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


엘리사와 물탱크 안의 괴물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괴물과 인간의 소통 ‘어른용 동화’


아름답고 감정적인 공포영화를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내는 멕시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공동 각본)의 상상력 넘치는 어두운 기운을 지닌 상냥한 로맨틱 동화로 올 베니스 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다. 영혼이 깃든 ‘미녀와 야수’의 얘기로 괴물과 인간 여자의 상호 이해와 감정 이입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유머를 섞어 시각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황홀하게 그려낸 환상영화로 서스펜스 스릴러 분위기마저 지녔다.
연기와 초록과 푸른 색 위주의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을 비롯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고운 멜로디가 있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준수한 작품으로 옛 할리웃과 미국 팝문화에 대한 헌사까지 겸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에서 미국의 옛 스탠다드 노래들과 빅밴드음악을 비롯해 할리웃의 옛 뮤지컬과 성경영화 등을 찬미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할리웃이 만든 ‘검은 초호의 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45)을 연상케 한다. 
어른들을 위한 환상적인 동화이면서 아울러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고 있는 영화는 볼티모어의 극장 위에 달린 아파트에 사는 직장에서 쫓겨난 게이 화가 가일즈(리처드 젠킨스)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식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수중에 잠긴 채 가구들이 유영하는 아파트를 그린 첫 장면부터 신비롭게 아름답다. 
때는 미·소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가일즈의 유일한 친구는 이웃 아파트에 사는 정부소속 우주항공기관의 야근 청소부 엘리사(샐리 호킨스)로 고독하나 밝고 생활력 강한 엘리사는 말을 못한다. 엘리사 대신 말이 많은 것이 그의 청소부 친구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엘리사가 아마존 수로에서 건져내 이 비밀 연구소에서 실험대상으로 쓰는 지느러미가 달린 괴물(덕 존스)과 의사와 감정을 소통하면서 인간과 괴물의 아름다운 관계가 무르익는다.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매료돼 호기심과 자비심으로 접근하는 엘리사와 그에게 자신의 혼과 감정으로 호응하는 괴물간의 관계가 마치 풋풋한 첫사랑처럼 곱다. 괴물의 아름다운 내면 탓에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기가 석연치 않다. 
연구소는 괴물의 폐 구조를 우주경쟁을 위해 사용하려고 연구하고 있는데 그 일을 담당한 과학자가 비밀을 지닌 로버트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툴바그)이고 괴물 관리의 총책임자는 잔인하고 고약한 정부관리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논). 스트릭랜드는 전기충격봉으로 괴물을 못 살게 굴다가 괴물에 의해 손가락을 물린다.  
괴물이 고통하는 것을 보다 못해 엘리사는 괴물을 연구소로부터 빼내기로 하고 가일즈와 젤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빼내 자기 아파트 욕조에 감춘다. 그리고 물로 가득 채운 배스룸에서 괴물과 엘리사간의 정열적이요 아름다운 정사가 벌어진다. 이어 스트릭랜드가 괴물을 찾아 수색에 나서고 엘리사가 괴물을 데리고 강가로 도주하면서 서스펜스가 영근다. 
표현력 풍부한 괴물 역의 존스를 비롯해 조연진의 연기가 출중한데 무엇보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호킨스의 연기. 진지하고 민감하며 또 섬세하면서도 폭이 넓은 연기다. 
LA영화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올 해 최우수 감독상(공동)과 촬영상 및 여우주연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이, 토냐’(I, Tonya)

하딩이 심판에게 스케이트에 이상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이단아' 하딩의 성장과 파멸 다큐 형식으로 담아


미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인 미 챔피언 피겨 스케이터 토냐 하딩의 라이벌 낸시 케리간에 대한 폭행을 다룬 재미 만점의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다.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하딩의 불우한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해 그의 스케이팅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에 의한 맹훈련과 첫사랑과 결혼 그리고 챔피언쉽 획득에 이어 케리간에 대한 폭력행사로 인한 불명예 은퇴를 주연과 여러 명의 조연배우들을 동원해 마치 기록영화 찍듯이 만들었다.
배우들이 가끔가다 카메라를 향해 얘기해 기록영화 스타일과 분위기가 더 짙은데 하딩의 불같은 성질과 스케이팅의 유연한 동작을 포착한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화면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주연인 마고 로비의 연기와 함께 조연진의 각기 개성 있는 연기가 볼만한 야하고 싱싱한 영화다.
하딩은 식당 웨이트리스로 골초에 폭력적이요 상소리를 밥 먹듯이 내뱉는 어머니 라보나 고든(앨리슨 재니가 무식한 여자의 연기를 겁나게 해낸다)에 의해 어릴 때부터 스케이팅 링에 선다. 딸의 재능을 안 라보나는 폭군이지만 딸을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고생해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딸의 훈련비로 쓴다. 하딩의 재능을 발견한 또 다른 사람이 코치 다이앤 롤린슨(줄리앤 니콜슨). 다이앤은 하딩이 자라서도 그의 뒷받침을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하딩의 10대 시절과 스케이팅 훈련 그리고 하딩과 날건달 제프 길룰리(세바스찬 스탠)와의 사랑과 결혼으로 꾸며진다. 그런데 제프는 하딩을 사랑하면서도 툭하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아내의 유명세를 마음껏 누린다. 하딩은 불우한 성장과 남자 선택이 서툰 여자로 멸시 받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의지와 재능으로 이를 극복하고 짧은 영광을 누렸던 어떻게 보면 불쌍한 여자다.
하딩이 유명해진 것은 1991년 미 챔피언쉽 경기에서 공중 3회전을 하면서인데 그 당시로서 이 기록은 미 여자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하딩은 성질이 고약할 정도로 불같아 심판들이 점수를 박하게 주면 상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단정하고 발레리나 같은 챔피언을 바라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에서 하딩은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리고 하딩은 올림픽에 출전한다.
라보나와 제프 및 다이앤 외에 중요한 조연은 하딩의 얼빠진 바디 가드 션 에카르트(폴 월터 하우저). 하딩의 라이벌 케리간에 대한 폭행은 1994년 1월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했는데 릴리해머에서 열릴 동계올림픽을 위한 연습 때. 하딩과 이혼한 제프가 고용한 스탠트가 케리간의 허벅지를 가격해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는데 케리간은 부상이 회복돼 올림픽에 출전, 은메달을 탔고 하딩은 8위에 그쳤다.
하딩은 후에 케리간에 대한 폭력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이유로 피겨 스키이팅계에서 쫓겨났다. 재니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은 로비의 연기다. 짙은 화장에 야한 싸구려 스케이팅 의상을 입고 역이 재미있다는 듯이 신이 나서 날뛰다시피 한다. 재니의 연기와 함께 상감이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