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9월 28일 월요일

‘운전교습' (Learning to Drive)의 벤 킹슬리




“가르친다는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


 ‘상대방을 멋있게 보이게 하라’가 내 연기철학 중 하나
  가족이나 자기 문화 테두리 벗어나야 다른 문화 배워


소품 코미디 드라마‘운전교습’(Learning to Drive)에서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맨해턴의 중년 부인 웬디(패트리샤 클락슨)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시크교도로 정치망명한 인도계 미국인 선생 다완으로 나오는 벤 킹슬리(71)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민둥머리에 액센트가 있는 굵은 음성의 킹슬리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인터뷰에 만반의 준비라도 하고 나온 듯이 모든 질문에 즉각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날카로운 눈매를 한 그는 에너지로 가득 찼는데 유머와 함께 강한 설득력을 구사하면서 마치 선생이 강의를 하듯이 물음에 답했다.                                      

―당신과 자동차와의 관계는 어떤지.
“아주 좋다. 난 영국의 시골에 살기 때문에 스틱십 자동차를 몬다. 그런데 난 점차 상품화하면서 운전사가 날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땐 큰 랜드로버 디펜더를 운전한다. 그 걸 타고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은 아주 즐겁다. 시골이긴 하나 매우 분주한 농촌이어서 좁은 길에서 다른 차에게 양보를 할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관계와 사랑의 얘기인데 당신의 삶은 당신에게 그것들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배우로서 관계에 대해 배운 것은 상상이 아닌 실제와 상대하라는 것이다. 내 상대 역과 환상적인 인물로서가 아니라 실제 인물로서 관계를 맺자는 것이다. 연기는 내게 항상 진짜로 거기에 있는 진짜 사람과 함께 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인 릴케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인사하고 반기는 것이다.’ 이 영화도 바로 그런 내용이다.”

―당신의 개인으로서의 삶과 배우로서의 생애를 되돌아볼 때 무언가 고치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지.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 실망스런 감독들과 일도 했고 또 옳지 못한 이유로 관계도 맺어 봤지만 과거를 고친다는 것은 내게 있어 거짓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매일은 다르고 또 멋있는 도전이다.”

―당신은 다양한 역을 연기했는데 그 중 어느 인물이 가장 하기 힘들었나.
“난 늘 나와 내가 맡은 인물을 가로지르는 직선을 찾아내기 때문에 해 내기가 굉장히 힘든 역이 없었다고 해도 되겠다. 가장 막중한 책임을 느낀 것은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 역이다. 그러나 그 역은 책임감만큼이나 기쁨도 컸다. 연기를 할 때면 매일 보상과 함께 기쁨을 누리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다완(왼쪽)이 웬디(패트리샤 클락슨)에게 운전교습을 하고 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보다 많은 영화를 더 봐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분리 그리고 천사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관한 아름다운 시적 영화다.”

―다완은 웬디에게 중매결혼이 연애결혼보다 오래 간다고 말하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
“난 몇 번 결혼을 했지만 한 번도 중매결혼은 아니었다. 영화에서 웬디는 여동생이 주선한 데이트 상대와 그 날 밤으로 섹스를 하고 그 관계도 끝나지만 다완은 중매결혼을 하고도 선뜻 침대에 들지를 않는다. 두 남녀의 관계는 서서히 알고 이해하고 또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아름답게 영글게 된다고 본다.”

―당신도 다완처럼 인내심이 있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미국과 유럽과 영국의 대학에서 매스터 클래스를 지도한 경험이 있다. 영문학과 연극을 가르쳤는데 연극반 학생들의 연기를 보고 비판하지를 않았다. 단지 ‘잘 했다. 자 이제 다음 단계로 가자’라고 말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남의 말에 경청한다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당신은 나이가 훨씬 어린 아름다운 브라질 여인을 아내(31세 연하의 배우 다니엘라 바르보사 데 카르네이로)로 두었고 3남1녀가 있는 아버지로서 계속해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내 때문에 에너지를 잃는다. 세트에 도착하면 매일이 다르다. 나는 얘기꾼인 셈인데 그 일이 내게는 매우 스릴 있고 흥분되며 또 만족스럽다.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젊게 느끼면 된다. 내가 맡아 하는 한 인물을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다. 난 늘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을 창조하기를 원한다.”

―영화 출연과 가정생활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의 단순한 삶을 살면서 자신들을 살찌운다. 정원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하는 상냥한 가정생활을 우리는 사랑하고 즐긴다. 난 연기가 실제 삶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 받는다고 믿는다. 장을 보는 것을 비롯해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내게 연기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사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 관계는 아주 아름답다. 한 번은 마을 공회당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서 난 자금 마련을 위해 공회당에 촛불을 잔뜩 켜 놓고 D.H. 로렌스를 비롯한 작가들의 시와 편지들을 낭독했다. 수천 파운드를 거뒀다. 근면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내 갚음이었다.”

―돈과 명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그것은 친절하고 현명하게 써야 되는 것이다. 명성의 특혜 중 하나는 내가 여러분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젊은 배우들이 읽고 ‘옳구나 그 말이 맞아’라고 동의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성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데 난 언제나 그것을 이용해 젊은 배우들의 귀감이 되고자 노력한다. 돈으로 말하자면 난 일가친척이 너무 많아 그들을 보살피는데 쓴다.”

―당신은 큰 역과 작은 역을 막론하고 다 잘 해내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스펜서 트레이시가 이런 말을 했다. ‘한 장면을 찍을 때 상대방이 멋있게 보이도록 노력하라.’ 그 말이야 말로 훌륭한 연기 철학의 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상대방을 보기 좋게 함으로써 나의 연기도 향상되는 것으로 연기란 항상 양방통행이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도 패트리샤와 나는 이 가르침을 따라 했다. 이 영화가 드라마이자 코미디로서 보기 좋은 것도 거기서 연유한다.”

―당신은 배우로서 대뜸 정상에서 시작했는데 그 자리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가.
“‘간디’를 말하는가본데 난 이미 그 전에 15년간 무대에서 연기를 했다. 셰익스피어의 27편의 작품 중 17편에 나왔다. 그 같은 경험이 내게 스태미나를 주고 또 얘기꾼으로서의 기쁨도 준다. 그러나 사실 ‘간디’가 아니었더라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기회였다.”

―다완은 터번을 쓴데다가 피부색 때문에 “오사마”라고 조롱을 당했는데 당신도 실제로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인종차별에 관해 배운 가장 중요한 계기는 유대인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이먼 위젠탈의 기관을 위해 영화를 만들면서였다. 그 때 난 소위 개화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끔찍한 만행에 대해 배우면서 치를 떨었다. 그런 행위가 더 없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세월과 함께 스스로가 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하나.
“그랬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연기란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를 믿으며 또 외교적인 일이기도 해서 난 그 같은 경험을 통해 내 삶이 상당히 풍족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의 얘기인데 그런 만남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지.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점은 한 사람이 자기와 다른 문화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가족이나 문화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깨닫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러면 그들이 다음에 택시를 탔을 때 머리에 터번을 두른 운전사를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인턴(The Intern)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은 딸같은 사장 줄스(앤 해사웨이)의 인턴으로 취직한다.

