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8월 8일 목요일

‘루스’(Luce)


피터(왼쪽부터)와 루스 그리고 에이미가 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다.

비방 관련 교사와 모범생 ‘누구 말이 진실일까’


‘히 세드, 쉬 세드’의 틀을 갖춘 가족과 인종문제, 계급과 진실 그리고 지나친 기대와 고정관념에 관한 스릴러 스타일의 드라마다. 시종일관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를 놓고 궁금해 하게 만든 어둡고 터프하며 긴장감 감도는 튼튼한 작품이다. 
영화의 스릴과 긴장감은 교사로부터 비방을 받는 모범적인 고등학생과 교사간의 비방의 내용을 둘러싼 진실여부 공방에서 나오는데 문제는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별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따라서 갈수록 긴장감과 스릴이 녹아내리게 마련이다. 
백인일색인 버지니아주 중상층이 사는 동네의 고등학교 3학년생인 루스(켈빈 해리슨 주니어)는 공부와 운동에서 모두 뛰어난 모범생. 루스는 일곱 살 때 백인 어머니 에이미(나오미 와츠)와 아버지 피터(팀 로스)에 의해 전쟁으로 찢어진 에리테리아에서 소년 군인으로 있을 때 입양된 아이. 그 후 심리치료와 재활을 거쳐 이제 흑인의 모델과도 같은 학생이 된 것. 친구가 그를 ‘새 오바마’라고 부른다. 루스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지칠대로 지쳐 숨이 막힐 지경이나 이를 상냥한 미소로 감춘다. 
어느 날 루스의 흑인 역사교사 해리엣(옥타비아 스펜서)이 의사인 에이미를 호출한다. 해리엣은 에이미에게 루스가 쓴 글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글을 쓰면서 루스가 고른 사람은 폭력을 써 억압적인 체제를 뒤집어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혁명적 심리학자 프란츠 패논. 해리엣은 이와 함께 루스의 락커에서 찾았다는 불법 폭죽도 건넨다. 해리엣과 루스는 글을 놓고 이미 심한 설전을 벌였다. 에이미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도 루스에겐 모른 체 한다.
그러나 얼마 못가 에이미와 피터가 루스에게 글과 폭죽에 관해 묻자 루스는 글은 글일 뿐이며 폭죽은 자기와 함께 락커를 쓰는 급우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루스는 해리엣이 흑인 학생들에 대해 가혹하게 모범생이 될 것을 강조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에이미와 피터와 루스 그리고 교장과 해리엣이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루스는 끝까지 해리엣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에이미는 진실여부를 무시하고 루스를 옹호한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혼자 사는 해리엣에게는 요양소에 들어간 정신질환자 여동생이 있어 시달리고 있는데 과연 해리엣은 이런 개인적 고통을 제자들을 괴롭힘으로써 해소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루스는 자기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상자 속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시달려 자기 주변 사람들을 해칠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인가. 
한편 루스와 헤어진 여친 급우 스테파니 김(한국계 캐나다 배우 안드레아 방)이 해리엣을 찾아와 루스가 과거 자기를 성적으로 괴롭혔다고 고발한다. 과연 스테파니의 증언은 사실인가. 이와 함께 해리엣에게 불상사들이 일어나면서 해리엣은 궁지에 몰린다. 
경탄스러운 것은 해리스 주니어의 연기. 카리스마와 함께 섬세하고 미묘하며 또 민감한 연기를 하는데 압도적이다. 그리고 와츠와 스펜서도 매우 훌륭하다. 감독 줄리어스 오나의 연극이 원작. R 등급. Neon.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타는 텔 아비브’(Tel Aviv on Fire)


