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워터 디바이너’감독·주연 러셀 크로




“10여년 구상 끝 감독 데뷔… 배우보다 흥미”


부모-자식 관계는 모든 것 초월, 영적 접근능력까지 생겨
여행은 항상 마법같아… 최근 한국방문도 정말 멋진 경험


1차 대전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가 종전 후 4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세 아들을 찾아 터키로 간 호주농부 조슈아의 전쟁 액션영화이자 가족 드라마인‘워터 디바이너’(The Water Diviner)로 감독에 데뷔하고 주연도 한 러셀 크로(51)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제목은 나뭇가지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감정의 기폭이 심해 심술첨지로 알려진 크로는 자기가 처음 감독한 영화를 위한 인터뷰여서 그런지 일어서서 상소리를 섞은 농담을 하면서 신이 나서 질문에 대답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비만해 보이는 호남형의 크로는 굵은 음성으로 유머를 구사해 가며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진지했다.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크로는 “나는 한국에서 정말로 훌륭하고 멋있는 경험을 했다”면서“크게 즐겼던 나라”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필자가 이에“다시 방문하라”고 하자 그는 윙크로 대답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터키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터키는 역사가 깊은 나라로 방문하기에 멋있는 나라다. 아름답고 볼 것이 많은 나라다. 나는 이스탄불을 비롯해 터키의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터키 정부와 영화계가 우리를 진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화 끝에 가서 당신과 당신이 묵던 콘스탄티노플 호텔의 매니저로 전쟁미망인 역의 올가 쿠리렌코가 서로 미소를 주고받던데 이는 둘이 그 뒤로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것을 뜻하는지.
“그것은 당신의 추측일 뿐이다. 둘은 영화에서 손도 안 잡고 키스도 안 한다. 둘은 서로 슬픔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으로 영화 끝에 가서 둘 간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소지는 있으나 우린 그것이 어떤 소지인지를 결코 모른다. 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는 있지만 영화는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끝난다.”

-영화에서 터키를 침공한 그리스 군을 일종의 악한들로 묘사했는데 이 영화를 반 그리스적이라고 불러도 되겠는가.
“난 이 영화가 그리스를 비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터키와 그리스 간의 충돌은 역사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오토만제국 초기로까지 올라간다. 영화는 그리스 측의 눈으로 본 얘기가 아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아들들의 유골을 찾으러 터키에 간 호주 농부의 것이다.”

-오토만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조금은 안다. 이 영화는 그 제국의 융성이 아닌 해체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제국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내가 터키여행에서 얻은 값진 경험은 터키공화국의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이 사용했던 방에 앉았던 일이다. 침대와 그가 피우던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가 그대로 있더라. 터키 국민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디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조슈아(가운데)가 아들의 유골을 찾으러 격전지로 들어가는 것을 영국군이 저지하고 있다.
“호주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피터 위어, 프레드 스켑시, 브루스 베레스포드, 필립 노이스 및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들의 작품을 생각했다. 이 영화는 비록 규모는 커 보이나 독립영화다. 나는 독립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싸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당신은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아들들과의 관계가 가까운지. 
“부모란 아이를 가지자마자 세상만사를 부모의 프리즘으로 보게 된다. 자식과의 연계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다.”

-영화 처음에 조슈아는 손에 든 두 개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정확한가.
“철사나 나뭇가지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일은 호주에서는 180년 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과학적인 일이다. 호주뿐 아니라 다른 곳의 건조한 땅에서도 그 방법을 쓸 수가 있다.”

-조슈아는 영화에서 아들들의 유골을 찾을 때도 그 방법을 쓰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조슈아는 아들의 일기를 참고로 유골을 찾아낸다. 아들의 소속부대가 어디서 싸웠다는 것을 알고 그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영적 능력을 동원해 지하수 찾는 식으로 유골을 찾았다. 부모란 자식에 대해 영적 접근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법이 아니라 사실적인 일이다.”

