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부재 부부 그린 영화… 감독과 인연으로 출연”
대화 불능과 감정 소진에 시달리다 못해 서로 바람을 피우는 중년부부의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코미디 분위기를 섞어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연인들’(The Lovers)에서 작가 애인을 둔 아내 메리로 나오는 데브라 윙어(61)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사관과 신사’ 등 모두 3차례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윙어가 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소품으로 윙어는 강한 성격과 독립심으로 인해 할리웃의 ‘금기인물’이 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인터뷰에 임한 윙어는 아주 상냥하고 밝고 다정했다. 빛이 나도록 이름다웠는데 때로 크게 웃어가면서 약간 저음으로 질문에 차분하고 엄격하게 대답했다. 대답이 매우 철학적이다. 명랑한 모습 속에서도 특유의 강한 줏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동안 공백이 길었는데 왜 이제야 스크린에 복귀했는가.
“인생의 모든 일이란 단지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것은 많은 것들의 집합체이다. 내 자신의 내적 성장과 자녀 문제를 비롯해 마땅한 각본과 감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 영화가 내게 바른 것이라고 깨닫고 나왔다. 배우로서 한 동안 내가 일을 안 하면 내 원동력을 잃는다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스스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그것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관찰해야 그 뜻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 편한가.
“이보다 더 좋았을 때가 없다.”
▲남녀 관계가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나도 모른다. 지난 25년간 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온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 질문을 계속 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지속이란 순간순간에 달려 있다. 우린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희망과 함께 기대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현재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현재에 존재한다. 문제는 당신이 그 현재에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내 대답이 마치 리처드 기어(‘사관과 신사’에서 공연)와 달라이 라마가 나누는 대화처럼 너무 철학적인 것 같네.”
▲살면서 몇 번이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관계의 비결이란 한 사람에게 계속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난 매주 사랑에 빠진다. 나는 여자들과 남자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직 개에게 사랑에 빠져보진 않았으나 곧 그것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난 30대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육체적인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사랑을 했고 감정이 바뀔 때마다 사람도 바꿨다. 그러나 이젠 그런 관념이 바뀌었다. 사랑을 어떤 테두리 안에 넣지 않고 나니 더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관계도 보다 더 뜻 깊은 것이 되고 있다.
▲영화는 메리와 남편 마이크의 앞날을 애매모호하게 보여 주는데.
“수수께끼 같다. 그러나 내가 영화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뒤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관계를 시도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당신은 비밀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
“남이 말하지 말라는 것은 그대로 잘 지킨다. 그리고 난 자신에게도 비밀을 잘 지키는데 그것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다. 그러나 비밀과 사적인 문제와는 다르다. 난 사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비밀이란 누군가에겐 위험한 것으로 난 그것이 두렵다. 비밀이란 보통 남을 해칠 수가 있다.”
▲메리와 마이크는 전연 소통을 안 하는데 당신은 남과 의사소통을 얼마나 잘 하는가.
“난 소통에 아주 능하다.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러나 난 진짜로 이해하려고 자꾸 묻는다. 난 세 아들의 어머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남자들 틈에서 사는 여자로서 남자들인 그들의 의사를 명확히 알기 위해 끈질기게 묻는다. 지금은 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대화불통의 부부 메리(왼쪽)와 마이클은 각자 바람을 피운다. |
▲에이전트와 팬과 스튜디오 간부들을 생각해야 하는 영화계에서 일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가.
“난 그 사람들을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서 그들은 아무 구실도 못 한다. 배우로서의 내 기능과 그들은 아무 관계도 없다. 그래서 난 할리웃의 명성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난 이 영화가 바로 내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영화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업을 한 것이 좋긴 하나 그것은 내 삶과는 무관한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땐 영화와 연극 같은 것이 내 삶인 줄 알았으나 그로 인해 난 크게 상처를 입었다.”
▲왜 이 영화에 나왔는가.
“감독 아자젤 제이캅스 때문이다. 난 그의 영화 ‘테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그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그 후 우린 4-5년간 서로 서신과 각본을 교환했는데 그가 어느 날 자기가 쓴 이 영화의 각본을 보내오면서 주연할 뜻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마이크 역에 트레이시 레츠가 응했고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마법처럼 이뤄졌다.”
▲이 영화는 유럽영화 같이 느껴지는데.
“그렇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과 섹스 이야기는 미국보다 유럽이 더 잘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이 트뤼포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전엔 캐사베티즈나 애쉬비 같은 일부 미국영화 감독들도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으나 이젠 할리웃이 나이 40 넘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첫 영화 ‘어반 카우보이’와 ‘사관과 신사’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둘은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이었다. ‘어반 카우보이’는 내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제임스 브리지스가 감독한 것으로 고유한 미국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난 ‘연인들’을 찍을 때 제임스를 많이 생각했다. ‘사관과 신사’로 부터는 할리웃의 사업적인 면을 배웠다. 1982년 배급사인 패라마운트는 그 영화의 진가를 미처 몰라 개봉을 미루려고 했다가 각본가들의 파업설이 나돌면서 마케팅이나 선전도 제대로 안 하고 급히 개봉했다. 다행히 빅 히트를 했는데 난 그 영화를 만들 때 러브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
▲어디에 사는가.
“뉴욕주 북쪽의 목장에 산다. 소를 키우는 낙농업용 목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안 하지만 연기 생활에서 쉬고 있을 때 하버드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항상 내가 가짜선생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을 극복한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감독한 ‘쉘터링 스카이’에 나왔을 때 그를 사랑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 후로도 그를 만났는데 그는 늘 멋있는 양말을 신곤 했다.”
-이제 와서 ‘아반 카우보이’와 ‘사관과 신사’ 속의 데브라 윙거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들로 인해 데브라 윙거는 하나의 사물이 되었다. 내가 그 영화들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난 상표나 상품의 이름과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난 단순히 이름으로만 기억되지 않을 양질의 작품을 고르려고 조심하고 또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 내 옛 영화들을 보면서 극중의 나와 일체감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은 ‘위험한 여자’에서 나쁜 일을 하는 마사다. 그리고 ‘마이크의 살인’의 베티도 내가 가깝게 느끼는 역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