 사는 여성으로 성 전환한 남자의 삶의 투쟁을 다룬 ‘팬태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으로 작년에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다.
충분히 감상적이 될 수 있는 내용을 감독은 값싼 감정을 배제한 채 고상하고 품위 있으며 다소 엄격하게 다루면서도 코믹한 분위기를 가미한 훌륭한 성인용 드라마로 만들었다. 감독과 함께 주인공 글로리아로 나오는 연기파 줄리안 모어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이 영화의 품격을 높이면서 아울러 재미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미국 판은 원작을 상당히 충실히 따르고 있다.   
LA에서 혼자 사는 60대 문턱에 이른 이혼녀 글로리아(모어)는 보험회사 사원. 결혼한 두 남매를 두었지만 만남은 뜸하다. 글로리아의 유일한 낙이라면 퇴근 후 자기 또래의 나이 먹은 사람들의 단골 나이트클럽에 가서 요란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 마치 고독과 무료를 몸을 흔들어 떨쳐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격렬하게 춤을 춘다. 
어느 날 클럽에 들렀다가 자기에게 눈을 주는 남자 아놀드(존 투투로)를 만나면서 둘은 서서히 감정적으로 가까워진다. 아놀드는 1년 전에 이혼한 남자로 작은 위락공원의 주인. 둘 다 고독한 글로리아와 아놀드는 몸과 마음을 섞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이로 인해 모처럼 삶의 활력을 되찾은 글로리아는 햇볕을 맞아 활짝 피는 꽃처럼 변화한다.     
그러나 뒤늦게 찾은 글로리아의 사랑은 아놀드의 줏대 없는 성격과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분해되기 시작한다. 비록 이혼은 했지만 아내와 장성한 두 딸이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아놀드에게 매어달려 사는 바람에 이들은 조금만 일이 생기면 아놀드에게 전화를 걸어댄다. 아놀드는 글로리아와 함께 있으면서도 툭하면 걸려오는 아내와 딸의 전화를 받으면서 무드를 깨는데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기지만 아놀드가 글로리아를 사랑한다고 통사정을 하면서 다시 화해무드로 접어든다.
그러나 결정적인 관계의 균열은 둘이 화해를 위한 여행으로 베가스에 가면서 일어난다. 호텔식당에서 로맨틱한 분위기에 감싸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또 아놀드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는 이를 무시하던 아놀드가 잠시 후 곧 돌아 오마며 자리를 뜬다.
영화의 모든 장면에 나오다시피 하는 모어의 희비쌍곡선이 교차하면서 만감이 광채를 발하는 연기가 눈부시다. 섬세하고 깊이가 있고 준엄하고 아름다운 경탄을 금치 못할 연기다. 그리고 투투로도 우유부단한 남자의 연기를 차분하게 잘 한다. 영화에서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음악이다. 라틴 댄스음악과 디스코와 재즈 및 길버트 오설리반이 부르는 ‘얼론 어겐’ 등 인기 팝송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다. 그리고 촬영도 좋다.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3월 6일 수요일

‘로마’


내가 아카데미시상식을 보는 이유 중 하나가 해마다 일어나는 이변 때문이다. 예상과는 전연 다른 후보가 수상하는 것을 볼 때 갖는 느낌이야말로 스릴러영화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2월 24일에 열린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어김없이 이변이 일어났다.
작품상을 탈 것이 거의 분명했던 ‘로마’(Roma)가 고배를 마시고 대신 ‘그린 북’(Green Book)이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모두 10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오른 ‘로마’는 멕시칸 감독 알폰소 쿠아론(사진 왼쪽)의 1970년대 소년시절의 추억담으로 로마는 멕시코시티의 중류층이 사는 동네이름이다. 스페인어와 멕시코 원주민어로 된 흑백영화로 쿠아론과 그의 가족의 일상사를 집에서 고용한 젊은 식모(얄리차 아파리시오-사진 오른쪽)의 눈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1970년대 한국 사정과 닮았다.
나는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를 작년 토론토영화제서 처음 보고 지난 연말 TV로 다시 봤는데 비평가들의 격찬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거리감을 느낀 바 있다. 마치 사진전시장에서 흑백사진들을 보면서 ‘참 잘 찍었구나. 아름답네’라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작품 안으로 함몰되지 못하는 듯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번 시상식에서 ‘로마’가 촬영상과 외국어영화상 및 감독상을 받았을 때만해도 이 영화가 작품상을 탈것은 떼논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은 1962년 미 남부를 순회 연주하는 흑인 피아니스트(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운전사(비고 모텐슨)와의 관계를 통해 흑백문제를 다룬 ‘그린 북’이 탔다.
전문가들은 ‘로마’가 상을 타지 못한 이유로 우선 이 영화가 극장이 아니라 TV를 통해 영화를 방영하는 넷플릭스의 작품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외국어영화(오스카사상 지금까지 외국어영화가 작품상을 탄 적은 없다)라는 것과 ‘그린 북’이 ‘로마’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는 영화라는 점을 들고 있다. 쿠아론으로서는 섭섭한 일이겠지만 혼자서 3개 부문 수상자가 된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만 같다. 모든 길은 반드시 ‘로마’로 통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린 북’은 비평가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다. LA타임스의 저스틴 챙은 25일자 기사에서 “‘그린 북’은 2005년 작품상 수상작인 ‘크래쉬’ 다음으로 최악의 작품상 수상작”이라고 질타했다. 비평가들이 이 영화에 등을 돌린 이유는 흑백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복잡한 흑백문제를 백인의 눈으로 서술하면서 만사형통 식으로 매듭짓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는 고루한 스타일의 영화라는 것. 말하자면 백인을 위한 흑백문제 해결 교본이라는 것이다   
‘그린 북’은 역시 오스카 작품상을 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닮은 구식영화로 아직도 나이 먹은 백인들이 대다수인 어카데미회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영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작년 토론토영화제서 관객인기상을 타면서 오스카상 후보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어 연초 골든 글로브시상식에서 각본상을 탄데 이어 지난 1월에는 제작자협회상을 타면서 강력한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으로 대두했다.
‘그린 북’은 이번에 작품상 외에도 각본상과 마허샬라 알리가 남우조연상을 탔다. 알리는 이미 2년 전 ‘문라이트’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바 있다. 
‘로마’의 작품상 탈락에 버금 갈만큼 놀라운 이변이 여우주연상이다. 이 상은 이번으로 모두 7차례 오스카 수상후보에 오른 ‘아내’(The Wife)의 글렌 클로스의 것으로 예견됐었다. 클로스는 여기서 수십 년간 독선적인 작가 남편의 글을 자기가 쓰다시피 하면서 뒷바라지를 해오다가 남편이 노벨상을 받기 직전 독립을 선언하는 아내로 나와 섬세하고 민감한 연기를 한다. 클로스는 이 역으로 올 골든 글로브상(드라마)을 탔다.
그런데 여우주연상은 얄궂은 궁정 드라마 코미디 ‘페이보릿’(The Favorite)에서 변덕스럽고 모시기 힘든 영국여왕 앤으로 나온 올리비아 콜만이 탔다. 콜만의 연기가 훌륭하기는 하나 클로스의 탈락은 화들짝 놀랄만한 이변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중요 부문의 수상작들이 전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1월 초에 시상한 골든 글로브 수상작과 같다는 점이다. 작품상(‘그린 북’-코미디/뮤지컬), 감독상(알폰소 쿠이론), 남우주연상(라미 말렉-드라마), 여우주연상(올리비아 콜만-코미디/뮤지컬),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여우조연상(레지나 킹), 각본상(‘그린 북’), 외국어영화상(‘로마’), 주제가상(‘스타 탄생’의 ‘쉘로우’) 및 만화영화상(‘스파이더-맨-인투 더 스파이더-버스’) 등이 전부 골든 글로브상을 탄 것들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골든 글로브상이 자신들의 투표에 아무런 영향도 안 미친다고 말하고 있지만 글쎄올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바람을 이용한 소년’(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