-당신은 두 아들(11세와 8세)을 어떻게 훌륭한 아들들로 키우고 있는가.
“난 직업 때문에 여행을 자주해 다른 부모들보다 그 문제에 있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이젠 보다 많은 시간을 호주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매우 강하고 기본적인 일의 윤리를 저버리는 것을 가르쳐주는 셈이다. 우린 늘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학교를 나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들에게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노동의 윤리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왜 감독을 하려고 하나.
“돈이나 영예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정열 때문이다. 이 영화는 수년간 머리에 구상을 해왔다. 감독을 하겠다는 것은 14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도전해 볼 만한 각본을 찾아보지 못했다. 극영화 대신 난 그동안 세 편의 장편 기록영화와 30여편의 비디오 클립을 찍었는데 이것이 나의 감독교육인 셈이다. 이제 감독으로 나선 것은 이 영화의 각본 때문이다. 글을 읽고 그것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다. 특히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 때문이다. 글을 읽은 뒤 내 가슴으로부터 이 글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만이 이 각본을 생명체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여섯 살 때부터 배우 노릇을 했기 때문에 세트에서의 지식은 충분히 갖춰 그것이 감독에 도움이 됐다. 따라서 자신도 있었고 일에서 위안도 받았다.” 

-당신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도전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잘 따르는가.
“다니엘(스펜서)은 훌륭한 엄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작정한 규칙은 영화를 찍을 때 아내와 내가 함께 여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매번 다른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고 친구도 자꾸 바뀌는 바람에 아이들의 근본에 심한 변동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이젠 내가 영화를 위해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을 못 본다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지금 시드니에 살고 있다.”

-다니엘과 아직도 결혼한 상태인가.
“별거했으나 아직 이혼은 안 했다.”

-이 영화는 호주에서 이미 빅히트를 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기대치 않았던 일이다. 2014년의 최고 흥행성적을 낸 호주 영화다. 특히 미국의 대작들과 겨뤄 흥행에서 이겼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호주의 오스카상인 작품과 의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5개의 호주영화비평가협회 상도 받았다. 과거 15년간 내 영화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거지발싸개 같은 녀석들이 상을 줬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워터 디바이너는 사실 내 아버지다. 1978년인데 지하의 깨진 수도파이프 위치를 찾아낸 사람이 내 아버지다. 아버진 그 때 집에서 철사 옷걸이를 가지고 나와 파이프가 깨어진 곳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훌륭한 일들을 가르쳐 줬다. 그는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난 어렸을 때 밤에 몰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을 어디서 벌어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겁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로 내가 그런 문제를 알도록 하지 않았다. 축구화를 비롯해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사 줬다. 아버지의 제일 법칙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공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엄격하지 않으면서도 잘 지도를 했다. 음성을 높인 적도 없다. 내가 15세가 되기 전까진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여행을 자주 하는데 훌륭한 여행자인지.
“가능하면 새 곳의 진수를 배우려고 한다. 새로운 곳의 문화적 유산을 볼 때면 마법에 걸리는 것 같다. 최근에 처음으로 한국엘 갔었는데 그것은 정말로 멋진 경험이었다. 새로운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또 그것에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감독 데뷔에 대한 소감은 어떤지. 
“내 나이와 내 경험에서 본다면 감독은 배우보다 훨씬 더 흥미 있는 일이다. 물론 이 감독 데뷔는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배우들이 연습 없이 단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통례인데 난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배우들과 2주간의 리허설을 했다. 그래야 배우들이 육체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으로 준비가 제대로 된다. 따라서 준비가 작품의 좋은 성공의 열쇄라고 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투모로랜드 (Tomorrowland)


과학자 프랭크(조지 클루니·왼쪽)와 케이시(브릿 로벗슨)는 인류를 구하려고 투모로랜드로 간다

“순순한 동심이여, 인류를 구원하라”


