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7월 3일 월요일

‘연인들’로 컴백 데브라 윙어




“소통부재 부부 그린 영화… 감독과 인연으로 출연”


대화 불능과 감정 소진에 시달리다 못해 서로 바람을 피우는 중년부부의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코미디 분위기를 섞어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연인들’(The Lovers)에서 작가 애인을 둔 아내 메리로 나오는 데브라 윙어(61)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사관과 신사’ 등 모두 3차례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윙어가 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소품으로 윙어는 강한 성격과 독립심으로 인해 할리웃의 ‘금기인물’이 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인터뷰에 임한 윙어는 아주 상냥하고 밝고 다정했다. 빛이 나도록 이름다웠는데 때로 크게 웃어가면서 약간 저음으로 질문에 차분하고 엄격하게 대답했다. 대답이 매우 철학적이다. 명랑한 모습 속에서도 특유의 강한 줏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동안 공백이 길었는데 왜 이제야 스크린에 복귀했는가.
“인생의 모든 일이란 단지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것은 많은 것들의 집합체이다. 내 자신의 내적 성장과 자녀 문제를 비롯해 마땅한 각본과 감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 영화가 내게 바른 것이라고 깨닫고 나왔다. 배우로서 한 동안 내가 일을 안 하면 내 원동력을 잃는다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스스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그것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관찰해야 그 뜻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 편한가.
“이보다 더 좋았을 때가 없다.”

▲남녀 관계가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나도 모른다. 지난 25년간 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온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 질문을 계속 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지속이란 순간순간에 달려 있다. 우린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희망과 함께 기대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현재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현재에 존재한다. 문제는 당신이 그 현재에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내 대답이 마치 리처드 기어(‘사관과 신사’에서 공연)와 달라이 라마가 나누는 대화처럼 너무 철학적인 것 같네.”

▲살면서 몇 번이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관계의 비결이란 한 사람에게 계속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난 매주 사랑에 빠진다. 나는 여자들과 남자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직 개에게 사랑에 빠져보진 않았으나 곧 그것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난 30대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육체적인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사랑을 했고 감정이 바뀔 때마다 사람도 바꿨다. 그러나 이젠 그런 관념이 바뀌었다. 사랑을 어떤 테두리 안에 넣지 않고 나니 더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관계도 보다 더 뜻 깊은 것이 되고 있다. 

▲영화는 메리와 남편 마이크의 앞날을 애매모호하게 보여 주는데.
“수수께끼 같다. 그러나 내가 영화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뒤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관계를 시도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당신은 비밀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
“남이 말하지 말라는 것은 그대로 잘 지킨다. 그리고 난 자신에게도 비밀을 잘 지키는데 그것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다. 그러나 비밀과 사적인 문제와는 다르다. 난 사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비밀이란 누군가에겐 위험한 것으로 난 그것이 두렵다. 비밀이란 보통 남을 해칠 수가 있다.”

▲메리와 마이크는 전연 소통을 안 하는데 당신은 남과 의사소통을 얼마나 잘 하는가.
“난 소통에 아주 능하다.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러나 난 진짜로 이해하려고 자꾸 묻는다. 난 세 아들의 어머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남자들 틈에서 사는 여자로서 남자들인 그들의 의사를 명확히 알기 위해 끈질기게 묻는다. 지금은 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대화불통의 부부 메리(왼쪽)와 마이클은 각자 바람을 피운다.
▲에이전트와 팬과 스튜디오 간부들을 생각해야 하는 영화계에서 일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가.
“난 그 사람들을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서 그들은 아무 구실도 못 한다. 배우로서의 내 기능과 그들은 아무 관계도 없다. 그래서 난 할리웃의 명성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난 이 영화가 바로 내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영화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업을 한 것이 좋긴 하나 그것은 내 삶과는 무관한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땐 영화와 연극 같은 것이 내 삶인 줄 알았으나 그로 인해 난 크게 상처를 입었다.”

▲왜 이 영화에 나왔는가.
“감독 아자젤 제이캅스 때문이다. 난 그의 영화 ‘테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그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그 후 우린 4-5년간 서로 서신과 각본을 교환했는데 그가 어느 날 자기가 쓴 이 영화의 각본을 보내오면서 주연할 뜻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마이크 역에 트레이시 레츠가 응했고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마법처럼 이뤄졌다.”