중학교에 등교하는 윌리엄(오른 쪽에서 두번째)을 온 가족이 축하하고 있다.

“풍차 만들어 가뭄 해소” 가난한 소년의 감동 실화


역경을 이긴 인간 승리라는 통속적인 얘기이지만 주인공이 소년이라는 점과 함께 얘기가 경탄할만한 실화라는 것이 큰 흥미를 끄는 잘 만든 작품이다.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영화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되는데 약간 느린 느낌은 드나 물이 천천히 흐르다 함께 모여 급류를 이루듯이 마지막에 감정이 복받치는 감동을 겪게 된다. 정신이 고양되는 매력적이요 통찰력 있는 작품이다.
‘12년의 노예생활’의 주연 배우 치웨텔 에지오포가 출연하고 각본을 쓰고 또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으로 그가 가슴으로 절실히 느끼는 얘기를 영상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힘들이지 않고 침착하면서도 튼튼하게 연출한 솜씨가 돋보인다.
2001년 아프리카의 말라위.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간신히 먹고 사는 트라이웰 캄크왐바(에지오포)와 그의 현명한 아내 아녜스(아이사 마이가)는 비록 가난하지만 13세 난 총명한 아들 윌리엄(맥스웰 심바)과 윌리엄의 똑똑한 누나 애니(릴리 반다)를 사랑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을 교육시켜 마을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 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니는 대학 갈 꿈에 부풀어 있고 윌리엄은 중학생인데 홍수로 집의 농토가 쑥대밭이 되면서 학비를 못낸 윌리엄은 퇴학을 당한다. 이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면서 윌리엄네는 끼니를 굶다시피 한다. 그러나 학구열이 강한 윌리엄은 학교 도서관 사서의 묵인 하에 도서관에서 책으로 혼자 공부하는데 그의 관심을 끈 책이 풍력에 관한 것. 
타고난 발명가인 윌리엄은 이 책과 애니에게 구혼하는 학교 선생 마이크(레모갱 트십사)의 자전거의 라이트가 바퀴가 돌아가는 힘에 의해 불이 켜진다는 것을 깨닫고 풍력을 이용해 지하수를 끌어올려 가뭄과 상관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농사를 짓도록 하기 위해 풍차를 지을 설계도를 그린다. 
윌리엄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쓰레기장에서 풍차에 필요한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으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집안의 총재산이다시피한 아버지의 자전거. 트라이웰은 인자하고 현명하고 포용력이 있으며 아들을 사랑하지만 윌리엄이 뚱딴지같은 풍차 건설을 위해 자전거를 달라고 하자 아들을 혹독히 나무라며 연장으로 밭이나 갈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윌리엄이 그렇게 수월히 자기 꿈을 버릴 아이가 아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고무시키고 또 만족감과 즐거움을 줄 영화로 대사는 영어와 말라위어. 연기들이 좋은데 특히 경탄할만한 것은 신인 심바의 연기. 영혼이 가득한 눈을 지닌 심바가 그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삶의 추진력을 주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그리고 결점이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에지오포의 연기도 훌륭하다. 온 가족이 함께 보도록 권한다. Netflix.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