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헌드레드-푸트 여행(The Hundred-Foot Journey)


마담 말로리(헬렌 미렌)가 하산(마니쉬 다얄)에게 요리법을 시범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과 동화 같은 소재… 갈등 없이 잔잔

현재 상영 중인 ‘셰프’와 앙리 감독의 ‘맨 우먼 이트 드링크’ 및 ‘바벳의 잔치’ 같은 영화들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에 관한 영화로 상은 잘 차려 놓았는데 막상 먹을 것이 없다. 우선 음식영화로선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음식에 관한 영화이자 프랑스와 인도의 문화 차이를 다룬 드라메디로 당분이 많은 알록달록한 랄리팝을 빨아 먹는 기분이 나는데 랄리팝에 무슨 자양분이 있겠는가. 이만 상하지. 나이 든 관객을 겨냥한 무해하게 편안하고 온건한 작품으로 얘기가 어떻게 나아갈지 빤히 들여다보이는데다가 극적 높낮이나 갈등을 비롯해 사실성이 부족해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어디 한 군데를 딱 집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전반적으로 보기 좋고 그럴싸하게 만든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베테런 헬렌 미렌과 인도의 명우 옴 푸리의 자태와 연기 그리고 콤비네이션이다. 너무 크게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다.
아내를 잃고 20대의 아들 하산(마니쉬 다얄)과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이민 온 카담 일가의 무뚝뚝한 가장 파파(푸리)는 곧 이어 고물차를 이끌고 프랑스로 이주한다. 남불의 한 작은 마을 입구에서 차가 고장이 나는데 이를 도와주는 여자가 동네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마음 착하고 예쁜 처녀 마게리트(샬롯 르 봉). 마게리트가 누구와 연애하게 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에 정착키로 한 파파는 낡아빠진 집을 사 인도 식당 ‘메종 뭄바이’로 개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식당이 고집 세고 독불장군식인 마담 말로리가 경영하는 고급 프랑스 식당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는 점(두 식당 간의 거리가 100푸트). 
이어 두 식당의 두 고집쟁이 주인 간에 설전 및 성질 대결과 함께 프랑스 대 인도 식당 간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인종차별 사태도 발생하지만 이런 갈등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묘사돼 맥 빠진다. 여기다 마담 말로리와 파파 간의 은근짜 로맨스까지 조성, 영화가 온통 행복한 분위기로 기득하다.
식당의 등급을 매기는 미슐린으로 부터 별 하나를 받은 말로리의 꿈은 별 두 개를 받는 것( 별 세 개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그래서 말로리는 음식 조리에 뛰어난 솜씨를 지닌 하산을 자기 품 안에 받아들인다. 
본래는 마음이 착한 말로리는 하산을 고용해 별 두 개를 받는 것과 동시에 이로써 젊은 하산을 파리 요리계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어 하산과 마게리트 간에 요리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만 이 것 역시 맹물 처리됐다. 그리고 하산 덕분에 말로리의 식당은 미슐린으로부터 별 두 개를 받고 하산은 파리로 진출한다. 과연 얘기는 여기서 끝날 것인가. 
남불의 작은 마을에서 현지 촬영한 영상미가 꼭 그림엽서처럼 곱고 음악도 분위기에 맞게 달콤하다. 감독은 스웨덴 태생의 라세 할스트롬인데 그는 처음의 솜씨를 잃고 갈수록 할리웃화 하고 있다. PG. DreamWorks.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거울(The Mirrorㆍ1975), 향수(Nostalghiaㆍ1983)

‘영화의 시인’  타르코프스키 감독 작품들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리만이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찬양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 2편이 13일과 14일 이틀간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영화의 시인’이라 불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지극히 영적이요 형이상학적이며 통상적인 극적 구조를 무시해 난해하지만 보는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의 영화는 특히 롱테이크를 이용한 촬영이 몽환적이다시피 아름답다. 예술적 도전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필히 관람을 권한다.
거울(The Mirrorㆍ1975)

거울(The Mirrorㆍ1975)
모스크바로부터 시골에로의 피난 등 타르코프스키의 전시 어렸을 때의 기억에 의존한 자전적 영화로 시간(전시와 1940년대와 전후 1960~70년대)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구조와 명백지 않은 플롯 그리고 기억과 꿈과 뉴스필름 등을 현대의 장면들과 섞은 영화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중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힌다. 
주인공은 알로샤로 그의 어린 시절과 청춘기 그리고 성인시절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통해 알로샤와 그의 주변 세상 얘기를 그렸다. 타르코프스키의 부인과 어머니도 나온다. 깊고 감동적이요 아름답다. 하오 7시30분.