70대 인턴과 젊은 여사장의 티격태격


이 가짜나 다름없는 무미건조한 코미디 드라마는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기만한 내용의 영화를 주로 만드는 여류 낸시 마이어즈(‘베이비 붐’ ‘이츠 캄플리케이티드’)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온갖 허무한 대사와 배우들의 억지 같은 연기로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를 하는데 결과가 뻔한 얘기를 놓고 상영시간이 2시간이 넘도록 질질 끌고 가는 바람에 좀이 쑤신다.
진실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겉만 달짝지근하고 번드르르한 전형적인 할리웃 메이저의 상품으로 상투적인 것으로 가득해 기시감과 함께 보기에 민망하다. 
각본이 약해 마치 가설극장의 연극 처럼 내용이 허술한데 특히 중간 부분이 공허하기 짝이 없다. 마이어즈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쓸데없이 억지춘향격인 에피소드들을 엮어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브루클린과 맨해턴 및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찍은 촬영과 함께 세트나 의상 같은 것들은 볼만하고 기술적인 부분도 말끔하니 좋다. 눈요깃거리로 시간 죽이기 용으로는 적당하다.    
브루클린에 사는 70세난 은퇴 홀아비 벤(로버트 드 니로)은 따분한 나날이 싫어 어느 날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고 이에 응모한다. 회사는 잘 나가는 웹사이트 패션회사로 사장은 젊은 일벌레 줄스(앤 해사웨이). 줄스의 남편은 아내 대신 집에서 어린 딸을 돌보고 밥을 짓고 청소한다.
줄스는 처음에는 자기의 인턴인 벤을 못 마땅하게 여기나 그의 삶의 예지와 오랜 직장생활에서 얻은 사업경험 등에서 귀중한 것들을 배우면서 점점 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결국 이 두 사람의 관계의 얘기인데 이런 골격을 세워 놓고 이를 둘러싼 얘깃거리가 모자라 공연히 벤과 그의 젊은 직장 동료들과의 아이들 장난같은 에피소드를 비롯해 전연 영화 얘기와 무관한 삽화등 로 땜질을 하고 있다. 참신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영화다.
한편 벤은 직장 내 마사지사인 섹시하고 아름답고 무르익은 여자(르네 루소가 여전히 섹시하다)와 로맨스를 꽃 피우는데 둘의 관계가 흡족치 못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벤은 줄스의 운전사 겸 직장 내 고문이 되다시피 하면서 줄스의 신임을 받고 아울러 일에 지친 그녀의 휴식처 노릇마저 한다. 여기에 느닷없이 줄스의 집안문제가 플롯으로 개입하면서 얘기가 신파조로 내려간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다 말끔히 해결되고 모두가 다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결말이야 뻔한 사실.  
아주 나태한 영화로 유머도 신선하다기보다는 약간 상한 맛이 나는데 그나마 볼 만한 것은 드 니로의 코믹한 연기다. 해사웨이의 연기는 쥐어짜는 식이다. PG-13.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폴 뉴만의 ‘허드’·‘허슬러’

허드(폴 뉴만)는 도덕성을 상실한 인간 지스러기다.

서부건달로… 도박사로… 폴 뉴만 절정의 연기


★허드 (Hud·1963)
텍사스 목장주 날건달 아들의 도덕적 타락과 옛 서부가 지녔던 이상의 소멸을 우울하고 절망적이면서도 강렬하게 그린 이색 서부영화로 썩을 대로 썩은 허드 역을 신랄하고 오만방자하게 보여주는 폴 뉴만의 연기가 신기에 이른 작품이다. 원작은 웨스턴 작가 래리 맥머트리의 ‘말 탄 사람, 사라져 가다’. 벌거벗은 탐욕과 전통적 가치관의 충돌을 그린 이 작품에서 허드는 한 줌의 체면도 없는 인간 지스러기요 나쁜 놈인데도 매력적인 것은 오로지 뉴만의 연기 탓이다.
반면 허드의 아버지 호머(멜빈 더글러스-오스카 조연상 수상)는 예의와 체면을 존중하는 도덕적인 사람으로 허드를 인간 취급하질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비도덕적인 허드 보다는 오히려 양심적인 호머를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허드와 호머 사이에 있는 것이 허드의 10대난 조카 론(브랜든 디 와일드-‘셰인’의 조이). 론은 허드를 영웅으로 숭배한다. 네 번째 인물이 허드의 동물적 흡인력에 말려든 이 집의 가정부 알마(패트리샤 닐-오스카 주연상 수상). 피곤한 모습이면서도 원시적인 성적 매력이 가득한 알마가 욕망이 가득한 눈길로 허드를 바라보는 모습이 체념적이다. 허드와 알마가 서로를 짐승처럼 원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교류를 미룬 채 욕망의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긴장감 있다.
호머는 전염병에 걸린 소떼들을 몰살한 뒤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허드의 잔인하고 냉정한 비인간성에 혐오감을 느낀 알마도 떠난다.
그리고 론도 허드에게 “너는 공연히 으스대기나 하는 지스러기 같은 인간”이라고 내뱉은 뒤 역시 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허드에게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손에 집어든 맥주깡통의 마개를 딴 허드가 세상을 비웃으며 덧문을 요란하게 닫으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뛰어난 흑백촬영으로 제임스 웡 하우가 오스카상을 받았다. 감독은 샐리 필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노마 레이’를 연출한 마틴 릿.

★허슬러 (The Hustler·1961)
떠돌이 당구 도박사 패스트 에디 펠슨(폴 뉴만)과 그가 도전하는 전설적인 당구 챔피언 미네소 타 패츠(재키 글리슨) 간의 긴장 가득한 대결을 그린 흑백영화. 침침한 당구장 안에서의 대결이 마치 서부시대 건맨들의 그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파이퍼 로리와 조지 C. 스캇 공연. 오스카 촬영상. 이 영화의 속편으로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하고 뉴만과 탐 크루즈가 공연한 ‘돈의 색깔’(1986)로 뒤 늦게 뉴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25일과 26일. 뉴베벌리시네마(7165 Beverly Blvd. 323-938-4038) 동시상영.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희비 쌍곡선 오페라




현재 LA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는 희비 쌍곡선을 이루는 두 편의 음악극이 공연되고 있다. 둘 다 한 시간 남짓한 오페라로 영화로 말하자면 2본 동시상영이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드라마로 음악과 내용이 재미있고 극적인 두 오페라는 모두 영화감독인 우디 알렌이 제작한 ‘지안니 스키키’(Gianni Schicchi)와 프랑코 제피렐리(‘로미오와 줄리엣’)가 제작한 ‘팔리아치’(Pagliacci·사진)로 수년 전에 공연한 것의 재공연이다.
두 오페라는 삼척동자도 아는 소프라노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테너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로 유명한데 이 번 공연은 노래나 연주나 다 고만고만한 것이지만 부담 없이 즐겁게 한두어 시간 보낼 수는 있다.  
LA 오페라의 총감독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4)가 처음에 공연되는 푸치니의 희극 ‘지안니 스키키’에서는 무대에 올라 바리톤으로 목소리를 낮춰 스키키 역을 노래하고 다음 작품인 레온카발로의 처연한 비극 ‘팔리아치’에서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바쁘다 바빠!
‘지안니 스키키’는 인간의 탐욕을 야유한 소극이다. 오페라는 시작되기 전 경쾌한 ‘후니쿨리 후니쿨라’에 맞춰 무대 위에 마련된 스크린에 마치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처럼 오페라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소개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의 내용을 따 만든 ‘지안니 스키키’는 사망한 플로렌스의 부자 부오조 도나티의 유산을 놓고 일가친척이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난리법석을 떠는 얘기다. 그런데 오페라를 보면서 공연시간 52분간 내내 침대 위와 집 문 밖에서 부동자세로 꼼짝도 않고 있는 부오조역의 배우의 인내심에 감복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눈에 띄는 배우(?)가 부오조의 유산 중 하나인 당나귀로 이 당나귀는 훈련을 잘 받아 경쾌한 음악과 노래의 음들 속에서도 아주 침착한 연기를 했다. LA 매스터코랄의 총감독인 그랜트 거숀의 지휘에 맞춰 오케스트라는 매우 속도 빠른 음악을 탄력 있게 연주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주인공으로 날사기꾼이자 ‘잭 오브 올 트레이즈’인 지안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가 부르는 서정적 매력을 지닌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감칠 맛 나고 마음을 아이스크림 녹듯이 만들어주는 노래인데 라우레타 역의 아드리아드네 척만이  달콤하니 불렀다. 이 아리아는 역시 둘 다 푸치니의 오페라인 ‘나비부인’과 ‘라 보엠’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과 ‘내 이름은 미미’와 함께 아름답기 짝이 없는 소프라노 아리아로 꼽히고 있다.
이 날 오페라 공연서 이색적이었던 것은 수십년간 테너로 노래 부른 도밍고가 바리톤으로 스키키 역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 도밍고는 바리톤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가 테너로 바꿨는데 요즘 들어 나이가 먹으면서 바리톤으로도 노래 부르고 있다. 이 날 그의 노래는 특별히 잘 날 것도 그렇다고 못 날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날 노래 부른 가수들의 전반적인 수준도 그저 무난한 편으로 ‘야 정말 잘 부른다’라는 감동은 받지 못했다.
아리아보다는 오히려 앙상블이 듣기 좋았는데 도밍고는 지난 3월 뉴욕 메트에서 공연한 베르디의 ‘에르나니’에서도 바리톤으로 노래 불렀다가 비평가들의 부정적 평을 들은 바 있다. 다분히 반 가톨릭적 의미를 지닌 ‘지안니 스키키’에는 한국인 바리톤 윤기훈이 공증인으로 나온다.
이어 공연된 ‘팔리아치’는 어릿광대라는 뜻으로 이 오페라는 유랑극단의 단원들을 둘러싼 사랑과 욕정과 배신 그리고 살인이 뒤엉킨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격한 드라마다. 먼저 극단의 조연급 광대로 간교한 토니오가 커튼을 젖히고 무대에 나와 “이 오페라는 실화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시작되는 ‘팔리아치’는 한 여자를 둘러싸고 세 남자가 사랑과 욕망의 3중주를 연주하다 칼부림으로 끝나는 치정극으로 옛날에 한국에서 보던 가설극장의 연극 같은 내용이다.
유랑극단의 단장이자 광대인 카니오의 부정한 아내로 역시 배우인 네다를 탐하는 등에 혹이 난 이아고와도 같은 토니오와 네다의 정부 실비오의 삼각관계 얘기인데 도밍고가 매우 로맨틱하고 격정적인 음악을 탐스럽게 지휘했다.
이 오페라에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카니오가 아내의 부정을 알면서도 광대복을 입고 무대에 나서야 하는 신세를 탄식하는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이다. 카니오 역의 마르코 베르티가 무난하게 노래했는데 이 서정적 비감을 지닌 감정적으로 또 극적으로 통절한 노래는 테너 아리아 중 가장 처절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토스카’에서 총살당하기 직전의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도 이 노래의 아픔을 따라오지 못한다. 힘과 유연성을 고루 지녀야 하는 노래로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이 아리아는 특히 카루소의 것이 유명한데 그가 1902년에 취입한 음반은 사상 최초로 100만장이 팔렸다, 두 오페라 다 세트가 매우 정교하고 훌륭한데 이탈리아 풍경의 특징인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한국의 옛 풍경을 생각나게 만든다. 두 오페라는 오는 10월3일까지 공연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9월 21일 월요일