▲이 영화는 유럽영화 같이 느껴지는데.
“그렇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과 섹스 이야기는 미국보다 유럽이 더 잘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이 트뤼포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전엔 캐사베티즈나 애쉬비 같은 일부 미국영화 감독들도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으나 이젠 할리웃이 나이 40 넘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첫 영화 ‘어반 카우보이’와 ‘사관과 신사’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둘은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이었다. ‘어반 카우보이’는 내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제임스 브리지스가 감독한 것으로 고유한 미국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난 ‘연인들’을 찍을 때 제임스를 많이 생각했다. ‘사관과 신사’로 부터는 할리웃의 사업적인 면을 배웠다. 1982년 배급사인 패라마운트는 그 영화의 진가를 미처 몰라 개봉을 미루려고 했다가 각본가들의 파업설이 나돌면서 마케팅이나 선전도 제대로 안 하고 급히 개봉했다. 다행히 빅 히트를 했는데 난 그 영화를 만들 때 러브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

▲어디에 사는가.
“뉴욕주 북쪽의 목장에 산다. 소를 키우는 낙농업용 목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안 하지만 연기 생활에서 쉬고 있을 때 하버드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항상 내가 가짜선생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을 극복한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감독한 ‘쉘터링 스카이’에 나왔을 때 그를 사랑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 후로도 그를 만났는데 그는 늘 멋있는 양말을 신곤 했다.”
-이제 와서 ‘아반 카우보이’와 ‘사관과 신사’ 속의 데브라 윙거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들로 인해 데브라 윙거는 하나의 사물이 되었다. 내가 그 영화들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난 상표나 상품의 이름과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난 단순히 이름으로만 기억되지 않을 양질의 작품을 고르려고 조심하고 또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 내 옛 영화들을 보면서 극중의 나와 일체감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은 ‘위험한 여자’에서 나쁜 일을 하는 마사다. 그리고 ‘마이크의 살인’의 베티도 내가 가깝게 느끼는 역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옥자’(Okja)


옥자(왼쪽)와 미자가 돈독한 우정을 즐기고 있다.

수퍼돼지와 소녀의 우정, 탐욕세계의 잔인성 고발


옥자는 한국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크기가 새끼 코끼리만하나 귀엽고 민감한 수퍼 돼지의 이름이다. 재주꾼 봉준호 감독의 온갖 장르를 뒤섞은 이 영화는 동화요 우화이자 대기업(자본주의)의 탐욕과 육식을 탐하는 인간의 동물에 대한 잔인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봉 감독의 ‘스노피어서’에 이은 미국영화다.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가 제작해 29일부터 볼 수 있다.
영화의 톤이 급변하고 얘기가 다소 무질서하나 상냥하고 인정이 있는 매력적인 영화다. 코미디와 공포영화 그리고 사회비평 드라마와 아동영화를 혼합한 영화로 봉 감독의 작가의식이 뚜렷이 엿보이는 독특하고 야심찬 작품이다.
뉴욕의 유전자 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체 미란도의 여사장 루시(틸다 스윈튼이 금발 가발에 이에 브레이스를 하고 액센트를 쓰면서 으스대는 연기를 재미있게 한다)가 수퍼 돼지새끼 생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한다. 루시에게는 라이벌인 쌍둥이 자매 린다(스윈튼)가 있어 회사를 놓고 패권을 겨룬다.
루시는 26마리의 돼지새끼들을 세계 각국에 보내 누가 가장 살찌고 맛 좋은 돼지를 빨리 키울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결정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산골에서 할아버지(변희봉)와 단 둘이 사는 소녀 미자(안서현)와 미자가 정성들여 키운 수퍼 돼지 옥자(컴퓨터 특수효과로 제작된 옥자가 실감난다)가 아름다운 자연(강원도 정선에서 찍었다)을 배경으로 장난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 모습이 아이와 그의 애완동물이 장난하는 것처럼 정겹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서 동물학자로 TV쇼 호스트인 자니(제이크 질렌할이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를 한다)가 미자를 찾아와 옥자를 뉴욕으로 데리고 간다고 알려준다. 물론 옥자는 뉴욕에 가면 베이컨으로 가공될 운명이다. 옥자가 트럭에 실려 공항으로 가는 과정에서 제이(폴 데이노)가 리더인 동물해방전선 게릴라들이 트럭을 습격하면서 심한 폭력이 일어난다. 그리고 미자는 옥자를 구하려고 뉴욕으로 온다. 맨해탄에서 옥자와 미자가 참석한 중에 수퍼 돼지축제가 열리는데 이 행사를 제이 일행이 습격하면서 액션과 폭력이 재발한다.
그리고 미자는 도살장에 끌려간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도살장에 잠입하는데 마치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도살장 장면이 끔찍하다. 끝이 평화롭고 곱다. 명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찍은 촬영이 알록달록하니 아름답고 안서현이 다부지고 야무지면서도 침착하게 연기를 잘 한다. 정재일의 음악도 좋다. IPIC(윌셔+웨스트우드), 모니카 필름센터(샌타모니카) 상영중,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 7/2~8일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늘 선글래스를 끼고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는 록뮤직을 들으며 도주한다.

