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존스 부부 따라 가기’의 존 햄




“난 제임스 본드의 팬 그의 영화를 통해 세상 구경”


로맨스를 곁들인 스파이 액션 코미디‘존스 부부 따라 가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에서 여행작가로 위장한 멋쟁이 스파이 팀 존스로 나오는 존 햄(41)과의 인터뷰가 지난 8일 샌타모니카의 페어몬트 미라마 호텔에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구 그리고 옛 할리웃 스타의 멋을 지닌 미남 햄은 늘 친절하고 상냥하고 겸손해 친근감이 가는 배우다. 전형적인 미국 신사 타입인데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으면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때로 장난기 짙은 아이처럼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상소리마저 섞어가면서 인터뷰를 즐기는 듯했다. 햄은 AMC-TV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매드 멘’(Mad Men)으로 스타가 된 사람으로 지금 작은 브라운관을 벗어나 빅 스크린에서도 성공하려고 노력 중인데 아직은 빅 히트작이 없다.  

-스파이 장르와 어떤 관계이며 제임스 본드의 팬인가.
“난 제임스 본드의 열렬한 팬인데 어릴 때 미주리의 작은 동네에 살면서 그의 영화를 통해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를 통해 유럽과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이야 말로 매력적이요 멋있는 경험이었다. 난 본드의 영화뿐 아니라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다. 사람들이 날 보고 다음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영광이나 본드는 어디까지나 영국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에서 스파이 노릇 하기가 즐거웠는지.
“스파이 노릇 한다는 것은 진짜로 멋진 재미다. 나쁜 자들은 내 총을 맞고 쓰러지나 난 절대로 총을 안 맞는다. 담을 기어오르고 차를 거꾸로 고속으로 모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액션 연기하기가 힘들었는가.
“즐기며 했다. 영화에서 차를 고속으로 몬 사람은 진짜 나다. 일부는 특수효과이지만 난 차를 고속으로 몰고 또 회전하는 기술을 배워 신나게 사용했다. 그런 흥분되는 기회는 실제로는 좀처럼 많지 않은 것이다.”

-팀은 친구가 된 이웃에 사는 평범한 제프의 삶을 동경하는데.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어리석은 장난과도 같은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게 한 것이다. 스파이 생활은 겉으로 보기엔 멋있는 것 같지만 그는 언제나 남을 속이고 또 위험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듯이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다. 남이 보기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필요하고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부부 스파이 팀(아래)과 그의 아내 나탈리가 킬러들을 향해 사격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기로 했는가. 
“난 이 영화의 감독 그렉 모톨라와 제프 역의 잭 갈리피아나키스와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이렇게 친구처럼 잘 아는 사람들과 영화를 만든다는 일은 흔치 않다. 모르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나와 잭의 아내 역으로 갤 개도와 이슬라 피셔가 합류했으니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우리 넷은 함께 같은 장면에 많이 나오면서 즐겼다.”

-존 햄 하면 모두‘매드 멘’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이후로 역을 어떻게 선정하는가.
“난 그저 계속해 일하고 싶을 뿐이다. 한군데만 영원히 매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린 다 늙고 또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다 앞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매드 멘’으로 보낸 나의 과거는 앞으로의 가능성과 기회를 찾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난 그저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일들을 계속해 하고 싶을 뿐이다.”  

-영화에서 뱀들이 나오는데 진짜 뱀인가.
“일부는 진짜다. 그런데 난 뱀에게 관심이 많다. 난 미주리에서 자라 뱀들을 많이 봤다. 어디를 가도 뱀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뱀들은 위험한 것들이 아니다.”

-뱀 고기 먹어본 적 있는가.
“난 어렸을 때 달팽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먹었는데 지금도 무엇이든지 먹을 수는 있지만 아직 뱀 고기는 못 먹어 봤다.”

-당신은 여행작가로 나오는데 실제로 여행해 본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
“인도다. 아름답고 모든 것이 넘치는 나라다. 난 그 곳에 6개월간 머물렀었다. 그 나라의 문화는 백만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데 난 정말로 그곳에 더 오래 머물면서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었다.”