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공상과학 모험영화로 어른들이 보라고 만들었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보라고 만들었는지 정체가 불분명한 아주 평범한 영화다. 디즈니 작품으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투모로랜드 선전 영화 같은데 시각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은 눈부시다. 그러나 인류의 참담한 미래 세상을 구원할 사람들은 아이들밖에 없다는 주제를 공연히 복잡하고 난삽하게 서술해 전연 영화에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상영시간 129분이 3시간은 되는 것 같다.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간성의 발휘와 환경보호 그리고 우리 주위의 세상사에 대한 인간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순수한 동심에 의한 세상 구원 등 온갖 좋은 소리는 다하고 있으나 서술 능력이 유연치가 못하고 설교조여서 지루한 공염불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아이언 자이언트’ ‘라타투이’ ‘인크레더블즈’ 같은 훌륭한 만화영화를 만든 브래드 버드가 감독했는데 선의적인 모험과 상상의 얘기를 신나는 액션을 곁들여 날렵하고 흥분되게 연출하지 못했다. 내용을 극적으로 흥미 있고 역동력 있게 몰고 가는 모험심이 결여돼 무미한 맹물 같은 영화가 됐다.    
영화는 두 해설자의 서술로 진행된다(처음부터 뭔가 잘 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심술첨지 같은 과학자 프랭크(클루니)가 자기가 어렸을(토머스 로빈슨) 때인 1964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등에 지고 비행할 수 있는 젯팩을 만들어 출품하러 갔다가 심사위원 데이빗(휴 로리)에게 퇴짜 맞았다고 회상한다. 
이 때 소년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소녀 아테나(래피 캐시디)가 프랭크에게 접근, ‘T’자가 적힌 옷깃에 꽂는 핀을 준다. 그리고 프랭크는 이 핀으로 인해 거대한 로봇들과 초현대적 건물들이 있는 상상이 자유롭게 날개를 펼 수 있는 투모로랜드에 도착한다.
여기서 얘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해설자는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의 폐쇄된 우주선 발사기지 옆에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피어스 개그논)과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과학적 두뇌가 뛰어난 케이시(브릿 로벗슨)로 바뀐다. 그리고 케이시도 ‘T’핀을 받아 투모로랜드로 간다. 그러나 케이시의 여행은 불과 2분 만에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에게 핀을 준 사람과 다시 투모로랜드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생각난다) 애를 쓰는 케이시 앞에 아테나가 나타나 미래의 위험을 예고하면서 아울러 오래 전에 세계 종말에 관한 사실을 발견, 투모로랜드에서 쫓겨난 프랭크를 찾아가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만난 프랭크와 케이시가 부녀의 관계를 이루면서 함께 인류를 세상 종말에서 구원하기 위해 위험과 모험을 겪는다. 이 과정이 스릴러 형식을 취했으나 별 스릴 없다. 진짜 주인공은 케이시로 클루니는 사실 조연급인데 연기들도 무덤덤하다. PG.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 딸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My Daughter)


르네(카트린 드뇌브·왼쪽)와 모리스(기욤 카네)가 카지노 경영을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카지노 전쟁과 딸의 배신·실종 다룬 실화


‘미친 사랑’과 모녀간의 힘겨루기와 배신 그리고 마피아가 개입된 카지노 경영을 둘러싼 세력다툼의 소프오페라요 신파극으로 프랑스의 명장 앙드레 테시네가 감독하고 베테런 카트린 드뇌브와 연기파 기욤 카네가 나온 영화치곤 단타 정도의 영화로 끝나고 말았다.
현재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절경의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1970~1980년에 벌어진 카지노 전쟁과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젊은 여인의 실종에 관한 실화로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너무 달라 두 편의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흥미진진한 소재가 긴박감과 스릴 그리고 열정이 결여된 채 연출돼 아쉬움이 있지만 보고 즐길 만은 하다.
결혼에 실패한 독립심 강하고 도전적인 젊은 여인 아녜스(아델 아넬)가 아프리카에서 위풍당당한 암사자 같은 어머니 르네(드뇌브)가 카지노를 경영하는 프렌치 리비에라로 돌아온다. 두 사람 외의 주인공은 변호사로 르네의 재정고문인 야심만만한 모리스(카네).
그런데 아녜스가 자기보다 10세가 위인 모리스에게 깊이 빠진다. 그러나 모리스는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남자. 여기에 르네의 카지노를 노리는 마피아가 마수를 뻗치면서 모리스에게 협조하라고 종용한다. 
르네의 밑에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리스는 마피아와 결탁하기로 결심하고 여기에 자기 없으면 못 산다는 아녜스를 끌어들인다. 아녜스는 독립하겠다면서 사망한 아버지가 남겨준 카지노 경영 지분을 내놓으라고 르네에게 대어든다. 결국 딸의 배신으로 인해 르네는 카지노에서 축출 당한다. 
그리고 모리스에게 집착하는 아녜스가 실종된다. 여기서 영화는 무슨 기록영화 만들 듯이 현재의 프랑스 법정으로 넘어와 아녜스 실종을 살인사건으로 취급하는 검찰에 의해 살인혐의자로 기소된 모리스에 대한 재판과정이 묘사된다(실제 모리스를 찍은 뉴스필름이 사용됐다). 모리스는 무죄에 이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아녜스의 사체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장면 장면을 개별적으로 보면 매우 아름답고 우아하고 선정적이지만 전체적으로 플롯이 일사분란하게 이어지지 못하고 실타래 풀리듯 느슨해 극적 흥분감이나 자극성을 느끼기가 힘들다. 맥이 빠지는 연출이다. 연기는 그저 무난한 정도다. 성인용. 로열극장(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잊혀진 전쟁




