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왼쪽)와 로닛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 장소를 찾아가고 있다. |
성적 욕망과 믿음 사이 고뇌... 긴장감 있고 깊이 있게 고찰
‘글로리아’(Gloria)와 올 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멋있는 여자’(A Fantastic Woman)에서 여성의 성적 갈망과 심리를 깊이 고찰한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레리오의 첫 영어영화로 보수 유대교 신도들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동성애자와 오래간만에 이 여인을 만난 옛 연인의 육체적 정신적 몸부림을 다룬 심오하고 자비로운 작품이다.
인간의 자유의지 대 신앙의 대결과 함께 욕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다룬 얘기로 전반부는 다소 느리고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후반에 들어 서서히 작품에 불길이 당겨지면서 서스펜스 영화를 보듯이 진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세 주인공의 연기. 오래간만에 재회해 사랑의 불꽃을 다시 점화시키는 두 여인 역의 레이철 바이스와 레이철 맥애담스 그리고 이들 여인 사이에서 인간적 정신적 갈등을 심하게 겪게 되는 남자 역의 알레산드로 니볼라의 연기가 깊이와 무게를 가득히 지녔다.
오래 전에 런던의 보수 유대교 신자들의 사회를 떠나 뉴욕으로 온 사진사 로닛(바이스)은 막강한 힘을 지닌 유대교 목사인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받고 런던으로 온다. 왜 로닛이 런던을 버렸는지에 대한 이유는 명확히 전모가 밝혀지지 않으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영화 처음에 로닛의 아버지가 교회에서 인간의 자유와 신앙에 관해 설교를 하다가 쓰러지는데 로닛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충격에 빠져 긴 산책과 바에서의 음주 그리고 술에 취한 채 바의 화장실에서의 남자와의 섹스로 슬픔을 달랜다.
고향에 돌아온 로닛을 처음 맞는 사람이 로닛의 어릴 적 친구로 자기 아버지의 후계자로 꼽히는 도빗(니볼라). 그러나 도빗은 자기 가족과 커뮤니티를 버린 로닛을 다소 차갑게 맞는다. 그리고 로닛의 친척과 친지 및 동네 사람들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라는 말 한마디로 매우 냉랭하게 로닛을 대한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로닛이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은 역시 어릴 적 친구인 에스티(맥애담스)를 만나면서다. 뜻 밖에도 에스티가 도빗의 아내가 된 것. 적극적인 로닛과 소심한 에스티는 학생 시절 연인 사이였다.
로닛과 에스티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로닛은 에스티가 경직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남편과 사랑 없는 섹스를 하면서(매주 금요일 의식처럼 치른다) 질식할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도빗은 선하고 연민의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둘이 만남을 거듭하면서 사랑이 재점화되고 이윽고 둘은 골목에서의 키스에 이어 호텔방을 빌려 뜨거운 성애를 나눈다. 둘의 섹스신이 마치 짐승들의 그것처럼 매우 노골적이요 뜨겁고 지극하다.
그리고 도빗의 아기를 가진 에스티는 남편에게 “날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아내의 요구에 대한 대답을 자기에게 주어진 목사의 직무를 거절하는 답변으로 대신하는 도빗의 절규에 가까운 설교가 가슴을 강하게 친다. 바이스와 맥애담스의 대조적인 연기도 좋지만 거의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니볼라의 안으로 꾹꾹 누르는 내적 폭발력을 지닌 연기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