-취미는 무엇인가. 
“내가 늘 좋아해온 것은 스포츠에 참가하는 일이다. 난 고등학생 때 운동선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운동선수가 되는 일은 원치 않았다. 하루에 8시간씩 체육관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LA 야구팀 선수로 뛰고 또 테니스와 골프도 한다. 운동은 나를 바쁘게 할 뿐 아니라 젊게 만든다. 난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데 내 고향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야구팀은 그곳 사람들에겐 그들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난 인도에 머무를 때 크리켓을 시도해 봤으나 엉망이었다.”

-남에게 말하기가 쑥스러우나 재미있게 본 영화는.
“‘쇼걸스’다. 그 영화의 감독 폴 베어호벤은 천재이든지 아니면 미친 사람이든지 둘 중 하나다. 그의 다른 영화 ‘로보캅’도 마찬가지다. 난 이 두 영화에 완전히 반했다. 최근에 ‘쇼걸스’에 나온 지나 거숀을 만났는데 그 때 그 영화에 대해 말이 하고 싶어 목구멍이 근질거렸으나 꾹 참았다.”

-이 영화는 옛날 할리웃 풍인데.
“시간 보내기에 딱 맞는 즐거운 모험영화로 케리 그랜트와 오드리 헵번이 온갖 모험을 경험하던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내가 케리 그랜트라는 말은 아니다. 옛날에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많았는데 요즘 영화들은 만화의 주인공들이나 수퍼히로들이 주인공들이다. 그들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난 좀 다른 재미를 원한다.”

-여자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가.
“난 늘 지적이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왔다.”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는가.
“그렇다고 본다. 날 봐라. 꽤 괜찮지 않은가.”

-당신 아내 역의 갤 개도가 당신을 우습고 영리한 사람이라며 토크쇼 호스트를 해도 되겠다고 칭찬하던데 그럴 생각이라도 있는지.
“난 글을 안 쓴다. 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상하게 글 쓰는데 관심이 없다. 어렵고 별 재미를 못 느낀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토크쇼 호스트를 하겠는가.”

-음악은 당신에게 영감이나 표현의 매체로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가.
“난 별로 음악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즐길 줄은 안다. 노래나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연을 즐기기는 하지만 난 그런 재주가 없다. 난 초등학교 3학년 때 바이얼린을 배웠는데 신통치가 못했다. 난 고도의 재능을 지닌 가수나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큰 의문에 젖곤 한다. 내게 있어 그들은 마법사나 마찬가지다. 난 밴조를 연주하고 싶다. 재미있는 악기라고 생각한다.”

-‘매드 멘’의 출연진들과 종종 만나는가.
“우린 그 후로 각기 제 갈 길들로 갔다. 우린 10년간 그 시리즈로 맺어졌지만 이제 서로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배우가 된 이유다. 우린 모두 다음은 뭐지 라는 물음에 대한 다른 대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인퍼르노(Inferno)


로버트 랭던(가운데)과 시에나 브룩스(오른쪽)가 베니스에서‘인퍼로노’의 단서를 찾고 있다.

