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퍼스트 맨(First Man)


닐 암스트롱(맨 앞)이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암스트롱의 역사적 달 착륙과정
영웅담 탈피 인간적 내면세계 조명



난 아직도 인간의 달 착륙이 왜 인류를 위한 승리인지 그 까닭을 못 깨달았지만 이 영화는 그 승리의 장본인인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그린 준수한 영화다. 뮤지컬 ‘라라 랜드’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데이미안 차젤과 ‘라라 랜드’에 나온 라이언 가슬링이 다시 콤비가 돼 만든 수고와 열정과 정성이 가득한 기품 있는 작품이다. 
차젤은 무슨 영화든지 잘 만드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임이 여실히 증명된 영화로 연출과 연기가 지나치게 차분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접근이 매우 지적이요 진지하고 신중해 거의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확신에 찬 연출력이다. 
암스트롱의 가족의 얘기와 그의 테스트 파일롯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달 착륙을 위한 준비 과정이 차분하게 서술되는 작품의 절반 정도까지는 분위기가 너무 착 가라앉아 심심하게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젤은 흥분하기 쉬운 영웅담이라는 내용에 결코 부응하지 않고 매우 사적인 암스트롱이라는 개인의 충실한 업무수행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가 영화에서 암스트롱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안 보여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차젤은 비애국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 대뜸 1961년 테스트 파일롯 암스트롱이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 공중에서 비행하는 격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해 그의 세 살 난 딸 캐런이 암으로 죽으면서 암스트롱의 내면의 일부가 죽는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자기 감정을 죽이는 암스트롱은 겉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은 암스트롱을 달 착륙에 도전케 하는 계기가 된다.
암스트롱의 아내 재넷(클레어 포이가 알찬 연기를 한다)은 땅에 발을 굳건히 디딘 믿음직스러운 집안의 기둥으로 어린 두 아들을 돌본다. 이어 암스트롱은 달 착륙을 위한 제미니/아폴로 프로그램에 선발돼 휴스턴으로 이사를 한다. 그의 앞집에 사는 사람이 같은 우주인 에드 와잇(제이슨 클락)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와잇은 시험 비행에서 사망하는데 그 외에도 여러 명이 희생된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전까지 고되고 치열한 훈련이 계속되고 마침내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코리 스톨) 등이 탑승한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는다. 여기서부터 달 착륙과 이륙에 이르기까지 숨이 답답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폴로가 달에 접근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천천히 포착하는데 이 때 서정적인 음악(저스틴 허위츠)이 여유롭고 아름답게 흐르다가 달 착륙에 이르면서 영화는 무성이 된다. 침묵이 황금이다. 
우주가 경탄을 금치 못하도록 신비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촬영이 훌륭하다) 암스트롱이 달에 죽은 딸이 차고 있던 구슬 팔찌를 남겨 놓는 장면이 가슴을 감정으로 복받치게 만든다. 가슬링의 연기가 맥이 빠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훌륭한 내면연기로 봄이 옳을 것이다. PG-13. Uni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7월22일’(22 July)


Add caption

노르웨이 여름캠프‘우토야 살육’
살인자와 살아 남은 자, 재판…
브레이빅 역의 리에 연기 볼 만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의 여름캠프 섬 우토야에서 일어난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안더스 베링 브레이빅의 살육사건을 다룬 스릴러 드라마로 ‘블러디 선데이’와 ‘유나이티드 93’ 등에서 북아일랜드의 유혈폭동과 9/11 테러를 다룬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각본 겸) 작품이다. 우토야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77명으로 절대 다수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상자는 이보다 더 많았다. 
그린그래스는 액션과 스릴을 긴장감 가득하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인데 이번에는 박력감이 다소 약하다. 거의 기록영화 식이어서 뉴스필름을 보는 것 같은데 이런 영화가 갖춰야 할 통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나 볼 만은 하다.
영화는 세 갈래로 나뉘어 서술된다. 
첫째는 브레이빅(안더스 다니엘슨 리에)의 살육, 둘째는 여기서 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고등학생 비야르 한센(요나스 스트란드 그라빌)의 후유증 그리고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먼저 7월21일 브레이빅이 무기와 폭발물을 밴에 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밴을 오슬로의 수상 사무실과 정부청사가 있는 지역에 주차한 뒤 폭파시킨다. 이는 우토야 살육을 위한 교란작전이다.
이어 브레이빅은 우토야에 도착해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을 무차별 사살하는데 그가 무감정한 얼굴로 총기를 난사하는 모습이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이 끔찍하긴 한데 너무 도식적으로 묘사해 안으로 격한 기분을 느끼게 되진 않는다.
여기서 한센은 동생을 구하고 자기는 뇌를 비롯해 온 몸에 총상을 입는다. 중간 부분이 다소 지루할 정도로 한센의 회복과정과 좌절감과 분노와 살아남았다는 회한 및 가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린그래스는 인종화합을 그리기 위해 한센과 살육에서 살아남은 아랍계 소녀와의 사이에 로맨스 기운까지 가미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그는 자신의 소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법정에 선다. 브레이빅은 자기가 악몽 속의 괴물이 아니라 전쟁에 나간 군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인종화 하는 노르웨이의 현실을 냉정히 비판한다. 그리고 증인으로 한센이 출두한다. 그의 증언이 감동적이다. 볼 만한 것은 리에의 연기다. 차갑게 생긴 얼굴에 감정을 일체 숨기고 마치 살육을 사무 보듯이 하는 그의 연기는 겁이 날 정도다. 그라빌도 차분하다. Netflix.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샤를르 아즈나부르