‘왼손잡이'(Southpaw) 제이크 질렌할




“권투라는 스포츠에 흠 안 남기려 애써”

  5개월간 하루 두 차례 훈련… 실제 경기 중계하듯 찍어

  육체적 한계까지 밀어붙일 때의 감정과 생각 즐기는 편


권투영화이자 보호소에 있는 어린 딸을 되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드라마‘왼손잡이’(Southpaw)에서 몰락한 권투선수인 빌로 나와 열연한 제이크 질렌할(34)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강렬한 눈매를 한 질렌할은 질문에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가면서 정성껏 대답했는데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미소년 같았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치열한 영화인데 경험이 어땠는가.
“내가 빌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가 권투선수이면서도 매우 민감하고 또 허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권투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정신적 경기여서 민감성이 매우 중요하다. 역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이런 민감성에 대해 알고 놀랐다.”

-당신은 자식도 없으면서 영화에선 어린 딸과의 관계가 아주 절실한데 어디서 그런 감정이 나오는가.
“난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각오가 돼 있다. 내 아버지가 날 그렇게 사랑하며 키웠기 때문이다. 그는 늘 나와 내 누나(배우인 매기)와 함께 놀며 즐겼다. 아버지가 내게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남겨준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마음에 충실하지 않은가. 난 그들의 순수를 사랑한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자유롭기 때문에 난 연기하는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배운다.”

-영화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과거 만들어진 많은 권투영화를 능가해야 한다는 공포가 추진력이 됐다. 감독 안트완 후콰와 함께 가급적 사실과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난 대역을 안 썼다. 대부분 실제 경기를 중계하듯이 찍었다. 5개월 간 하루에 두 차례씩 훈련을 받았다. 권투라는 경기를 욕되게 하지 않고자 애썼다. 나를 겸손케 하는 경험이었다.”

-역을 위해 어떤 권투영화와 실제 경기를 봤는가.
“안트완은 내가 영화에 나오기 전 7개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권투경기를 보도록 시켰다. 그래서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오의 경기를 봤다. 특히 미구엘 코토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권투영화들로부터는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했다. 상투적인 것에 빠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보다 신경을 썼다. 내 역을 위해 특별히 참고한 것은 켄 로치 감독의 ‘내 이름은 조’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권투경기를 봤다. 

-당신과 매기와의 관계는 어떤가.
“난 아직도 매기에겐 어린 동생으로 누나의 모든 점을 존경한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고 자랐다.”         

-당신 속에 있는 가장 강한 힘은 무엇인가.
“쓰러졌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느냐를 놓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다.”

-당신의 다음 영화는 에베레스트 등반 실화인‘에베레스트’인데 역을 위해 어떤 준비를 얼마나 했는가.
빌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링에서 포효하고 있다.
“그 영화는 규모가 방대하고 감정적으로 매우 깊숙한 것이다. 그리고 매우 감동적이다. 난 매우 자랑스럽게 느낀다. 네팔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해발 1만7,000피트의 돌로마이트 산에서 찍었다. 나는 산을 탄 경험이 있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산에서 영화를 찍을 때 내가 한 일이란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었다. 실제 인물을 연기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특히 그의 남은 가족을 위해서 역을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힘은 들었지만 재미도 많았다.”

-등산 경험이 풍부한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자주 캠핑과 등산을 즐겼다. 그래서 난 자연을 사랑한다. 다 아버지 덕분이다.”

-도전자들인 등산가들의 정신적 상태를 어떻게 파고들었는가.     
“나는 육체적으로 나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의 감정과 생각을 좋아한다. 영화를 위해 2만9,000피트 높이의 같은 환경을 지닌 방에 들어가 15분을 버텼는데 방에 있을 땐 재미있었는데 나온 뒤 1시간이 지나 완전히 나가 떨어졌다. 난 실제로 끝까지 갈대로 가는 사람들로 부터 배우기를 즐겨한다. 무엇이 그들의 추진력인지를 알고 싶다. 내 역은 하산하다 사망한 스캇 피셔인데 그는 생전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의 이런 생각의 배후를 파악하고 싶었다.”

-실제로도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의도가 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인내심을 키워야 하는데 내게 그런 인내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단순히 힘과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이다. 난 아직도 그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당신의 추진력은 무엇인가.
“나는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의 기준을 높이 세워 놓고 있다. 근면하고 밀고 나가던 아버지의 영향이다. 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난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맡은 역도 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매우 폭력적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평화로운 사람인가.
“둘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몇 년간 내가 폭력적인 인물을 맡아 한 것도 나의 그런 면을 탐구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난 침착하고 사랑의 가능성도 지닌 사람이다. 빌 역을  맡은 것도 그가 처음에는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도 결국 이 분노가 가져다 준 것이다. 그가 몰락한 것도 같은 분노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궁극적으로 이 분노와 싸울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내가 빌 역을 맡은 것은 그의 분노의 감정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온 동성애를 그린‘브로크백 마운튼’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다고 보는가.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내 어머니가 내게 판결문과 함께 편지를 보내 오셨다. 내용은 전부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 뒤로 많이 변했지만 이직도 변해야 할 것들이 많다. 대법원 판결이 있고 나서 난 그동안 내게 찾아와 ‘브로크백 마운튼’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를 얘기해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로 인해 내가 변화에 작게나마 일조할 수 있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역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는가.
“체중만 조금 줄였지 다이어트는 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시카리오(Sicario)


케이트(에밀리 블런트)가 마약 루트인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멕시코 마약거래 둘러싼 고급 스릴러