거대한 재앙을 막아낼 유일한 단서 찾아라


하버드대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을 주인공으로 한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스릴러 ‘다빈치 코드’와 그 속편격인 ‘천사들과 악마들’을 쓴 댄 브라운의 소설이 원작. 이 두 소설의 영화판을 감독한 론 하워드와 역시 두 영화에서 랭던 역을 맡은 탐 행스가 나오는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영화가 재미가 없는 데다가 플롯이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과장돼 기호학자인 랭던도 어리둥절해 하니 보통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솜씨가 좋은 하워드의 연출력도 나태하고 산만하기 짝이 없다. 지루하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로 이탈리아에서 찍어 경치 하나는 좋다.
랭던이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기가 왜 플로렌스에 왔는지 모르는 기억 상실증자가 된 랭던은 지옥의 모습의 환상에 시달리는데 이런 랭던을 치료하는 의사가 영국인인 아름다운 시에나 브룩스(펠리시티 존스-‘모든 것의 이론’의 스티븐 호킹 박사의 아내 역).
이어 가죽옷을 입고 모터사이클을 모는 늘씬하고 냉기가 감도는 미녀 킬러가 병원에 와 랭던에게 총질을 하면서 랭던과 시에나는 숨이 턱에 차도록 영화 내내 도망간다. 이들 뒤를 여자 킬러와 기관총을 든 킬러들이 계속해 쫓고.
역시 첫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과대망상증자인 억만장자 버트랜드 조브리스트(벤 포스터)가 높은 종탑 꼭대기로 도망가다가 갈 길이 막히자 투신자살한다. 조브리스트는 지구의 인구과잉 문제 해결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을 멸살시킬 바이러스 ‘인퍼르노’를 만든 장본인.
그런데 랭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 작은 전등 모양의 환등기 장치를 통해 13세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가 단테의 글을 바탕으로 그린 ‘지옥의 지도’를 관찰하면서 이 그림 속에서 ‘인퍼르노’의 소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랭던은 재앙을 막기 위해 시에나와 함께 플로렌스에서 베니스로 이어 이스탄불로 킬러들을 피해 가면서 장소를 옮기는데 이렇게 경치 좋은 장소로 이동하는 까닭이 도무지 분명치가 않다. 그런데 과연 시에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와 함께 랭던의 옛 연인 엘리자베스와 비밀단체의 정체가 불분명한 해리(인도 배우 이르판 칸)가 등장하면서 랭던은 누가 자기편 인지를 몰라 갈팡질팡 한다. 클라이맥스는 물위의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벌어지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고 맨 끝에 랭던이 하는 짓도 실소가 나올 정도로 유치하다. 행스의 연기야 늘 적당히 잘 하는 것인데 이 영화로 할리웃의 메이저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연기파 영국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아깝다. PG-13. Sony. 전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탐포포(Tampopo)


고로(왼쪽)를 비롯한 손님들이 탐포포의 라멘국물을 사발째 들여마시고 있다.

도쿄에서 가장 맛 좋은 라멘집 만들기


섹스와 음식을 에로틱하면서도 코믹하게 요리한 먹는 영화로 특히 일본 라멘 먹는 영화다. 1987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일본의 풍자감독 주조 이타미의 ‘라멘 웨스턴’으로 새로 프린트해 재개봉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라멘을 먹고 그 국물을 마시는 모습이 정겹고 우습고 따스하게 인간적이다. 
영화는 백색 신사복을 입은 갱스터가 요란한 화장을 한 애인과 함께 극장 맨 앞자리에 앉아 정식으로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때 이들 뒤에서 한 남자가 소리를 내면서 포테이토칩을 먹자 갱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하라며 위협한다.
이어 카우보이 모자를 쓴 트럭운전사 고로(추토무 야마자키)가 자기 단짝 군(젊은 켄 와타나베)을 데리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예절 바르나 강인한 미망인 탐포포(노부코 미야모토)가 경영하는 작은 라멘집에 들른다. 탐포포는 정성껏 라멘을 만들어 고로에게 건넨 뒤 맛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대답은 정성은 들였으나 특징이 없다는 것. 
이에 탐포포는 고로에게 떠나지 말고 머물면서 자기에게 진미의 라멘 조리법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고 고로는 이를 수락한다. 탐포포의 꿈은 도쿄에서 가장 맛 좋은 라멘을 만드는 것. 그리고 둘 사이에 서서히 로맨스의 기운이 싹트고. 
이제부터 온갖 사람들이 나와 라멘을 요리하고 먹고 국물을 마시고 평가를 하고 또 라멘집끼리 경쟁을 하면서 ‘라멘 웨스턴’이 열기를 띠운다. 우선 고로는 탐포포에게 마치 올림픽 경기에 나가는 선수처럼 맹렬히 신체단련부터 시킨다. 그리고 다시 갱스터와 그의 애인이 나오면서 나체와 신선한 굴과 핏방울이 흐르는 기차게 섹시한 장면이 욕망을 자극한다. 
또 포장마차에서 신선과도 같은 나이 먹은 라멘 도사로부터 라멘 먹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과 함께 탐포포를 사랑하는 동네 갱스터와 그의 졸개들 그리고 온갖 라멘 식충이들이 탐포포의 집을 찾아와 라멘을 먹는다. 
이렇게 에피소드 식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고로와 군 그리고 동네 갱스터와 그의 졸개들이 탐포포의 가게를 말끔히 새로 단장하고 간판도 새로 내건 뒤 탐포포가 그동안 공들여 연마한 일품 라멘 조리법을 사용해 맛 좋은 라멘을 제공, 모두가 포식하고 그릇 째 국물을 들여마시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군침이 돌고 입맛이 당겨지는 맛있는 영화로 연기들이 좋다. 많이들 가서 탐포포의 라멘을 즐기세요. 성인용. Janus. Nuart 극장(11272 샌타모니카). 3일까지.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리스트