아랍인 살람(왼쪽)과 유대인 장교 아시가 드라마의 각본을 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적대관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드라마 함께 만들며 친해지는데… 풍자 속 공존 제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마음 좋게 풍자한 이스라엘 영화로 가볍지만 재미있고 우습다. 그러나 코미디 속에 지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관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이 화약고와도 같은 지역의 종교적 정치적 및 인종적 상황들을 살펴보게 만든다.
영화나 TV프로 같은 예술적 매체는 서로 갈등 관계를 지닌 사람들마저도 하나로 만들어준다는 얘기를 다소 황당무계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풍자 안에서 적대적 관계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의도가 감각된다. 결국 우린 다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의 싸구려 소프 오페라 ‘불타는 텔 아비브’는 중동의 6일 전쟁 발발 직전인 1967년을 시간대로 한 작품.
내용은 파리에 살던 매력적인 여자탈라(루브나 아자바이)가 예루살렘에 와서 이스라엘 장군(유셉 ‘조’ 스에이드)으로부터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 드라마. 아랍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애인 마리암(마이사 아브드 엘하디)에게서 따돌림을 받은 인생 실패자인 살람(카이스 나쉬프)은 드라마 제작자인 삼촌 덕분에 세트에서 잡일을 한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드라마의 배우들이 하는 히브리어 대사가 서툴다고 조언을 하면서 각본 집필에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글 실력이 없는 살람이 매일 아침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하다가 초소 경비 장교 아시(야니브 비톤)를 만나면서 실력(?) 발휘를 하게 된다. 아시는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으로 자기를 드라마 각본가로 소개한 살람에게 드라마의 플롯과 대사까지 챙겨주면서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로 인해 적 사이인 둘의 관계가 가까워진다.
물론 아시는 드라마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 좋도록 만들려고 하는데 살람이 이를 세트에서 써먹으면서 얘기가 점점 더 재미있게 된다. 그러나 때론 살람이 아시로부터 받은 내용이 지나치게 이스라엘 측에 편향돼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람은 아시로부터 일장훈계와 함께 야단을 맞는다. 살람은 캐치-22 상황에 빠져 갈팡질팡한다.
결정적 문제는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하느냐 하는 것. 살람으로선 양측 비위에 다 맞도록 글을 써야 할텐데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여하튼 드라마의 대미가 요란하게 장식되는데 억지가 좀 지나친 것 같다. 영화는 아시나 살람이나 다 마음 좋은 사람들로 묘사, 평화적 제스처를 쓰고 있는데 아자바이를 비롯해 나쉬프와 비톤이 어색한듯 하면서도 좋은 연기를 한다.
사메 조아비 감독(각본 겸).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할리웃에’(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TV 웨스턴 배우 릭과 그의 오랜 대역 클립(왼쪽)이 지금도 있는 할리웃의 유서 깊은 식당 ‘무소 앤 프랭크’의 바에 앉아 담소하고 있다.

히피시대 할리웃 배경 디카프리오- 피트 연기 대결


이탈리안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와 ‘옛날 옛적 미국에’를 연상케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각본 겸)이 과거 할리웃에 바치는 헌사요 연서이다. 할리웃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히피시대인 1969년을 시간대로 설정, 지나간 할리웃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연기와 과거 할리웃 거리를 재연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고고 부츠와 히피 패션 등이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질서정연한 얘기 서술보다 장면 장면을 짜깁기하는데 더 능한 감독으로 이 영화도 플롯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과거 영화와 TV 장면 등을 흘러간 팝송과 함께 계속해 보여주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중구난방 식이다.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영화로 마치 자신의 할리웃에 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듯 하다. 과거 할리웃 영화와 TV프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필하겠지만 이를 전연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어필할지 의문이다. 
어색한 것은 영화에서 TV 웨스턴의 주연배우로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가 카우보이 모자에 부츠를 신고 권총을 뽑아 속사로 상대를 황천으로 보내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 권총 장난하듯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연기는 맹렬하면서도 민감하게 잘 하지만 미스 캐스팅 같다.
릭 달턴(디카프리오)은 TV 웨스턴 시리즈 ‘바운티 로’의 주연배우로 인기가 하락세로 접어든 채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는 할리우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이런 그와 동병상련하는 사람이 릭의 오랜 대역 클립 부스(브래드 피트). 클립은 릭의 운전사 노릇까지 하지만 둘은 절친한 친구로 서로에 대한 충성이 지극하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 가끔 눈물을 짜는 디카프리오와 느긋하고 약간 으스대는 연기를 하는 피트의 화학작용이 좋긴 하나 아무리 봐도 디카프리오는 웨스턴 건맨으론 안 보인다.
영화는 릭과 클립의 촬영장과 둘의 집을 오락가락하며 보여주는데 트레일러에 사는 클립은 맹견 로트와일러 브랜디를 애지중지한다. 이들의 애기와 병행해 1969년 8월에 맨슨 일가에 의해 살해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의 얘기가 서술된다. 샤론은 릭의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그런데 샤론의 얘기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로비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샤론이 플레이보이 맨션 파티에 참석한 장면에서 데이미언 루이스가 스티브 맥퀸으로 나와 기차게 잘 하는데 죽은 맥퀸이 환생한 줄 알았다.
릭은 자기 위치에 불안을 느껴 폭음을 하면서 촬영 때 대사마저 잊어버리는데 궁여지책으로 자기 에이전트(알 파치노)가 주선한 스파게티 웨스턴에 나오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 6개월 간 싸구려 스파게티 웨스턴과 제임스 본드 모조품에 나온다. 이 부분은 TV 웨스턴 ‘로하이드’에 나온 뒤 이탈리아에 가서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에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생각나게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이니 만큼 유혈 낭자한 폭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끝에 가서 사람과 개가 동원된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이 자행된다. 불필요한 폭력의 과용이다. 파치노 외에도 커트 러셀을 비롯한 유명 배우들이 많이 카메오로 나오는데 촬영장에서 릭에게 연기와 인생철학을 일장 연설하는 여덟 살짜리 아역배우로 나온 줄리아 버터스가 경탄할 연기를 한다. 이와 함께 클립이 촬영장에서 만난 브루스 리와 한판 겨루는 장면도 웃기는게 브루스로 나오는 한국계 마이크 모도 재치와 맵시를 겸비한 연기를 한다. 타란티노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도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썼는데 여기서도 그런다. 상영시간 159분은 너무 긴데 타란티노가 여러 면에서 과욕을 부린 영화다. R등급. Son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킨’(Skin)