도주장면 일품인 강도단의 액션영화
록음악 배경 처리 한편의 뮤직비디오


보고 있으면 피가 끓는 흥분을 느끼게 만드는 초고속 스피드의 강도 액션영화로 록뮤직이 끊임없이 나오고 앳된 청춘 남녀의 고운 로맨스마저 있는 흥미진진한 하이스트(heist) 영화다. 살아서 길길이 날뛰는 사나운 만화영화 같기도 하고 뮤직 비디오 같기도 한데 특히 자동차 추격과 도주 장면이 일품이다. 아찔하다.
한 가지 결점은 후반부에 가서 극심한 유혈폭력이 일어나면서 영화가 만화처럼 처리된 것. 전반부는 코믹 액션 영화 같다가 후반부에 들어 믿을 수 없는 액션이 일어나면서 영화의 톤이 완전히 바뀌어 두 개의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장소는 애틀랜타. 고아 베이비(앤셀 엘고트-‘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는 강도전문 범죄를 계획하는 닥(케빈 스페이시)에 고용된 도주차 운전사. 베이비는 늘 선글래스를 끼고 있고 강도 후 도주하면서도 귀에 꽂은 헤드폰으로 록뮤직을 듣는다. 그가 듣는 록뮤직이 사운드 트랙으로 나오면서 액션에 걸맞는 반주를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강도와 속도감 있는 도주로 보는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 베이비가 도주차 운전사 노릇을 하는 이유는 그가 닥에게 진 빚이 있어서다. 닥은 강도를 음모할 때마다 매번 범행을 저지를 사람을 바꾼다. 베이비만 상시 고용이다. 
그런데 베이비가 간이식당에 들렀다가 아름다운 웨이트리스 데보라(릴리 제임스)를 보고 첫 눈에 반하면서 마지막 강도를 끝으로 범죄에서 손을 털고 역시 자기를 좋아하는 데보라와 함께 깨끗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의 이런 은퇴계획은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닥은 은행 강도를 계획하고 이 범행에 성질이 불같은 버디(존 햄)와 그의 애인 달링(에이자 곤잘레스) 및 배츠(제이미 팍스)가 가담한다. 그런데 이 범행이 삐딱하게 나가면서 자동차 도주와 함께 파괴와 유혈폭력이 난무한다. 그리고 동지였던 베이비와 나머지 강도들이 서로 적이 되면서 베이비 뿐 아니라 데보라의 생명마저 위협을 받는다.
곱상하게 생긴 엘고트가 침착하게 도주 차량의 운전사 노릇을 잘 하면서 영화를 혼자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그와 제임스의 콤비도 곱고 나머지 배우들도 잘 한다. 도주 장면 중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은 강도들이 탄 빨간 소형 수바루가 양 옆에서 달리는 같은 모양과 색깔의 수바루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것. 헬기의 경찰이 구분을 못해 안달이 났다. 
영국인 에드가 라이트 감독. R. TriStar.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 식’(The Big Sick)


에밀리(왼쪽)와 쿠마일이 소파에 누워 다정한 때를 보내고 있다.