서스펜스와 스릴이 가득한 미 멕시코 간의 마약거래를 둘러싼 스릴러로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죽이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도록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다. 내용과 연출과 연기 그리고 촬영과 음악과 편집이 모두 훌륭한 튼튼한 구성을 한 지적인 마약스릴러다. 
액션과 감정이 풍부하고 법집행자들의 애매한 도덕성까지 회의하는 지적인 작품인데 액션 스릴러로서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인물과 성격 개발도 아주 충실하다. 끔찍하고 폭력적인 장면도 많지만 결코 도를 넘지 않는 강건한 스타일을 지닌 영화인데 플롯이 주도면밀하고 복잡하지만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재미 만점의 강렬한 고급 스릴러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순진한 FBI 요원으로 나오는 영국 배우 에밀리 블런트의 뜨겁게 달아오르는 맹렬하고 매서운 연기가 일품이다. 몸과 마음을 꽉 감아쥔 약간의 접촉에도 튕겨날 것 같은 용수철의 긴장을 보는 것 같은데 새파란 눈이 발산하는 비수 같은 총기가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도 ‘양들의 침묵’처럼 여자가 주인공으로 그녀의 눈을 통해 얘기가 서술된다. 작품을 비롯해 블런트의 연기가 오스카상 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감독은 뛰어난 스릴러들인 ‘인센디지’와 ‘죄수들’을 만든 프랑스계 캐나다인 드니 비에뇌부.
애리조나주 광야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강력한 멕시칸 드럭범죄 집단 소유의 집을 이상주의자인 케이트 메이서(블런트)를 비롯한 FBI 요원들이 포위해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찍은 첫 장면부터 긴장감이 감돈다(감독의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교살하는 듯한 긴장감 있는 연출력이 좋다). 요원들은 여기서 벽 뒤에 감춘 수십 구의 사체를 발견하고 곧 이어 외딴 채에서 폭탄이 터진다.
이어 케이트는 샌들을 신은 건달 같은 자칭 국방부 고용계약자라는 맷 그레이버(조쉬 브롤린)가 포함된 미 정부의 부처간 통합된 대마약전담반에 의해 수사요원으로 선발된다. 그러나 케이트는 맷이 CIA 요원이라고 의심한다. 여기에 가담하는 사람이 과묵하고 일촉즉발의 위험성이 느껴지는 전직 멕시코 검사 알레한드로(베네시오 델 토로-제목은 히트맨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알레한드로가 히트맨인데 그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알레한드로는 정의 구현보다 개인적 복수에 집념한다.
순진한 케이트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 범죄조직이나 별 다름없는 조직에 가입하면서 그녀가 생각하던 정의에 대한 관념이 깊은 의문에 빠진다. 이들의 목적은 미국과 멕시코를 들락날락하면서 멕시코 마약조직의 고위 보스를 이용해 이 자의 위에 있는 최고위 보스를 잡아내는 것.
영화에서 숨을 죽이게 만드는 두 장면 중 하나가 미 멕시코 국경검문소 앞에 장사진을 친 차량들의 밀림 속에서의 미국 수사팀과 멕시코 마약밀매단의 대치. 명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화면 구성과 촬영이 강렬한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와 함께 조명을 이용하지 않은 마약밀매단의 마약운반 터널 속을 밤에 침투한 장면도 긴장감 있다. R. Lionsgate. 아크라이트, 센추리15, 랜드마크.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 매스(Black Mass)


지미 벌저(자니 뎁)는 파리잡듯 사람을 죽인다.


자니 뎁의 잔인하고 교활한 연기 눈길


1970년대 보스턴 남부의 서민층 동네를 말아먹던 악명 높은 ‘윈터힐 갱’의 두목인 아일랜드계 킬러 갱스터 지미 ‘와이티’ 벌저의 실화로 연기가 좋고 기능적으로도 우수하고 재미도 있지만 보통 갱영화의 범주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피 끓는 열기와 심연 같은 어둠이 존재하는 대신 얘기를 너무 말끔하고 1차원적으로 끌고 가 흥분이 안 된다.
제프 브리지스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크레이지 하트’를 만든 스카 쿠퍼 감독은 마치 내 영화는 갱영화라기보다 인물과 성격 위주의 드라마라는 듯이 연출하고 있는데 따라서 긴박감이나 스릴이 미약하다. 과거 많이 본 또 하나의 갱영화라는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볼만한 것은 지미 역의 자니 뎁의 꿈에 볼까 겁나는 사악하고 잔인하며 또 뱀 같이 교활한 연기. 오스카상을 노린 연기인 듯 한데 최근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오점을 회복시켜 줄 만한 영화로 그의 연기만으로도 가 볼만하다  
영화는 지미를 배반한 그의 측근 졸개들이 경찰에게 지미의 비행을 까발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1975년. 지미는 보스턴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친절하고 또 때론 도와주는 지미를 마치 로빈 후드로 여기고 지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지미에게 그의 어릴 적 친구로 FBI 요원이 된 존 카널리(조엘 에저튼이 잘 한다)가 찾아와 이탈리안 마피아를 제거하기 위한 밀고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대신 FBI가 지미의 범죄행각을 못 본 척하면서 사실 존은 지미의 공범이 되다시피 한다. 지미의 일당과 동네사람들은 똘똘 뭉쳐 서로 간의 충성이 삶의 신조이다시피 한데 존도 이 때문에 더 지미의 범죄를 묵인한다.
제3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주 상원의원인 지미의 동생 빌리(베네딕 컴버배치). 그러나 형제간의 드라마는 충분히 개발되지 못했다. 범죄왕국의 왕 노릇을 하던 지미(현재 86세)는 결국 자기 졸개들의 배신으로 도주해 15년간을 숨어 살다가 2011년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에서 체포돼 현재 옥에서 두 번의 종신형을 살고 있다.   
가운데 머리털이 다 빠진 채로 검은 안경에 점퍼를 입고 썩은 이빨을 보이면서 잔혹하고 뻔뻔한 모습을 과시하는 뎁의 연기가 일품이다. 안경을 벗으면 마치 송장의 죽은 눈동자로 응시하는데 소름 끼친다. R.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 캐롤’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달링 아이 러브 유 도우 유 트릿 미 크루얼/유 허트 미 앤드 유 메이크 미 크라이/벗 이프 유 리브 미 아일 슈어리 다이/’
참 옛날이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수많은 히트 팝송을 작곡하고 노래 부른 닐 세다카(76·사진)가 1959년에 불러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한 이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나는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해 감상실의 표를 받는 여자로부터 “이 학생 여기서 개근상을 주어야겠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는 ‘오! 캐롤’의 가사를 선배 감상실 단골로부터 적어 받아 달달 외워 혼자 흥얼대곤 했는데 이 노래는 당시 동네 꼬마들까지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하며 노래할 정도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그 때 ‘돌체’에서 들은 또 다른 빅히트곡이 폴 앵카가 부른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다. 그 뒤로 ‘올디즈 벗 구디즈’ 팬이 된 나는 음반으로만 듣던 세다카와 앵카의 노래를 세리토스 공연센터(12700 Center Court Drive)에서 들었는데 그야 말로 감개무량이었다.
세리토스 공연센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장으로 클래시컬 뮤직에서부터 팝과 연극과 발레를 비롯해 서커스까지 다양한 프로를 공연한다. 핼 홀브룩이 주연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도 여기서 봤고 탐 존스와 태미 위넷과 글렌 캠벨 그리고 앤디 윌리엄스와 자니 마티스, 고기 그랜트, 패티 페이지 및 팻 분 등의 노래와 로저 윌리엄스 피아노 연주도 다 여기서 들었다.
내가 세다카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근 20년 전이다. 거의 여자 음성 같은 맑은 고음에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히트송들인 ‘오! 캐롤’ ‘런 샘슨 런’ ‘유 민 에브리싱 투 미’ 및 ‘캘린더 걸’ 등을 들으며 흥에 겨워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인 더 바이블, 1,000 이여즈 BC/데어즈 어 스토리 오브 에인션트 히스토리’하면서 시작되는 ‘런 샘슨 런’은 천하의 요부 딜라일라에게 빠진 샘슨에게 그 변장한 악마를 피해 빨리 달아나라고 조언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 비하면 탐 존스는 빅히트곡 ‘딜라일라’에서 배신녀 딜라일라를 칼로 찔러 죽였으니 세다카와 존스는 서로 국적과 생김새와 체구와 창법도 다를 뿐 아니라 요부에 대한 대처 수단도 다르다.
‘캘린더 걸’은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 속에 있는 달콤한 여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1년 내내 매일 같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경쾌한 노래다. 세다카는 달력의 9월 여자를 보면서는 ‘아이 라이트 더 캔들즈 앳 유어 스윗 식스틴’하며 이 달에 16세가 된 애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생 때 플레이보이 달력에 스케치로 그린 섹시한 여자들을 탐하던 생각이 난다.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은 세다카의 또 다른 히트곡이다. 그는 여기서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투나이츠 더 나잇 아이브 웨이티드 포/비커즈 유어 낫 베이비 에니모어’하며 소녀티를 막 벗어난 애인을 찬미하고 있다.
그런데 난 ‘캘린더 걸’이나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 같은 즐거운 노래들보다는 ‘원웨이 티켓’이나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 같은 실연과 상심의 노래가 더 좋다. 두 노래 다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사내가 속 아프다며 울고 부는 노래들이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세다카는 9세 때부터 줄리아드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귀재로 13세 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 의해 뉴욕의 클래시컬 뮤직 방송쇼 연주자로 선택될 만큼 실력이 훌륭했으나 팝에 강렬한 매력을 느껴 클래시컬 뮤직을 포기했다.
그가 먼저 팝송 작곡가로 대뜸 이름을 날리게 된 곡이 줄리아드 장학생 시절인 18세 때 카니 프랜시스를 위해 쓴 ‘스튜피드 큐피드’다. 역시 프랜시스가 나오고 노래도 부른 영화 ‘웨어 더 보이즈 아’의 주제가도 세다카가 작곡했다. 세다카는 프랜시스 외에도 다른 많은 팝가수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는데 탐 존스의 ‘퍼핏 맨’과 시내트라의 ‘더 헝그리 이여즈’ 및 캡튼 앤 터닐의 그래미상 수상작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등이 그 대표곡들이다.
세다카가 처음 직접 불러 히트한 노래들은 1959년에 나온 ‘다이어리’와 ‘아이 고 에이프’ 및 ‘오! 캐롤’ 등인데 그의 음반은 이 때부터 생애 가장 인기가 높았던 1960년대 초까지 무려 2,500만여장이나 팔렸다. 세다카는 1963년부터 가수로서의 인기가 느슨해지자 작곡에만 전념하다가 1970년대 초 엘튼 존의 도움을 받아 출반한 두 음반 ‘세다카즈 백’과 ‘더 헝그리 이여즈’가 빅히트를 하면서 재기에 성공, 지금까지 60여년 간을 노래하며 살고 있다.
7순 중반의 나이에도 꾸준히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세다카가 오는 20일 하오 3시 세리토스 공연센터(562-467-8818)에서 노래 부른다. 나도 2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 ‘오! 캐롤’을 들으면서 추억과 동무를 하려고 내려갈 예정이다. 그동안 나도 늙었지만 세다카도 이젠 많이 늙었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귀래(Coming Home)