내가 대학생 때 자주 들른 음악다방들은 미 팝송뿐 아니라 샹송도 제법 많이 틀어댔었다. 나는 이 때 프랑스가수들이 비음을 섞어가며 체념이라도 한 듯이 중얼중얼 대는 노래들을 들으며 괜스레 심각해지곤 했었다. 안개가 낀 감상적인 콧소리로 노래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도 이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그가 “이자벨 이자벨 이자벨”하면서 떠나간 님 이자벨을 몸살 나게 찾던 노래 ‘이자벨’이다.
아즈나부르가 10월 1일 남불 프로방스의 자택에서 94세로 타계했다. 그의 사망에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심오한 프랑스인이자 그의 아르메니안 뿌리에 깊이 연결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 세대에 걸쳐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 사람이다. 그의 걸작들, 그의 음색, 그의 독특한 소리의 광채는 그와 함께 길이 살아남을 것이다”고 조의를 표했다.
‘세기의 엔터테이너’로 불린 아즈나부르는 에디트 피아프, 질베르 베코, 쥘리엣 그레코 및 모리스 슈발리에 등과 함께 활약한 샹송의 마지막 전설이자 역사였다. 가수요 작곡가이자 배우이며 인도주의자였던 그는 아르메니아계 부모 밑에서 파리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예계에 투신했는데 처음에는 파리의 술집 물랭 루지에서 피아프가 노래하기 전 무대분위기를 달구는 가수로 일했다. 그는 20대 초 피아프와 함께 미 순회공연을 마친 뒤 솔로로 전향했는데 피아프는 아즈나부르의 성공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준 은인이었다.
그러나 생애 8개국어로 총 1,200여곡의 노래를 불러 모두 1억8,000만장의 음반을 판 아즈나부르는 처음에 음성코치로부터 카리스마도 없고 노래도 부를 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키가 5피트 3인치에 체중이110파운드 밖에 안 되는 것도 핸디캡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평가를 극복하고 목이 쉬도록 노래했는데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의 샹송들처럼 주로 사랑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는 이 밖에도 결혼과 시대를 앞서간 동성애에 관해서도 노래했다.         
나는 20년 전 아즈나부르가 LA의 윌셔와 라 시에네가 인근의 윌셔극장(현재 사반극장)에서 공연했을 때 참관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작달막했지만 그윽한 분위에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애매하게 매혹적인 음성으로 자기 히트곡들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황홀무아지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의 히트곡들로는 ‘라 보엠’ ‘라 마마’ ‘나를 포옹해주오’ ‘아베 마리아’ ‘눈이 내리네’ ‘그녀’ ‘파르스 크’ ‘함께’ 및 ‘기억해야 하리’ 등이 있다.   
1950년대 초반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은 “프랑스는 아즈나부르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찬양했는데 아즈나부르는 이런 명성과 콘서트를 열 때마다 표가 매진되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매우겸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죽기 2주 전까지 도쿄에서 공연할 정도로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은 사람으로 생전 “노래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겐 죽음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아즈나부르는 영화배우로서도 유명하다. 스크린에 나서면 화면이 꽉 차는 스타 파워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10명의 작은 인디언들’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양철 북’ 등 총 60여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프랑솨 트뤼포 감독의 느와르 ‘피아노 연주자를 쏴라’(Shoot the Piano Player^1960^사진)이다.
트뤼포가 할리웃 갱스터영화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작품으로 범죄스릴러이자 희비극이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인간미 넘치는 로맨틱한 영화로 흑백촬영과 음악도 아름답다. 파리의 싸구려 카페의 피아니스트 샬리(아즈나부르)의 영광과 몰락과 여인과 사랑에 관한 얘기로 입을 꽉 다문 무표정한 얼굴의 아즈나부르의 연기가 볼만하다.   
