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16일 화요일

데드풀(Deadpool)


가면을 쓴 데드풀이 고속도로 상에서 쌍칼을 휘두르고 있다.

상스럽고 야하고 거친 마블만화의 새로운 수퍼히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상스럽고 야하고 거칠고 음탕하고 폭력적이고 잔인무도하며 시끄럽기 짝이 없는 액션영화인데 아이언 맨 등 많은 수퍼히로들을 창조해낸 마블만화가 원전이다. 보통 이런 영화는 등급 PG-13(13세 미만 관람 때 부모의 적극적 안내가 필요함)인데 이 영화는 도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데다가 나체와 섹스 농담과 대사가 눈과 귀를 씻어내야 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저급해 R등급(17세 미만 관람 때 부모나 성인의 동반이 필요함)을 받았다.
절대적으로 젊은 마블만화 팬들의 영화이긴 하지만 섹스와 폭력과 야한 농담을 즐기는 어른들이 봐도 궁극적으로는 재미있을 영화다. 시종일관 자기비하적인 유머가 많아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폭력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깔깔대고 웃게 되는데 이와 함께 대사와 영화 흐름의 속도가 총알처럼 빨라 보는 사람의 혼을 홀딱 뺏어간다. 
특히 이 영화는 ‘X-멘: 오리진’(2009)에서 이미 암살자인 데드풀 노릇을 한 라이언 레널즈의 교활하고 정력적인 연기가 볼만하다. 레널즈는 이 영화를 만들려고 지난 11년간을 벼르다가 이제야 목표를 이뤘는데 자신은 물론이요 마블만화의 모든 주인공 그리고 팝문화 등을 닥치는 대로 조소하고 야유하면서 반 영웅노릇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라야 그동안 듣고 보고 또 보고 듣고 한 구태의연한 것이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얄궂고 장난치듯이 시작하는 영화는 처음부터 눈알이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의 액션장면으로 시작된다. 몸에 꼭 끼는 적과 흑색의 스판덱스 복장에 가면을 쓴 데드풀이 쌍칼과 쌍권총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총동원해 자기를 습격하는 괴한들과 싸우는 이 장면이 가히 장관이다. 계속해 농담을 지껄이는 무모하고 뻔뻔스런 데드풀이 하늘을 펄펄 날며 공중제비를 하면서 괴한들을 때려잡는데 데드풀은 총을 맞아도 안 죽는 수퍼히로다.
여기서 영화는 2년 전으로 돌아간다. 웨이드 윌슨(레널즈)은 전직 특공대 출신의 건달로 단골 싸구려 바에서 만난 자기 신세를 비탄해 하는 창녀 바네사(브라질 태생의 모레나 바카린)와 눈이 맞아 그 즉시로 격렬한 섹스를 하는데 변태적인 섹스 신을 몽타주 한 장면이 또한 가관이다. 웨이드와 바네사는 그 후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웨이드가 바네사에게 구혼을 한지 얼마 안 돼 웨이드가 치명적인 암에 걸린다. 의사가 얼마 못 산다고 통고한다.
이 때 웨이드 앞에 미친 과학자 스타일의 에이잭스(에드 스크레인)가 나타나 자신이 개발한 특수기계로 그를 불사의 싸우는 기계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래서 윌슨은 바네사도 버리고 에이잭스를 찾아가는데 변신의 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 웨이드는 불사의 싸우는 기계가 되긴 하나 얼굴이 완전히 맷돌로 갈아놓은 빈대떡처럼 된다. 그래서 가면을 쓴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데드풀로 명명한 윌슨은 자기를 이 꼴로 만들어놓은 에이잭스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간다. 이런 데드풀을 돕는 두 명의 동지가 금속 거인 콜로서스와 반항적인 10대 소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랜드). 그리고 이들의 적수는 에이잭스의 졸개인 여전사 에인절 더스트(실제 종합무술 챔피언인 지나 카라노). 시작된 지 좀 지나서야 영화 안으로 몰입할 수가 있다. 히트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물론 속편이 나올 것이다. 팀 밀러 감독.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A War)


클라우스가 재판정에서 아내와 딸과 포옹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다룬 덴마크 영화


아프간 전쟁을 다룬 덴마크 영화로 이번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전장과 고향의 집을 오락가락하면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우리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의 가치’를 묻는 도덕적 얘기로 전쟁의 혼돈과 후유증을 사려 깊고 긴장감 가득하게 그린 준수한 작품이다. 
전장에서 내린 결정과 그것의 치명적인 효과에 관한 내용인데 죄의식과 책임감과 함께 짙은 가족애를 매우 사실적이자 강력하게 그린 작품으로 손으로 들고 찍은 촬영과 배우들의 꾸밈없는 연기가 좋다. 기록영화 스타일의 영화로 감독 토비아스 린트홀름(각본 겸)은 리얼리즘을 위해 실제 덴마크 군인들과 탈리반 전사들 그리고 난민들을 배우로 썼다. 
아프간 전선에 투입된 덴마크군 소대장 클라우스 M. 페더센(필루 아스백)의 부대는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키기는 것이 임무다. 처음에 이 부대가 겪는 충격적인 상실과 함께 클라우스가 고향에 있는 아내 마리아(투바 노보트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선과 고향을 왕래하면서 클라우스만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마리아의 ‘투쟁’을 교차해 보여준다.
어느 날 클라우스와 대원들이 평상적인 순찰을 나갔다가 적의 맹렬한 집중사격을 받는다. 그리고 여기서 클라우스의 부대원이 부상을 당한다. 적의 공격으로 부상자를 이송할 수가 없게 된 클라우스는 부하를 살리기 위해 공습을 요청한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생긴다.
아군의 공습이 끝나면서 적과 함께 무고한 인명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클라우스는 민간인이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절대로 공습을 요청해서는 안 되는데도 성급히 공습을 요청해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할 입장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고국으로 송환돼 재판에 회부된 클라우스의 재판과 함께 그와 가족 간의 드라마로 연결된다. 클라우스의 전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이 재판과정이 전투 신보다 더 긴장감 있고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최근에 개봉돼 흥해서 실패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13시간’이나 벤 애플렉이 나와 빅히트를 한 ‘스나이퍼’가 전쟁을 감각적으로 윤색한 것과 달리 철저히 사실적으로 전장에서의 결정과 그것의 후유증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물은 훌륭한 영화다. R. Magnolia. 로열극장과 선댄스 선셋 시네마.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말러의 아다지에토