루(왼쪽)는 자기를 기억 못하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쓴다.


공리, 사랑과 상실의 깊은 슬픔 절절히…


두 사람 모두의 데뷔작인 ‘홍고량’으로부터 시작해 ‘홍등’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든 장이모 감독과 그의 연인이었고 뮤즈인 연기파이자 감각적인 스타 공리가 다시 손잡고 만든 사랑과 상실과 그리움에 관한 멜로드라마다.
문화혁명과 그로 인한 비극 그리고 그런 과거와의 화해라는 정치적 색채도 지닌 영화인데 기억상실증의 남편(로널드 콜만)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부인(그리어 가슨)의 아름다운 드라마인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의 거꾸로 판이라고 하겠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아름답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픈 내용 그리고 인물 개발과 촬영 등이 모두 좋은 변치 않는 사랑의 영화로 특히 공리가 거의 자기를 감추는 듯한 착 가라앉은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문화혁명의 혼란스런 말기 아름답고 헌신적인 아내 펭(공리)과 발레리나가 꿈인 딸 단단(신인 장 후이웬)과 살던 지식인 루(첸 다오밍)는 당에 찍혀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진다. 루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힌 뒤 사상교육 끝에 근 20년 만에 풀려난다.
이 긴 기간 펭은 변치 않는 가슴으로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면서 돌아올 남편을 맞기 위해 종종 기차역에 나가 기다린다. 한편 단단은 당에 의해 세뇌교육을 받은 뒤 지식인인 자기 아버지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그런데 루가 돌아와 보니 펭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기억상실증자가 돼 자기를 알아보질 못한다. 그러나 펭은 기억만 못할 뿐이지 정신적으로는 이상이 없다. 
펭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남편이 쓴 편지를 뒤적이고 계속해 기차역에 나가 남편을 기다린다. 그리고 단단은 발레리나의 꿈을 빼앗긴 채 공장의 근로자로 일한다. 
루는 아내가 전연 자기를 못 알아보자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쓰나 백약이 무효. 그래서 루는 펭과 가까이 있기 위해 그녀의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친절한 타인으로서 아내에게 접근한다. 루가 이렇게 친절한 이웃으로서 펭에게 접근하는 모습이 심금을 울린다.
마지막 기차역에서의 장면은 목이 막히고 가슴이 메어질 듯이 슬픈데 장이모는 이런 슬픔을 아주 상냥하고 또 아름답게 처리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첸 다오밍의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연기가 훌륭하고 장 후이웬도 잘 하나 공리의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민감하고 깊이 있는 연기가 감탄스럽다. 감정적으로 모질게 매질을 당하는 것 같은 사랑의 이야기다. 
PG-13.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 310-478-3836.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울프 토템(Wolf Totem)


첸젠은 늑대새끼를 몰래 애완용으로 키운다.


인간과 동물의 충돌… 공존…


동물과 인간관계를 그린 ‘베어즈’(곰)와 ‘두 형제’(호랑이)에서 자연대 문명 그리고 동물로부터 배우는 인간의 드라마를 연출한 프랑스의 장-자크 아노 감독이 이번에는 늑대와 인간의 관계를 그린 서사극으로 보기엔 좋은데 깊이나 감정적 충격이 약하다.
프랑스-중국 합작 입체영화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몇 차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액션이 있는 자연환경에 관한 다소 설교적인 작품인데 좋은 소재가 1차원적으로 다뤄졌다. 훈련을 받은 늑대의 사람 뺨칠 연기와 컴퓨터 특수효과 및 음악(제임스 호너)과 찬탄을 금치 못할 촬영 등 볼 것이 적지 않지만 인물들의 성격개발은 아주 미약하다. 좀 더 추진력이 있고 도전적이었어야 했다.
1989년 6월의 학생운동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한 루 지아민이 문화혁명 절정기인 1967년 내몽고로 이주해 11년간 유목민과 함께 산 경험을 쓴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베이징의 젊은 지식들인 첸 젠(윌리엄 펭 샤오펭)과 양 케(션 도우-이 역은 저개발된 것이다)는 내몽고의 유목민들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뜻으로 그들과 살기 위해 자원해 초원에 도착한다. 당이 이들을 하방시킨 데는 앞으로 있을 한족들의 이주를 위한 사전 터 닦기의 일환이기도 하다.
첸은 아들 바타르와 며느리 바오 슌구위 그리고 어린 손자와 사는 유목민 족장 빌릭(바센 자부)의 집에 기거하면서 빌릭으로부터 초원을 배회하는 늑대들의 행동과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배운다. 그리고 첸은 어느 날 혼자 말을 타고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늑대들에게 포위당한다. 이 경험 이후 첸은 늑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당이 유목민들에게 인민군용 말들을 키울 것을 지시하면서 바타르는 말들을 늑대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늑대사냥에 나선다. 이 사냥에 함께 나간 첸은 늑대 새끼를 구출해 몰래 키운다. 
영화에서 경탄을 금치 못할 장면은 밤에 눈 덮인 초원을 질주하며 도주하는 말들을 공격하는 늑대들의 속도감 있는 추격. 눈부신 촬영이다. 이와 함께 이주해 온 한족들이 초원을 불태우면서 먹을 것을 잃게 된 늑대들이 높은 울타리 속의 양떼들을 습격하는 장면도 장관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의 흥분되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간사회와 동물왕국 간의 마찰을 무덤덤하게 다뤄 마치 디즈니의 동물왕국을 보는 것 같다. 아쉬움이 큰 영화이나 볼만은 하다  중국어에 영어자막. PG-13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테랑’토론토에 가다