향수(Nostalghiaㆍ1983)
향수(Nostalghiaㆍ1983)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귀국 후 자살한 러시아 작곡가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의터스카니 지방을 방문한 러시아 시인과 그의 아름다운 여자 통역사를 주인공으로 한 타르코프스키의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 
시인은 여행 중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온 남자를 만나면서 그로부터 세계 종말을 막아달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제4악장과 분신자살과 소외 그리고 인류애를 다룬 심오하고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하오 9시40분.

‘기합’



최근 한국에서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가혹행위로 윤모 일병이 숨지면서 지금 나라가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다. 나도 옛날 군시절 모진 시련을 겪긴 했지만 요즘에 비하면 원시시대나 다름없던 그 당시에도 졸병이 기합 받고 죽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국 군대는 완전히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뒤 늦게 병영문화를 개선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지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문제다.      
군대란 한 마디로 말해 유사시 사용할 살상무기를 양성하는 곳이다. 따라서 엄격한 통제가 불가피한데 이 통제의 수단으로 잘 못 쓰여지고 있는 것이 소위 기합이다. 기합을 주는 이유는 군기를 잡아 정신통일을 시킨다는 것.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가학적 폭력욕구의 발로일 뿐이다. 기합이라는 말의 어원이 일본어 이듯이 한국 군대의 기합도 일제 잔재의 하나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가혹한 훈련교관이 신병들에게 “너희들이 아는 것을 다 잊어버려. 너희들은 군인이 되는 거야”라고 훈시하는 장면이 있다. 이 훈시는 인간성을 획일화하려는 구령으로 항상 자유를 요구하는 개체들은 이 같은 구령에 반동하게 마련이다.
고다르의 영화 ‘남성 여성’의 폴도 군생활을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파리의 카페에서 만난 마들렌에게 자기가 막 16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나왔다며 말을 건다. 이에 마들렌이 폴에게 “군생활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폴은 “그것은 권위주의와 복종으로부터 상대적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고 대답한다.
윤 일병의 뉴스를 읽다보니 자연 내 군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대학을 나온 뒤 학교 선생을 하다가 뒤늦게 군에 징집됐다. ‘영감’소리를 들어가며 34개월간 복무를 했는데 그 때만해도 군에 갈 때면 ‘3년간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손목이 빠져 나갈 것 같은 사역을 하면서 8파운드 곡괭이 자루로 ‘빠따’를 맞고 말뚝하사의 워커발로 정강이를 채이다가 밤에는 동해안 보초를 섰다. 서러워 눈물까지 흘렸다. 군대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나의 고생은 아로운과 가지 그리고 프루의 그것에 비하면 말캉한 것이다. 방송작가 한운사의 라디오 드라마가 원전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사진)의 주인공 아로운(김운하)은 일제강점기 때 학병으로 군에 끌려가 일본인 고참 하사관들에 의해 매일 같이 초죽음이 되도록 기합을 받는다. 그러나 아로운이 이에 굴하지 않자 최고 악질 하사관(이예춘)은 아로운에게 자기 군화바닥에 묻은 똥을 핥아 먹으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오래 전에 한국의 논산훈련소 중대장이 변소청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훈병들에게 변기의 똥을 찍어 먹도록 시켜 그 때도 나라가 떠들썩했었다. 이 중대장은 아마도 이예춘의 흉내를 냈던 것 같다.
코미카와 준페이가 쓴 반전소설이 원작인 영화 ‘인간의 조건’의 주인공 가지(타추야 나카다이)도 만주전선에 투입돼 단지 ‘인간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고참 하사관들에 의해 온갖 가혹한 기합을 받는다. 가지는 비인간지대의 군에서 인간성을 지키다가 그 벌의 하나로 똥지게를 나른다.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졸병 프루(몬고메리 클리프트)도 고집불통이어서 말뚝 하사관들로부터 별의별 기합을 다 받는다. 완전무장 구보에 체육관 바닥 물걸레질 그리고 접시 닦기에 주말 외출금지 처분을 받지만 미국이어서 구타는 안 당한다.
윤 일병의 사망 외에도 최근 선임병들의 기혹행위에 못 견뎌 2명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했고 그 전에는 임모 병장이 집단 왕따에 대한 화풀이로 동료들을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 중 많은 병사가 소위 군생활 적응에 문제가 있는 A급 관심병사들이어서 징병제 대신 자원입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젊은 병사들의 자살 뉴스를 읽으면서 그들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의 생명 경시에 충격을 느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 사이 자살이 군대 전체 사망의 64%를 차지했다. 그리고 자살이 한국 청년층의 최대 사망원인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물질적 풍요로 내적 심지가 약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탈영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인물인 프루의 고집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우리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조회에서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너희들은 프라이드를 가져라”라고 한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자존이란 생명을 아끼면서 그것과 투쟁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