사랑을 하면 모두 시인이 된다고 하더니 폴과 에스테르가 각기 대학생과 여고생 때 만나 사랑에 빠진 10년간 서로 나눈 연애편지의 내용이 구구절절이 시다. 폴이 에스테르에게 ‘너의 존재는 내게 너무 크다. 마치 산처럼’이라고 고백했을 때 폴에게 에스테르의 존재는 무중력의 무게였을 것이다. 
폴과 에스테르는 오는 3월18일에 개봉될 프랑스의 아르노 데스플르샹 감독의 ‘나의 황금시절’(My Golden Years)의 주인공들로 둘을 보고 있자니 이젠 내게서 멀리 떠난 청춘의 탐스러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아, 청춘은 아름다워라!
오는 14일은 그동안 게을리 하던 고백성사를 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밸런타인스 데이다. 초컬릿보다 더 달콤한 것이 러브 레터다. 매시브 어택이 ‘패라다이스 서커스’에서 노래했듯이 ‘사랑은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에겐 죄와도 같아서’ 사랑은 고백을 해야 속이 풀리게 마련이다. 
요즘은 인터넷 세상이어서 아마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러브 레터를 주고받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러브 레터는 잉크에 펜을 찍어 종이에 적어야 감정이 제대로 호흡한다. 
빅토리아(제니퍼 존스)가 얼굴도 모르는 알란(조셉 카튼)에게 사랑에 빠진 것도 알란이 이렇게 써서 보낸 편지 탓이다. 영화 ‘러브 레터스’(Love Letters·1945)의 주인공 알란은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우인 로저를 대신해 로저의 여자 빅토리아에게 연애편지를 보낸다. 빅토리아는 순전히 이 편지 때문에 로저와 결혼하는데 그러니까 빅토리아가 사랑한 남자는 로저가 아니라 알란이다.
‘러브 레터스’는 통속적인 여성 취향의 신파극으로 내용보다 아름다운 것은 빅터 영이 작곡해 오스카상을 탄 주제가다. ‘나는 줄마다 다 외우고 있어요/나는 당신이 사인한 이름에 키스를 하지요/달링, 그리고 난 다시 처음부터 읽어요/바로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온 사랑의 편지들을’. 이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에타 제임스 그리고 딕 헤임스와 냇 킹 코울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러브 레터스’는 프랑스의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 드 벨즈락’이 원전이다. 코가 너무 큰 검객시인 시라노는 눌변의 크리스티앙을 위해 그가 사랑하는 록산에게 뜨거운 연서를 보내고 어둠 속 록산의 발코니 아래서 사랑의 고백을 유수처럼 쏟아놓는다. 록산은 나중에 가서야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시라노였음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연극은 비극인데 미국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시라노 얘기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 좋은 것은 각기 호세 퍼러(시라노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주연한 것과 스티브 마틴이 나온 현대판 시라노 ‘록산’이다.
러브 레터라기보다 회한과 미련과 그리움의 자기 고백이라고 해야 할 편지를 쓴 여자가 리사다. 리사(조운 폰테인)는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모르는 여인의 편지’(Letter from an Unknown Woman·1948)의 주인공이디. 슈테판 즈바이크의 중편소설이 원작으로 틴에이저인 리사는 비엔나의 같은 아파트에 이사 온 핸섬한 콘서트 피아니스트 슈테판(루이 주르단)을 본 뒤 평생 그를 사랑하게 된다. 
리사는 성장해서도 슈테판을 사랑해 그의 아들까지 낳지만 슈테판은 오랜 세월 동안 몇 차례 리사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리사를 전연 기억 못한다. 그리고 리사는 죽음의 병상에서 자신의 변치 않는 슈테판에 대한 사랑을 적는다. 편지는 리사가 죽은 뒤 슈테판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유부녀 레즐리(베티 데이비스)가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편지’(The Letter 1940-서머셋 모음의 연극이 원전)에서 질투에 눈이 멀어 총으로 쏴 죽인 자기 정부 제프에게 보낸 편지도 러브 레터라고 하겠다.   
연애편지를 모래 속에 손가락으로 쓴 것도 있다. 팻 분은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에서 ‘우리가 함께 모래 속에 쓴 러브 레터를 물결이 쓸어갈 때마다 난 울었는데 당신은 웃었다’면서 ‘지금은 파도가 모래 속에 쓴 편지 위로 부서질 때마다 내 찢어진 가슴이 고통한다’고 징징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분의 음성이 너무 달콤하고 고와서 나는 이 상심의 노래를 들어도 별로 가슴이 안 아프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러브 레터는 구스타프 말러가 자기 아내가 된 알마(사진)에게 보낸 음악편지일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제5번의 제4악장 아다지에토를 알마에게 보내는 연서로 작곡했다. 10분 정도 계속되는 이 악장은 매우 느린데 말러의 비탄에 가까운 동경과 사랑이 천상의 것처럼 고결하고 아름답게 음표로 쓰여졌다. 이 음악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1971)에서 스산할 정도로 아름답게 사용됐다. 해피 밸런타인스 데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