북미 최대의 국제영화제요 권위 있는 세계 영화제의 하나인 제4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가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열린다. TIFF는 가을과 연말시즌 흥행을 위한 상업적으로도 중요한 영화제일 뿐 아니라 오스카상을 노리는 영화들이 대거 상영돼 어떤 영화가 여기서 주목을 받는가 하는 점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작년에 이 영화제서 첫 선을 보인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의 에디 레드메인과 ‘스틸 앨리스’(Still Alice)의 줄리안 모어가 각기 오스카 남녀주연상을 탄 바 있다.
TIFF가 할리웃 영화들과 오스카상을 노린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영화제는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아시아영화에 할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일례로 TIFF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도시에서 도시로’(City to City)의 대상 도시로 작년에 선정된 도시가 서울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부지영 감독의 ‘카트’(Cart) 등 총 8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됐었다.
올 해 TIFF에 선을 보일 한국영화는 액션영화를 잘 만드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Veteran 사진)과 세계적인 예술영화 감독 홍상수의 17번째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Right Now, Wrong Then) 및 제66회 칸영화제서 단편영화 대상을 탄 ‘세이프’(Safe)의 각본을 쓴 권오강의 감독 데뷔작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 등 3편.
황정민과 유아인이 나오는 ‘베테랑’은 트럭 운전사의 의문의 죽음을 수사하는 고참 형사(황정민)와 오만하고 잔인한 재벌 상속자의 대결을 다룬 얘기로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관람, 역대 흥행사상 10위를 차지한 영화다. 제작비 불과 340만달러를 들여 지금까지 총 7,400만달러를 번 이 영화는 오는 18일부터 LA의 코리아타운의 CGV 극장에서 상영한다.
‘베테랑’은 TIFF의 ‘뱅가드’ 부문에 출품돼 북미 최초로 상영되는데 TIFF의 프로그래머 지오반나 훌비는 “‘베테랑’은 독특한 카메라 기술과 어리석은 농담이 있는 류 감독 특유의 영화로 재미 만점”이라고 칭찬했다. 훌비는 이어 “한국의 명장 류승완은 이 영화에서 그의 빅히트 액션영화 ‘부당거래’에서 보여준 권력층의 부패한 세력결집에 관한 어두운 탐구에 뻔뻔한 유머를 잘 배합시켰다”고 덧붙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과거 TIFF에서 8편이나 상영된 바 있다. ‘매스터즈’ 부문에 소개되면서 북미 최초로 상영되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지난 8월에 열린 스위스의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서 대상인 황금표범상과 함께 출연한 정재영이 남우주연상을 탄 작품이다.  
홍상수 특유의 소주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미니멀리스트 영화로 관계에 관한 드라메디인데 이 것 역시 홍 감독의 특유의 서술형태인 같은 상황이 각기 주인공들인 남자와 여자의 입장으로 전개된다.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는 실수로 하루 먼저 특강 차 수원에 내려갔다가 화가 윤희정(김민희)을 만난다. 둘은 윤의 작업실에 가 그림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회에다 소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가까워진 둘은 이어 다른 카페로 옮겨 술을 더 마신다.
그러나 윤희정은 함춘수가 마지못해 자신이 기혼자임을 밝히자 그에게 실망한다. 이런 만남과 헤어짐의 얘기가 남녀의 입장에서 변용을 이루면서 반복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오는 24일에 개봉되고 25일부터 열리는 뉴욕영화제(NYFF)에서도 선을 보인다.
훌비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에 대해 “영화감독과 화가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2개의 변용인 이 영화는 영화적 경험을 풍부케 해주는 것으로 홍 감독의 전 영화들과 유사하면사도 놀랍게도 다르다”고 평했다.
‘베테랑’과 함께 ‘뱅가드’ 부문에 출품돼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돌연변이’는 훌비에 의해 사회적 문화적인 통상 관념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영화로 꼽혀 선정됐다. 젊은 실직자(이광수)가 제약회사의 신약제조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부작용으로 서서히 물고기로 변하면서 일약 한국의 수퍼스타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것 만큼이나 급속히 몰락하고 만다.
훌비는 “이 영화는 포복절도할 사회풍자로 대중문화의 변덕스런 동향을 탐구한 매우 독창적인 데뷔작”이라면서 “권오강은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눈 여겨 봐야 할 재능인”이라고 칭찬했다.
제40회 TIFF 개막작은 장-마크 발레가 감독하고 제이크 질렌할과 네이오미 와츠가 공연하는 드라마 ‘파괴’(Demolition)이고 폐막작은 파코 카베자스가 감독하고 샘 록크웰과 앤나 캔드릭이 나오는 액션 코미디 로맨스영화 ‘미스터 라이트’(Mr. Right)이다.
나도 토론토에 가 영화도 보고 파티에도 참석할 예정이나 맷 데이먼, 자니 뎁, 에디 레드메인, 네이오미 와츠, 줄리안 모어 및 리들리 스캇 등 자그마치 모두 29명의 배우와 감독을 인터뷰할 생각을 하니 가기 전부터 피곤이 몰려 온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9월 4일 금요일

‘미스터 홈즈’ 이안 홈즈




“죽음도 삶의 한 얼굴… 피할 대화소재 아냐”


  많은 배우들이 셜록 홈즈 연기했지만 93세역은 처음
  동성결혼 합헌판결 환영하지만 난 결혼할 생각 없어


현재 상영 중인‘미스터 홈즈’(Mr. Holmes)에서 시골에 은퇴해 어린 아들을 둔 가정부(로라 린니)의 돌봄을 받으면서 살면서 쇠약해가는 기억에 시달리며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는 9순의 명탐정 셜록 홈즈로 나온 영국의 무대와 스크린의 베테런 배우 이안 홈즈 경(76)과의 인터뷰가 최근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잿빛 머리에 머플러를 목에 감은 인자한 노신사 모습의 홈즈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인터뷰를 즐겼는데 그러면서도 대답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했다. 장난 끼 짙은 소년 같으면서도 그는 지혜롭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녔는데 자신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다정하고 인자한 인상과 언사 그리고 태도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홈즈는‘해리 포터’ 시리즈의 도사 갠달프로 아이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왜 셜록 홈즈는 세월과 무관하게 인기가 있다고 보는가.
“미스터리를 푸는 탐정은 늘 인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를 표현한 많은 배우들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명성은 그다지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홈즈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상당히 어두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며 비록 총명하나 내면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연약한 사람이다. 내게 역이 주어졌을 때 난 ‘아이구 맙소사. 내 전에 홈즈를 연기한 사람이 무수히 많은데 또 필요하단 말인가’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가 93세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늙은 홈즈는 누구도 안 했기 때문에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홈즈는 기억력 상실에 고민하는데 당신의 기억력은 얼마나 분명한가.
“옛날과 달리 요즘에 기억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사를 외워야 하는 배우들뿐인 것 같다. 배우가 대사를 기억 못하면 그의 인생은 끝이다. 난 그런 문제는 없다. 과거에는 대사 외우기가 연기의 가장 쉬운 것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못하다. 내 나이가 되면 주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저 그렇게 안 되기를 빌 뿐이다. 달리 묘안이 없지 않은가. 

-이 영화는 죽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당신은 가끔 죽음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을 보는가.
“촤근에 죽음의 침상에 누운 친구를 방문했고 또 다른 가까운 친구의 죽음도 봤다. 가슴이 아프다. 죽음의 얼굴은 삶의 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한 존 돈의 시 ‘종은 모든 죽음 하나 하나를 위해 울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알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하여 울리니 모든 사람의 죽음은 너 자신의 죽음이다’가 생각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 같은 대화는 건전한 것이다. 그것은 매일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 30, 40, 50대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70대가 되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는데 그에 대해 당신의 의견은.
“과거에는 군대에도 갈 필요가 없고 또 결혼도 할 필요가 없어 동성애자라는 것에 감사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라고 해라. 난 그들을 축복하겠다. 이번 판결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아주 좋은 것이나 난 결혼할 생각이 없다.”