나는 박정희 정부시대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에 외신부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신문사에 중앙정보부원이 상주했고 야근에 쓴 기사가 밤새 검열에 걸려 아침신문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해 온두라스에서 쿠데타가 났는데 당시 외신부장으로 후에 국회의원을 한 고 조순환씨가 내게 이에 대해 해설을 쓰라고 지시했다. 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을 빗대어 절대권력과 부패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설의 끝을 맺었다. 
이튿날 조부장이 날 데리고 신문사 옆의 다방에 데리고 가 커피를 사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박흥진씨 당신도 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신문기자들은 다 블랙리스트 감이었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최근 박정희의 딸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에 무려 9,473명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문화예술계의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한탄과 함께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공연장 대관이나 각종 지원을 배제하기 위한 것. 
정부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통제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쩍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해 부산영화제 측에서 영화제에 지원금을 대는 부산 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기록영화 ‘다이빙벨’(사진)을 상영, 영화제가 전방위 감사를 받고 그 결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해촉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노골화됐다고. 그래서 올 부산영화제는 반쪽짜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화예술위 회의록에 의하면 예술인 지원여부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이 “그 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서 빠졌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놓고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작성이 청와대의 뜻임에 분명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 왕국이라 해야 할 만큼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문화예술계마저 이렇게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받아야 하니 다른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출품하는 영화진흥위가 출품작을 선정하는 데도 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고 최근 LA를 방문한 한국의 한 영화인이 내게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박정권 시대 툭하면 긴급조치를 발동하면서 언론과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목 조르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 대표적 예가 대중가요에 대한 금지곡 판정. 통기타 가수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의 붉은 태양이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금지 당했는데 김민기 외에도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함께 여러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가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일본풍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는데 박정희가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일본 가요를 즐겨 불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또 많은 외국 팝송들도 검열에 걸려 금지곡 딱지를 맞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니 캐시의 ‘링 오브 파이어’도 검열의 제물이 됐다. 당국의 검열지침은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영화들도 혹독한 가위질을 당한 뒤 상영이 허락됐는데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비롯해 무기력한 청춘묘사라는 이유로 원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 개봉됐다. 실제로도 파출소 순경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들을 잡아다 자로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족도 끌어다가 직접 가위로 공짜 이발을 해줬었다. 
블랙리스트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이 2차 대전 후 미국을 휩쓴 맥카시즘. 공산당 때려잡기로 미 하원의 비미국적 활동조사위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 진보파들의 아성인 할리웃이었다. 이 마녀사냥으로 좌파성향이 있는 감독, 각본가 및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웃에서 퇴출당했다. 조사위에 출두, 묵비권을 행사한 죄로 옥살이를 한 ‘할리웃 텐’이 그 대표적 경우다. 
부시 정권 때도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설이 있었다.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정적 분쇄용으로 쓰이면서 많은 창조적 사람들을 파괴해 오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지금 정부의 통제와 검열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이 자기검열을 해 창작의 자유가 심하게 위축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야 말로 시대착오적이요 퇴행적인 불상사다. 박근혜씨는 아버지로부터 배웠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