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글로브 레드카펫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팬들은 스타들이 카펫을 밟을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아, 아”하며 죽는 소리를 내고 카메리맨들과 기자들 역시 스타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셔터를 눌러대고 인터뷰 하자며 아우성들을 쳐댔다.
12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한 NBC-TV 측은 카펫 옆 야외석에 앉은 팬들에게 카메라를 향해 “골든 글로브, 골든 글로브”를 외치라고 예행연습까지 시켰다.
난 이 날 이런 도떼기시장이 열린 레드카펫을 오락가락하면서 입장객들에게 “어서들 안으로 들어가세요”라며 밀어대는 시큐리티 노릇을 했다. 그래 봐야 내 말 듣는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시상식이 열리는 하오 5시가 가까워 오면서 스타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날 작품상(드라마)을 탄 ‘12년간의 노예생활’을 감독한 스티브 매퀸과 마이크 타이슨은 만나서 반갑다고 아이들처럼 좋아했고 ‘네브래스카’로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후보에 오른 브루스 던은 시종일관 딸이자 배우인 로라 던의 손을 잡고 카펫을 걸었다.
헬렌 미렌과 그의 남편인 감독 테일러 핵포드, 마이클 더글러스, 탐 행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리타 윌슨, 제니퍼 로렌스, 제시카 채스테인, 루피타 니옹고,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샌드라 불락, 콜린 패럴, 마이클 J. 팍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트레이시 폴랜, 드루 배리모어, 어셔, 매튜 매코너헤이, 케이트 블랜쳇, 올랜도 블룸, 줄리아 로버츠, 치웨텔 에지오포 및 엠마 톰슨 등이 잇따라 카펫을 밟았다.
빅스타일수록 도착이 늦는데 이 날 맨 꼴찌로 카펫을 밟은 사람은 맷 데이먼. 스타들은 또 자기들대로 서로 반갑다며 끌어안고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레드카펫의 교통체증은 공사 중인 405프리웨이를 방불케 했다.
레드카펫은 일종의 비공식 패션쇼 장이기도 하다. 특히 여자 스타들의 드레스가 황홀무아지경으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12년간의 노예생활’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루피타 니옹고의 빨간 실크 케이프가운이 그의 검은 피부색깔과 치열한 적과 흑의 대결을 이뤘다.
이 날 ‘푸른 재스민’으로 여우주연상(드라마)을 탄 케이트 블랜쳇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우아한 검은 망사 가운과 곧 엄마가 될 드루 배리모어의 붉은 꽃무늬가 화사한 드레스 그리고 검은 띠로 액센트를 한 제니퍼 로렌스의 백색 드레스도 눈부시게 곱다.
그런데 이 날 ‘아메리칸 허슬’로 여우조연상을 탄 로렌스는 젖가슴을 간신히 덮은 드레스 끝이 내려가는 것이 신경이 쓰이는 듯 제시카 채스테인과 대화를 나누면서도(사진 왼쪽) 연신 드레스를 끌어올렸다. 나는 얼마 전 로렌스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영화 속 노브라에 대해 물어 “별 얄궂은 질문도 다 한다”는 가벼운 핀잔을 받은 터여서 가서 도와줄까 하다가 그만 뒀다.
남자 스타들 중에 눈에 띄는 멋쟁이는 이 날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남우주연상(드라마)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 검은 깃으로 조화를 이룬 벨벳 초록 턱시도가 강렬했다. 스타들이 카메라맨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패션쇼 모델 저리 가라로 멋있다. 하긴 그 것도 연기의 한 동작이겠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참석자들이 먹고 마시는 중에 진행되는 즉흥적이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기는 쇼다. 딱딱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오스카 시상식과는 전연 다른 경쾌한 이지 고잉 스타일의 쇼다. 식이 진행 중인데도 식장에 붙은 오픈 바에 가서 술 시켜 마시는 배우들도 종종 눈에 띈다. 나도 그렇지만.
그런데 사실 골든 글로브는 시상식보다 식후의 파티가 더 인기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워너브라더스와 인 스타일이 공동 주최하는 파티를 비롯해 HBO와 팍스와 NBC-유니버설 그리고 와인스틴이 마련하는 파티는 새벽 2시까지 흥청망청 대면서 계속된다. 타락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데 여기서는 보타이를 풀어 헤친 스타들과 팬들이 서로 하나가 돼 즐긴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함께 TV 부문에도 시상하는데 올 시상식을 TV로 본 시청자 수는 총 2,090만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 10년만에 처음 이룬 최고의 기록이다. 이렇게 시청률이 치솟은 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본 두 여자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다. 재치 있고 귀엽고 우습고 희롱하고 꾸밈이 없어 보기에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이들은 내년에도 사회를 본다.
HFPA의 한 회원(이 날 ‘하우스 오브 카드’로 TV시리즈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탄 션 펜의 전처 로빈 라이트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를 ‘괴짜들의 무리’라고 불렀다)으로서 내가 투표한 시상식을 2,090만명이 봤다니 기분이 괜찮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17.2014.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