-당신은 훌륭한 탐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셜록 홈즈는 쇠퇴홰 가는 기억력을 되살려가며 과거를 정리한다.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반장을 했는데 우리 반의 누군가가 남의 차를 파괴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내게 사건의 당사자를 찾아내라는 임무가 주어졌었다. 내가 맨 처음에 인터뷰한 아이는 차 주인의 아들로 난 즉시 그 아이가 무죄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당사자였다. 셜록 홈즈 같았으면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난 너무 순진하다. 나는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난 거짓말을 파악하는데 아주 서툴다.”

-당신은 ‘신들과 괴물들’ 그리고 이 영화와 막 촬영을 끝낸 뮤지컬 ‘미녀와 야수’ 3편에서 다 빌 콘돈 감독과 일했는데 그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신들과 괴물들’ 이후 그와 나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이 영화를 마친 뒤 그가 내게 ‘당신 디즈니의 뮤지컬에 나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오케이 했다. 우린 아주 친한 사이로 빌을 안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 약간 말을 더듬어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훌륭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영화들은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좋은 연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훌륭한 감독의 일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부른다. 나는 영화에서 시계 칵스워스로 나오는데 ‘내 이름은 칵스워스, 나는 시계다 틱 톡 틱 톡”하고 노래 부른다. 그랬더니 작곡자인 알란 멘켄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라. 영화는 대규모의 걸작이 될 것을 확신한다. 오드라 맥도널드, 이완 맥그레고, 스탠리 투치, 엠마 탐슨, 에밀리 왓슨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국의 쉐퍼튼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빌 콘돈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그려낼 수 있는 감독이다.“

-일이 당신의 전 생애인가 아니면 다른 것에도 관심이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일이 내 삶으로 그것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려고 하지만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은 역시 연기다. 난 처음부터 좋은 배우는 아니었지만 이젠 그렇다고 보겠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데 나는 그 점을 즐긴다. 완벽한 의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목수와도 같다.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기쁨은 서로를 ‘달링’이라며 부르면서 일할 수 있는 배우 친구들과 일한다는 점이다. 연기가 내 생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내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오는 신판 셜록 홈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홈즈는 머리 대신 주먹을 휘두르는 액션 탐정이라고 보는데.  
“로버트에게 내가 그의 영화들을 안 봤다는 말 전하지 말기를 바란다. 따라서 영화에 대해 말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난 로버트 식의 해석에 반대하진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만들라고 내버려둬라. 원작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원작을 마음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을 파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무언가를 원작에 보탠다고 볼 수도 있다.”

-로라 린니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로라 린니는 메릴 스트립과 같은 수준에 있는 배우다. 헌신적이며 안팎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또 철저히 직업적이며 주도면밀한 기술자다. 마음을 열어 놓는 사람이어서 함께 일 하기가 아주 쉽다. 정말 사랑스런 사람이다.”

-이성과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있는가.
“내가 9세 때 웬디라는 소녀와 사랑의 편지를 서로 교환했었다. 연애편지 쓸 때의 기쁨과 기다리는 편지가 안 올 때 느끼는 고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얼마 전 런던의 한 극장에서 연극을 보려고 로비에 서 있는데 한 작은 노파가 내게 다가오더니 ‘헬로 이안 내가 웬디야’라고 소개를 하더라. 이에 난 처음엔 ‘당신은 웬디가 아니야’라고 말했으나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난 할머니가 됐어’라고 대답했다. 난 이어 ‘우린 정말 서로 잘 지냈지’ 하고 물었더니 웬디는 ‘그럼’이라고 말했다. 난 편지 생각이 나서 내 회고록 쓸 때 이용하려고 웬디에게 편지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결혼하는 날 아침에 불태웠다고 답하더라. 그것이 내가 이성과 가진 로맨틱한 경험이다.”               

-직업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언제인가.
“난 대학생 때 연극을 많이 봤다. 나는 많은 대학 연극에 나오면서도 직업배우가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존 길거드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생 때 연극 ‘헨리 4세 제2부’에 나오면서 전국지에서 격찬을 받았다. 그 날 밤 내가 기쁨과 당황감에 사로잡혀 대학 극장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넌 이제 에이전트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그 때가 바로 내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 전에는 난 그저 남의 연기를 보고 매료돼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했을 뿐이다.

-대학서 무엇을 공부했는가.
“케임브리지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21편의 연극에 나오는 바람에 학점은 엉망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리피피(Rififi)


보석상을 터는 마리오(왼쪽부터), 조, 토니 그리고 세자르.

스릴·멜로·영상미… 파리에 바치는 교향시 


중절모를 쓰고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린 채 과묵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차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전형적인 프랑스 갱스터들의 사실적이요 꽉 조여진 구성을 한 1955년산 저예산 걸작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절도영화)다.
전후 미국에 몰아닥친 매카시즘으로 공산당 동조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유럽으로 피신한 줄스 대신이 감독한 서스펜스 가득한 스릴러이자 멜로드라마인데 원작은 오귀스트 르 브르통의 소설. ‘리피피’는 프랑스 암흑가의 은어로 ‘인정사정없이 거친 사나이들의 적의에 찬 함성을 뜻한다. 대신은 이 영화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늦가을의 파리. 범죄로 짙은 인연을 맺은 젊은 조(칼 뫼너) 대신에 5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막 출옥한 토니(장 세르베)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범죄자. 옥살이로 건강이 나빠져 기침을 하면서도 줄담배를 태우는 토니는 조와 조의 이탈리안 친구 마리오(로베르트 마누엘)의 권유에 따라 파리 시내 번화가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다. 여기에 합류하는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오의 친구로 금고털이 전문인 세자르(줄스 대신).
그러나 토니는 범행에 들어가기 전 해결할 일이 있다. 자기를 배신하고 라이벌 갱스터로 몽마르트에서 ‘황금시대’ 클럽을 경영하는 피에르 그뤼터(마르셀 뤼포비치)에게 간 애인 마도((마리 사브레)를 찾아내 옷을 벗긴 뒤 가죽혁대로 매질을 하고 내쫓아버린다.
4인조는 ‘소방서보다 더 경보장치가 많은’ 보석상을 털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짜고 현장답사를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경보기의 소리를 죽이느냐는 것. 그 수단으로 소화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보석상의 주인이 집을 비우는 주말을 이용해 털이를 시도한다.
이 영화가 절도영화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큰 이유가 4인조가 운동화를 신고 보석상 내로 침투해 들어가는 장면 때문이다. 이들은 먼저 보석상 2층의 주인집으로 들어가 마룻바닥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 금고를 터는데 이 과정이 30분 정도 진행된다.    
30분 동안 일체 대사와 음악을 제거하고 범인들의 동작소리, 마루와 금고를 뚫는 소리 등 사실음만 살리면서 가끔 가다 땀이 밴 일당의 얼굴을 클로스업 시키는데 매우 주도면밀하고 영특하며 또 긴장감 가득한 장면이다. 
범죄의 소도구로 우산이 사용되는 것이 재미있는데 관객들은 30분간 4인조와 공범이 되어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또 곡예사가 묘기를 펼치듯 범인들이 작업을 해나가는 모습을 숨을 죽이고 들여다보게 된다.               
마침내 범죄는 성공하나 세자르가 혼자 몰래 슬쩍한 다이아몬드반지를 ‘황금시대’의 가수로 자기 애인인 비비안(마갈리 노엘)에게 선물한 것이 화근이 돼 토니 일행은 피에르와 그의 마약중독자인 동생 레미(로베르 오생) 등 그뤼터 3형제의 공격을 받는다. 토니 일당이 2억여프랑의 보석 절도단임을 확신한 피에르 형제는 조의 어린 아들 토니오(도미니크 모랭)를 납치한 뒤 보석과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어 양측 갱 간에 살육전이 벌어지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총에 맞은 토니가 손에 든 장난감 권총을 쏘며 신이 난 토니오를 차에 태우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가 휙휙 지나가는 파리 교외로부터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를 거쳐 시내로 고속 질주해 조의 아파트 앞에서 급정거하며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멋있다.
영화는 파리에 바치는 영상 교향시라 부를 만치 흐리고 비 오는 늦가을의 파리 시내 뒷모습을 흑백촬영으로 샅샅이 보여준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회색빛 구름이 뒤덮은 가운데 마치 속살을 드러내듯 스케치한 파리 번화가의 뒷모습이 음울하게 아름답다.
이런 파리의 흐린 날씨만큼이나 잔뜩 찌푸린 세르베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얇은 입술을 비롯해 역시 프랑스 갱스터 영화의 베테런인 장 가방을 닮았다. 여윈 장 가방이라고 부를 만한데 피곤과 우수에 절은 주름 패인 얼굴에 고독한 음성을 내는 그의 모습은 비극적 장엄미마저 지니고 있다. 
‘리피피’가 리알토 픽처스(Rialto Pictures)에 의해 새로 디지털로 만들어져 4일부터 10일까지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산행(A Walk in the Woods)


산행에 나선 빌(로버트 레드포드·왼쪽)과 스티븐(닉 놀티).