이민자의 문화충돌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수작


올 해 선댄스 영화제서 극찬을 받아 도대체 얼마나 잘 만들었기에 그런 평을 받았는지 궁금했는데 보고나니 진짜 잘 만들었다. 재치 있고 경쾌하고 사뿐하며 사실적이고 직선적이면서 가슴에 와 닿는 감동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파키스탄 이민자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쿠마일 난지아니의 실화. 그가 주연하고 그의 미국인 백인 부인인 에밀리 고든과 함께 각본을 썼다. 문화 충돌과 부모와의 갈등 그리고 에밀리의 건강이 엄청난 위기를 맞으면서도 이를 모두 극복하고 사랑으로 맺어지는 두 사람의 얘기가 흠 잡을 데 없이 잘 묘사됐다. 
두 사람이 겪는 위기를 조금 더 심각하게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상냥하고 기분 좋은 영화로 특히 에밀리의 부모로 나오는 레이 로마노와 할리 헌터의 연기가 출중하다. 자녀들의 타인종과의 결혼이 보통사가 된 이민자들인 한국인 부모들을 비롯해 모든 세대가 보면 남의 얘기 같지가 않을 것이다.
에밀리는 쿠마일을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만나 둘은 금방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쿠마일은 파키스탄 사람이요 에밀리(조이 카잔)는 백인 미국사람이라는 사실. 쿠마일은 아직 성공한 코미디언이 못 돼 우버 운전사로 밥벌이를 한다.
물론 쿠마일의 보수 전통적인 부모는 아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쿠마일에게 어서 장가가라면서 계속해 파키스탄 처녀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선을 보게 한다. 그러나 쿠마일은 속으로 난 절대로 중매결혼을 안 한다고 작심한 청년이다.
쿠마일은 보수적인 부모 때문에 자기가 에밀리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이런 사실을 알렸다간 가족에서 쫓겨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밀리가 원인 모를 중병에 걸리면서 그에 대한  대책과 충격으로 청년 쿠마일은 본격적인 어른 쿠마일로 성장하게 된다.
쿠마일이 병원에서 에밀리를 돌보면서 비로소 에밀리의 부모 테리(로마노)와 베스(헌터)를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물론 처음에 쿠마일을 냉랭하게 대한다. 그러나 에밀리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이들은 쿠마일이 자기들의 딸을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는다. 그리고 성깔 있는 베스는 완전히 쿠마일의 편이 돼 반 무슬림 데모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맞서기까지 한다.              
이제 쿠마일은 자기 부모에게 에밀리의 정체를 밝히고 한판 겨룰 만반의 준비를 한다. 물론 영화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정적이요 따스하게 해피엔딩! 쿠마일과 카잔(감독 엘리아 카잔의 손녀로 생김새와 연기가 다 귀엽다) 그리고 로마노와 헌터가 모두 연기를 기차게 자연스럽게 잘 하는데 특히 헌터가 앙칼지면서도 속으로는 인정 있는 어머니의 연기를 눈부시게 한다. 상감이다. 마이클 쇼월터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비가일드’ (The Beguiled)


교장 마사(왼쪽서 네번째) 일행이 북군 존을 대접하고 있다.

여자 기숙사에 온 북군 둘러싼 소동… 겉만 번지르르‘칸영화제 감독상 무색’


필자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와일드 앳 하트’에게 작품상을 준 칸영화제를 불신하는데 지난 5월 ‘비가일드’를 연출한 소피아 코폴라(프랜시스 코폴라의 딸)에게 감독상을 주는 것을 보고 한층 더 불신하게 됐다. 도대체 이런 폼만 재는 영화를 감독한 사람에게 상을 준 것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소피아는 사람도 침착하고 조용하며 연출도 착 가라앉다시피 차분한데 이 영화는 차분하다 못해 무기력할 정도다. 보는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영화로 스타일만 있지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나 얘기가 다 턱 없이 모자라고 지지부진하다.
크림 빛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학교 맨션 안을 오락가락하다 마는데 작품이 지닌 열정과 라이벌 의식과 질투와 배신과 적대감이 내 뿜어야 하는 열기가 하나도 안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 이 영화는 지난 1971년 단 시겔이 감독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빛을 찍은 첫 장면부터 촬영과 조명은 좋다. 따라서 외화내빈의 작품이다. 포성이 멀리서 끊임없이 울리면서  남북전쟁 중임을 알려준다. 미 남부 버지니아주의 여자전용 기숙사학교의 한 학생이 버섯을 따러 나갔다가 중상을 입은 북군 존 맥버니(칼린 패럴)를 발견, 학교로 데려간다.
학교에는 교장 마사(니콜 키드만)와 교사 에드위나(커스튼 던스트) 그리고 상급생 알리시아(엘리 패닝) 외에 4명의 여학생만 있다. 이런 여자들의 세계에 잘 생기고 신체 건강한 남자가 나타나면서 여자들 사이에 성적 욕망과 경쟁의식 그리고 질투와 적대감이 악성 전염병처럼 번진다. 존은 여자들의 이런 심중을 파악하고 자신의 매력을 사방팔방에 흩뿌리는데 그 중에서도 에드위나와 눈이 맞아 욕정을 불사른다. 그런데 과연 존은 에드위나를 사랑하는 것인가.
마지막은 여자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메아 쿨파’ 식으로 폭력적으로 끝이 나는데 무슨 해괴한 공포영화나 괴물영화를 보는 것 같다. 배우들 간의 교감도 매우 모자라는 성장이 제대로 안된 미숙한 작품이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헛것 많이 보는 봉준호