네오-나치 브라이언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집단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스킨헤드·집단생활·유혈폭력·문신… 네오-나치집단 탈출자의 치열한 삶


2006년 오랜 세월을 몸담아온 네오-나치 집단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젊은 보수극단주의자 브라이언 와이드너의 삶을 다룬 실화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치열하고 거칠고 사실적이다. 스킨헤드의 문화와 그들의 집단생활 그리고 이들이 자행하는 유혈폭력과 또 이들의 상징인 문신 등에 관한 강건한 탐구인데 주·조연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얼굴과 온 몸에 문신을 한 브라이언 와이드너(제이미 벨)는 “미국을 하얗게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네오-나치 단체 ‘노르딕 소셜 클럽’의 골수분자. 그는 오도 갈데없는 자기를 받아준 클럽을 가족으로 여긴다. 이 단체의 리더는 본능대로 행동하는 증오에 가득 찬 프레드(빌 캠프)와 그의 아내 샤린(베라 화미가). 샤린은 신참에게 “날 엄마라 불러”라고 사근사근하니 대하나 무서운 여자다. 
바이런과 동료들은 시위에 나가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회교사원에 방화하고 갈 곳 없는 젊은이들에게 집과 음식과 친구를 마련해 준다며 자기 집단 안으로 끌어들인다.
겉으로는 거치나 마음은 부드러운 바이런은 새로 집단에 들어온 자기처럼 오도 갈데없는 소년을 보고 자기 위치에 회의를 느끼면서 탈출을 마음먹는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그가 세 아이를 키우는 홀어머니 줄리(대니얼맥도널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다. 
바이런은 극단주의자들의 과거 청산을 평화적 방법으로 다루는 단체 ‘원 피플 프로젝트’의 지도자 대릴 젠킨스(마이크 콜터)의 도움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탈출을 결심한다. 이와 함께 바이런은 얼굴과 몸의 문신을 제거하는 몇 달간의 작업에 들어가는데 계속해 보여주는 이 장면이 보기에 고통스럽다. 
프레드는 이런 바이런에게 “나는 아직도 너를 소유하고 있어”라며 졸개들을 풀어 바이런과 줄리와 세 아이들을 위협한다. 네오-나치들은 브라이언의 애견을 목매달아 죽이기까지 한다.  바이런과 줄리와 세 아이들은 네오-나치들을 피해 도주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생살 깍듯하던 영화가 다소 멜로드라마 식으로 변형된다.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집요한 영화로 아역배우 출신의 벨이 뜨겁고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다. 그리고 화미가의 연기도 간교하게 유혹적이다. 이스라엘 감독 가이 내티브의 첫 미국영화.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라이언 킹’ (The Lion King)


아버지 사자 무파사가 갓난 아들 사자 심바에게 앞으로 심바가 통치할 아프리카 초원을 소개시켜주고 있다.