2,200마일 산행 나선 두 노인의 티격태격


스크린의 두 베테런 로버트 레드포드(78)와 닉 놀티(74)가 고루 호흡을 맞추면서 아이들처럼 티격태격하고 우정을 새삼 다독이면서 장장 긴 북행 산행을 하는 노인들의 버디무비다. 두 배우의 콤비와 현장에서 찍은 수려한 풍경 등으로 그런대로 볼만은 하나 참신성은 모자라는 무던한 작품이다. 
등산가 빌 브라이슨의 산행기를 원작으로 만들었는데 편안하게 두 심술첨지의 산행을 따라 가면서 즐기기엔 적당하지만 도무지 새로운 것이 없고 만사가 뻔해 나른하게 맥이 빠진다. 뉴앙스나 갑자기 트는 방향전환 및 신선한 분위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가볍기 짝이 없는 작품. 
뉴햄프셔주에서 영국인 아내 캐시(엠마 탐슨)와 조용히 은퇴생활을 즐기며 사는 등산 전문가 빌(레드포드)은 근래 들어 몸에 좀이 쑤셔 안절부절 못한다. 그리고 갑자기 2,200마일에 이르는 아팔라치안 산행을 하겠다고 캐시에게 통보한다. 이를 결사적으로 말리던 캐시는 빌의 고집에 못 견뎌 혼자만 가지 말라고 부탁한다.
빌이 동반자를 구하나 아무도 응하질 않는데 뜻밖에 옛날 젊었을 때 유럽여행을 같이 간 뒤로 헤어져 소식이 없던 스티븐 캐츠(놀티)가 상거지 차림에 배낭을 메고 이이오와주에서 도착한다. 알콜 중독자였던 스티븐은 비만해져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질 못할 정도이나 빌은 마지  못해 그를 동반자로 삼고 조지아주로 떠난다. 여기서부터 북행해 메인주까지 가는 산행이 2,200마일이다. 
둘은 가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인생무상을 얘기하고 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잡다한 에피소드가 엮어진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하면서 실수도 하고 또 여자와의 짧은 만남도 있는데 전부 상투적인 것들이어서 기시감이 든다.
레드포드의 연기는 작품 자체가 잘 나질 못해 무던한 편인데 틀에 박힌 것이긴 하나 오래간 만에 보는 놀티의 모습과 연기가 재미있다. 29년 전에 나온 ‘베벌리힐스 거지’의 홈리스 꼴을 한 놀티가 가래 끓는 음성으로 헤픈 연기를 하는 모습이 볼만하다. 엠마 탐슨과 빌에게 호감을 갖는 모텔 여주인 역의 메리 스틴버젠 등 조연진은 모두 낭비된 역. 간식 같은 영화로 금방 공복감을 느낄 것이나 나이 먹은 사람들에겐 권한다. 켄 크와피스 감독. 
R. Broadgreen.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는 쿠바다’




영화 ‘대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티스타 독재정권 하의 쿠바의 아바나는 미 자본주의자들의 카리브해 판 라스베가스였다. 방탕과 타락이 판을 치는 가운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바티스타 정권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에 의해 붕괴됐고 그 후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이 되었다. 이런 두 나라가 반세기 전 단절했던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 얼마 전. 이제 불원 고도 하바나에는 미 자본주의의 상징인 맥도널드가 들어서게 됐다.
바티스타 정권의 타락상과 카스트로의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고 역동적인 카메라로 흑백화면에 기록영화 식으로 묘사한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는 쿠바다’(I Am Cuba·사진)이다. 이 영화는 1964년 소련 핵무기의 쿠바 배치로 미소 간 핵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소련과 쿠바가 합작한 쿠바혁명을 찬미한 불후의 명화다.
비배우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써 대사를 가급적 줄인 채 미 제국주의의 방탕과 부패를 비판하고 아울러 미 정부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 정권의 붕괴를 찬양한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매 이미지가 마치 시 구절과 같이 절실하고 아름답다.
카메라의 리듬이 춤을 추듯 하고 그 동작이 물 찬 제비의 비상처럼 사뿐히 날렵한데 이제는 사라진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있지만 매우 엄숙하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특히 소련의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가 찍은 촬영은 새 영화 언어를 창조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클로스업과 와이드 앵글을 사용해 잽싸게 교체해 가면서 찍은 장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카스트로의 쿠바를 환호하는 군중 속에 동참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역시 영상미가 수려한 ‘두루미들의 비상’(The Cranes Are Flying·1957)을 만든 소련의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감독했고 각본은 각기 소련과 쿠바의 시인들인 예프게니 예프투셴코와 엔리케 바넷이 썼다.
영화는 데카당한 바티스타의 쿠바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노리개 여자를 거래하는 미국 남자들과 해군 그리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의 모습과 굶주리고 일상의 고역에 시달리는 농촌과 도시 슬럼의 쿠바인들의 모습을 병행해 보여준다.
손에 들고 찍은 카메라가 마치 율동체조를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사물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또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카메라 테크닉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내 이웃처럼 연민하게 된다.
제작기간 2년 그리고 상영시간 141분짜리 영화는 *식민주의와 그것이 아바나에 미친 영향 *농부들의 비극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 준비 및 *산 속에서의 투쟁과 승리로 마련됐다.
팜트리와 사탕수수가 검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흰 깃털처럼 보이는 꿈을 꾸는 듯한 첫 장면부터 단숨에 우리의 감관을 사로잡는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아름답고 육감적인 마리아. 마리아는 밤에는 베티라는 이름으로 야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다가 새벽이 되면 아바나 교외의 썩어 문드러져가는 달동네로 퇴근한다. 6.25 후 G.I.가 주둔한 한국이 생각난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르네는 과일 수레행상을 하면서 혁명세력에게 암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근면한 농부 페드로는 자기 사탕수수밭을 외국의 대기업에 잃게 되자 밭을 불태워 버린다. 페드로의 10대난 자식들은 마을에 나가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양키 팝송을 듣는다.
대학생 엔리케는 혁명가로 부르좌들의 단골 드라이브-인 극장에 몰로토프 칵테일을 투척하면서 공산혁명 동조자들에게 경찰의 물 폭탄과 총격에 맞서라고 촉구한다. 이 장면은 4.19혁명을 연상케 한다. 산꼭대기에 사는 농부 알베르토는 처음에는 부상당한 혁명군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나 정부군 폭격기에 의해 집이 파괴되면서 저항의 무기를 든다.  
카메라가 이들의 얘기를 장면에서 장면으로 뛰어넘어 포착하면서 우리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자이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된다.
컬럼버스가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 쿠바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시가와 럼과 맘보와 룸바. 미국인들은 이제 그 동안 몰래 사고 팔면서 태우던 쿠바시가를 내 놓고 태우게 됐다.
해적들의 술 럼은 코카콜라와 라임과 칵테일한 ‘쿠바 리브레’가 달짝지근하니 맛있다. 미국에서는 ‘럼 앤 코크’라 부르는데 옛날 옛적에 세 자매 보컬그룹 앤드루스 시스터즈가 ‘럼 앤 코카콜라’라는 노래를 불러 빅 히트를 했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축하차 ‘럼 앤 코카콜라’를 들으며 럼 앤 코크라도 마셔야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