25일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다.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 연휴는 할리웃의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주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6.25동란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됐고 LA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도 이산가족이 많다.  
전쟁은 인간애와 희생 그리고 갈등과 액션 등 극적 요소가 많아 할리웃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오스카 작품상을 탄 ‘윙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시즈 미니버’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패튼’ ‘디어 헌터’ ‘플래툰’ 및 ‘허트 라커’ 등은 다 전쟁영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2차 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롯해 이락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역대 여러 전쟁에 관한 훌륭한 영화를 만든 것에 비하면 3만3,000여명에 이르는 전사자와 9만2,0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낸 한국전에 관한 뛰어난 영화는 극히 미미하다.
한국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이 감독하고 앨란 앨다가 주연한 ‘매쉬’(M.A.S.H.)로 이 영화는 한국전에 파견된 미군 이동 외과병원에 관한 블랙 코미디다. 그러나 ‘매쉬’는 영화보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인기 TV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 그런데 LA에서 찍은 시리즈는 한국과 한국인을 엿장수 마음대로 식으로 묘사해 미주 한인들의 집단항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할리웃이 한국전에 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 전쟁이 2차 대전 직후에 일어나 이미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2차 대전 영화에 물린 관객들이 더 이상 전쟁영화를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와 함께 한국전 참전군인들은 대부분 2차 대전 참전용사들로 이들 세대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제한전쟁인 한국전보다는 선이 악을 이긴 세계적인 2차 대전을 기억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전은 또 2차 대전의 위대한 야망과 TV로 중계된 베트남전의 생생한 현장감이 모두 결여돼 할리웃의 홀대를 받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을 다룬 영화들 중에 볼만한 것들도 더러 있다. 먼저 둘 다 터프가이 감독 새뮤얼 풀러가 만든 ‘철모’(The Steel Helmet)와 ‘착검’(Fixed Bayonets)은 모두 강력하고 긴박감 있고 또 치열하며 인간성 있는 영화들로 ‘착검’에는 제임스 딘이 단역으로 나온다.
그레고리 펙이 소대장으로 나온 ‘포크 찹 힐’(Pork Chop Hill)도 준수한 한국전 영화다. 휴전 직전 서로들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무모한 고지전을 벌이는 얘기로 실화다. 걸작 반전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만든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했다.
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가 나온 ‘원한의 도곡리 다리’(The Bridges at Toko-Ri)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으로 북한 땅에 불시착한 뒤 탈출하려다가 인민군에 의해 사살된 미 공군 파일럿의 얘기다. 그런데 홀든은 제니퍼 존스와 공연한 애정영화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에서는 홍콩 주재 미 기자로 한국전을 취재하다가 순직, 한국전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은 셈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 제트기 파일럿에 관한 또 다른 영화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공연한 ‘헌터즈’(The Hunters)가 있다. 그리고 역시 미치너의 소설이 원전인 ‘사요나라’(Sayonara)에서는 말론 브랜도가 한국전 참전 파일럿으로 나와 전쟁은 안 하고 일본 무대배우와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다.
록 허드슨이 주연한 ‘전송가’(Battle Hymn·사진)는 실화여서 한국인들에겐 남다른 감회가 있다. 지난 3월 97세로 사망한 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린 딘 헤스 미 공군대령의 얘기로 여기서 말론 브랜도의 전 부인인 인도계 안나 카쉬피가 한복을 입은 한국 여인 양은순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이 나온다.
한국전에 참전, 중공군의 포로가 돼 세뇌를 당한 뒤 귀국한 미군의 정치인 암살시도를 그린 ‘만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하는 좋은 정치 스릴러다.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에 관한 영화로는 그레고리 펙이 나온 ‘맥아더’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온 ‘오 인천!’이 있는데 ‘맥아더’가 훨씬 낫다.
이밖에도 볼만한 것들로는 로버트 라이언이 나온 ‘전쟁의 사나이들’(Men in War)과 장진호 후퇴를 그린 ‘지옥 철수’(Retreat Hell) 그리고 실제로 한국전에 영국군 소총수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지옥의 한국’(Hell in Korea)과 앨란 래드와 시드니 포이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모든 젊은이들’(All the Young Men) 및 로버트 레드포드가 육군 졸병으로 나온 ‘전쟁 사냥꾼’(War Hunt) 등이 있다. TCM 채널에서는 23~25일 32편의 전쟁영화를 마라톤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