실사영화로 만든‘라이언 킹’ 감동은 그대로


디즈니의 돈과 기술이 있는 대로 힘을 다 낸 잘 만들고 재미있는 온 가족용 영화다. 특히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즐겁게 볼 백수의 왕 사자의 액션과 모험 그리고 가족의 끈질긴 유대관계를 다룬 교훈적인 내용마저 간직한 영화다.
이 영화는 1994년 디즈니가 만들어 빅히트를 하고 무대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져 역시 크게 성공한 동명의 만화영화의 라이브 액션 판이다. 라이브 액션영화라곤 하지만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과 자연경관이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져 만화영화나 진배없다고 하겠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동물들과 광대한 아프리카의 초원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보기에 황홀무아지경이지만 이런 기술적인 완벽성이 오히려 영화의 영혼을 빼앗고 있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점으로 인해 작품에 여유와 감정이 결여된 것이 흠이지만 음성연기와 노래와 음악(한스 짐머)과 촬영(케일렙 데샤넬) 등이 다 훌륭한데 특히 시각효과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감독은 디즈니의 히트작 ‘정글 북’을 만든 존 패브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영화의 그 것을 그대로 답습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백수의 왕인 사자 무파사(만화영화에서도 음성연기를 한 제임스 얼 존스)가 갓난 아들 심바(JD 맥크래리)를 온 동물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난꾸러기 심바는 무럭무럭 잘 큰다.
무파사를 시기 질시하는 것이 무파사에 의해 후진 곳으로 추방돼 하이에나들을 졸개로 데리고 사는 무파사의 동생 스카(치웨텔 에지오포-만화영화에선 제레미 아이언스). 어느 날 심바가 집을 멀리 떠나 골짜기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들소 떼의 질주에 깔려죽기 직전에 무파사에 의해 구출되나 무파사는 이를 지켜보던 스카에 의해 살해된다. 그리고 심바는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스카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다. 이어 스카는 형의 자리를 차지한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어린 심바가 만나는 것이 걸맞지 않는 단짝으로 방구를 뀌는 흑멧돼지 품바(세스 로건)와 재잘대는 몽구스 타이먼(빌리 아이크너). 품바와 몽구스가 영화에 유머와 웃음을 듬뿍 쏟아 붓는다. 셋은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고 심바는 여기서 아버지를 똑 닮은 우람찬 사자(도널드 글로버)로 성장한다.
집을 잊고 사는 심바를 찾아온 것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암사자 날라(비욘세). 심바는 처음에 날라의 집으로 돌아가 스카를 몰아내고 마을에 평화를 되찾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다가 각성, 날라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심바와 날라 사이에 로맨스도 꽃 피고. 둘을 뒤따르는 품바와 타이먼. 귀향한 심바와 스카 간에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누가 이길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
중요한 역을 맡은 동물들의 음성(때론 노래도 부른다) 연기가 즐거운데 무파사의 심복인 코뿔새 자주(존 올리버)도 재미있다. 만화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신선감이 모자란다. 이렇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결점이다. PG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과 평화’