봉준호감독(49)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실한 대학생 같은 모습과 자세가 마찬가지다. 7년 전에는 ‘마더’ 홍보 차 LA에 온 그를 만났고 최근에는 스트리밍업체 네트플릭스가 제작한 ‘옥자’를 위해 와 만났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콧수염을 한 것.
지난 5월 칸영화제서 경쟁부문에 올랐던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가 자기가 10년간 키운 수퍼 돼지 옥자가 미 대기업 식품업체 「미란도」에 의해 뉴욕으로 끌려가자 옥자를 찾아 미국에 오면서 일어나는 모험과 액션을 그렸다.
봉감독은 작품의 아이디어에 대해 지난 2010년 차를 몰고 시내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눈 앞에  높이 3^4층짜리의 순하고 내성적인 거대한 돼지가 나타나 방황하는 모습이 보인 뒤로 그 돼지의 앞날이 궁금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봉감독은 “나는 이처럼 헛것을 많이 본다”며 웃었는데 이 헛것이란 예술가의 비전일 것이다.
‘스노피어서’로 국제적 감독이 된 봉감독은 ‘옥자’로 그 입지를 더욱 다지게 됐는데 이 영화는 칸영화제 상영 시 극장 상영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공개되는 영화라는 점 때문에 큰 논란거리가 됐었다. 그래서 한국의 대형극장 체인들도 28일에 개봉된 ‘옥자’를 보이콧했다.
봉감독은 이에 대해 “극장 측 입장도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온라인 개봉은 영화 관람의 새 형식으로 나는 이 것과 극장 관람이 평화공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사실 이를 둘러싼 문제는 궁극적으로 영화업계의 것이지 창작자들의 문제는 아니다”고 덧 붙였다.    
봉감독은 네트플릭스가 자기 일에 일절 관여치 않아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음악과 편집 등에서 한국인들을 기용한 것도 다 내 의도대로였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최근 한국영화계에 대해 예산규모도 커지고 작업환경과 대우도 많이 개선됐다고 말하고 영화의 질적 개선도 낙관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영화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마더’의 김혜자씨가 권위 있는 LA영화 비평가협회에 의해 주연상을 받았듯이 조만간 오스카상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보이는 봉감독은 ‘스노피어서’와 ‘옥자’를 만드느라 근 7년간 해외생활을 하다시피 했다면서 두 영화에 다 나온 틸다 스윈튼과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스윈튼은 ‘옥자’ 구상 때부터 제작에 개입, 자신의 대사를 본인이 수정하기도 했다.
돼지 이름을 옥자로 지은 것에 대해서는 순 한국적인 것과 유전자를 조작해 수퍼돼지를 생산하는 대기업 「미란도」간의 동^서양 및 신^구식의 대조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봉감독은 스릴러를 잘 만드나 장르감독이 아닌 오퇴르(작가주의 감독)다. 그가 비평가들의 호응을 받는 이유도 장르의 변형적 연출을 통해 오락성과 개인적 색채가 강한 예술성을 훌륭히 결합하기 때문이다. 봉감독은 장르를 따지기 전에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여긴다.
봉감독은 이어 미자 역의 안서현은 ‘하녀’를 비롯해 꼬마 때부터 영화와 TV작품에 나온 베테런이라며 ‘옥자’의 캐스팅이 처음에 매우 힘들었으나 안서현을 고른 뒤로 잘 풀려나갔다고 안서현을 칭찬했다.
봉감독의 멘토는 김기영 감독과 쇼헤이 이마무라. 그리고 히치콕도 좋아한다. 그래서 ‘마더’의 어머니는 히치콕의 ‘사이코’의 어머니로부터 다소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알려줬다.
봉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 주한미군 방송인 AFKN-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 이 때 본 영화 중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영화는 프랑스의 앙리-조르지 클루조가 감독하고 이브 몽탕과 샤를르 바넬이 나온 서스펜스 가득한 ‘공포의 보수’. 그는 특히 바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영화를 빼지 않고 끝까지 보기 위해 오줌을 참느라고 혼이 났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앞으로 송강호를 기용해 작은 영화를 만들 계획인데 한국영화건 미국영화건 간에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젊었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라고 가볍게 야단을 쳤다. 봉감독은 제작자에 대한 예의로 많은 관객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돈을 추구하거나 내용을 타협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오퇴르다.
헤어지면서 샌디에고 인근에 사시는 한국영화계의 원로 정창화감독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액션영화를 잘 만드신 감독인줄 알고 있다”면서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었다. 다음에 LA에 오면 함께 정감독을 방문하자고 제의했다. 봉감독과 나는 정답게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는데 급히 다음 인터뷰 차 떠나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