프랑스 서민들의 노래인 샹송은 길바닥 노래다. 처음 가수들은 길가에서 자기가 쓴 노래들을 부르며 행인들에게 악보를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가슴이 터져라 노래하던 ‘작은 참새’ 피아프도 길바닥 가수출신이다.
샹송은 곡조나 가사가 다 격렬히 감정을 부추기는데 멜로드라마 같은 거리 인생의 얘기가 우수와 감상과 동경에 찬 멜로디와 무드 속에서 흘러나와 멜랑콜리하기 짝이 없다. 초창기 가수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인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후유증 그리고 욕망과 유혹과 회한 등을 노래해 그 사실감으로 인해 노래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아즈나부르는 인터뷰에서 “나는 술과 에이즈와 교통사고, 이혼과 전쟁의 아이들과 귀 먹고 말 못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에 관해 노래 부른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노래가 철학이었다. 아듀 아즈나부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잭슨(왼쪽)과 앨리가 새벽까지 공연장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 주연 뮤지컬 러브스토리
남녀 가수의 사랑, 야망, 비극 그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가수 레이디 가가가 첫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37년에 나온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로 전성기에 술과 약물에 빠져 인기가 추락하는 남자 가수와 그가 발굴해 빅스타가 되는 여자가수의 야심과 사랑과 비극을 그린 뮤지컬 러브 스토리다.
원작과 첫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은 할리웃 스타들이었으나 두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로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주연하면서 가수로 바뀌었는데 쿠퍼의 영화는 이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두 가수의 사랑과 개인적 야망과 심리적 문제 그리고 미 가요산업계의 내막을 살펴보고 있는데 쿠퍼의 연출력은 살 만하나 노래가 너무 많아 극적 강렬성이 모자란다. 가가가 작곡에 참여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마치 가가의 CD 선전물이나 자전적 영화 같다. 그러나 둘의 콤비는 잘 어울린다. 쿠퍼는 직접 노래를 불렀다. 이 외에도 그는 제작과 공동으로 각본과 가사까지 썼다. 그의 작품에 대한 정열과 성의를 느낄 수 있다.
빅 스타 록가수 잭슨 메인(쿠퍼)은 술과 마약에 빠져 산다. 청각 장애까지 있어 좌절감이 심한데 게다가 자기 매니저인 형 바비(샘 엘리옷)와 불화가 일면서 더 약물과 술에 의존한다. 잭슨은 어느 날 코아첼라 축제에서(직접 공연이 열리는 현장서 찍었다) 노래를 부른 뒤 차를 타고 가다가 한 바에 들른다. 여기서 그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노래도 부르는 앨리(가가)가 열창하는 ‘라 비 앙 로즈’에 감탄, 앨리에게 데이트를 청한다. 둘은 거리에서 밤을 새워가며 노래와 자기들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얼마 후 잭슨은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 앨리를 자신의 콘서트에 초청하고 노래 중간에 앨리를 무대로 불러내 앨리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관중들의 큰 호응을 받는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앨리의 가수로서의 성공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는데 앨리의 인기가 부쩍 오르는 것과 달리 내면의 개인적 악마와 다투는 잭슨은 술과 약물을 물 마시다시피 하면서 인기도 빨리 추락한다. 이런 잭슨을 앨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보려고 애를 쓰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앨리의 노래 실력을 발견한 영국의 스타메이커에 의해 앨리는 화려한 변신을 하면서 인기 절정에 올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까지 출연하는데 이에 대해 잭슨은 앨리가 원래 지니고 있던 진짜 가수의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여전한데 잭슨은 자기  문제 때문에 앨리의 장래가 위협 받는 것을 깨닫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쿠퍼의 피와 땀의 결정체 같은 영화로 연기도 잘 하는데 자기가 감독이라고 본인 얼굴 클로즈업이 심하다. 가가도 열심히 하긴 하나 아직은 어색하다. 그러나 마치 오페라 가수의 가창력을 지닌 가가의 노래는 정말 일품이다.
이 영화는 벌써부터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R.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