우리가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생각되는 책 중의 하나가 레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특히 이 책은 내용에서 나폴레옹의 1812년 모스크바 침공을 다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고 할리웃 보울에서도 불꽃놀이와 함께 자주 연주되는 ‘1812년’ 서곡과 연결되면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원작으로 1956년에 미국과 이탈리아가 공동 제작한 동명의 영화를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헨리 킹이 감독하고 오드리 헵번과 헨리 폰다와 멜 퍼러(당시 헵번의 남편이었다)가 주연한 상영시간 208분짜리 영화에는 비토리오 가스만, 아니타 에크버그, 허버트 롬 및 오스카 호몰카 등 기라성 같은 국제적 배우들이 앙상블 캐스트로 나온다.
이 대하 서사극은 이탈리아의 두 거물급 제작자들인 디노 데 라우렌티스와 칼로 폰티(소피아로렌의 남편)가 만들고 음악과 촬영 역시 그 부문의 최고들인 이탈리아의 니노 로타(‘길’ ‘대부’)와 영국의 잭 카르디프(‘흑수선’ ‘분홍신’)가 맡았으나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의 성격 묘사에 있어서는 깊이가 모자란다. 특히 다소 우유부단하고 어리숭하나 선한 마음을 지닌 피에르 베주코프(피에르는 난봉꾼 도박사에서 사회개혁자요 인본주의자로 변신한 톨스토이 자신이 모델이라고 한다)  역의 폰다와 완고하나 영웅적인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의 퍼러가 역에 어울리지가 않아 보기에 어색했다. 미국에서 평과 흥행이 다 신통치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소간 냉전이 치열하던 당시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련에서 상영되면서 수백만 명이 관람하는 인기를 모았는데 특히 관객들은 정열적이요 자유혼을 지닌 나타샤 로스토바 역의 헵번을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뿔이 난 것이 소련정부. 조국의 국보급인 작가의 소설을 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 소련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에 자존심을 상한 소련정부가 미국 판 보다 훨씬 더 크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로 작심하고 만든 것이 소련의 유서 깊은 모스필름이 1966년-67년에 걸쳐 제작한 상영시간 422분짜리 ‘전쟁과 평화’(사진)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다. 보기 전에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마음준비를 했다.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작품이다. 베테런 배우로 이 영화 전에 단 한편의 작품을 연출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감독했는데 역사적 사실에 집념하면서 준비기간만 톨스토이가 소설을 쓰는데 걸린 시간과 같은 6년이 걸렸다. 배우 선정에 걸린 시간만 1년이며 대사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300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이다. 
소련의 자존심이 걸린 영화이니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제한 없는 제작비와 전쟁장면을 찍는 공중촬영을 위한 군용기와 헬기들 그리고 15,000여명의 군인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으며 국내 유명 미술관들의 귀중한 소장품들이 소품으로 사용됐다.         
영화에서 비극적 영웅인 피에르로 나오기도 하는 본다르추크는 포화가 불을 뿜는 장렬한 전투장면과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전쟁에 무관심한 귀족들의 화려한 모습과 세 주인공 피에르와 안드레이(비야체슬라프 티코노프)와 나타샤(19세의 발레리나 류드밀라 사벨리에바가 헵번을 쏙 빼 닮았다)의 사랑과 삶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주인공들의 연기와 함께 이들의 인물과 성격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눈부시게 유려하고 화사한 것은 롤러스케이트를 탄 카메라맨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나타샤가 소개되는 대무도회장면. 경탄을 금치 못할 유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추하고 쓰라린 전쟁의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사실적이며 이와 함께 귀족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리고 세 주인공들의 삼각관계가 교차해 파노라마를 일으키면서 보는 사람에게 드라마의 심리적 감정적 진동을 느끼게 만든다. 복잡한 부 주제들인 정치와 종교와 철학 등을 얘기할 때에는 영화가 다소 처지긴 하지만 아찔하니 거대한 느낌을 겪게 된다.
영화는 *안드레이와 피에르의 소개와 함께 전쟁이 벌어지는 ‘안드레이 볼콘스키’(Andrei Bolkonsky) *나타샤가 소개되는 ‘나타샤 로스토바’(Natasha Rostova)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다룬 ‘1812년’ 및 *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안드레이의 사망과 피에르와 나타샤의 결합을 다룬 ‘피에르 베주코프’(Pierre Bezukhov) 등 모두 4부로 진행된다.
‘전쟁과 평화’는 소련서 개봉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본다르추크의 동료 영화인들이 시기로 감독과 영화를 따돌리면서 영화가 점차 관객들로 부터도 외면을 받고 그 후 수 십 년 간 잊혀 지다 시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는 신화적 자리에 오르게 되고 마침내 2000년대에 들어 모스필름의 지도자들에 의해 복원돼 재생하게 된다. 이 복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람 중의 하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그는 “조국의 타당한 애국적 문화회복을 원 한다”면서 ‘전쟁과 평화’의 복원사업을 밀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전쟁과 평화’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디지털로 복원돼 최근 DVD와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번 볼만한 방대하고 장려한 역사적 걸작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칸피덴셜 칸피덴셜’


“우리 모두 그 주간지 읽어요.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이름이 거기에 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지요.” 왕년의 할리웃의 수퍼스타 말렌 디트릭이 말한 이 격주간지는 1950년대 할리웃스타들의 스캔들 폭로로 악명을 떨친 ‘칸피덴셜’(Confidential)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의 야한 사진 잡지로 돈을 번 로버트 해리슨이 1952년 뉴욕에서 창간한 ‘칸피덴셜’은 할리웃 스튜디오들이 로맨틱한 가짜 이미지로 미화한 스타들의 문란한 섹스와 비행과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스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잡지다.
잡지는 인기절정에 이른 1956년 가판판매부수가 무려 500여만 부를 기록하면서 타임과 라이프 같은 잡지들을 앞서갔었다. ‘칸피덴셜’은 요즘의 가십전문지들인 ‘스타’ ‘인콰이어러’ ‘어스’ 및 TV프로 TMZ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 잡지의 내막을 파헤친 책 ‘칸피덴셜 칸피덴셜’(사진)을 재미있게 읽었다. 법학교수이자 할리웃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새만사 바바스가 쓴 책은 잡지의 내막을 해부하듯이 심층 분석하면서 아울러 할리웃 황금기 스타들의 비사를 상세히 적어 흥미만점이다.
해리슨은 기사 취재를 위해 할리웃에 해리슨 리서치사 까지 차려놓고 스타들의 스캔들을 수집했다. 해리슨은 후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립탐정, 창녀, 발레, 바텐더, 웨이터, 미용사, 하녀, 영화계 종사자 그리고 경찰과 스타들의 전처와 전남편 등으로부터 스타들의 비행을 수집한 뒤 야단스런 수식어를 가미해 대서특필, 많은 스타들을 벌벌 떨게 하면서 할리웃을 군림했었다. 
이 잡지에 의해 망신과 해를 입은 스타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프랭크 시내트라, 에이바 가드너, 라나 터너, 록 허드슨, 탭 헌터, 로버트 미첨, 밴 잔슨, 루실 볼과 남편 데지 아네스, 버트 랭카스터, 마릴린 몬로와 야구선수 남편 조 디매지오, 앨란 래드, 메이 웨스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말렌 디트릭, 에롤 플린, 킴 노백 및 리베라치 등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곤욕을 치렀다.
일반인들이 우상처럼 여기는 스타들의 뒷사정을 엿보는 것처럼 짜릿한 흥분 감을 겪는 일도 흔치 않아 ‘칸피덴셜’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해리슨은 런던에 까지 지사를 설립했을 정도다.
당시만 해도 스타들을 자기 회사 직원들처럼 고용했던 스튜디오들에게 ‘칸피덴셜’은 눈엣 가시였으나 이들은 잡지를 모른 척 하면서 오히려 때론 잡지에 자사 스타들의 비리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수퍼 스타들의 비밀 폭로를 막으려고 B급 스타들의 어두운 과거를 흘리는 야비한 짓을 자행했다. ‘칸피덴셜’이 록 허드슨의 동성애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스튜디오는 이를 잘 나가던 B급 스타 로리 칼훈의 전과기록과 교환, 허드슨을 살려냈다.
‘칸피덴셜’의 기사에 시달리다 못한 할리웃의 6개 스튜디오들은 공동으로 자금까지 모아 잡지의 침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상호 이해관계로 인해 실패했다. 두 스타 로버트 미첨과 에롤 플린도 용감히 ‘칸피덴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별무소득으로 끝났다.
마침내 1957년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스튜디오와 스타 그리고 일부 여론의 압박에 몰려 ‘칸피덴셜’을 허위보도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를 했다. 검찰 측 증인들은 게리 쿠퍼, 빨강머리 모린 오하라, 동성애자인 탭 헌터 및 라나 터너였는데 결과는 재판무효.
검찰 측은 ‘칸피덴셜’에 당한 스타들을 증인으로 소환하려고 했으나 많은 스타들이 멕시코로 휴가를 간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이를 회피했다. 법정에 나가봤자 자신들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들만 다시 한 번 광고하는 셈 이였기 때문이다.
‘칸피덴셜’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이며 또 여성비하를 마다 않았지만 해리슨은 자신의 잡지가 로맨틱한 허위로 치장한 스타들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팬들의 갈증을 심층보도로 해갈시켜 주는 미디아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비록 잡지가 옐로 저널리즘이긴 했으나 공인인 스타들의 성적 위선을 비롯한 온갖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스튜디오가 쓴 이들의 ‘신화’를 여지없이 파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언론의 사명을 한 셈이다.
그러나 스튜디오들이 공들여 쌓은 스타들의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미디아왕국의 첨병이 된 ‘칸피덴셜’은 1956년 중반 들어 인기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잡지의 무리한 확장과 보수파들의 집요한 반발 그리고 잡지를 본 받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30여개의 스캔들 전문지 범람에 독자들이 실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재판무효 판결 후 1958년 가십전문의 내용을 완전히 바꿔 새 체제로 잡지를 발행했지만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세 차례 발행 후 문을 닫았다
‘칸피덴셜’의 얘기는 1997년 커티스 핸슨이 감독하고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케빈 스페이시 및 킴 베이신저(오스카 조연상 수상) 등이 공연한 뛰어난 필름 느와르 ‘L.A. 칸피덴셜’에서  상세히 묘사됐다. 이중성과 비행의 도시 LA와 옐로 저널리즘의 어두운 이면을 아름답고 폭력적으로 가차 없이 파헤친 영화에서 ‘칸피덴셜’은 ‘허쉬-허쉬’로 그리고 해리슨은 대니 드비토가 연기한 시드 허젠스로 대체됐다. 책과 함께 영화를 보면 배로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